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고화질세트] 도로헤도로 (총23권/완결)
Q-HAYASHIDA / 시공사/DCW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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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소장하고도 전자책 한 권 한 권 다시 모으는 중…내 인생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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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9-30 0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자책 소장하고도 종이책 모으는 건 봤는데.... 종이책 소장하고도 전자책 모으는 건 처음 봅니다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9-30 08:48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종이책 사 놓고 들고다니며 언제든 읽고 싶은 책(예:참존가-전자책 신청하고 거의 십년 만에 나옴 ㅎㄷㄷ) 을 다시 사요. 이 만화책은 알라딘 전자책 적립금 이벤트로 주는 걸 맨날 버리다 아, 저렴한 만화책 같은 걸 사자! 번뜩! 이러고 고화질 콜렉터가 되어 벌써 여덟 권이나 질러 버렸습니다...(고맙다 알라딘 난 매번 천원 안짝으로 삼ㅋㅋㅋ)
 

-20230921 김금희. 읽다 놓아줍니다.



집에도 화분이 많다. 엄마가 키운다. 어린이들 학교나 유치원 활동에서 받아온 고무나무, 다육식물도 있고 남이 키우다 버린 것 주워온 벤자민, 남의 화분 가지치기나 포기나누기 할 때 버리는 것 꺾꽂이 한 것, 먹는 것에서 갈라 심어 커다랗게 키운 식물들도 있다. 나리꽃, 도라지꽃, 샤프란, 철쭉 같은 게 그렇다.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여러 그루 얼어죽고 한 그루 잎이 좀 타들어가긴 해도 내 키보다 크게 살아 있고, 레몬 씨앗 틔운 것도 기다랗게 몇 그루 키워 놨고, 대추야자 발아 시킨 건 얼마전 싹을 내서 길게 삐죽한 야자 나무 느낌으로 뻗고 있고, 망고스틴 씨앗도 심어보겠다고 불리고 있다. 작은 어린이는 유치원 활동지에 콩으로 우리나라 글자 붙여 놓은 곳에서 자꾸 콩을 떼다가 흙에 몰래 파묻어서 화분에 콩나무가 뿅뿅 튀어나온다.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잔디인형 앞에서 내가 알려준 주문 ‘자라나라 머리머리!’ 하루 세 번씩 외쳤더니 정말 잔디인형 머리가 풍성해졌다.

뭐 내가 키운 건 하나도 없다. 나는 빨래 널다가 벤자민나무가지가 자꾸 몸을 할퀴고 성가시게 한다고 뚝 뿐질러 놓기나 하는 야만인이다. 수렵채집인은 정말 나처럼 꺾고 잘라 모으기만 할 뿐 키우는 데는 나몰라라 했을 것이다. 농경의 역사도 짧지만 먹지도 못하는 식물을 집에 들이고 키우는 건 정말 더 최신의 취미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김금희 작가가 식물 키우는 이야기 묶어 에세이로 나왔다 했을 때부터 나는 못 읽겠네...했다. 미리보기로 올라온 부분까지 읽고 아… 힘들겠다...했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아 도서관에 올라오자마자 빌려서 읽는데 5분의 1쯤 넘게 읽다가 놓아주기로 했다. 관심 없고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 대해 몇 시간을 꾸역꾸역 참고 듣다보면, 그게 우와 난 잘 모르는데 흥미롭다, 하면 나도 뭔가 개종이 될란가 싶지만 더 읽다가는 진짜 누군가와 무언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 김금희 글 좋아하는 것 맞냐 하고 최근에는 아리까리 해지고 있다. 이건 소설이 아니니까 산문집 읽고 소설 싫어하게 되면 그건 또 진짜 멍청이가 아닐까…

학명인지 영문명인지 발음하기도 어렵게 나열된 화초들이름 보면서, 굳이 이름을 따박따박 옮겨주는 건 애정하는 것들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은 마음일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왜 난 자꾸 작아지고 멀어지는가. 뭔가를 사랑하고 망해도 망쳐도 계속 노력하며 사랑을 놓지 않는 걸 보면서 자꾸 나를 탓하게 되는 탓인 것 같다. 나는 집에 사는 풀한테 물 한 컵 주지 않아, 하는 자책. 뿌리파리 없애보겠다고 과산화수소수에 물 타서 열심히 주면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고 공들이는 것들에 대해 나는 자꾸 힘들게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투덜대는 인간이라서. 그러면서 오 효과 있냐? 하고 밑줄 쳐둠. 그러다 에이 하고 그냥 엄마한테 안 알려줌. 뿌리파리 정말 싫다. 박멸이 어렵다. 화분 키우는 집에는 상주 생물인 듯.

