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책 - 자크 티보라는 이름의 친구 북스토리 아트코믹스 시리즈 8
타카노 후미코 지음, 정은서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0725 타카노 후미코.


우연히 알게된 타카노 후미코 만화를 벌써 네 개나 봤다. 럭키 아가씨의 새로운 일, 빨래가 마르지 않아도 괜찮아, 막대가 하나, 노란 책. 볼 때 마다 그림도 스토리도 그냥 그런데… 독특함은 있는데 난 잘 못 따라 가겠다...하면서도 왜 계속 보고 있어… 이젠 그만 봐도 되겠다 싶은데 번역된 만화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ㅋㅋㅋ이 작가가 낸 책은 37년 간 일곱 권 쯤 된다고 한다. 반 넘게 봤음 이제 됐다… 놓아주자…

책 이름과 같은 표제작 노란 책-자크 티보라는 이름의 친구, 에는 책에 푹 빠진 미치코라는 사람이 나온다. 부모도 동생들도 다정한 집인데, 미치코는 스웨터도 짜고 부모 심부름도 하고 그렇게 자라서 학교를 졸업하면 메리야스 공장에 취업할 예정이다. 티보 가의 사람들을 읽으며 자크와 이야기를 나누고 혁명, 인터내셔널리즘, 그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이런 저런 상상을 한다. 코델리아, 하고 연극에 몰입한 나머지 배 위에 누워 죽은 척 하며 둥둥 떠내려가는 빨간 머리 앤이 생각났다.
그렇게 책에 푹 빠져 읽어 본지가 언제일까...이 달은 이 책까지 22권을 읽었다. 미쳤네… 최고 기록이다… 그런데 그냥 즐거워서 라기보다는 강박처럼 붙들고 있다. 닥치는 대로 분야 안 가리고 그냥 읽어 치우고 독후감 휘리릭 뚝딱 써 내고… 이거 아니면 딱히 할 일도 없어서요… 9월까지 항응고제를 먹는다.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 실내자전거를 타고 다리 근육을 키운다.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목적도 의무도 없이 둥둥 떠다니는 날들, 좋은 날들일지도 모르겠는데 미치코처럼 책에 반해 푹 빠져 지내진 않는다. 뭐 그렇다고…
(민음사판 티보가의 사람들은 절판이고 팔고 있는 건...동서문화사판...에비 지지 으으...)

나머지 만화들은 잘 모르겠다. 1990년대에 그려지고 발표된 만화들을 2002년에 묶어낸 책인데, 여자들은 순종적이고, 음식을 만들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뜬금 없는 놈이랑 결혼하고, 뜬금 없는 놈이랑 잠시 스치고 다시 안 만나게 되었는데 인연을 놓쳤다, 이러고…

만화책인데 이번엔 한 장면도 못 건졌나, 다시 돌아보니까 이 부분 좋았다. 책 다 읽고 서서히 등장인물들과 이별하는 장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인데 아빠가 그렇게 좋으면 다섯 권 다 사서 간직하라고 말해주는 부분. 나는 내가 가지고 싶으면 그냥 어떻게든 내 스스로 가졌는데, 누가 저렇게 말해줬으면 아이, 됐어요, 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eagene 2023-07-26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22권 대단하시네요 ㅎㅎ 여러가지로 부럽습니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7-26 14:00   좋아요 1 | URL
오늘도 근무하시느라 애쓰시는 예진님!! 더운 날 건강 조심하시구 얼른 퇴근 시간 다가오길 기원합니다. 구름이 넘모 귀여워요. 성견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 ‘모두’의 페미니즘에서 누락된 목소리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미키 켄들 지음, 이민경 옮김 / 서해문집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0724 미키 켄들.


제목이 멋있어서 직장에서 책 사준다 할 때 갖춰 놨었다. 그냥 여성주의 책이겠지, 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저자가 어떤 이야기 하는 줄을 몰랐는데, 원제는 후드 페미니즘, 흑인,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지역, 음식이나 교육이나 사회 계층 사다리 올라가기 같은 기회가 제한된 곳, 주류에 속하지 못해 발언이 제한되는 사람들, 소외되고 목소리 지워지는 사람들에 대해 또다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존중받을 자격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대로 검색해보기도 하고, deserved, 이렇게 영어로도 쳐 봤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내 나름대로 이해해보려고 생각하다가 여러 사건들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돌아보았다.
비극적인 범죄나, 부조리한 시스템에 치여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라인 상에서 접한다. 아직도 희생의 과정에 놓여 있고, 갈려나가고 있지만 어찌어찌 생명줄은 붙들고 있는,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혹은 버티지 못하고 여러 방식으로 사회에서, 구조에서 소리소문 없이 이탈한 사람들은 잘 다뤄지지도 않는다. 죽음이라는 극단에 직면해야지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애도한다. 그런데, 죽은 이들은 효심이 깊고, 가족이나 자기가 책임진 사람들을 잘 챙기고, 늘 성실하고, 웃으며 친절하게 남을 대하고, 남을 위로할 줄 알고, 등등 온갖 미덕을 갖춘 이들이었음을 유족과 주변인들과 미디어가 열심히 알린다. 정말 그런 좋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런 좋은 말을 덧붙일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의 죽음은 덜 슬픈 일인 것일까. 덜 아까운 죽음일까. 아니면 적당히 나쁘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는 그렇게 더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숭고하고 아쉬운 죽음으로 그려지는 것일까. 극과 극의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은 적당히 착한 면과 나쁜 면이 섞여 있고 그 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달라 사람의 선하고 악함은 상대적인 것이라 여기는 나에게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해결될 수는 없는 궁금함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가진 이들을 안타까워하고 추모하는 행위는 그와 함께 하던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의 잘못까지 없던 일로 부정하고, 그의 잘못을 고발하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세상에 밝힌 사람의 피해까지 그저 호소, 주장으로 모는 인간들은 잘못되었다. 반대의 경우도 보았다. 관심을 가지던 퀴어 활동가가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과 함께 그가 저질렀던 성폭력, 연인간 폭력 등의 폭로가 이어졌고, 피해자들은 그의 추모 자체가 2차 가해라고 해서 모든 추모행사가 취소된 걸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피해자들의 회복을 빌고 행복을 기원하지만, 복잡한 마음도 들었다. 모든 죽음이 같은 무게는 아니라는 것. 추모와 애도를 금지당하는 죽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소리를 한다. 죽고 나서 조롱 받고 잘 죽었다, 소리 듣기를 싫어한다. 죽고나면 자신은 듣지 못할 말들인데도. 내가 죽으면, 저 하고 싶은데로 사는 팥쥐 엄마에다가 이기적이고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고 다하고, 악성독후가미스트였고, 투철한 직업 정신도 갖추지 못해서 맨날 도망갈 구석만 찾다가 결국 실패한 인간이었습니다… 하고 조문객 없는 텅빈 빈소에 누워 있다가 태워질까. 아니면 그래도 용인할 만큼의 나쁨이라서 그는 좋은 00였습니다...하고 옅은 화장 발라주듯 컨실러는 칠해주려나… 아직 안 죽어서 알 수가 없네. 죽어서도 알 수는 없겠네. 이러나 저러나 죽은 뒤의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종 문제와 성 평등 문제가 얽히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도, 범죄피해나 경찰의 과잉진압 등 억울한 사망 사건도 아주 많이 연루되어 있긴 하지만, 내가 고민한 것 이상으로 복잡한 측면이 많았다. 여성주의에 관한 많은 담론과 저술과 주도적인 운동이 시작된 것이 백인여성 중산층 계층에서 였고, 우리가 읽을 걸 많이 남겨준 것도 대부분 그 사람들이고, 그들이 제도, 인식 측면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전 읽은 책들의 퀴어 문제에서도 그랬고, 인종, 장애, 빈곤, 저임금 비정규 노동계층 등 다양한 교차적인 문제가 엮이기 시작하면 누군가의 권리 운동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을 더욱 소외시키는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책은 후드 페미니즘이라는 원제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 출신이자 흑인, 여성, 제도권 교육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겪어온 부조리들을 날을 세우고 비판하고 있었다. 번역자는 이런 부분 중 어떤 주장들(트럼프를 백인여성들의 지지로 당선된 것처럼 오도하는 등)은 많이 부당해 보였다고 했다. 우리는 흑인도, 백인도 아니지만, 어떤 목소리에 더 이입하게 되는지에 따라 옹호하는 입장이 달라지는 것도 신기하다. 어떤 책을 더 읽고 어떤 주장들을 더 접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공명할 만한 사회계층적 상황, 성적 지향, 비혼/혼인자 여부, 출산/비출산 여부, 소속 직업, 사는 동네, 장애나 질병 여부, 성폭력 피해 경험 여부 등등...다 쓸 수도 없네. 제목 그대로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가부장제나, 성차별적 제도와 인습과 가족 관계, 그런 공통된 투쟁의 대상은 있을텐데 거기에 인종, 장애, 이민자, 성매매, 교육, 빈곤 문제 등등...을 넣어야 한다, 그런 주장에는 그게 왜 우리 문제죠? 하는 벽에 부딪힌다.

