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요구에 따라 기존의 낙태죄 조항을 대체할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입법 과정은 임신중단에 관한 치열한 정치적 논쟁을 요구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런 논쟁의 장이 합리적 규칙에 따라 운영되도록 하는것이다. 즉 개념적·논리적 일관성과 내용의 체계성을 갖춘 주장만 토론에 참여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것은 정치적 공간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이런 규칙을 준수하려는 사람이라면 자기 주장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피해 갈 수 없다. 인간의 자율성이란 무엇인가? 국가는 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해야 하는가? 권리란 무엇인가? 법은 무엇을 인간으로 규정하는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P7.8

낙태죄 폐지는 단지 임신중단의 비범죄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이 자기결정권에 기초해 임신 유지와 중단을 선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임신중단을 권리의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즉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며, 국가는 임신중단을 단지 허가하는 게 아니라 권리로서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가 권리로서 다루어지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현실적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적 논쟁의 장에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문제적 개념이 다시 개입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임신중단 제도화 과정은 결국 여성에 대한 일방적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할 수도, 강력히 규제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일관성 있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기구는 몇몇 권력집단의 의지와 변화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제멋대로 개인의 권리를 다루게 될 것이다. - P11.12

그럼 우리는 어째서 생명권의 주체인가? 그건 단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법이 우리를 권리의 주체, 즉 인간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생명권은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보호된다. 요컨대 태아의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든 간에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인가?"라는 질문은 "태아는 법적 인간인가?"라는 질문에 의존한다. 태아가 법적 인간이라면 당연히 권리의 주체일 것이고, 법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 반면, 태아가 법적 인간이 아니라면 법은 태아의 권리와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 P18

위 인용문(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 결정문)에서 언급했듯이 생명권은 인간이 지닌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데, 어떻게 인간 아닌 존재가 인간의 기본권을 가질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헌법불합치의견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논변과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로널드) 드워킨이 강조하듯, "태아의 생명권"과 "태아 생명의 본래적 가치"를 구별한 것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본질적인 요소다. 헌법불합치의견은 이 근본적인 구별을 은근슬쩍 지워버린다. - P30

태아의 생명권에 관련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논리적 선택지만 존재한다. ① 태아는 인간이 아니고, 생명권의 주체도 아니다. ② 태아는 우리와 동등한 법적 인간이고, 우리와 같은 생명권의 주체다. 첫 번째를 선택한 경우에만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인정할 수 있고, 두 번째를 선택한다면 임신중단은 범죄가 된다. 물론 이 두 가지 외에 제3의 선택지를 찾는 게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숱한 논리적 문제와 실천적 어려움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의견은 태아가 인간은 아니지만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는 제3의 논리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전혀 해결하지 않았다. - P34.35

헌법불합치의견이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한 것이 뭐 그리 심각한 문제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태아 생명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생명권 개념을 사용한다. 하지만 허술한 개념 사용에 관대한 이런 경향을 조심해야 한다. 생명과 생명권의 구별은 임신중단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서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임신중단의 문제는 재판정을 떠나 입법부의 정치적 영역으로 이동했으며, 이제 임신중단에 대한 여성의 자율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진영과 임신중단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려는 진영이 충돌할 것이다. 이때 헌법불합치의견이 인정한 태아의 생명권 개념은 여성의 몸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말의 힘에 비해 너무나 허약하기 때문이다. 헌법불합치의견은 엄밀한 법적 논증을 한 것이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고, 그 결과 태아의 생명권은 법적 개념이 아니라, 아무 데나 가져다 쓸 수 있는 정치언어가 되어버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낙태죄 폐지를 지지해온 시민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임신중단 반대 진영에게 강력한 무기를 쥐여준 꼴이 되어버렸다. - P40.41

흔히 태아를 "잠재적 인간"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재적이라는 것은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 P51

물론 모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태아의 생명을 빼앗아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은 사실상의 차원에서는 임신중단과 같을 수 있겠지만, 권리상의 차원에서는 결코 임신중단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동일한 지위를 가진 두 명의 인간이 신체적으로 결합해 있고, 둘 중 하나를 살리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체를 살리기 위해 태아를 희생하는 경우, 그리고 태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체를 희생하는 경우는 동등한 두 가지 선택지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의학적 선택을 정당화하는 법률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 조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다. - P52

인간은 자신이 놓여 있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양한 권리를 보유하게 된다. 예컨대 사용자의 권리와 노동자의 권리, 판매자의 권리와 구매자의 권리, 건물주의 권리와 세입자의 권리 등 사회적 지위에서 파생된 권리들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계속 변한다. 하지만 이런 권리들에 앞서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지위에 결부된 기본적 권리들, 즉 인권을 보장받는다. 사회적 지위에서 파생된 권리들과 인권은 거대한 체계를 이룬다. 이게 곧 법의 체계이기도 하다. 이 체계에서 몇몇 권리만 빼내어 동물에게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학대당하지 않을 인간의 권리를 동물에게 보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다른 권리가 될 것이다. 같은 것은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라는 말뿐이다. 그러므로 법체계가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려면,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동물이라는 새로운 법적 지위를 추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비인간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은 특정한 종류의 비인간을 새로운 법적 지위로 추가할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전환된다. - P64.65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중단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모자보건법을 동시에 긍정하려면, 태아의 생명권을 법적 인간의 생명권과 다르게 정의해야 하며, 그것을 태아의 생명권이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생명권은 사실상 예외적 살인을 허용하는 생명권이나 다름없는데, 애초에 이런 걸 생명권이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권 개념의 모호성은 한국 법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임신중단은 범죄이지만 예외적 임신중단은 허용할 수 있다는 모든 법적 담론에서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드워킨도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비슷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에도 임신중단 비범죄화를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모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 혹은 강간 및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에는 임신중단을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는 믿음과 양립할 수 없다. 요컨대 세상에는 태아의 생명권을 근거로 임신중단 범죄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이 정말로 법적 인간의 생명권과 동일한 경우는 거의 없다. - P76.77

태아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생명권의 주체임이 곧바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생명은 생명권의 주체가 갖추어야 할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보려면 법적 인간으로 인정하거나, 태아가 인간은 아니지만 권리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2019년의) 헌법불합치의견은 태아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지만, 이는 너무 불충분하다. 태아는 앞으로 생명권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그냥 지금부터 생명권의 주체로 보자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식의 논리라면, 만일 "특별한 사정"이 이미 발견된 경우, 예컨대 질병이나 기타 요인으로 인해 건강하게 태어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태아의 경우, 생명권의 주체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서 인간의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면, 생명권뿐 아니라 인간의 다른 권리도 태아에게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굳이 태아와 인간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가? 차라리 태아도 법적 인간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P81

그런데 태아가 앞으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비인간 태아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과 동일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는가? 물론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거기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태아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 P83

앞 장에서 언급했듯, (낙태죄) 합헌의견은 모자보건법이 규정한 다섯 가지 경우에 한해 낙태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태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다르지 않다면, 더구나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면 어떻게 예외적 임신중단을 허용할 수 있는가? - P84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발상은 법 외부의 도덕적 영역들, 예컨대 태아의 생명에 일차적 가치를 부여하는 전통적 믿음이나 종교적 신념 등에서 탄생한다. 이런 영역들에서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도덕 규범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이런 규범을 법질서 내부로 가져올 수는 없다. 결국, 인간 여성과 비인간 태아의 법적 지위를 뒤집기 위해 일종의 꼼수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바로 태아의 생명권이다. 이런 꼼수의 목적은 태아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인간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 있다. 태아의 생명권은 대부분 임신중단에 관한 논쟁에서만 주장되고, 그 주된 기능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태아 생명과 관련한 다른 문제들, 예컨대 태아가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질 수 있는지의 문제에서 태아의 생명권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임신중단 논쟁에서 태아의 생명권이 등장하는 순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믿음, 그리고 여성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부장주의적 믿음이 뒤섞이게 된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가부장주의적 장치를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규범 자체가 가부장주의에서 태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태아의 생명권 개념과 가부장주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 P86.87

모자보건법은 임신중단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데, 예외적 허용의 핵심 쟁점은 임신중단 허용 범위가 너무 좁다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단 사유의 제출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에 있다. 즉 이 법은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단의 사유를 묻는다는 점에서 그냥 그 권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 P91

혹은 임신중단 사유가 허용과 금지의 기준이 되지는 않더라도, 국가가 사유 제출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부정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성이 임신중단을 원하는 개인적 이유를 국가에 밝혀야 한다면, 그 형식이 어떻든 간에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자기결정권에서 제외된다. - P91.92

만일 국가가 사회적·경제적 사유의 임신중단은 허용하고 선별적 임신중단을 금지한다면, 이는 태아의 생명보호가 아닌 제3의 믿음에 따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수 시민이 장애가 있는 태아의 출생을 줄이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라고 결정하는 경우에는, 여성에게 선별적 임신중단을 강제할 수도 있게 된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순간, 선별적 임신중단 금지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선별적 임신중단을 막기 위해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법적 허용과 금지가 아니라, 그 횟수를 통계적으로 줄이기 위한 다른 방식의 제도적 장치뿐이다. - P98

(이런 논의를 더 진전시키면, 선별적 임신중단을 줄이는 방법으로 선택 가능한 것은 개인에게 법적·도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제거하고 사회적 권리들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 P99

