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 (물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loveoctave</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어른이란 무엇인가</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7 Oct 2026 18:30:48 +0900</lastBuildDate><image><title>물감</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4417181506642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loveoctave</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물감</description></image><item><author>물감</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외로운 남자 - [외로운 남자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7539623</link><pubDate>Sun, 27 Sep 2026 17: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75396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877&TPaperId=175396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4/57/coveroff/89546118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1877&TPaperId=175396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외로운 남자 (무선)</a><br/>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08월<br/></td></tr></table><br/>저는 어려서부터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인해 극 소심한 성격으로 자라났습니다. 친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이미 친해져있는 무리들은 저를 상대해 주지 않았죠. 그 같은 환경이 수차례 반복되다 보니 외로움은 극복의 대상이기보다도 그냥 때 되면 배고파지는 인간의 생리현상 같은 거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점점 세상에 흥미를 잃었고, 장난감이나 군것질 같은 즐거움에도 시큰둥한 태도로 살았어요. 내일이 기대되긴커녕 무의미한 나날들이 참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 &lt;매트릭스&gt;를 접하고서, 어쩌면 이 세상도 가상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영화 &lt;트루먼 쇼&gt;를 보고 나서, 이 현실도 그런 거라고 누가 말해줬으면 싶었었고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살면서 느껴온 괴리감들이 도무지 설명되지 않을 것만 같았거든요. 매번 세상은 한 편의 연극처럼 진행된다는 인상을 주곤 했습니다.<br><br><br>남들과 섞이지 못하고 늘 소외돼있던 저는 한국에 와서 적응 못하는 외국인들의 고충을 쉽게 알 수 있었어요. 아마 그래서, 나중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느낄 외로움은 국내나 국외나 피차일반일 것만 같았거든요. 아무튼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 소외, 외로움, 허무의 근원을 찾아보았지만 전부 허사였습니다. 누군가는 삶에 목적이나 이유 같은 건 없다고도 하고 이제는 저조차 그렇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삶을 볼 때면 억지로라도 그 답이 듣고 싶어지거든요. 근데 살면서 만났던 그 어떤 사람도 저와 같은 부류는 없었어요. 비슷한 정도는 있었어도 깊은 대화까지는 불가했죠. 그런 자리를 만들 때마다 내가 남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 저조차도 점점 그런 대화를 삼가게 될 뿐이었습니다. 왜 그런 말도 있었죠. 외눈박이 별에서는 양눈박이가 비정상이라고요. 나 자신이 지극히 정상임을 알고 있지만, 남들이 내게 보이는 반응에 그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그런 상황. 예. 지난 제 인생을 요약한다면 이 정도가 될 듯하네요.<br><br><br>다행히 문학 속에서는 저의 갈증을 작게나마 해소해 줄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특히 고전을 읽다 보면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곤 해요. 이번에 읽은 &lt;외로운 남자&gt;도 너무 제 얘기 같아서 별 다섯을 주었습니다. 소신 발언하자면, 부족함 없이 나고 자란 분들은 퍽 재미를 못 느끼실 겁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문학은커녕 이런 글조차도 찾아볼 일이 잘 없죠. 아무튼 책 소개에 앞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는데, 그만큼 제 영혼과 공명했던 터라 생각이 많아져서 그랬습니다. 이제 작품 얘기를 해보죠. 이름 없는 이번 주인공은 서른다섯 나이에 먼 친척의 유산을 물려받아 다소 이른 은퇴생활에 들어갑니다. 그는 파리 외곽의 한 아파트를 구하고 가정부를 고용한 뒤 느긋하게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죠. 술을 좋아한다는 것만 빼면 세상살이에 별 욕심이 없는 게 저랑 너무 닮았어서 좀 머쓱했습니다. 돈 걱정 없는 자유인이 된 기분도 잠시, 주인공은 따분한 일상에 온갖 잡생각이 밀려들어 온갖 철학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떨어져 더 이상 참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48p). 어쩜, 제가 느꼈던 괴리감을 이토록 적확한 표현으로 정리하다니, 완전 반해버렸지 뭡니까.