사람이 정들이고 공들이는 대상은 너무도 다양해서 이제는 하다하다 반려동물 넘어 반려식물 반려세균은 아직 못봤고 뭔가를 조건 없이 마냥 사랑하는 마음이 누군가의 하루를 한 시절을 때로는 일생을 지탱하기도 하는데 내게는 그게 무얼까 가만 생각해보았다. 이거라고 딱 자신있게 뱉어낼 뭔가가 떠오르지 않으면 조금 울고 싶어진다. 독중단감을 길게도 썼다.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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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고 희망하고 믿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믿지 않는 것은 외면과 단절로 끝이 나지만 믿는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이후의 발걸음까지 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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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있다 없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난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뿌리파리가 줄었다고 느낀다. 발코니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정말 과산화수소수가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마음이 낫다. 애는 써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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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그 이름도 ‘괭이’밥이라는 것이. 어느 다정한 괭이밥이 앓는 나무에도 힘을 주고 이 여름을 앓으며 통과하고 있는 우리 개에게도 기운을 북돋아주었으면. 어쩌면 그러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나의 이런 논리에 근거는 없다. 하지만 때론 그렇게 믿는 마음이 난관을 이기는 작은 발판이 되지 않을까.



아...‘식물적’ ‘낙관’에서부터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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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21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열반인님! 제목과 끝 문장 웃긴데ㅋㅋㅋ 나머지는 슬프게 공감됩니다. 식물 키우는거 저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식물 선물하는 사람을 매우 미워했을정도ㅋㅋㅋㅋ 잘 내려놓으셨어요. 요즘 식물 관련 책 많이 나오네요. (먼산..)

반유행열반인 2023-09-22 08:40   좋아요 1 | URL
식물 선물 미워 ㅋㅋㅋ비슷하게 책선물도 책은 환장하는데 자주 받지도 않지만 많이 안 좋아하고 받은 건 읽은 적이 초6 중1 말고 없네요 ㅋㅋㅋ저 식물책은 좋아하는데 가드닝 책은 적성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호시우행 2023-09-22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꽃키우기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22 08: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반대로 식집사라 자칭하시는 가드너 분들은 이 책 공감하며 잘 읽히려나 궁금했습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9-22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글 읽으면서 딱히 관심이 없거나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 새로운 관심을 가진다는게 의식적인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았습니다.

식물 관련 얘기를 해주셔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몇년전에 김초엽 작가가 쓴 ‘지구 끝의 온실‘이나 미우라 시온 이라는 작가가 쓴 ‘사랑없는 세계‘라는 소설을 읽었었는데 어떻게어떻게 해서 꾸역꾸역 끝까지 읽긴 했지만 소재가 식물과 관련된 것이라 좀 생소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2 10:19   좋아요 1 | URL
즐님께서 정리해주신 그런 상태였겠다 의식적인 노력이 지치게 한다 저는 노력을 많이 못하고 포기했지만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듣고보니 초엽 작가 이름 자체도 되게 식물식물한데 표제작 온실 들어가는 소설집도 있었죠. 식물성 인간들도 제법 있지만 호랑이한테 풀먹어라 하는 기분은 저만 느낀 건 아니었구나 즐님 체험 듣고 보니 약간의 위로가 됩니다 ㅎㅎㅎ

Yeagene 2023-09-22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못 읽을 것 같아요.열반인님 극공감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2 17:18   좋아요 1 | URL
전국의 식집사님들
단결해서 제 대신 읽어주세요...잘 안 팔리는데다 제가 한술 보태서 맴찢 ㅋㅋㅋㅋㅋㅋ(그럼 이 글은 왜 써 ㅋㅋㅋ)
 
[eBook]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문학동네 시인선 197
문보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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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문보영.