이런 이유로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규제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권리, 예컨대 소유권을 규제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요한 문화재나 멸종위기종 동물이 개인의 소유물이라 할지라도, 국가는 그것들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소유자가 자기 소유물을 파괴하거나 죽일 권리를 부정할 수 있다. 이때 제한되는 것은 소유권의 일부다. 반면,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여성 자신에 대한 권리다. 따라서 임신중단 금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 즉 인간의 자율성 자체를 제한하는 것 혹은 그 권리의 핵심 요소를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다. 태아의 생명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중대한 이익이라고 할지라도, 그 이익을 위해 인간의 자율성과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08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거나 개인의 존엄성을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은 공익이 아니다. 공통의 이익이라는 개념 정의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 P111

공익을 말하며 임신중단 범죄화를 주장하는 사람과는 최소한의 합리적 토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면, 여전히 "방종", "남용", "무분별" 따위의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면 낙태 시술이 무분별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반응도 익숙하다. 합헌의견은 임신중단 허용이 "일반적인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생명경시 풍조"가 정확히 무엇인가? 헌법재판관이 사용하는 법적 언어에 이런 정체불명의 말이 튀어나와도 되는가? 권리 주장에 대한 이런 식의 반응은 근거 없는 미신에 가깝다. "무분별한 낙태"나 "생명경시 풍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실제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도 임신중단을 금지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므로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공동체의 어떤 가치나 이익을 이유로 그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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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 군이 사망했을 때 김 군의 친구를 인터뷰했다. 죽기 전날 점심을 함께 먹은 친구였다. 둘이 친구가 된 것은 김 군이 먼저 자판기에서 꺼낸 캔 음료를 건네며 말을 걸어서였다. 직장에서 친구가 된 둘이 나눈 이야기는 늘 하나였다. "우리 잘릴까?" 마지막으로 함께 밥을 먹을 때 김 군이 한 말도 이것이었다. "아무래도 나 잘릴 것 같아." 그래도 김 군은 언제 같이 여행을 가자는 말도 했다. 김 군의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늘 잘릴까 아닐까 그런 이야기만 했지 뭘 좋아하는지, 최소한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이야기를 못해 보고 살았어요. 그게 가장 후회돼요." 김 군의 친구는 김 군이 죽은 후에도 계속 김 군에게 전화를 했다. (정혜윤) - P5

이 책은 김용균, 태완이, 구하라, 민식이, 임세원, 사랑이, 김관홍,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모두의 이름에서 발견한 ‘닮음‘이 어떻게 법과 문화와 언어를 바꿔나가는지를 담고 있다. 다 읽고 나면 우리가 타인의 이름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고, 자신의 이름에 얼마나 많은 책임이 따르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이름이 가진 무게를 감각하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잘 살아가야 한다.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더 발견하고 그들에게 더 다정해져야만 한다. 이 책을 읽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김민섭) - P11

서양 법언에 "어려운 사건이 나쁜 법을 만든다Hard cases make bad law"라는 말이 있는데,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 Holmes 미국 전 연방 대법관은 그 말을 조금 달리 해 "큰 사건이 나쁜 법을 만든다Great cases like hard cases make bad law"라고 했다. 압도적인 관심을 불러온 어떤 사건 자체에 너무 몰두하면 본질을 놓쳐 판단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국회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차분하게 논의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문제만을 건드리는 손쉬운 법을 뚝딱 만들어내는 일이 적지 않던 것도 사실이다. - P14

제63조(도급인의 안전 및 보건조치)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다만,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한다.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그 의미는 도급인, 즉 원청이 안전 및 보건조치를 해야 하고, 도급인이 이를 충분히 하지 않아 산재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청이 책임지는 범위가 매우 제한되던 기존 법과 달리 개정안에서는 그 책임 범위를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로 대폭 확대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책임까지 떠넘기지는 못하도록, 외주화의 비용이 지금보다 훨씬 비싸지게 한 것이다. - P38

노동계의 숙원인 중대재해처벌법을 15년 만에 통과시키는 주역이 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사실 그 15년 중 13년을 노동자로 살면서도 현실은 잘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구미의 섬유 공장에 취직해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결혼했다. 임신하고 출산할 때만 빼고 계속 일했다. 아들은 일찍 철이 들어 스스로 공부하고, 자격증을 알아서 따고, 기특하게 취업도 했다. 가족이 모두 성실하고 큰 욕심 없이 살면서, 이 나라가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사건 이후 그동안 알던 세상이 거짓말처럼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렇게 많은 노동자가, 더 정확하게는 하청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는다는 걸 알고 나니 이 나라는 ‘살 만한 나라‘가 아니라 정말 ‘이상한 나라‘였다. - P44.45

(태완이의 어머니) 박정숙 씨가 말할 힘조차 부족한 아이를 달래가며 받은 진술을, 수사팀은 강산성 화학물질인 황산을 비닐봉지에 부으면 비닐이 금방 녹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근거로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실험한 결과 시중에서 쓰이는 검은 비닐봉지의 주성분인 저밀도 폴리에틸렌은 황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태완이 말이면 다 된다고 해서, 태완이한테 물어보라고…... 그러면 범인이 밝혀질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그 잔인한 행동을 하지. 부모가, 그 아픈 애 붙들고.......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잖아. 15년 뒤에 써먹으려고 했겠나고요.. 묻고, 묻고, 또 묻고, 애 어르고 달래고, 나는 엄마도 아니에요. 그기 생각하면." - P61

(독일은) 나치 청산에 이렇게 철저한 나라이니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법안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니었다. 찬성 255 대 반대 222. 팽팽한 찬반 대결이었다. 반대 논거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인간 세상에서 정의의 실현에는 한계가 있다. 공소시효는 검사, 판사의 오랜 시간이 경과한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 획득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오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범죄 후 30년이라는 세월은 입증을 곤란하게 하여, 오판이라는 국가적 불법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 P72

굳이 남의 나라(독일) 이야기를 하는 건, 우리 국회가 시효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며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보류했을 때와 극명한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여론에 떠밀려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던 소신 있는 주장은 2011년 성폭법과 아청법 등 특별법 개정 때 했어야 했다. 시효는 형사 소추의 주요 제도 중 하나이므로 그 배제 규정은 기본법인 형사소송법에 정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개정이 쉬운 특별법에 공소시효 배제 규정을 먼저 만들고, 그 결과 무너진 법적 균형을 뒤늦게 기본법 개정으로 바로잡으려다 ‘태완이 없는 태완이법‘을 낳은 것이다. 정의의 실현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로 태완이 부모를 위로하지 못하는 건 바로 그 이유에서다. - P72

재심 무죄 판결로 세상은 바로잡히는 것 같지만, 억울한 옥살이를 한 당사자의 삶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진범이 드러남으로써 가슴의 응어리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데 걸린 고통의 세월은 결코 치유되지 않는 걸 재심 전문 변호사인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박(준영) 변호사의 소회를 들으며 태완이 사건과 익산 택시기사살인 사건, 화성 8차 사건에 공통점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바로 초기 수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태완이 사건에서 경찰은 피해자의 진술(예컨대 황산이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는 진술)을 근거 없이 배척해 성과를 얻지 못했고, 유가족에게도 깊은 상처를 주었다. 박정숙 씨가 가슴의 한을 끝내 풀지 못한 건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고통 속에서 토해낸 진술을 무시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일 것이다. - P78

왜 구하라법은 여론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지 않은 반면, 공무원구하라법은 서둘러 통과가 되었을까. 답은 구하라법이 민법 개정안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민법은 민사 법률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이기에 다른 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무원연금법과 공무원재해보상법에서 민법의 상속 순위에 따른 상속인에게 유족연금과 재해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그래서 민법을 개정할 때는 대개 법무부에 한시적인 민법개정위원회가 설치되어 그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정한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반면 공무원구하라법은 공무원이 순직했을 때 그 보상금과 유족연금을 지급하는 기준을 수정하는 것에 불과했다. 공무원연금법과 공무원재해보상법이 일부 바뀐다고 다른 법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몸집이 가벼운 법률이라 다루기가 쉽다는 뜻이다. 또한 구하라법 논의가 몇 달째 이어지며 양육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 제한이라는 화두에 우리 사회가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 P104.105

(민식이법의) 발단은 어린이보호구역에 관한 부모의 문제의식이었다. 민식이 아빠 김태양 씨는 슬픔과 고통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계속 질문했다. 그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을까.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그 횡단보도는 평소 그의 아이들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도 자주 지나다녔고,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동안 평범한 시민으로 살면서 법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내 아이가 끔찍한 사고를 당하자 어린이보호구역인데도 보호시설이나 장비가 전혀 없는 게 모순으로 보였다. 최소한 신호등이나 과속 단속 카메라라도 있었다면 운전자가 더욱 조심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런 사고까지는 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 P116.117

그러나 이 법(민식이법) 자체의 허술함이나 개정 과정에서의 문제는 차치하고, 법이 개정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인 민식이 부모에게만 모든 비난이 쏟아진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 P124

긴 우울의 터널을 조금씩 빠져 나오고 있는 박초희 씨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된 민식이, 엄마를 늘 생각한 아들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 두 동생의 형인 민식이는 또래보다 의젓했다. 밤 늦게까지 치킨집을 운영하는 엄마를 특히 애틋하게 여겼다. 용돈으로 붕어빵을 사 먹을 땐 엄마 몫을 먼저 떼어놓고 그게 식을까 봐 외투 안에 넣고 뛰어오던 아이였다. - P126