<br><br><br>남들은 모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가정생활을 이어나갑니다. 반면에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주인공은 자신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며, 세상 모두는 존재하지 않는 쓸모없는 것들로 여깁니다. 이 말이 활자 그대로라면 앞뒤가 안 맞을 테지만, 이 작품에서의 존재란 매뉴얼대로 따르는 기계 같은 모습의 반대편에 있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만화 &lt;진격의 거인&gt;이 떠올랐어요. 주인공 에렌은 벽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들이 우리 안에 갇힌 가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벽 때문에 바깥 거인들로부터 보호받고 평화로이 살아간다 생각했죠. &lt;외로운 남자&gt;의 주인공이 느낀 것도 그와 동일합니다. 현실은 교묘히 짜여진 무대에서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무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없었죠. 물론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각자의 고민을 끌어안고 산다지만, 한낱 쾌락에 죽고 못 사는 인생들을 보노라면 정말 저것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싶은 제 생각과 일치해서 놀랐습니다. 저는 종종 세상 사람들이 게임 속 NPC 같고 저 혼자만 플레이어로 느껴지곤 했는데요, 이오네스코 작가도 혹 저와 비슷한 감상이 아니었나 합니다.<br><br><br>각종 형이상학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자 주인공은 철학적 사고를 멈추기로 합니다. 이렇게 막다른 길에 놓이면 체념하는 심정으로 쾌락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것도 얼마 못 가서 자신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처럼 주인공도 단골 식당에 가서 술을 자주 마시고, 여종업원을 꼬셔서 동거까지 해보지만 그런 쾌락들이 복잡한 내면과 불완전한 세상을 연결해 주진 못했어요.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행동들에 무슨 가치를 지니는지, 무의미한 일들에 왜들 그리 아등바등 사는지를 설명도 못할 거면서 잘만 떵떵거리고 사는 무리들도 그렇지만, 배가 부를 대로 불러서 이토록 권태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스스로가 저들과 다르면 뭐 얼마나 다를까 싶거든요. 맞습니다, 바로 제 얘기입니다. 그래봤자 나 역시 똑같은 사피엔스 중 하나이고, 좋든 싫든 이 사회에 적당히 물들어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며, 잘 참고 살다 보면 스스로가 외눈박이처럼 생각되기도 하거든요. 본인의 남다름을 감출 줄 알거나, 자기만의 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차라리 나아요. 이도 저도 아닌 회색 지대, 즉 어느 쪽도 속하지 못하는 이들이야말로 외로운 법이니까요.<br><br><br>일종의 정신승리처럼 들리겠지만, 돌연변이 혹은 괴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은 세상이 그들의 역량을 감당치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패션이 환호성보다도 야유를 받는 것처럼요. 솔직히 먹고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에게 철학을 논한다는 자체가 잘못이기는 해요. 종교는 구원을 약속하고 삶을 위로해 준다지만, 철학은 엄밀히 말해서 별 쓸모가 없거든요. 철학은 깊이 파고들수록 나를 세상에서 격리시키고, 나의 소외를 정당화해줄 뿐입니다. 공부 좀 했다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배움으로 인해 더욱 자유롭거나 홀가분해졌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잘 없어요. 그렇듯 실존에 대한 문제들은 누군가의 명료한 논문 따위로 해결될 게 아니죠. 이 결괏값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겨먹은 시스템을 받아들이며 비로소 내려놓는 법을 터득해요. 물론 거기에는 어떤 납득도 만족도 없겠지만요.<br><br><br>세상 돌아가는 시스템까지 따지려 들다니, 참 할 짓 없다는 핀잔과 조롱이 들려오네요. 맞는 말일지도 모르죠.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저는 어떤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태어나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저와 주인공의 자아는 무한히 증대되어 무대 뒤편으로 향하지 뭡니까. 무대 밖에서 수십억 인류의 고통을 마주한 사람은, 이내 그 고통이 전 인류에게 공평히 분배되지 않고 특정인에게 몰려있음을 깨닫습니다(86p). 그것을 안 이상 어떤 감동도 희열도 발견할 수 없으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곧 부재를 증명하는 것만 같았죠. 내가 지닌 추억들이 과연 존재했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단지 ‘있었던 일‘이라는 말로써, 그것이 존재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뭐, 좋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 멀쩡한 사람이 자꾸 죽음을 논한다면 이 또한 병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건실하게 사는 이들은 그런 대화가 마치 허무주의를 설파하는 것처럼 들릴 테고요. 순간에 충실하는 것과 순간을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나 우리 사회는 아무도 이 두 가지를 나누지 않아요. 