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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평점 :
-20250914 귀스타브 플로베르.
‘나보코프의 문학강의’에서는 ‘맨스필드 파크’, ‘황폐한 집’, ‘보바리 부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스완네 집 쪽으로’, ‘변신’, ‘율리시스’를 다루고 있다. 대학 다닐 때는 학기중에는 그렇게도 참고문헌 안 읽고 놀러만 다녔다. 방학 맞이해서야 겨우 뒤늦게 읽고 아, 수업 들을 때 미리 읽었더라면, 하는 책 잘 안 보는 날라리였다. 그래서 이 책 볼 때는 공손하게 다뤄지는 소설들 하나하나, 나보코프 선생님의 픽이잖아, 이미 읽은 건 넘기더라도 안 읽은 건 꼭 읽어보고 강의를 확인하자, 했다.
2017년에 펭귄판 ‘보바리부인’을 읽었다는데, 오늘 책을 다 읽고 독후감 대강 휘갈긴 걸 찾아 보니 오, 나름 줄거리 요약도 해 놨었네…
https://m.blog.naver.com/natf/221305340066
그런데 몇몇 장면 인상깊었다는 느낌만 남아서, 이건 다시 읽고나서 나보코프 책을 마저 보자, 했다. 그랬더니 진도가 안 나가요… 흥미롭긴 한데 너무 두껍잖아… 이번엔 강의를 먼저 읽자, 하고 나보코프의 눈으로 본 ‘보바리 부인’을 훑고 나니, 와, 이거 되게 재밌겠는데, 프로이트의 음흉한 미소 운운하는 나보코프도 제법이지만 역시나 직접 소설을 보는 게...하고 다시 읽던 걸 속도를 내서 마저 읽었다.
8년 전에 읽은 책은 안 읽은 거나 다름 없고,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도 다르다. 엠마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만큼 다를 것이다.(아닐까 넌 다시 태어나도 그 모양일까) 그래서 마치 처음 읽는 소설 같았고, 와, 플로베르의 문장을, 이야기 구성을, 온갖 인물상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내가 된 게 좋았다. 글 좀 쓰시는, 읽으시는 선생님들이 플로베르 짱짱맨하는 것도 납득이 되었고…
그런데 나보고프 선생님 강의 읽기 전에 프루스트나 조이스의 소설을 먼저 읽는 건 영 무리가 아닐까 싶다. 이번처럼 다이제스트라도 먼저 맛 보고 읽든가 말든가 하는 걸로…
스포일러를 죽도록 싫어해서 책을 다루는 책들을 극도로 회피하는 편이지만, ’마담 보바리‘는 결말을 알고도, 그 결말로 달려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고 문장은 시처럼 아름다웠고 또 슬펐다. 결말은 전에 읽어서 대강 기억나니까, 플로베르 선생님, 또 죽여야 합니까? 자꾸 묻게 되었다. 거 나중에 에밀 졸라 선생도, 톨스토이 선생도, 박찬욱 선생도 간통녀는 뭐, 이 시대엔 죽어야지 별 수 있나…하고 다 죽여버리긴 합니다만… 상대 남자는 가끔은 죽고 대부분은 잘 자고 잘 사는 것 같긴 합니다… 다른 결말은 사실 저도 상상을 못하겠네요. 소설 수업 듣던 시절에 선생님이 묻는 소설의 끝에 대해 ‘그냥 다 죽는 거죠, 끝’ 이랬던 나새끼도 생각나는데…
이야기에선 그렇게 쉽게 죽지만 현실은 불행히도 삶은 계속된답니다. 계속되는 삶에 대해서도 한 번 들여다 봐야겠네요. 대개는 환멸-절교 뭐 이런 전개던데(사강 같은 거) 다른 끝이 있을까요? 하여간에 엠마 한 명 죽이는데 이렇게 수 년 간 집요하게 모든 방향을 한 점으로 주욱 끌고 나아간 플로베르 선생님 품격 있고 섬세한 킬러로 존경합니다…
+밑줄 긋기
-설탕가루까지도 다른 데 것보다 더 희고 더 보드라워 보였다. (76)
-미래는 일종의 캄캄한 복도였고, 그 끝에 나 있는 문은 꽉 잠겨 있었다. (95)
-그래서 나는 지팡이를 짚고 화단을 어슬렁거리든가, 친구들을 고래 뱃속에다 재워준다든가, 비명을 내지르고 죽었다가 불과 사흘 뒤에 소생하는 하느님 같은 그런 아저씨는 믿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엉터리 같은 얘기인 데다가 물리학의 모든 법칙에 완전히 어긋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러한 사실은 신부들이 항상 창피스러운 무지 속에 안주하고 있으며, 민중도 그 속으로 같이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증거입니다. (117, 오메 씨 같이 패기로운 불신자들 보면 난 왜 껌뻑 죽는지. 내가 이럴 줄 알고 플로베르님은 적당히 익살꾼이던 오메를 막판에 악성 저널리스트에다 권력과 명예에 미친 놈으로 급하게 몰아간다. 원래 그런 놈인데 내가 못 알아 본 걸 수도 있고...)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육체적으로 약하고 법률의 속박에 묶여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달린 베일 같아서 끈에 매여 있으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린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 (131-132, 이거 놔라 놔… 시대적 특징이 드러나는 서글픈 서술. 지금은 어떨까? 그냥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묶여 있는 기분이다.)