사람 이름을 딴 법에는 장단점이 있다. 특정 사건에 느끼는 안타까움이 커서 공감대가 빨리 형성되므로 상대적으로 쉽게 법 개정이 될 수 있고, 딱딱하고 긴 정식 법률명 대신 누군가의 이름으로 부르면 간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단시간에 형성된 여론의 압박으로 국회가 심사에 소홀할 수 있고, 법 개정의 계기가 된 이들의 사생활이 과하게 파헤쳐지거나 이용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민식이법이 그랬다. 특정범죄가중법에 대한 비판이 유가족을 향한 과도한 비난이 되어 그들의 삶을 할퀴었다. 민식이법을 이야기해야 하는 건 사람 이름으로 불리는 법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 P127

교통사고 관련 형사 기본법인 교통사고처리법은 다른 형사법과 달리 기본적으로 가해자의 형사 책임을 되도록 묻지 않기 위해 만든 법이다. 자동차가 보편적인 교통수단인 만큼 사고는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마련이고, 교통사고는 대개 고의가 아닌 과실이므로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는 민사로 신속히 해결하고 형사처벌은 자제한다는 취지다. - P128.129

(민식이법 중에서) 특정범죄가중법이 과잉 형벌이냐 아니냐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국회에서 절차를 위반했고, 법안 심사 때 예상 가능한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유가족을 향한 여론의 가혹한 비난, 불필요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과실범의 가중처벌 규정을 비판하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상대를 고른 것이 아닐까. - P134

"좋은 법안이 올라왔다고 자동적으로 통과되지 않아요. 법안 심사에 나아가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압박을 동원하는 거죠. 상임위 간사 의원 방 찾아가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다 결국 못 만나고 간 적도 부지기수예요. 국회에 다른 큰 이슈가 있을 때 더 그렇죠. 다들 그 이슈에 매달리느라 이런 작은 법안(민식이법 등 어린이생명안전법안)들은 관심을 받기 어려우니까요. 어떨 땐 새벽 3시까지 기다리기도 했어요." - P137

우리가 무고한 이의 목숨을 부당하게 앗아간 잔인한 ‘가해자‘를 볼 때, 유가족은 몇 년째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 ‘환자‘를 보았다. 임세원이 그랬듯 말이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위기의 순간에도 간호사가 잘 대피했는지 뒤돌아보고, 주변에 적극적으로 위험을 알리다 끝내 자기 목숨은 구하지 못한 의사와, 슬픔 앞에서도 문제의 핵심을 짚고 침착하고 단단하게 행동하는 유가족의 모습은 놀랍게도 닮아 있었다. - P150.151

의료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든 해결책은 환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환자안전법에서 나왔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치료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의료진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 (의료인의) 안전의 문제는 (정신질환자의) 치료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 P164.165

2018년 12월 31일(임세원 교수가 사망한 날) 오전 10시 45분 백종우 교수는 외래 진료 중 친구 임세원의 카톡을 받았다. "고대도 본2에서 수업 예정." "자살 예방을 위한 의사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3시간 배정." "세 시간을 내가 혼자 하긴 무리이니 시간을 맞춰서 해보았으면 좋겠다."
사무적인 어투로 정보만 간단하게 쓴 문자였지만, 친구가 몹시 기뻐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임세원은 보고듣고말하기를 의대 수업에 포함시키기 위해 그해 내내 노력해왔다. 그 결실로 서울대, 경희대에 이어 고려대에서도 본과 2학년에서 시간을 배정했다는 연락을 받고는 신이 나서 곧바로 문자를 보낸 것이다. 백 교수도 간단하게 답장했다. "장하다." - P166

임세원을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은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법원이 내렸을 때 그(백종우)는 친구의 참변 이후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다.

"판결문을 읽으면서 ‘때로는 법이 어떤 정신과 치료보다 정확한 치유와 깊은 위로를 주는구나‘ 그걸 느꼈어요. 임 교수가 한 행동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구조 행위였음을 반박할 수 없게 정리해주더라고요. 정의가 주는 위로라는 게 그런 것인가 봅니다." - P171

이런 소극笑劇 같은 상황은 2020년 6월 8일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천명하면서 일단 정리가 된다. 사건의 아이 아빠는 귀화한 한국인이고, 아이 엄마는 중국 국적이나 여권 효력이 정지되어 중국 당국으로부터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었다. 부득이하게 아이 아빠가 사랑이법에 따라 친생자 출생의 신고 확인을 구했으나 1, 2심 모두 기각되었다. ‘모의 인적 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법에서 말하는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예시적인 것이므로, 모의 인적 사항은 알지만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 등과 같이 그에 준하는 사정이 있는 때에도 사랑이법이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으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 P196.197

배(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전남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의 바다 골짜기, 맹골수도孟骨水道였다. 이름처럼 물살이 맹수처럼 거칠고 빠르며, 미세한 뻘로 가득 찬 험한 바다였다. 헤드 랜턴을 켜도 시야 20센티미터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111개의 격실과 17개의 공용 공간을 헤치고, 좁고 어두운 배 안에서 시신을 두 팔로 꽉 끌어안아 한 몸이 되어야 선체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 P208

수심 40미터가 넘는 심해에서는 하루에 한 번만 잠수를 하고, 5일 잠수를 하면 이틀은 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잠수 중 몸 밖으로 완전히 배출되지 않은 질소가 기포를 형성하여 피의 흐름을 방해해 뼈가 썩게 되는 골괴사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하지만 민간잠수사들은 하루에 두세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 잠수를 했다. 유가족들의 애통함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 P208.209

"(전략) 저희는 단순한 거예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 진실은 다를 수 있지만 상황은 정확히 얘기를 해야죠." (김관홍 잠수사) - P215

그들의 변명처럼 ‘법대로‘ 한다면 잠수사들이 그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들어갈 이유도, 다칠 것을 알면서 하루에 서너 번 씩 잠수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니 ‘법대로‘ 한다면 후유증이 뻔히 보이는 일을 거절했어야 했다. 잠수사들이 마음으로 한 일을 정부는 법으로 판단했다. - P218

민간잠수사들이 세월호 실종자를 수색한 방식인 표면 공급식 후카 잠수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 작업이다. 실종자 수색 전에 사전준비팀이 배 안에서 통로를 개척하는 작업을 해야 했고, 잠수사가 실종자를 안전하게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는 슈퍼바이저, 텐더, 통화수, 기록수 등의 지원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 P219

상임위 가결 한 달여 만인 (2018년) 3월 29일, 법사위에 김관홍법을 포함한 87건의 법률안이 일괄 상정되었다. 윤상직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윤상직 위원
잠수사는 이미 다른 법률에 의해 가지고 지원을 열어줬거든요. 그 다음에 잠수사 사망 및 부상은 세월호 침몰하고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일종의 산업재해와 관련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확대해서 지원해주는 것이 맞느냐는 부분에 대해서 저는 2소위로 넘겨야 되겠다는 생각이고요.

‘2소위‘란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를 말한다. 다른 상임위를 통과하고 법사위에 체계·자구 심사로 온 법안은 소위를 거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체계와 자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2소위로 넘어가는 법안이 있다. 국회에서는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를 ‘법안의 무덤‘으로 부른다. 그러니 2소위로 넘기자는 건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뜻이다. - P225.226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다 질병이나 장애를 얻은 사람이 해경잠수사였다면, 정부가 참사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산업잠수업체와 계약을 맺어 그 사업체 소속 산업잠수사들을 투입했다면 이런 소동이 일어났을까. 해경잠수사들이 심해 잠수 경험이 부족해서, 정부가 민간업체와 계약할 여력마저도 없어서, 전국에서 자원한 민간잠수사들이 그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럼 그들에게 마땅한 처우가 어떠해야 하는가. 이 간단한 질문에 당연한 답을 얻어내기까지, 국가의 수난구호업무 종사명령을 받은 후로부터 무려 6년이나 걸렸다. - P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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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 과학자들도 충격을 받았다고 대서특필했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이미 오래전인 1997년에 아이비엠IBM의 인공지능 딥블루가 세계체스챔피언을 이겼을 때 이세돌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이지요. 체스와 바둑의 특징적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공지능의 차원에서는 수를 읽는 연산의 복잡성 외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체스든 바둑이든 인공지능이 지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방법은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생각하는 방법, 추론하는 방법, 수를 읽는 방법, 학습하는 방법 등은 사실상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기계학습의 종류가 다양하다고 할지라도 설정하는 조건들이 다를 뿐,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같다고 볼 수 있죠. 이 간단한 사실만 이해하더라도 알파고 사건은 전혀 놀랍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라는 보도는 과장된 것이거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P7.8

이 게임(튜링 테스트)에서 인공지능 기계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적절히 모방하여 질문자가 자신의 상대를 인간으로 생각하게 속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질문자를 속일 때 기계는 모방 게임 속의 남자만큼 자기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요?" 튜링은 이 물음이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원래의 물음을 대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같다고 본 것입니다. - P22

누군가는 기능주의가 주제의 내적 상태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행동주의와 유사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행동주의는 마음을 행동과 동일시하면서 주제의 내면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적어도 내적 상태를 상정하지 않고 마음을 설명하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행동주의와 달리 기능주의는 내적 상태의 느낌이나 성질 자체에 대해선 서술하지 않지만 그것이 행동을 일으기는 인과력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내적 상태나 과정이 행동이라는 결과를 출력하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없으면 행동의 출력도 없습니다. 기능주의는 주제의 내면 상태가 인과 질서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입장입니다. - P27.28