따라서 무대 위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런 사람들이 만든 추억들도 존재했다고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제가 느낀 작품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죠.<br><br><br>후반부는 내란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혁명을 외치는 두 분파가 거리와 도시를 점령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전쟁에 흥미 없는 주인공은 집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몇 년이나 흘렀습니다. 다시 세상에 나온 그는 모든 게 바뀌었고 또 변해감을 목도하면서, 나 홀로 옛 세상에 멈춰있다는 사실을 깨닫죠. 또한 사는 방법을 몰라서 자신들을 지나쳐간 행위, 모험, 사랑에 대한 아쉬움으로 속상해합니다. 그러면서 과거 나에게 다가와 준 기회의 여신을 매번 뿌리쳤던 일들에도 후회막심이었고요. 누구라도 이런 후회를 할 테고,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들도 기회일 텐데 어째서 우리는 오늘 하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내고 있을까요? 듣자 하니 주인공을 떠나간 동거녀는 어느새 아이가 넷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었습니다. 이런 뼈아픈 소식을 듣고도 자신의 추억들이 살아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각본대로 살지 않는 것은 훌륭하지만 돌연변이라 해서 계속 숨어 다닌다면 정말 죽도 밥도 안되거든요. 아무튼 외로움의 최종 진화 형태는 자발적인 고독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왕따시킬 것까진 없고요. 아무쪼록 무대 밖에 서계신 분들께서는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안히 공연을 관람하시길 바랍니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64/57/cover150/89546118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645719</link></image></item><item><author>물감</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마이클 K의 삶과 시대 - [마이클 K의 삶과 시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7494909</link><pubDate>Fri, 04 Sep 2026 22: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74949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5972&TPaperId=174949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311/2/coveroff/895467597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5972&TPaperId=174949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이클 K의 삶과 시대</a><br/>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06월<br/></td></tr></table><br/>왜 한 번씩 그럴 때가 있죠. 내가 인생 설계를 잘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 말이에요. 대개 일이 계속 잘 안 풀린다 싶을 때에 그런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아마도 빠르면 사춘기일 것이고, 늦어도 취업 준비를 할 때쯤에는 크고 작은 좌절과 후회를 만나리라 싶은데요. 사실 그걸 알아차렸을 때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늦어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들 하죠. 차마 변화할 용기가 없는 우리들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길을 찾아낼 뿐입니다. <br><br>​<br>하지만 그저 그런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살아가다 보면,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삶의 가치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삶을 앞서나가는 선두 주자가 아니었기에 항상 몇 걸음 뒤에서 삶의 무대를 지켜보았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것이, 의외로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의 신봉자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각자 추구하는 관심사가 전부 다르고, 그 욕구가 얼마큼 충족되면 ‘그럭저럭‘ 지낼만한 삶으로 변모한다고나 할까요? 하여 겉 보기엔 그리 볼품없는 인생일지라도 그 자신은 제법 떳떳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었죠. <br><br>​<br>문학은 곧 영웅 서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웅 중에는 성공한 영웅도 있지만 실패한 영웅, 즉 안티 히어로도 존재해요. 1등만 기억하는 이 세상은 성공 못하면 실패라는 결론이 지배적입니다만 문학 세계에서는 얘기가 다릅니다. 실패자들도 제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에 저항하는 반反 영웅이기 때문에요. 따라서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모델과 일치하지 않을수록 일종의 독립투사라고 봐도 되겠네요. 그와 같은 시선으로 &lt;마이클 K의 삶과 시대&gt;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쿳시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영 글맛은 없더군요. 