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자는 스스로 무엇을 배울지 결정하고 자신을 위해 교재 등의 학습 자원을 입수하며, 필요한 시간을 어떻게든 쥐어짜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무수한 제약 속에서도 학습을 이어가야 한다. 자신감이 꺾이면 자력으로 끌어올려야 하고, 바쁜 삶에 허덕이는 사이 날아가버릴 것 같은 동기유발을 끌어모아야 하며, 좌절이 비집고 들어올 때마다 의욕을 일으켜 막아내야 한다. - P14

인간은 배움을 통해 달라지며, 달라지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 일단 변화한 후에는 지난날의 학습 방식이 더는 몸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습득한 노하우를 그저 돌려막기만 하다가는 언젠가 바닥난다. 지금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고 조합하며 자신에게 맞추어 재생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방법이 어디에 들어맞는지 이해해야 한다. 즉 자율적 학습자인 독학자는 자기 변화에 맞추어 학습을 다시 계획해야 한다. - P15

사진이나 녹음 등 복제기술이 없던 구석기시대에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실제 접촉을 뜻했고, 다음에 또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므로 기억할 가치가 있었다. 이 때문에 현대에는 (이중과정이론상의) 시스템1이 오류적 진실 효과Illusory truth effect(특정 정보에 자주 노출될수록 진실이라고 믿기 쉬운 현상-편집자 주)를 나타낸다는 약점을 안게 되었다. 학습에 자주 쓰이는 ‘반복‘은 이 취약성을 공격해 시스템1에 중요한 정보라는 착각을 심기 위한 방편이다. 또한 오랜 세월 광고나 선전에서 써먹은 기본적인 테크닉이기도 하다. - P20

독학을 시작하면 많은 사람이 자신의 불안정에 농락당한다. 스스로 세운 학습계획을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분야에 한눈을 팔며, ‘오늘 하루쯤 넘겨도 되겠지‘ 하고 고삐를 풀어 그대로 학습을 중단해버리기도 한다. 뒤집어 말하면, 학교가 얼마나 다양한 수단으로 불완전한 자기통제를 지원해 안정시켰는지 알 수 있다.
독학자는 학교가 부여하던 많은 인지적·비인지적 지원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배움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인간이라는 생물의 지성, 감정, 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이중과정이론이 꽤 유용하다. - P27

독학은 타고 있는 배를 고치면서 나아가는 항해와 같다. 외부장치의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이 장치를 이용하면서 수리하고 확장해 독학이라는 항해를 이어간다. - P30

배움을 멈추지 않는 법은 제대로 배우는 법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하다. - P35

지知와 무지無知가 관련되어 발생한 다양한 사건을 수집하는 여정을 우리는 ‘배움‘이라 칭한다. - P42

사실 강한 의지는 의지를 세운 순간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끊임없이 의지와 결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긴다. - P43

강한 의지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다. 연약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끊임없이 항거하는 자가 스스로 몰아붙이고 완성해 나가려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진전이나 성과가 있으면 칭찬하며 의지와 결부하고 에너지를 쌓아가는 것, 실패나 좌절에 맞닥뜨렸을 때는 처음 뜻을 세운 지점으로 돌아가 기력을 회복하고 재도전의 기회를 노리는 것. 이런 과정이 쌓이고 쌓여 행동이나 생각이 확산하는 것을 멈추고, 처음에는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몽상에 지나지 않은 의지를 지면에 안착하도록 성장시키는 것이다. - P44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계획은 쓸모가 없지만, 계획 세우기는 반드시 필요하다Plans are Worthless, but Planning is Everything"라고 했다. - P45

성실하게 계획을 세우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유익한 부분과 불리한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다. 계획 세우기, 즉 플래닝planning은 우리의 행동과 미래가 두루두루 안테나를 뻗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다. 자기 생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메타 인지‘라 하는데, 플래닝은 이 메타인지를 단련하기에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 P45.46

‘계획 실패‘라는 학습 기회를 얻기 위해 플래닝을 하는 것이다. (중략) 세세하게 설정해두면 그만큼 플래닝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아진다. - P46

‘2분 지속하기‘는 단순하고 쉬워 보이기만 효과는 절대적이다. ‘시작하는 힘‘은 성취를 위해 가장 필요하고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 P63

유감스럽게도 이 ‘미루기‘로 시간을 허비하면서 (해결할 문제에 대한) 과대한 평가를 수정할 기회는 날아간다. 더군다나 사람의 공포나 불안은, 일단 회피하면 오히려 증폭되는 성질이 있다. 문제 해결을 미루고 도망친 대가로,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미루기와 두려움은 서로 강력하게 접착되면서 악순환을 일으킨다. - P64

과소평가했을 때도 문제점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다고 우습게 여겨 한동안 방치하다가 마감 직전에 당황한 적은 없는가? 과대평가하건 과소평가하건 문제 해결 과정에서 똑같이 미루기가 발생하면 결과는 같을 수밖에 없다. - P65

