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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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작품을 몇 권 읽어본 바, 나는 이 작가를 막 좋아하지는 않을 듯하다. 작품성은 우수하지만 스타일이 영 별로랄까. 나는 인간의 심리를 깊게 다루는 작품을 매우 좋아한다. 서머싯 몸의 작품들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으나 계속 읽어봐도 저자의 통찰이나 깨달음에 공명하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그는 몇 발자국 떨어져서 얘기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헤르만 헤세의 경우, 자신을 작중 인물에 대입하여 삶과 고뇌를 몸소 풀어가곤 하는데, 서머싯 몸은 늘 동떨어진 화자의 입장에서 관찰만 하고 있어 수박 겉 핥기의 심리 묘사로 그칠 때가 꽤 있다. 무심하게 툭 던지는 그의 고찰들은 어쩐지 ‘아님 말고‘처럼 들린단 말이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것을 의도적인 장치라고도 하던데, 독자의 생각과 상상이 마음껏 개입되기를 바랐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걸 떠넘기려 한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간 이 분도 썩 친절한 작가는 아니올시다.


<달과 6펜스>는 명성에 비해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갑자기 화가가 되겠다고 직장과 가족을 버리고 달아난 남자의 설정이야 세상에 온갖 별종이 다 사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멀쩡하던 사회인이 하루아침만에 인간성을 개나 줘버린 괴짜가 돼버렸다는 건 납득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이 작품도 화자가 주인공의 주변을 맴돌면서 기록했기 때문에 매끄럽지 못한 구간이 많은 편이다. 그냥 체념하자. 런던에서 파리로 건너간 스트릭랜드는 거렁뱅이처럼 살면서도 불평이나 탄식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요소들이 없어서 좋아했다. 그래야 미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원하던 그림을 마음껏 그려보지만 정작 그는 타인에게 작품을 보여주거나 전시하거나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럴만한 실력도 못되었거니와 그가 미술을 대하는 태도나 철학은 일반 예술가의 것과 영 딴판이라 더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 독보적인 괴짜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스트릭랜드야 대놓고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라지만 그 밖에 인물들도 참 아이러니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으로 엉터리 삼류 화가인 D와 그의 아내인 B에 대해 말해보자. 넉살 좋은 동네 바보인 D는 스트릭랜드의 허접한 그림에서 신들린 재능을 훔쳐본 뒤로 그를 숭배한다. 어느 날 몸져누운 스트릭랜드를 집에 데려와 요양해 주자는 남편을 극구 반대하는 B는, 그의 설득에 못 이겨 이 돼먹지 못한 괴짜 환자를 돌보게 된다. 그 결과, 아내는 환자에게 마음을 뺏기고, 남편은 아내에게 버림받아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가난한데다 볼품없는 외양에, 이성을 돌같이 여기는 스트릭랜드의 어디가 좋아서 바람이 났을까. 아무튼 고상했던 내조의 여왕은 갑자기 악녀로 돌변하더니 관능의 세계로 훌쩍 떠나버렸다. 반면에 순수를 잃어버린 D는, 스트릭랜드를 손봐주려다가 그의 그림을 보고 대뜸 용서해 주기로 한다. 고통과 감정을 전부 뒤로할 만큼 경외스러운 예술가의 재능이라니. 보다시피 이 사람들의 변덕과 충동은 누구나 이해하고 받아들일만한 사이즈가 아니다. 내 식대로 말해보자면, 열렬히 추구하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으니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드는 게 당연하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괴팍하고 불경하게 보일 테지만, 당사자들은 신의 땅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얼마나 황홀하겠는가. 하여 아무나 이해할 수 없고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예술가의 정신세계라는 말이렸다. 그러니까 예술 분야에 영안을 가졌느냐 아니냐에 따라 판가름이 나는 것이므로, 당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화자는 도덕과 윤리에서 한참 벗어난 비인간적인 스트릭랜드를 경멸하면서도 그에 대한 관심을 끊지 못한다. 이 괴짜의 흥미로운 점은, 어떤 고난과 고통에도 내색 한 번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끝내 문둥병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도 화가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이미 혼과 영이 신의 세계에 입성해있으니, 육신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일 테다. 그렇기에 죽음도 두렵지 않았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힘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 테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위대한 정신은 인정하겠다만, 그 하나 때문에 자신의 결여된 부분을 못 깨닫는 건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리 결핍에서 싹트는 예술이라 해도 전 과정이 괴로워야 할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사실 이건 인물보다도 작가의 철학과 사상이 더 중요하겠지. 서머싯 몸도 전쟁을 겪었던 사람이라서 그런가, 문장 곳곳에서 증오심이 배어 나온다. 그 때문에 저자의 풍자소설들은 대중성이 약한 편이다. 호소력이 딸리니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여하튼 내용은 잊어버려도 제목만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작품이다. 이상 세계를 의미하는 달과, 물질세계를 의미하는 6펜스라니. 진짜 끝내주게 잘 지었다. 그런데 작중에서는 이 제목에 관해 언급하는 장면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번에 읽었던 <케이크와 맥주>도 그렇고, <면도날>도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서머싯 몸의 스타일이랄까. 늘 항상 몇 발자국 떨어져 있으려는 인상을 받는다. 누군가는 시크하다고 하겠으나 내게는 그저 성의 없는 태도로만 보인다. 한 번씩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져놓고도 금방 돌아서 다른 화제로 넘어가버리는 게 아주 습관이다. 서머싯 몸이 생각하는 작가란, 판단하기보다 알고자 하는 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198p). 과연 그 말처럼 호기심도 넘치고 관찰도 많이 한다지만 딱 거기까지 일뿐이다. 판단할 생각이 없다 보니 사유들은 한층 더 깊어지지 못한 채 붕 떠버리는 글이 되고 만다. 본인의 호기심만 충족하면 된다는 듯한 저자의 이기심을 나는 줄곧 지적하고 싶었다. 뭐 누가 알아주겠냐마는. 그리 좋아하진 않아도 이이의 작품들은 계속 읽어볼 생각이다.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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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16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제가 서머싯 몸이 안땡기는 이유가 이거였군요~! 저도 왠지 괜찮기는 한데 뭔가 손이 안가더라구요 ㅋ 물감님은 도스토예프스키 스타일이신거 같아요~!!

