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언급하는 ‘말이 안 통하는 대화‘란, 상대방의 생각이나 믿음 또는 도덕관, 정치관, 세계관이 나와 너무 달라서 대화해봤자 도저히 소득이 없어 보이는 경우를 뜻한다. 상대방이 대화할 마음이 아예 없는 경우는 여기에 속하지 않음에 유의하자. 예컨대 상대방이 폭력적, 위협적으로 나온다거나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고 말을 듣지도 않는 경우는 이 책에서 말하는 ‘말이 안 통하는 대화‘가 아니다. 대화를 거부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방법은 없다. 그런 사람을 억지로 대화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 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굉장히 드물다. 주제가 무엇이건 대부분의 사람이 대화에 응한다. - P13.14

피터(버고지언)의 스승인 프랭크 웨슬리Frank Wesley 포틀랜드 주립대학 심리학 교수가 1970년대에 수행한 연구가 있다. 웨슬리는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잡힌 미군 포로 중 일부가 북한행을 택한 이유를 분석했다. 조사 결과 북한행을 택한 미군은 거의 전부 한 훈련소 출신인 것으로드러났다. 이들은 훈련소에서 정신교육을 통해, 북한 사람은 잔학무도한 야만인이고 미국을 경멸하며 미국을 궤멸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북한군에게 친절하게 대우받고나자, 머릿속에 주입되었던 지식이 산산이 허물어져버렸다. 결국 이들은 북한 사람에 대해 특별히 교육받지 않았거나 덜 편향된 교육을 받은 군인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북한행을 택했다. - P25.26

대화를 협력 작업으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화를 예의 있게 풀어나가면서 인간관계를 망가뜨리지 않고 돈독히 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 P26

라포르를 형성하려면 진심이 담긴 질문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질문에 다른 의도를 깔지 말고, 진심으로 답을 듣고 싶어 해야 한다. - P33

4. ‘화제 가로채기‘는 금물이다.
상대방이 꺼낸 화제를 가로채서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얼마 전 쿠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나도 쿠바에 가보았다며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상대방의 쿠바 여행이 어땠는지 묻도록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전환해선 안 된다. 그러면 라포르가 훼손된다. - P34

4. 정적을 만든다.
대화 중의 정적은 각자 찬찬히 생각하는 데 꼭 필요하다. 굳이 조급하게 정적을 메우지 않도록 하자. 정적은 신뢰를 쌓고 라포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상대방의 생각을 곰곰이 이해해보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대화가 잠깐이라도 끊어지면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유용한 기회로 삼아보자. 정적은 서로 찬찬히 생각해볼 기회다. - P37.38

1. 메시지 전달과 진정한 대화를 구분한다.
메시지 전달은 선생이 되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같다. 반면 대화는 주고받으며 서로 배우는 것이다. ‘상대방이 이것만 좀 알아들으면 생각을 바꿀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대화가 아닌 메시지 전달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문해보자. ‘지금 나는 상대방이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나 혼자 알려주는 것인가?‘ 후자라면 메신저 노릇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P41.42

2. 상대방의 의도가 나쁘다는 의심이 들 때는 궁금증을 푼다는 자세로 접근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 점을 꼭 짚어서 묻는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제가 모르는 걸 뭔가 알고 계신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좀 설명해주실래요? 그럼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아요." - P47

4.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믿음을 의심하게 되었다면, 대화를 중단하기 좋은 시점이다.
상대방에게 의심을 곱씹어보고 나름대로 고민해볼 여유를 준다. 상대방이 계속 관심을 보이면, "우리 둘 다 이 기회에 이 문제를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대화를 끝내거나 화제를 바꾸면 된다. 상대방이 의심하고 의아해하는 틈을 타서 내 생각을 전달하려는 행위는 가끔 좋은 성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일종의 ‘전도‘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전도하지 말자. 의심으로 인해 마음이 물러진 상대방을 좌지우지하려 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다(드문 예외라면 내가 정말 전문적 견해를 가진 경우나 상대방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믿음을 가진 경우다). - P52

항상 기억하자. 남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어주려면 우선 나부터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한다. - P58

비유하자면, 인류의 지식을 모아놓은 큰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는 읽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책이 수중에 있으니 책에 든 정보를 자기가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연구해보기는커녕 읽어보지도 않았으니 지식이 없는 상태다. 그런 맥락에서, 이러한 오류를 이 책에서는 앞으로 ‘읽지 않은 장서 효과Unread Library Effect‘라고 부르겠다.
‘읽지 않은 장서 효과‘는 2001년 프랭크 카일과 레오니드 로젠블릿Leonid Rozenblit의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두 사람은 그러한 효과를 가리켜 ‘설명 능력의 착시현상‘이라 칭하고, ‘통념의 한계에 대한 착각‘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실험은 수세식 변기의 작동 원리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먼저 참여자들에게 작동 원리를 자기가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지 그 자신감의 정도를 숫자로 답하게 했다. 그런 다음 작동 원리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게 했다. 그러고는 자신감을 다시 숫자로 답하게 했다. 그러자 참여자들은 자신감이 전보다 훨씬 낮아졌음을 시인했다. 직접 설명해보고 나서는 자신이 ‘빌린 지식‘에 의존했을 뿐이며 실제로는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 P60