여기서 언급한 ‘조금씩이라도 당장 하기‘를 방법화한 것이 바로 ‘2분 지속하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는 2분이라는 시간으로 제한을 두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나 대규모의 안건이라고 해도 살짝 맛보기가 가능하다. 이 짧은 맛보기 시간은 우리를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시작을 수월하게 만든다. - P65

회색 시간 지우기는 ‘음악 들으며 공부하기‘ 같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하면서 공부법‘을 시스템화한 것으로, 그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로는 ①학습 시간의 질을 행동의 자유도로 정의하기, ② 행동의 자유도와 오감을 활용한 학습법을 표로 정리하기, ③자유도가 낮은 시간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유도가 높은 시간의 일부를 투입하기 등이 있다. - P77

배움은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깨닫는 일이며, 익숙해질 수 없다. 결국 오래 배움을 이어간다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자신의 무지에 직면하는 일이고, 배움을 더 깊이 정진한다는 건 그만큼 깊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일이다. 중급의 벽을 넘어서서 나아가는 사람은 대부분 쏟아붓는 노력에 부합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더 편하고 득이 되는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더 깊은 배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재능의 한계가 보이거나 슬럼프에 빠지고, 풋내기가 성큼성큼 자기를 앞질러 간다 해도, 병이나 사고 따위로 그때까지 얻은 많은 것을 잃어도, 배움을 멈추지 못하니까 이어가는 것이다. 가성비를 따져도 답을 내지 못하니 바보이고, 줄기차게 바보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으니 스스로 바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바보만이 중급의 벽을 초월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P86

인간은 구제불능의 생물이다. 해야 하는 일이 있음에도 안 해도 그만인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삼가야 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강한 의지와 굳은 결심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마음을 조절하려는 노력은 대부분 그저 마음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끝난다. - P100

크고 작은 계획에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희망만으로 스케줄을 세우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원하는 만큼 빨리, 오래 달리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꾸준히 걷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걸어온 발자취는 쉬지 않고 걷는 자에게 힘을 북돋울 것이다.
기록을 이어가는 독학자에게 하나 더 희망적인 소식이 있다. 셀프 모니터링 연구(공부법 6, 행동 기록표 참고)는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면 기록 대상이 된 행동이 점차 증가한다고 가르쳐준다. 결국 늘리고 싶은 행동을 기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기록하는 자는 성장한다. 이 한 문장만을 기억하자. - P107

스스로 당근과 채찍을 주기보다,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고 부끄러운 마음에 사로잡히기보다 오늘 배운 것을 그저 담담히 기록할 것. 날마다 조금이라도 얼마나 나아갔는지 항해일지(로그)를 적을 것. 그렇게 기록을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다 보면 혼자 공부하는 일도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 P109

인간은 생각보다 연약한 존재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손을 놓기 쉽다. 나만 의지박약에 참을성이 없는 소심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지력이 강한 사람 대부분은 외부에 기댈 만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 P110

2부에서 소개하는 내용 중 특히 서지Bibliography는 많은 사람에게 낯설 것이다. 지금까지 접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듯해도 이 서지의 존재를 알아두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서지 없이 지적 활동을 이어가는 일은 누군가가 준비한 교재를 얻는 일과 독학에 필요한 학습 자원을 찾는 일, 심지어는 독학의 성패 자체를 우연에 의존하거나 운에 맡기는 것과 같다.
물론 모두가 충분한 기회와 자원의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지식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지 못해 배움에 뜻을 두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독학이 필요하다. 독학자는 그저 우연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혼자 공부하는 사람에게 서지의 역할은 바람 한 점 없거나 역풍이 불더라도 배움의 돛단배를 전진시키기 위한 노가 되고 엔진이 된다. 특정 주제나 화젯거리에 대해 완벽한 서지를 만드는 일, 수집 가능한 문헌을 모조리 모으는 일은 지력과 시간에 한계가 있는 인간이라는 생물에게는 완수하지 못할 계획이다. 그러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이런 일이야말로 우리의 지적 활동이 흘러갈 방향을 비추고 인도한다. - P134

가와키타(가와키타 지로)는 생각을 생각이라 하기 전 단계까지도 시야에 담아두고 탐검探檢에 관해 고민했다. 이런 생각 아닌 생각이 시작되는 시점에 내부 탐검의 전반부를 차지하는 내성內省(자기성찰)이 진행된다. 답답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막연한 우려나 걱정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일‘로 내몬다. 자신이 무엇에 위화감을 느끼는지조차 잘 모르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신경 쓰여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탐검의 시발점이다. 탐검은 밖으로 나가기 훨씬 전부터 머릿속에서 우려나 걱정의 정체를 붙잡으려는 시점에 출발한다. - P143

그러나 가와키타가 말하는 탐검은 인간이 탐구의 역설에서 멈추는 걸 경계한다. 찾고자 하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는 무지를 안은 채, 무엇을 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을수록 머릿속에서 건 현실에서건 무엇이든 좋으니 무작정 도전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답답함과 철저하게 맞서 머릿속의 잡다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을 것 같은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다음에 찾아올 변수나 우연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적어가며 지식을 정리하자. - P145