개인적으로 코맥 매카시의 &lt;로드&gt;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인상이었습니다. 딱히 특별할 게 없는 서사와 건조한 문체의 조합이었죠.<br><br>​<br>이번 주인공은 입술이 달팽이처럼 말려 올라간 구순열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신체적 결함을 가진 자들이 다 그렇듯 K의 삶 또한 녹록지 않았죠. 훗날 정원사가 되었지만 전쟁의 여파로 해고되고 살 곳을 잃어 연로한 모친과 함께 떠나기로 합니다. 허나 모친은 사망하고 홀로 남겨진 K는 곧 자연인으로 살아가는데요, 세상은 결코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어요. 경찰들에게 발각되어 수용소에 갇히고, 탈출했지만 후에 또다시 붙잡힙니다. 분명 그는 자유로웠지만 자유 신분까지는 아니었던 거죠. 강제로 끌려온 그는 수용소 내의 규범을 강요받으며 최하급 신분으로 강등됩니다. 아니, 잘난 구석이 하나 없다지만 그래도 멀쩡히 살아가던 개인이 한순간에 짐승 취급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K는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가려 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것조차 눈엣가시였던지 자꾸만 그의 삶에 개입했습니다. 이렇듯 살려고 아무리 손발짓을 해도 고통의 궤도를 벗어날 수 없는 게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닐까 합니다.<br><br>​<br>수용소를 탈출하고 은거 중이던 그는 또다시 연행되지만 아사하기 직전의 영양실조 상태라서 병실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를 맡게 된 담당 군의관은 이 사회성 없고 소통불가한 환자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되고요. 무엇보다 K는 수용소의 음식을 절대 거부했어요. K의 그같은 고집은 침묵 시위나 묵언 수행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자신과 맞지 않는 음식물일 뿐이었어요. 그처럼 원치 않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실험용 쥐처럼 대하는 세상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K에게서 양가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왜 저렇게 자신의 도덕과 신념과 원칙을 고수하지 못했을까. 무력하단 이유로 온갖 병폐들을 묵인해왔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br><br>​<br>저는 다소 한심하고 자기주장 한 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 친구에게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저 역시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별문제 일으키지 않고 잘만 지내는 타입이거든요? 하지만 세상은 어떻게든 저 같은 사람도 문제 삼고 헐뜯고 싶어 한다는 걸 날마다 실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세상에게 퍽 복종하지 않으려는, 세상과 짝하지 않으려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눈밖에 나는 겁니다. 뭣도 아닌 것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니는 게 아니꼬워 보일 테죠. 잘난 사람을 시기하는 것도 모자라 못난 사람한테도 시기하다니, 정말 촌스럽지 않나요?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게 세상의 이치라면,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정답이지 싶네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산다는 건 안정성과 정체성을 맞바꾸는 일입니다. 반대로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면 고생한 만큼의 확신을 얻을 테고요. <br><br><br>​요즘 인기 절정인 &lt;오디세이&gt; 영화의 주인공은 전통적인 영웅이죠. 하지만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영웅 서사를 각자의 삶으로 들여올 수가 없습니다. 영웅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마이클 K처럼 안티 히어로가 되는 게 나아요. 이 말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되시나요? 글쎄요. 세상에게 열심히 아부하고 굽신거려봤자 세상은 절대 우리 편이 아닙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던 말도 이제는 너무 낡아버렸죠.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아닌, 사회가 조종하는 꼭두각시로 살고 있음에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수가 옳다고 하는 것들이 각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아닌지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진리는 언제나 좁은 문 너머에 있는 법이니까요.