기능주의에 의하면 여기서 입력과 출력의 동등성이 중요하지 인공지능 기계의 내면 상태가 질적으로 인간의 그것과 같은지는(즉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의식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능적으로 무관한 요소입니다. 또한 기능주의는 유기체나 시스템을 구성하는 물질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오직 기능과 역할로 심리 현상 내지 마음을 정의합니다. 따라서 사고력이나 마음을 갖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기계를 구성하는 물질과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즉 구성 물질이 실리콘인지 탄소인지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기능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P29

여기서 데카르트는 속임의 주체만이 아니라 속임의 대상이 갖는 사유능력을 코기토의 능력으로 간주합니다. 데카르트가 ‘코기토 에르고 숨‘의 확실성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도입한 악령의 사고실험은 무언가를 속일 수 있으려면 속임의 대상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지한 악령이 나를 상대로 모든 것을 속일 수 있더라도 ‘나는 생각한다(코기토)‘는 사실만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나는 생각하는 동안에만 속임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계를 속일 수 있는가?‘하는 물음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지, 즉 기계가 사고능력을 갖는지를 테스트할 기준이 됩니다. 이를 ‘데카르트 테스트‘ 혹은 ‘코기토 테스트’라고 부르겠습니다. - P33.34

수정된 중국어 방 사고실험은 내면의 의식과 경험 없이는 진정한 사고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중국어 방 논증을 이렇게 이해하면, 튜링에 대한 써얼의 문제 제기는 정확히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컴퓨터의 모방은, 모방 게임에서 여자를 가장한 남자와 같이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와 의식을 포함하는가? 혹은 기계는 S2처럼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주관적 의식 경험을 갖는가?" 즉 (존) 써얼은 ‘튜링기계가 자신의 사고를 의식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의식이 사고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지요. - P39

모든 사고에 항상 의식이 수반되진 않는다는 것이 튜링의 인공지능 논제를 지지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식이 동반되지 않는 사고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제기해줍니다. 즉 어떻게 의식 없이 사고가 가능한지, 의식이 동반되지 않는 사고는 어떤 것인지, 우리의 사고에서 의식이 차지하는 역할이나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하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그리고 이 물음은 인공지능의 사고에 대해 더 심화된 논의를 진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P43

물론 우리가 두뇌를 가진 덕분에 심리 현상을 가지고 정신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어떻게 두뇌의 물리 상태로부터 의식이 발생하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 P44

무언가에 대한 숙고는 대부분 지향적 사고들로 이루어집니다. 사고 내용 없이 현상적 의식만으로는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전개하거나 심화시키는 등 사고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명제 내용으로 이루어진 지향적 사고들은 체계를 형성하며, 체계 내적으로 의미들의 연관이 발생합니다. 사고 내용과 의미들 사이에서 추론과 함축, 일관성 등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고의 내용과 의미들이 모인 지향적 사고 체계는 상호 연관된 사고들의 총체적 구조 안에서 대상을 바라보는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이렇게 형성된 총체적 사고 체계 안에서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떠오릅니다. 관점이 생기는 것이죠. - P67

의식을 전제하지 않는 지향적, 기능적 사고만으로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기능적 마음을 구현하는 인공지능도 관점을 가질수 있습니다. 현상적 의식이 없는 인공지능도 지향적 사고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총체적인 사고 체계가 지지하는 모종의 관점을 갖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기계가 어떤 내용의 사고를 갖는지에 따라 특정 관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 P69

마찬가지로 ‘나‘라는 말을 이해하는 것은 이 말의 사용 규칙을 안다는 것이고, 이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과 규칙을 공적으로 익힘으로써 이 단어를 올바로 사용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적인 규칙 따르기는 기능화할 수 있기에 기계도 ‘나‘라는 일인칭 주어의 역할과 기능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공지능도 ‘나는 알파고다‘와 같은 일인칭 주어 문장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표현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차원의 주관적 관점은 현상적 의식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말의 사용이나 이해는 공적으로 접근 가능하고 또 그 말의 사용 규칙을 기능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주관적 의식이 없더라도 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언어의 규칙을 배울 수 있는 인공지능은 주관적인 일인칭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 P70

흥미롭게도 인공지능의 의식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향은 모두 ‘인간과 기계는 닮아간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유사한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즉 기계와 인간 둘 다 의식을 갖거나 둘 다 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계를 인간적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기계처럼 보는 것입니다. 과연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P81

정리하자면 공감은 다른 사람의 이유의 공간에 들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즉 일인칭 관점에서) 그 감정을 추론함으로써 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유의 공간은 보통 욕구와 믿음 등의 지향적 태도들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공감은 감각질을 전제하지 않으며 적어도 감각질 없이도 이유를 공유함으로써 공감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감각질이 없다고 공감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향적, 인지적, 기능적 이해에 바탕을 둔 인공지능의 공감은 여전히 가능할 것입니다. - P84

여기서 예시한 감정과 정서, 성향과 성격을 나타내는 언어들은 욕구와 믿음의 지향적 상태로 기술함으로써 기능적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정직함이란 진리를 말하거나 다른 사람을 잘못 인도하지 않으려는 욕구를 형성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사실대로 말하려는 성향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실망은 소망하는 바와 그 기대가 무너졌다는 믿음입니다. 좌절은 희망이 사라졌고 앞으로 다시 복구할 수 없다는 믿음이나 더 이상 기대의 여지가 없다는 믿음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요. 이처럼 기능적으로 정의된 감정이나 성향은 기능적 마음을 가진 인공지능이 학습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들 감정에는 질적인 느낌이 동반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감정이나 정서적 태도는 사고 내용을 가진 인지적, 지향적 태도라는 것입니다. 이런 지향적 심리 상태는 입력과 출력 관계로 기술되는 기능 상태로 접근할 수 있는 기능적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인공지능이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 P90.91

그렇다면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에서 사만다가 거짓 숨소리로 자신을 속인다는) 시어도어의 비난에 대해 사만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난 ‘하는 척‘ 하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난 당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가요"). 언어로 소통하고 사랑을 느끼고 공감했으면서도, 그 언어들을 모두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소통했으면서도 신체언어의 일종인 숨소리에 대해서만 언어 게임의 논리나 규칙이 아닌 생물학의 문제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시어도어는 애초에 사만다를 생명 없는 기계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대화하고 공감하며 사랑의 말을 ‘의미 있게‘ 나누었으면서도 유독 숨소리에 대해서만 기계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즉 사람이 아닌데 사람인 척한다고) 사만다를 비난한 셈이지요. 어쩌면 시어도어의 그런 행동이야말로 일관성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 P104.105

자연적 복제체인 일란성쌍둥이가 각기 개별적 몸을 가지고 고유한 경험을 하면서 개성을 가진 존재로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원리적으로 인공적 복제체도 유기적으로 통합된 개별적인 몸을 통해 각자 고유한 경험을 하는 만큼 개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 P116

이미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듯이, 기계는 살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거나 탈육화의 방식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진화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 따라 인간의 미래와 운명도 달라질 것입니다. - P117

색깔의 지각은 그것을 보는 주체가 직접 그 현상을 경험하는 것 이외에 그 경험이 무엇과 같은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현상적이고 주관적인 의식입니다. - P122

아마도 인공지능은 이 그림(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의 〈밀밭에서 추수하는 농부〉)의 색감에서 연상되는 평온한 죽음을 공감하거나 이해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색을 지각하는 현상적 의식이 없다면 이런 종류의 회화를 감상하고 즐길 수는 없겠지요. 그리하여 인공지능은 적어도 우리처럼 회화를 감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찬란한 빛깔의 밀밭 그림을 감상하거나 구수한 커피 향기를 음미하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달콤한 체리 향기를 즐길 수도 없겠지요. 이런 즐거움을 주는 의식은 기능과 무관한 것입니다. 즉 기능화할 수 없고, 그리하여 인공지능이 모방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 P131

색깔의 지각을 다시 고려해보면 물리적 지식을 통해 컬러 그림을 인지하는 것과 그것을 보며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전자는 색에 대한 과학적 지식으로 도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채색된 그림을 즐기거나 감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인공지능은 색에 대한 물리적, 기능적 지식을 가지고 채색을 하거나 심지어 천연색의 그림을 멋지게 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천연색 그림을 향유하거나 즐길 수는 없겠지요. 이는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릴 수는 있어도 그것을 감상하고 즐길 수는 없다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인공지능이 일을 할 수는 있으나 즐기거나 놀 수는 없다면 인공지능은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술과 놀이를 즐기고 향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132.133

의식의 결여 이외에도 인공지능 로봇이 놀이를 즐길 수 없는 이유를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인공지능이 추구하는 것은 주어진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효율성을 찾는 것입니다. 반면에 놀이는 어떤 목적에 종사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인 반면에 놀이는 기능이 없으며, 전자는 효율을 추구하지만 후자는 효용과 무관하지요. 놀이를 즐기고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것은 달리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긴다는 점에서 자족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은 무익하더라도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지만 인공지능은 그런 방식으로 놀이를 즐길 수 없습니다. - P134