이때 부끄러워하지 말자. 설명해달라는 부탁을 명확히 하자. 정보를 구체적으로 요청하자. 그런 다음 상대방이 자세한 정보를 알게 된 경위를 꼭 짚어서 묻고, 내 무지를 계속 솔직히 인정하자. 대개는 내가 무지를 인정할수록 상대방은 내 이해를 돕기 위해 열심히 설명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설명을 시도할수록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깨달을 가능성이 크다. - P62

3. 진정성 있게 임한다.
가장 좋은 질문은,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 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질문이다. 상대의 진정성을 높이 사고 애타게 바라는 한편, 술수를 경계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정말로 관심 있어서 하는 질문이라면 그런 티가 나기 마련이다. - P72

4. 주장을 질문으로 위장하지 않는다. 유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가령 "공화당 지지자들은 어째서 빈곤층의 어려움에 그렇게 무관심할까요?" 같은 질문이 그런 예다. 언뜻 보기엔 교정 질문 같지만, 이는 일종의 유도 질문이다. 공화당 지지자가 빈곤층에 무심하다는 데 상대방이 동의할 것을 ‘전제‘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주장을 주장이 아닌 것처럼 가장하거나 의도를 띠었으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장한다면 진정성 있는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이 경우 상대방이 전제에 수긍하지 않는다면 즉시 역효과가 나기 쉽다. - P72

미국 남부 지방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안다고 알아주랴, 관심을 줘야 관심받지Nobody cares how much you know until they know how much you care." 아마 장사꾼들 사이에서 유래한 말인 듯한데, 이 책의 공저자 제임스는 그 말의 진짜 뜻을 10년이 넘게 걸려서야 이해했다.
이 속담을 자세히 살펴보자. 언뜻 보기엔 둘 중 하나를 뜻하는 말인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아는 게 많더라도, 대화 주제 또는 대화 상대에게 관심이 많아야 비로소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두 특성 다 장점은 있지만, 상대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사하는 데는 두 가지 해석 모두 의미가 있지만, 도덕적 견해가 엇갈리는 대화에서는 의미가 없다. (중략)
앞서 본 속담을 이렇게 해석해보자. "나와 도덕적 견해가 다른 상대의 신뢰를 얻으려면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특히 상대가 관심을 둔 가치에 나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설령 상대방의 눈에 내가 도덕적 관점에서 아군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적군에 속한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그래야 상대방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내가 하려는 말에도, 내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에도 관심을 둘 사람은 없다. 도덕적 견해 차이를 극복하는 대화를 하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이다. - P73.74

극단주의자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도덕적 견해가 아무리 다른 상대와도 합의점을 금방 쉽게 찾을 수 있다. 상대방은 나를 보며 ‘다른 편 사람이긴 해도 그쪽의 터무니없는 문제를 인지하고 반대하는구나. 광신자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나의 ‘도덕적 부족moral tribe‘과 분리되는 동시에 상대방과 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드러나면서 도덕적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 - P75

6. 정말 아무래도 자제를 못 하겠다면, 익명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서 허공에 대고 열변을 토하자.
다른 사용자를 태깅하는 것은 공격적으로 여겨지기 쉬우므로 자제하자. 그냥 혼자 분노를 쏟아내자. - P84

특히 자기가 믿는 원리를 이론의 여지 없이 옳다는 식으로 내세우는 독단가를 만났다면 더욱더 배우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지 배우자, 다시 말해, 인식 원리에 중점을 두고 대화하자. 상대방이 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상대방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다음에 다른 대화를 할 때도 도움이 되고, 내 인식 원리 탐문 기술을 연마할 수도 있다. 또 잘하면 상대방의 ‘읽지 않은 장서 효과‘를 드러내어, 상대방의 인식 원리에 살짝 의심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100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가장 한심하면서도 위험한 징후의 하나는, 그 누구도 자신의 생각에 반대할 수는 없다고 믿는 개인과 집단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_토머스 소웰Thomas sowell (2018. 7. 30.) - P105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안에 대해 타당한 이유 없이 강한 의견을 갖고 있다. - P132

대화 중에 내가 틀렸음을 깨달으면, 내가 틀렸다고 말하자. "생각을 바꿨다"라는 말만큼 강력하고 당당한 말도 없다. 본보기 행동으로도 완벽하고, 신뢰 관계가 깊어지는 효과도 있을뿐더러, 나를 싫어하던 상대방도 의표를 찔리면서 나를 다시 보게 될 수밖에 없다. - P138.139

게임이론가 아나톨 래퍼포트Anatol Rapoport는 대화 중 반대나 비판을 제기하기 전에 지켜야 할 규칙을 제시한 바 있다. 오늘날 ‘래퍼포트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규칙은,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C. Dennett에 따르면 "상대방의 견해를 왜곡·과장하는 버릇을 고쳐주는 최고의 처방"이다. 데닛은 자신의 저서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에 래퍼포트 규칙을 간결하게 요약해놓았다. 대화를 잘하려면 다음의 규칙을 순서대로 따르자.