조사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현시점에서 알고 있는 것‘을 가능한 한 명확히 확인하고, 이를 반사하듯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금의 자신에게 기지旣知인 내용을 적다 보면 무엇이 미지인가, 어떻게 하면 그 구멍을 메울 수 있을까, 알고 싶은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 P176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알고 싶은 것, 그리고 모르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렇게 조사로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갱신하기에 인간의 지知를 위한 조사는 전진할 수 있다. - P176

성실하게 무지에 끊임없이 도전하면, 이윽고 자신의 무지를 비웃는 사람은 멀어지고 도와주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 P179

• 모든 고전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데카르트는 나를 독자로 상정하지 않았다. 고전을 읽는 일은 내 앞으로 부치지 않은 편지를 몰래 읽는 것과 같다. 그들이 쓴 기록은 내가 모르는 것을 전제로 했으며, 내가 공유하지 않는 문헌(콘텍스트)에 기반한다. 그러니 읽기 어렵다. 그러나 고전을 읽음으로 얻는 보상 역시 같은 데 존재한다. - P180

독학자의 무기로써 여기에서 언급하는 교재(텍스트북)의 콘셉트는 스콜라학파를 비판하며 등장한 페트루스 라무스의 교육 개혁이 발단이다. 단순화해서 대비적으로 논하자면, 유럽 중세를 석권한 스콜라학파에서 학술정보를 축적하고 유통(말하자면 교육)을 담당한 것은 주석Commentary이라는 형태였다.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주석 위에 한 번 더 주석을 겹쳐 얹는 형식으로 스콜라 학문은 전개되었다. 한편 라무스의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새로운 학문의 그릇이 교재였다. 이는 알아야 할 내용이나 읽어야 할 자료 등을 주제별로 정리해 다른 문헌, 예를 들면 원전 텍스트나 그 주석을 참조하지 않아도 학습 교재로 완결된 도서다. 현대에도 전문분야로 확립된 분야에는 대부분 이런 교재가 존재한다. 이런 종류의 교재는 학회 설립이나 학술잡지 발간에 이어 전문분야 확립의 지표다. - P199.200

책장에 가득 찬 책등의 제목을 읽으면서 서성이는 행위를 브라우징이라고 한다. 이 전통적인 방법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어느 분야엔가 속해 있을 서적 무리와 대치하는 일은 여전히 특별한 지적 경험이다. 혼자 생각한 검색 키워드만으로는 만나지 못했을 서적,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아이디어, 시야에 들어오지 못할 세계가 브라우징에 의해 활짝 열린다. 이 책장에 모인 일군의 서적을 ‘서가‘라고 한다. 특정 주제나 토픽에 관해 생각하고 사람이 인지하는 현상에 관해 알고자 할 때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가타부타 적혀 있는 책 한 권이 아니라 이 서가여야 한다. 서적 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가에서 한 권의 서적을 뽑아 들고 펼친다. 서가를 다시 둘러보다 다른 책 한 권을 손에 든다. 그리고 반복되는 동작들, 어떤 지식이건 다른 지식과 동떨어져 성립하지 못하듯, 서적 역시 그 배후에 많은 다른 서적을 저장하고 있다. 서가와 대치하는 일은 이를 체험하는 일이다. - P206.207

아니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길이 닿은, 예정에도 없었고, 기대하지도 않던 한 권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한정된 지식이나 관심으로는 만날 일이 없는 책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관심 밖의 자극과 우연 덕분이다. 여기서 추천할 만한 방법은 도서관의 반납 코너다. 이곳의 책들은 적어도 누군가가 빌렸던 책이다. 소위 베스트셀러는 다음에 빌리고 싶은 사람이 이미 예약해놓아서 반납 도서 자리에 놓일 틈이 없다. 반납 코너는 어떤 의미에서 도서관 이용자들이 선택한 셀렉션 코너이자 살아 있는 도서관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 P208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먼저 아는 것‘이 정보의 요건인 데 반해,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을 나도 알 수 있는 것‘, ‘내가 아는 것을 다른 누군가도 알 가능성이 있는 것‘이야말로 서적이 지닌 지적 약속이다. - P210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 최신 정보를 숨차게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책으로부터 멀어진다. 같은 집단 안에서 인정을 받고 출판되기까지의 시간 차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논문조차 느리다고 느끼다가 결국 다른 수단에 의존하게 된다. 신문물에 대한 열광에 빠져들수록 책을 불필요한 존재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두 번 다시 눈길도 주지 않을 폐기물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지탱하는 대지다. 성급함 때문에 정신없이 방황하는 자신을 깨달은 순간,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할 때, 책은 느리지만 변함없는 모습으로 다시 현재라는 땅 위에 설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편으로 미래를 꿈꾸면서도, 대부분 과거를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런 우리 곁에서 책은 언제나 바뀌어서는 안 될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지켜봐준다. - P211

자기 생각이라 떳떳하게 내세울 만한 근거를 만들어내려면 정보를 선택적으로 추출하고 그것들을 정합적으로 연결하고 논리적으로 관계를 부여해야 한다. - P252