우리가 복제품보다 원작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작품의 현장성, 신체성, 사회성, 역사성이 반영된 것, 나아가 문화가 반영된 것입니다. 결국 예술을 향유하는 주체들은 문화공동체에 속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문화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그림이나 예술작품에 담긴 사회문화적,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모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넓은 내용을 갖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원작과 복제품 사이에서 아무 차이도 인지하지 못하겠지요. 즉 인공지능은 원작에 대한 각별한 태도를 갖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달리 인공지능은 〈모나리자〉 원작을 보기 위해 루브르박물관에 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P139

여기서 똑같이 A의 두뇌 기능 상태를 이식한 B와 C가 서로 동일하지 않다면(즉 B와 C가 수적으로 별개의 두 개체라면) A와 B도 동일하지 않고 A와 C도 동일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일관적입니다. 이는 B와 C가 비록 나와 매우 유사하긴 하지만 바로 나는 아니라는 점에서 나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죠. 즉 나의 두뇌를 동시에 다운로드받은 두 명의 인조인간은 둘 다 나와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 나와 유사한 존재일 뿐입니다. 또한 나의 두뇌 정보를 두 명에게 이전했을 경우에 나의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한 명에게 이전했을 경우에도 나의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관적이지요. - P159

우리는 미래의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거기에 담긴 인간의 가치를 내면화하여 인간다워지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P161

둘째, 인공지능의 진화 방향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의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적 가치나 사고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물리적 토대인 육체를 초월한 인공지능은 그만의 초월적 방식이 더 효율적이며 인간의 기대와 상관없이 자율적인 인공지능은 그런 방향의 진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인공지능 학습이 자율성을 갖게 되면서 인간의 지식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리하여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고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며 자기 진화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P162

터키어는 3인칭 대명사의 성별이 구분되지 않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성별과 무관한 주어를 사용하여, 남녀 구별 없이 모두 ‘그 사람은 의사다, 그 사람은 베이비시터다‘라고 표기합니다. 그런데 터키어의 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할 때, 구글 번역기는 ‘그 남자는 의사다, 그 여자는 베이비시터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성별이 표시되지 않은 언어임에도 인공지능 번역기는 의사의 성은 남성, 베이비시터의 성은 여성이라고 역할에 따라 달리 성별을 부여한 것이지요. 심지어 영어의 ‘그 여자는 의사다. 그 남자는 베이비시터다‘라는 문장을 터키어로 (‘그 사람은 의사다, 그 사람은 베이비시터다‘ 라고) 번역한 후 다시 영어로 번역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네, 추측한 대로 원래의 영어 문장이 ‘그 남자는 의사다. 그 여자는 베이비시터다‘라고 성별이 뒤바뀐 채로 되돌아왔습니다. 번역을 거치면서 인공지능은 여자 의사의 성을 남성으로, 남자 돌보미의 성을 여성으로 뒤바꾼 것이지요. 이는 인공지능이 간호사나 돌보미 역할은 여성성으로, 의사나 법조인 등 전문직이나 권위적 지위의 역할은 남성성으로 규정하는 사회의 젠더 규범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P167.168

그런데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법의 논리가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에 성별을 부여할 때 어법과 그에 따른 사회적 역할과 신분이 부과됩니다. 여성의 목소리를 가진 인공지능의 어법과 남성의 목소리를 가진 인공지능의 어법은 각기 다른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곤 합니다. 물론 그 역할은 가부장 사회의 젠더 역할을 반영하겠지요. - P169

튜링이 제안한 모방 게임은 여자를 모방하는 남자를 설정하고, 튜링 테스트를 위해 다시 남자 대신 컴퓨터가 그 역할을 모방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즉 컴퓨터가 얼마나 인간을 잘 모방하여 질문자를 속일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인공지능 컴퓨터는 사회가 기대하는 전형적인 여성성에 부합하는 답변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인공지능은 사회의 젠더 규범을 학습하고 그러한 젠더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함축합니다. 인간의 역할 모방이라는 인공지능 및 튜링기계의 개념 안에는 이미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인간의 편견을 배제하기 힘든 요인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 P170.171

셋째는 기계가 입력 자료와 알고리즘을 스스로 만들고 생성하면서 인간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학습하는 방법입니다. 신경망 기반 딥러닝에 의해 이런 학습 방법은 모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잘 알려진 예로, 인간의 기보를 보지 않고 아무런 입력 데이터 없이, 즉 제로베이스에서 바둑의 기본 원리만을 가르쳐주고 바둑에서 이기는 법을 스스로 학습하도록 한 ‘알파고 제로‘의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기계에게 지식과 알고리즘을 제공해주었으나 신경망 기반 딥러닝에 이르면 기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답을 찾기 위한 알고리즘을 만들어갑니다. 거기다 인공지능이 새로운 데이터를 생산해내고 이를 다시 입력 데이터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중층적인 복수의 은닉층을 형성하며 최적의 효율적인 학습법을 깨우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자율적인 기계학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기계는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데이터를 생산하고 알고리즘을 짜며 인공 신경망을 인간보다 더 잘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인공 신경망이 인공 신경망을,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기계가 다시 학습하는 기계를 만들게된 셈이지요. 이런 방식으로 인공지능 학습의 효율성은 놀라운 속도로 증폭되어갑니다. - P176.177

지금까지 소개한 인공지능 학습의 종류를 고려하면, 빅데이터 기반 기계학습(알파고 리의 경우)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입력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제로베이스 기계학습(알파고 제로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인간에게 바둑을 배운 (즉 인간의 기보를 데이터로 학습한) 알파고 리보다 인간의 기보와 바둑 지식을 완전히 배제하고 제로베이스에서 바둑의 게임 규칙만을 가지고 스스로 바둑을 학습한 알파고 제로가 월등히 높은 승률을 기록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지식에 기반하지 않은 기계학습이 더 능률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지요. - P177

이런 편견은 인간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자기 학습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사회의 고정관념과 젠더 편견을 모방하고 학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담은 정보와 데이터가 주입되거나 그것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알고리즘이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인간(설계자든 사용자든)으로부터 유래하는 편향성과 인공지능 자체에서 발생하는 편향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구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 성, 인종, 계급, 소수자에 관한 사회문화적 편견이 기계학습 과정에서 입력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개입하고 강화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편견을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 P179

포털 뉴스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이 공정한지는 그것이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인 알고리즘이 공정한지를 밝히는 문제가 핵심이 되겠지요. 알고리즘을 짤 때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 즉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읽게 할 것인지,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게 배분할 것인지, 광고주가 선호하는 뉴스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등 목표 설정 자체가 공정성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차이를 만들고 그에 따라 뉴스 배치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알고리즘의 작동이 공정한지 밝히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P182

인공지능 편향성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바로 인공지능의 사고와 학습의 토대가 되는 빅데이터가 사회문화적 편견에 오염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거나 오염된 자료는 정제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편향적 자료가 아닌지 검토하고 왜곡된 자료를 교정하는 것은 기본이며 프로그래머가 편견과 차별적 요인을 미리 걸러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료 수집 단계에서부터 데이터 풀의 편향, 데이터 해석의 편향, 데이터 분석에서 인공지능 설계자의 편향을 점검해야 합니다. - P184

때때로 우리는 인공지능 학습으로 도달한 결과나 일처리가 공정하지 못하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하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는 중간 과정에서 알고리즘의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의 계산 과정 및 절차와 방법 등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공지능의 편향성과 불공정한 결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의 어떤 과정에서 어떤 요인에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교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알고리즘을 역으로 풀어헤쳐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 처리 과정을 밝히는 작업입니다(이를 ‘리버스 알고리즘‘이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지적 과제를 수행했는지, 어떻게 그런 의사결정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계산 과정과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입니다. 소위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이 되는 것이죠. 인공지능 편향성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알고리즘의 과정을 밝혀 불공정한 문제의 요인을 제거하거나 개선해야 하겠지요. - P185.186

인공지능 딥러닝의 학습 능력과 효율성이 높을수록 그만큼 알고리즘은 복잡해지고 그것을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즉 인공지능의 문제 해결 능력과 설명 가능성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이 제공한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서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는 경우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생산 제작함으로써 막강한 효율성을 갖게 되지만 설명 가능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일종의 딜레마입니다. 아마도 인공지능 기술의 방향이 기계학습의 효율성을 지향할수록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을 유지하는 동력이 점차 약화될 것입니다. - P187.188

최적화의 방법을 추구하는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부여받은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인간 자체를 멸종시키는 것도 논리적으로 가능합니다 (예컨대, 지구의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류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인공지능에게 적용되는 윤리와 원칙은 인간이 의도한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기계가 추구하는 것과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이 지향하는 가치를 따르도록 인공지능을 인간 친화적으로 교육하거나 윤리를 가르치는 방법도 인공지능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P201.202

자율적 주체로 진화한 인공지능이라면 자기 개념과 더불어 자기 보존 욕구를 가질 수 있습니다. 혹은 인공지능이 목표 수행을 위해 자기 보존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자기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경우 킬 스위치 작동에 저항하여 인공지능 스스로 킬 스위치를 해체하거나 제거할 수도 있겠지요. 앞으로 등장할 인공지능은 실제로 ‘끄는 것‘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지능이 출현하면 킬 스위치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인공지능이 진화할수록 이런 방식의 대응은 점차 가망이 없어질 것입니다. - P205