규칙 1. 우선 상대방의 견해를 명쾌하고 정확하게 재정리해 상대에게서 "고마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나보다 잘 정리했네"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규칙 2. 내가 동의하는 점을 조목조목 밝힌다. 특히 상대방의 견해가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게 한다.
규칙 3. 상대에게서 배운 점을 모두 언급한다.
규칙 4. 이 모든 과정이 끝난 다음에야 한 마디라도 반박하거나 비판할 자격이 생긴다. - P145.146

근거를 바탕으로 믿음을 형성하려고 평소에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한 사실이 있다. 바로 모든 사람이 그런 식으로 믿음을 형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명확한 근거만 보여주면 그 사람이 믿음을 버릴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애초에 사람이 무언가를 믿는 이유는 다른 근거를 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바로 ‘근거를 바탕으로 믿음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일 때가 많다. 합리적 논거를 꼼꼼히 살펴서 믿음을 형성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설상가상으로, 그럼에도 자기 믿음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 P148

반증 불가능한 믿음의 대부분은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의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대니얼 데닛은 그 밑바탕에 깔린 믿음을 ‘믿음에 대한 믿음‘이라고 부른다. 즉 어떤 믿음을 가지면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믿음이다. ‘좋은 사람은 [X]를 믿으므로 나도 [X]를 믿어야 하며, 내가 [X]를 버리면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식이다. 그 믿음 때문에 타당한 반증 기준을 제시해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 P162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반증 조건을 내거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믿음이 객관적으로 반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대답을 내놓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나 대화 상대, 혹은 주변 사람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생각이 열린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다.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반증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을 상대로 대화하기는 까다롭고 답답한 일이다. 그런 사람은 사실 자신의 확신을 정당화할 근거가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믿음을 유지해야 할 도덕적 필요성을 느껴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태도는 진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사람은 그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 자신의 높은 확신도와 객관적 근거 부재 사이의 골을 메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 P165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생각을 바꾸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만약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생각이 흔들리는 상황에 이르렀으면, 상대방의 취약해진 상태를 악용해 내 메시지를 전달해서는 안 된다. 그건 상대방에게 의심을 안겨주고 믿음을 되돌아보게 유도하려는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내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행동일 뿐이다. 종교 전도나 물건 강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지만, 윤리적으로 저열한 행위다. - P170

‘하지만but‘이라는 말은 아예 쓰지 말자. 대신 ‘그리고and‘라고 하자. 특히 생각을 연결할 때는 가능하면 항상 ‘그리고‘를 쓰자.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습관을 가리켜 ‘그리고 자세and stance‘라고 부른다. 이는 즉흥 코미디에서도 널리 쓰이는 기법이다. 앞에서 든 예시처럼, "그래, 그리고…"라고 하면 생각을 자연스럽게 연결해나갈 수 있다. 상대방의 의견과 내 의견이 (설령 상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동시에 타당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 P175

(풀) 에크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노는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다. 제대로 바꾸려면 분노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분노가 일었을 때, 우리는 대화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쟁점을 밀어붙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바뀌는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설령 화난 사람이 상대방이라 해도 그렇다. 완전히 틀린 사람이 내가 아닌 상대방이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 P179

다시 말해, 변증법이란 내 의견에서 출발해 상대방의 의견을 발판 삼아 더 정교하고 섬세하며 사실에 부합하는 견해로 나아가고, 상대방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는 활동이다. - P195

1. 상대방의 의도를 인정하고,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긍정한다.
이렇게 말해보자.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당신에게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겠다." 그 점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이념가들이 자기 자신을 둘 중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고결한 도덕적 지주, 아니면 구원을 갈망하는 절박한 죄인이다. 둘 중 어떤 경우건,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거나 좋은 의도를 가졌다는 점을 긍정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의 방어 태세가 다소 풀리고, 따라서 극단적 믿음을 온건하게 만들 길이 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음 과정을 시행하기 전 준비 단계로서도 필요하다. - P234

2. 상대방의 의도와 동기를 인정하고,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긍정한다.
이념가를 상대할 때는 우선 자존감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도덕적 인식 원리에 대한 확신을 흔드는 일은 나중이다. 이념가에게는 먼저 자존감을 확보해주지 않고서는 어떤 기법도 통하지 않는다. - P244

