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 레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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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 김연수.

 올해 벚꽃은 전보다 빠르게 피고 졌다. 마을버스가 골목을 벗어나 대로를 달리던 3월 30일, 차도를 따라 하얀 꽃송이와 꽃망울을 달고 늘어선 벚나무를 보며 내가 이 길을 보라고 돌부리가 발을 꺾었나 보다 싶었다. 
 내가 본 마지막 벚꽃이다. 아픈 발목을 끌고 마을버스 경로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 가는 길이었고, 벚꽃 다 지도록 나는 바깥에 나가지 못했다.

 발목 부상과 인대 파열, 다리 부종, 심부정맥혈전증, 폐색전증, 응급실과 입원, 올해 수능 포기, 골반불균형과 허리 통증. 키워드처럼 그 봄 이후 겪은 사실들을 나열해 보면 객관적으로는 ‘망했네’ 싶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실제로 망했네의 시간은 딱 일 년 전 이맘쯤인 작년 수능 전부터 이어졌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공부를 아예 놓은 건 여름 두 달 남짓이었고, 책을 원껏 읽었다. 아마 그 기간에 읽은 책이 작년 한 해 읽은 책보다 많을 것이다. 두 달은 아직도 기본 못 갖춘 수험생이 올해 볼 수능에는 치명적인 시간이었지만 쫄보라서 7월을 넘기기도 전에 최소량이나마 조금씩 문제를 풀고 강의도 들었다. 유예된 시간은 차라리 조금 더 마음 편하게 (그지 같고 지독한 수능이라는) 취미생활을 견디게 해 준 것 같다. 올해 수능 쉽다는데 이거 조졌으면 더 마음 아팠을 거 아냐…

 6월부터는 실내 자전거 싱싱 달리며 운동도 꾸준히 하고, 그렇게 석달 타다 중간에 잘못 탄 결과 허리를 조졌다. 물리 치료 받으러 다니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쳤던 바로 그 지점(공포의 사자암)은 안 가 보았지만 인근 산책로를 따라 다시 산에도 오르고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국사봉 꼭대기에도 갔다. 정상은 정비 공사 한다고 접근금지 테이프로 다 막아 놨음… 뭐 어때 어쨌거나 등산로 입구부터 정상까지 10분 컷 할 만큼 발목은 이제 다 나았고 숨 많이 안 찬 거보니 (아직 약은 한 달치 남았지만) 폐동맥도 아마 다 나았고 허리도 아프지만 그 정도는 견딜 수준인 것이다. 

 9월부터 조금 오래 김연수 짧은소설집을 읽었다. 재독이 드문데 수능 직후 늦가을에 읽고 웃기지 마!!! 힘내라고 하지 마!!! 했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늦겨울에 또 읽었었다. 짧은소설집도 그 소설집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두번째 밤’이란 소설 보면서 김연수는 우는 노인이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구나, 했다. 너무 짧은 이야기가 이어지니까 한 번에 통으로 읽기는 그래서, 디저트, 입가심, 브레스민트처럼 다른 책들 보는 틈틈이 한 편에서 몇 편씩 읽고 잤다. 

 희망을 버리지 말란 말보다는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가 나은 것 같고 그보다는 힘내지 마. 그게 더 나은 것도 같고. 청개구리는 진짜 큰일났다. 

 바로 앞 문장들은 책 읽던 초반에 내가 써 놓은 건데… 엘리베이터 탔는데 18층의 어린이들이 자기 엄마한테 ‘나 청개구리 키우고 싶은데’ 했다. 나는 우리집엔 있는데 청개구리...얘, 하고 같이 타고 있던 작은어린이를 가리켰고 작은어린이는 아니라고 펄펄 뛰었다. 사실 우리집 대마왕 청개구리는 나야 나. 
 웃으면서 힘들어하는 이에게 “희망을 버려.(생글생글)” “힘내지 마.(싱긋)” 누가 나한테 해 준 적이 없어서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다. 천하의망할사이코패스 같으려나 오히려 나으려나…
 
 마지막 소설이자 표제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서 수련이 피었는지 궁금해서 물가로 가는 이야기를 보고 조금 놀랐다. 8월에 칠조어론 4권 보던 내가 갑자기 연꽃이 보고 싶어서, 연꽃, 있을까? 하고 보라매공원에 나갔던 날이 생각났다.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이 먼저 나와 있었으니까. 항상 뒤늦게 읽고 쓸 때마다 내 삶은 이미 서가의 온 책들에 수만 조각으로 흩어진 채 쓰여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여기저기서 훔쳐낸 복제품, 조각보, 인용 겁나 달린 네 논문, 이미 그렇게 살다 죽은 자들의 남은 망령, 파편, 토막꿈. 그럼 뭐 어쩔 거야…

