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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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2 김금희.

앙골아주.

김금희의 소설집을 처음 본 게 겨우 열세 달 전이다. 그때 반월이라는 소설을 보고 생각했다. 이제 편지를 쓰는 사람은 소설 속에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선글라스 쓰고 섬을 누비며 우는 주인공을 보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이후 나는 무수히 많은 편지를 써 보내거나 보내지 않았다. 눈병에 걸려 저절로 누런 눈물이 줄줄 흐르고 햇볕에 눈이 시어서 선글라스를 샀다. 정작 선글라스를 벗을 무렵 울 일이 많았는데, 렌즈에 소금물이 묻은 채 굳으면 닦아내기 영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예약 구매를 해 놓고 한참 만에 받았다. 책 표지 뒷날개에 소개된 김금희의 책을 일 년 간 다 봤다.
책 앞머리를 읽을 때, 얇게 썬 동치미 한 조각 씹어 먹는 것 마냥 속이 시원했다. 아이참, 이제 나는 단문병에 걸렸나 봐. 물론 내내 단문은 아니고 소설이 진행될수록 생각도 기억도 많아지고 문장도 길어진다. 쉽게 읽히는 문장이 결코 쉽게 쓰이지 않는 걸 안다. 쉽지 않은 겨울과 봄과 여름을 보내며 그럼에도 쉬지 않고 쓰는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몰래 구경하러 가곤 했다. 뭔가 이렇게 쉽게 받아 읽어도 되나 싶어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자인 이영초롱은 어린 시절 고모가 의사로 일하는 고고리섬과 제주 본섬에서 몇 년 간을 보냈다. “우리집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할망신에게 인사하며 해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복자와 친해졌다.
어릴 때 친했던 친구들 얼굴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 아이들과 멀어진 이유나 과정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영초롱은 복자와 멀어진 일을 뚜렷이 알고 있다. 이선고모 집에 임공이 자주 온다는 걸 감춰달라는 복자의 부탁을 어기고 영초롱은 어른들에게 사실대로 말한다. 속이 상한 복자는 영초롱이 고모가 이규정에게 쓴 편지를 훔쳐봤다고 고모에게 이른다. 써놓고 봐도, 저들이 돌아볼 때도 정말 그게 별일이었나, 싶었을 일이다. 그러나 어떤 관계들은 작은 어그러짐과 틀어짐으로도 되돌리지 못하고 저만큼 멀어진다.
영초롱은 복자와 사이가 나빠진 뒤 복자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반복해서 썼다. 고오세는 영초롱이 뭍으로 떠난 뒤 영초롱에게 닿지 않을 잘못된 주소로 열 번 넘게 편지를 부쳤다. 고모는 감옥에 있는 규정에게 답장 받지 못하는 편지를 오래도록 부치다 말다 했다. 그런 부분을 읽을 때마다 뜬금없이 눈물이 핑핑 거렸다.
부모는 망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판사가 된 영초롱은 재판 중 욕을 한 뒤 제주도로 발령(또는 좌천)된다. 주인공의 직업을 판사로 하면 쓰기 참 어려웠을 것 같은데, 쉬운 길 택하지 않은 김금희가 더 좋았다. 더구나 재판 중 욕하는 판사라니. 판타지에 가깝지만 이런 거 난 왜 좋지. 고고리섬에 돌아온 영초롱은 어릴 때 자신을 좋아했던 고오세, 그리고 복자와 재회한다.
제주는 4.3.항쟁으로 많은 사람의 죽음을 묻은 섬이다. 그곳 의료기관에 일하던 간호사들이 안전 장치 없이 독한 약을 갈고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초과근무를 하다 유산을 하거나 아픈 아이를 낳았다. 복자도 그 중 하나가 되었고, 영초롱이 관련 재판을 맡게 되었다. 가족과 어려서 떨어진 경험 때문인가, 이방인처럼 섬 사람들 사이로 녹아들지 못한 때문인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런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초롱이는 고집도 세고 말도 거르지 않고 막 던지고 마주한 사람의 진의를 믿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앞의 사람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 여기며 서러워하고 막상 자기 속을 이야기해야 할 때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에는 봉쇄된 땅에 가족도, 복자도, 오세도, 옛 애인 윤호도 없이 영초롱이 홀로 남아있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고립을 그대로 보여줘서 서글픈 게 한 가지 이유 같다. 영초롱이가 끝까지 가지 못하고 잠들듯 쉬어야 했던 것,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힘을 멀리서 지켜보는 일 때문인 것도 같다. 모든 게 내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 내려놓으라고 타이르는 말처럼 들렸다.

