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헤세지음 #반석출판사 고전의 재독의 즐거움이 있다. 흘려보냈던 문장들이 다시 살아나고 과거 보았던 시점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데미안은 현시점으로 세번째 읽고 있다. 딱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데미안에서 찾아보고 있다. 싱클레어처럼 굳건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중에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 내 속을 들여다본듯한 문장들을 보며 설레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며 헤르만 헤세가 이 소설을 쓰며 느꼈던 감정이 무언가 알 수 있기도 한 시간이 되기도 했다. 살면서 느꼈던 것을 이렇게 축약된 한줄로 되다니.P.10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다 이해는 하지만 내가 그 자신이 될 수 없는.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읽고 에세이를 읽게 되는 것 같다. 싱클레어의 삶이 달라질때마다 다른 세계와의 이동으로 예전의 자신이 사라진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는 행동과 다른 세계에서의 적응을 하며 예전의 순수했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속상해했다. 후회와는 또다른 느낌일까. 예전의 자신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어색함과 선한 사람에서 악한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자신의 모습에 낯설게만 느껴지는 싱클레어에게서 완전한 자아가 생성되기전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싱클레어가 커가면서 크로머라는 큰 벽을 부딪히며 소심한 자아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밝은 세계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어두운 세계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란 여간 어렵다는 것이다. 한번 깊은 악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면 나오기는 어렵다. 크로머의 세계와 데미안의 세계는 나의 삶속에도 누구나의 삶속에도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며 살게 되면 얼마나 메마르고 피폐해지고 고통을 받는가 쉽고 빠른 길은 없고 그만큼의 댓가는 꼭 치루는게 인지상정이다. 어쩔 수 없이 그 곳에 빠져들더라도 빛처럼 다가 온 데미안은 밝은 세계로 이끌면서 삶의 주체가 누구가 되는지 일깨워주기도 했다. 청소년기에 나는 어땠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말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 말그대로 사춘기라 과장해서 말하면 성격이 그때그때 다르게 변하기도 했다. 하루는 너무 밝은 나, 또 하루는 소심한 나, 그 다음날은 있는 듯 없는 듯 쥐죽은 듯이 존재감없는 나로 살았다. 어떤것이 진짜 나인가 찾는 여정이 청소년기였다고 하고 싶다. 성격이나 자아생성이 되는 계기가 아니어서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나이. 나는 그랬다. 여러 세계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수많은 과정과 숱한 시행착오끝에 현재의 내가 되었다. 옛시절보다 오래산다고 하면 아직 반백년이 더 남았는데 나는 어떤 세계의 문을 열고 나아갈까는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살기 나름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는 데미안을 보며 좀 더 자유롭게 인물들을 풀이해가게 싱클레어에게 도움을 준다. 내면의 자아를 찾게 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데미안을 현재 네번째 읽고 있나보다. 이제 조금 그 깊이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인생의 길잡이인 데미안은 누구일까. 내 삶을 누구에게 이해시키기보다 내가 중심이 되고 나를 찾는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느끼게 된 시점에서의 이 책은 나에게 나를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성인聖人이 될 수는 없지만 나를 찾고 커나가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