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는 사주비결 - 쉽고 재미있게 알아보는
김현수 지음 / 케이앤피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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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치고 사주 한번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 이름을 지어야 하니 사주팔자를 확인해 봐야 하고, 아이의 운명이 궁금하니 내친 김에 사주를 본다. 게다가 학교 들어갈 때가 되면 아이가 좋은 학교를 들어갈 수 있을지 또 사주를 본다. 직장 들어 갈 때도 마찬가지이고, 결혼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쫓아가는 것이 사주보는 집이다. 남녀 궁합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사주는 미신이기에 그런 것 신경 안 쓴다고 하면서도 막상 문제가 터지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내 사주가 나쁜가?’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게 한국, 동양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서양도 나름대로 타로, 별점 같은 것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자주 사용한다. 요즘엔 우리나라에서도 타로점이나 별점 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무척 잘 맞는다고 한다. 나는 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확실한 인생살이에서 뭔가 확실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예상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이 미신이든, 과학이든 간에 의존할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다른 것은 잘 기억나지 않고, 큰 집에서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아마도 어머니를 큰 집과 부자를 함께 생각하신 것 같다. 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머니의 말씀에 맞장구쳤고.




내가 사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6년 전에 사주팔자,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음양오행설에 기반 해서 사람의 성격을 분석한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다. 그 분은 사람의 태어난 연, 월, 일을 갖고 개인의 성격과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사주에서 말하는 것과 유사한 구조지만 사주풀이에 있는 12지지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이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각 띠가 가진 본질적인 성격이다. 예를 들면 인(호랑이띠)은 중대장 급 리더기질이 있다. 그래서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가 사람을 관리하는 방법이 주로 위협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호랑이띠와 함께 있으면 불편할 때가 가끔 있다. 이유는 동일한 리더 급 띠 중에서 사람을 포옹하면서 조직을 이끄는 리더와는 달리 상대방에게 겁을 주면서 조직을 이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점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리더십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목표일정이 결정된 상황에서 그것을 반드시 맞춰야 할 경우, 사업을 시작해서 조직을 강력하게 이끌어야 할 경우다.




이 책을 보면 이와 같은 흐름이 잘 표현되어 있다. 특정한 사람이 왜 특정 상황에서 편하게 일을 하고, 자신의 재능을 잘 쓰게 되는지,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정의 칼라를 원하는지 등이다. 단지 해답을 적어 놓고 “너는 이거야. 잔소리하지 말고 믿어!”하는 일반적인 사주 책과는 다른 점이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어보면 궁금증이 더 생긴다. 저자의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 책을 보니 재미있고, 재미있다보니 원리가 궁금해진다. 그러다보니 또 다른 책 없나하고 이것저것을 뒤지게 된다. 사람들에게 사주의 가치와 원리를 무척 쉽게 이해하도록 썼기 때문이다.




출판사에 부탁한다면, 독자들이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한 권 더 나왔으면 좋겠다.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 담긴 책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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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슬픔 - 슬퍼하라. 그리고 아름답게 떠나보내라
그랜저 웨스트버그 지음, 고도원.키와 블란츠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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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슬픔을 느끼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났을 때는 물론이고, 아끼던 물건이 망가졌을 때, 항상 애용하던 볼펜을 잃어버렸을 때도 슬픔을 느낀다. 다만 그것이 슬픔인지 잘 모를 뿐이다.

내가 슬펐을 때는 언제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를 제외하고도 뭔가 아쉽고 안타까운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 아프고 짜증나고 두려울 때는 기억이 나지만 슬펐을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슬픔이란 순간적인 감정이지 오래토록 기억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아니 우리는 슬픔과 분노, 아픔, 허탈함과 같은 감정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던 여학생이 절교선언을 했을 때, 대학교 시험에 떨어졌을 때,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할 때, 귀가 안 들려 아무 것도 못하고 있을 때, 그때 나는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물론 혼자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기억은 슬픔이란 느낌보다 두려움, 안타까움과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특히 두려움은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어 이 감정과 슬픔의 감정이 혼재되었을 때가 많았다.