수많은 문헌을 손에 넣었다 한들, 그것들이 자신의 사고능력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얽히고설켜 혼란을 일으키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 안에 파묻혀버릴 것이다. 집중이라는 인지적 자원은 유한하다. 인간이 한 번에 의식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의 수는 생각보다 적다. 초인도 아니고 석학도 아닌 우리가 많은 문헌을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지원군이 필요하다. 요소 매트릭스는 그것을 위한 외부장치를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이다. - P253

지금 있는 지식을 의심하는 일은 지식의 미래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인류의 지적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질 거라고 믿는 것이다. - P258

능숙한 문제해결자는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중할 뿐 아니라 고찰하는 시간이나 공간의 스케일을 스스로 바꾸고, 눈앞의 문제에 영향을 주는 제약(서로 모순되는 요구로 나타남)을 훨씬 넓은 관점에서 해석한다. 특정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을 둘러싼 상황(상위 레벨)과 시스템 내부의 요소(하위 레벨) 양쪽에서 영향을 받을 것, 그리고 어느 단계에든 지금까지의 경위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 즉 원인과 결과가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P263.264

9화면법9-Window Method은 원래 제품기획 등 넓게는 문제 해결 자원이나 제약의 검토에 쓰이지만, 타임 스케일 매트릭스에서는 거짓이나 가짜 정보의 모순을 발견하기 위해 응용한다. 거짓으로써 퍼지기 쉬운 가짜 정보는 우리가 믿기 쉬운(또 믿고 싶은) 소망이나 사고 경향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다. 타임 스케일 매트릭스는 자연스러운 사고를 일단 정지시키고, 일어난 일에 영향을 미치며 시간적 전후 관계(인과 관계)와 공간적인 내·외부 관계(주변과 내부의 관계)를 빠짐없이 확인함으로써 어긋남이나 모순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 P264

미신에 빠지지 않으려면 ‘X이다→Y이다‘의 경우에만 주목하지 말고 ‘X이다→Y가 아니다‘ ‘X가 아니다→Y이다‘, ‘X가 아니다→Y가 아니다‘라는 다른 조합에 대해서도 발생 여부를 확인하고, 가능하면 각각의 빈도를 측정해 비교해야 한다. 이게 바로 4분할표의 네 개의 칸에서 검토하는 조합이다. - P269

•• 이 표현은 비트겐슈타인의 다음 표현에서 유래한다. ‘철학은 자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감정의 자제이며 이해의 자제가 아니다. 아마 이것이 많은 사람이 철학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표현을 자제한다는 것은 때로 눈물을 삼켜야 하고 때론 화를 눌러야 하는 일과 거의 같은 어려움일 수 있다.‘ 철학자 이다 다카시(飯田隆)가 지은 『비트겐슈타인』에도 등장하는데 이다에 의하면 이 한 구절은 ‘대타자본(The Big Typescript)‘이라고 불리는 수기 원본에 포함된 철학에 관한 기술이며 1931년에 쓰여졌다. - P270

법정 변론이나 그 밖의 법률적 문제 해결을 위한 결론이나 판단은 수학의 명제처럼 언제 어떤 경우에는 보편타당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특정의 장면·문맥에서 당사자로부터 최대한의 납득(혹은 불만의 최소화)을 끌어내고자 힘쓴다. 그러므로 법률가들은 그 시점에서 가능한 한 최선의 판단과 논쟁을 하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얻어낸 합의나 판결이 나중에 문제가 되고 최악의 경우 뒤집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계약이나 법적 결정이 불안정해진다. - P277

우리는 현행 교육제도를 고리타분하다고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낡은 학습관을 고수하고 있다. 주입식 교육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지식을 뇌에 집어넣는 것이 학습이라 믿으며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수십 년 전부터 심리학으로 알려져온 지식에 ‘뇌과학‘이라는 리본을 달면 달려드는 한편, 기억력이나 기초학력, 발달단계라는 현대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개념도 떨쳐버리지 못한다. - P282

• 롤랑 바르트의 저서 『S / Z』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재독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여러 곳에서 같은 이야기를 읽게 된다." - P285

지금의 자신은 그 책을 읽었을 당시의 자신과 다르다. 책은 변하지 않지만, 읽는 이와 그를 둘러싼 환경은 달라진다. 그렇기에 더욱 책은 곁에 두고 반복해 읽을 가치가 있다. - P289

당연한 말을 지겹게도 설명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으나, 우리 대부분은 읽기 방식을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에게 당연한 읽기를 의심하고 돌아볼 기회는 적다. 보통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일수록 딱딱하고 고정된, 그리고 어려움을 강화하는 독서관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독서관을 수정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 P292

저자는 독자를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독자가 빠뜨리지 않고 읽도록 하고 싶다면 반복이 가장 우선적인 선택지가 된다. 같은 단어나 유의어, 대체어가 몇 번이고 등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저자가 내세우고 싶은 주제다. - P296

읽어야 하느냐, 읽지 않아야 하느냐는, 하나의 문헌 읽기를 넘어선 의문이며, 말하자면 메타 독서적인 질문이다. - P301

불필요한 것을 읽지 않는 기술은 가장 고차원적이고 효과 높은 속독법이다. - P302

공부법 37: 한독
정해진 시간 안에 읽기를 끝낸다

① 읽을 책을 정하고 소요 시간을 미리 설정한다.
15~30분 정도로 짧게 정한다.