-하기야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일부분인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
엠마 쪽으로 말하면, 자기가 그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연애란 요란한 번개와 천둥과 더불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인간이 사는 땅 위로 떨어져 인생을 뒤집어엎고 인간의 의지를 나뭇잎인 양 뿌리째 뽑아버리며 마음을 송두리째 심연 속으로 몰고가는 태풍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집 안의 테라스에서 물받이 홈통이 막히면 빗물이 호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연히 안심하고 있다가 문득 벽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148, 가랑비에 옷 젖듯 엠마의 연애가, 빚이 와장창 해버릴 것을 미리 밑밥 깔듯 찰지게 비유를 하는 것이다. 아 나 이 부분 보고 감탄하면서 이따위로 밖에 평 못 하는게 스스로 빡치네…)
-중류층 마누라들은 그녀의 검소함을, 환자들은 그녀의 예의바름을,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비로움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는 탐욕과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름이 똑바로 잡힌 옷은 산란한 마음을 감추고 있었고 그토록 정숙해 보이는 입술은 마음의 고뇌를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보는 즐거움을 위해 고독을 원했다. 그가 직접 눈앞에 보이면 그 명상의 쾌락이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엠마는 그의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가 막상 그가 앞에 오면 감동이 사라지면서 오로지 커다란 놀라움만이 남았다가 어느덧 그것도 슬픔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158-159,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오지은은 노래했었다. 책 다 읽기 전날 큰어린이랑 아이패드로 노래방 틀어놓고 한 번 불러봤다.)
-이때부터 레옹의 이 같은 추억은 그녀의 권태의 중심처럼 되어버렸다. 그것은 러시아의 황야에서 나그네들이 눈 위에 버리고 간 모닥불보다도 더 강하게 권태 속에서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그녀는 거기로 달려가서 그 옆에 웅크리고 앉아 꺼져가는 그 불을 조심스럽게 해적여보았고 불 기운을 돋울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이었다. 가장 아득한 기억들이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잡을 수 있는 기회건, 실제로 겪은 일이건, 마음속으로 상상한 일이건, 산산이 흩어지는 관능의 욕망이건,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람에 꺾이는 행복의 계획이건, 자신의 보람 없는 정조건, 깨어져버린 희망이건, 집안의 잡일이건, 자신의 슬픔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고 무엇이든 받아들여 이용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땔감이 저절로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땔감을 너무 많이 쌓아올린 탓일까, 불길은 그만 사그라져 버렸다. 사랑은 부재로 인하여 조금씩 꺼져 갔고 미련은 습관 속에서 질식해 버렸다. 그녀의 창백한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불길의 남은 빛은 더욱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점점 사라져갔다. (181-182, 모닥불 하나로 집요하게 마음의 변화를 그리는 플로베르 아저씨… 난 왜 이렇게 못 쓰죠? 하게 만드는 문장이나 비유나 묘사들이 참 많았다. 나보코프의 픽이 될 만했다. 허허)
-‘(…) 보바리 부인!......모두들 당신을 그렇게 부르지요!......사실, 그건 당신 이름이 아니죠! 다른 남자의 이름인걸요!’
그는 되풀이했다.