문보영의 시집 ‘책기둥’을 5년 전에 샀다고 한다. 벌써 5년이 지나다니 놀랍다. 너무 어려워서 앞에서 보다 다시 맨뒤로 가서 거꾸로 읽다 말아서 도넛처럼 중간이 뻥 뚫린 채 미처 완독 안 되고 책꽂이에 꽂혀 있다. 그 사실을 3년 전 읽은 문보영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독후감에서 찾았다. 문보영 검색하면 시집 독후감은 안 나오고 산문집 독후감은 나오니 시집은 다 읽지 않은 게 확실하다. 거기에도 모래랑 책이랑 앙투안이랑 지말이 나왔던 것 같다. 산문집에 나온 것일지도.

이전 시집도 안 봐 놓고 시인의 새 시집을 빌렸다. 도서관의 장점은 안 사 볼 것 같은 책을 읽게 한다. 재촉해서 빨리 읽게 한다. 뭔가 멘탈이 제법 깨지는 날들인데 그건 내가 자처한 걸까 과거의 내가 자처한 걸까 그냥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던 걸까 이 시점에 너의 멘탈은 깨진다, 그렇게 정해진 걸까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물음의 대답은 다 아니오 일까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어려운 시집을 읽는 건 제법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시집을 오래 안 봤네, 하고 굳이 시집을 봤는데 오, 좋다 아니다 하고 할 말이 없어, 뭔말인지 잘 모르겠거든, 이러고 읽었다. 읽다가 지수로그 함수도 쪼끔 풀고, 기하 강의도 쪼오끔 듣고, 그러다가 하루가 갔다. 날이 추워졌다.

제법 실험적이라 할 시를 쓰는 몸과 마음은 어떨까 궁금하다. 평론은 써줄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썼을까, 자기가 쓰고 싶어서 역자 후기로 썼을까, 장점은 나는 왠만해서는 평론은 읽지 않고 독서를 끝내는데 이 시집의 후기는 역자 후기라는 이름으로 문보영이 올리비아 페레이라의 시를 옮긴 문보영의 글을 다시 옮긴 사람이 적었다라고 장난을 쳐놔서 일단 내가 읽게 만들었다.

내가 가는 서점은 모래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주로 온라인 서점이니까 어디선가 1과 0과 버그와 디버그의 비가 내리겠지. 가장 최근에 간 오프라인 서점은 서울대입구 중고알라딘인데 거기에서 전쟁같은 맛을 팔아버리고 체르니30번을 사서 피아노 연습을 하는 엄마에게 줬다. 큰어린이가 내가 30년 전에 치던 체르니30번책을 치는데 둘이 그걸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돌려 쓰는게 불편해 보여서 (체르니100번은 그렇게 돌려 쓰면서 둘다 책을 마쳤다) 3600원이면 될 걸 그것도 예치금이랑 적립금에서 까는 것, 나는 3600원짜리 효도를 하고 3600항하사의 불효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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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는 대화 도중 상대방이 눈을 깜빡일 때면 0.4초 간격으로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다고 느꼈다. 또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고. 그렇다면 인간은 하루에 1만 5000번 변신하는 셈이다. 이는 내가 절대로 나 자신에게 적응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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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눈을 너무 오래 감고 있는 나이든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적응하고 있다.”
라고.
(‘적응을 이해하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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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악어가 진정 소망을 뜻할지라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소망에게 잡아먹히거나 물어뜯길 거라고, 아빠는 소리쳤다.
(‘소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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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이 나를 내버려둬. 상처받을 정도로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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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애인은 걷는 걸 고통스러워했고 걸음걸이가 조금 달라졌는데 그건 그가 물고기인데 사람인 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너무 오래 참았던 것이다.
(‘사람을 버리러 가는 수영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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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뚜안 너네 갑자기 좀 늙어 보인다.
지말 책 때문에 그래.
스트라인스 모래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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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알갱이가 빛을 업고 있다
작은 사람을 업은 더 작은 사람이라네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중. 책 때문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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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나는 닭 다리를 잡아당겨보았다 그것은 끈적한 콧물에 감싸인 채 쑥 빠져나왔다 이토록 쉬울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참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안의 어둠이 물살처럼 빠져나간다
(‘새로운 호흡법’ 중. 닭다리처럼 쉽게 빠진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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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현실이 너무 무서워 극장으로 내려가 공포영화를 시청했다. 진짜 공포에서 가짜 공포로 도망가기. 가짜 공포에서 진짜 공포로 도망가기. 탈출하기 위해 극장으로 내려가면 극장은 삶과 똑같은 공포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옆구리 극장’ 중. 공포영화 이제 안 본다. 삶에서 몇 바퀴만 돌면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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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무 많은 시간과 마음을 요괴에게 쏟고 있어
—그러라고 요괴가 있는 거니까
—너는 온종일 요괴의 털을 빗겨주지 그런데 빗을 때마다 털이 자라 곤란하잖아 너는 곤란해하느라 인생을 다 쓰고 있어
—그러라고 요괴가 있는 거니까
(‘친구의 탄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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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인간: 식물을 키운다는 건 안 죽이는 연습을 하는 거야.
지말: 아……
모래인간: 그리고 동시에 안 죽는 연습이기도 하지.
(‘풍족한 삶‘ 중. 나는 연습이 부족하다 못해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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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있는 집은 내부도 기울었을 것 같지만 평평하다. 그게 바로 이 세상이 가짜라는 증거다.
(‘초행길’ 중. 바닥이 기운 집에 사는 사람은 매트릭스 깨어났냐. 다들 방바닥에 연필 굴려보셈. 멈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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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다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해온 상태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랑한 물체가 모종의 힘에 의해 변형되는 것을 보며 찌그러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눌렸다고 말하죠. 눌린 사물은 시간이 흐르면 원상 복구됩니다. 그러나 찌그러진 사물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돌아가기가 곤란해졌음을 나타내며, 찌그러진 사물은 귀가하지 않는 영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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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혼이 기체라면 이렇게 자주 찌그러질 리 없습니다. 기체는 압축되거나 팽창할 뿐입니다. 따라서 영혼은 고체라는 결론이 도출되지요.
(‘설치 예술가 올리비아 페레이라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기분이 좋지 않다”‘중. 어휴시벌 제목부터 개빡세네. 영혼은 가출, 영혼은 고체라는 신박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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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9-21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읽는 김광규 시인의 시집 그만 읽을까 생각 중입니다.시인이 넘나 생각이 많으신 것 같아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21 17:57   좋아요 1 | URL
문득 일상어 쓸때도 시인들은 신경을 많이 쓸까 어쩔까 궁금했어요 ㅎㅎㅎ
 

