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특사이준과아브라함카이퍼의만남 #김정기지음 #세움북스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이 3인은 고종이 1907년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 2회 만국평화회의에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일본에 의해 강제체결된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며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해 호소한 외교활동의 일환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는 1899년, 1907년 두차례열린 국제평화회담이다. 목차로는 1부 이준 열사의 인생, 2부 아브라함 카이퍼와 그의 정당 '반혁명당', 3부 더 스탄다르트지에 보도된 이준과 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헤이그에 있는 '이준 평화 박물관'에서 이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되어 하나씩 하나씩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중에 네덜란드 내각 총리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활동시기가 겹친 것에서 그 시기에 두 사람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준이 비밀결사 조직의 일원이 되기전까지 이준의 일생을 들여다보며 우상시되고 영웅시되는 관점을 내려놓고 근거있는 자료로 이준의 일대기를 들여다보았다. 이준은 1904년 3월에 감옥에 갇히며 기독교 서적을 접하게 되며 개종하게 된다. 이준이 전덕기목사와 스크랜턴선교사를 만나게 되면서 독립운동의 구심점인 상동교회 청년회를 참여하게 되며 비밀결사조직으로 이어져갔다.P.124 이 조직은 독립협회의 토론문화를 이어 갔고, 이 토론 문화는 독립 운동의 핵심이었다. 카이퍼의 연설과 강연에 관한 책을 보며 감명깊었었다. 이런 카이퍼가 한국을 만국평화회의에 왜 초청을 하는가. 초청되기전까지는 한국에 관해 아는바가 없었지만 '더 스탄다르트지'의 보도로 독립적인 국가의 하나로 보도가 되기도 했다. 한 나라가 네덜란드의 카이퍼의 신문보도로 카테고리가 "한국"으로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며 한국의 위치가 어디 속국이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닌 한 나라로 인정했던 것이다. 대중에게 알려지는 신문보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그의 신문이 헤이그 특사의 이위종과의 두번의 만남으로 큰 변화가 이렀다. 헤이그 특사의 방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태도가 바뀌었지만 조금 더 빠른 시일에 들었다면 카이퍼와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더 급진적이고 발전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 사실이다. 헤이그특사에 대한 자료나 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기도 하다. 알음알음 흘려들은 정보가 아니라 어려운 자료, 귀한 자료들을 한데 모아 수집하고 추려서 세상에 내놓기까지 한 수고가 헛되지 않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