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보낸기쁨의편지 #고한율지음 #세움북스 #복음에합당한삶 #빌립보서강해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중에 하나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빌립보서에는 바울이 기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빌립보교회 성도를 위해서 항상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도 감사로 사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데 일상생활속에서의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일을 전심을 다해 바쳤는데 바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감옥생활이었다. 행복을 주기는 커녕 언제 나올지 모르는 힘들고 막막한 고난의 시간에 바울은 어떻게 했는가 눈여겨보게 되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처럼 같은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전에는 힘든일이 나에게 생기면 푸념과 원망이 뒤섞여서 죈종일 멘붕상태로 복귀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왜 나에게 이런일이 생길까. 푸념과 대상없는 원망과 머릿속에 저기 깊고 깊은 우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쪼그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었다. 비록 고난의 상황에 놓여있을지라도 나의 삶 가운데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긴 어둠에서 밝은 빛으로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았는가? 그리고 그 속에 여러일들이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 긍휼과 교제가 너무 귀하다. 하나님안에서 하나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나.-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장3절- 겸손의 의미를 알아야하는데 "성경적 겸손"을 탑재해야 한다. 스스로 낮추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최근 다툼이 있어서 힘이 빠져있는 상태였는데 나에게는 어느누구보다 나를 지켜주시고 나의 길이 가시밭길이던 꽃길이던 항상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다. 나를 더 귀하게 여기시니 이럴수록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만큼 나도 나를 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평안함을 얻었다. 바울이 성도하나하나가 이단에 현혹되지 않으려 힘써야 한다. 성도의 탈을 쓰고 교묘하게 침투하여 모략을 펼치기도 한다. 정체를 숨긴 채 적극적인 포교로 혼돈을 주기도 한다. 교묘히 침투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들어놓다가 한 가정을 철저히 무너트리며 그 주변까지 어지럽혀 놓는 과정을 보면서 이단에 대해 더욱 알려힘쓰고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 기본 교리나 신앙의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단이나 사이비는 갑자기 불현 듯 불시에 마음이 약해져 있을때에 다가온다. 믿음의 울타리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저자의 물음에 한치의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했던 것과 같을 때에 사랑이 많으신 분이구나 그꼈다.< 교회 다니는 우리는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느끼는가? > 프로그램이 세분화되어 있고 사람의 입맛에 맞게 맞춰진 교회? 전혀 아니다. 서로를 품어주고 서로 세워주며 사랑으로 품는 교회가 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따지기보다는 서로의 형편에 맞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서로 채워가려고 하고 그 안에서 이루고자하는 것을 힘쓰며 주안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P.339 "어떻게 목사가, 어떻게 장로가, 어떻게 권사가 저럴 수 있어"라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서로 불쌍히 여길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언제고 항상 강할 수만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긍휼의 마음으로 사소한 것에 너무 날을 세우지 말고 싸움을 부채질하는 사람이 아닌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어야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궁금해도 그 호기심과 궁금증을 누르려고 하는 이유는 부채질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절제와 참음, 그리고 기다림을 하려고 한다. "어떻게 저래?"라고 하기전에 왜 그랬는지 한번 더 사랑으로 들여다봐주길. 바울이 말하는 관용은 자신이 움켜진 것에 염려하지 않는다. 내것이라고 움겨쥐고 욕심을 부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바울이 말하는 관용의 자세를 알며 모든것에 영원이 없음을 생각하며 관용을 베푸는 자가 되자. P.364 바울은 두가지, 즉 염려하지 않는 것과 기도, 특히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감사함을, 그리고 염려를 내려놓고 기도로 구하는 사람이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