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품절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상대방을 낯선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좋건 싫건 간에 어떤 유대 관계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나쉬는 그런 생각 뒤에 숨은 잠재적인 함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 방황하는 여린 젊은이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83쪽

참으로 이상하게도 나쉬는 그 극적인 역전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포지의 슬럼프로 인해 오히려 기운이 솟는듯한 느낌이어서, 마치 그 젊은이가 더 좌절하고 당황해 할수록 그의 자신감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내내 추구해 온 것이 바로 그런 종류의 위기이기라도 한 것처럼.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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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애인
가브리엘 마츠네프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절판


애인의 새로운 거짓말을 발견할 때마다, 범죄를 수사하면서 새로운 단서를 추가로 찾아내는 검사처럼 기뻐했고, 고고학 탐사지에서 동물의 뼈대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뼛조각을 찾은 고고학자처럼 좋아했다. 엘리자베스가 감추고 있던 거짓의 지층들이 점점 밝혀졌고, 무대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했던 짙은 화장을 공연이 끝난 후에 분장실에서 지우는 여배우처럼 얼굴 본바탕과, 아름답게 꾸민 눈, 위선적인 표정, 예쁜 거짓말쟁이의 입술이 드러났다.
-109-110쪽

그녀가 현실을 부정하는 경이로운 능력을 지녔으며, 만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명확한 선’이란 것을 극도로 혐오하며, 불명확한 것을 끈질기게 좋아하는 취미를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37쪽

그가 사랑하는 로마인들의 불안감에 찬 질투를 거울 삼아 자신의 질투를 세련되게 다듬었다. 그렇게 자신의 질투를 이상적이고 마취 상태인 영역으로 접어들게 함으로써 그의 고통은 정화되고 변모되었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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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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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렸을 적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상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을 따서 한 입 베어 물고 싶다는 상상도! 파아란 하늘과 하이얀 구름 속에서 달콤한 상상은 끝이 없이 이어지곤 했다. 어린 시절, 하늘은 끝없는 상상의 원천이었다. 구름빵은 그런 달콤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 한 번 맛보고 싶은 달콤한 상상이 한 권의 달콤한 책으로 만들어졌다. 하얀 구름이 맛있게 구워져 한 권의 그림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구름빵을 펼치면 구름빵의 달콤한 냄새가 솔솔 나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엄마는 아이들이 따온 구름을 반죽해 빵을 굽는다. 맛있게 구워진 빵을 먹은 아이들이 구름처럼 둥실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회사에 가느라 아침을 먹지 못한 아빠를 위해 빵을 가지고 날아오른다. 비좁은 버스 안에 있던 아빠는 구름빵을 먹고 회사로 날아가게 된다.

구름을 가지고 빵을 만든다는 상상도 재밌지만 그걸 먹으면 구름처럼 둥실 떠오르게 된다는 상상 또한 너무나 멋지다.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시킬 만큼 멋진 상상이다. 정말 구름을 따다가 빵을 구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엉뚱한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게다가 회사 때문에 아침을 거른 아빠를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나 따뜻하다. 맛있는 빵을 구워주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아빠를 생각하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들어가 있어 구름빵에선 더 달콤한 맛이 날 것만 같다. 정말 꼭 한 번 맛보고 싶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구름에 대한 멋진 꿈을 만들어줄 수 있는 그림책, <구름빵>은 그림 또한 너무 멋지다. 종이로 만들어서 사진으로 찍은 듯한데 사실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멋을 느끼게 한다. 종이로 만들었는데도 어쩜 그렇게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말 멋지다! 비오는 날의 흐릿하면서도 아릿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고 구름빵의 느낌도 섬세하게 잘 표현했다. 2005년 볼로냐 국제도서전 픽션 부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힌 작품이라고 하니 독특한 그림에서도 확인받은 그림책인 것이다. 

이 책은 사랑스러운 조카에게 선물해준 책인데 조카가 읽으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이제 조카에게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물으면 <구름빵>이라고 대답한다. 구름빵 만들어줘, 라고 귀여운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끝말잇기를 하다가도 구름빵을 외칠 정도니 구름빵의 달콤함이 아이에게도 깊이 각인되었나 보다.

아이의 달콤한 상상력을 만족시켜 준 그림책, <구름빵>. 정말 달콤하고 맛나는 그림책이다. 그 상상력의 달콤한 맛을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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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려도 괜찮아
마키타 신지 지음,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유문조 옮김 / 토토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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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보면, 초등학생 때 발표하기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반 아이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내 생각을 말할 때의 그 떨림이란! 더군다나 선생님도 지켜보고 있으니 그 떨림은 배가 된다. 물론 가장 두려운 건 내가 말한 게 엉뚱한 답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손을 들려고 하다가도 금세 움츠려들곤 손을 내려놓곤 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이 책을 알게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이렇게 친절하게 틀려도 괜찮아를 외쳐주는 책을 만났더라면 나는 답에 자신있든 없든 손부터 들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에게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책이다. 틀려도 괜찮으니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책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정답을 말하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고. 틀려도 괜찮다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사실, 학교라는 곳이 좀 경직된 분위기이다 보니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 수 있다.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활발하게 말하던 아이들도 학교라는 틀에 갇히면 소극적이 되기 쉽다. 그런 경우 이 책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적극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틀려도 괜찮다고, 무슨 말이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아이들과 이야기해보면, '괜찮다'는 말에 금세 씩씩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니 계속해서 '틀려도 괜찮아'라고 얘기해주는 이 책의 효과는 아주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도록 기본 환경을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기본 환경을 만들어주면 이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활발히 의사 표현을 하는데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그림책이라 그런지 그림도 조금 만화틱하지만 인물들이 참 친근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내용도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틀려도 괜찮아"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니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틀려도 괜찮으니 나도 한 번 발표해볼까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 것 같다.   

정답만을 말하는 데 익숙해지기 전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읽어준다면 아이는 미리부터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틀려도 괜찮아>는 아이가 조금 더 활발한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읽히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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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절판


어디서인가 채소 삶는 냄새가 났다. 뭘 만드는 걸까. 카레라이스일까, 스튜일까. 나는 이런 냄새를 맡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차분해진다. 이런 감상적인 냄새를 알고 있는 인간이라면 허무라는 말 따위는 절대 사용하지 않을 거다. -37쪽

마음의 아픔도 위대하지만 몸의 아픔은 보다 완고하다. 존재감이 있다. 그런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사유에 몸을 맡기는 인간을 만나면 나는 무조건 존경해버리고 만다. -45쪽

만일 진짜로 그가 시차 조정을 할 수 없는 일생을 보냈다면, 그건 과연 어떤 인생이었을까. 단 한 시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그 기분은 어떤 것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공백의 시간. 어쩌면 그것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고독과의 싸움이 아닐까.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이 투명 인간이 돼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136-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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