② 설정한 시간 내에 읽는다.
시간 내에 다 읽지 못해도 30분으로 정해놓았다면 제시간에 읽기를 중단한다. 읽다 만 부분이 있거나 개운하지 못해도, 적어도 그날 안에는 절대로 그 책을 펼치지 않는다. 잘 모르는 분야의 문헌은 처음 5분 정도를 ‘작전 타임‘으로 할애해, 구성을 확인하거나 어느 부분을 어떤 순서대로 읽을지 생각한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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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이익은, 원고가 본 손실을 원고에게 보상해 줄 때의 이익이다. 이것은 약속된 바를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특정 이행이 아니라 ‘보상‘이 명해지는 이행이익 사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참이다. 반면에 특정 이행은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약속의 이행이며, 원상회복은 내가 말했듯이 원고가 손실 본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원고에게 정당하게 속하는 것을 돌려주는 문제다. - P432.433

보증은 법이 어떠한가와는 상당히 독립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는 무엇이다. 또한 법 제도가 지지하고 보호할 수 있는 무엇이기도 하다. 내가 앞서 지적하였듯이 보증은 단순히 ‘심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사람들이 원할 이유가 있는 것은 일정한 마음 상태—일정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에 찬 믿음—일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실제로 발생될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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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욕구 기반 이론을 제대로 극복하는 것, 그리고 오로지 복지에 관련된 사실만이 도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라고 보는 공리주의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은 입헌 민주주의 이론과 제도의 발전과 유지에 핵심적이다. (이민열, 역자해제) - P7

(전략), 불법인 행위를 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믿게 한다는 의미에서의 선동을 불법화하는 것은, 법을 준수할 것인가에 대한 독립적인 판단의 토대를 박탈할 권한을 국가에게 부여하는 것이므로 (시민들이) 자율적 주체로 남아 있고자 함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이민열, 역자해제) - P12.13

즉 부적절한 권한 남용이 있을 곳에 이에 적실한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적정절차(due process) 정신의 요체라는 것이다. (이민열, 역자해제) - P15

비싼 취향의 문제(expensive taste), 또는 비싼 기호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소녀가 부잣집에 태어나서 물떼새 알에 대한 미감을 고도로 발전시켜 왔다. 그것은 그녀가 성인이었을 때 했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유한 그녀의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을 제공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녀는 물떼새 알의 사소한 맛의 차이, 조리법의 차이도 간파하며, 항상 밥을 먹고 나서는 물떼새 알을 음미했다. 그런데 부모가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이제는 물떼새 알을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다. 소녀는 비참한 심경을 경험한다. 평범한 햄버거를 먹는 앞으로의 삶은 비극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녀의 물떼새 알에 대한 미식가적 취향은 너무도 정교하고 그녀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어, 그녀가 이를 먹지 못하는 것은 마치 피아니스트가 어느 날 평생 피아노를 치지 못하리라는 통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공동체는 이 소녀에게,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다른 소녀보다 더 많은 자원의 몫을 할당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민열, 역자해제) - P16.17

특히, 표현의 자유 원칙의 매우 강한 판본이라면 어느 것에서나, 보호되는 행위는 통상적으로는 법적 제재의 부과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해로운 결과를 가진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제약으로부터 면제된다고 하는 사례가 있기 마련이다. 표현의 자유를 유의미한 원칙으로 만들고 어떤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례들의 존재다. - P13

4. 홈스 대법관이 말했듯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가장 엄격한 보호조차도, 공황(panic)을 야기하도록 극장 안에서 거짓되게 ‘불이야‘를 외치는 사람을 보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 P22

즉, 정당성 있는 정부는 스스로를 평등하고 자율적이며 합리적인 행위자로 여기는 시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권위만을 가진 정부다. - P26

여기서 논증되어야 하는 것은, 어떤 행위가 불법인 것으로 선언된다면 그 행위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그 행위의 옹호도 불법화할 수 있다는 논제와 시민의 자율성 사이의 충돌은, 그 앞의 사안과 마찬가지로 약간 간접적이라는 점이다. 국가가 법 준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러한 수단을 사용할 권리를 갖는 데 동의하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법이 말하는 것을 국가가 시민에게 믿으라고 명할 권리에 동의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의는 자율적인 시민은 할 수 없는 동의다. 왜냐하면, 그 동의는 그 법이 복종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독립적인 판단의 근거를 시민에게서 박탈할 권리를 국가에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30.31

내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시민적 자유의 일반적인 정지가 정당화되는 상황이 존재한다면—그리고 반복하건대, 그러한 상황이 있을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다.—이러한 상황은 한 종류의 권위에서 다른 종류의 권위로의 이동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관련된 사람들은 아마도 동일한 권위의 외관을 취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동일한 권능을 가지고서도 여전히 통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P40