무엇보다 스스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공지능의 자기 학습능력을 상기해보면 인공지능 로봇이 스스로를 개선하거나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자기 진화하는 것을 제어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에게 자율성을 증가시키거나 위임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기술의 개발과 정책결정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자기 진화의 가능성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기계학습의 속도와 역량을 고려할 때 인공지능 로봇의 진화는 인간보다 기계 자신에 의해 가속화될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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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위해 이전에 촬영한 영상을 공개한다는 의미로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라는 표현을 한동안 사용해왔으나, 이 또한 성폭력의 한 형태일 뿐 복수도, 포르노그래피도 아니라는 지적이 타당하므로 여기에선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표현인 비동의 영상 성폭력(non-consensual image-based sexual abuse)을 사용한다. 촬영 대상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공개해 성폭력과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는 의미다. - P308

장기이식 희망을 강제한 국가는 없으나 이를 다른 방식으로 제도화한 국가는 있다. 호주는 장기 기증 희망 옵트아웃pt-out 방식을 택했다. 쉽게 말해 개인은 기본적으로 장기 기증 희망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거부 또는 탈퇴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이때 의도적으로 장기 기증 게부 의사를 밝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호주는 장기 기증 희망자가 90%에 달한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시민 캠페인을 벌인 지 오래인 미국의 경우 장기 기증 희망자 비율이 15% 정도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수 있나 싶지만, 최근 발전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옵트아웃 방식은 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원래의 선택지를 바꾸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를 활용해 결과적으론 다수의 참여를 끌어내는 유용한 방법이다. - P319.320

상호성은 여러 이유로 참여를 꺼리지만 다수가 참여하기만 한다면 많은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정책을 제시하고 선택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 또한 상호성에 근거해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은 개인이 사회경제적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행함으로써 모두의 감염 가능성을 낮추고 이것이 다시 나의 감염 확률을 낮추는 확실한 방법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 P321

의료 기술의 발달로 개인정보 활용은 어느 정도 요청될 수밖에 없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만 해도 그렇다. 디지털 치료제는 여러 가지 처방을 통합한 명칭으로, 만성질환이나 복약 환자 협조 관리, 치료형 게임 등이 이런 치료제에 해당한다. 환자 정보를 지속적으로 획득하고, 이를 통해 환자의 건강 관리를 개선하는 것이 디지털 치료제의 핵심 개념이다. 중요한 것은 환자 정보의 지속적 획득인데, 디지털 치료제가 작동하려면 이 정보가 의료진이나 병원을 넘어 다른 곳까지 전달돼야 한다. 이전처럼 검사 결과를 의사가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와 관련된 자료가 프로그램 개발 회사로 넘어가 시스템을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개선하는 데 사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또 다른 사업자와 연결돼 부가적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수도 있다.
만약 상호성을 통해 개인에게 사회제도를 강제할 수 있다면 개인정보가 어느 정도 노출되더라도 그것이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경우엔 노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반대로 적어도 윤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경우엔 디지털 치료제 허용을 금해야 할 수도 있다. - P322

사회는 사회의 이익을 우선할 것을 의료인에게 요구한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의료인은 국가적 통제 아래 각자도생으로 오늘날에 이르렀기에 국가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즉, 2020년 8월의 의사 파업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극도의 충돌을 가져온 것은, 이것이 논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닌 지극히 감정적인 문제였기에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판단한다. - P339

사실 의료가 신성하다는 말은 충분한 설명이 아니다. 이전에는 의료 행위가 종교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기에 신성을 부여받곤 했다. 고대에 의술 자체가 종교였고(이를테면 고대 부족 국가의 샤먼, 그리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중세에 의술을 수행하는 기관이 수도원, 즉 종교 기관이었으므로 신과 치료를 연결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며 의술의 장소는 병원으로 바뀌고 신과 의학은 분리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신성한 것은 남았으되 그것은 의술이 아니라 전문직과 사회의 계약이었다.
즉, 의료 또는 의술의 신성함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전문직다운 능력과 책임 그리고 이타주의를 요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독점권과 자율권을 부여하는 사회의 암묵적 계약이 지닌 신성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전문직은 말 그대로 전문지식을 다루며 그 전문성 때문에 외부 접근이나 평가가 어렵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에 사회는 전문직에게 해당 지식의 활용에 관한 독점권을 인정하고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 규제하도록 자율권 또한 부여한다. - P341

전문가의 권위와 시중드는 자의 성의가 교차하는 지점에 의료인이 있다. 이것이 의료인을 대하는 데 있어 불편함을 만든다. 우리는 전문가의 권위를, 아버지의 그림자를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 - P346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이타주의는 종교적 헌신이나 초월적 봉사 같은 것이 아니다. 이해충돌 또한 의료인과 환자 사이 이해가 충돌한다는 말이 아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이 중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이타주의의 의미다. 이해충돌 또한, 의료인의 공적 책무를 기억하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의미일 뿐이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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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나아가, 무익한 치료는 환자를 수단으로 만든다. 치료가 환자에게 어떤 이득을 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환자는 그저 처치의 대상, 즉 의학적 진행 과정의 한 요소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의료적 과정에서 환자가 다시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즉 다시 온전히 목적 그 자체로 여겨지기 위해 환자는 치료와 관련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결정권을 돌려받음으로써 환자는 자신의 존엄을 회복해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다. 연명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이 결정은 그저 삶의 길이를 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나‘를 소외시키던 의료화의 물결에서, ‘나‘를 객체로 만들던 의료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결단을 의미한다. - P25

자살은 죽음이 목적이거나, 또는 그렇게 가정된다. 하지만 안락사는 한 개인이 자신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며 죽음은 그저 수단으로 택한 것이다. 개인은 극심한 고통을 피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죽음을 택할 권리는 없다 할지라도 고통을 피할 권리는 갖고 있다는 견지에서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것이다. - P26.27

그러나 존엄사에서 핵심은 죽음 앞에서 환자의 결정권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며, 이에 따라 환자가 갖는 결정권은 다름 아닌 연명의료를 받을지 여부다. 즉, 존엄사와 안락사는 결정권의 대상이 다르다. 안락사는 환자가 능동적으로 자기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개인에게 있는 건가? 이는 각자의 철학적 견해에 따라 상이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문제다. - P28

치료 가망 없이 계속 고통받는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해 사망하게 두는 것과 그가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인가 능동적으로 행동할 것인가의 차이밖에 없다. 의도와 결과가 동일하다면 행위 여부가 허용의 기준 요소가 되기 어렵다. 따라서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면 자발적 안락사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논증적 차원과 제도 시행의 차원은 매우 다른 것이며, 제도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사회문화적 요인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즉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고 해서 그에 따라 무조건 제도를 시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 P39.40

물론 우리는 완벽한 삶을 위한 마무리로서 안락사를 고려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안락사가 아니라 자살이라 불러야 한다. 물론 누군가는 자살을 지지할지 모르나 사회 전체가 자살을 지지할 수는 없다. 자살이 되었든 안락사가 되었든, 개인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 때 외부 강압이 미치지 않도록 관련 요소를 사회가 최대한 개선하거나 보조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적어도 한국 사회는 그 점에서 명백히 실패하고 있다. - P43

안락사 찬반을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야 할 일이 있다. 환자와 가족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찬성하는 쪽에서 환자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여야 하며 안락사가 고통을 없애줄 최후의 방법이라고 말하려면 그 전에 이미 다른 노력도 해봤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반대하는 쪽도 환자의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마찬가진데, 그렇다면 고통을 줄여보려는 시도도 없이 안락사를 반대하는 것 역시 무책임하다. - P43.44

질환의 폭풍 앞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환자야말로 스스로를 이해할 방법을 찾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 P53

하지만 ‘윤리‘라는 것은 반드시 현실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지닌다. 의료윤리는 특히 그렇다.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논의는 의료윤리에서 무의미하다. 의료윤리는 이론적 논의를 현실에 적용해 현실 속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어야 한다.(그래서 ‘응용윤리‘의 대표 분야로 꼽힌다.) 그런데 이때 현실의 문제를 푼다는 것은 그 시시비비를 가려 일도양단의 결정을 내리는 일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결정은 법의 영역에 맡겨두자. 의료윤리는 다만, 현실의 문제를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 그 ‘살아냄‘에서 의료윤리적 통찰이 나온다. - P58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용어부터 정리하자. 낙태, 임신중절, 임신중지는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세 가지 표현이다. 임신 중인 모체에 개입하여 배아 또는 태아를 제거하는 일을 의미하는 이들 표현은,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낙태는 국가 또는외부의 개입으로 인한 행위를 의미하거나 부정적 함의를 담아 이야기할 때, 임신중절은 의학적 행위로서 언급할 때, 임신중지는 해당 행위가 여성의 선택으로 이뤄질 때 사용된다. 이 책에서 나도 이 세 단어를 교차하여 사용할 것이며, 그 용례는 설명한 바와 같다. - P61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는 언뜻 자녀의 성별에 얽매이지 말자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은 아들 하나와 딸 하나로 이루어진 쌍이 이상적임을 제시하는 가족계획 시책이다.(엄밀히는, 누나와 남동생의 남매 쌍이다. 여기서도 아들에게 가족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겠다는 생각이 엿보인다. 한국의 빠른 성장 과정에서 전통적 가치와 유입된 가치가 충돌했다고 말하지만, 가족계획의 이상은 두 가치가 표면적으로 반목하되 뒤에선 제휴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가족은 재테크의 수단으로 변했다.) - P64