특정 성별로 구성원이 쏠려 있는 커뮤니티에 가끔 간다. 그냥 뭔 생각들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주로 남초커뮤니티에 구경간다. 거기서는 시사 이슈나 뉴스, 유머 컨텐츠, 게임, 스포츠 소식 같은 것을 볼 수 있지만, 자신들과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 게시물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여성 혐오나 퀴어 혐오는 말해 뭐해...정도로 일상적이고... 인어공주 배역을 자기들 보기에 예쁘지 않은 흑인 배우가 맡았을 때는 온갖 욕설을 쏟아내며 흑어공주 어쩌구 난리도 아니었다. 동시에 흑인들이 아시안 차별하고 싫다고 하는 컨텐츠들은 어디서 또 잘들 퍼와가지고 지들 차별 당하기 싫다면서 지들도 차별해, 이러고 욕을 하고. 심각한 범죄가 발생하면 중국인이냐, 조선족이냐, 중국인에 대한 민족주의적 혐오는 진짜 어마어마했다. 히틀러 지지하고 유대인 멸시하다 못해 학살하던 평범한 독일사람들 모습이 아마도 저랬겠다...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타자에 대한 혐오 표출은 볼 때마다 섬뜩하다. 대상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어서 맘충, 잼민이, 어떤 때는 교사, 어떤 때는 학생(급식충), 또 어떤 때는 학부모...돌고 돈다. 어지럽고 슬프다… 뱅뱅 돌다보면 나는 어느 자리에든 앉을 수 있고 어느 자리에 앉든 손가락질 받을 수 있지...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100여쪽 쯤 되는 부분까지는 무리 없이 잘 읽혔다. 그런데 그 다음 가부장제 다루는 파트 부터 아니 문장이 왜 이래...번역기 돌렸냐...이 부분 읽기 싫었냐… 딱히 어려운 부분도 아닌데 말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읽다보니 개빡쳤다. 아 몇 번 더 윤문을 좀 하라고… 한 가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의 글을 만나려면 번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런저런 사상서들 읽는 사람들은 특히나 어려운 독서에 난감해 한다. 철학이라는 게 워낙 어렵기도 하고 논리적 글쓰기 따라가는 게 두뇌가 후달리는 활동도 맞지만… 이 책은 저자가 경험한 것, 주장한 바가 거의 다 이고 뭐 엄청 난해한 사상적 받침 이런 걸 가져온 책도 아닌데, 읽기에 이렇게 어색해서 아, 별 어려울 말도 아닌데 다시 돌아가 읽고 (그게 처음부터 그런 것도 아니고 책 중간부터 이러면 점점 대충 했네...할 수 밖에...) 그러면 진짜 나는 징검다리를 탓할 수 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다시 옮겨질 일이 드물 독점 번역서들은 진짜 역자들이 책임감 가지고 잘 옮겨 줬으면 좋겠다. 과도한 남성성, 유해한 남성성, 반복되어 제시되는데(검색해도 잘 안 나옴) 이게 사례나 개념 설명이나 원문 병기도 없이 붕 뜬 채로 나오는데 그걸 꼭 설명해줘야 아니! 이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개념이 지시하는 바가 뭔지 저자든 역자든 좀 멍청한 독자한테(멍청하니까 읽지 쓰지 않고) 친절했으면 싶었다. 같은 번역자가 옮긴 만화책 볼 때는 텍스트가 그리 많지 않아서 심각하지 않았는데, 좀 밀도 있는 텍스트 번역본은 앞으로는 믿고 거를 것이다. 번역이 게이트키핑이 되 버린다는 거 너무 슬픔...나의 독서 기회, 알 기회 앗아감… 그치만 참고 참으며 저자의 뜻을 암호 해석하기에는 진짜 견딜 수 없는 문장이라는 것이 있다… 그게 복수형이고 너무 심하면 전 못 읽겠습니다… 그래도 펼친 책이라고 최대한 읽어보겠다고, 그지 같은 문장들을 최대한 무시하며 전달하려는 뜻만이라도 알아들어보려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밑줄 그은 거 아니고 보다보다 빡쳐서 아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우 이래서 책 팔리겠어...번역 뿐 아니라 편집인들은 교정도 편집도 안 보냐 오타(곤론장(158),으료(319)가 뭐야…트랜스젠더들은~겪는다(309)...어려움 두 번 겪게 문장 중복...하아...)랑 비문 안 고치냐...개짜증난 순간들.(일일이 다 옮기지도 못함. 아 난 이러면 번역가 혐오냐 ㅋㅋㅋㅋ최대한 국경 건너 오는 말과 뜻들 섬세하게 전달하려고 불면의 밤 보내는 선생님들은 존경합니다...야 이새끼야 이건 존중받을 자격이냐 ㅋㅋㅋㅋ혼란하다 혼란해...혼란한 독서였다)

-중산층이 아닌 소녀들이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진열대에 놓인 예쁜 물건들을 찾고, 심지어 ‘적절한’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그들 자신이 여전히 길 찾는 법을 익히고 있는 시스템의 잘못된 끝에 다다르게 된다. (119-120, 아니 쉼표 앞까진 그렇다, 하겠는데 뒤에 문장 진짜 뭐라는 거야 ㅋㅋㅋ앞뒤 맥락 짤라내고 뭐라 하는게 아니라 앞뒤 다 봐도 저건 그냥 문장이 안 맞지 않나...이 챕터의 말들은 내내 저런 식이다. 지시어 남발에 문장 좀 끊거나 부연할 거를 그냥 영어 문장 질질질 뭔 영어독해 시간에 어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사람 헷갈리고 환장하게 하는 번역투들...)