일단 문제. 4주 전 발목을 접질러 들른 외과에서 엑스레이 찍어 보니 염좌라고 해서 소염제 먹고 발목 보호대 하며 칩거하던 반씨는, 통증이 나아지지 않고 부종이 심해지자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에 들러 다시 진료를 보기로 합니다.

아픈 다리를 끌고 도보로 도착한 정형외과 진료실, 의사 선생님은 4주 전 접질렀고, 당시 엑스레이는 골절이나 다른 소견 없었는데 낫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환자의 보호대 푼 발목을 보자마자 부상 부위에서 눈을 떼고 처음 들른 병원에 가라고 말합니다. 초진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이전 병원이 너무 멀고 아파서 갈 수가 없어서 여기서 진료를 봐달라고 재차 부탁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진료를 여기서 보고 싶으면 전원요청서를 받아오라고 하며 환자를 돌려 보냅니다. 환자는 눈물을 삼키며 접수계에 원장님 진료 안 하신대요, 하고 간호사는 네에~하며 다른 말 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맞는 설명은?
1. 의사가 진료 거부를 했다.
2. 의사가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고 환자가 잘못했다.
3. 진료를 봤으면 돈을 내야지.












정답은 2, 3

매우 속상한 상황이었지만 치료도 못 받고 쫓겨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건강보험 공단에서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문서가 앱으로 도착했고, 화가 났다. 진료 거부 하고 쫓아낸 병원에서 건강보험 공단 부담금까지 신청했다는 게 너무 뻔뻔해서 건강보험에다가 부당청구 신고도 하고, 이걸 근거로 자치구 보건소에 진료 거부로 민원도 넣었다.

오늘 받은 답변은, 의사가 최초 상태와 진료 내역을 알기 위해 진료 의뢰서를 요구하는 경우는 진료 거부가 아니고, 의료행위(진료)에 해당한다고 한다.
오히려 어떤 사유인지는 모르지만 민원인이 진료비를 미납한 것으로 되어 있고, 의료기관은 정당하게 건강보험 공단 부담금을 신청한 것이라는 유권해석이 되어 있었다.