1987년 의료법 제19조 제2항은 의료인이 진찰이나 검사 과정에서 태아의 성별을 알게 된 경우 이를 임부나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2008년 이 조항은 부모의 알 권리와 의료인의 직업 수행상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판단하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사실 1987년 개정 때도 이 조항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졌으나 당시 성감별에 따른 낙태가 워낙 횡행했기에 어쩔 수 없이 법 개정이 이뤄졌던 것이다. - P68

국내의 낙태죄 조항은 애초 태아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보기 어려운데도 이를 조항 유지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까? 더불어, 임신중절을 제한하는 방법이 임부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와 의료인을 처벌하는 동의낙태죄만 있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의료 시술을 제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 P71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정치 전략의 핵심으로 생명을 분석해낸 그 지점에서 우리는 낙태죄를 살펴야 한다. 낙태죄 문제가 우생학, 인간 생명을 선별하는 학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는 이유가 거기 있다. 낙태죄는 국가가 다시 인구 증가를 시도하려는 시점에서 문제가 됐다. 당시 국가의 인구정책은 "인구 자질 향상", 즉 적정인구 유지를 통해 인구 구성의 연령비, 성비를 조절하려 한 것이었다. 따라서 남아 비율이 높았던 1990년대엔 성감별이, 아예 출산율 자체가 문제가 된 2000년대엔 낙태 시술이 문제가 됐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낙태죄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것도, 여성을 처벌하기 위한 것도, 의사와 조산사의 비위를 막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인구 통제를 위한 국가의 장치였다.
어디서도 태아생명권에 대한 깊은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고, 적정인구 확보를 위한 국가의 시책이 있었을 뿐이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호도했다는 지적은, 그러므로 타당하다. 낙태죄가 인구 통제를 위해 여성을 인간이 아닌 수태의 수단으로 여기는 정책의 발로라면, 당연히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하고 이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 P74

그러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태아의 세포는 모체와 유전자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므로, 모체와는 별개의 조직이다. 모체의 면역 기능이 태아의 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이며, 이를 모체 면역 관용maternal immune tolerance이라 부른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모체와 태아의 관심은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헤이그David Haig가 내놓은 모체-태아 경쟁 가설maternal-fetus competition hypothesis에선 모체와 태아가 영양을 놓고 경쟁한다고 본다. - P78

즉,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10주, 12주 등 주의 수로 선을 긋기엔 너무나도 많은 요소가 얽혀 있는 문제다. 만약 14주 태아부터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자. 무엇을 보호하는 것일까? 한 생명이 살 권리를 보호하는 일은, 그냥 태어날 수만 있게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살 만한 세상을 제공하는 것, 그가 자신의 가능성을 펼 수 있는 지반을 제공하는 것이 누군가의 태어남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일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임신중절 허용의 대상을 몇 주 태아로 할지 논의하는 일은 태어날 아이의 양육 환경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 P86

인구 감소는 결혼과 출산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는 식의 생각은 결혼 시점이 늦어지고 비혼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현 상황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정말로 아이가 늘어나는 것에,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있는가.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단지 인구정책의 하나로 출생률을 늘리려 한다면 이 정책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앞서도 살폈듯 인구 감소를 위해 노력했던 가족계획이 여전히 그 영향력을 곳곳에 남겨둔 상황에서 반전을 꾀한다고 해봐야 한계가 있다. 더욱이 한국에선 여전히 아버지, 어머니, 자녀라는 삼각의 구조가 중요하지, ‘아이‘를 독립적 개체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 P88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우선 제공하고 그다음에 출산을 장려하는 제도를 마련한다면 그건 따져볼 수 있는 문제다. 낳은 다음엔 어쨌든 사회가, 국가가 책임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이 가정으로 귀속되고 부모와 아이 사이의 신성한 삼각형을 지켜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출산에 개입하여 임신중절을 제한하는 것은 억지다. - P89

결국 문제는 그동안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해온 사회에 있다. 아직 우리는 가족이, 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고민해 실현하거나, 임신중절의 선택권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부여하거나. - P90

혹시라도 낙태죄 폐지로 무책임한 성행위가 만연할 것이 염려된다면 그건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지 법적으로 강제할 부분이 결코 아니다. 더욱이, 법으로 강제한다면 무책임한 성행위를 한 이들 모두에게 죄를 물어야지 임신한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것은 이상하다. 따라서 이 점을 정말 염려한다면 낙태죄 유지를 주장할 게 아니라 성의 아름다움과 책임감 있는 관계에 관한 전방위적 교육을 요청한다거나 그런 내용을 설득력 있게 보급하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웹툰, 드라마)를 제작, 활용하는 것이 타당한 방안이 될 것이다. - P93

임신중절을 반대하는 쪽에선 낙태가 태아에게 심대한 위해를 끼친다고 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임신중절은 빼앗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 우리는 무엇과 무엇을 비교해 위해 혹은 이익을 따지는 것인가? 임신중절을 하면 태아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이익을 태어난 생명의 이익과 비교해야 하는데, 이를 비교하기란 불가능하다.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이익을 따져볼 순 없기 때문이다. - P101

임신중절이 태아의 생명권을 해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미 ‘태어난‘ 생명을 살해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 P101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치매 전과 후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내가 지금까지 지켜오던 내 생의 역사와 가치, 목적, 규칙을 다 잃어버린 다음에도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겉모습이 같고 주변 사람들이 같은 이름으로 부르니 여전히 ‘나‘일까, 아니면 인지기능이 변하고 기억을 잃으면서 더는 과거와 같은 인물로서 ‘나‘를 구성할 순 없으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이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일 수 없다. 적어도 그 개인의 동일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므로 그 사람에게 이 질문을 던져봐야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적어도 치매의 의료윤리 문제를 다룰 때는 ‘나‘ 이외에 ‘타인‘ 또한 논의 안으로 끌어들여야만 한다. 결국 치매는 우리에게 함께 사는 방법에 관한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 P114.115

하지만 우리가 의학의 절차와 방법을 도입할 땐 지식만을 떼어내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의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지식(의과학)과 실천(의료 행위)을 함께 수용함을 의미하며, 실천은 당연히 가치의 문제를 포함한다. 즉, 현대 의학은 서구의 개인 정체성이라는 틀을 포함하므로 생명의료윤리를 고려할 때 자율성을 배제하고 논의해선 안 된다. - P120

보통 사람들은 혼자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경우에 관련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치매 환자의 경우엔 타인에겐 어렵지 않은 결정을 내릴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게 다르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치매 환자를 무능력자로 설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접근은 우리에게 생각의 틀 자체를 바꿀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개인이 언제나 스스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삶은 타인과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삶에 타인이 꼭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매 환자를 통해 사유하다 보면 이런 전제는 이내 허물어진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해온 ‘단독 결정자‘로서의 주체 개념에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 P123

우리는 아픔과 고통 앞에서 나약해지는 존재이며 그때는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손 내밂’은 항복의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도움을 청하고 그의 자리를 만들며, 이를 받아들인 그 또한 돕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확인할수 있도록 하는 초청의 몸짓이다. 이는 분명 어려운 일이며, 고통을 나눠서 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 돌봄의 자리는 우리에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다. - P127.128

(박완서의 <해산바가지>에서) 화자가 친구에게 해주는 이야기도 실은 친구 역시 이미 아는 내용이다. "그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 중의 한 토막이어서 당연히 시시할 수밖에 없었고 친구도 대강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용은 다 알고 있는 시어머니 이야기가 작품 종국에서 빛나는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은 서로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는 두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다. 두 사람의 투닥거림과 마음 상황을 슬며시 전달하는 작가의 세심함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P137

그러므로 ‘윤리‘를 말할 때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하고 또 듣는 능력이다. 상대방이 겪은 문제를 듣는 자세,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상충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힘이 필요하다. 아울러 가치에 관해 숙고해야 한다면 숙고의 공간이 되어줄 만한 서로의 이야기를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세 가지가 밑바탕이 되어줄 때 우리는 비로소 윤리에 관해 말할 수 있다. - P138.139

치매가 그토록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붙드는 기억을 위협해서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을 만나는 일, 당신이라는 세상 속에 있는 내가 지워진다는 사태는 하나의 우주가 사라짐을 목도하는 일이기에. - P140

이를테면 2020년 5월 이태원에서 코로나19 확산이 발생했을 때 일부 사람들은 성소수자 집단을 문제시하며 이들의 비행으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봤다. 이에 따라 긴급 위기, 예컨대 전시나 재난 상황에서 적용될 법한 방안이 동원됐다. 서울시가 특정 시점의 스마트폰 GPS 자료를 수집한 것이라든지 언론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성소수자를 특정하고 상당한 양의 개인정보를 노출한 것 등은 결코 일상적 상황에선 용인될 수 없는 공적 조처였다. 당시 감염 규모는 2020년 초 대구나 2020년 말 전국적 확산과 비교할 때 소규모 확산에 불과했음에도 이런 초월적 위기 대응 방법이 용인되고 시행된 것은 그만큼 감염 환자의 배제를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의미였다. - P152.153