물감 2023-11-16 11:33   좋아요 1 | URL
늘 어긋났던 우리 NF끼리 드디어 통하는 게 생겼군요 ㅋㅋㅋ
서머싯 몸은 애매한 가시같은 불편함이 있어요. 워낙 풍자하길 좋아하는 작가라, 독자들도 바보 만드는 걸 좋아하는 듯 하고요. 하지만 저는 바보가 아닌지라, 작가의 놀음에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핳. 도끼옹 작품은 최대한 출간순서대로 읽고 싶은데 책이 없어서 잘 안되네요. 제가 된발음을 싫어해서 열린책들 도끼옹 작품을 안 읽습니다. 물론 창비도 된발음이지만........

stella.K 2023-11-16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싯적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시크한게 나름 좋았고 저도 전작은 아니어도 몇 작품은 읽어 봐야지
해 놓고 여태 못 읽고 있네요.
다시 읽으면 저도 물감님과 같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귀가 좀 얇은 편이라서 말이죠.ㅋㅋ

물감 2023-11-16 19:27   좋아요 1 | URL
어떻게 감상이 다 똑같겠어요. 저같은 미꾸라지도 좀 있어줘야 건강한 서평문화가 생기는 법 아니겠습니까ㅋㅋㅋ 실망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인간의 굴레에서>는 기대 좀 하고있습니다🙂🙂🙂

stella.K 2023-11-16 19:40   좋아요 1 | URL
미꾸라지! ㅎㅎㅎㅎ
겸손하시긴. 그러고 보니 추어탕이 생각나는군요.
지금까지 탁 한 번 밖에 안 먹었는데. ㅋㅋ

물감 2023-11-16 20:31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추어탕이 급 먹고싶어지네요. 몸 보신할 때인가 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건강식으로 챙겨드시길요^^

페크pek0501 2023-11-16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 고갱을 모델로 썼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소설 같아요. 저도 리뷰를 쓴 적이 있지요.
어느 집에서 기거하다 그 집 부인과 눈이 맞고 함께 떠나기로 하잖아요. 그 반전이 충격적이었어요. 그 화가를 싫어한다고 했던 부인이 갑자기 자기 남편을 버리고 그 화가를 사랑하다며 따라가겠다고 나서잖아요. 멋진 반전이었어요. 여기서 작가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고 봤어요. 인간은 그럴 수 있음을 작가는 안 거죠.
사랑 따위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하는 한 예술가의 생애도 신선했어요.
저는 이 소설보다 인간의 굴레에서, 를 더 좋아합니다. 명문장이 많거든요.

물감 2023-11-16 23:16   좋아요 1 | URL
즐겁게 읽으신 분들한테 어쩐지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지만.. 이해해주셔요ㅋㅋ

음. 저는 화가를 따라가버린 부인이 그다지 충격이진 않았어요. 작가가 인간의 변덕스러움을 말하고자 이 책을 쓴 것은 아닐 테니, 요 이해안가는 충동을 독자들한테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가 관건이지 싶습니다. 과연 작가는 온갖 말들로 열심히 설명하고는 있는데요, 고것이 썩 와닿지가 않더란 말이죠. 물론 예술이란 게 알아듣기 쉬운 영역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저는 리뷰에 적은대로, 추구하던 꿈과 이상의 세계를 만난 사람들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는 말로 정의내렸습니다. 지금으로선 그것이 더 저와 독자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말 같거든요. 작가가 예술가들의 열정은 잘 설명했지만 예술가들이 남다른 것에 대한 이유는 들지 못했습니다. 전 이런 게 서머싯 몸의 무책임한 태도로 보여져요.

<인간의 굴레에서>는 화자(관찰자)가 아닌 작가 본인의 이야기라길래 기대하고 있어요. 명문장도 많다고 하시니 더 기대됩니다. 분량의 압박이 좀 크긴 하지만........

