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7 엄마가 사 놓은 문예지의 껍데기만 보던 내가 소설 잡지를 내 돈 주고 보다니, 천지개벽이다. 광고에 화보 마냥 올라온 윤이형 사진, 그리고 한 번 씩 읽어본 작가들 이름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넘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고 말았다. 한국문학덕력게이지 상승 중... 윤이형 인터뷰는 잡지를 산 큰 목적이기도 하고 잘 읽긴 했는데 심란해지기도 했다. 내 친구가 우스개삼아 그 잡지, 얼굴 못난 사람은 못 실린다 했던 건 차치하더라도. 비주류인 양 하는 사람들보다 더 비주류, 주변부가 있고, 그 주변부보다 더 주변부가 있고, 아싸의 아싸가 있고... 태양계는 커녕 우리 은하 구석탱이 아싸들이 보기에 핵인싸인 작가들을 보면 이번 생은 글렀어...나는 그냥 계속 아웃사이더일거야...왜 자꾸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신예작가 소설들, 기성 작가 연재물들, 서평, 번역물, 건진 것도 있고 실망스러운 작품도 있었다. 아직 덕력이 부족한 건지 문학애독자가 못된 건지 앞으로는 잡지 말고 그냥 단행본 소설집이나 장편소설을 읽기로 했다.
-20190325 김은성샘플북을 보고 재미있어서 사 버렸다. 나보다도 우리 엄마가 한 권씩 앞서 봤는데 만화책은 안 보던 분이 열심히도 봤다. 우리 외할머니랑 놋새 복동녀 할머니가 참 비슷하다고 했다. 이북 사투리도 읽는 재미가 있고 할머니 알던 이야기 하는 게 소소한 것들도 그냥 너무 웃겼다. 사실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개인의 아픈 역사들도 넘쳐난다. 배우자에게 버림 받고 배우자가 외도하고 헤어지고 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아이를 잃고 아이가 아프고 자신이 아프고 도둑질을 당하고 남편이 노름과 술에 빠지고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안 벌어오고 가난에 시달리고 그렇다. 사는 게 다 그렇게 고통인가 모르겠다. 그러다가 순간순간 소소한 즐거움들이 위로가 되고 또 힘든 날은 길다. 결국 자신의 아픔을 직면하기 위해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작가. 방황이 길었대도 나이 먹어서래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이해하고 그리고 책을 내고 한 것이 다행이고 잘 됐다 싶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보고 나니 말투 글투가 자꾸 노인네 같아진다. 하하하
-20190321 정용준정용준을 읽어 보고 싶어 읽고 있다. 첫 인상은 하나 하나 힘들게 썼겠구나. 밤에 쓰는구나. 약간 어설프면서도 더듬대는 것 같으면서도 그런데 그게 어떤 정서가 있구나. 고민이 많았겠구나. 아주 조금 몇 프로 부족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뭐 또 그냥 그런대로 읽는 맛은 있다. 나중에 나온 건 조금 더 매끈해졌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반복되는 기시감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싫으면서도 좋으면서도 불편하면서도 편하다. 다 읽고 난 소감은 세상에 개 같은 아버지 결국 죽어갈 아버지는 왜 이리 많고 그 아래 망가진 자식은 또 왜 이리 많고 이미 다 써 버린 소설은 왜 또 많고 그런데 또 그렇게 잘 쓰면 어떡하냐. 몇 가지는 김기덕 영화 같은 걸 보는 것 같았고 그런데 이쪽이 훨씬 더 착한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시 하나는 발췌 귀찮아 하는 내가 베끼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용준 팬 될 것 같다. 하하하. 미드윈터어제 죽은 나는 어딘가에 도착해 눈을 떴다. 이곳이 천국인가 지옥인가. 삶에 대한 확신과 연구가 부족했던 나는 내 영혼이 어떻게 해석될지 알 수 없어 이곳을 판단할 수 없다. 나는 걷는다. 집 근처를 산책하는 사람처럼 걷는다. 낯선 역에 도착한 여행자처럼 걷는다. 오랜 투병으로 지친 병자처럼 걷는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도시에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 떠오른다. 도시는 멸망의 기운을 내뿜으며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몰락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녹는 건물과 크고 작은 거리들. 나는 오늘 죽는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혹은 자신감 있게 도시를 걷는다. 