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평점 :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그 행복한 일상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천천히 먹고 싶은 마음처럼. 읽어갈수록 소풍의 그 들뜨고 설렌 마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난 유쾌한 일탈이기 때문일까. 읽는 내내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소풍>은 유명한 음식점에서 맛본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tv에서 넘쳐나는 맛집의 비슷비슷한 맛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갖가지 음식마다 담긴 맛깔스러운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고, 음식에 얽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을 먹듯, 혹은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가듯, 그렇게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가면 된다. 맛난 음식의 묘사는 눈으로 보는 것만큼 맛깔스럽고, 성석제씨의 문장은 웃음이 베어 나올 만큼 유쾌하다. 사실, 곁들여진 만화보다도 그의 문장들이 더 재미있었다.
메뉴판의 글자가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독특한 이름이라 시킨 것이 치킨버거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허탈했을 장면, 그리고 중국의 소도시에 있는 작은 음식점에서 무난한 음식이라 시켰는데 갓 잡은 닭이라 털이 그대로 있어서 계속 그 털을 뽑고 있을 장면에서 슬며시 웃음이 묻어나왔다. 안동소주를 구하러 들어간 집에서 이름 하여 ‘개망신’을 당하고 나왔을 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을 정도다. 음식 이야기에서도 성석제씨만의 웃음이 가져다주는 매력은 여전했다.
<소풍>을 읽다 보면, 음식의 맛은 손맛이고 정성이라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맛이고 기억의 맛임을 알게 된다. 누구나 추억의 음식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힘들게 올라간 산의 정상에서 끓여먹던 라면 같은. 그런 추억의 맛을 <소풍>에서 만날 수 있다. 초겨울 들판에서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도랑물을 넣어 짚단에 불을 피워 끓여먹던 라면의 맛, 군대에서 주방장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고 얻어먹은 라면의 맛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의 맛일 것이다. 그 맛은 그 시간과 공간과 그 시절의 나란 존재와의 합작품일 것이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비슷하게 다시 시도해보았지만 그 맛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 결과를 얻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으니, 맛이란 참 오묘하고도 오묘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음식의 맛에는 우리의 기억도 작용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아무리 유명한 음식점에서도 추억이 스며 있는 음식을 되살려내진 못할 것이다.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그리고 실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의 맛도 사실은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힘든 일도 잊어버릴 만큼 삶이 참 달콤해진다. 힘든 일상에 피곤해하면서도 우습게도 맛난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때도 있다.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아리송할 때도 많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맛있는 음식은 때론 삶의 든든한 바탕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나간 기억을 불러 일으켜주는 추억의 매개체로,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 같은 것으로, 때론 삶 그 자체로 우리는 음식을 기억하고 그것을 먹는 것은 아닐까.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배부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달았고, 얼큰했고, 매콤했다. 그윽하기도 했고 향긋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보다 더 달콤하고 신나는 소풍이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