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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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아무래도 어렵다. 아니, 어렵다는 단순한 표현보다 난해함과 복잡 미묘 쪽이라고 해야 하나. 전혀 못 알아들을 내용은 또 아니니까. 이번 작품도 얇아서 도전해 봤다가 낭패를 봤다. 그나마 해설 덕분에 뭐에 대한 부끄러움인지를 알겠더라. 에르노의 말은 명확하게 나가는 법이 없고 늘 빙빙 돌려대기만 한다. 실제로 이런 타입과 대화하다 보면 나까지 붕 떠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사람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싶어 화병도 생기고. 여하간 이 분은 나랑 안 맞음.


어머니를 죽이려던 아버지를 목격한 게 시작이었다. 그때의 강렬한 장면은 12살의 세상을 하나에서 둘로 갈라놓았다. 집안은 화목하기만 한 곳이 아니었고, 학교는 흙수저들을 차별 중이었으며, 2차 성징이 온 친구들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상의 모든 법칙들은 하나도 지켜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그 사건‘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그 신세계가 당연하다는 듯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말 못 할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제2의 세계에서는 당연해야 할 일관성이 없이도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제멋대로인 행동, 쓰지 말아야 할 언어, 외설적인 활동, 어긋난 예절법 등등 관례와 규칙에서 벗어나는 모든 짓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집단이든지 우위와 서열이 있었으며, ‘나‘는 이 오류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이 점을 알게 해준 ‘그 사건‘은 저자의 불행을 벌어놓았던 것이다.


저자의 부끄러움, 즉 수치심의 원인은 자신이 속했던 안쪽 세계와 바깥 세계를 구분 짓는 계급 때문이었다. 폭력과 소외를 마주한 뒤로는 다시 안쪽 세계에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남들 따라 범법자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윤리와 종교의 가르침들은 정녕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그날의 일로 12살의 어린아이는 순수를 잃었고, 그 후로 저자는 논란을 몰고 다니는 파격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작품을 쓰고 난 후로는 저자가 부끄러움에서 해방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해설에 따르면, 마음속 밑바닥에 깔려있는 은밀한 치부를 후련하게 떨쳐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했을 거라는데, 나도 이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에르노는 이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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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8-28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에르노의 작품 중 그래도 난감하지 않은 작품 중 하나였던 듯요. 오래 기억에 남구요.
에르노, 읽기 편한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물감 2023-08-28 10:38   좋아요 2 | URL
이게 무난한 축에 끼는군요...ㅎㅎㅎ 에르노가 어려운 문장은 없는데, 이 얘길 왜 하지?싶은 생각이 계속 들게 해요. 세 권쯤 읽었으니 이제 보내줘도 되겠죠 뭐^^

고양이라디오 2023-09-01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왠지 서친분들 리뷰 보니깐 저랑 안맞을 거 같더라고요ㅎ

저도 애매하고 두루뭉실한 표현은 어려워하고 싫어해서ㅜ

물감 2023-09-01 19:11   좋아요 2 | URL
프랑스 문학이 유독 그렇더라고요. 좋을땐 한없이 좋은데 아닐땐 고구마 삼키는 기분ㅋㅋㅋ 저도 단순명쾌함을 더 추구하는지라 😃

잠자냥 2023-09-02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병 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9-02 11:09   좋아요 1 | URL
죽겠어요...ㅋㅋㅋㅋ
 
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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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아온 소설가들은 크게 세 가지의 유형이 있다. 먼저는 사회에 불만이 많은 자. 그래서 이슈의 공론화를 위해 책을 쓰고 갈등을 만든다. 다음으로 변태 같은 감성의 소유자.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증명해야만 속이 풀리는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비상한 관점의 현자. 이들은 독자의 허점을 찌르고 편견을 깨는 것이 목적이다. 서머싯 몸은 세 번째 유형에 해당된다. 그는 작품 속에서 공감도 원치 않고 설득도 하려 않는다. 그저 내 생각은 이렇다 할 뿐인데 그게 꼭 남들과 달라서 신경 쓰이는 것이다.