제주의 너무 센 바람과, 돌덩이 해안을 때리는 거친 파도와, 들불 번지는 오름과, 다른 세상 말 같으면서도 뜻이 알아지는 제주 사람들의 말과, 딱새우와 꽁치김밥과 다금바리를 파는 식당들과, 노란 유채밭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기자기한 스낵바 같은 걸 제주에 가 본지 20년 된 내게 선물처럼 건네준 장면들이 좋았다. 점점 잘 쓰게될 것 같다고, 기대하고 믿으며 기다린 작가가 오랜만에 편지처럼 보내온 소설을 나는 넙죽넙죽 잘 받아 먹었다. 내게도 흰 개에게 눈썹을 그려주고 농담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그래서 복자에게, 하고 편지를 쓸 수 있었으면 좋았겠구나.

+밑줄긋기. 나도 모르게 울멍울멍 거린 부분만 옮겨왔다.
-복자에게. 규정에게. 영초롱에게. 또 누군가에게. 나는 이제 편지를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건 마음을 키울 때나 유용하지 그러지 않아야 할 때는 섣부르고 끝없는 자기대화가 자기비하와 자격지심만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담담한 마음으로 다정한 안부를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왜 뭔가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아파?
왜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아파?
나는 일기장에 이런 말들을 쓰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그러다 12월에 접어들어서부터는 복자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쓰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 고개를 숙이면 눈물이 너무 쉽게 나는 것 같아서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고모의 전동타자기로 쓰기로 했다. 가장 먼저 자판으로 친 말도 복자에게, 였고 가장 빈번하게 쓴 말도 복자에게, 였다.
복자에게,
복자야 안녕. 오늘 붓글씨 수업은 잘했니? 오늘 너가 벼루를 가져오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빌려주고 싶었는데 네 짝이 빌려주었더라.
복자에게,
복자야 안녕, 성탄절에 요기 해왕선사에서 선물을 준다는데 거기를 갈 생각이 있니? 그런데 왜 절에서 성탄절에 선물을 준다는 것인지 아니? 정말 웃기고 웃긴 농담 같지.
복자야 안녕, 가게 될 중학교는 마음에 드니? 너가 엄마가 있는 제주시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어서 기뻐, 이제 엠비시 공개방송 매일 갈 수 있겠어.
복자야, 안녕?
복자에게,
복자야, 할망이 너가 잘 안 온다고 뭐라 하시더라.
제순이는 이제 눈썹이 없어, 다 지워지고 안 특별해졌어.
복자야,
복자야, 안녕,
복자에게,
복자야, 나는 이제 서울로 갈 것 같아.
그 많은 편지들은 부쳐지지 않고 모두 폐기되었다.’(100-101)

-오세가 영초롱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 나는 너무 아팠다.

“그래. 세상이 그럴 수 있지. 세상이 그렇게 보이고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영초롱아. 너가 보는 것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했으면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에 불과하다고 네가 내게 멋진 말을 알려주지 않았니. 그렇다면 법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면면도 최소한에 불과한 거야. 회사는 자본이니까 너가 말한 대로 흘러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란 사람도 그렇게 흘러간다고 너가 말할 수 있니? 주민들 중에 이참에 땅이고 집이고 다 비싸게 팔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섬을 지키기 위해 연륙교 착공을 힘 모아 저지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거니? 몸 지지러 갔다가도 섬의 고넹이돌을 단번에 알아본 그 마음은 어떻게, 싹 무시하면 되는 일이니? 너는 최소한의 도덕을 다루지만 나에게는 너가 최선의 사람이라서 나는 늘 너가 좋았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한번 기울어진 채로 시작된 관계는 복구가 되지 않을지도.”(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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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2 1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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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2 18: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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