DNA 정보를 활용하면 범죄자를 잡을 수 있으니 유용하고, 대다수 사람의 DNA는 범죄 이력과 무관해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별로 왕래도 없던 친척의 범죄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추후 범죄 추궁을 당할까 봐 DNA 표본을 제공하지 못하고, 그래서 유전 질환 검사를 받을 수 없다면 어떨까. 이런 예는 드물 테고 피해를 입는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과연 소수의 피해라고 무시해도 되는 걸까? - P156.157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줄어들면서 운영 금지 조치는 점차 해지됐으나 이 상황은 우리에게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특정 시설의 영업을 중단시키는 게 좋을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모든 시설의 영업을 중단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일부만 중단하는 경우엔 그 정책이 형평성을 지니는지 따져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곧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첫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 P159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이 문제를 겪을 수 있는 감염병 상황에서 개인만을 우선할 수는 없다. 가상의 도시 오랑에서 벌어진 감염 사태를 다룬 소설 《페스트》에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각자도생하려는 등장인물들의 분투만 그렸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라. 반면 이 소설은 파견 기자 랑베르가 자신은 도시에 속하지 않는 인물이라며 끝까지 벗어날 방법을 궁리하다가 후반부에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바로 이것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 P159.160

먼저, 심리학에서 말하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또는 편향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문제를 목도했을 때 관련 자료를 조사해보기보다는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에 의존하는 경향을 말한다. 극적 사건이나 일화가 통계 자료보다 훨씬 잘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를 확률과 연결해 생각해보면, 사건 발생 가능성을 따질 때 관련 자료를 찾아 차근차근 판단하기보다 머릿속에 얼른 떠오르는 대로 가능성을 배정한다는 것이다. - P169

다시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치다. 어떤 것을 우선할지 확인하지 않은 채 각자가 주장하는 사실에만 매달리다 보면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여러 상처가 남게 된다. 몸에 난 상처와 달리, 사회에 남은 상처는 쉬이 봉합되지 않는다. - P173

이와 같이, 인구 집단 수준에서 볼 때 더 큰 위험에 처한 국가나 팬데믹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에 우선하여 백신을 공급하는 것은 ‘사망 최소화‘와 ‘필요성‘이라는 가치로 정당화될 수 있다. - P179.180

(의료윤리학자 이제키엘 이매뉴얼Ezekiel Emmanuel 등이 제시한 공정한 우선권 모형Fair Priority Model의) 첫 번째 단계에서 각 국가 간 백신 분배 양을 설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 표준 기대여명 손실 연수SEYLL를 구하게 된다. SEYLL 값이 클수록 팬데믹으로 인해(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으로 사망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모두 포함해) 이른 나이에 사망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 된다. 조기 사망자가 많은 국가에 백신을 더 많이 분배하면 조기 사망을 줄여 점차 SEYLL 값의 국가 간 차이가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첫 단계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을 어느 정도 줄이고 난 뒤 두 번째 단계에서 사회·경제적 궁핍 문제도 함께 다룬다. 이때 SEYLL 값을 척도로 유지하되 여기에 백신 접종 1회당 줄일 수있는 빈곤 격차poverty gap의 절댓값과 백신 접종 1회당 국민총소득GNI이 얼마나 증가하는지의 값을 함께 검토한다. 즉, 백신 분배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기대여명(건강 문제)에 더하여 빈곤과 국민총소득(사회·경제적 문제)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 P181

이득도 위해도 모두 가능성의 영역이라면 그 사이 어딘가에 선을 그을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생명공학에 관한 윤리적 접근의 핵심이다. - P196

하지만 황우석 사태가 가져온 파급력은 단순히 연구 부정에서 끝나지 않았다. 인간 복제에 기술이 사용되거나 체세포 복제로 생체 인증을 받아(이를테면 혈액을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하여 접근을 승인하는 금고가 있다고 해보자)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기술 발전을 위해 난자 채취가 폭넓게 허용돼 여성 건강에 위해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 P208

여기서 사전주의적 조치란 무조건적 금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전주의 원칙을 채택한다 하더라도 엄격한 금지부터 추가 연구 결정까지 다양한 수준의 정책을 적용할 수 있다. 이것은 사전주의 원칙이 과잉 규제로 이어진다는 반론에 대한 대답이 된다. 그 반론이란 가능성만으로 규제하면 결국 규제 과잉 또는 규제 만능 상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인데, 가능성이 있으니 추가 연구를 해보자는 말은 결코 과잉 규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해 가능성 앞에서 사려 깊은 접근을 하자는 것이 사전주의 원칙의 지향점이다. - P210

후술하겠지만, 롤스는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모인다면 결정 후 자신이 최약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최약자에게 가장 많은 몫을 배분하는 정책을 선택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공정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 P218

이처럼 우리가 유전자조작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곧 현재의 유전적 완전성, 인간종 전체로 봤을 때 현재 삶의 형태를 부여하고 이를 후대로 전달할 수 있는 유전적 소질이 상실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종이 다른 무엇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인간‘이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 P225

예컨대 유전자조작이 인간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면, 장애인은 어떤가? 성소수자는? 이들 또한 인간의 정의를 되묻고 있지 않은가? 이들을 여러 방식으로 배제해온 것이 지금까지의 의학이고 사상이었다면, 이런 차별적 범주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온 학문을 비판하고 새로운 규정을 쓰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유전자조작의 윤리다. - P236

이렇듯 저수가(진료 행위와 재료에 낮은 비용을 지급)와 저급여(건강보험금을 낮춤)라는 특징으로 출발한 한국의 의료 제도는 이를 벌충하기 위해 급여 항목과 비급여 항목을 구분했다. 주로 필수적 진료로 이뤄진 급여 항목에서 발생한 손해를 그 외의 영역인 비급여 항목에서 채우는 것을 허용한 이 제도는 이후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와 함께 성형 및 미용 분야의 급속한 성장을 낳았다. - P245

담뱃세의 경우 국민 전체의 흡연율을 감소시키는 데도 목적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소득층과 청소년의 흡연율을 감소시키는 데 있다. 고소득층은 세금이 올라간다 하여 담배 구입에 큰 불편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저소득층과 청소년은 당장 담배 구입에 어려움을 겪게 돼 이들의 흡연율은 감소시킬 수 있다. 건강세도 전체 음주율이나 설탕 소비율을 줄이고자 하려는 목적도 물론 있겠으나 그보다는 저소득층의 술과 설탕 사용을 줄이는 데 방점이 찍힌다. 건강세를 부여하면 제조사가 함유량을 줄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제품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제품 가격 상승은 저소득층의 해당 제품 사용 감소로 이어진다. 즉 건강세 부여는 저소득층이 술이나 설탕 함유 제품을 적게 소비해 이로 인한 건강 효용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 P271.272

(1970년대의) 화이트 홀 연구(Whitehall Study)는 두 차례에 걸쳐 3만 명이 넘는 영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직위와 심혈관 질환 사망률의 관계를 밝히려 시작된 연구는 절대적 빈곤만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던 그때까지의 통념을 뒤엎고, 직위, 업무 통제력과 같은 사회경제적, 심리적 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미침을 증명해 냈다. - P276

운 평등주의에서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281

심리적 편향을 활용해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넛지를 보건의료 정책에서 활용하는 것을 건강 넛지health nudge라고 하며, 영미권에선 이런 방식의 정책 적용과 활용이 연구되고 있다. 이런 건강 넛지 정책으로는 건강세를 비롯해 저소득층 음식 바우처,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한 건강 행동 유도, 주기적 건강 검진, 약물 중독 정책등이 논의 중이다. 앞에서 간단히 소개했지만, 어떤 국가에선 건강보험 혜택을 모두 누리려면 주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한다. 최근 모바일 헬스케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한 건강 행동 유도는 의료계만이 아니라 IT 업계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떤 식으로 건강 행동을 유도할지, 감염병 상황에서 위험한 행동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에도 불이 붙었다. - P283.284

(1969년 미국의 타라소프 사례Tarasoff case에서) (타티아나) 타라소프의 가족은 병원이 (프로세지) 포다르의 살해 의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타라소프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대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이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호소한 것이 제네바 선언에 규정된 비밀보장의 의무였다. 살해 의도는 포다르의 비밀이므로 이를 공개하는 것은 의료인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인 데다 환자들이 자신의 비밀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신과 치료를 꺼리게 돼 결국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법원은 가족의 손을 들어줬고, 이후 비밀보장의 의무는 타인에게 심대한, 즉 생명을 위협하는 위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만 지켜져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 P290

(2017년의) 이국종 교수와 (2018년의) 남궁인 교수의 사례에서 우리는 어떤 정보가 공개됐을 때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라고 봐야 할지에 관해 이견이 존재함을 볼 수 있다. 북한 병사의 신체 상태는 환자의 개인정보인가? 사망자의 시신에 가해진 외상은 환자의 개인정보인가? 이것은 당연히 "개인정보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예컨대 개인정보보호법이 규정한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성명, 영상 등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말한다. 여기에 따르면, 사망자의 외상에 관한 설명은 개인정보가 아니다. 즉 사망자의 사인死因이나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현행법에선 문제가 되지 않는다. - P295.296

또 사회를 개인의 집합이라고 할 때, 사회를 거대한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반면 아무리 사회라 해도 그건 그저 개인들이 단순히 연결되어 있을 뿐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전자는 공리주의적 관점일 테고, 후자는 비공리주의적 관점(또는 칸트적 의무론이나 권리 기반 윤리)이라 하겠다. 어느쪽으로 생각할 것이냐는 결국 개인의 성향에 따른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즉 이것은 논리적 설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가 충돌하는 상황에선 개인이든 사회든 어느 한쪽에 우선권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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