 소설집 말미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영문 모를 전쟁 속에서도 살아 남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가 아니고, 독일가문비나무를 바라보는 노인이 된 자신을 그려 놓았다. 화자도 소설가니까 그냥 소설가 자신의 오랜 뒤의 어떤 한 미래라고 봐도 무방하겠다.작년 이맘 때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남짓 사이에서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마킹하던 나는 이미 잘 지나온 과거로 다시 돌아와 망한 과거를 다시 시뮬레이션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내가 올해는 봄과 가을의 등산로에서, 입원실에서, 물리치료실에서 노인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평범하고 흔한 노년을 또 미리, 아니면 너무 일찍 체험했던 것도 같다. 젊은이들에게 다 살게 되어 있다, 하는 마음이라면 오랜 뒤의 다 내려놓은 노인 보여주는 게 그닥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다. 챙길 아이도 겪을 노화도 없는 세계에서 친구들과 해맑게 이거저거 먹고 노는 젊은이들 사진을 블로그에서 가끔 보는데, 후...니들은 이런 거 피우지 마라…(가을산에 모닥불 말이다…) 미래도 과거도 돌아보지 말고 현재 즐거우면 됐다...
  



 너무나 까지는 모르겠고 아직 여러 번의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남은 건 알겠다. 가장 가까이에 가을이 있고 또 겨울이 오고 있다. 그럭저럭 잘 지낼 계절들이다.


+밑줄 긋기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십대 초반의 나에게 괜찮다고, 그렇게 바뀌어가고, 마음이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34)

-별 노력 없이, 수월하게. 그럴 때 걷기는 사랑과 닮아 있다.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254,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 옮겨 왔다. 사랑을 술술해왔다면 당신은 날로 처먹는 인생을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면 다들 술술 쉬운데 나만 어려웠을까?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사랑은 없다. 걷기도 다치지 않고 바르게 계속 나아가려면 술술은 아니지...)


-수련은 피었을까? 질문이 나를 거기까지 데려갔고,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질문은 사라졌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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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0-28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열님이 등산로 입구부터 정상까지 10분컷 하셨다고! 숨도 별로 안 찼다고! 👏👏👏👏👏👏
많이 좋아지신것 같아 제 기분이 좋군요. 기분 좋으니까 아이스크림 먹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10-28 14:29   좋아요 1 | URL
메로나? 바밤바? 하겐다즈바? 젊은이의 아스크림 그것이 궁금합니다.

은오 2023-10-28 15:27   좋아요 1 | URL
하겐다즈는 가끔 할인할때 통으로 사서는 먹을만한데 바는.. 한입거리가 너무 창렬이라 못사먹구요ㅠ
메로나랑 바밤바는.. 아빠가 사오면 싫어했어요(메로나 망고맛은 좋아함)
끌레도르바(얘도좀 비싼데 하겐다즈만큼은 아니라 사먹음), 비비빅 흑임자(흑임자 좋아함), 옥동자(바 아이스크림중 거의 최애), 체리마루 녹차마루 메가톤 등등등
솔직히 웬만한건 다 좋아하는듯?

쮸쮸바는 별로 안좋아합니닼ㅋㅋㅋㅋ쮸쮸바는 힘줘서 빠는게귀찮음
콘은 과자랑 끝에있는 초코가 텁텁해서 자주는 안먹는듯
바나 통아이스크림을 선호합니다

아 아까먹은건 녹차마루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0-28 15:42   좋아요 1 | URL
와…끌레도르부터 녹차마루까지…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들이라…(우리집에서 올해 세일한다고 5000원에 두 통 모셨던 녹차마루가 세 계절 정도 방치되다 겨우 사라졌었어요ㅋㅋㅋㅋ)우린 이렇게나 책만큼 아이스크림 취향도 다르군요…
책도 아이스크림도 저랑은 많이 달라서 혼인은 고양이 집사님과 책상 어지르는 분과 하시는 걸로… (의외로 나한테는 결혼 신청 안 함 생각보다 신중히 재고 고르고 역시 은오님 안목이 있는 거지 저런 부코스키 스타일이랑 놀면 지지 묻는다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0-29 09:06   좋아요 1 | URL
아니 근데 원래 치킨 퍽퍽살 좋아하는 사람이랑 부드러운살 좋아하는 사람끼리 결혼해야 행복한건데 아이스크림취향 다르면 저희 오히려 잘어울리는거 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0-29 10:32   좋아요 1 | URL
제가 퍽퍽살이랑 하겐다즈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는데 (나는 날개랑 다리가 더 좋음/ 아이스크림보다 커피 더 좋음) 평화롭긴 합니다만… 나랑은 친구만 하죠 은오님 감당이 되겠니? ㅋㅋㅋㅋ(부고스키 책 주인공 광기 어린 느끼한 목소리로)
 
온두라스 SHG EP 코판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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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지가 세모나졌을 뿐인데…개명했을 뿐인데…구매욕에 졌다. ㅋㅋㅋ분쇄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드륵드륵 해야겠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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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0-27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딩때 목욕탕에서 목욕 다 하고 마시는 삼각 커피우유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반유행열반인 2023-10-27 23:20   좋아요 1 | URL
와 난 목욕 가면 그지라서 아무 것도 안 사먹었던 거 같은데 커피도 이십살 넘어서 마신 거 같은데 커피 우유 마시는 으른 은오 어린이였군요!