저자는 슬픔이 다가오면 마음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슬픔은 하나의 감정이기에 그것을 억제하는 것은 슬픔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고, 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가기 때문이다. 슬픔에서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시발점은 슬픔을 슬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가슴에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울고 싶으면 울고 소리치고 싶으면 맘껏 소리치면서 말이다.

저자는 한 부인의 이야기를 한다. 한 때 부부가 큰 수익은 없었지만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던 부부. 하지만 남편이 보다 큰 회사로 전직하면서 아내도 함께 도시로 이사를 갔다. 당연히 집도 큰 집으로 이사 갔고. 하지만 문제는 남편의 일이 많아지다 보니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항상 함께 하던 식사, 여행, 대화나누기 등의 모든 생활기반을 바꿔버렸다. 아내는 혼자 남아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아내 스스로가 이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혼자만 삭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열심히 일을 하며 만족해하는 남편의 마음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남았다는 감정을 처리하지 못한 아내는 결국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도 일순간뿐. 아내는 정신과 의사를 만났고, 의사로부터 신체적인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될까? 남편에게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과거에 살던 곳으로 다시 가자고 해야 하나?

일반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릴 것 같다. 문제는 환경이고, 남편이 직장 일로 인해 가정을 버리다시피 한 것이니까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면 되지 않는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내의 결정을 남편이 인정하고 아내 말대로 현재의 직업과 위치를 버리고 과거의 조용한 삶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될까? 아마도 남편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생길 것이고, 이 또한 아내의 가슴 속에 멍에를 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제거한다는 단순한 해결책보다 본질적인 것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저자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한 중요한 의미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것을 마음껏 표현하라’ ‘하지만 슬픔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마치 태양은 구름위로 올라가면 항상 밝게 빛을 내고 있을 것처럼’. 중요한 것은 현재 나에게 닥친 슬픔이 순간 지나가는 먹구름이며, 그 구름위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구름위로 비상하든가, 아니면 슬픔을 받아들이던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가장 안 좋은 것은 내 앞에 던져진 슬픔을 외면하거나 그것 자체가 영원하리라 생각하며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하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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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의 법칙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법칙들
피터 피츠사이몬스 지음, 강성희 옮김 / 프리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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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오만가지 많은 법칙을 만난다. 사람들은 별 것 아닌 것 가지고도 이상야릇한 법칙을 들이대며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해가 쨍쨍한 날에 우산을 들고 나온 사람에게 왜 우산을 들고 나왔냐고 물어보라. 그는 틀림없이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날씨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비가 오는 것이 분명한 법칙이라고 할 것이다.

또 어떤 남자가 열심히 사랑하던 여자에게 버림받아 슬퍼하면 아마도 주위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법칙이라도 있는 듯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장미는 한 여름에 피고, 곧 지는 법이야.”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이 법칙이 된다면 세상에 법칙에 속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는가.

이 책은 제목부터 무척 재미있다. 51%의 법칙. 즉 말이 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틀릴 확률보다는 1%라도 맞을 확률이 더 높은 법칙들이란 의미다. 실제 책에 나온 내용들을 보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책 맨 앞에 나오는 사다리의 법칙도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다. 즉 남자는 여자를 사귈 때 하나의 기준, 즉 섹스를 할 지 말지의 기준,만으로 상대방을 선택하고 평가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평가할 때 두개의 기준, 저자는 이를 사다리라고 한다,으로 남자를 평가한다. 즉 성관계까지 갈 남자와 친구로서 지낼 남자다. 그러다보니 남자들은 여자는 떡 줄 생각도 않는데 혼자서 언젠가는 그 여자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확률게임을 하다 결국엔 저 멀리 심연으로 떨어진다.

