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바보 예찬 - 당신 안의 바보를 해방시켜라!
김영종 지음 / 동아시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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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보라는 단어가 무척 친근하다. 아마도 나이 40대에 이 단어를 봤으면 ‘바보 같으니’하며 책을 던져버렸을 것도 같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변한 것인지 세상이 나를 변하게 한 것인지 요즘은 ‘바보’라는 단어만큼 정겹게 다가오는 것도 없다.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않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보는 그대로 믿는,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귀하다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쫒는 명예와 부를 그저 눈만 껌벅거리며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물론 상대방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그들의 모습 속에서 생명수와 같은 신선함을 느낀다. 

사람이 느끼는 불안과 고통의 대부분은 아마도 소유와 비교에서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가져야 할 것을 갖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 자신의 계획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가진 것이 남보다 못하다는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 등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가. 결국 바보는 고통스러울 것도 불안할 것도 많지 않을 것 같다. 가지고자 하는 것도, 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별로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바보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이들은 ‘바보’이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보’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바보’이기에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느낌 그대로 표현한다. 게다가 ‘바보’이기에 미래를 고민하지도 않고, ‘바보’이기에 자신만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바보’이기에 바보처럼 살고, ‘바보’처럼 살기에 남의 시선과 기준에서 자유롭다.

저자는 바보와 대비하는 종족을 현자라고 한다. 즉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사고가 진리이자 절대적인 가치이며, 그런 지식을 통해서만이 남보다 위에 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은 이유는 멍청한 현자의 모습 속에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지식이 나를,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자신을 현자라고 부르길 원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해맑은 미소를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저자는 현자가 세상을 위해 해 놓은 일은 세상을 문자 속에 가둬놓은 것 밖에 없다고 한다. 자연을 문자 속에서 알게 하고, 하늘의 이치를 책에서 보게 하며, 사랑과 우정을 문자로 이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 우리는 자연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어졌고, 하늘에 떠 있는 별조차 직접 바라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고 믿는다. 세상의 이치는 책 속에 들어있기에 그것만 이해하면 다 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하늘을 본 적이 있었다. 파란 하늘, 뭉게구름 한 점 없는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색깔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아. 하늘이 저렇게 파랗구나.”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나는 하늘이 왜 파랗게 보이는지 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그 하늘 역시 어두워지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이 당시의 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하늘이 파란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하늘 그 자체를 바라봐야 하고, 지식이나 잣대 없이 그저 느껴봐야만 한다. “아. 하늘이 파랗구나.”

이성으로 똘똘 뭉친 우리는 오버하지 못한다. 이성은 항상 올바른 것만을 보여주길 원하고, 세상의 기준대로 살긴 바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원하는 삶 속에서 안정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은(과거 나처럼) 흥분하지도 않고, 틀린 말을 하지 않고, 남 흉도 보지 않고, 오로지 진리, 즉 책에 나온 것만을 이야기하며 누군가에게 존경받고자 한다. 술 먹고 휘청거리면 약한 놈이고,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곳에서 시시한 이야기를 떠들면 병신 같다고 느낀다. 아마도 오버한 날을 집으로 돌아오면서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지?‘하며 자책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요약하거나 정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바보는 해석하고 분석하고 따지기보다 책 내용에 빠져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바보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보라. 문장 자체가 자유분방하여 이성을 잠시 끄고 저자의 손끝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 안에 살아 있는,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숨소리를 죽이고 살아온 우리 안의 바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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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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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 세계적인 저자라고 하지만 내가 저자의 책을 처음 본 것은 ‘티핑포인트’였다.(이게 처음 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 책을 보면서 느낌은 ‘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지?’ 하는 감탄 그 자체였다. 잘 어울리지 않는 소소한 내용들을 교묘하게 짜 맞춰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무너뜨리는, 재미있으면서도 날카로운 내용들로 짜여진 책이었다.