페크pek0501 2023-11-18 10:48   좋아요 1 | URL
오! 그런 자기만의 취향과 소설에 대한 안목, 훌륭해 보입니다.
한 수 배워 갑니다.^0^

물감 2023-11-18 14:06   좋아요 2 | URL
쑥스럽네요ㅎㅎ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coolcat329 2023-12-31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간의 굴레에서> 기대가 됩니다.
<달과 6펜스>는 아무래도 엄청난 예술가 이야기이다 보니 더 붕 뜬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이해하기 힘들더라구요. 꼭 이해하지 않아도 되지만요.ㅎㅎ

물감 2023-12-31 13:09   좋아요 1 | URL
문학이 다 그렇지만 유독 이 작품은 이해냐, 공감이냐를 두고 싸우는 기분이랄까요. 저는 보통 공감파인데 이 작품은 왜인지 이해파로 접근하게 되더군요. 주인공의 정신세계가 워낙 남달라서 말이죠. 결국은 이해 못했어요. 차원이 다른 갑다 하고요 ㅋㅋㅋ
본문에도 썼지만 전 서머싯 몸의 스타일이 썩 달갑진 않아요. 그래도 아주 간혹 이것봐라? 하는 통찰이 은근 맛있어서 계속 읽어는 보려고요. <인간의 굴레에서>는 분량의 압박이 있지만... 새해에는 읽어보렵니다 ㅋㅋㅋ
 
찌질한 악마 새움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솔로구프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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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춥고 하니까 러시아 문학이나 읽자 싶어 뒤져보다가 이 작품을 발견했다. 무려 도스토옙스키 다음으로 가장 완벽한 러시아 소설이라는데 그렇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어줘야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찌질 감성의 끝판왕이 나온다고 하니 이래저래 기대가 컸다. 그래서였을까. 아무리 읽어도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고, 갈수록 반복되는 이야기에 그만 질려버렸다. 역시는 역시나였다. 평이 화려한 작품들은 경계가 필수인데, 러시아라고 다를 줄 알았던 건지 방심했다가 또 낚였음. 퉤에.


중학 교사인 페레도노프는 오만함, 야비함, 비굴함, 졸렬함 등등 나쁜 것들만 죄다 갖춘 역대급 빌런이다. 인성 파탄자에다 수업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선생이 되었는지부터가 의문이지만, 그와 결혼을 원하는 여자들이 줄을 섰다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라니, 뭐 이런 설정이 다 있냐. 감정 그래프가 쉼 없이 오르내리는 이 빌런은 헛된 망상을 즐기며 그에 따른 폭언과 거친 행동도 아끼질 않는다. 이는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람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근데 이상하게 주변인들이 주인공의 망나니 짓을 잘만 받아줘서 당황스럽지만 그냥 러시아인들은 다 이런갑다 하게 된달까. 아무튼 등장 인물들이 쾌활과 광기의 중간쯤에 있는데, 일일이 묘사하기도 귀찮으니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참고로 이 작품에는 멀쩡한 인물이 없다시피하다.


동거 중인 사촌 동생 B는 페레도노프와의 결혼을 꿈꾼다. 콧대 높은 오빠를 낚기 위하여, B와 혼인하면 빌런에게 장학관 자리를 내준다는 공작부인의 약속을 꾸며놓는다. 그게 뻥인 줄도 모르고 동네방네 떠들고 자랑하고 다니는 빌런과, 사태의 진실을 알고도 장단 맞춰주는 모든 사람들. 그를 놀려먹는 게 마냥 즐거운 사람들에게서, 그동안 페레도노프를 얼마나 재수 없어 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걸 끝내 알지 못했으니 이 작품은 어떤 교훈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를 막 풍자하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찌질한 사람들‘이 제목으로 딱이겠던데.


B한테 속은 줄도 모르고 승진할 생각에 들떠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주인공. 반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려 들거나, 음식에 독을 탄다거나, 마법을 부린다거나, 동물로 둔갑하여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피해 망상에 빠져든다. 물론 원래부터 정상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 수치가 한참을 초과하고 있어, 그나마 귀엽게 봐주었던 허세나 허언증도 더 이상 꼴 보기 싫어질 정도로 변해버렸다. 즐거워했다가, 불안에 떨다가, 윽박지르다가, 혼쭐나고 깨갱했다가, 다시 행복에 겨워하는 사이클의 무한 반복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삐뚤어진 자기애‘로 똘똘 뭉쳐있긴 하지만 저밖에 모르는 유아독존은 또 아니라서, 도대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지 작가를 이해 못 하겠더라. 해서 메시지 생각 안 하고 그냥 읽었는데 심지어 재미도 일관되게 없었다는...


그래. 사람은 누구나 악한 마음을 품고, 마음 속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해. 그 개개인의 악마를 인물화하여 인간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고 싶었다 치자고. 그렇담 최소한의 성공과 실패, 상승과 몰락이 나와줘야 하잖아? 근데 이 작품은 정말 모든 사람들이 추잡해서 누가 더 낫다 아니다를 논할 수가 없다. 주인공이 역대급 빌런이면 뭐 하나. 전혀 돋보이질 않는데 말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찌질함과는 거리가 있어서, 차라리 ‘창비‘의 <허접한 악마>나, ‘책세상‘의 <작은 악마>가 더 나은 제목일 듯하다. 이런 게 도스토옙스키의 뒤를 잇는 희대의 명작이라니. 회초리가 어디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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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1-10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회초리 ㅋㅋㅋㅋㅋㅋ
엄청 그럴 듯한 해설은 안 붙어 있나요?