와... 진료 못 받고 쫓겨나서 오래 앓다 합병증이 왔는데, 나는 진료(=처음 간 병원 가라고 못 봐준다고 쫓겨남) 받고도 병원비 안 내고 도망간 사람에다 적반하장으로 악성 민원 넣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부조리 소설 읽다가 부조리한 법령과 관료와 전문직한테 개처맞고 나니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일단 의사는 진료실 들어서서 나 만나주고 그냥 가라 한 것만으로도 돈을 받는구나, 나한테는 내라 소리 안 했지만 하여간에 나는 안 냈고 건강보험 공단은 의사에게 수가대로 돈을 줘야 하는거지...

저만 모르고 있던 것일 수도 있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이 저처럼 낭패를 보고 충격과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널리 알리고자 이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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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 없는 국민신문고 민원 전문

진료 거부 및 허위 건강보험 청구 의원 신고

본인은 2023년 4월 20일 서울 00구 소재 00정형외과에 정형외과 진료를 받고자 접수 신청을 하였으나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진료 거부를 당했습니다. 이후 진료도 하지 않은 해당 의원에서 건강보험 공단부담금 허위 청구를 한 사실을 2023년9월18일 인지하여서 본 민원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의원 방문 약 한 달 전인 2023년 3월 30일 발목 접지름으로 타 의원에서 발목 인대 염좌 진단을 받았으나, 차도가 없고 부종이 심해 거동이 매우 불편하여 자택에서 가장 가까운 의원인 00정형외과에 내원하였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정형외과의사는 부종 상태를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본인은 진료를 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환자가 진료를 부탁해도 처음 내원한 병원에 가라는 말만 거듭하였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병원을 옮기고자 왔다고 해도, 그러면 전원요청서를 이전 병원에서 받아와야 한다고, 거듭 요청해도 진료를 봐줄 수 없다고 해서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접수계에 의사선생님이 진료 안 보신다고 하셨다고 말했고, 환자는 접수계 간호사로부터 어떤 수납도 요청 받지 않았고 본인 부담금 수납도 하지 않았습니다. 진료를 안 봤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진료 거부가 매우 속상해 당장 신고를 하려다가 너무 몸이 불편한 상태라 당시에는 그냥 넘어갔습니다. 나중에 5월 15일 타 병원 내원하여 진단 결과 인대파열, 5월18일에는 타 병원 내원하여 진단 결과 심부정맥혈전증 상태였고, 그것이 폐색전증으로 합병증을 일으켜 응급실 입원도 하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보시고 본인이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2차 병원 진료의뢰를 해주시거나 다른 진료과목 권유했더라면 심각한 질환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인데,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박대하고 진료 거부하여 합병증으로 번지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진료 거부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당시에 의사가 진료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해당 병원에 내원한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진료를 거부했으니 접수도 되지 않았고 의료기록도 남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진료 받은 내용 안내문을 네이버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4월 20일 해당 병원에서 본인부담금과 공단부담금을 지불하고 진료받았다는 허위 내역이 고지되었습니다. 진료 거부한 것도 모자라 부당하게 진료비를 공단에 청구한 해당 의원의 불법 행태에 매우 분개하였습니다. 해당 의사에게 어떤 의학적 조언도 조치도 검사도 진단도 처방도 받은 바 없습니다.

부당하게 청구된 공단부담금을 꼭 회수하시고, 진료 거부 및 부당청구에 대한 책임을 물으셔서 의사의 의무와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불법 행위를 저지른 해당 의사와 의원을 제대로 조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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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국민신문고 답변. 미납 진료비 내러 가야 합니까...

+돈 내세요 하니까 나온 책 돈 까밀로 힘 내세요 나새끼 돈 내세요 힘 내세요

#진료거부 #아닙니다 #고갱님돈을내셔야죠 #국민을위하는건강보험 #국민신문고 #부질없다 #공무원만세 #보건소만세 #의사만세 #억울하면수능만점받고의사되렴 #아니면그냥집구석에서앓으렴병원함부로가지말고 #진료실들어가기전에돈내고쫓겨날지진료무사히받을지잘판단하고기도하고신성한마음으로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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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9-20 1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료를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왜 진료비가 청구되는걸까요?
그러면 우리가 병원을 하나 선택하면 상처가 썩어 문드려져도 계속 그 병원에 다녀야 하는건가요?
다른 명의를 찾아갈수는 없나요?
ㅠㅠ
이해가 되지 않네요.