만약 반증 조건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 믿음을 그렇게 확신하는 게 타당한지 정직하게 성찰해보자. 잊지 말자. 믿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그 믿음은 수정하기 어렵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모두 도덕적으로 뭔가 결핍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면, 혹은 그런 사람을 거의 하나로 뭉뚱그려 도덕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쓰고 있다면, 내가 이념가일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나 자신에 대해 일련의 개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 P246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대화에는 보통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는 개인의 정체감에 기반한 도덕적 믿음이 핵심이지만, 겉으로는 사실(또는 주장·비난·과시·협박 등)의 차원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얼핏 보기엔 특정한 쟁점(이슬람 이민자), 사상(이슬람 이민자에 맞서 이른바 ‘서구적 가치‘를 수호), 또는 사실(이슬람 국가 출신 이민자 통계)을 논하는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핵심은 상대방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는가, 즉 나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이렇게 믿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까다로운 대화라 할 수 있다. 외견상으로는 도덕이 주제가 아닌 것 같지만, 사실 관건은 어떤 자질, 믿음, 태도, 행동을 지니면 ‘좋은 사람‘ 또는 ‘나쁜 사람‘이 되는가, 그리고 그중에서 올바른 견해를 지니는 게 왜 중요한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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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카를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대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썼다. 아이히만의 "완전한 무사상성, 그것이 그가 저 시대의 최대 범죄자 중 하나가 되는 요인이었다." 전문적 지식과 능력이라는 점에서는 유능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사고하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명령에 따르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상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 관료의 범용(凡庸)이라는 이름의 죄가 얼마나 깊은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가 무엇이 나쁜 일인지 몰랐던 것(처럼 보이는)이 더더욱 무섭다. 사고 없는 준법이야말로 가장 질 나쁜 것이다. - P119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런 고로 "악법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다. 법실증주의는 ①법률이란 도덕 등 다른 룰들과 다르게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②그것이 사회의 질서 유지와 사람들의 행동 편의를 돕는다, 하는 것까지는 논하지만,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까지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P122.123

이처럼 이미 존재하는 법질서를 무비판적으로 그저 지키는 것만이 준법은 아니다. 부정한 법에 따르지 않음으로써 역으로 법질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본인에게는 처벌을 수용해야 한다는 고통이 있겠지만. - P125.126

지금의 대학도 대학이다. 좌우간 요즘은 사립대학들도 관이 말하는 것을 바보들처럼 무비판적으로 듣고 있으니, 순수하게 자란 좋은 아이였던 학생들까지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착실한 학생들은 졸업 후 취직하고 나서도, 호우 경보가 발동되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강둑이 터지든, 화산이 분화하든, 지구가 멸망하든, 회사에서 지시가 없는 한 오로지 출근시간에 신경 쓰면서 직장으로 향할 것이다.
나 같은 불량 교원에게 현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하라면 이 말을 하겠다. "목숨을 소중히." - P132.133

덧붙이자면, 건강진단과 암진단, 금연운동을 처음 도입한 것은 나치스였다. 그것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총통과 국가를 위해 노동력으로 쓰일 인간을 선발하여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함이었다. 건강제국이란 결국 기업과 국가를 위해 쓰일 인간을 기르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나치스는 8시간 수면과 채식을 국민에게 장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강제국도 그 이면에서 알코올의존자, 동성애자, 정신장애자를 박해하고, 병 등으로 노동력 면에서 쓸모없는 인간은 지체 없이 안락사 시켰다. 그러니 국가에 의한 건강 강제는 조심하는 게 좋다. 사람에게는 불건강하게 살 자유도 있다. - P148

건강하고 근면하고 용기 있고 타인에게 다정한……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들만 사는 나라는 없을 것이고, 그런 나라라면 애초에 법률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은 하찮은 인간 투성이다. 법률은 하찮은 인간에게 억지로 무리한 주문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모두가 부서져버리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법률이란, 하찮은 인간을 그대로 놔두고 그들이 해를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의 기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 자체가 하찮은 것인가? - P157

공리주의적 사고의 이점은, 최대 행복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모두 나눠 가질 것을 요구하는 점에 있다. - P165

애초에 사람들을 평등하게 보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공리주의가 "사회 전체의 불이익을 최소한으로 하자."는 발상으로 전환되는 순간, 불이익을 당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내는 선별 사상으로 바뀌고 만다. 그리고 또 그러한 선별을 할 때 방금 살펴본 실례처럼 편견과 멸시가 작동하거나, 최종적으로는 불리해지는 사람 수 크기로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선별은, 물론 선별의 책임을 지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P171

앞의 버지니아주 단종법의 예에서 보듯이 국력 신장의 목적을 위해 유익한 자손을 늘리는 정책은, 그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자손의 탄생을 불가능하게 하는 차별로 이어졌다. 본래 국력이란 무엇인가, 단순한 부국강병만이 국력인가, 하는 점에도 의문이 있지만, 어쨌든 한 나라의 정치가 다양성에 대한 관용을 잃고 특정한 목적을 향해 돌진할 때 공리주의는 박애주의에서 차별과 절사의 사상으로 바뀌어버린다. - P177