물감 2023-11-10 22:10   좋아요 2 | URL
해설은 없고 저자와 역자의 인터뷰집이 있는데요, 도통 무슨 얘긴지 모르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

구단씨 2023-11-10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직업이 혹시 코미디언인가요? 왜케 웃겨요. ㅎㅎㅎㅎㅎ
처음 소개부터 진짜, 막장인지 또라이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 인간 마냥 웃기네요.
근데, 물감님 리뷰도 너무 재밌어요. 까르르르르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던 처음 기억은 잊고, 그냥 ‘재미도 일관되게 없었다‘는 문장이 강렬하게 남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11-11 11:34   좋아요 0 | URL
막장에 돌아이 맞습니다ㅋㅋㅋ 아아 간만에 까칠해지네요. 그치만 구단씨 님을 웃겨드렸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 한국의 막장드라마가 훨씬 낫습니다😀😀😀

새파랑 2023-11-11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로구프 다른 작품이 있나 찾아봤는데 없네요 ㅋ 전 물감님 덕분에 처음 들어본 작가인데 내용은 특유의 러시아 스타일인데 구성은 좀 허술한가보네요 ㅋㅋ 화려한 평에 낚이면 안되나 봅니다 ~!!

물감 2023-11-11 11:38   좋아요 1 | URL
ㅋㅋㅋ진짜 정 읽으실거면 창비 번역으로 읽으세요. 근데 비추하고 싶어요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14 11:48   좋아요 0 | URL
술파랑 한번 도전해봐요. ㅋㅋㅋ 창비 <허접한 악마>로 읽었는데 저는 좋았는데...?! 별다섯줬었다능. 내가 허접한 인간이라 그런지 공감 막 가던데....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1-14 12:02   좋아요 0 | URL
전 찌질하고 허접하니 딱 맞겠네요 ㅋㅋㅋ

물감 2023-11-14 21:39   좋아요 0 | URL
사회를 풍자하거나 여러 인간 군상을 다룬다고 보기엔 너무 고만고만하고 평범(?)하거든요. 그냥 인간은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추악한 존재다,라는 걸 말하는건지... 창비에는 해설이 있을테니 읽어보시고 공유좀 해주세요. 이 책은 해설이 없어요 ㅋㅋㅋ

잠자냥 2023-11-14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창비 <허접한 악마>로 읽었는데 재미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3-11-14 12:26   좋아요 0 | URL
이 책이 허접한 악마예요? ㅋㅋㅋ 책 제목 바뀌면 다른 책 같아요 ㅋㅋ 창비랑 표지가 완전 다르네요.

잠자냥 2023-11-14 20:57   좋아요 1 | URL
네 <허접한 악마>인데 허접과 찌질의 어감 차이도 꽤 크네요;

물감 2023-11-14 21:32   좋아요 1 | URL
그런데 허접하다는 말도 썩 안 맞는데요? 뭐가 허접하다는 거지...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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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는 처음으로 친구 따라 낚시를 갔다. 이것은 활동 반경이 매우 좁은 나에게 매우 큰 결심이었는데 지금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이 갑갑함을 풀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당장 서해로 달려가 자리 잡고 물멍을 때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동안 머리에 가득했던 잡생각들을 한 가지씩 흘려보내었다. 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 자아가 생길 무렵부터 줄곧 해오던 질문이다. 지금 나이의 두 배쯤 살면 그 질문에서 자유로워지게 될까. 확신은 못하겠군. 젊었던 시절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다는 유명 연예인들의 인터뷰를 종종 듣는다. 그것은 단지 치열했던 지난날들이 끔찍해서가 아니라, 삶에게 질문을 받을 때마다 꼼짝 못 했던 자신이 싫어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이 그때보다는 정답에 가깝다 할 수 있겠고, 더는 막연하게 살던 과거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욕심도 미련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고 초연해지기까지는 많은 투쟁과 시행착오와 감정 소모가 있어야겠지. 그걸 생각하면 오늘의 방황은 순례자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리라.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무빙>의 주인공이 엄마에게 소리친다. 나는 내 성격이 너무 싫다고. 이렇게 소심하고 남 눈치만 보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너무 내 얘기 같아서 그만 울어버렸다. 우리 집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전학을 다니지 않았다면. 차라리 학원이라도 다녔더라면.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법을 몰라서 점점 혼자가 된 나는, 그렇다고 혼자서 잘 노는 편도 아니었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어지자 언젠가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답답스러운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중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팀장님이 활기차고 파이팅 넘치는 여성분인데, 어떤 날은 텐션이 낮은 채로 출근하셨다. 그때 나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감기 걸리셨나? 매출 떨어진 거 때문인가?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아픈가? 어제 잠을 못 주무셨나? 아님 내가 뭐 잘못 보인 게 있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괜히 긴장하게 되는 거다. 그냥 무슨 일 있냐고 가서 물어보면 될 텐데, 이 간단한 일조차 쉽게 나서지 못하는 어른으로 커버렸다. 타인의 표정, 말투, 몸짓, 그 밖의 분위기에서 읽히는 감정의 빅데이터가 모든 상황에서 나를 조여온다. 그럴 때면 신경세포의 on/off 버튼이 있었으면 싶다. 남들은 다 신경 쓰고 잘만 사는데 어째서 나만 이렇게 감정의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겁먹고 쩔쩔매고 긴장하고 그래야 할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같이 있으면 에너지를 뺏기게 되어, 집에만 오면 녹초가 된다. 심지어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나는 혼자 지내야만 할 팔자인가.