-궁극적으로 주변화된 공동체 내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한 가지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 바로 가부장제 서사에 도전하는 대신 이를 반복하고자 하는 구조의 수가 감소하는 것이다. (124, 부사어 붙이려면 그게 뭘 수식하는지는 좀 명확히 해주고 ㅋㅋㅋ반복하고자 하는 구조의 수가 감소한다니…어쩌다 이런 문장을 만들어 내셨습니까...)

-오늘날 존중받을 자격의 정치는 한걸음 더 나아가, 흑인들이 자신이 가치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자력 구제라는 심상을 만들어내 요구했다. (134, 비문은 끝도 없다. 주어 서술어 연결을 어찌할지 도무지 모를 문장이 많다.)

머리 모양과 피부색, 외모에 관한 부분은 흑인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라서 조금 공감이 되었다. 나는 정말 심한 악성 곱슬 머리여서 어릴 때는 남자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고, 그나마 착한 이들에게는 동정의 대상이 되었으며, 미용실에 가서 커트 문의를 하면 늘 길게 기르고 매직스트레이트를 해서 머리 무게로 펴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 밖에는 솔루션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체념 하고 가끔 사회 생활 지장 안 가게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고 (그러면 동료들이든 학생들이든 우와 여신 되셨네요 하고 찬사… 긴 시간과 비싼 비용을 들여야만 관심 받고 사람 취급 받는 처지… 그래서 일부러 자주 미용실 안 가고 연례행사 이벤트 마냥 가는 쪽으로 ㅋㅋㅋ그 편이 평판이 후하다...) 살았다. 서른 살에는 처음 탈색과 염색을 해 보았고, 마흔 살에는 처음 숏컷을 해 보았다. 같이 사는 사람은 그렇게나 싫은지 왜, 마음에 안 들어? 하니까 대꾸조차 안 한다. 응답 거부...ㅋㅋㅋ 그런데 나는 와 진짜 곱슬이라고 커트 어렵다더니 세상 깔끔하고 편안하고 가벼운데 엉킨 양털 뭉치 같은 걸 억지로 달고 다녔구나...싶다. 내가 커트 할 때도 black curly hair short cut 이렇게 검색해가지고 이미지 저장해서 미용사님 보여주니까 대충 알겠다는 듯 끄덕끄덕 하셨는데 ㅋㅋㅋ 엄청 바글바글해질 줄 알았던 머리는 잘라내니 오히려 덜 바글바글하고 나는 뭔가 오랜 세월을 속은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음식에 대한 관점은 조금 슬프긴 했다. 당일 배송, 새벽 배송, 신속 택배 배송으로 집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고도 굶어죽을 걱정 안 하면서 살던 나여서 식품 사막, 이라는, 집 주변에서 저장 가공식품 외에는 신선식품 구하기 어려운 동네에 관해서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신선한 음식을 구하더라도 그걸 보관할 냉장시설과 조리도구를 갖추는 것도 큰 비용이고, 오염된 물보다는 탄산음료가 최선의 선택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집 주변에 대형 마트가 있어도 거기서 괜찮은 식재료를 살만큼의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고통이라는 것… 건강한 식단이나 음식 이미지들을 ‘흡사 요정들이 먹는 빵처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닿을 수 없는(170)’것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삶이란...그런데도 생존을 위해 살이 찌건 당뇨가 오건 일단 먹을 수 있는 걸 적당히 먹고 버텨야 하는 삶… 이건 굳이 다른 나라 빈곤층까지 안 가더라도 주위의 안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왜 그런 걸 먹니… 라면이랑 삼각김밥이 뭐니… 건강하게 챙겨먹어야지… 하는 것도 지가 챙겨줄 거 아니면 입다물어야지...에휴…

-“왜 그들은 네가 하는 걸 못 했어?”라는 질문이 아니라, “왜 우리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같은 지지와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싸워야 하는 전장이다. (341, 거의 막장 쯤 와서야 짜증 안 내고 오롯이 진지 빨고 밑줄...ㅋㅋㅋㅋ)

책 후반부의 주거 위기, 임신 중절과 임신 출산 중 사망(이걸 왜 모성 사망이란 불명료한 표현을 쓰는지 잘 모르겠음), 소수자의 양육에 대한 글들은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입장에서는 읽어 볼 만 했고, 학교 교육에 대한 입장은 요즘 일어난 사건과 한국 교육 상황과 비교할 때 완전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저 편하자고 반항아들 경찰 손에 넘겨 감옥 보낸다고 페미니스트 백인 여교사들을 엄청 까고 있어서 아야...했지만 뭐 인종과 계층과 평등 앨라이 등등 다양한 담론 연결하는 관점은 내내 생각할 만한 거리를 주었습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230723 밀란 쿤데라.


3년 전 소설 강좌 첫 시간, 자기 소개 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은 수강생들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 보았다. 나는 김금희, 그리고 밀란 쿤데라요, 했고, 선생님은 극과 극의 작가를 좋아하시네요, 했다. 그 말이 조금 갸우뚱 했다. 김금희 소설집들 초판 표지 그림이나 제목이 다 말랑 달달한 느낌으로다가 책 집어들 때 착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긴 하다. 막상 읽고 나면 이게 뭐여, 내가 뭘 먹은 거여, 달콤상큼한 것 기대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진한, 떫은 맛, 약간 씁쓰레한 맛, 거기에 조금 긴가민가한 단맛을 쳐주지 김금희는. 나한테는 블랙유머로 읽히는 부분도 많고. 그러면 밀란 쿤데라랑 꼭 극점이라 하기도 그렇다. 그런 걸 알면서도 이번에 나온 산문집 ‘식물적 낙관’은 차마 사지도 못하고 있다. 식물이나, 낙관이나, 나한테 다 아득한 낱말들이다. 제목에 속지 말자! 해놓고선 또다른 기대를 못하는 건, 몇 년 전 인스타그램에서 가끔 훔쳐봤던 김금희의 식집사 노릇과 뭔가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 다 일 것 같아서? 소설가는 좋은 문장은 소설에 써 먹으려고 짜게 다 아껴두고 산문집에는 찌끄래기만 쓴다는, 기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선입관 때문에? ㅋㅋㅋ
왜 밀란 쿤데라 이야기 하려다가 김금희가 길어짐… 하여간에 전작 했고 커튼만 남겨놨어요, 했더니 선생님은 계속 남겨두세요 ㅎㅎ 했다.