Falstaff 2023-10-28 0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배송이 일 주일 쯤 걸리네요. 벌써 주문했는데 다음 주에 보내준다니..... 커피 없는 주말을 보내야 합니다. 돼지고기 한 근 무게 주문해서 그런가요?

반유행열반인 2023-10-28 08:07   좋아요 1 | URL
팔백작님은 알라딘이 매달 당선금 챙겨줘서 책은 빌리고 커피는 커피연금?같은 거죠? ㅋㅋㅋ온두라스는 처음이야! 했는데 원래 먹던 데서 한 번 사먹었었네요...스펙도 산지도 워시드인 거도 거의 같음...큰 특색 없었음 ㅋㅋㅋㅋ그래도 알라딘에선 온두라스 처음이야! 하고 질러 봅니다. 저 유통기한 지난 에스프레소 캡슐 없애느라 원두 없이 거의 일주일 지내고 있는데 알라딘 덕에 재고 처분 더 하겠어요 ㅋㅋㅋ제 배송일은 11월2일?
 
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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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 황인찬
 

 같은 시인의 책을 시집 세 권(한 권은 두 번), 산문집 한 권 이렇게 (내 기준으로) 많이 읽은 건 처음이니까 나는 황인찬의 시와 글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겠지?(마니아 1위를 내려 놔라 syo야) (+나중에 보니까 그림책 두 권은 왜 뺐어? ㅋㅋㅋㅋ너 마니아 맞음 해라 다 해라ㅋㅋㅋㅋㅋㅋㅋ)
 시를 쓰는 사람은 아주 느릴 것 같다.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쓰고 느리게 고쳤을 텐데 내가 읽는 속도는 너무 빠르다. 나 치고는 천천히 읽는다고 읽었는데도 이렇게 읽으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안 될 건 또 뭘까 상관 없는 거 아닌가?(장기하냐)
 
 어제 다 읽은 책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이 ‘그게 뭐’한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런데 밑줄을 안 쳐놔서 반납한 걸 또다시 빌려 옮겨 온다.
-1757년 벤저민 프랭클린은 핼리 혜성의 위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게 뭐’라는 식의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핼리 혜성이 지구와 부딪치면 모든 생명체가 멸종할지도 모른다고 믿었지만, 프랭클린은 지구가 ‘신의 통치를 받는 무수한 세계’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대답했다. 이는 다중우주론 개념이 나오기 한 세기 전의 일이었다...스탠퍼드대학교에서 아그노톨로지(무지에 관한 연구)를 강의하는 로버트 프록터 교수는 좀 더 고상한 표현을 써서 “단일우주에서의 우리의 중요성을 과장하기가 쉽습니다”라고 내게 말했다.(‘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중)

 시인의 2019년 시집, 2020년 산문집, 2023년 시집, 다시 2019년 시집, 2015년 시집 순서로 읽었는데, 어떤 시들은 그 안에서 변주되고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어떤 장면을 무한하게 복기하고 되새기고 조금씩 바꿨다가 되돌렸다가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나가는 순간을 한 시절을 아쉬워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겠다. 오히려 잊어버리는 것들을 슬퍼해야 할텐데, 잊고 나면 잊었다는 것도 잊을 테니 슬퍼할 줄을 모르게 된다. 그러니까 그게 뭐. 상관 없나.

 반복되는 삶을, 이야기를, 회독을, 두려워하거나 지겨워하지 말아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건 어디에도 없으니까. 또 완벽하게 똑같은 이야기도 없다. 조금씩 엇박을 주고 조를 바꾸고 크기와 음색을 달리 할 뿐 인간은 인간이라서 다 고만고만하고 아주 작은 변화도 새롭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익숙함을 찾는다. 미지의 세계가 될 뻔한 희지의 세계를 읽고 나는 기지의 세계를 말하는데, 이미 안다 해도 그건 그냥 어렴풋한 앎이고 모르는 세부사항을 알기 위해 들어본 것 같아도 느리게 다시 들여다보고 들어보는 노력이 내게는 좀 더 필요하다. 뭐가 안 풀린다면 나는 그게 부족해서 그렇다. 뻔한 틈에서 아주 작은 걸 새로 알게 되어도 기뻐할 수 있게 되면 무엇이든 더 나아질 거야. 반복을 견디는 걸 넘어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밑줄 긋기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잠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실존하는 기쁨’중. 담그면 아니고 잠기게 하면 아니고 잠그면-금속이니까 자물쇠 같고 금속이 출렁이면 뜨거울 테니까 잠기게 담그면 녹아 없어지고 어두우면 차가우니 금속 같고 차고 뜨겁다. )