<케이크와 맥주>는 작가들에게 관점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물론 독자들도 배워두면 유익할 테니 잘 봐두면 좋겠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다. 잘나가는 소설가 A는 타계한 거장의 전기문 집필을 위해 화자를 찾아온다. 세계적인 작가, 드리필드와의 추억을 말해달라는데 영 내키지가 않는다. 작품의 명성과는 별개로, 드리필드는 인간적으로 추앙할 만한 인물이 못되었기 때문에. 화자만의 기억은 남들하고 어떻게 달랐을까.


이야기는 ‘나‘의 과거 15살로 돌아간다. 소년은 평판이 나빴던 드리필드 부부와 친해진다. 소문과 다르게 좋은 사람들이었고, 특히 부인의 매력과 인간미가 퍽 훌륭했다. 이토록 순수하고 쿵짝도 잘 맞는 부인의 어디가 음탕하다는 걸까. 의심은 이내 현실이 되었지만 부인은 오늘도 내일도 천진난만할 뿐이었다. 결국 소문이 맞았고 배신감마저 느껴졌으나 그것이 부인을 싫어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과 야반도주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소년이 어려서 뭘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축하한다. 당신도 꼰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모두에게 욕먹는 드리필드 부인에 대한 ‘나‘의 애정이 유별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소년은 시샘하는 이들과 잘만 지내는 부인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만의 평판을 쌓아갔다. 과연, 체면을 벗어두었더니 그녀의 장점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다 생각하기 나름이란 뜻이겠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배웠다. 지금은 처신을 잘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겉으로도 판단이 가능하다는 추세다. 이 문제를 자신에게 적용시켜보자. 타인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정의할 수 있을까. 그 정의가 들어맞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나는 No인데 다수가 Yes라고 한다면 그게 정답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왜 있는가. 사람이란 이렇게나 복잡하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부인의 비중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성공에 눈이 먼 작가들을 풍자한다는 내용이다. 화자를 찾아온 A는 재능과 실력까지 겸비한 처세술의 달인이었다. 그렇게 야무지고 눈치 빠른 양반이 거장의 일면만을 보고서 극찬한 것도 그렇고, 거장의 비판을 모르쇠 하는 것도 그렇고 참. 화자에게는 A나 거장이나 한 통속이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드리필드는 기나긴 무명시절에도 개성과 여유를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후원자를 통해 사교계를 접수하고부터 명성을 쌓게 된다. 그렇게 해서 훗날 거장이 되었다지만 화자는 그것이 누군가의 꼭두각시놀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성공과 맞바꾼 작가의 영혼.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기엔 변질돼버린 그의 오리지널이 자꾸 생각나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드리필드 부부에 대한 대중과 ‘나‘의 인식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비난의 아이콘이던 부인한테는 남들이 보지 못한 매력이 넘쳤고, 공경의 아이콘이 된 거장에게는 남들이 맡지 못한 구린내가 풍겨났다. 어째서 ‘나‘는 부인의 불미한 행실에도 취향을 존중하고, 줄타기에 성공한 거장을 위선자로 보았는가. 두 사람 다 고통을 앗아가는 쾌락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각자의 말 못 할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택이었고, 그 결과 부인은 비난받고 남편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부인의 삶이었고, 비난받아도 할 말 없는 남편의 삶이었음을 알게 된 화자였다.


물론 너도나도 ‘역행자‘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잘못했다간 사회 부적응자란 소리나 듣게 될 것이다. 온갖 상황과 변수로 가득한 인간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유연한 사고와 발상을 길러주는 ‘관점‘에 달려있다. 유독 한국인들은 판단하고 분류하고 정의하기를 좋아하는데, 수학 문제가 아니고서야 꼭 정답일 필요가 있을까. 답이 없는 문제일수록 차라리 중용을 택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다. 근데 한편으로는 내 앞가림도 잘 못하면서 정신건강이 웬 말이냐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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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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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말하길,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상황과 배경은 그렇다 쳐도 그 말의 뿌리까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를 통해 자신을 파괴한다는 의미를 겨우 알아듣게 되었다. 다만 그 권리를 알아차렸을 때에 난 이미 파괴된 후였고, 가난한 권리마저 박탈 당했다는 사실에 분개해 보지도 못했다. 츠바이크 또한 불안의 근원과 분노의 방향에 대해서 소송을 걸었고 이 책과 죽음으로써 판결을 내렸다.