반유행열반인 2023-09-20 18:19   좋아요 2 | URL
똑같이 초진 아닌 병원이어도 저렇게 진료의뢰서 가져와라 이러고 진찰 없이 보내는 경우(진료의뢰서 받아오라고 했으므로 진료거부가 아니고 의료행위라 함)가 있고, 일단 본인이 할 수 있는 촉진 관찰 문진 다 하고 해당 의원에 있는 엑스레이 초음파 검사(검사비는 과하지 않게 나왔습니다 엑스레이비만 받은 듯) 다 해 보신 뒤 상급 병원으로 가라고 진료요청서 써주신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선생님 재량에 많이 의존하고 대부분은 환자 고쳐보려 애쓰는 선생님들이었지만 가장 안 좋은 사례도 경험해 본 것 같습니다. 상식으로는 안 통하는 전문 분야와 의료법의 룰이 따로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0 18:22   좋아요 2 | URL
저때 바로 진료했다고 진료비를 요구했으면 나중에 제가 진료비 안 낸걸로 되어 있는 충격이 적었을 건데 당시에는 수납 요구도 안 하더니, 뒤늦게 공단 부담금만 받고 네 진료비는 안 받아 인건지 나중에 다시 저한테 독촉 연락할 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새파랑 2023-09-21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많이 짜증나고 화나실거 같습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부조리가 많군요 ㅡㅡ 병원비 부분은 완전 이해할수없네요...

역시 안아픈게 제일 좋은것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1 08:38   좋아요 1 | URL
넵 당시에만 그러고 가끔 떠올랐지만 잊고 있었는데 건강보험이 상기시켜줘가지고 홧김에 민원넣다 화만 돋구고 말았네요 ㅎㅎ
새파랑님도 늘 건강하시길!!!!

희선 2023-09-21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면 어디가 안 좋은 건지 제대로 봐줘야지 처음 갔던 병원으로 가라고 하다니... 전원요청서 받아와야 한다고 해도 진료할 수 있잖아요 돌아간다고 하면 돈을 내라고 하든가 해야지 그런 말도 안 하다니...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3-09-21 08:39   좋아요 0 | URL
일반인 보기엔 납득 가지 않는 것도 저쪽 나름의 규칙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보건공무원도 의사도 이해하는데 환자들은 잘 모르는....
 
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230919 류진운.

거위털도 개털도 아니고 닭털 같은 나날이라니, 닭의 깃털이 어떤 색감과 느낌인지는 어렴풋이 알겠는데 그렇게 고상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살아 있는 닭을 본지도 오래 되었다. 먹어 치운 죽은 닭의 수가 훠------------------------------월씬 많다.

세 편의 중편소설이 실려있다. 마지막 글은 작중에 이건 소설이 아니다, 선언하기도 하고, 르포에 가깝지만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소설처럼 읽힐 수 있겠다. 관료제를 비판하고, 자본주의 안에서 가정을 유지하고 애를 키우고 삶을 꾸리는 지난함을 그리고, 그 안에서 우스꽝스러워지는 인간과 부조리한 상황들을 던져주는 걸 보면서 다른 이웃님 리뷰에서 중국산 카프카 이야기 하던 생각이 났다. 그건 다른 중국 작가였지만, 아니 중국은 왜 카프카가 이리 많냐...했다. 검색해보니 중국의 면적은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합친 것의 18배가 넘는다고 하니 앞으로 18명 이상 더 꼽아도 될 것 같다. 사실 중국 소설 많이 읽지 않았구요… 쌈마이 옌롄커의 병맛을 애정합니다… 마오주석 모독하고 상징물 파괴하면서 내가 더 사랑해! 하는 미친 커플이나, 시아버지를 자기가 운영하는 업소에서 복상사 시키는 며느리(…) 같은 것… 누구든 이거 이상으로 써 내놔봐요. 제가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

류진운의 소설은 그보다는 더 현실 밀착형이었다. ‘임의 집에 두부 한 근이 상했다.’(11)로 시작하는 ‘닭털 같은 나날‘은 아이를 키우고 고된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을 하려고 아득바득하는 부부의 일상을 그려놓았다. 크게 미친 놈도 안 나오고 엄청난 불행도 닥치지 않는데, 소소한 좌절과 소소한 이득과 그 작은 이득 뒤의 씁쓸하고 불쾌한 사연 같은 걸 건조하게 그려놨는데도 인간 살이의 구질하고 너절한 것들이 마구 몰려들었다. 그냥 사는 건데 참 인간 힘들게 산다… 체념하고 끌려다니는 일상이, 가족과 가정과 가계의 유지가,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고 그걸 계속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다 대단한 것 같다.