능력이라도 있으면 프리랜서를, 깡이라도 있으면 1인 방송을, 손재주라도 있으면 뭔가 뚝딱거리는 일이라도 해볼 텐데, 아무것도 없는 나는 할 수 없이 사람들과 잘 지내야만 한다. 물론 눈치 보던 습관 덕분에 사회성은 나쁘지 않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아쉬울 게 뭐 있어!라고 하고 싶지만 나는 막 칼 같은 성격이 못될뿐더러,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신경 쓰기 바쁘다. 상대방은 내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하는데 이런 게 잘 안된다. 정말 제3자가 보면 하등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 쏟는 일로 보일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증상들이 자의식 과잉의 한 부분이란 것도 잘 안다. 고쳐보려고 이런저런 훈련을 해보았지만 시간 지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태어났나 보다 하고 그냥 불편하게 살아간다. 보통 사람 간에 거리 두기가 좋다고들 그러는데, 나는 한공간에서 거리 두는 것보다 분리된 장소에서의 거리 두기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직장을 관두고 혼자 하는 소일거리를 찾아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어차피 나는 돈도 정말 안 쓰거든.


내 노후도 걱정이지만 계속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 걱정도 안 할 수가 없다. 언제 어디에 쓰일지 모를 비용을 생각하면 일을 계속해야 한다. 내가 좀 이상주의자라 현실감각이 둔한 편인데, 이런 나조차도 현실 걱정이 들 만큼 불안한 세상이 되었다. 이 자리에서 정권을 욕하려는 건 아니고, 슬슬 부모님을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피부로 와닿고 있어서이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정말 사랑한다. 부자지간에도 서먹함이 없고, 모친하고도 통화를 자주 하는 제법 보기 힘든 유형의 아들이다. 두 분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진심으로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갖고 싶은 것도 못 사주고, 학원도 못 보내주고, 가족여행 한번 못 데려가고, 그러면서 자식을 혼내기만 했던 것들에 대하여 몇 번이고 미안하다 하셨다. 나는 괜찮아요. 두 분의 본심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때가 오고서야 나를 챙기시는 모습에 기분이 참 묘해진다. 가족 간에 좋았던 기억은 거의 없다. 뭐 그렇다고 나빴다는 건 아니고 아무튼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가정을 해본다. 차라리 가족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나도 좀 자립심 강하고 독한 성격으로 자라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어렸을 때는 나의 섬세함과 감수성과 공감력과 이타심이 나를 더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거나 무심하거나 간과하는 것들을 나는 캐치하니까 좋은 거라고 믿었었다. 바보같이.


성차별 발언을 하려는 건 아닌데, 하여간 나에게서는 수컷의 특성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여성 같다는 건 아니고, 중성의 매력도 아니니, 그냥 수컷의 세포가 좀 많이 부족한 경우라 해야겠다. 나의 얼마 없는 인맥의 대부분이 여자인데, 남자보다 여자랑 대화가 더 잘 되고 좀 더 나다움을 갖게 된다. 남자들 사이에선 뭐 투명인간 취급인데, 그래도 여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코드가 제법 맞아서, 나는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왜 하필 남자로 태어나서 이 고생인가 싶다. 나에게 인생 2회차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행복지수 높기로 소문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사계절의 자연을 만끽하는 초절정 인플루언서로 살아보고프다. 이건 그냥 해본 소리고, 진짜 희망 사항은 ‘평범한‘ 인간으로 무난하게 살아봤으면 한다. 내가 말하는 평범의 기준은, 뭐든지 과하지 않고 적당한 걸 의미한다. 요즘은 일반인 되는 것도 힘들다고들 하는데, 평범하기가 부자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세상이다.


나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부모님이 바르게(?) 키워놓은 거라 해두자. 내가 나를 잘 아는데, 술이든 담배든 맛 들였다 하면 누구보다도 중독자가 될 거라 자부한다. 이렇게 세상 살기가 버거운 어린 양이 기댈 곳이라곤 글쓰기밖에 없어서 이런 새벽시간에도 잠 안 자고 키보드를 두들기는데, 니코틴과 알코올이 주는 위로를 어떻게 마다하겠냐고.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갑자기 생각난다. 군대에서 동기가 말하길, 내가 그렇게 한숨을 자주 쉬더란다. 듣기 싫으니까 제발 그만하라고, 그거 꼭 고쳐야 될 습관이라고 진지하게 말해주었다. 이 한숨 중독자는 겨우 고치고 전역을 했으나, 얼마 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면서 다시 한숨 중독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중독이란 건 연장된 현실 회피의 결과인데, 여기서 빠져나와 현실과 마주하려니 얼마나 무서운가. 그래서 중독은 또 다른 중독으로만 벗어날 수 있다. 금연하려고 씹은 금연껌에 중독되었다던 모 연예인의 말처럼. 생각의 중독을 끊으려면 뭐가 좋을까...