엄마는 십 몇 년 전 사이버대학 문창과에 들어가서 수업 중 강독으로 커튼을 먼저 보셨다. 펼쳐보니 밑줄이 한 가득…(책 한 권 다 밑줄임…) 나는 밑줄 그은 책 안 좋아하는데 이젠 너그러운 마음으로 신경 안 쓰고 읽기로 한다. 나는 십삼 년이나 늦었네요 어머니. 그래도 미뤄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나는 ‘안나 카레니나’, ‘성’, ‘마담 보바리’,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정도는 읽고 왔습죠! 쿤데라의 산문집 ‘소설의 기술’, ‘배신당한 유언들’, ‘만남’도 읽을 땐 뭔말이여...하는 게 많았지만 ’커튼‘에서 이전 산문집과 비슷한 작품 인용이나 서술도 (기억 안 나지만 하여간에 읽어본 기분이야! 하면 그런 거지) 많아서 좋았다.

커튼의 글들은 읽기 좋게 짤뚝짤뚝 잘 잘라 놨고, 할 말도 명료하고, 인용한 작품들도 읽었으면 읽은대로, 안 읽었으면 안 읽은대로, 아아, 이 말 할라고 갖다 붙였군요 끄덕끄덕 하게 써 놓았다. 한편으론 아...할배...이렇게나 더 읽어야 합니까… 할배 때문에 갖추기만 하고 안 읽은 책도 많습니다만…. 그렇게나 칭송하시면 더 미루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정리하는 할배 소설 강의 참고 문헌, 내가 (언젠가는) 볼 책-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라블레)-할배 산문집 마다 마르고 닳도록 인용되고 칭송하는 책이라 거의 십 년 전에 전자책 갖춰두고는 꾸역꾸역 매번 시도하다 멈춤 ㅋㅋㅋ 이젠 주석 다 제끼고 휙휙 읽어 볼랍니다.

’트리스트럼 섄디‘(스턴, 내가 가진 건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이야기)-이 책 전자책 왜 갖췄지...했는데 커튼 보니까 아 할배짓이었네… 온라인 서점을 둘러싼 소설을 쓴 적 있는데, 거기 남주인공 닉네임이 토비였다. ㅋㅋㅋㅋ 읽지도 않은 책 속 토비 삼촌에서 이름만 빌려옴… 뭐 그랬다고… 3년 만에 내 소설 꺼내 보니 꿀잼이었다… (자아도취) 이 책 두께가 미쳤던데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봐야지… 일단 칠조어론 먼저 마치고...ㅋㅋㅋ

‘망가진 세계’(말라파르테)-이건 커튼에는 안 나오지만 다른 산문집에서 보고 갖춰둠… 같은 저자의 소설 아닌 ‘쿠데타의 기술’ 이거도 챙겨뒀는데 읽고 싶음… 뭔가 부제만 보면 군주론 느낌인데…

‘감정 교육’(플로베르)-보바리 부인 잘 읽었는데 플로베르의 다른 책 읽을 생각을 안 하다니...이거 심지어 전자책이랑 종이책 다 있음… 이 책에서 꽤 많이 인용되어서 미룰 수 없겠다…

‘위험한 관계’(드 라클로)-코 앞에 꽂혀 있는데, 애들 영화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랑 어른 영화 ’스캔들‘은 다 봐 놓고 원작 소설은 왜 아직도…

‘소송’(카프카)-배신당한 유언들 보면서 브로트 이새끼...하면서 사 놓고는 안 읽고 너무 오래 지났다. ’성‘은 먼저 봤는데 이거 미완작이더라… ’소송‘은 결말이 있지 않을까… 관료제 관련해서 이런저런 작품 언급하는 거 보고 되게 할말 많았다. 친구 하나가 공무원 느지막히 임용되어서 딴에는 십 년 넘게 관료제 몸 담은 놈인 내가 걱정반 짠함반 이런저런 오지랖도 떨고, 야, 네가 직접 겪으면 또 카프카 싸다구 치는 뭐 끝내주는 게 나오지 않겠냐? 그러면서 토닥토닥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정작 반 년 쯤 나랏밥 먹고는 에퉤퉤 이게 사람 사는 거냐, 하고 미련 없이 빛의 속도로 관둬 버렸다. 내게 그 사건은 굉장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단 발 들였으면 정년까지 노예 아닌가...했는데 아 저렇게 쉽게 관둘 수 있는 거였군. 내 인생관이나 직업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래서 뭐 카프카 재림은 개뿔이고 공무원 도망친다는 놈들이 겨우 생각해낸 것은 수능 봐서 대학 다시 가기 ㅋㅋㅋㅋ 제도 문제 삼으면서 제도권 교육 체제 따라 현대판 과거 시험 준비하기냐 바보들아...그나마도 나는 혈전과 함께 중도이탈(?)포기(?) 뭐 그런 중...친구야 힘내렴...카프카가 못 될 바엔 의치한약수 가야지???ㅋㅋㅋ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프루스트)-이웃님의 영업으로 교보문고에서 올재클래식 단돈 2만9천원에 전집을 갖추고는 여태 1권 마들렌 가루 섞인 차 마시는 부분 쫌 지나서 까지 읽고 몇 년 째 멈춰 있다...박상륭 전집 다 보고, 잃시찾 전권 다 보고, 그때 혈전 다 녹으면 마 수학해라, 하는 친구의 간언도 있었기에...아 그럴까? ㅋㅋㅋ 그럼 오십 다 되서 수능 보는 거냐...

‘몽유병자들’(브로흐)-엄마는 이 책도 수업 들으면서 강독으로 다 읽은 모양인데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고...그래서 가장 나중에 읽을 생각이다…

‘율리시스’(조이스)-아 이게 가장 나중이 될 수도...


여기까지는 갖춰져 있으니 집에 있는 거나 먼저 읽을 것…
------
아래 책은 위에 있는 책들 다섯 권 이상 읽은 후 구매할 것!!!!!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필딩)-이 책에도 자주 나오고, 테레자가 토마스 만을 비롯해 필딩까지 읽었다, 하는데 나는 토마스 만은 아직 모르겠고 이거는 할배가 읽어보래잖아… 테레자도 읽었대잖아...

‘특성 없는 남자’(무질)-이 책도 많이 인용됨, 근데 너무 두꺼운데? 마침 올해 새 번역판이 나왔나 보다….