<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311/2/cover150/895467597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3110204</link></image></item><item><author>물감</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모모 - [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7453679</link><pubDate>Sun, 16 Aug 2026 13: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74536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39995&TPaperId=174536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12/5/coveroff/89491399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39995&TPaperId=174536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a><br/>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03월<br/></td></tr></table><br/>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젊어서는 새로움을 쫓다가 나이 들어서는 익숙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그것이 나 자신과 꼭 가깝지만은 않거든요. 또 다른 익숙함을 발견하면 지금껏 동고동락했던 것들도 자연스레 뒷전이 되고 말아요. 사람이 ‘자아‘라는 복잡한 문제에 발을 담그게 되면 자신이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 무의식적인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수차례의 반복을 통해 제법 스스로를 파악했을 무렵부터 삶은 단순하게 흘러간 듯해요.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그런데요, 자아성찰을 밥 먹듯이 했던 제 자신의 정의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간다는 점을 종종 느끼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인간관계에 대한 긴긴 연구 끝에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매듭지은 사람이에요. 헌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이 틀렸다라기보다도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라고 보고 있죠. 이것은 저만의 오래된 익숙함이자 확고부동한 정의였지만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렇게 바뀌었어요. 이래서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들 했던가 봅니다.<br>​<br><br>어른들의 환상동화라 불리는 &lt;모모&gt;를 이제서야 읽었어요. 재미도 있고 메시지도 좋았지만 갈수록 전개가 SF 장르로 바뀌는 게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SF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탓이기도 하고요.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버려진 원형극장에서 홀로 살아가는 모모가 등장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꼬마 소녀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어 가는 등 다양한 활력과 위로를 받곤 했어요. 그러다가 이 마을에 회색 신사들이 나타나서 모두의 평화를 앗아갑니다. 그들은 시간저축은행의 영업사원들로, 낭비되는 시간들을 아껴야 한다며 모두를 설득했고, 그 말에 넘어간 사람들은 이내 여유를 잃고 매우 바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후로 모모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이 사태를 바로잡고자 하는 모모의 모험이 시작된다는 내용인데요. 다 읽고 보니 사태 해결이나 결말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대인들의 바쁜 삶에 대한 풍자였으니까요. <br>​<br><br>인류는 최초의 농업 문화를 시작으로 해서 지금의 4차 산업혁명까지 많은 발전을 해왔습니다. 기술의 진보 덕분에 지금 우리는 너무도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 더 여유로움을 가져다주었느냐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죠. 진보 사회에서 절대 만족이란 건 없으므로 현대인들은 이 편한 세상에서도 쉼을 얻지 못할 운명이라죠. AI 산업 쪽 분들에게 듣자 하니, AI가 일거리를 줄여준 게 아니라 또 다른 일거리를 만들어줘서 총체적으로 업무량이 대폭 늘어났다네요. 이렇듯 기술발전의 현대사회는,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겨 여유와 행복을 잃어버린 모모의 마을 분위기와 매우 흡사합니다. 작중에서 회색 신사들은 개개인에게 당신이 허비한 시간들을 합치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며, 아주 그럴듯한 계산법과 말들로서 우리가 그동안 헛살았다는 듯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들어보면 그게 꼭 틀린 말도 아니에요. 내가 시간을 좀 더 아껴 쓰고 잘 활용했더라면 원하는 학교나 직장과 스펙을 얻었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후회를 누구나 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내온 시간들과 자신의 행복이 비례한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리죠. 그래서 지금 큰 불만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내 삶의 방식들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착각과 번민에 빠져버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요즘은 SNS가 그런 문제의 원인이 되겠죠. 다들 부자에다 맨날 놀고먹는 모습들뿐인데 그렇지 못한 나는 지금 잘못 살고 있다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따라서 우리는 시간 낭비보다도 회색 신사들을 상대하지 않는 일에 더 주의를 기울어야 하겠습니다.<br><br>​<br>저는 살면서 총 세 번의 백수 생활을 겪었는데요, 바쁘게만 살다가 여유가 생겨나니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참 좋았거든요. 