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그리다 -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죽음은 매혹적인 소재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죽음에 관해 다루고, 죽음은 작품 속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 자신의 죽음에 이르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작가들의 죽음을 마치 그들이 남긴 작품처럼 아름답게 상상하려 한다. 그렇지만 죽음이란 늘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는 법이다.

미셸 슈나이더는 여러 작가들, 사상가들의 죽음을 소재로 매혹적인 에세이집을 펴냈다. 그는 여러 작가들, 사상가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매혹적으로 재현해냈다. 죽음을 주제로 한 여러 빛깔의 단편집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다양한 죽음의 빛깔이 변주된다. 주인공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책들을 남긴 소설가들, 시인들, 사상가들이다. 어쩌면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아무리 생각해보려 해도,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죽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죽음의 고통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긴 작가들에게는 비켜가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들이라면, 더 아름답게 죽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 어처구니없는 기대들. 그렇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시인 릴케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것이 아니라 백혈병 때문에 죽었는데,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는 고통을 참기 힘들 정도였다. 시인다운 죽음을 맞고 싶어서 진통제까지 거부했던 릴케는 자신의 몸을 가리켜 “고통이 넘기는 사전”이라고 표현했다. 고통에조차 은유법을 쓸 수 있는 릴케였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공포’와 ‘욕망’이었다. 이렇듯 죽음의 고통은 시인의 아름다운 욕망을 무참히 짓밟는다. 모파상에게 죽음은 더욱 더 고통스러운 절차였다. 또 다른 모파상을 마주한 순간부터 모파상의 삶은 죽어가기 시작했고, 그가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이미 목격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도와주는 책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감동받은 작품들을 쓴 작가들조차 죽음을 두려워했고,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난 죽음을 갈망해”라고 외치기도 했던 하이네에게 있어서도 죽음이란 ‘기분 나쁜 여인숙’ 같은 것이었다. “나는 죽는다.”라는 말을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말하고 죽은 안톤 체호프에게 죽음은 ‘외국어’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의사이자 소설가였던 체호프조차 자신의 죽음을 그냥 삶의 마침표 정도로만,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우리가 여러 작가들의 죽음을 아름답게 상상하고자 하는 욕망처럼, 작가들 또한 자신의 죽음을 아름답게 꿈꾼다. 그래서 “책으로 인해 죽음을 맞는 건 모든 작가들이 꾸는 아름다운 꿈”인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그리 문학적이지 않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자신의 죽음도 자신의 작품처럼 완벽하게 종결짓고 싶어 하지만, 그리고 아름답게 매듭짓고 싶어 하지만 죽음은 늘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를 덮치는 것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죽고 싶었던 스탕달이 사람들이 붐비는 큰길가에서 죽었던 것처럼.

죽음은 늘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그렇게 다가오지만, 그래도 마지막 서명은 미리 생각해둘 수 있다. 작가들이 자신의 묘비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름다운 매듭에 대한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묘비명은 작가를 기억하는 마지막 메타포가 될 테니까. 그리고 그들의 묘비명은 책을 다 쓰고 난 후의 서명 같은 것일 테니까. 그래서일까. 스탕달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했다.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라고. 그렇지만 스탕달의 유언 집행자는 “나는 썼다. 사랑했다. 살았다.”로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버렸다.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스탕달이 이 사실을 안다면 아마 깊이 잠들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미셸 슈나이더는 세계 지성들의 죽음의 순간을 그만의 빛나는 성찰들로 재현해냈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 자신은 결코 죽음의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먼저 죽어간 사람들의 페이지를 뒤적일 수 있을 뿐이다. 미셀 슈나이더가 보여주는 건 바로 그러한 죽음의 페이지들이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각기 다르게 웅크리고 있는 죽음을 모습을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 죽음들 속에서 삶을 거꾸로 비추어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자신의 죽음의 페이지에는 어떤 말들이 적혀 있을까. 그 위태로우면서도 매혹적인 상상 속에 이 책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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