<명랑한 은둔자>에는 나의 고민과 감정의 결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가득 있다. 하여 책을 리뷰하는 대신에 저자와 공명하는 나의 이야기들로 채워봤다. 에세이 형식의 리뷰라 치지 뭐. 근데 참 저자도 어지간히 세상과 맞지 않는 이방인이더라. 캐럴라인 냅의 책들은 계속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지난 주만 해도 막 단풍이 들고 있었는데 벌써 낙엽이 지려하고 있다. 매년 가을은 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고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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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11-05 0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내가 만약 남자로 태어났다면 물감 님 같은 모습이 아녔을까? 상상하면서요.ㅋㅋㅋ

물감 2023-11-05 08:27   좋아요 2 | URL
아이고, 절대 안됩니다요ㅋㅋㅋㅋ(결사반대 1인 시위 중)

새파랑 2023-11-05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시다니 부럽습니다 ㅜㅜ

눈치보는 것도 성격 때문인거 같아요. 눈치 없는 사람은 오히려 편하게 지내는데 ㅎㅎ

중독은 뭐든 안좋은거 같아요~!!

물감 2023-11-05 10:38   좋아요 1 | URL
밧줄에 묶인 새끼 코끼리가 생각나네요. 나중에는 밧줄이 없는데도 도망치지 못하는 모습이 딱 저 같습니다. 성장배경과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ㅎㅎㅎ 술 적당히 드시길 바랍니다. 새파랑 님을 오래오래 보고 싶거든요^^

stella.K 2023-11-06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은 딱 제 스탈이네요. 대화 잘 통하는 형제님 만나는 게 쉬운게 아니거든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ㅋㅋ
이 책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든데 저도 읽어보고 십네요.^^

물감 2023-11-06 14:19   좋아요 1 | URL
반가운 댓글이네요^^ 저는 마음만 잘 맞으면 카페서 쫓겨날 때까지 떠들 수 있답니다 ㅎㅎㅎ 이 책 정말 좋았어요. 생각보다 딥하고 심오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거부감 안들게 참 잘 썼더라고요. 아프고 병든 현대인들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그만입니다!

hugh79.go 2023-11-13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때 남들 캐치 못하는것을 캐치할때 ‘특별’ 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이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저주’ 에 가까운 기질이란 것을 깨닫고 있었는데 뭔가 많이 공감이 가네요.. 한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의 분리도.. 우리 같은 사람은 만나서 연대하기도 쉽지 않고.. 흑흑..

물감 2023-11-13 11:38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분이 또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놈의 특별함이 뭐라고 좋아했던건지 참. 인지 기능이 너무 발달하면 이렇게 생이 고달파지네요 ㅠㅠ 같은 사람끼리 만나는 게 최선일 듯 하지만 주변에 없어도 너무 없죠. 그냥 버틸 수 밖에요 ㅎㅎㅎ 같이 잘 버텨봐요 ... 하하핳

얄라알라 2023-12-26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코올과 니코틴이 아닌 생각의 중독~~와!!게다가 부모님을 생각하시는 그 ...좋은 마음!!알라딘 서재 플친님들께서 물감님께 호감을 보이시는 와중에 저도 얹어봅니다^^ 와! 물감님!

물감 2023-12-27 09:56   좋아요 0 | URL
푸념 같은 글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 비우고 싶어서 독서하는데 오히려 생각만 가득해지네요 ㅎㅎㅎ 연말 잘 보내시구 맛난거 많이 드세요 ^^
 
고래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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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면서 한동안 떠들썩했던 천명관의 <고래>를 드디어 읽었다. 예약이 워낙 많이 밀려있어야 말이지. 그렇다고 사 읽기는 뭔가 거시기해서 암튼 오래도 걸렸다. 사실 이 작품은 호랑이 금연하던 시절부터 유명하긴 했었는데,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고래>만큼은 읽어줘야 한다느니, 김훈보다는 천명관이라느니 하는 첨언이 참 많기도 했다. 나는 그런 호들갑들에 오히려 거부감만 생기는데 이유인즉슨 대단하대서 읽었다가 낭패본 게 셀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이 먹고 여성호르몬이 늘면서 손발톱에 이빨까지 다 빠지고 나니까 좋고 싫고를 따지는 일이 뭐 대수냐 싶어 날름 읽어보았다. 만인이 극찬해도 난 절대 만점을 주지 않으리라 했거늘 얼마 못 가서 백기를 흔들고 말았다지. 완패다.


화자의 능글맞은 문체가 감점 요소였다. 아무리 구전 설화의 자유 형식이라지만 과하긴 했다. 허나 이런 단점을 완전히 압도하는 스토리텔링 앞에 고개가 절로 끄덕거렸다. <고령화 가족>에서는 몰랐는데 이 분도 타고난 꾼이셨군, 그래. 그나저나 금복 인생에 어찌나 굴곡이 많았는지 자세한 야기를 듣기도 전에 다음으로 훌렁훌렁 넘어가기 바쁜, 그러면서도 핵심만 콕콕 집어주어 감칠맛깔나는 썰들의 연속이었다. 금복은 생선 장수를 따라 가출한 뒤로 거처도 자주 옮기고 남자도 많이 만나고 이런저런 사업에 손대면서 정말 열심히도 살았다. 사업가의 재능도 있는 데다가 남정네들을 맘대로 주무르는 매력까지 갖춘, 시대와 참 맞지 않는 오버 스펙의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이미 소설의 형식을 한참 벗어나있기 때문에 어이가 없지만 어디 들어나 보자 했다가 어느새 과몰입되어 그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재밌으면 장땡 아니냐 하게 된달까. 여하간 걸작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책을 진지하게 리뷰하는 건 어쩐지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손가락 가는 대로 끄적이는 중이다. 일단은 계속해 보겠다.