‘페르디두르케’, ‘포르노그라피아’(곰브로비치)-쿤데라 친구가 야 타임오버, 꺼져, 한 책이니 젊은이인 제가 대신 읽어보겠습니다…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디드로)-쿤데라가 희곡으로 각색한 건 봤는데, 자꾸 언급하니 원작도 읽어야 되나 싶습니다...



+밑줄 긋기(결국엔 나도 책 한 권을 베끼다시피 했구만…)
-내가 말했다. “페르디두르케를 읽었어야지! 아니면 포르노그라피아를 읽든가!”
그러자 그 친구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친구여, 내 앞에 펼쳐진 인생은 짧아요. 내가 당신 작가를 위해 소비한 시간의 분량이 바닥나 버렸어요.” (135-136)

-내가 보기에 참 똑똑하고 정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과 있을 때면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쁘게 보이지 않고, 시니컬하게 비춰지지 않으며, 그냥 아주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로 그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하는 말을 일일이 다 신경 써 가려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은 희극을 참아 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근엄한 척하는 태도가 그들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을 아니까.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을 멀리 피하게 된다. 나는 요릭 목사처럼 끝나고 싶지 않으니까. (148-149)

-고통스러운 경험들 끝에 크레온은, 국가를 책임지는 자들은 사사로운 감정을 억제할 의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너무나도 확신한 탓에, 그는 그에 맞서 사회의 의무만큼이나 개인의 정당한 의무를 옹호하는 안티고네와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그가 완강하게 밀고 나감으로써 그녀는 죽고, 그 죄책감에 짓눌린 그는 ’두 번 다시 내일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티고네‘는 비극에 대한 훌륭한 고찰을 할 수 있도록 헤겔에게 영감을 주었다. 두 주인공은 서로 대립한다. 각각은 부분적이고 상대적이지만 그 자체로만 보면 전적으로 옳은 진리에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각각은 진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만, 진리의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대편을 완전히 파괴해야만 한다. 이처럼 두 주인공 모두 정의로우면서 동시에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헤겔은 말한다. 죄를 짓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비극적 인물들의 영예가 된다라고. 죄책감을 양심 깊이 느낌으로써 미래의 화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크나큰 싸움을 선악의 다툼으로 보는 고지식한 해석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 이 싸움을 비극의 조명 아래서 이해하는 것, 이것은 정신이 이룬 엄청난 성과였다. 이 성과로 인해 인간이 따르는 진리의 숙명적 상대성이 드러났다. 그리고 적을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를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153-154)

-사회 현상의 실존적 영향력은 그것이 팽창할 때가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미약한 상태인 초창기에 가장 날카롭게 인지될 수 있다. 니체는, 16세기에 교회의 타락이 가장 덜한 곳은 독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곳에서 종교 개혁이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오직 “타락의 초기에만 타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카프카 시대의 관료주의는 오늘날과 비교할 때 순진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카프카는 관료주의의 끔찍함을 간파했고 그 후로 관료주의는 일상적이 되어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168)

-그렇다고 해서 그(’감정교육‘의 세네칼)가 옷을 바꿔 입는데 익숙한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는 정당하지 않다. 혁명가이든 반혁명가이든 그는 언제나 같은 사람이니까.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플로베르의 대단한 발견인데) 정치적 태도의 근거가 되는 것은 사상(너무나 연약하고 어렴풋한 그것!)이 아니라 덜 이성적이고 더 견고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173)

-플로베르에게서 어리석음은 그와 다르다. 그것은 예외도, 우연도, 결점도 아니다. 말하자면 교육으로 고칠 수 있는, 지성의 어떤 분자가 부족해서 생기는 양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고칠 수 없다. 천재나 바보나 모든 사람의 생각 속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간 본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175)

-그(슈티프터의 ’늦여름‘ 속 노귀족 라자흐)가 관료주의와 결별한 것은 정치적, 철학적 신념의 결과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관리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다. 관리란 무엇인가? 라자흐는 하인리히에게 그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아는 한, 관료주의에 대한 최초의 (게다가 훌륭한) ‘현상학적’ 기술이다.
행정이 확대, 확장됨에 따라 점점 많은 관리들이 고용되어야 했고 그들 중에는 필연적으로 고약한, 혹은 아주 고약한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관리들의 고르지 않은 역량 때문에 필요한 작업들이 번형되거나 축소되지 않고 잘 수행되도록 하는 시스템 개발이 시급했다. “리자흐가 계속했다. ‘내 생각을 분명히 하자면,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교체하는 부품 교환이 있을지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이상적인 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네. 그런 시계는 물론 상상할 수도 없지. 하지만 행정은 정확히 이런 형태 아래서만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겪은 변화에 비추어 사라져 버리거나 해야 하지.” 따라서 관리는 자기가 담당하는 문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는 옆 사무실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채, 심지어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다양한 작업들을 열성적으로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라자흐는 관료주의를 비난하지 않는다. 단지 있는 그대로, 그가 왜 그 일에 인생을 바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할 뿐이다. 그가 관리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자기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 목표에 복종하고 그것을 위해 일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상황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 너무 커서 협상을 할 때면 상급자들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그 자체가 요구하는 것‘을 지키곤 했던 것이다.
라자하는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목적을 이해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되는 삶을 갈망한다. 이름과 직업과 아이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 만나는 삶. 아침, 정오, 태양, 비, 폭풍우, 밤과 같이 시간이 늘 감지되며 그 구체적인 모습 속에 향유되는 삶.
그와 관료주의의 결별은 인간과 현대 세계와의 기념할 만한 결별 중 하나다. 비더마이어 풍의 이 낯설고 기이한 소설 속의 목가적 분위기에 적합한, 평화롭고도 근본적인 결별이다.

베버가 관료제 현상에 대해 사회학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분석했다면 슈티프터는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관료화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과연 인간에게 엄밀히 말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으로 인해 인간 존재는 어떻게 변화되는가?
’늦여름 이후 60여 년이 지나서, 또 다른 중부 유럽인인 카프카가 ‘성’을 쓴다. 슈티프터에게 성과 마을이라는 세상은, 늙은 리자흐가 그 엄청난 관리 일을 피해서 이웃과 동물, 나무, ‘그 자체인 것’과 더불어 살기 위해 도피했던 오아시스를 의미했다. 슈티프터(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다른 많은 산문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 세상은 중부 유럽에서 목가적이고 이상적인 삶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슈티프터의 독자인 카프카가 평화로운 마을과 성의 세계에 사무실과 관리들의 군대와 서류 사태를 침입시킨다. 잔인하게도 그는 관료화의 전적인 승리라는 정반대의 의미를 성과 마을에 부여함으로써 반관료적 목가의 신성한 상징을 침범한다. (182-185)

-시간의 개념.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대립할 때는 동등한 시간 두 개가 대립한다. 덧없는 인생의 제한된 시간 두 개.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사람 대 사람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과 맞닥뜨린다. 젊음도, 노화도, 피곤도, 죽음도 모르는 존재. 인간의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 인간과 행정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 … 소송은 길고 인생은 짧다. 이 이야기는 카프카의 ‘소송’에 나오는 상인 블로크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소송은 아무런 판결 없이 5년 반 동안 질질 끌려다닌다. 그사이에 그는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소송을 위해서 뭔가 하려면 다른 것은 전혀 신경쓸 수 없기” 때문이다. 측량기사 K를 짓누르는 것은 잔인성이 아니라 성의 비인간적 시간이다. 인간은 면담을 요청하고 성은 그것을 뒤로 미룬다. 소송은 길어지고 삶은 끝이 난다.