일부 사안에서 평등의 증진은 그 비용을 치를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럴 것인가는 부분적으로, 그것이 "무엇의" 평등인가에 달려 있다. - P56

경제학자들은 평등과 다른 관심사(통상 효율성) 사이의 ‘맞교환‘(trade-off)에 관해 이야기한다. 과거에 나는 경솔하게 이것을 어리석은 소리(crassness)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더 이상 그것이 원리상 오류를 범한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평등이 다른 선과 ‘맞교환‘될 수 있다는 제안은 의심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이 현 상태의 옹호로 가는 길을 닦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 사회의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조치들은 흔히 효율성이나 개인의 자유에 지나치게 큰 희생을 포함한다는 근거에서 반대되며, 그러한 반론을 물리치는 한 가지 방법은 평등이 어떤 비용을 치러서라도 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등이라는 고려사항이 절대적이고 그 자체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고 주장하지 않고서도 자유나 효율성에 대한 호소가 현 상태 유지를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상 개인 자유에 대한 고려는 소득과 부의 증진된 평등을 찬성하는 가장 강력한 몇몇 논변을 제공한다. - P56

권리는 어떤 중대한 문제들의 완화(alleviation)에 관계하는 것이어서, 다른 선의 증분(增分; incremental gains)은 오로지 그 증분이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우리의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나온 것일 때에만 방금 언급한 비용 참작의 방식으로 권리와 관련이 있게 된다. - P61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이 어떻게 내려져야 하는가를 결정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범위만큼 다른 이들은 ‘그의 의지에‘ 종속된다. 이에 더하여 사소하지 않은 형태의 권위는 많은 사회적 목표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수단이다. - P74

그러나 실질적 적정절차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그것은 법원이 그 집단과 관리자의 권위의 한계와 조건에 관하여 독립적인 판단, 즉 그 구성원들의 이해에 의해 꼭 결정되지는 않는, 그 제도의 본질에 관한 관념에 기초한 판단을 내리는 것에 해당한다. 어떤 제도가 진정으로 자발적인 곳에서 이것은 바라는 대로 계약을 맺고 자기 조직의 조건을 규정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입(inroad)을 나타내게 된다. - P93.94

그러나 두드러지게 차별로 생각되는 사안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비용의 경우에는, 배제의 기준이 겨냥하고 있는 집단에 대하여 비하적인 태도를 표명한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일단 그러한 태도가 널리 퍼져 있고 일반적으로 그 태도에 근거해 행위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즉 일단 어떤 종류의 차별이 문제가 되면—, 차별받는 집단을 배제하는 결정을 기관이 스스로 내리도록 허용하는 비용은 매우 높아진다. - P96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금지하는 이런 실질적 적정절차 논변의 결론은 기관의 정책이 ‘인종 무차별적’(color blind)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흑인만 입학을 허가하는 대학은 내가 언급한 근거에서는 반대할 만하지 않을 것이다. 백인들이 고등교육 일반 또는 그 고등교육 내의 중요한 일련의 기관으로부터 배제될 위험은 현재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백인을 배제하는 정책은 반백인적 태도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며,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백인들의 자존감과 사회에서의 입지에 가해지는 위험은 사소할(insignificant) 것이다. 마지막으로, 흑인만 입학 허가하는 정책을 실시하는 기관은 유의미한 문화적 기회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1975년 미국 내 여성을 배제하는 기관과 여성만을 허용하는 기관 사이에도 유사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 P96

어떤 경우든 대학, 그리고 전문대학원에 대한 입학 허가를 판단하는 일반적 규준으로 학문 기준을 사용하는 것은, 차별의 일부 형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경향으로 인해 그 전체의 계층화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비용을 수반하며, 이러한 비용은 증가된 효율성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 그 학문적 기준의 가치와 형량되어야 한다. 나는 이 형량이 학문적 기준에 불리한 결론을 도출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학문적 기준이 대표하는 능력이라는 규준은 비록 그 자체로도 큰 호소력이 있고,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관행에 대항하여 어렵게 획득된 피난처로도 큰 호소력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발생시키는 비용을 치를 만큼 가치 있다고 변호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 P98

그러나 집계적 고려사항도, 확률의 측정도, 적정절차 심사에서 하는 형량에 유관하지 않다. 유관한 형량을 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수색될 확률을 자문해서는 안 되고, 일정한 간섭이 그의 삶에 "실제로" 발생한다면 적합한 정당화로 그가 받아들일 바가 무엇인지를 자문해야 한다. - P108

도덕철학의 논변은 빈번하게, 상이한 사람들의 이득과 희생이 비교될 수 있는 기초에 관한 어떤 규준에 호소한다. - P117

그러나 내가 객관적 입장의 핵심으로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념이다. 우리가 어떤 이해관심이 다른 이해관심을 희생시켜, 분배 제도의 설계나 다른 권리나 특권의 할당에 있어서 더 유리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주장을 다루는 한, 유관한 것은 단순히 그들이 표현하는 주관적인 선호의 강도가 아니라 이 이해관심들의 중요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다. 따라서 객관적인 기준 위에서 우리는 주관적인 선호의 상대적 강도를 우리 이론의 토대로 삼지 않으면서도 개인 선호의 차이를 감안하고 개인의 자율성에 중요한 위치를 부여할수 있다. - P121