도시는 비어 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도망갔거나 모두 죽었으리라.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경계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는 마녀가 앙상한 팔을 휘저으며 새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언덕에 십자가처럼 서서 도시를 바라보는 하얀 곰들. 어느새 나는 아주 작은 아이처럼 작게 녹아 울면서 걷고 있다. 빈 집의 깨끗한 창문 너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태양이 지지 않아 이토록 환한 낮에 내 얼굴을 양초처럼 모두 녹아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는 둥근 바위가 된다. 눈 없는 얼굴로 울면 온몸은 눈물로 채워지네. 빗물이 고인 오래된 수조처럼 오늘 죽은 자들은 영원하고 아름다워. 한낮. 한밤. 그리고 춥고 어두운 한겨울에.474번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미드윈터. 오늘 죽는 사람처럼개들이국의 소년안부내려새들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네
-20190320 정세랑_현정 배명훈_폭군으로서 윤이형_역사 김 솔_열일곱 번째 프러포즈 최정화_17번 테이블 정용준_두 남자 김금희_17/24 김성중_17호실의 오그반제 한은형_도미노 손보미_무단 침입한 고양이들 박애진_너와 나의 시간 정지돈_바다의 왕은 장 팽르베 오한기_불안에 대해 이상우_제17화: 일기예보 박하익_왕따를 위한 또래 상담 곽재식_단수신(檀樹神) 박솔뫼_자전거를 잘 탄다 모아 놓은 이북이 많은데 굳이 무료로 받은 엽편소설집을 꺼냈다. 알라딘이 17주년 기념으로 17명 작가에게 17에 대해 써 달라고 해서 모은 책이었다. 이미 읽어본 작가가 8명이나 되는데 왠지 한국소설 분야의 덕력 게이지가 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나머지 9명 작가들도 괜찮을까, 새로운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읽었다. 짧은 분량인데도 작가 나름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이 꽤 있었다. 좋았던 것도 있고 이게 뭐야 하는 것도 있었다. 짧게 쓴 글에도 장단점이 드러나고 작가의 목소리가 묻어나서 신기했다. 샘플러(맛뵈기, 카탈로그)의 의미라면 나름 성공적인 기획 같다.
-20190316 이승우 2017년에 나온 이승우의 소설집.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다. 다 읽고 편집자에 김봉곤이 있어서 오우, 했다. 많은 것을 의심하고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말의 뜻이나 기억이나 감정이나 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 주변을 쪼고 쪼으고 그러다가 결국 확신할 수 없지만 그나마 짚을 수 있는 곳까지 짚고, 그런 문체는 사실 술술 읽히지 않지만 작가의 특성을 만들고도 있었다. 제일 좋았던 소설은 윔블던, 김태호였다. 그냥 읽고 나니 마음에 들었다. 오랫동안 써 왔고 지금까지 쓰고 있는 사람의 여전한 모습은 꽤나 존경스럽다. 모르는 사람 …… 『문학과사회』 2015년 가을호 사라진 아버지의 행방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 아들. 복숭아 향기 …… 『문학동네』 2014년 봄호 역시 부재중이고 알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해, 어머니와 그녀가 머물던 m시에 대해 외삼촌을 통해 들으며 알게된, 왜 좋아하는 과일을 물으면 아무 생각 없이 복숭아라고 답하는지에 대한 실마리. 윔블던, 김태호 …… 『릿터Littor』 2017년 2/3월호 자서전을 대필하는 화자가 듣게 된 김태호를 찾는 회장의 과거 고백. 강의 …… 『세계의문학』 2014년 겨울호 금융 자본주의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살인자들이 아버지를 죽인 것에 분개하며 대항하려다 똑같이 굴복하는 아들. 찰스 …… 『한국문학』 2017년 상반기호 대학교수 철수와 인도네시아인 찰스aka철수. 넘어가지 않습니다 …… 『현대문학』 2016년 1월호 바로 앞 이야기와 약간 짝을 이루는, 와이파이를 얻어 쓰다 오해 받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과 문 열기. 신의 말을 듣다 …… 『창작과비평』 2015년 봄호 자신의 과거의 과오에 대한 부끄러움, 거기서 뜬금 없이 신의 소리 퍼 먹이는 건 그러려니 읽을 수도 있지만 잘 안 맞는 부분이었다. 안정한 하루 …… 『현대문학』 2017년 3월호 누이의 죽음과 황병수에 대한 분노와 장철수와 장필수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