이 싸움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승리? 가끔은 그렇다. 그런데 승리란 무엇인가? 막스 브로트에 따르면 카프카는 ‘성’의 마지막을 이렇게 그렸다고 한다. 그 모든 소동 후에 K는 지쳐서 죽는다. 임종의 침상에 누워 있을 때 (브로트를 인용하자면) “비록 마을의 시민권은 없지만, 몇몇 세부 사항을 존중해 거기서 살고 일하는 것은 허락한다는 결정이 성에서 내려온다.”
(188-190)

-얼마 후 나는 시오랑이 서른여덟 살 되던 1949년에 쓴 글을 읽었다. “나는 나의 과거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삶을 떠올리는 것 같다. 나는 이 다른 사람을 모른다. ‘나 자신’의 전 존재는 옛날 그 다른 사람에게서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고백한다. “그 당시 내 모든 망상을 다시 생각할 때면 모르는 사람의 강벽관념을 연구하는 것만 같은데 그 모르는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경악한다.”
이 글에서 흥미로운 것은 현재의 ‘나’와 예전의 ‘나’사이에 아무런 연관성도 찾지 못하고 정체성의 수수께끼 앞에서 경악하는 그 사람의 놀람이다. 이 놀람은 진실한 것일까? 물론 그렇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놀람을 일상적인 모습으로 경험한다. 당신은 그 철학(종교, 예술, 정치) 사조를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혹은 (더 진부하게) 그토록 별 볼일 없는 여자(그토록 멍청한 남자)와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었는가? 대개 사람들의 젊음은 재빨리 지나가고 젊은 날의 방황은 흔적도 없이 증발하지만, 시오랑의 젊음은 화석이 되었다.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연인과 파시즘에 대해서 똑같이 관대한 미소로 비웃을 수 없으니까.

젊은 시절에 대한 시오랑의 격노는 분명한 무언가를 보여준다. 즉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사람의 태도도 변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정말이지 이것은 분명하다. 아,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오직 이데올로기적인 거짓 증거들만 눈에 보인다. 실존적 증거들은 명백한 것일수록 덜 드러나 보인다. 삶의 나이는 커튼 뒤에 숨어 있다. (192-194)

-이(서정시)와 반대로 소설은 망각에 직면하여 별 힘을 못 쓰는 견고하지 못한 빈약한 성이다. 만일 내가 스무 쪽을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면 사백 쪽 분량의 소설을 읽으려면 스무 시간이 걸릴 것이니, 그럼 보자, 일주일이 걸리는 셈이다. 일주일 내내 소설책만 읽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거의 없다. (나?ㅋㅋㅋ) 그러니 책을 읽는 중 며칠은 책을 펴 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날이 있게 마련 인데, 바로 그 공백의 시간에 망각이 곧장 껴들어 와 작업을 개시한다. 그렇다고 망각이 꼭 독서를 하지 않는 공백의 시간에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망각은 잠시도 쉬지 않고 책을 읽는 와중에도 끼어든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나는 방금 읽은 부분을 그새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이전 이야기의 일종의 개요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고, 세밀한 묘사, 자잘한 관찰, 경탄해 마지않는 형식들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수년이 지난 어느 날 한 친구에게 이 소설에 대해서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독서로 얻은 몇몇 기억의 파편들로 각자 아주 다른 책 두 권을 만들어 버리고 만 우리 자신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205, “어차피 우리 나이쯤 되면, 처음부터 읽어도 앞의 내용 따위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슬링, ‘익명의 독서중독자들2’)

-나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내 작은 나라는 독립의 마지막 흔적마저도 제거되어 거대한 낯선 세계에 영원히 먹혀 버린 그런 나라였다. 나는 내 나라가 멸망해 가는 초기의 모습을 목격했다고 믿고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 대한 내 평가는 틀렸다. 하지만 내가 저지른 오류에도 불구하고(아니, 오히려 그 오류 덕분에) 아주 큰 경험이 내 존재론적 기억 안에 아로새겨졌다. 그때부터 나는 그 어떠한 프랑스인도, 그 어떠한 미국인도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 사람이 조국의 멸망을 겪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213)

-체코어는 자국어인 양 사용되는 독일어 옆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 체코인은 모두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태어나느냐 아니면 태어나지 않느냐, 존재하느냐 아니면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독특한 상황이었다. (214, 이전부터 궁금했던 것, 카프카도 릴케도 체코 출신이라는데, 왜 독일어 문학일까? 그 질문을 어느 정도 해소해줬다. 쫓겨난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체코어일까, 프랑스어일까, 그것도 궁금했는데, 이방인으로서 프랑스어문학 일부를 담당하고 계셨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정작 체코 사람들은 되게 나중에 쿤데라 작품들을 체코어로 읽었다고...)

-이 소설(푸엔테스의 ’우리의 땅‘)을 말하다 보니, 카지미에시 브란디스의 ’제3의 앙리‘에 나오는 정말 웃긴 구절이 생각난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한 폴란드 망명자가 자기 나라의 문학사를 가르친다. 아무도 폴란드 문학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는 장난삼아 세상에 나온 적 없는 작가들과 작품들로 구성된 가상의 문학사를 만들어 낸다. 대학 학기가 끝나 갈 무렵에 그는 이 상상의 역사와 실제 역사를 구분하는 본질적 기준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는 이상하게도 실망하게 된다. 그는 일어날 수 없었을 만한 사건은 아무 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친 장난은 폴란드 문학의 의미와 정수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225-226)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기적의 유효 기간은 짧다. 비상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추락하는 것이다. 나는 서글픈 마음에 사로잡혀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예술이 절대로 말해진 적 없는 것을 찾기를 그만 두고 다시 유순해지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면 예술은 반복을 아름답게 만들고 개인이 기쁜 마음으로 순순히 획일적인 존재가 되도록 돕기를 요구하는 집단의 삶에 봉사할 테지.
왜냐하면 예술의 역사는 덧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의 지저귐은 영원하다.
(232, 비관주의냐 디스토피아냐… 18년 전의 예언은 어느 정도 유효했고... 그런데 덧없는 게 영원하면 무엇해…)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3-07-23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번 권에서 저 장면 그리고 사자가 가짜뉴스 관련 외치는게 젤 재밌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7-23 18:48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ㅎ 익독중은 뉴스 볼 시간도 드라마 볼 시간도 없지요 ㅎㅎ저는 신곡 안 좋아하면서도 신곡 나오는 부분이 하이라이트 ㅋㅋ