관심의 법칙 역시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이야기다. 내용은 관심을 많이 가지면 상대방은 그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된다는 의미다. 저자는 이를 위해 하나의 실험사례를 든다. 즉 한 반 학생들의 아이큐를 측정한 다음, 선생에게 무작위로 뽑은 학생들의 자료를 주면서 이들의 아이큐가 높다고 했다. 그리고 8개월 후 아이큐를 측정해 봤더니 실제로 예전에 아이큐가 높다고 한 학생들의 아이큐가 다른 학생들보다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관t심과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자신의 모습보다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시골출신의 법칙은 무척 생뚱맞다. 저자의 말은 유명하거나 성공한 사람. 특히 대통령 같은 사람의 출신은 도시보다는 시골이 많다고 한다. 이유는 시골은 도시보다 자연적이기에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자랄 수 있고, 여러 가지 시설이 빈약한 관계로 육체적인 면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즉 도시에서 어릴 때부터 영악하게 자란 사람과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사람 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골키퍼의 법칙을 읽다보면 “맞아 맞아”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골키퍼가 골을 먹으면 그 순간 자신 앞에 있는 수비수들을 바라본다고 한다. 이유는 골이 들어간 것은 자신의 능력부족이 아니라 수비수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골키퍼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골키퍼라도 골이 들어가 버리면 그 책임을 누구에겐가 전가할 것 같다. 특히 가장 만만한 수비수들에게 말이다.

시간의 법칙 또한 재미있다. 서양에 사는 사람과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과는 시간개념이 다르다고 한다. 즉 그들은 일 분 일 초를 따지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남아돌아가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후 3시에 온다는 기차가 다섯 시에 와도 별 문제없고, 8시간 걸린다던 목적지에 삼일이 걸려 도착해도 뭐라고 불평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들은 한 시간, 하루의 시간개념이 아닌 계절별 시간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이 조금 지나친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시간개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모든 사람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항상 법칙이란 것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지 원인과 결과를 알고 싶어 하고, 특정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칙이란 것이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갖고 있어야만 될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51%의 신뢰성만 있으면 그건 법칙이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허황되게 보일지 몰라도 책을 읽어보면 그리 허황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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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것 - 구겐하임 문학상 작가 앤 라모트의 행복론
앤 라모트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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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 내용이 재미있다. 남자인 내가 봐도 한 여성의 삶을 살며시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마음에 와 닿은, 그리고 솔직한 저자의 글 솜씨와 말씨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문화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행동들, 어린 시절 남자들에게 팬티와 벗은 몸을 보여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 대마초나 마약 같은 것에 취해 남자들 사이에서 정신을 잃은 것과 같은 모습들은 내용을 읽다보면 거북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내가 남자의 시각으로, 여성의 정형화된 모습을 머리에 넣은 채 책을 읽기에 그런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저자는 패미니스트도, 혁명가도, 진보주의 여성도 아니다. 단지 자신 행복하게 살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름대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마음가는대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용은 재미있고, 읽는데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책에 소개된 다른 사람들의 평가처럼 그녀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느낀다거나 깨닫는 그런 감정을 받지는 못했다. 그저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한 여성, 좋은 환경은 아닌 가정에서 태어나 자신의 삶을 한발 한발 내딛으며 살아간 삶의 단편을 봤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느낌도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나 주제에 대한 몰입보다는 내용의 구성을 유심히 봤다. 누구나 다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삶. 물론 이 말이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누구나 가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는 청소년 시절, 그리고 ‘나’라는 독립된 존재를 알게 되는 청년시절, 아이를 갖고 가족이란 것을 느끼게 되는 발달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이 책만큼 재미가 있을까? 평론가들이 그 책을 보며 “당신의 가슴에 응어리진 몇몇 문제들에 묘하게 들어맞는 열쇠를 제공하는 고백록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 본 것이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야기의 내용들이 하나마다 결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짧지 않은 생의 이야기 중에서 뭔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대변할 수 있는 내용 말이다. 처음에 내용을 보면 저자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에 빠져들면 ‘아!’ 이런 심정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 삶을 남에게 이야기하다보면 장편소설처럼 되기 때문이다. 긴 인생이야기를 하나씩 쪼개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예를 들어 스토리텔링 책을 보면 영웅이란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영웅이라고 한다. 영웅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뭔가 부족한 한 인간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그때 어떤 상황,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의 내재된 힘을 깨닫고, 이를 물리친다. 물론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영웅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그 사람 삶의 모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당연히 아니다. 이야기에 나온 것은 문제 하나를 해결한 것일 뿐이지 그는 계속해서 다른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남녀가 싸우다 화해하고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것으로 영화가 끝났다고 치자. 그들은 영원히 행복할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래서 둘이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난다. 내가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너무 내 삶을 장편으로 생각하며 앞 뒤 이야기가 하나의 연결 구도를 갖게 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지고, 마치 한편의 서사시를 보는 듯한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또 하나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이야기 사이에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는다. 그 이야기가 왜 들어갔는지 모른 채 내용을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내용이 풍부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 이야기가 저자의 생활과 직결된 이야기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돌발적인 이야기에서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저자가 그만큼 하나의 이야기를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와 잘 어울릴 수 있는 외도. 그래서 글 잘 쓰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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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일의 심리학
토니 험프리스 지음, 김광수 옮김 / 다산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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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해왔다. 예전에는 일을 노예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노동을 죄악시하던 시절이 있었는가하면, 육체를 위해 먹고 살려고 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규정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일을 삶의 필수과제로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는 일과 삶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직장인들은 항상 입버릇처럼 일을 지겹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세월이 되어야 일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리고는 편안한 여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고 먹을 수 있다는 보험이나 증권사 직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열심히 돈을 투자하고 저축한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그 날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 퇴직하자마자 병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이고, 집에 있는 것이 짜증난다며 돈도 안 생기는 봉사 활동한다고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결국 일 자체가 지옥이고, 고통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했기에 괴로웠던 것뿐이다. 일은 소중하고 중요하다.