-무고한 벌레들이 내 눈으로 자꾸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면 좋을까 할 수 있다면 좋을까
 정말 그럴까
  
 인간으로 있는 것이 자주 겸연쩍었다
(‘여름 연습’ 중)


-밖으로 나가니 검은 모래가 하염없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바다였다
 사람들은 어두운 바다를 보며 감탄했다 놀랍다고, 아름답다고 소리를 지르는 연인들과 가족들

 왜 어두운 바다는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나
(‘유사’ 중, 흐르는 모래를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모래가 유체인 건 모래시계로만 봤다. )


-어린 나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무작정 집을 나선다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는데 자꾸 어딘가에 당도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이상하다
(‘이것이 시라고 생각된다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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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10-2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7-8년 전 별점들 보는데 왜 이럼? ㅋㅋㅋ나는 뒤에 평론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졸라 프레임임... 순식간에 히키고모리 덕후 시 만듦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3-10-27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인찬의 이 시집, 저도 좋아해요. 이 시집은 여름에 많이 생각나요^^

반유행열반인 2023-10-27 16:53   좋아요 0 | URL
봄에 가까운 자목련님께서도 여름 같은 시집을 좋아하시는 군요 ㅎㅎㅎ저는 읽은 세 시집 중 중간에 낀 (나온 시기도 중간인) 사랑을 위한 되풀이가 가장 좋았어요 ㅎㅎㅎ

은오 2023-10-27 2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치만.... 아직 안 읽은 읽고싶은 책이 너무 많은 걸요..
재독은 어려워...

반유행열반인 2023-10-27 23:19   좋아요 1 | URL
은오님 나 연인 다 읽었다요! 제가 은오님 나이 때는 읽은 거 또 읽고 사골국 우렸었는데 이제 재독은 엄청 드문일이 되었네요 ㅋㅋㅋ 저거는 수학 문제 같은 거 여러 번 복습하자는 다짐입니다(진짜? ㅋㅋㅋ)
 
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 의학 전문 저널리스트의 유쾌하고 흥미로운 인간 탐구 보고서
제임스 햄블린 지음, 허윤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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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6 제임스 햄블린.

 종이책 잔뜩 쌓아두고 허튼 책 전자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게 특기이다. 뭐 막상 빌려보니 완전 허튼 건 아니고 제법 흥미로운 책이었다. 번역이 중간중간 문장 후져가지고 거슬리긴 했지만 참고 읽을 정도였다. 
 몸에 관한 책 생각보다 관심이 많아서 한 때 블로그 상위 유입 검색어였던 것이 ‘남자 젖꼭지’(…) ‘남자는 왜 젖꼭지가 있을까?’라는 삐끕 유머 버무린 의학 상식 빙자 도서였는데, 이번에 읽은 ‘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은 그 상위 호환 버전이었다. 심지어 젖꼭지 책도 이 책에 인용되어 있긴 하다…(미국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함) (아니 그런데 유입 검색어 진짜 이상한 거 많음…‘시아버지의 육욕’, ‘여군 성적 소비’, ‘소월길 쉬멜’, ‘갱뱅’ 왜 이런 거 찾아서 내 블로그 들어옴? 훠이훠이)

 전에 읽은 ‘메디컬 스캔들’은 독일에서 의대 졸업하고 수련까지 하고서 의사 포기하고 저널리스트 된 저자의 책이었는데, 이 책은 비슷한 행로 가는 미국 의사 출신 저널리스트였다. 의사들의 자부심은 대단하고, 뭐 사람 고치고 살리는 일은 그럴 만하다(악덕 병원 사장님 빼고). 그런데 비슷한 저자 책 두권 읽어보니 의사 되려다 다른 길 가기로 한 사람은 뭔가 그보다 더 하늘을 찌르는 자존감 같은 게 있지 싶었다. 

 책 목차 훑어보며 빌리게 되었는데, 제일 관심 있던 주제는 책 후반부의 성과 죽음이었고, 역시나 이 부분이 재미있게 읽혔다. 아주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많이 없어서 나놈이 생각보다 이 주제 많이 봤구나...싶었다.