새파랑 2023-07-24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책들은 다 좋다는거죠? ㅋ 저중에 읽은건 별로 없네요 ㅡㅡ

반유행열반인 2023-07-24 07:55   좋아요 2 | URL
다 좋다는 건 아니죠 제가 한 권도 안 봤으니까 모르죠 ㅋㅋㅋ 밀란쿤데라가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주 언급한 책들입니다. 다들 이 정도는 봤지?? 하고 ㅋㅋㅋ골드문트 이웃님께서는 한 권 빼고 이 책들 다 보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은오 2023-07-24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럼 이제 쿤데라 저작 다 읽으신거네요?! 저는 농담, 참존가, 소설의기술 이렇게만 읽었어요. 참존가는 최근에 읽었고 농담도 소설이니 줄거리는 대충 기억 나는데 소설의 기술은 하나도 기억 안나네..... 유열님 최애는 참존가인가요? 다음으로 좋았던 저작들도 궁금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7-24 23:14   좋아요 1 | URL
소설은 여러 번 본게 참존가(근데 유수님이 이렇게 부르면 박사개구리 생각난대서 겁나 웃음ㅋㅋ자세한 사항은 이미지검색-참존 개구리), 불멸, 무의미의 축제, 농담, 이별의 왈츠 정도네요... 미학적으로든 소설 완성도든 참존가가 거의 절정이구요, 거기선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도 제법 높아지고 그나마 덜 빻게 그린 거구요, 이전 소설들 보면 그 소설의 씨앗이나 영감이나 뭐 그런게 언뜻 보이기도 하지만 좀 웃겨보겠다고 사람 빙구 만드는 거도 끝도 없고 거기 여성 캐릭터도 예외없고(우린 그걸 여성혐오야 하겠지만 쿤데라는 아냐 난 인간혐오야!!! 할 거 같고 ㅋㅋㅋ) 뭐 그렇습니다 ㅋㅋㅋ찐팬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이걸 왜 읽나 싶은 소설 많아서 그거 거르기도 쉽진 않으니 감안하시고 한 번씩 보셔도 좋고 아니면 일년에 한 번 씩 참존가 읽어주는 의식(?저는 그짓 많이 함 ㅋㅋ근래 들어 안 봤네 좀씩 보다 말구) 하면서 열 번 쯤 읽어주는 게 정신건강에 나을 듯 싶습미다. 소설 창작 관심 있으시면 커튼도 좋구요 ㅎㅎㅎ
 
[eBook] 신령님이 보고 계셔 - 홍칼리 무당 일기
홍칼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0722 홍칼리.


21년 전, 할머니 장례 때 모르는 할머니 한 분을 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누나 둘, 내가 아는 고모할머니들 말고도 여동생 하나가 있다고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결혼하고도 한동안 같이 살던 여동생 할머니는 어느 날 집을 나갔고, 무당이 되었다고, 아들 하나 있다고 했다. 그냥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 할머니로 보였고, 무당이라는 사람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제사를 열심히 모시는 집안이었고, 그래서 십 대 까지는 누가 종교를 물으면 조상숭배, 라고 우스개로 말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을 겪을 뻔하다가 큰 화를 면하고 작은 액땜 쯤으로 끝나면, 조상이 보살폈나 보네, 어른들이 지나가듯 하는 말을 나도 속으로 읊조리곤 했다. 지금은 개뿔, 조상은 조까세요, 그렇게 자손 보살피는 조상이 있다면 왜 술주정뱅이 폭력살인범 할아버지랑, 그 판박이 같은 아버지만 돌보시나요. 평생 제삿밥 차리던 할머니는 왜 맞아 죽게 뒀나요. 그 제삿상 이어서 차리던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고생했나요. 나는 자손 아니냐. 왜 안 돌보냐.

글(또는 이런저런 창작으)로 유명해진 가족을 둔 사람이 다시 글로 먹고 사는 일이 어떤 일일지 이웃과 잠시 대화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이름이 너무 크면 늘 누구누구 자녀, 뭐 이런 게 따라붙어 싫겠다 싶었다. 이번에 읽은 책 저자도 비슷하다. 사실 먼저 본 건 페이스북 하던 시절에 돌아다니던 누군가가 공유한 홍승희의 글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여간에 이름이 비슷한 홍승은과 둘을 헷갈리다가 홍승은의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3년 전 읽었는데, 와, 내가 아는 에세이 작가(얼마 안 되지만) 중에는 제일 잘 쓰지 싶었다. 작가의 책 속에 동생 승희가 가끔 등장하는데, 다른 책에서는 칼리가 되었고, 아 이제는 세 식구였다가 네 식구가 되어 같이 사는 구나, 몇 권 읽으며 남의 식구 수도 알게 되고…
그러다가 이웃님이 무당을 인터뷰한 무당 작가의 책 읽고 평점 남긴 것을 보고, 홍칼리, 라는 이름 따라 들어간 책 소개에서 아, 무당이 되었구나, 동생이 쓴 책도 궁금해, 하고 ‘붉은 선’을 사 말아 하다가 전자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 걸 보고 일단 이거 먼저 읽지, 했다.

무당도 종교인의 하나인데, 무당이 된 과정, 무당의 일과, 무당이 되고 나서 만난 손님이나 다른 무당들,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만날 기회였다. sns에 공유되던 이야기나, 이전에 나온 책이나, 고통과 자기탐구의 서사인 전사에 비하면 어쨌거나 무당이 되어 나를 구하고, 죽는 대신 삶을 택하고, 거기에다 남을 돕고 세상을 돕는 일에 의지를 불태우게 된 건 좋은 일로 보인다. 그렇지만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삶의 방식, 다양한 세계관, 뭐 거기 까지였고 그것들을 풀어내는 문장은 좀 아쉽구나… 그냥 나의 취향과 맞지 않다고 해야겠지… 글이랑 책으로는 음 더 잘 쓰게 되면 좋겠구나 싶었다.