표현 행위가 받을 자격이 있는 보호는 부분적으로 그 표현이 기여하는 더 큰 목적(larger purposes)이 갖는 가치의 함수다. - P143

(존 스튜어트) 밀이 올바르게 지적하였듯이, 자신의 것과는 다른 이념과 태도에 노출되는 데서 얻는 중요한 이득이 존재한다. 비록 이 노출이 환영받을 일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어떤 표현에 노출되고 노출되지 않을지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가진다면, 우리가 이 권력을 스스로에게 해롭게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요하고 어려운 질문은, 표현에 원하지 않게 노출되는 것이 언제, 청중의 관점에서 좋은 것이 되는가다. - P146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믿을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표현의 부적절한 효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불완전하다. - P147

우리가 들은 것을 잘못하여 믿을 위험과는 상당히 별개로, 메시지를 믿지 않기로 하는 결정이 그 메시지가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모든 영향을 지우지는 못한다는 추가적인 문제가 있다. 내가 듣고 읽는 것을 바보 같다거나 과장하는 것으로 치부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보거나 듣기 전과는 약간 달라진다. 이 차이는 사소하긴 하지만 유의미할 수 있으며 그래서 이후의 나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147.148

이 수단들에의 노출이, 잠재의식 광고처럼 당사자의 이성적인 통제 바깥에서 그리고 선호의 유관한 근거와는 상당히 독립적인 과정을 통하여, 취향과 선호의 변화에 이르게 되느냐 아니면 그와는 반대로 그러한 영향에의 노출이 진정으로 선호할 이유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한 사실상 최선의 방법의 일부분이냐 여부를 물어야 한다. 나는 포르노그래피 및 다른 형태의 타락적이라고 비난되는 활동 규제에 관한 하나의 결정적인 질문이 여기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 P180

청중과 제삼자가 자유로운 정치적 토론을 제공하기 위하여 감수할 것을 요구받는 비용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높다. 이것은 스코키 사건(Skokie affair)이 드러내듯이, 매우 큰(very significant) 심리적 비용을 포함한다. 음란물에 의해 때때로 야기되는 그 특정한 심리적 비용은 왜 달리 취급되어야 하는가? (또는 왜 특별히 높은 기회가 부여되어야 하는가?) - P183

종교 활동에 대한 모든 제한이 곧바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모든 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표제가 아니다. 종교의식에서 동물을 고문하는 것을 불법화하는 것은 종교 자유와 양립가능하다. 침례교 의식에서만 불법화하고 성공회교도에게는 허용하는 것은 종교 자유와 양립가능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 P189

권리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자연 상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관한 주장이 아니다. 우리가 친숙한 사회에서 문제의 그 권리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고 예상하는가에 관한 주장이다. 권리가 대응하는 위협들은 일반적으로 그러한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권력의 배분과 위협을 야기하는 동기의 패턴 때문에 발생되는 것들이다. - P191

특히 인권은 인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거나 법에 구현된 나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만일 인권의 적용이 그렇게 한정된다면 그 비판적 의미의 많은 부분이 상실될 것이다. 어떤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대우받는 것을 불평할 때 그 불평이 가해자가 이를 인정하건 아니건 정당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P193

여기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다음 중 어느 쪽이 더 반대할 만한 형태의 문화적 우월감인가? ‘그들은 이런 식으로 산다—그들은 우리가 아는 바로는 권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근거에서 피해자를 조력하기를 거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이들이 설사 스스로 그 고통이 자기들이 마땅히 받을 바이며 거기에 대해 불평할 아무런 기초도 없다고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보호하려고 시도하는 것인가? - P196

도덕적 그름에 대한 계약주의적 설명은 ‘모든 이들이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원리라기보다는 ‘어느 누구도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원리‘를 언급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부 사람들이 그 아래서 심각한 곤경을 겪게 되는 원리가 있다. 그런데 이 곤경은 회피할 수 있다. 즉, 어느 누구도 이에 상응하는 정도의 부담을 질 필요가 없는 대안적 원리들이 있다. 그러나 이 곤경을 겪는 사람들이 특별히 자기희생적이어서, 모든 사람들의 더 큰 선이라고 그들이 이해하는 바를 위해 이 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하여 보자. 내 생각에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비합당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이 부담을 거부하는 것은 비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러한 부담을 질 것을 명하는 원리를 거부하는 누군가는 비합당한 것이 아니다(not unreasonable). 이 거부가 합당하다면, 그것을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특별히 자기희생적인 일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부담들을 부과하는 그 원리는 의문시된다. 그러므로 도덕적 논변이 의거하는 것은 원리를 거부하는 것의 합당성이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의 합당성이 아니다. - P219