창작자의 인센티브를 보호하기 위해 저작권을 어느 정도 지켜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예능 일에서 지나치게 권리 권리 하지 않는 편이 결과적으로 아티스트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P185

그렇다. 바로 이것이 평등이라는 사고의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점이다. 모두가 막연히 "평등은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만인이 납득하는 완전한 평등 상태라는 것은 사실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속성에 기초한 평등을 실현하면 반드시 다른 불평등을 초래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불평등한 현실만이 평등하게 주어져 있다."(만화 『주술회전』(呪術廻戰, 2018년 3월부터 <주간소년점프>에 연재 중)의 명대사) (회식에서) 정기 수입은 있으나 자기 용돈이 적은 교원이, 오버닥터(overdoctor, 박사과정을 마치고도 자리를 못 잡은 사람.)이긴 하지만 유튜버로 큰돈을 벌고 있는 젊은이보다 두 배 이상 내야 하는 케이스를 생각하면, 그 점은 명백히 보일 것이다. - P265

한편, ‘1인 1표‘도 또 다른 관점에 서면 불평등해 보인다. 무엇 때문에 ‘18세 이상‘이라는 속성이 사용되는지, 17세 이하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까닭이다. 매일 신문을 열독하며 뉴스를 체크하고 이 나라와 세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15세와, 신문을 보더라도 스포츠 신문밖에 보지 않으면서 야구시합 결과와 변태 기사와 예능인의 불륜 외에 흥미가 없는 45세 중 어느 쪽이 던지는 한 표가 진지할까? - P267.268

(로널드) 드워킨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평등한 사람으로서 처우받을 권리가 실현되어야 할 사람들은 두 자식의 예에서는 병든 아이, 즉 이 사회에서 오래도록 차별받아온 마이너리티이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선적으로 법조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물론 데푸니스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지만, 그는 머조리티에 속하는, 말하자면 건강한 아이기 때문에 권리 요구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마이너리티에게 양보하라는 것이다. 더욱이 입시에서 지적 심사의 결과를 일부 무시하고서라도 마이너리티 학생을 늘리면, 머조리티에게만 식견이 편향돼 있던 로스쿨의 수업에 새로운 시점이 부여되어 그 질을 향상시킬 것이며, 그 결과 마이너리티 변호사나 재판관이 증가하면 차별로 말미암은 미국 사회의 긴장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표현이 험하긴 하지만, 안 그래도 지천으로 깔려 있는 머조리티 법조인을 한 사람 더 늘리기보다는 마이너리티 법조인을 더 늘리는 편이 진정한 평등 실현이라는 사회적 이익의 실현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 P283.284

이러한 학교 교육을 거쳐 학교를 나오면 또 똑같은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 거기서도 적합한 좋은 사원이 되어 자본주의 사회의 우수한 톱니바퀴가 된다. 그런 게 현대 사회의 바람직한 인간상이라면, 그 같은 인간은 무의미한 일에 의문을 품지 않고 몸도 마음도 복종에 익숙해져 사실 자유도 뭣도 아닌 셈이 된다. 왜 모두 일제히 같은 시각에 회사에 모여야 하는데? 왜 40도 가까운 작열의 여름철에도 슈트를 입고 구두를 신어야 하는데? 왜 자기 일을 끝마쳤는데도 퇴근하면 안 되는데? 그런 걸 의문시하지 않는 사람의 자유는 자신의 조직과 사회에 적합한 한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와 다를 게 없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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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군과 같이 시장에 나갔다가 고기장수에게 쫓겨난 나 때문에 그들은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둥글납작한 흰 모자를 쓴 뚱뚱한 중년 남자가 고깃간 주인이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싱싱해 보이는 붉은 고기의 뼈를 발라내고 있는 남자에게 내가 확인차 돼지고기인가 하고 물었다가 쫓겨난 것이었다. 남자는 아주 기분이 거슬렸다는 듯 손에 서슬 퍼런 칼을 든 채로 나에게 휘저어 보였다.
—가, 가! 저리 가라고! 에잇, 재수 없게…… (중략)
희철이 일러주었다.
—그 사람들은 무슬림이야. 우리 북진구에는 특히 무슬림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지. 그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큰 고기‘라고 불러. 자기네 가게에서는 원체 팔지도 않고.
나는 회족 사람들을 실제로는 처음 보았다. 희철의 설명을 듣고서야 나는 우리가 갔던 시장 구역을 가리켜 천목(天穆, 명나라 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천진 경내 최대의 회족 칩거 구역)이라 부르던 것을 이해했다. - P121.122

춘란에게는 어떤 힘이 있었다. 이미 껍질을 깨고 부화에 성공한 맹금류, 혹은 징그러운 애벌레 시기를 인내로 통과한 화려한 독나비처럼, 춘란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그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해 일정한 경지에 오른 존재였다. 솔직하고 대범한 그녀 앞에 섰을때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평안한 마음을 휘저어 그 아래 가라앉았던 찌꺼기들을 부유케 하는 것, 그것이 허춘란 그녀의 능력이었다. - P146