예전에 할머니가 “옛날 예전에...”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듯이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이야기체로 세상의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은 책. 남들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그렇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도 뭐라고 반박하기 어려운 내용 구성. 책을 읽으면서 ‘과연 천재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나가다가 저자를 만나면, 책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의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이 글을 잘 쓰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저자 모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뻥튀기한 것 같은 머리, 그 속에 파묻힌 조그마한 얼굴(머리칼이 커서 얼굴이 작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모습 속에서 세계인들이 혀를 차는 글을 쓸 것 같은 인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티핑포인트’를 보고 느낀 소감은 곧 이어 나온 ‘블링크’에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일반사람들은 오랜 시간 고민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건 웃긴 소리야’ 라고 말하며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요상한 사례들을 독자에게 내던진다. 심리학자의 실험실, 살인사건 등 말이다. 내용을 읽다보면 이 친구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자료를 구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고, 상상도 못한 글감을 모아 예상도 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저자의 글 솜씨에 혀를 찰 뿐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아웃라이어’. 결론은 무척 간단하지만 이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저자가 사용한 글감은 역시 감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 조직, 게다가 중국의 구석에 있는 농토에 대한 이야기까지 세상 구석구석을 파헤쳐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저자에게 두 손 다 들고 말았다. 물론 결론을 갖고 트집 잡으려면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저자의 결론보다는 글 솜씨였으니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가 이 책,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를 꼭 봐야겠다고 한 이유는 저자가 글 쓰는 패턴을 알고 싶어서였다. 바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도 저자처럼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딱딱한 글은 이제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세상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감성중심의 세상에서 저자 같은 글 솜씨는 배우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요즘처럼 복잡하고 바쁘디 바쁜 세상에서 누가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글이 있는데 구지 딱딱한 글을 읽고 앉아있겠는가. 동일한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앞에서 언급한 책들과는 달리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다. 뭐라고 할까. 결과를 이끌어 낸 글감이 조금 적어서였을까. 전에 봤던 책처럼 하나의 주제를 갖고 종횡무진으로 달려가던 내용에서 느꼈던 긴박감이나 호기심은 덜했다. 앞의 몇 줄 내용을 읽으면 뒤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었고, 저자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 내용들도 특정의 몇 가지 내용을 갖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어쨌든 단편의 심심함을 그대로 느꼈다.

말콤 글래드웰. 나는 저자의 책을 볼 때마다 항상 궁금한 것은 그가 소재를 선택하는 방법과 글감을 고르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답을 얻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서문에서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면서, 자주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대답은 해 주지 않는다. 그저 이곳저곳에서 듣는 말을 토대로, 귀를 항상 열어놓고 세상의 관심거리가 무엇인지 찾고자 한다는 것 정도였다.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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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후 - 10년간 1,300명의 죽음체험자를 연구한 최초의 死後生 보고서
제프리 롱 지음, 한상석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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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생각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실감나게 느껴보지는 않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죽음이란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가족의 죽음, 아는 사람의 죽음, TV나 신문에서 항상 특종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사람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끔찍한 사건들이고, 그 내용 속에는 항상 ‘죽음’이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임사체험’에 대한 책.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연구주제로, 의학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 죽은 상태에서 경험한 것을 정리, 분석한 책들이다. 뇌파가 멈추고 심장이 정지한 다음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디로 가는지, 그 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는지에 대해 임사체험한 사람들이 고백한 내용을 대상으로 말이다.

과학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뇌파가 멈췄다면 의식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때 뭔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며, 이러한 의식 속에서 임사체험을 이해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사람의 의식이 뇌 이외 다른 곳에서도 진행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을 곤욕스럽게 하는 것, 즉 임사체험이란 뇌 작용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 은 임사체험자들의 경험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다. 나이와 성별, 태어난 나라, 문화권, 종교와 상관없이 거의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아래 내용은 그 동안 봤던 임사체험과 관련된 여러 책에서 동일하게 나온다. 의사의 입장에서 쓴 책이든, 임사체험한 사람이 직접 쓴 수기이든지 상관없이. 그리고 이 책에서도 언급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첫째, 뇌 작동이 정지했지만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죽은 후 더 고조된 의식과 주의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그들이 본 것과 느낀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절대로 잊어먹지 않는다.

둘째, 죽었다고 판명된 후, 일종의 기(에테르)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데 이때 자신의 죽은 모습과 당시 자신을 둘러싼 사람, 환경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억한다.(공중에 떠서 그 모습을 내려다 봤다고 한다)

셋째, 시력장애자, 청각장애자들은 죽은 후의 상황에서 장애를 느끼지 못한다. 선천성 시각, 청각장애인들조차도 자신 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선천적인 시각, 청각장애인들은 살아있을 때 시각과 청각을 회복한다 해도 봐도 일반인처럼 볼 수 없고, 들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때문이다.

