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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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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불행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을 때면 불행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도쿄타워에서도 에쿠니 가오리식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어떻게 해서 사랑에 빠져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다만, 현재 ‘사랑에 빠져들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사랑에 빠져들었다는 것, 빠져나올 수 없는 그 곳으로 이미 깊숙이 빠져들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사랑에 도취되어 있기에 행복하고 사랑에서 빠져 나올 수 없기에 불행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사랑에 빠져든 그 불행한 행복을 보여준다. 나이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스무 살 남자와 마흔 살 여자의 사랑. 내가 주목하는 것은 스무 살과 마흔 살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다. 사랑에 빠진 자의 고통이다.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오직 그녀와 함께 있을 때만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 바로 토오루이다. 스무 살 남자, 토오루.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사랑 그 자체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나이에.

마흔 살 여자. 시후미. 몇 번의 사랑이 지나갔을, 사랑이 사랑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나이의 여자.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든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유혹에 빠져든다. 예정되어 있는 끝을 알고 있고 남겨질 상처 또한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굴복한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차분한 그녀의 모습들이 더욱 짙은 사랑의 무늬를 남겨 놓는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스무 살 남자는 마흔 살 여자의 과거를, 마흔 살 여자는 스무 살 남자의 미래를. 결코 만날 수 없는 과거와 미래 속에 사랑이 엇갈린다. 왜 조금 더 일찍 남자가 태어나지 못한 걸까. 왜 조금 더 늦게 여자가 태어나지 못한 걸까. 사랑은 시간의 방향과도 같은 것이라고, 에쿠니 가오리가 말하는 듯하다. 결국 사랑은 방향의 문제라고.

도쿄타워 속에 나오는 사랑의 무늬와 빛깔은 다양하다. 코우지와 키미코의 사랑, 코우지와 유리의 사랑, 그리고 시후미와 토오루의 사랑.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때로는 낯설고 특이하다.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때로는 탐욕적이고 거칠다. 서로를 원하지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키미코가 코우지를 원하면서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코우지가 키미코를 원하면서도 정작 필요할 때 있어주지 못하는 것처럼.

스무 살 남자들의 시선이었기 때문일까. 예전 작품에 비해 섬세한 느낌들이 덜했다. 건조한 문장들 속에 불안이 감지된다. 풋풋하지만 불안이 스며있는 나이. 스무 살의 불안이 느껴진다. 스무 살의 불안이 어쩌면 사랑의 근본적인 속성인 듯 느껴진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투명한 사랑. 헤어짐을 늘 생각하는 사랑. 불행하면서도 행복한,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사랑. 그런 사랑. 도쿄타워에서 그런 불안한 사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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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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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 오래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버린 책들도, 제목마저 생소한 온갖 종류의 책들이 있는 수천 개의 고서점들, 책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들어주는 기호식품들, 출판사들과 종이 공장, 인쇄소, 장서표와 책 받침대 등을 파는 가게, 시인들의 낭독회가 열리는 찻집 등 책에 관한 모든 곳이 존재하는 곳. 마치 꿈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은 오로지 책을 위한 도시가 있다. 바로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이다. 발터 뫼르스는 오직 책을 위한 책으로만 꾸며진 책의 도시를 한 권의 책 속에서 환상적으로 재현해냈다.