무군은 여전히 노란 테이프를 입에 문 채 박스를 포장하고 있었고 나의 외근은 점점 잦아졌다. 구사장은 계속해서 돈이 될 만한 기회를 찾으며 이런저런 모임에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그 모임에서 소위 성공한 사내들을 적잖이 만나보았다. 때로는 그네들이 자가용으로 회사까지 데려다주는 배려를 받기도 했다. 대발택시보다 차체가 낮고 넓은 자가용은 그 안에 앉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종의 우월감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자신이 마치 다른 종류의, 말하자면 더 진화한 인류가 된 것 같은 착각이었다. - P151.152

나는 삶의 어떤 변화, 질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내 욕망이 정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욕망은 꿈이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때는 두가지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53

나는 생각했다. 항상 그게 문제지. 상대방은 순간순간 흔들리고 생각이 변하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자라는 족속은 시작이 바로 결과라고 유추하는, 현실에 대해 총체적으로 방심하는 한심한 군체였다. 희철이 그랬고 무군이 그랬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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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나는 안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몇 편 더 썼다. 첫 장편소설인 『다른 사람』 의 배경도, 「호수」를 비롯한 몇몇 다른 단편소설의 배경도 안진이다. 아니, 사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다 안진에 산다. 전라북도의 조용한 중소도시. 구區는 오직 두 개이고,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가 하나 있으며,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다. 그들은 새벽에 홀로 산책을 하며 자주 운다. 잠잘 때는 꿈을 꾸지 않는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언젠가부터 나는 같은 질문을 받곤 했다. "혹시 안진은 당신의 고향인 전주를 모델로 한 곳인가요?" 나의 대답도 늘 같은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10

그러니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일하다는 건 계속 기억한다는 것이니까. - P29

"이러는 게 어딨어. 이러면 내가 어떡하니."
그러자 엄마가 이모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너도 참, 네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데."

여전히 그 말을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 - P35

추웠다. 하지만 공기는 맑고 깨끗했다. 기분좋은 감각이 엄마의 마음에 마법처럼 흘러들어왔다. 엄마는 옹주의 꼿꼿한 자세를 떠올렸다. 바느질을 하는 내내 그녀는 한 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 상태로 옷을 만들었다. 어쩐지 그녀는 계속 그렇게 살아왔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건 한 번도 꺾이지 않고, 강한 마음으로 한자리에서 버텨왔을 것 같았다. 그제야 엄마는 이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그것이 바로 귀티였다. 무언가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꼿꼿하고 흔들림 없는 자세로, 망설이지 않고 계속 그 일을 하는 것. 엄마는 옹주의 말이 믿음을 얻기를,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귀티‘를 알아봐주기를 바랐다. - P41

이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말할 수 있다. 절대 풀리지 않는 원한,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망치고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마음.

악의. - P49

원한怨恨.

누군가에게 쏟아붓기 위해 만들어진 마음. - P56

어김없이 중화루가 문을 닫았다. 뢰이한은 새벽부터 시장에 갔다. 건물이 텅 비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알뜰하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연주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인 나라즈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나라즈케는 울외를 술지게미에 버무린 뒤 숙성시켜 먹는 일본식 반찬이었다. 나도 좋아하긴 했지만 술냄새 때문에 많이 먹지 못했는데, 연주는 나라즈케를 반찬은 물론 주전부리로도 먹고 야식으로도 먹었다. 울외를 구하기 힘들어지면 다른 재료를 동원할 정도였다. 그녀는 시간만 나면 무와 오이, 당근, 무청 등등 구할 수 있는 모든 야채를 소금에 한번 절인 뒤 술지게미와 함께 장독에 담아두곤 했다. 나는 연주가 나라즈케를 만드는 것이 좋았다. 반찬을 만드는 건 어쨌든 일거리였지만, 적어도 나라즈케는 연주가 자신을 위해 만드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연주가 소금에 절여놓은 시래기를 손으로 꽉 눌러 짜며 중얼거렸다. - P133

"어릴 때부터 그랬어. 여기를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말이야. 여기에는 언제나 우리 외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어. 아니, 때때로 이 건물이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 이 건물은, 원한을 끌어들이는 것 같아. 사람들의 미움을, 증오를 자꾸만 집어삼키는것 같아. 서로를 배반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 가끔 잠을 청할 때면 그런 목소리들이 들려, ‘누구 마음대로 여기에 누워 있어? 네까짓 게 뭔데 여기에서 발을 뻗고 있지? 너를 끌어내리겠어. 잡아먹겠어. 어디 한번 뭐든 해봐. 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손가락질해. 나는 귀를 막고 싶지만 막을 수가 없어. 막아도 다 들리거든. 사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싶어. 들어야만 할 것 같아.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늘, 언제나. 그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어. 결국 나는 그 목소리들에 파묻히지. 소리는 또다른 소리가 되어 굴러오고, 나는 점점 희미해져. 사라져버리지." - P158.159