남녀의 도킹 장면이 너무 잦아서 자연스럽게 하루키가 생각이 나더랬다. 그 많은 섹스 신들이 전혀 납득도 수긍도 안 가는 하루키의 것보다야 훨씬 자연스럽고 그럴싸했다. 작중 많은 수컷들이 금복을 거쳐가는데, 어떤 식으로 퇴장하든지 간에 나중 가서 재등장하여 금복에게 영향을 미치곤 한다. 질투에 눈이 먼 남자들의 못 볼 꼴 잔뜩 보고 사는 금복은 사람이 무섭고 삶에 지쳐서 또는 복잡다단한 이유로 살 곳을 계속 옮겨 다닌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일거리를 구하는데 그녀가 맡은 장사마다 대박을 쳐댔으니 제아무리 순수한 사람이라도 돈맛에 결국 길들여지는 법이다. 그게 뭐 어떤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제 인생을 언제나 정면으로 바라볼 줄 아는 금복이 짠하긴커녕 오히려 인간미가 있어 보였다. 오래 정착하는 성격이 못돼서 그렇지, 그녀는 사랑과 의리에 파이팅 넘치는 면모도 여럿 보여주었다. 다만 투자가 욕심이 되면서 주변인들과의 마찰로 서서히 고립되어가는 사실을 몰랐을 뿐. 그러나 매번 홀로서기에 성공했던 그녀라서 아쉬울 것도 없었으니 거참 이런 만렙 캐릭터를 갖다 쓰는데 재미없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힘들겠다.


서브 주인공이자 금복이 낳은 딸인 춘희의 존재감도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슈퍼 유전자라도 그렇지, 돌도 안돼서 몸무게가 30kg를 찍었다니, 뻥카도 정도껏 하시지 작가 양반... 아니 화자 양반아. 드디어 야기가 산으로 가나 보다 했더니 어랍쇼, 진짜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금복은 ‘평대‘라는 오지에 정착하고, 남정네 하나 잡아다 벽돌 공장을 세우게 한 뒤 벽돌 사업에 뛰어든다. 쪼매 시간은 걸렸지만 이 사업도 결국 성공하는데, 말도 못 하고 지능도 낮지만 피지컬만은 강호동의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하는 금복의 딸 춘희가 인부들을 따라 벽돌 만드는 일에 재능을 보인다. <고래>의 원제가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는데 그렇다면 진짜 주인공은 금복이 아니라 춘희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금복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말이지. 뭐 그건 됐고, 자신의 벽돌로 금복은 고래 모양의 극장을 세워 또 한 번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화재로 금복과 지역민들이 전부 타죽고 춘희만 살아남는다. 방화범으로 찍힌 춘희는 교도소로 끌려가 10년 뒤에 출소하여 벽돌 공장을 찾아간다. 텅 비어있는 공장과 마을. 죽음의 개념이 없었던 춘희는, 공장을 가동하면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예전 같은 활기를 되찾겠지 하며 홀로 벽돌을 찍어낸다. 그 외로운 작업은 그녀가 세상을 뜰 때까지 계속된다. 내내 울고 웃고 탄식하다가 끝에 와서 이만한 먹먹함이라니, 밀당의 귀재가 따로 없네 증말.


생략해서 그렇지, 비중 있는 인물들이 모녀 외에도 많이 있다. 각자의 서사와 배경들이 주인공들과도 엮이기 때문에 잘 입력해두면 재미가 배나 더 할 것이다. 끊임없는 개척 정신을 보여주었던 금복은 끝내 욕망에 삼켜지고 말았다. 춘희도 오지 않을 사람들을 기다리며 벽돌 만드는 일에 정신을 뺏겨 버린다. 결국 어미의 운명을 딸도 밟은 것일까. 이 작품은 금복이 생선 장사를 하던 때로부터 극장을 만들기까지, 나날이 발전하는 사회의 문명화를 그리고 있어 시대적 배경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명분의 인생과 동행하면서 얻은 게 무엇이고 놓친 게 무언지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더 쓰고 싶지만 졸려서 안되겠다. 요즘은 자기 전에 글을 쓰다 보니 꼭 마무리가 이렇네. 이해바라바라바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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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0-2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호르몬이 늘어났다고 해서 웃음 났어요.ㅋ(꼭 한 번 이상은 웃겨 주시는 센스! 그리고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듯한 ‘맘대로 문장‘을 곳곳에 배치하는 센스! 마치 쉬어가는 듯한...)
이 책 5백 쪽이 넘던데 완독하신 것 축하드려요. 요즘 3백 쪽 이내로 출간되는 책이 많은 추세인 듯한데 5백 쪽이 넘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라는 게 작가가 존경스러운 점이네요.
금복과 춘희의 이야기가 맛깔스럽게 요리되고 있는 것 같네요. 모녀의 삶 이야기를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였어요! 파이팅!!!