 챕터 하나에서도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 많이 하는데, 사람의 건강과 생명 놓고 마케팅 벌여서 불필요하거나 검증되지 않는 수술/시술/섭취하는 사례에서 저자는 비판적인 관점을 보였다. 건강보조제 시장이 그렇고, 심방세동처럼 생명 위협하는 분야에서 실시되는 전기로 심장 세포 지지는 수술도(생각보다 효과 없음 비만 개선하고 생활 습관 바꾸는게 수술보다 효과적임) 그렇고, 소음순 축소 수술(…실루엣 드러나는 스키니한 패션과 함께 유행했다고 함. 레깅스 이새끼) 같은 것도 그랬다. 죽음 부분에서 미국 장례 문화를 자세히 다뤘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죽은 사람 눕혀놓고 막 관 주변 꾸미고 작별인사하는 연출하려고 포름알데히드처럼 생태계와 인체에 부담주는 방부 독극물 많이 쓰이고 비용도 높아지는 부분에서 오 우리랑 좀 다른 듯 하면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 어릴 때만 해도 매장이 장례 기본이었고 화장하면 뭔가 연고 없고 돈 없고 쓸쓸한 장례처럼 드라마에서 뼛가루 배 위에서 바람에 날리는 연출할 때 나오던 건데, 이제 땅값 비싸지고 죽는 사람 많아지니 어느 새 자연스럽게 화장이 기본이 된 느낌이다. 미국 장례 상황 보니까 새버스의 극장에서 새버스가 자기 묘자리랑 장례 비용 계속 신경쓰는 게 좀 이해가 될 듯도 하고… 내 보기엔 화학 물질에 시체 녹여 폐수 처리하는 장례가 가장 친환경적인 거 같고 마음에 드는데 미국 비롯 여타 나라 대부분에서 불법이라고… 이 장례 옹호하는 사람은 장례 산업과 행정부의 커넥션을 의심...

 살면서 크고 작은 병으로 병원 신세 제법 졌다. 지금도 아직 한 달 쯤 항응고제를 더 먹어야 하고, 격일로 아픈 허리 전기로 지지러 물리치료 하는 마취통증의학과에 다닌다. 치료 순응도 높이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선생님들도 여럿 만났고, 불친절하거나 심지어 호통치는 선생님도 만났다. 아직도 안 잊어버리는 건 엄청 연세 지긋하신 대학병원 출신 두경부외과 선생님께 성대폴립 수술 받았는데, 내가 진료 보면서 시선 처리 제대로 못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사람을 똑바로 보고 말해야지, 하고 엄청 호통치며 혼냈었다… 그 선생님이 대학병원 과장 그만두고 동네 의원 차리신게 레지던트 엄하게 혼냈다가 자살해버려서 충격 받은 이후 라고 기사에서 읽었었는데… 흠 사람 안 변하는 구나 찔끔 했었다. 

 적당히 잘 진단하고 치료한 경우도 있지만 내가 크게 아파도 너무 티가 안 나게 그냥 몸이 이러저러하게 이상하네요? 덤덤하게 말해서인지… 기존 복통과 다르고 압통이 있는뎁쇼? 충수염? 했는데 내원한 내과에서는 열도 안 나고 충수염이면 데굴데굴 구를 거라고 그냥 장염약 지어주고 보냈는데 그날 저녁 응급실 가서 씨티 찍어보니 충수염 맞았다… 산부인과에 진통 있는데요, 하고 걸어 들어가니까 걸어 들어오는 거 보니 내일 쯤 나오겠는데요? 했는데 첫애, 그러고 사십분 안에 낳음... 진통이랑 출혈 느끼자마자 이건 한 시간도 안 걸리겠다, 하고 야간에 구급차 불러 들어간 분만실에서 아악, 하니까 간호사가 애 그렇게 쉽게 안 나와요-짜증 부렸는데 둘째, 그러고 이십 분도 안 걸려 낳음(출산 후 간호사 또 짜증-배 아프면 빨리 왔어야죠...응 아프자마자 온 건데…)… 이번에 폐색전증으로 응급실 가서도 흉통 있으면 미리 말하라고 안내문 있길래 숨차고 흉통이 있는데요? 창구랑 보안요원한테 말했는데도 네-가서 차례 기다리세요… 젊은이나 여성한테는 잘 없는 질환이니까 그랬겠지만 나중에 보니까 나 폐동맥 혈전 걸렸다고 이 사람들아…
 이런 상황들 보면 내 몸은 바깥에서 관찰하는 사람이 완벽히 알기는 또 어렵겠다 싶다. 일단 이상 감지하고 잘 살폈다가 병원 뛰어가야 하는 건 스스로의 몫...하아 어렵다. 

 한 해 이런저런 병치레로 노화를 절감하고, 아프면 바라던 바도 일단 중단되고 돈도 깨지고 가족도 걱정시키고 하는 걸 새삼 또 느꼈다. 미리 읽어둔 의학, 건강 관련 책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읽어 놓고도 아프니까 더 찾아 보게 되는(만화도 일하는 세포 블랙 같은 거…) 것도 같고, 그런 책들 본다고 주저 앉아서 허리 조지고 있는 걸 모른 것도 같고…(어쩔 거야…) 그런데 허리 안 조지는 법 있나요? 앉아 있는 거 말고 걷는 거 말고 뭘하지? ㅋㅋㅋ 일단 의식적으로라도 폼롤러에 가끔 눕고 서 있고 걸으러도 나가고 하는데 어제도 새벽 3시에 허리 아파서 깨서 타이레놀 먹고 잤다… 