<우체국 아가씨>는 전쟁세대의 잃어버린 청춘과 인권에 대한 연가이다. 이모의 초청을 받은 우체국 직원 C양이 스위스 호텔을 찾아가는 것으로 1부가 시작된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그녀는 바깥공기를 맡고 기뻐하기보다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호텔에 머물면서 온갖 즐거움을 누렸지만 휴가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후유증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우물 속에서 계속 있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지독한 가난의 해방감과 경험의 희로애락 등 인간의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막아선 안되겠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모친도 잊고 사는 젊은 그대 C양은 누가 보더라도 위험했다.


그럼에도 이모 부부는 저 방정맞은 조카를 말리지 못한다. 시궁창에 빠져있던 청춘을 드디어 건져냈는데 그 기쁨이 오죽했을까. 그렇게 물 만난 물고기는 저도 모르게 수족관 밖으로 튀어나온다. C양의 나쁜 소문에 대해 이모가 둘러대지 말고 제대로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을. 조카의 순수함을 지켜줄 게 아니라, 성인으로서의 교양과 덕목을 심어주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2부에서 그토록 자기 파괴적인 모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둥지 아래로 떨어진 아기 새처럼 불안해진 C양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거지 같은 시골 처녀로 되돌아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모친이 위독하단 소식에 별 수없이 귀향하지만 어째선지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저자는 지칠 대로 지친 그녀의 심정을 꾹꾹 눌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 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 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 234p


총량을 넘긴 감정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슬픔이 슬픔인 줄도 몰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슬픔인 줄 알고도 슬프지가 않게 되었다. 분명히 삶을 송두리째 뺏겼는데 누가 뺏어갔는지를 알 수가 없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낼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하늘 아래서 누구는 풍요롭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가. 어째서 가난은 공평치 못하고 사람 봐가면서 찾아오는 건가. 그것은 철없던 내가 줄곧 하던 생각이었다. 점점 가난을 망각하고 살았더니 여유가 생긴 지금은 뭘 해도 즐겁지가 않다. 그 감정을 모른 지가 너무 오래됐다. 차라리 이대로 계속 몰랐으면 좋겠는데 츠바이크가 전부 다 망쳐놨다. 나쁜 사람.



2부에서는 시궁창 현실로 복귀한 C양의 신세한탄이 펼쳐진다. 호캉스 후로 날카로워진 그녀는 바람 쐬러 간 타 지역에서 형부의 군대 친구인 P군과 친해진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불만과 똑닮은 그의 불행하고 가까워진다. P군은 참전용사의 대우를 받기는커녕 어떠한 혜택도 없이 절망 속에 살아간다. 국가와 전쟁에 바쳤던 자신의 젊음이 잠깐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만도 못하다니. C양의 폐부를 찌르고 작품 전체를 관통한 P군의 발언을 살펴보자.

"사소한 부상이야, 그렇지 않아? 세계대전을 겪고 시베리아에서 4년간 지내면서 겨우 손가락 두 개 다쳤을 뿐이니. 그런데 죽은 손가락이 살아 있는 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잘 몰라. 건축사가 되고 싶은데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사무실에서 타이핑할 수도 없고, 무거운 물건을 들지도 못하지. 가느다란 힘줄 하나가 썩었을 뿐이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꼭 하고 싶은 일들이 그 실처럼 가느다란 힘줄에 매달려 있다는 게 문제야. 집을 설계할 때 도면에서 1밀리미터만 잘못 그려도, 겨우 1밀리미터이지만 집 전체가 붕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야." - 281p