딱 한 주 전이 나의 자매의 생일이었지만, 축하 문자 하나 보내지 않았다. 힘든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뒤 동지가 되고, 같이 글쓰는 일을 하고, 심지어 혼인 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식구를 구성하게 되는 복 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이 너무 힘들면, 그래서 다들 만신창이가 되고 그때 왜 안 말려줬어, 왜 날 안 구해줬어, 탓하는 사이가 되면, 혹은 그저 지켜보고 눈물 짜는 것 밖에 못해서 내내 죄책감 느끼고 서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그 힘들던 시절이 떠오르는 사람들끼리는, 마냥 닿지 않는 먼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의지할 형제자매도, 종교도, 나만의 신당도 만신전도 없이, 종잇장이든 전자신호든 빼곡히 채워진 글자나 들여다 보며 여름을 난다. 난 그냥...과학책이나 볼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07-22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어어!!! 일단 반가워서 댓글 먼저 쓰고!! !
오늘 새벽 3-4시까지 읽은 책이 홍칼리 무당 책이었거든요 ㅎ열반인님 ㅉㅉ뽕

얄라알라 2023-07-22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이웃님이 저였어요^^

글쵸??어쩜 이리 글을 술술술 잘 쓰신대요.
심지어는 최신간에서는, 인터뷰하신 분들 - 주로 홍칼리님과 지인인 무당- 다들 말씀이 그냥 바로 활자화해도 문제 없을 지경으로 청산유수이시더라고요^^ 열반인님께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으셨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7-22 18:52   좋아요 1 | URL
넴 이 글의 이웃님 중 한 분-무당책 소개-이 얄님 맞는데요 ㅋㅋㅋ저는 이 책 글은 좀 못 썼다고 많이 깐 건데요 ㅋㅋㅋㅋㅋ별 세 개 줄라다 올려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2023-07-22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0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 제정신입니다 - 마메의 정신없는 날들
마메 지음, 권남희 옮김 / 사계절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0722 마메.

이 책은 다른 중고책들 사다가 싸게 팔길래 집어왔다. 싼 이유는 위에 출판사 드림 도장이 찍혀 있어서… 창조경제! 그래도 양심적인 판매자라 정가의 46퍼센트 밖에 받지 않았다. 책을 넘기면 자꾸 녹차? 우롱차? 뭔 그런 차 냄새 같은 향이 났다. 엘리자베스 아덴 그린티 뭐 그런거라도 서비스로 뿌려준 것인가?!?! 궁금한 마음에 같이 산 나머지 세 권도 책장을 휘리릭 해 보니 같은 향이 났다. 와 이런 디테일… 책 자체도 엄청 깨끗하게 거의 새 책처럼 보고서 향 관리 까지 하는 이전 책 주인...나는 왜 이런 사람들이 궁금한지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메는 일본인 여성이고, 40대에 아이들을 혼자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냥 표지 그림 보면 범상치 않고, 실제로 그림체가 다 한다. 아즈망가 대왕처럼 네컷 세로로 이어지는 짧은 일상만화인데, 만화 속에서 직업이 여러 차례 바뀐다. 꽃집, 도시락 공장, 여기저기 외근도 가고, 뭔가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 같은데 그런 분투는 많이 안 나오고 궁상도 안 떨고 그냥 일하면서 만난 웃긴 아줌마들(원제가 아줌마의 나날, 오바상 데이즈), 자기 친구들, 전남친, 가족들 가끔, 이렇게 깨알같이 그려놨다. 엄청 웃기거나 재밌는 건 아닌데 그냥 표정을 이렇게나 잘 살리다니… 선 찍찍 그어서 저렇게 살아 있는 사람 같이 그리는 것도 재주다 싶었다. 마메는 아이돌 좋아해서 콘서트도 가고 덕질도 하는데, 옮긴이가 마메가 BTS팬이라서 sns도 하게 되고 뭐 그렇다고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동료 선생님 중에도 BTS좋아하고 그런 덕질하는 마음에 관한 시를 써가지고 독서 모임 중에 읽다가 울먹인 분이 있다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 독서 모임 갔던 다른 선생님이 (대체 왜 ㅋㅋㅋ) 시 읽어보라고 메신저로 뿌려줘서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아이돌이든, 정치인이든, 예수님이든, 멀리 떨어진 인격 있는 대상을 좋아하는 마음은 다 비슷한 형태의 사랑인 것 같은데, 나는 별로 가져보지 못한 마음이라 그거 보고 있으면 그저 신기하다. 중1, 중2 이쯤에 패닉의 이적을 아주 좋아하긴 했었는데, 대학 때 수요예술무대 녹화를 교내에서 하러 왔는데 이적이 내가 버린 건~ 하면서 삑사리 내고서 아...다시 갈게요, 하고 재녹화 하는 거 보고 짜게 식었다. ㅋㅋㅋㅋㅋㅋㅋ 마침 좋아하던 선배오빠가 내가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패닉의 단도직입, 이라는 노래를 아 난, 그 노래 제일 싫어해, 해가지고 또 굳이 싫어하게 된 거 같기도 하다. ㅋㅋㅋㅋ 뭐 그 오빠 노래 계속 하는 동안 공연 가거나 유튜브 보면서 곁의 사람이랑 얘가 노래가 느네 안 느네, 요즘엔 많이 늘었네, 뭐 연극을 한다고? 이러고 결국 예전의 사랑했던 아이돌들은 그냥 다 안주거리가 되고 말지만… 그래도 꾸준히 그리고 쓰고 만들고 연주하고 그거는 참 그거대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다. 힘들게 만들어 놓은 거 휙휙 보고 듣고 나처럼 좋네 별로네 야부리 터는 건 일도 아니지… 창작자들 앞에 공손해 집시다 ㅋㅋㅋㅋ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7-22 14: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적 좋아해서 대학로에 이적 녹음실인가 있었는데 친구랑 같이가서 얼쩡거린적 (뭐하러ㅋㅋㅋㅋㅋ)있어요.
이적이 삑사리라니 충격이네요ㅋ 이 책 내용도 제정신 아닌 것 같은데요? 암튼 재밌을 듯!

반유행열반인 2023-07-22 16:46   좋아요 2 | URL
내용은 지극히 제 정신인데 가끔 깜빡하는 마메님의 일상 이야기였어요 ㅎㅎㅎ삑사리보다는 노래 중단하고 다시 가는 게 좀 생소했어요. 스페이스 공감 이런 거도 많이 방청 갔는데 노래 부르다 말고 끊고 다시 가는 거 처음 봄 ㅋㅋㅋ뭐 그럴 수도 있는데 스무살 내가 좀 엄격했네...

얄라알라 2023-07-22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덴 그린티^^ ㅋ 열반인님께서 전 주인분의 취향을 매우 높게 평가해주셨네요

요즘처럼 눅눅할 땐 책에서 안 좋은 냄새 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좋은 Pick이신데요^^

아웅! 이적님은 왜 삑사리를 내고도 사과도 없이 ‘다시 ~~~‘를 외치셔서 열반인님 사랑을 거두게 하였는지 ㅎ

그나저나 좋은 학교입니다. 수요예술무대 녹화가 가능한 학교라니요^^

반유행열반인 2023-07-23 07:50   좋아요 2 | URL
아, 저 서재 마을에서 판매자분 찾은 것 같은데요 ㅋㅋㅋ 출판사에서 책 제공 받아서 기계적인 서평 올리는 업으로 사시는 거 같고 남은 책은 파는 것 같았습니다 ㅋㅋㅋㅋㅋ 수요예술무대 하면 그땐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이 뭐 가요무대? 이럴 거 같네요 ㅋㅋㅋ 그때 이상은도 오고 나는 계탔다!!! 그러고 공연 나온 가수들 시디 세 개인가 한 번에 샀던 기억도 ㅋㅋㅋ

2023-07-23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