‘다른 남자의!’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226, 수작부리는 대목인데 나도 이 소설 이름이 엠마가 아니라 굳이 보바리부인인지 오래도록 자문해봤다. 이런저런 이유를 짐작해 보지만 플로베르 씨는 이미 먼지가 되어서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챗지피티한테 물어봤더니 구구절절 떠드는데 출처를 모르겠네 그건 누구 생각이니)
-하늘은 푸르렀고 나뭇잎은 움직이지 않았다. 온통 꽃이 만발한 히이드로 뒤덮인 넓은 공터가 여러 군데 있었다. 오랑캐꽃들이 상보처럼 깔렸는가 하면 번갈아 수목의 덤불이 나타나곤 했다. 수목들은 나뭇잎의 다양한 종류에 따라 회색, 갈색, 황금색 등으로 달라졌다. 때때로 덤불 밑에서 새들이 나직하게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 혹은 떡갈나무 숲에서 날아오르는 까마귀들의 연하고 목 쉰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231, 하아, 인물 묘사나 서사나 서술 아닌 이런 부분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게 문학이로군 하고 감탄하다 위축되는 부분이라 퍼 놨다. 군더더기라 여기지 말고 서사의 밑바탕에 배경음악처럼 깔리도록, 가능하면 변주나 오브제나 복선 같은 게 되도록 문장이라는 깔개를 능숙하게 깔아 놓는 게 대문호랑 쪼렙 글싸개의 차이겠지...)
-‘(…) 내 친구가, 동생이, 천사가 되어주세요!’ (233, 야이씨 로돌프 새끼 넌 동생한테 이런 개수작이냐… 저런 대사로 농축된 비열함을 풍기는 것도 재주다.)
-그때 그녀는 옛날에 읽었던 책 속의 여주인공들을 상기했다. 불륜의 사랑에 빠진 서정적인 여자들의 무리가 그녀의 기억 속에서 공감어린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하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 자신이 이런 상상 세계의 진정한 일부로 변하면서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그토록 선망했던 사랑에 빠진 여자의 전형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리하여 젊은 시절의 긴 몽상이 현실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설욕의 만족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도 그만하면 어지간히 고통받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제 바야흐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사랑이 환희로 끓어올라 한방울 남김없이 분출된 것이다. 그녀는 뉘우침도 불안도 고민도 없이 그 사랑을 음미하는 것이었다. (236-237, 이미 있던 이야기들에서 공범의식 느끼기보다, 나는 클리셰가 되지 않을 거야...나는 책이 아니야… 책 속 그 모든 여자들처럼 죽지 않을 거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드라마는 됐고 진짜 삶을 내놔, 해야지. 여기서 이미 사망플래그 세우고 있어 가엾은 엠마...)
-그 전날과 마찬가지로 숲속 나막신 만드는 사람의 오두막 안이었다. 벽은 짚으로 되어 있고 지붕이 너무 낮아서 몸을 웅크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마른 나뭇잎 침상 위에 꼭 붙어 앉아 있었다. (237, 거지 같은 배경 속의 눈먼 사랑을 묘사하는게 진짜 플로베르는 천재 맞는 듯…)
-그러나 암소가 건널 수 있도록 대놓은 널빤지가 걷혀 있을 때는 강을 따라 담장을 끼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강둑은 미끄러웠다. 그녀는 넘어지지 않도록 시든 계란풀 더미를 손으로 붙잡곤 했다. 그러고는 갈아놓은 밭을 건너지를 때는 발이 빠져서 비틀거렸고 조그만 반장화가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만 같았다. 머리 위에 묶어 맨 스카프는 목장에 부는 바람에 펄럭였다. 그녀는 황소들이 무서워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숨을 몰아쉬면서 뺨이 장밋빛으로 변하고 온몸에서 수액과 초목과 대기의 신선한 냄새를 발산하며 도착했다. 로돌프는 그때까지도 자고 있었다. 마치 봄날 아침이 그의 방안으로 찾아들어온 것만 같았다. (….)
마침내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 그녀의 평판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238-239,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산넘고 물건너 갔더니 저따위 반응이라니 로돌프 확 씨)
-“세상에는 좋지 못한 약국이 있듯이 나쁜 문학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문을 한데 싸잡아서 단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갈릴레이를 감옥에 가두었던 저 끔찍한 시대에나 어울릴 케케묵은 발상이죠” (314, 속물적인 오메 씨가 신부님 앞에서 깝죽거리는 말들이 웃긴 나도 속물인 거죠? 그래서 직업도 따라가 보려 했으나 땡탈락)
-아, 만약 그녀가 아직 싱싱한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을 때, 결혼의 더러움도 간통의 환멸도 느끼기 전에, 누군가의 든든한 가슴에 생을 위탁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미덕과 애정이, 쾌락과 의무가 둘이 아닌 하나였을 테고 행복의 저 드높은 곳에서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은 결코 없었으리라. 그러나 저런 행복은 틀림없이 모든 욕망을 비웃기 위해서 상상해 낸 거짓일 것이다. 이제 그녀는 예술이 과장하여 보여주는 정열들의 보잘것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엠마는 생각을 딴 데로 돌리려고 애쓰면서 자신이 맛본 고통의 그 같은 재현이 한갓 눈에 즐거울 뿐인 조형적 환상이라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경멸이 깃들인 연민의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324, 엠마의 바람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얻지 못하는 무언가가 아닐지.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나 로맨스 소설이나 미연시-요즘은 이런 거 안 하나- 속 연애에 이입하는 건 아닌지.)