내게서 떨어져 나간 한 줌의 무언가로 인해 삶의 통로가, 세상과의 창구가 닫혀버린 것이다. 나는 멀쩡히 존재하건만 겨우 1%의 결함 때문에 남은 99%를 무가치하다고 판단한 국가였다. 왜 이들은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을 누리지 못하는가. 아픔만 남겨놓고 말없이 떠나간 청춘들을 어디에 가면 보상받을 수 있는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나는 제한된 일상의 고통과, 소모품으로 살아야만 하는 설움을 너무나도 잘 안다. 쳐다보지도 못하게 된 꿈과 도전들은 질리지도 않고 손짓을 해대는데, 그게 다 희망고문인 줄 알면서도 괜히 연민에 빠져보고 동정 속에 나를 밀어넣어도 봤다. 가난은 나와 C양을 초라하게 만들었고, 신체적 결함은 나와 P군을 세상 밖으로 계속 몰아냈다. 츠바이크도 그렇게 밀려나다가 벼랑 밑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불행한 가정의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했지만, 현대사회에 와서는 죄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누가 더 불행한지 겨루는 게 무색해진 현실 앞에서 개인의 아픔은 어린아이의 반찬투정 정도로 느껴진다. 글쎄, 나 같은 사람은 건물주나 복권 당첨을 바라지도 않는다. 기본적인 생활 유지와 인권을 보장받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눈치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남들과의 비교로 나의 불행을 키우는 상황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평등하길 바랄수록 옐로카드만 꺼내드는 세상이다.


나보다 더한 이들한테서 위안을 얻는다는 건 말도 안 될 뿐더러 할 짓도 못된다. 반대로 잘 사는 누군가가 내 아픔을 감당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남녀의 울분은 끝내 복수와 배신으로 이어진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싶다가도 저자의 말로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나 또한 가슴속에 총 몇 자루씩 품고 살아가니까. 츠바이크가 그린 시대의 자화상이라. 마음이 참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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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21 1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크- 정말 좋은 소설이죠. 좋은 소설 읽고 나온 감상은 좋지 않을 수 없네요. 크-

물감 2023-08-21 15:55   좋아요 1 | URL
저 아무래도 츠바이크한테 빠질 것 같습니다.
한두 권만 더 읽어보고요 ㅋㅋㅋㅋ

은하수 2023-08-21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물감님 생각에 바로 공감입니다. 멋진 작품이죠!!

물감 2023-08-21 15:57   좋아요 1 | URL
은하수 님도 총잡이?! ㅋㅋㅋㅋ
츠바이크는 사랑입니다 ^^

coolcat329 2023-08-21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빨리 읽어야겠어요~^^

물감 2023-08-21 15:58   좋아요 1 | URL
쿨캣님 이거 얼마만입니까요! 잘 지내시죠? ㅋㅋ
언넝 읽고 리뷰써주세요~~~!

은오 2023-08-21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저 아직 초조한마음산것도 안읽었는데 이거 벌써 오별주시면 스트레스받습니다..
굉장히..
매우..
하........

물감 2023-08-21 19:2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근데 요즘의 은오님 행보를 보면 츠바이크도 긴장해야 할 듯요ㅋㅋㅋㅋㅋ

은오 2023-08-21 19:38   좋아요 1 | URL
근데 질문있습니다. 물감님 병렬독서 안하시는걸로 알고있는데 읽고있는책에 왜 4권이나 있는거죠?! 읽으실 책인가요? 😯 리뷰예정 이런거..?

물감 2023-08-21 19:48   좋아요 1 | URL
곧 읽을 목록이에요. 지금 4권은 대여한 책들이고요. 물론 병렬독서는 안합니다ㅋㅋㅋ

은오 2023-08-21 19:56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또질문있습니다. 대여하시는 책과 구입하시는 책은 어떤 기준이죠? 궁금한게 많아 죄송..ㅋㅋㅋ 그래도 알려주세요!!

물감 2023-08-21 20:11   좋아요 1 | URL
음 딱히 기준이 없네요. 그날그날 제 기분에 따라서?ㅋㅋㅋ
그래도 평소에 눈여겨봐둔 작가들 안에서 고르려고는 하네요. 아 그건 있어요. 저는 신간, 베스트셀러, 추천 책, 입소문 책을 철저히 외면합니다. 절대 유행이나 지름신에게 휘둘리지 않아요. 제 스스로 읽을 책을 발견하는 맛을 좋아해서요ㅋㅋㅋㅋ또 질문있나요😀

은오 2023-08-21 20:37   좋아요 1 | URL
기분에 따라서라니 이건 좀 의외입니다! ㅋㅋㅋ 오늘은 질문 여기까지하겠습니다 알찬 질문타임이었다 😆 물감님 굿밤!!!!