’관리들 만세‘는 읽기도 전부터 제목이 비꼬는 거겠구나 싶은데, 공공기관인지 공기업인지 이새끼들 일은 안 하고 조직 개편 시기에 어떻게든 자기 밥그릇 지킬려고 암투 벌이는 모습이 지긋지긋했다. 이혁진 ’누운 배‘도 좀 생각나고… 진짜 정이 가는 인간이 하나도 안 나오는 소설도 있구나… 초반부에 나오는 화장실 넘쳐 들끓는 구더기 보는 심정...그런데 저 앞 소설의 평범한 일상 속 고군분투하는 인간이나 조직 안에서 아득바득하는 인간이나 다 같은 존재라는 게 문제지… 인간을 마냥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

’1942년을 돌아보다‘는 그해 하남성에 대기근이 닥쳤던 것을 기록과 생존자 인터뷰를 통해 돌아보고 장개석을 까는 이야기였다. 문득 그보다 나중 이야기이지만 문화대혁명 잘 그린 소설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하나 보긴 봤구나… 옌롄커의 ‘사서’… 주목 받는 역사적 사건과 대기근 같은 재앙은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지만, 1942년은 정부나 권력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역사 속에 잘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작가가 태어나기 전 작가의 고향인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기근의 영향을 받아 죽었고 처참한 상황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친구에게 콩나물과 족발을 얻어먹고 남한테 떠밀려 1942년을 조사하는 듯싶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하고 잊히는 것을,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 보여주는 게 소설가의 일이겠다 하면서 읽었다.

마지막에 덧붙은 황석영의 감상문?이 인상깊었다. 와, 글을 잘 쓰네...하다가 수능 국어 기출 말고는 읽은 게 없어서 ‘나 황석영 한 권도 안 봤네’했더니 엄마가 엄청 놀랐다. 잘 쓰는데? 하면서. 엄마가 모아둔 중단편전집이랑 최근 소설들이랑 희곡집이 있는데 안 본게 놀라운가 봄...뭐 엄마가 좋게 본 거 내가 안 본 건 너무 많은데요...오정희도 엄마는 필사까지 했는데 난 유년의 뜰 한 편(한 권 아니고 그 소설만) 보고 안 봤는 걸요… 볼 게 너무 많다. 지금부터 책 그만 사고 한 십 년 책만 읽어도 쟁여둔 것 다 못 볼 듯...

+밑줄 긋기
-정말 괴로운 것은 능력이 못 미치거나 일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시비를 걸고, 서로 경멸하고, 서로 인정하지 않으며, 오줌을 일부러 오줌통에 싸지 않고 사방에 싸 놓아, 자신이 그 모든 걸 수습해야 한다는 사실 아닌가? 힘을 일하는 데 쏟지 않고, 서로 헐뜯고 서로 비웃는 데 쓰고, 겉으로는 친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위에서는 악수를 하지만 아래에서는 발을 거는 형국이 아닌가? 도대체 이토록 많은 ‘계급적 원한’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정말 이것을 공산당에 걸맞은 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107)

-(할머니 생애) 92년 동안 등장했던 수많은 집정자들을 비난해도 소용이 없다. 다만 집정할 당시에 그의 백성이 도처에서 굶어 죽었다면, 그 위정자는 마땅히 우리 할머니보다 더욱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자기의 가족과 자손들은 결코 굶어 죽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통치를 받는다는 것이, 정말 얼마나 불안하고 겁나는 일인가? 하지만 할머니의 담담함에 흥분과 분노는 사라지고, 자조의 쓴웃음이 지어졌다. (212)

-지상에서의 영구혁명론이란 그야말로 말에 지나지 않으며, 혁명적 상황은 삶과 체제가 한 몸이 되어 엉겨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드러난 이 현실을 브레히트는 ‘도달하기도 전에 거기 저 혼자 피어난 장미’로 비유했다. (298, 황석영의 붙이는 글 중)

-생활은 정치보다 중요하고, 국민은 정치가나 관료보다 중요합니다. 후자가 전자보다 중요할 때, 그 민족의 생활은 정상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305, 작가와의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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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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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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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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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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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9-20 11:39   좋아요 1 | URL
좋더라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