 책 보다가 기대수명 검색하니 대한민국이 홍콩 일본 마카오 싱가포르 이어서 높은 순위라 하는데 안 아픈 채로 생존하는 건강수명은 또 엄청 높지는 않았다. 결국 한국인 대부분은 점차 유병장수하는 라이프 사이클로 가고 있다는 거… 물리치료 받는 침대 옆에서 할머니가 에고에고 아파 죽겠다...하는 소리 들으면서, 아무 것도 못할 만큼 아프고 그저 살아만 있는 오랜 후의 시간을 생각했다.(야 몸 잘 안 챙기면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야…) 심장내과 입원할 때 맞은 편에 누워 숨만 쉬던 할머니들도 생각나고… 아직 기대수명 대비 절반도 못 산 꼬꼬마 새끼가 성질은 급해가지고 왜 벌써 마지막에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 이 책 기대 수명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바른 자세 삽화 나옴 ㅋㅋㅋ나한테 맞춤형이냐...




+밑줄 긋기
-나의 의대 룸메이트는 안과의사가 돼 텍사스로 이주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직업을 알게 되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을 이 책에서 다뤄보라고 내게 권했다. 그가 말한 질문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눈 안에서 잃어버린 콘택트렌즈가 뇌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나요? 이 질문을 듣고 난 웃었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는 재미로 넘길 수 없는 질문인 것이다.

-많은 관람객이 전시물들을 보고 충격에 빠졌고, 그 시신들이 어떻게 조달됐는지 수상쩍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인체의 신비 대신 ‘실제 시신’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는 전시가 엄청난 인기를 계속 끌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가장 충격이 컸던 분야는 아마도 예술계일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우리가 누린 모든 예술 가운데 왜 하필 미화된 생물학 실험실이 이토록 성공을 거두고 사랑을 받는 걸까? 특히 우리들 대부분은 평소 우리 몸의 기능에 대해 과도하게 논하거나 죽음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는 일을 정말 싫어하지 않는가?

-와이오밍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켄트 드러먼드 Kent Drummond 교수는 <인체의 신비전>이 인간의 비참한 모습에서 느끼는 불쾌함을 영생의 욕망과 나란히 놓을 수 있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 전시물들은 언젠가는 죽는 인간 운명의 장엄함을 끌어내지만, 사람들을 압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프록터는 무지가 ‘적극적인 배양’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무지는 마케팅으로도 소문으로도 확산되면서 지혜보다 훨씬 더 쉽게 퍼진다. 프록터는 지식을 연구하는 학문인 인식론 epistemology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무지를 연구하는 학문을 ‘아그노톨로지 agnotology’라고 명명했다. 이 신조어는 아직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2016년 올해의 단어인 탈진실 post-truth과 관련이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이제는 각자 받은메일함에 뜨는 기사들과 소셜미디어에서 개인 맞춤으로 선별해 보여주는 기사들만 점점 읽다 보니 스스로 무지의 터널로 들어가기가 더욱더 쉬워졌다고 프록터는 말한다.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려면, 그것도 기꺼이 도전해 문제를 찾아내려면 무지를 의도적으로 키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의사와 환자의 과제는 모두 문제의 맥락을 살피고, 과학에서 마케팅을 분리하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찾아내서, 건강과 정상을 정의하거나 재정의하려는 사람들의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 그에 따라 스스로 정립된다면 몸과 관련된 정보의 맹습에 대처하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확고히 유지해 다른 사람들과 서로 생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설득력 있게 심지어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말인데...옮긴 문장이 정말이지 구리다…두번째 문장 한국말을 왜 저렇게 써…)

-가장 치명적인 질병과 상호 난폭한 학대의 근원에는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
(저기 학대 어쩌고 어뷰즈 번역이겠지 의학 관련이면 남용아닐까 진짜 흥미로운 책인데 번역이 조져놓은 느낌…)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다.” 이렇게 선언하면서 세계보건기구는 의료계가 새로운 시야를 갖도록 격려하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지역의 보건 의료 제도는 여전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에만 집중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그 제도는 이미 발병한 후에 그 질병을 치료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그런 관행에 대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우리는 여러 신호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그 신호들이 전달되면서 머리카락이 있으면 대부분 더 유리한 평가를 받는 시기에 머리가 벗어지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불안하고, 어떻게든 피하려 애써도 암에 걸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세월과 건강과 행복은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겉보기에 피상적인 부분, 그러니까 나와 남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쌓이고, 그다음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서로를 대하는 방식으로 축적된다.