이 책을 보면 일이란 것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잘 설명되어 있다. 단지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다루었고, 저자가 제시한 ‘인간적인 기업문화’라는 것이 과연 현실사회에서 성립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제시한 모델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근접한 기업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할 테니까 말이다.

저자가 주장한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우선 일에 대한 강박증다. 사람들은 자아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고, 이것이 결국엔 일중독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모든 것이 일을 통해 표현되므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나도 이런 경우를 당해봤기에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실제로 내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일중독에 빠지면 그는 하루 종일 일만 한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모르겠지만 일정표를 열심히 뒤적거리며 다음 일을 찾는다. 그리고 그의 만족은 하루 종일 온몸이 뻐근하도록 일을 했을 때만이 느낄 수 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일을 많이 했고, 또 열심히, 바삐 살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직장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의 모습은 평소 일할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저자는 일중독, 또 일 기피자에게 일이란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인생에 대한 논한 많은 사람들은 삶을 대개 5~6차원으로 나누는데, 일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존재의미를 느끼고 필요하다면 경제력을 얻는 그런 것 말이다. 이는 인간에게는 가족, 친구, 사회의 관계도 있고, 동물과는 달리 정신과 영혼도 소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일이란 것 하나만을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또 하나는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저자의 조치다. 그는 일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일과 일정거리를 두라고 한다. 일에 중독되거나 일을 기피하는 것이 보기에는 달라보여도 동일한 심리 메카니즘인데, 일을 통해 자신을 평가하고 평가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일을 잘하면 나는 위대한 존재이고, 내가 일을 실패해서 비난받으면 사회에서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식구조는 상당히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살아가면서 모든 일을 성공할 수 없다. 필연적으로 어떤 때는 멋지게 성공하지만, 또 어떤 때는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나’라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는 인간 자체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일의 성공과 실패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일은 무척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현대인은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든, 자선사업이든 간에.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이란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이지, 그것이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남을 위해 일한다 쳐도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의 문제는 바로 내 자신에게 달려있다.

절대 일에 모든 것을 걸지 마라. 저자가 가장 강하게 주장한 말이고, 나에게도 깊이 와 닿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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