넷째, 죽은 후, 임사체험자들은 일정단계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데 평소 자신이 기억했던 일은 물론,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일까지도 매우 정확하게 본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당사자가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 것까지도 알게 된다, 마치 우리가 삼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듯이 말이다.

다섯 번째, 죽은 후 영혼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때 만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본인은 상대방이 죽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여섯 번째, 임사체험자가 경험하는 내용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차이가 없다. 이는 나이 어린 아이들은 문화, 사회적으로 아는 게 별로 없어 어른과는 다른 체험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매우 상반된 결과다.

가장 중요한 것, 일곱 번째,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상태가 더 행복하다. 아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기에 죽은 사람들은 다시 이 세상으로 되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것, 여덟 번째는 모든 임사체험자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분명히 깨닫는다는 점이다. 즉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고, 삶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것, 그리고 모든 인류는 하나의 빛으로 연결된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또 죽은 후 만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보려 애쓰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안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나를 느끼는 것처럼) 저자는 이 부분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체험이 가져다주는 중대한 교훈들 중 하나는, 우리는 죽을 때 ‘사랑’과 ‘지식’이라는 두 가지만 갖고 간다.”고 한다.

죽음 이후의 삶. 아직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 있게 이야기한 사람은 없다. 임사체험자들의 경험은 소수의 경험이고, 이들의 경험을 정리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의미는 인터넷이란 도구를 이용해 전 세계에 퍼져있는 다수의 임사체험 경험자들을 한 것으로 모았고, 이를 통해 나라와 문화, 연령 등을 총망라한 방대한 자료에 기반하여 임사체험내용을 사회과학방법론에 따라 검증하고, 재분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결론은? 죽음 이 후의 삶은 존재하며,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 이외에 또 하나의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죽은 후 임사체험자의 모습은 영혼이라고 표현하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기존 종교에서 표현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다만, 이들이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신이 인간을 단죄하고, 지시하는 지배자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신이며, 인간 자신이 바로 신의 일부라는 이야기이다.

“체험자들은 죽음에 대해 어떤 종류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고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믿었으며,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행복, 다른 이들의 행복, 자연과의 교감과 공감 등을 중요시 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가 행한 모든 것, 즉 사랑이나 연민, 증오나 폭력 등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우주의 법칙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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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 타인의 생각 훔치기,‘멘탈리스트’가 되는 길
토르스텐 하베너 지음, 신혜원 옮김 / 위즈덤피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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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힘든 일을 많이 만나지만 일 문제보다는 사람문제로 발생하는 어려움이 더욱 많다. 세상 모든 일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함께 일하는 사람끼리 화합이 안 되면 일은 물론이고 자신도 무척 힘들어진다. 게다가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잘 안될 때는 정말 죽을 맛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만 있어도 뱃속이 편할 텐데...알다가도 모를 게 사람마음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드리는가의 문제이고, 상대방의 말 역시 내 마음에 와 닿아야 비로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 말 자체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말인지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 마음도 모르는 상황에서.

여기 타인의 생각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데 마술사로 직업을 시작하여 멘탈리스트(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를 전문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은 어떤 마술이나, 기행이 아니라 남다른 관찰의 노력이라고 한다. 즉 사람은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어 생각하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게 되고, 몸으로 나타나는 것은 마음의 결과라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사람의 동작과 표정 하나만으로도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필자의 흥미를 끈 부분은 눈동자와 입모습의 변화를 통해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는 부분이다. 이 내용은 어려운 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관찰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라 상대방의 표정을 조금만 신경 써서 보면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사람이 장면이나 그림과 관련된 것을 생각할 때는 눈이 위쪽으로 움직이고, 그 사람이 소리, 잡음 혹은 말소리 같은 것을 의식할 때는 눈이 바로 옆쪽으로 움직이며, 어떤 느낌적인 것, 즉 움직임이 느껴질 때는 눈이 아래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교통신호등에서 빨간 불이 위에 있나요? 아니면 초록불이 위에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사람의 눈은 자연스럽게 오른쪽 위로 움직이고,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생각해보세요.“라고 질문하면 눈은 수평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또 ”당신은 겨울에 따뜻하고 안락한 집에 있다가 추운 바깥으로 나올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라고 질문하면 눈은 왼쪽 아래로 움직인다. 느낌에 대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미있지 않는가?