우리에게 사랑이란 덧없는 기억이고, 불행은 오래 남는 이야기죠. - P207

그런데, 웃기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동네 국민학교에 지영현을 물고 빨고 하던 선생이 하나 있었어. 그런데 그 여자가 왜 그렇게 지영현을 아꼈는지 알아? 지씨 놈이 돈을 줬거든. 아니, 평등이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지 자식 잘 봐달라고 하면서 선생한테 돈을 멕인 거야. 글쎄, 따로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했다더군. 그 코쟁이 놈의 말을 말이야. 지영현 그 요망한 것은 지가 잘나고 똑똑해서 따로 과외를 받는 줄 알았지. 그래서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나서 아주 동네가 시끄럽게 난리를 피웠어.
마을 한복판에서 지 부모에게 뭐라고 지껄였는지 알아?
"처참하고 불경해요."
이랬어. 아우, 되바라진 것.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애였지.
정말 똑똑했어. - P229

해방 후에는 많은 것이 엉망이었어. 법도 없고 질서도 없었어. 매일매일 뭔가가 뒤집어졌지. 그래. 그 여름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변했어. 함께 술을 마시거나 서로의 일을 도와주는 모습이 사라졌지. 우리는 서로를 의심했으니까. 좌익일지 모른다. 우익일지 모른다. 그냥 미친놈일지 모른다. 아무튼 우리를 해칠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증오했어. 같은 마을에서 벌거벗고 같이 자랐는데, 서로를 미워하는 데 더 익숙해졌지. - P230

누군가를 구하고 싶지 않았어.
나를 구하고 싶었을 뿐이야. - P232

나는 그가 낯설었다. 그리고 익숙했다. 그에게서도 느껴졌던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가족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일렁이는 낙담과 체념. - P250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란, 어쩜 그렇게 공감하기 쉬울까. - P252

느닷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나는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해준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련은 시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고통 이후 단단해지는 마음이나 냉정한 판단력 같은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뜻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을 여유 있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르다는 건 알겠다. 물질적인 안정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휴식일 수도 있고, 새로이 닥쳐온 또다른 고난일 수도 있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여유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 불가해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지속되는 원한.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 가라앉지 않는 분노. - P273

"형님, 저는 가게를 하고 싶어요. 바로 여기서요. 이 땅에서요. 저는 중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지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 고향은 람청인데, 저는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났어요. 그리고 고향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지요. 대체 그 고향의 음식이란 뭘까요? 람청 음식일까요? 인천 음식일까요? 어쨌든 저는 계속 그 음식을 먹고 싶어요. 그리고 만들고 싶어요. 아마 앞으로 제가 만드는 음식은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 되겠지요. 고향이 없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고향이 없기에 고향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후략) " - P284

나 역시 어떤 원한을 가졌지만, 그건 사실 비대한 자의식의 일부이기도 했다. 내가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고, 이걸 해내야만 한다는, 나만이 이걸 할 수 있다는 특별한 마음 말이다. 물론 그것 없이 소설을 쓸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전부인 것도 역시 아니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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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필요‘ 개념은 긴급성과 중요성을 담고 있어서 우리 일상생활의 언어 용법과 도덕적 담론에서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 누군가 곤궁한 처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그 사람에게 결핍된 것을 제공해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 사이에는 이처럼 규범 측면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어서 타인이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에는 ‘시급하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도덕적 부담감이 생긴다. 즉 ‘필요하다‘는 주장need claims은 모종의 도덕적 힘을 내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도덕적 의무의 관념은 필요에 의거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예로부터 종교 경전은 고아, 나이 든 독거 여성, 노인, 걸인 등을 향한 보살핌의 의무를 강조해왔는데, 이는 빈곤에 대한 필요 원칙이 사회정의와 연대성의 오랜 기준이었음을 보여준다. - P74

기본적 필요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들은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 계획을 짜고 실천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이자, 최소한의 자율성 능력을 가지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여기에는 영양가 있는 음식, 깨끗한 물, 주거, 유해하지 않은 노동환경, 유해하지 않은 물리적 환경, 적절한 의료, 아동기의 안전성, 유의미한 일차적 인간관계, 신체적 안전성, 경제적 안전성, 적절한 교육, 안전한 임신과 출산 및 임신중절, 안전한 양육 등이 해당한다. 기본적 필요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개인들은 정상적으로 사회적 협동에 참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기본적 필요의 충족 원칙은 여타의 정의 원칙들을 적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셈이다. - P77.78

