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시학의 단편들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안보옥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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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영역에서 창안하는 것과 이미지들을 상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정신적 행위이다. 우리는 과거를 수정하지 않고는 사고를 창안하지 못한다. 수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진정한 사고를 끌어내리라 기대해볼 수 있다. 원초적인 진리란 없고, 단지 원초적인 오류들만 있을 뿐이다. 과학적 사고는 오류로 점철된 기나간 과거를 가지고 있다. 시적 상상력, 그것에는 과거가 없다. -47-48쪽

특수한 아름다움은 언어 안에서, 언어에 의해서, 언어를 위해서 생겨난다. 결국 문학적 상상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에는 우리의 문제 범위를 좁혀서 구체적으로 밝혀주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는 진정, 제공된 상상력 앞에, 한 권의 책과 그 독자의 내밀함 같은 가장 단순한 내밀함 속에서 아주 단순하게 제공된 그러한 상상력 앞에 있는 것이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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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품절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상대방을 낯선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좋건 싫건 간에 어떤 유대 관계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나쉬는 그런 생각 뒤에 숨은 잠재적인 함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 방황하는 여린 젊은이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83쪽

참으로 이상하게도 나쉬는 그 극적인 역전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포지의 슬럼프로 인해 오히려 기운이 솟는듯한 느낌이어서, 마치 그 젊은이가 더 좌절하고 당황해 할수록 그의 자신감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내내 추구해 온 것이 바로 그런 종류의 위기이기라도 한 것처럼.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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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애인
가브리엘 마츠네프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절판


애인의 새로운 거짓말을 발견할 때마다, 범죄를 수사하면서 새로운 단서를 추가로 찾아내는 검사처럼 기뻐했고, 고고학 탐사지에서 동물의 뼈대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뼛조각을 찾은 고고학자처럼 좋아했다. 엘리자베스가 감추고 있던 거짓의 지층들이 점점 밝혀졌고, 무대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했던 짙은 화장을 공연이 끝난 후에 분장실에서 지우는 여배우처럼 얼굴 본바탕과, 아름답게 꾸민 눈, 위선적인 표정, 예쁜 거짓말쟁이의 입술이 드러났다.
-109-110쪽

그녀가 현실을 부정하는 경이로운 능력을 지녔으며, 만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명확한 선’이란 것을 극도로 혐오하며, 불명확한 것을 끈질기게 좋아하는 취미를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37쪽

그가 사랑하는 로마인들의 불안감에 찬 질투를 거울 삼아 자신의 질투를 세련되게 다듬었다. 그렇게 자신의 질투를 이상적이고 마취 상태인 영역으로 접어들게 함으로써 그의 고통은 정화되고 변모되었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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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절판


어디서인가 채소 삶는 냄새가 났다. 뭘 만드는 걸까. 카레라이스일까, 스튜일까. 나는 이런 냄새를 맡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차분해진다. 이런 감상적인 냄새를 알고 있는 인간이라면 허무라는 말 따위는 절대 사용하지 않을 거다. -37쪽

마음의 아픔도 위대하지만 몸의 아픔은 보다 완고하다. 존재감이 있다. 그런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사유에 몸을 맡기는 인간을 만나면 나는 무조건 존경해버리고 만다. -45쪽

만일 진짜로 그가 시차 조정을 할 수 없는 일생을 보냈다면, 그건 과연 어떤 인생이었을까. 단 한 시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그 기분은 어떤 것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공백의 시간. 어쩌면 그것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고독과의 싸움이 아닐까.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이 투명 인간이 돼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136-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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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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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12쪽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쩐지 시마무라는 마음속 어딘가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아직 저녁 풍경이 비치던 거울에서 덜 깨어난 탓일까. 그 저녁 풍경의 흐름은, 그렇다면 흐르는 시간의 상징이었던가 하고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 -16쪽

손님은 대개 여행객들이죠. 전 아직 어리지만 여러 사람들 이야길 들어봐도, 마냥 좋아서 그땐 좋아한다는 말도 못한 사람이 늘 그리워져요. 못 잊는 거죠. 헤어진 후엔 그런가 봐요.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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