-1922년에 쿨리는 이렇게 썼다. “자부심이나 수치심을 갖게 하는 동인은 단순히 자신에 대한 기계적 반사가 아니라, 귀속된 감정이자 타인의 마음에 비친 자기 모습을 상상한 결과다.” 쿨리는 타인이 내 세계의 일부일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이해에 아주 중요한 전부라는, 시대를 초월한 관념을 다시 대중화했다. 엄밀히 말하면, 개인들로 이루어진 인간 세상은 수조 개의 아주 작은 고착생물이 모여 있는 산호나 다름없다. 크기가 시침핀 머리만 한 고착생물은 바다에 홀로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함께 있으면 큰 배도 침몰시키는 산호초가 될 수 있다.

-한편 아하로노프는 성형수술에 관한 실존적 의문을 파고든다. 사람들은 왜 정상이 아닌 이상을 원할까? 왜 문신과 피어싱을 할까? “그건 다르고 싶은 욕망이에요. 독특하고 싶은 욕망이죠.” 아니면 정반대로, 그들이 모방하고 싶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문신 염료에 균이 있든 없든 간에 백혈구는 염료를 공격한다. 하지만 그것을 물리치지 못한다. 백혈구는 염료 덩어리를 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기랄, 더럽게 크네.” 결국, 우리 면역계는 그냥 싸움을 포기하고서 이 피부 침입자들과 같이 살아야 할 팔자구나 하면서 체념하고 만다. 문신은 반항과 개성뿐 아니라 체념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맨 정신으로 문신을 한 사람조차 때때로 그 일을 후회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충성심이 변했거나 사랑이 뜨거웠다가 식은 경우다. 미네소타주의 한 문신 제거 업체에 따르면, 문신할 때의 기본 원칙은 애인이나 배우자의 이름 또는 “그런 상대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기 위한 것”은 뭐든 절대 새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가 아는 바는 가려움증이 단순히 신경병성 증상이나 면역 문제, 상피세포의 장벽 문제뿐만 아니라, 아마도 이 모든 문제가 합쳐진 결과일 거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어떤 능력을 습득하는 동안 다른 것들을 배우는 능력은 잃게 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어렸을 때는 배우는 일이 아주 쉬운데 나중에는 매우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의 면역계는 시냅스 synapse•라는 나무의 가지치기를 담당하는 듯 보인다.

-코언에게는 ‘청각과민증 hyperacusis’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이 있다. 그 병에 걸리면 일상적 소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 증상은 ‘선택적 소음 과민 증후군’이라고도 일컫는 ‘미소포니아 misophonia(소리혐오증)’와 가끔 혼동된다. 코언은 미소포니아를 설명하면서 특정 소음, 특히 씹는 소리나 꼴깍꼴깍하는 소리처럼 몸에서 본능적으로 나는 소리들이 짜증만 일으키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피가 끓는 분노’를 유발한다고 얘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 소리가 ‘슬픔, 공황발작, 망설임, 인지력 상실, 몸이 근질근질하거나 몸에 뭔가 기어 다니는 느낌, 도망치거나 싸우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고 말한다.

-딘지스는 수면이 부족한 사람들을 음주 운전자에 빗댄다. 음주 운전자는 운전대를 잡으면서 자신이 누굴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술에 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잠이 부족해 가장 먼저 잃는 것 중 하나는 자기 인식이다. 수면량이 가장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그 영향이 가장 빨리 나타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비타민 꾸러미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거식증에 걸린 사람이나 트라우마를 겪은 후로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다. 학대 가정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도 영양소가 이것저것 많이 부족할 위험이 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종합비타민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고도 격하게 ‘아니요’다.

-남녀의 유두를 구별하는 요인은 심지어 그 아래의 유방 조직의 양도 아니다. 많은 남성이, 특히 비만인 경우에는 여성보다 그 양이 더 많다. 또한 법 집행관이 개인의 염색체를 보고서 누구의 유두가 여성이고 누구의 유두는 남성인지 판단할 수도 없다. 따라서 여성의 유두는 맥락의 문제다. 유두와 결합해 풍기문란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여성성을 인식하는 개념이다.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연구가 과연 어느 시점에 실제로 부지불식간에 인류의 종말을 재촉하게 될까?

-우리는 자신을 개체로 생각할 때만 죽는 존재가 된다. 이 말은 그냥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다. 우리의 생식세포는 실제로 무수한 후세대의 세포가 된다. 한 생물종으로서 우리는 더 많은 인간 세포를 (아기라는 형태로) 계속 무한정 생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언젠가는 살아 있지 않을 테지만 (내가 성적 짝을 찾았다는 가정 아래) 그 관계에서 탄생한 다른 세포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 한 완전체로서 인간의 몸은 바닷가재나 어쩌면 오브리드 그 레이처럼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불멸의 존재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몸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슬람교에는 장례에 대한 언명이 있다. 하지만 서구의 관습적인 방식에서 보이는 호화로움과는 정반대로, 시신을 수의로 감싸서 간소 한 소나무 관에 넣어 48시간 안에 매장한다. 도브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주요 종 교들의 매장 풍습 가운데 이 방식이 가장 지속 가능하다. 퇴폐주의와 방부 처리 는 기독교의 어떤 기록이나 교리 어디에도 규정돼 있지 않다. 그런 방식은 새로운 번영 국가인 미국의 전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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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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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2 마르그리트 뒤라스.