선택의 자유는 중요하다. 왜 그런가? 우리는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되어 삶의 서사를 써나가고 고유한 색깔로 채워나가기를 소망한다. 선택을 통해 학습하면서 옳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법을 익혀가므로 선택의 결과만큼이나 선택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택 과정 자체가 인생 계획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현해갈 능력이 있음을 느끼고 체험하는 과정이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만의 삶의 무늬를 직조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이 믿는 가치들에 입각해서 옳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관심을 두는 독립된 개별적 인격체라는 점은 그 누구도, 그 어떤 교리도 합리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자명한 상식이다. 이러한 존재인 우리는 각자 인생의 길에서 잘못을 저질러도 반성하여 교정할 수 있고 기존의 생각을 수정할 기회가 있음을, 또 이를 통해 성장해갈 수 있음을 익히 알고 있기에 선택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P96

‘옳고 그름, 바람직함, 의무와 권리, 요구와 금지 등’의 내용과 표현 담긴 도덕적 언어를 전혀 구사하지도 않고, 서로에 대한 도덕적 판단도 하지 않는 인간의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지닌 두 가지 측면의 도덕적 능력을 인간의 근본을 이루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격체라는 관념의 핵심이며, 인격 발현은 이 두 능력을 발휘(행사)하는 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 P100.101

예를 들어, 대학 기숙사에서 인종이나 민족 집단 또는 사회적 신분을 기준으로 샤워 시설이나 화장실 공간을 분리하되 똑같은 수준의 시설이 보장된다고 하자. 이렇게 공간을 분리하되 평등하게‘라는 원칙이 인종이나 민족 집단에 적용된다면 물질적 시설을 균분한 것이므로 정의롭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남녀 성별에 따른 공간 분리와 같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평등한 공간 분리‘의 분배 원칙은 차별이라고 대체로 말할 것이다. 왜 그럴까?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특정 인종이나 민족 집단은 저열한 인간집단이자 이등시민이므로 가능한 한 접촉하지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용해왔다. 그런 낙인이 제도적으로 오랫동안 시행되어 왔기 때문에, 인종이나 민족 간에 평등하게 공간을 분리하여 이용 하게 하는 분배 원칙은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의 사회관계를 반영하고 구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 - P118

몫 없는 사람들의 몫은 몫 없는 사람들의 외침이 사회정치적 의미를 갖는 목소리로 바뀌어야만 비로소 정의 담론 속으로 편입되고 정의의 문제로 진지하게 고려된다. 전태일 열사의 사례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보이지 않던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의 전환, 들리지 않던 것에서 들리는 것으로의 전환, 무의미했던 것에서 의미를 갖는 것으로의 전환은 바로 ‘감각적인 것‘의 새로운 분배(배치)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지며, 감각적인 것‘의 새로운 분배야말로 사회정의의 근본 문제라는 것이 랑시에르의 주장이다. - P120.121

다음으로, 부의 불평등은 사회의 상층계급 구성원들의 인지능력을 왜곡하는 효과를 낳는다. 상층계급의 일원으로 대우받고 자라다 보면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의식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속한 기득권 사회(만)의 ‘정의로움‘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려면, 또한 타인에 대한 비인간적 취급과 멸시를 늘 접하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유지하려면 그런 관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때문이다. - P125

돈이 분배 기준을 독점 · 지배하는 현상dominance과는 달리, 복합적 평등이 달성된 사회에서는 각각의 분배 영역에서 균분이 아니라 차등한 분배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각 영역에서의 차등들이 서로 상쇄되어 결국에는 시민들이 평등한 지위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 (마이클) 왈쩌가 주장하는 정의관의 핵심이다. 경제 영역에서 돈을 많이 버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예술이나 과학 영역에서 명성을 누리는 이들이 있고, 정치 영역에서 대중의 지지를 근거로 더 큰 권력을 얻는 이들이 있지만, 각 영역에서의 차등 또는 불평등이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한다면 시민들의 평등한 지위는 유지된다는 것이다. - P154

자기를 존중한다는 감정의 핵심은 내가 당신과 똑같은 시민으로서 중요한 공적 사안에 대해 동등한 발언권을 행사하고, 나의 이해관계와 관점이 입법 과정에서도 당신의 것과 동등하게 고려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 자기 존중감은 동등한 인간 존엄이 사회적으로 보장될 때 형성될 수 있다. - P194

사회적 불리 요인 중에도 영향력이 더 큰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여타의 사회적 불리 요인을 초래하거나 끌어당겨서 쉽게 뭉치게 하는 인력引力이 강하고, 인간의 정상적인 기능과 능력을 심하게 부식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실업이나 불안정 노동이 당사자의 심신 건강에 심각하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와 사회적 유대 결핍이 더 큰 재난 피해를 야기하기 쉽다는 연구 결과는 사회적 불리 요인의 군집 · 누적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소득층이나 불안정 노동 종사자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보다 대단히 자주 위험하거나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을 커다란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력과 부식작용이 강한 사회적 불리 요인의 군집 · 누적 현상을 몸으로 직접 겪는 사람들을 ‘사회적 최소 수혜자 계층‘ 이라고 한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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