따라서 마치 마술 같은 상황을 만들어 놓고 한 사람을 불러 아래처럼 질문한 후 그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숲 속의 새를 보거나, 경보소리를 듣거나, 기름진 피자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한 가지를 생각해 주세요.” 세 가지 질문의 특징은 첫 번째 질문은 사물을 보는 것, 두 번째 질문은 소리를 듣는 것, 세 번째 질문은 느낌에 대한 것이다. 위의 내용을 보면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눈의 위치가 달라질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순간 인간에 대한 신비감은 사라지고,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됨으로써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갖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됨으로써 외톨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린 영화도 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해 주기 위해서는, 그리고 내 주장을 상대방에게 보다 적절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저자처럼 전문멘탈리스트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간단한 훈련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제안은 한 귀로 듣고 흘러버리기에는 무척  솔깃한 제안이다. 관심 있으면 책을 한번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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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즐거움 - 삶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왕샹둥 지음, 강은영 옮김 / 베이직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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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어제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던 것이 오늘은 일상이 되어버리고, 내일은 고물로 폐기처분된다. 그러다보니 오늘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일은 무엇이 어떻게 변할 지 예측하기 어렵고,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한다. 남이 두발자국 걸어가면 나도 최소한 그만큼은 가야 한다.

오래전 기계가 처음 인간 앞에 나타나 인간 수십 명이 며칠을 고생해야 가능했던  은 한 두시간만에 끝내버렸을 때, 또 힘들게 땀 흘리며 해야 했던 것을 대신해 줄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과거보다 더 많은 수확물을 얻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안락함과 여유로움을 주기보다 각박함과 스트레스만 우리에게 안겨 줬다. 이와 같은 변화가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만들지 누가 생각했겠는가. 개발과 변화, 발전이란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변화를 쫒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일 것 같은데 이들이 찾아낸 곳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외부세상은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내 모습. 무엇을 하든지 간에 결국엔 자신의 행복을 쫒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람들이 도달한 곳은 한 뺨도 안 되는, 아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내 마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잘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심리학이 현대사회에서 각광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일 것이다.

책의 서문에도 나와 있지만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학문이다. 누구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지 간에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야 하기 않겠는가. 그렇다면 심리학(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학문이란 정의 속에서)이란 인간이 집단을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나타난 학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을 과학이란 이름하에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한 것은 백년 정도밖에 안되었지만.

이 책은 이와 같은 심리학, 무척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된 학문 분야,를 이론적인 면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례를 통해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한다. 평소 우리가 저 사람은 왜 그럴까? 로미오는 왜 죽음을 선택한 것이지? 강박관념이란 게 어떤 상황이야? 와 같은 질문에 대해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용어를 통해 간단하게 대답해준다. 즉 왜 특정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평소 궁금했던 것들이 대부분 인간 심리의 기본이며, 따라서 자신도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내가 이 책에서 관심 있게 본 것은 중간 부분에 나온 ‘성격’내용이다. 평소 성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성격을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그리고 그 성격이해를 위해 심리학은 어떤 연구를 진행했고, 현재 성격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 내용 중에 아이젱크의 성격론과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는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느끼지는 논리다. 특히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무척 중요한 논리처럼 보였다. 88세대, 미취업자, 정년퇴직, 실업 등 경제는 발전하지만 개인의 소득은 감소하는 상황이라 매슬로우 단계의 하부 단위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욕구가 점차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상황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 예견한다)

매슬로우는 단계를 올라가게 된다고 해서 아래 단계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언젠가 가슴 한 구석에 내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처럼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특히 본격적인 정년퇴직이 일어나는 금년부터 더욱 내일불안에 대한 의식은 커져갈 것으로 본다) 과연 ‘자아실현욕구’라는 인간의 최고수준 욕구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지, 또 자기계발서에서 주장하는 나를 찾아 행복한 삶을 영위하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논리였다.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위단계에 어느 정도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의식이 ‘시크릿’과 같은 논리, 믿으면 된다거나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논리,를 히트용어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슬로우의 논리는 ‘성격’과 ‘자기계발’에 관심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앞으로 어떤 식의 삶을 그려봐야 하는지, 아직도 안전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나를 포함해서) 어떻게 ‘자아실현욕구’로 옮겨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것인지, 그리고 그 삶의 모습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든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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