구단씨 2023-08-21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제목만 봤을 때는 잔잔한 분위기가 먼저 연상되었는데,
내용 듣다 보니 파도가 막 치는 느낌입니다.
문제는,
제가 이 책을 구판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거죠.... ㅠㅠ
네, 가지고만 있었어요.
제목만 보고 다른 책인 줄 알았는데, 물감님 리뷰 안 봤으면 같은 책인 줄도 몰랐네요. ㅎㅎ

물감 2023-08-21 19:35   좋아요 1 | URL
잔잔한 파도가 계속 치다가 어느새 해수면이 상승하더니 쓰나미로 바뀌더군요. 꼼짝없이 당했습니다....
구판은 제목이 다른가봐요? 내용은 같으니까 이번에 한 번 읽어보셔요ㅎㅎㅎ

잠자냥 2023-08-21 20:44   좋아요 1 | URL
물감 님, 구판 제목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이건 줄 모르고 산 책 또 산 사람(다락방) 읽은 책 또 읽다 중간에 알아차리고 접은 사람(골드문트), 다행히 구판 갖고 있는 거 알게 된 사람(구단씨) 등등 ㅋㅋㅋㅋ 사연도 재미납니다.

물감 2023-08-21 20:56   좋아요 1 | URL
딱 보니까 출판사가 노린 거네요. 피해자 속출ㅋㅋㅋ 이래서 신간은 주의해야 하나봐요ㅋㅋㅋㅋㅋ
 
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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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이 짤막한 이야기가 지닌 아련함에 나는 몇 번이고 감전돼버렸다. 그동안 알듯 말듯 했던 에르노의 글과는 호흡이 어려웠는데, <젊은 남자>에서는 저자가 ‘평평한‘ 글쓰기를 해준 덕분에 좀 더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문장보다 서사가 중요한 나로서는 사실 에르노와 궁합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문장‘만으로 구성된 이 서사의 치명적인 매력에 그만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


서른 살 연하남과의 연애라니. 에르노도 상당한 팜 파탈이었나 보다. 한국인의 정서상 나이차가 많은 연인에 대한 시선이 절대 곱지 못한 데, 프랑스라서 그런가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이 작품은 연하와의 연애 속에서 느낀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놓는 수필 형식을 띄고 있다. 순간순간에 대한 고백들이 서사와 주제를 동시에 가져가는 기교도 좋았지만, 나와 1도 관련 없는 내용을 마치 내 얘기처럼 들려주는 게 참 좋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A는 청춘의 소란 속에 ‘나‘를 데려다 놓았고, 잃어버렸던 젊음의 감각까지 되돌려 주었다. 그러나 황홀과는 별개로 A와의 시간들은 젊은 시절의 자신을 연기하는 것일 뿐이었다. ‘나‘와 다른 그의 습관들을 볼 때마다 무심했던 세대 차이를 체감했고, 하나였던 젊음이 둘로 분리되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타인들의 시선보다도 본인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자신의 기억 전달자인 A에게 삶의 안내자가 되어줄 것을 다짐한다. 쾌락과 고독이 공존하는, 시한부 사랑의 비즈니스 관계라니.


음악도 영화도 음식도 여행도, 처음 공유했던 추억 속에 박제된 것에 불과하다. 지난 경험을 새로운 사람과 수차례 나눈다 해도 고유의 추억은 변하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깊은 사랑의 형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슬퍼지려 하기 전에 그를 떠나보냈다. 받은 만큼 줄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면 몇 번을 사랑해 본들 같은 연극의 반복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나 자신으로 있지 못하고 기억 전달자 또는 안내자 역할에 그친다면 그건 너무 슬프지 않을까. 나의 존재가 슬픔이 아닌 기쁨의 이유에 속했으면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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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15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물감님이 이 소설을 좋아하시다니, 의외네요!!