 

 

 70세의 뒤라스는 내가 태어나던 해에 ‘연인’을 써서 발표하고 상도 받았다어려서 팬시점이라고 불리는디자인 잡화를 잔뜩 팔던 곳에서 벽에 거는 영화 포스터들도 팔았다. 거기 내가 보지 않은 영화들, ‘프리윌리’( 이건 나중에 봤나), ‘베티 블루’그리고 ‘연인’의 소녀 얼굴도 있었을 것이다막연하게 야한 영화로 소문이 나고, 개그 프로그램에서 하수빈과 최양락이 패러디하는 장면이나 봤을  동명의 소설 원작이 있다는    후에나 알았다.

 

 집에 소설책 ‘연인’은 엄마가  놓아서 오래도록 있었는데이상하게 나는 에둘러서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여름밤   반’아직 대가가 되지 못한 젊은 뒤라스의 소설을 먼저 보고 별로네 별로야 하며 혹평을 남겼다.

 

 왠지 ‘연인’ 읽고 나면 인생이 달라질  같아...막연하게 생각하고 멀리하다 어느  읽어야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그냥 감상적인 생각일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나이가 어린 여자라고 욕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나이든다고 해서 사랑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도 않는다누군가를 만나고한동안 친밀함을 느끼며 온몸이 지치고 정신이 나가도록 섹스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별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그것이  사람의 인생을 망치지도더럽히지도특별하게 바꾸지 않을 수도 있는데그냥 주변의 사람들이 여자의 섹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본인마저 받아들인 탓에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거나 더럽혀졌다고 여기거나 완전히 바꿔 버리는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사랑하는  순간에도 나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며어쩔  모르고 마냥 사랑했었다는 사실은 특별한 일이다. 오래 기억에 남아 남은 삶을 살아갈 힘이 된다모두가 그런 힘을 갖지는 못한다그러니까 그들의 사랑을  모르는 바깥 사람들이 나이나 인종빈부 차이를 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불순하고 비도덕한 무언가라고 비웃고 비난하고 비하하는  그 사라질 일들이다.

 

 뒤라스는 그렇게 오래 남은 것을 썼고죽은 뒤에도 남았다. 내가 읽었다.

 


+ 책에서 연보 마지막이   들어가서 뒤라스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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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먹는고란 2023-10-22 19: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뒤라스는 두 번 죽는다.

반유행열반인 2023-10-22 20:33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뒤라스는 두 번 이상 사랑한다. 살아난다. ㅎㅎㅎ 저는 한 번만 읽으려고요...

얄라알라 2023-10-22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ㅋㅋㅋ출판사의 실수를 언어 예술로 승화시켜주시는 우리 열반인님!!!

작가가 70세에 낸 책이라는 걸 미리 알고 읽었다면 좀 다른 느낌이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유혹과 끌림의 한 가운데서 쓴 책 같은데..^^



반유행열반인 2023-10-22 20:35   좋아요 1 | URL
작가가 삼사십대에 쓴 덜 익은 거라 해도 이전에 읽은 책들 후하게 안 봐지더라구요 ㅋㅋㅋ그러다 이거 읽고 이제 그만 ㅋㅋ가장 괜찮은 작품에서 멈추고 그만 투덜대자 했습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3-10-23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시인으로 변신하는 열반인님~!!
프리 윌리하면 마이클 잭슨 생각이 납니다 ㅋㅋㅋ

뒤라스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렵더라구요. 그나마 <연인>이 괜찮은 편이던데 ㅋ

반유행열반인 2023-10-23 19:52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소설만 주로 읽으시다보니 시인이 뭔지 잠시 까먹으신 거죠? ㅋㅋㅋㅋㅋ
뒤라스는 그만 읽으려구요…어렵다기 보다 뭔가 맞을 듯 안 맞을 듯 안 맞는게 더 많아요 ㅋㅋㅋ사는 꼬라지(?)는 비슷한데 글쓰는 방식이나 현실 인식은 좀 많이 다른 스타일이라 흥미가 급 저하 됨요 ㅋㅋㅋㅋ

은오 2023-10-28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도 되겠군요!! 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0-28 08:09   좋아요 1 | URL
제가 은오님 생각해서 밑줄도 안 긋고 스포도 안 하고 섬세하게 선행(착할 선 아님 먼저 선임?)했다 아입니꺼.

은오 2023-10-28 08:14   좋아요 1 | URL
😳......
설레버렸다...... 저를 위한 독후감?!
😳😳😳😳😳😳😳😳😳😳
어쩐지 유열님 독후감치고 짧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