직장인일 때에는 아침햇살도 달갑지 않고, 커피 맛을 음미할 새도 없고, 시원한 매미 울음소리도 그저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백수가 되고 보니 한순간에 아름다워지지 뭐예요. 그래서 든 생각은요, 현대사회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내 스스로 여유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요즘 저는 독서를 줄이고 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리고 일찍 취침하는 패턴으로 바꾸었습니다. 건강에 신경 쓴 만큼 확실히 여유도 생겨났어요. 근무시간에 졸리지도 않고, 체력이 늘어나니 집중력도 높아지고, 직원들한테 화도 잘 안 나요. 이런 과정 속에서 제가 줄곧 정의해왔던 익숙함 들은 점점 낯선 것들이 돼가더군요. 여러모로 나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lt;모모&gt;에서는 시간을 도둑맞은 일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비교하는 삶에 대한 문제처럼 느껴졌어요. 유행의 민족인 한국은 남들이 하는 만큼 나도 하지 않으면 도태된 삶이라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는데요, 남들이 갓생을 산다 해서 나까지 그래야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보여지는 삶‘에 충실할수록 여유와 행복은 창문 열고 밖으로 새나갈 겁니다. 이것은 남들을 의식하지 말고 온전히 나에게만 시간을 쏟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아무튼 진짜 유용한 시간들은 나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유용하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12/5/cover150/89491399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7120556</link></image></item><item><author>물감</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서울의 선인 - [서울의 선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7408370</link><pubDate>Thu, 23 Jul 2026 2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74083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9348&TPaperId=174083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1/46/coveroff/k4121393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9348&TPaperId=174083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서울의 선인</a><br/>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제가 20대 초였을 때만 해도 세계 인구가 한 60억 명 정도였습니다. 2026년인 지금은 약 82억 명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보면 인구수가 말도 못 하게 늘어났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오늘날 전 세계는 바닥치는 출산율과 취업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약 20억 명이나 증가한 데다 경쟁자 수가 적을수록 취업에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구수가 크게 증가할 때마다 심화된 폭력성으로 자연과 문화들은 줄줄이 파괴되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가방끈 짧은 제 생각에는 지금보다 더 인구가 줄어들어도 될 듯하거든요. 유독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권의 출근길을 보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짜 숨이 턱턱 막히죠.<br><br>​<br>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동물들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사람이라고 뭐 다를까요? 현대인들이 극도로 예민해진 데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켜지지 않은 탓도 있다고 봅니다. 물리적, 심리적인 것들을 다 포함해서 말이에요. 자, 그러다 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이 사회 구조에 대해 불만인 자들이 온갖 방식으로 질서를 깨려고 할 겁니다. 거기에는 신분에 따른 사회계층에 대한 경멸도 들어있을 테고요. 가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 가운데서 멀쩡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범죄자가 아님에도 스스로를 선하다거나 건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요. 자아가 생겨났을 때부터 세계 멸망을 꿈꿔왔기 때문이죠. 아무튼 인구 밀도로 인해 도드라지는 사회 문제들을 볼 때마다 역시 한번은 리셋이 필요하다는 강한 확신이 듭니다.<br><br>​<br>반가운 김호연 작가님의 신간을 읽었네요. &lt;서울의 선인&gt;은 구약 성경 속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창세기 18-19장을 보시면, 죄악 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는 신 앞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간청합니다. 