미텐메츠가 부흐하임에서 겪게 되는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다양한 캐릭터와 좀 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만들어 주는 삽화들, 온갖 비유와 상징들로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젊은 공룡 미텐메츠와 미텐메츠의 정신적 지주이자 미텐메츠가 모험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그의 대부 단첼로트, 생각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서점 주인 키비처, 책 사냥꾼 중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진 레겐샤인, 미텐메츠를 지하 미로에 가두는 스마이크, 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책을 먹고 사는 종족인 부흐링족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이 서로 얽히어 미텐메츠의 흥미진진한 모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캐릭터 중의 하나가 부흐링족이었는데 그들은 그야말로 책을 먹고 사는 이들이다. 영양가 풍부한 고전 소설을 읽으면 서정시 몇편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책이 삶의 든든한 영양식이 되는 종족들이다. 이들의 생활을 보며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오로지 책 그 자체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황홀함 그 자체로 보이는 도시이지만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 도시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 즉 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나 사랑이 자본의 힘에 의해 변질되어 버린 출판계의 현실을 고발하는 듯해서 씁쓸하기도 했다. 돈이 되는 책들만 찍어내는 출판사들이나 책 사냥꾼들의 책을 얻기 위한 전쟁, 작가가 아니라 신문사를 위해 비평을 쓰는 비평가들의 모습 등은 그런 씁쓸한 현실의 반영이다. 생명까지 위협하는 책들의 모습은 바로 그런 출판계의 현실을 비유하는 듯해서 더욱 암울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미텐메츠의 흥미진진한 모험의 결말에 이르게 되면 마치 작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쓸 때 경험한다는 그 오름의 경지에 이른 듯 황홀한 느낌이 든다. 책 속에 숨겨져 있었던 책에 대한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들이 찬란하게 쏟아져 내린 듯한 느낌. 책에 대한 상상력의 어떤 극한까지 간 듯한 느낌. 어쩌면 작가 발터 뫼르스는 책 그 자체를 통해서 오름을 경험한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은 조금 어두운 빛깔도 담고 있지만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푹 빠져볼만한 책 속으로의 여행이다. 책, 오로지 책 그 자체에 푹 빠져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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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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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삶은 어떠할까. 김훈의 소설은 그러한 물음에 소박하면서도 멋들어진 문장으로 개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개의 시선을 빌렸기에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삶에 관한 진실들을 포착해 내고 있다. 우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다른 누군가의 시선은 매우 유용한 것이다.

이번 소설에서 김훈의 문장은 읽기 부담이 없을 만큼 소박하다. 개의 시선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박한 문장들은 때때로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하는 법이다.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개의 모습이, 그 치열한 삶이 소박한 문장들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한 발짝 겨우 담그고 있으면서 쉽게 힘들어하는 인간의 삶과 비교되어 더더욱 그렇다.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악돌이가 이기고 내가 진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다만 악돌이가 강했고 내가 약했을 뿐이었다. 아주 분명한 일이었다. 나는 그 분명한 것이 견딜 수 없어서 앞발을 쳐들고 우우우우 울었다.”

개는 견딜 수 없음에 대해, 그 힘든 과정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들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가 개로 태어난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처럼 자신의 삶이 이러저러해서 힘들다는 것을, 그 힘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체념이 아니라 수긍의 그 과정이 나 자신의 한없는 약함과 자꾸만 비교되게 만든다.

인간이어서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이 소설을 통해서 나타난다. 소설 속 주인공 진돗개 보리는 알고 있다. 우리 인간이 그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속해 있어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 소설에서 김훈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개의 시선이기에 다소 직설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진실을 말하고 있을 터이다.

보리의 언어로 소설 속에 몰입하다 보면 생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삶의 눈부신 아름다움도 느낄 수가 있다. 김훈은 삶에 관한 한 편의 멋진 우화를 만들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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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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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 속에서는 늘 두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로 끝이 났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 나에게 결혼은 사랑의 행복한 결말 혹은 사랑의 장밋빛 꿈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많은 이야기들과 책을 접하면서도 아직도 나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결혼은 직접 해봐야 안다고 하지만 직접 해보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미궁 속을 걷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지속적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혼의 변화라...어쩌면 제목에서부터 나는 내 궁금증과 상상을 작가에 대한 기대로 연결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는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은 결혼에 관한 혼돈된 생각들과 느낌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산도르 마라이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도 큰 역할을 했으니까 말이다. 결혼에 관해 그가 또 어떤 문장들로 깊이 유혹할지,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산도르 마라이는 세 사람의 독백을 통해 결혼의 본질과 결혼의 시간들, 그 변화해가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설은 일롱카와 그녀의 남편이었던 페터, 그리고 페터와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여자 유디트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열정적 사랑 일롱카, 용기없는 사랑 페터, 파괴적 사랑 유디트 순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사실 소설을 읽어 내려갈수록 이러한 독백의 순서가 결혼의 단계들을 밞아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열정적이었다가 차츰 용기 없어지고 결국엔 파괴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결혼의 시간들을 말하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롱카는 남편을 사랑했지만 남편과 결국 헤어지게 된다. 남편 페터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여자를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마음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페터는 일롱카와 이혼하고 나서 유디트와 결혼하게 된다. 그는 일롱카와의 결혼이 실패한 이유를 두 사람의 환경적 차이에서 찾고 있지만 사실 유디트와의 결혼은 그런 점에서 더더욱 이해하기가 힘이 든다.