-“아, 그래 모르시겠다? 그렇다면 가르쳐주지! 넌 거기서 황납으로 밀봉한 파아란 유리병을 보았을 테지. 안에 하얀 가루가 들어 있고 내가 그 겉에 위험이라고 써놓기까지 했어!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 비소야, 비소! 그런데 넌 그걸 건드릴 뻔한 거야! 그 옆에 있는 냄비를 집어왔으니!” (360, 뭔가 PPL영상 마냥 여기 독약이요 독약! 한 방에 숑 가요! 하며 홍보 중인 오메씨…)
-호전적인 그 무엇이 그녀를 들뜨게 했다. 남자들을 두들겨 패주고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모조리 박살을 내고만 싶었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채 분노에 떨며 눈물 젖은 눈으로 텅 빈 지평선 저쪽을 더듬으면서 숨막히는 증오의 감정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이 계속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걸었다. (438, 그 감정 조금이라도 빨리 느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치랑 연애랑 겹쳐서 골팰 뿐이지 어느 한 기질 때문에 둘 모두 파국인 건 아니지 싶다. 각자 다른 방향에서 한 번에 덮친 거지.)
-이어서 신부는 천주께서 불쌍히 여기소서와 용서하여 주옵소서의 기도를 올리고 나서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성유에 적셔서 종부성사를 시작했다. 우선 지상의 모든 영화를 그토록 갈망했던 두 눈에, 다음에는 따뜻한 미풍과 사랑의 냄새를 그토록 좋아했떤 콧구멍에, 다음에는 거짓을 말하기 위해 벌어지고 오만에 전율하며 음란한 쾌락에 울부짖던 입에, 다음으로는 기분좋은 감촉을 즐기던 두 손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토록 빨리 달렸건만 이제는 이미 걸어다니지도 못할 발바닥에 성유를 발랐다. (468, 성호 하나하나마나 엠마의 삶을 요약)
-“남자가 여자 없이 산다는 것은 순리가 아니니까 그렇죠!” 하고 약제사는 말했다. “그래서 갖가지 범죄도 생기고…...”
“원 별 소릴 다 듣겠네!” 하고 사제는 소리쳤다. “결혼 생활에 몸담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예를 들면 고해의 비밀 같은 것을 지킬 수 있겠습니가?” (479, 남의 빈소에서 부르니지엥 신부님과 약제사 오메가 신앙/이성 이러고 티격태격 내내 싸우는 것은 익살스러웠고,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후반부까지 균형 잡는 플로베르 선생님의 내공이 느껴지고…)
-달빛처럼 흰 비단옷 위에 물결 모양으로 무늬가 지면서 떨렸다. 엠마의 모습은 그 밑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샤를르에게는 그녀가 자기의 몸 밖으로 번져 나와서 주위의 사물들 속으로, 침묵 속으로, 밤의 어둠 속으로, 지나가는 바람 속으로, 올라오는 습기 찬 향내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480-481, 죽음을 대하는 눈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린 표현은 난 다른 데선 아직 못 봤는데 비슷한 거라도 있으면 좀 가져와 보세요…)
-약제사와 신부는 다시 그들의 일에 몰두했다. 물론 때때로 졸지 않을 수 없었고 눈을 뜰 때마다 잠만 잔다고 상대방의 흉을 보았다. 그러면 부르니지엥 씨가 방안에 성수를 뿌렸고 오메도 질세라 클로르 수를 마룻바닥에 조금 뿌렸다. (482, ㅋㅋㅋ 미안 엠마 너 죽었는데 웃어서... 이 사람들은 너무 웃겨…저러다 같이 졸고 먹고 하하호호)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마을은 고요했다. 샤를르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로돌프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온종일 숲속을 헤매다닌 뒤 자기 집에서 편안히 자고 있었다. 저 멀리 레옹도 역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각에 자지 않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전나무 숲속의 무덤가에서 한 아이가 무릎을 꿇고서 울고 있었다. 흐느낌으로 찢어질 듯한 그의 가슴은 달빛보다도 더 부드럽고 칠흑 같은 밤보다도 더 헤아릴 길 없는 엄청난 회한에 짓눌려 어둠 속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490, 엠마는 끝끝내 쥐스텡의 사랑은 알지도 못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