물감 2023-10-29 21:35   좋아요 1 | URL
알아봐주시니 다행입니다ㅋㅋ 5백쪽이 진짜 후딱 읽혀요. 가독성과 흡인력이 대단하네요. 문체가 인상깊어서 리뷰에다 적용해봤어요. 그랬더니 막히지 않고 글이 쑥쑥 써지는거 있죠? 신기한 경험했습니다ㅋㅋㅋ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은경의 톡톡 칼럼 - 블로거 페크의 생활칼럼집
피은경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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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이웃인 페크 님의 칼럼집을 이제야 읽었다(죄송합니다). 내가 글쓰기 하수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참 고마운 분이시다. 따라서 이번 글은 사심이 100% 담긴 것이므로 그러려니 하셔도 되고, 관심 없는 분들은 그냥 패스하셔도 된다. 근데 나의 사심과 별개로 좋은 글들과 사유 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뇌가 좀 딱딱해졌다 싶으면 이런 발상의 전환을 심어주는 책들도 좀 읽어주고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이 글은 손가락 가는 대로 막 쓸 거라 두서도 형식도 없을 예정이다(죄송함다). 아 그전에 이 얘기를 좀 해야 쓰겄다. 독서가들(거기다 글까지 쓰는) 중에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꽤 많은데 나는 이 부류를 매우 싫어한다. 일반화하면 안 되겠지만 지식인들은 대개 오만하고 편협하고 다분히 정치적이라서 그렇다. 그들 바탕에 깔려있는 우월의식이 담긴 글을 보노라면 불쾌지수가 팍팍 오른다. 반면 온화함 속에 위트 한 방울 넣는 분들이 아주 간혹 있는데 난 그들을 일명 ‘지혜자‘라고 분류한다. 지혜자의 특징은 선비나 양반처럼 차분하기만 한 게 아니라 유머러스함을 겸비했다는 데에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이기도 한데 간혹 터져 나오는 까칠함 때문에 잘 안된다(그래서 나는 시니컬함+유머 조합으로 간다). 아무튼 나에게 페크 님은 지혜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분이 쓰신 칼럼을 읽어본다면 내 말을 금방 이해할 것이다. 생활 칼럼이라는 분야의 성격도 있겠지만, 필자만의 부드러움이 (민감할 수도 있을)관전포인트를 지혜롭게 접근하고 받아들이게 해준다. 그래, 이런 점이 내가 지혜자들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뭐 어디까지나 내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취향 존중의 시대 아닙니까~ 그리고 잠시 ‘책 리뷰‘에 대해 좀 말하자면, 전공서나 실용서 같은 비문학은 몰라도, 문학을 리뷰할 때에 너~~~무 그 책에 대한 얘기만 쏟아내는 것도 좀 그렇더라. 리뷰의 컨셉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런저런 곁가지를 붙인 글들이 진짜 내 스타일인데, 그러고 보니 칼럼을 쓰는 페크 님의 글이 딱 내 취향이었네? 어쩐지 좋드라(저 잘하고 있습니까, 페크님?). N성향이 강한 나님은 질문 던지기와 사유 등등 다양한 코멘트가 붙는 글을 좋아한다(그래서 내가 대중적이지 않은 걸까). 아무튼 이런 나의 족보 없는 글과 문체를 부럽다고까지 해주신 페크님의 글은 내 것과 정반대의 느낌이지만 사고의 결은 항상 비슷했었다. 이렇게 책으로 연달아 읽어보니 더욱 분명해진다.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그나저나 평소에 글 좀 써본 사람들은 잘 알 텐데, 내 생각들이 그럴듯한 설득력을 얻으려면 짱구를 무지막지하게 굴려야 한다. 페크 님의 글에는 그런 수고와 노력들이 곳곳에 묻어있다. 예를 들면, ‘나의 베풂이 상대방에게 부담일 수도 있다(61p)‘는 본인의 깨달음이 설득력이 없으면, 그런가 보다 하거나 잘 모르겠다며 무심하게 넘길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해 서두에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인식(59p)‘을 미리 언급해둔 것이다. 글이란 것이 참 그렇다. 정석으로 배워 기본기 탄탄하고 논리적인 글도 좋지만, 아마추어의 부족하지만 진정 어린 글이 훨씬 더 대중적이고 호소력을 지닌다. 글쟁이라면 다들 한 번쯤 이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오는데, 그랬다가 괜히 개성도 잃고 글쓰기에 흥미가 없어진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지 생 초보자가 아니면 나는 말려주고 싶다. 좀 시간이 걸리고 빙빙 돌아가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결핍의 힘(136p)‘이라는 장에서는 열등감이 내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전공자, 그러니까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느끼는 장벽과 현타와 자격지심을 너무 안 좋게 보지 말자. 그런 게 있어준 덕분에 나도 이런 글 한편을 작성할 수가 있는 거고, 다양한 예술 문화가 탄생하는 것이니까.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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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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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19: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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