그는 자신이 조금 더 자유로웠더라면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을 거라 고백한다. 좀 더 열정적이고 자신의 감정에 자유로웠다면 두 번의 결혼 다 실패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실, 어떻게 보면 인간적 외로움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어쩌면 결혼은 가장 어울리지 않으며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페터와 결혼한 두 번째 여자인 유디트에게 있어 결혼은 일종의 신분 상승의 수단이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신이 살아온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는 욕심이 너무 많았거나 혹은 사랑이나 믿음보다 조금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가 더 우선시되는 세계에 강하게 속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오로지 그녀보다 나은 계층에 대한 증오와 그들로부터 더 나은 삶의 수단들을 훔치는 형태로까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결혼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걸까.

열정적인 일롱카, 용기없는 페터, 파괴적인 유디트에 이르기까지 결혼에 관한 그들 각자의 입장과 시각의 차이를 읽으면서 결혼에 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롱카와 페터.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들은 결혼으로 연결될 수 없는 어떤 어긋남을 보여준다. 유디트,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솔직하지만 사실 그렇게 공감이 가진 않았다. 결혼이나 사랑으로도 화해될 수 없는 그녀 자신의 신분적 기질, 그 철저한 파괴적 속성에 연민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 것은 결혼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하나로 섞일 수 없는 어긋남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씁쓸했다. 결혼을 두 사람이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이라 한다면 그들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서로 다른 불협화음이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독백, 그 쓸쓸함이 바로 결혼이 아닐까.

그리고 또 씁쓸할 수밖에 없었던 건 산도르 마라이에게 있어 결혼은 더 이상 동화 속 결말처럼 신분을 뛰어넘어 이룰 수 있는 행복한 환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활 환경이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이 사랑만으로 결혼을 유지해나갈 수는 없을 것이고 부드럽게 섞일 수 없는 각자의 환경이 존재하는 한 결혼은 지속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결혼은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의 지속적인 관계인 것이다.

이 소설은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삶에 관한 이야기다. 결혼에서 더 나아가 삶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산도르 마라이의 성찰은 빛이 난다. 좀 더 열정적으로 삶에 관한 문제들을 생각하도록, 좀 더 섬세하게 삶과 사랑을 오가는 문제들에 빠져들도록 만들어주는 그의 문장들... 그 빛나는 언어들 속으로 풍덩 빠져보는 것, 매력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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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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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이었을까. 그녀의 소설속에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이렇게 깊숙이 빠져서 소설을 읽은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인 듯 싶다. 처음에 조금 상투적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단숨에 소설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건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가진 역량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사실 상투적인 소재일수록 작가의 역량을 확인하는 것은 더 쉽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튼 나는 책을 읽기전 애써 몰입되지 않으려 했던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책을 읽은 후 나도 모르게 조금 마음 한 켠이 뜨거워져 있었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간직한 유정이 처음의 냉소적인 태도에서 점차 달라져가듯이 말이다. 소설은 어린 시절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세 번씩이나 자살을 기도하는 여교수 유정과 불우한 어린 시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범죄의 길로 접어든 사형수 윤수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이 처음의 냉소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점차 서로에 대해 솔직하게 응시해 나가는 그 순간, 유정이 윤수를 통해 삶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는 그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이 서로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의 상처라는 공통분모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만남은 상처와 상처가 만나 서로 치유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유정이 윤수를 만나면서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시간들에 대해 윤수를 위해 용서하는 모습, 그리고 윤수가 노트에 마지막으로 남긴 사랑한다는 말은 마음 속에 굳어 있던 오래된 상처들에서 이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토록 증오스러웠던 삶도 한 순간 따뜻해지는 것이다.

공지영은 이 소설을 쓰면서 행복했다고 작가후기에서 말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도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이었다고.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에 나는 감히 작가가 행복했다는 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상처를 자기 안에 응어리진 채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시간, 자기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며 응시해나가는 순간...그 행복한 시간의 느낌을 나는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뜨거워졌던 느낌,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작가는 우리 마음의 가장 깊숙한 부분이 뜨거움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그 마음, 그 뜨거운 마음 외에는 사실 어떤 것도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된다고, 그녀의 소설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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