그 패역한 땅에서 열 명의 의인이라도 있다면 심판을 거두어 달라고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가족 외에는 전부 멸망했다는 내용인데요, 김호연 작가님은 이 ‘예정된 심판‘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작중 배경이 서울이라는 말에, 멸망당해도 싸다는 생각부터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요. 제가 선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br><br>​<br>철물점 주인인 김재근 씨는 어느 재미교포 손님에게 묘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자기는 신의 명을 받들어 타락한 도시인 서울을 멸하러 온 천사로써, 의인 하나라도 발견한다면 심판을 보류한다는 뭐 그런 얘기였어요. 믿을만한 이유는 요만큼도 없었지만 어느덧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천사 손님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합니다. 천사가 그를 지목한 것은 주인공이 서울 의인상 1회 수상자였기 때문인데요. 수상자들 중에서 여전히 의인 다운 자가 있다면 심판을 멈출 테니, 1회 수상자가 직접 찾아봐달라는 청탁을 받게 된 겁니다. 보수까지 넉넉히 받은 김재근 씨는 이내 씁쓸한 과거가 떠오릅니다. 검은 돈을 챙긴 혐의로 불명예 퇴직을 했던 경찰이라는 사실을요. 의인상이라는 타이틀에 먹칠한 김재근 씨는 왜 천사에게 선택받았을까요? 천사들이 그의 사정을 모를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이제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을까요? 수만 가지 의문점을 뒤로한 채 주인공은 의인상 수상자들을 만나러 갑니다.<br><br>​<br>듣자 하니 수상자들은 모임을 몇 번 가졌던가 봅니다. 아무튼 반신반의하며 만나본 동료들은 더 이상 의인이라고 할 수 없는 몰골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완전히 잘못 봤다 싶은 사람도 있었고요. 김재근 씨는 타락한 옛 동료들을 거울삼아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사람도 나이 먹으면 흔들리기 마련인데요, 하물며 인생의 오점을 남긴 사람은 두고두고 후회되지 않을까요? 이제 결과야 어찌 되든 김재근 씨는 지난날들을 사죄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그 바램과 달리 의인은 없었고, 자칭 천사는 열흘 뒤에 서울이 무너질 테니 멀리 떠나라고만 하네요. 고작 수상자 몇 명만으로 서울 전체가 타락했다고 보는 건 너무 억지스럽지만, 범죄자에다 도망자였던 주인공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br><br>​<br>김재근 씨의 순탄했던 인생이 전락하게 된 배경에는 제3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조폭들에게 쫓기던 한 여성을 구하여 의인상을 받고 특채 경찰이 되었던 주인공은, 자기가 평생의 목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싸움에서 패배하여 무리를 떠난 짐승은 얼마 못가 죽어버리고 맙니다. 대자연의 법칙이 그러하듯 밑바닥을 찍은 사람의 회생 또한 기대하기 어렵거든요. 그저 남은 생애 동안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면서 절망과 한탄으로 지낼 뿐입니다. 이처럼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여 숨만 붙어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뭐라 할 수도 없습니다. 순간의 실수나 방심으로 나 또한 패잔병이 될 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나와 당신은 이미 패잔병인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는 걸 수도 있겠죠. 그런 현대인들에게 김호연 작가는, 지난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마음이 있는지 떠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 그만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숨은 뜻이 아니었나 합니다.<br><br>​<br>현대 사회는 몇 번의 좌절만으로도 나를 완전히 녹다운시키고, 어떨 때는 완전히 나락 가게 만들어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게 합니다. 그런 피해자들 중 하나인 김재근 씨는 딱히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독자들과 같이 아주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어요. 그럼에도 천사는 일개 시민에게 세상을 구원할 사명과 역할을 주었단 말이죠? 저는 이 점이 아주 의미심장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요.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는 전제하에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꿀만한 힘을 가졌다고 볼 수 있어요.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처럼 얼마든지 각성하여 이전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 같은 성장을 기대하려면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믿어주어야만 하겠고요. 아무튼 적다 보니 리뷰가 옆길로 샜는데 뒤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었어요. 첫 단추를 잘못 꿰었으면 언발란스 룩으로 살면 된다고요. 이 얼마나 훌륭한 사고방식입니까. 부디 남은 생은 힙하게들 살아봅시다. 두둥탁.<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1/46/cover150/k4121393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1462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