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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평점 :
핏빛 사랑의 노래가 이렇게 잔혹할 거란 생각은 미처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잘못된 집착일지라도 언제나 서로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헤피엔딩 스토리였으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이 책은 원작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처럼, 하나의 잔혹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된다. 붕대감은 성자, 상현은 몸에 기포가 발생하는 병을 앓게 되고 그 후로 사람의 피를 먹으면 몸의 기포도 사라지고 상처도 아물고, 가벼워진다는 것을 알게된다. 신부인 그에게 금기인 성적욕망을 갖게 한 여인, 태주. 그녀는 어린시절 함께한 강우와 상현과의 단짝이었다. 버려진 아이를 길러주었다는 이유로 그녀를 도저히 사람이라고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는 라여사. 그리고 자연스레 자신의 아들, 강우와 태주를 결혼시킨다. 이야기의 비극은 태주를 그 삭막한 지옥에서 빼내려는 상현으로부터 시작된다.
친구의 처와 불륜관계를 유지하면서 끝내, 강우를 살인할 계획까지 마친 그는 태주를 위해 그 일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 후로 틀어지기 시작한 태주와의 관계.
죽을만큼 싫었던 집도 그리고 어머니인 라여사조차 그녀에겐 너무나 소중했던 추억의 단편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정신을 놓은 라여사를 돌보며 태주는 연민과 자책, 죄책감에 휩싸이고 끝내 이 지독한 현실을 끝내기 위해 상현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말한다.
자신의 사랑이 이런 결말이 되길 바란 것이 아니었는데, 단지 아름답기만 한 태주와 함께 살아가고픈 마음에 시작된 일이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는 태주의 숨이 멎었을 때, 자신의 피를 태주에게 줌으로써 자신과같은 뱀파이어, 이브를 탄생시켰다. 이미 한번 죽었던 태주에게 꺼리낌이란 없었다. 상현이 살인만을 하지 않기위해 태주를 설득했지만, 자신의 기분에 반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 피를 얻는 태주는 예전의 알고 있던 태주가 아니었다. 그저 괴물에 지나지 않았다.
신념이 강하고, 누구보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상현은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끝내 태주와 함께 강렬한 태양 빛에 의해 사라진다.
태주를 보면 강한 연민을 자아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모든지 하는 일그러진 성향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살아온 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닌데, 책에서의 그녀는 자신의 성격대로 살지 못하고 억압받는 현실에 조용히 묻혀지내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상현은 그런 그녀의 본성을 알기보다는 그녀를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픈 강렬한 목표와 그녀에게서 위안을 얻게된다. 지독히도 타올랐던 불꽃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러지듯 그들의 사랑도 오래가진 않았던 거 같다.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었고, 서로의 도피처에 불과했던 사랑이었던 만큼 그들의 모습은 추해져만 갔었다. 상현이 아니었다면 더 큰 살생을 했을 법한, 태주. 하지만, 상현이 아니었다면 그런 태주의 모습은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었던 그 시간들 부터 잘못되었다고 말하기엔 그들의 전 시간이 모두 부정되는 거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읽으면서 싸늘한 공포를 불러왔던 박쥐, 영화는 무서울 거 같아서 도저히 못 볼것 같고 책으로만이라도 그들의 사랑을 읽어본 것에 만족한다. 그들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판단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