물감 2023-08-15 22:02   좋아요 1 | URL
저도 제 의외성에 놀랐어요ㅋㅋㅋㅋ

잠자냥 2023-08-16 09:46   좋아요 2 | URL
그것은 물감님이 젊은 남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8-16 09:54   좋아요 1 | URL
젊은 남자인 저는 왜 쉰 네살의 주인공 입장에서 공감하고 있는지 ㅋㅋㅋㅋ
 
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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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이라면 내가 또 할 얘기가 많이 있지. 이건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길에서 누가 내 이름을 하이톤으로 부르길래 봤더니 중3~고1때 좋아했던 몇 살 위의 누나였다. 못 본 지 10년도 넘은 나를 바로 알아본 것도 신기했지만, 여전히 나와 편하게 웃고 장난치는 이 순간이 더 신기했다. 누나의 변함없는 모습은 내 오래전 날들의 감정을 끄집어내었고, 그 잠깐 동안을 나는 고등학생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실컷 반가움을 나누던 중에 중학생 하나가 우리한테 다가왔고, 누나는 자기 딸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아 그렇구나. 격정의 기쁨은 이내 곧 당황이 되었고, 이 형용 못할 감정을 최대한 누르면서 급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은연중에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랐던 것일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되자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흩날리던 벚꽃 잎은 어느새 눈송이로 변해 있었다.


츠바이크가 쓴 <감정의 혼란>도 내가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방탕에 빠져있던 롤란트는 한 문학 교수의 강의를 듣고 수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교수의 집 위층에 세를 얻어 교수 부부와 급속도로 친해진다. 이제 문학으로 하나 된 두 사람은 길 잃은 어린 양과 목자의 관계로 발전한다. 그런데 꼭 한 번씩 교수가 제자의 동경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게 아닌가. 모진 말을 내뱉기도 하고, 갑자기 잠수타버리는 등 교수의 돌발행동에 아주 그냥 멘탈이 바사사삭. 점점 시들어가는 롤란트를 보다 못한 교수 부인은, 그에게 절대 의존해선 안된다고 경고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알면 다친다는 뉘앙스만 풍기는데, 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제자가 달궈질 때마다 교수는 얼음 물을 들이붓는다. 제동장치 차원에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일편단심이 그렇게나 잘못인가. 병 주고 약 주고가 반복되다 보니 스승에 대한 사랑은 이내 방탕과 원망으로 이어졌다. 떼쓰는 어린아이가 되어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를 일방적으로 탓하게 된 것이다. 그의 투정을 받아준 건 교수의 부인이었고, 자신의 만행을 후회한 롤란트는 그길로 떠나갈 채비를 한다. 이때 사라졌던 교수가 돌아와 제자의 푸념을 듣고, 이제까지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다. 서로 간에 오해를 풀긴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돼버린 두 사람. 감정의 터닝 포인트가 이들에게 몇 번이나 찾아온 건지. 예나 지금이나 인생은 타이밍이다.


일인칭시점의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가슴속에서 맴돌던 사랑의 언어들은 끝내 호소력을 잃었지만 그 마음을 교수가 몰라준 것은 아니었다. 제자의 앞날을 내다본 스승이 나름의 결단을 내렸던 건데, 그 역시 혼란했던 이유로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다. 나는 적나라했던 롤란트의 감정보다도, 설명이 없다시피 했던 교수의 심정에 더 마음이 동하였다. 감정이라는 건 움직여야 할 때보다 멈춰세워야 할 때에 더 많은 힘을 쏟게 되어있다. 그런 이유로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이 더 아픈 법이다. 하여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 때마다 차라리 누가 대신 밀고 당겨줬으면 싶어진다. 교수와 제자도 그래 보였다. 서로가 원하고 있는데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의 잔인함. 사랑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지만 때론 그것이 상대를 찔러 죽이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는 하나 어쩐지 알 것 같아서 자꾸 망설여지는 것이다. 나처럼 멘탈 바사삭이 지긋지긋한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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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23-08-1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것은 교수의 동성애적 사랑을 표출하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 아니었나요?

물감 2023-08-16 08:03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안간힘이 맞습니다. 다만 교수가 자신의 사랑과, 제자의 사랑의 현주소를 잘 파악했다고 봐요.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하는 바둑처럼, 제자에 대한 사랑이 커져갈수록 그의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 싶었을 거구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좋아해준 사람이 나타났으니, 결말을 알아도 현재의 게임을 즐기고는 싶었겠죠. 그래서 영영 안볼 것처럼 매몰차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교수 시점의 내용이 적다보니 독자의 상상으로 채워야만 하나, 교수 자신보다도 제자를 지키려는 사랑의 번민으로 느껴졌어요. 저였어도 스승의 돌발행동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