내가 이때까지 계약주의에 대하여 이야기해 왔던 것에 기초하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왜 많은 이들에게 도덕적 지위에 유리한 고려사항으로 여겨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는 존재는 내가 언급한, 그것에 대한 정당화라는 이념이 이치에 닿기 위해 필수적인 세 요건[역자: 그 존재가 선을 보유할 것, 그 존재의 선이 우리의 선과 비교가능한 체계의 기초를 제시할 정도로 충분히 유사할 것, 정당화를 이야기할 관점을 구성할 수 있을 것] 또한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한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은 정당화가 이야기될 수 있는 의식의 중심(centre)을 구성한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그 존재가 나빠지는 분명한 방식이다. 고통이 경감되는 것은 그 존재가 혜택을 입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 자신의 것과 직접적으로 비교가능한 행복과 불행의 형태다. - P223

도덕적 동기 부여가 사람들로 하여금 옳은 일을 하게끔 하는 방식으로서 악명 높을 정도로 불충분하다는 것은, 단순히 깔려 있는 동기의 약함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기 이익과 자기기만(自己欺瞞)에 의해 쉽게 방향이 바뀐다는 사실 때문이다. - P229

무지의 베일 뒤에서, 한 사람에게 최선의 전망을 제공해 주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최선의 전망을 제공해 준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만을 특별히 혜택을 입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원리들의 선택은, (존) 롤즈가 말하길, 무지의 베일 뒤의 단일한 합리적 개인의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 P241

다음과 같이 대조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 한쪽 견해에서, 보호에 대한 관심은 근본적이다. 그리고 일반적 합의는 이 보호를 확보하는 수단 내지는 필수조건으로서 유관하게 된다. 다른 한쪽의 견해인 계약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보호에 대한 욕구는 도덕의 내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왜냐하면 그 욕구는 무엇이 합당하게 합의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 합의라는 이념은 보호를 확보하는 수단으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일반적 합의라는 이념은 도덕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 P248

권리에 관한 우리의 이념은 행위 재량에 대한 필수적이고도 실현가능하다고 여기는 제약에 관한 이념이다. 이 이념들은 항상 불완전하게 정식화되며 구체적인 역사적 실례의 ‘교훈‘에 크게 의존한다. 그 교훈 중 두드러지는 것은, 검열을 할 수 있는 정부의 일반적 권력과 정치적 선동을 금지하는 법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을 정부에게 딱 잘라 부인하는 것은 필수적일 뿐 아니라 실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표현을 규제할 정부 권력을 모두 부인하는 것은 명백히 실현가능하지 않고 필수적인 일로 보이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확성기의 사용과 광고판의 설치를 규제하는 법은 확실히 받아들일 만하다. - P266

두 이론 모두 ‘정신 상태‘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포함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쾌락주의는 일정한 정신 상태를 궁극적인 가치를 갖는 유일한 것으로 여긴다. 욕구 이론은 만일 어떤 것들이 적합한 ‘정신 상태‘나 태도의 대상이라면 가치 있는 것으로 보지만,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은 정신 상태에 한정되지 않으며,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 그 자체는 가치 있을 필요가 없다. - P289

반대로 우리의 반대나 불승인의 감정이 적절하게 억제될 수 있다면, 이 감정들을 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종적(racial) 편견이나 민족적(ethnic) 편견에 마음이 움직인다면, 선호되는 교정책은 그저 우리가 혐오하는 이들을 관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김새나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 P311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종교적 관용은 이 장의 초반에서 내가 시사한 것보다 내게 훨씬 더 큰 위험을 가져온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들의 선택에 따라 종교활동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나의 사회가 대부분 사람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독실하게 종교적이고 종교가 모든 공적 담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회가 되게끔 한다면 매우 불행할 것이다. 게다가, 설사 내가 수정헌법 제1조의 확고한 보호를 계속해서 받는다고 하여도 이와 같이 느낄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종교의 법적 강제가 아니라 종교가 사회적으로 뚜렷하게 우세해지는 것이다. - P318

나는 어떤 사회에서라도 긴 시간에 걸쳐 그 사회의 성격과 방향에 관하여 갈등, 그것도 심각한 갈등(conficts)이 있으리라고 추정한다. 관용이 표명하는 것은 이 갈등보다 더 심층적인 공동 자격의 인정이다. 즉, 다른 이들도 우리 사회의 규정에 우리가 기여할 자격이 있는 것과 똑같이 기여할 자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 없이 우리는 단지 동일한 영토를 두고 싸우는(contending) 경쟁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역사적인 이유에서건 개인적인 이유에서건, [역자: 의견과 가치가 다른 이들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의" 영토이자 "우리의" 전통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 갈등을 더 깊게 만들 뿐이다. - P320.321

둘째, 관용을 공식적 교설로 지지하는 것은 불관용적인가? 우리 주화에 "우리가 믿는 관용 안에서"(In Tolerance We Trust)라는 글귀를 넣는다고 해 보자.(나쁜 슬로건은 아닌 것 같다. 비록 [역자: ‘우리가 믿는 불관용‘(Intolerance We Trust)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서 발음할 필요는 있지만 말이다.) 관용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고 국가가 지원하는 광고 캠페인에서 지지하는 것은 불관용적인가? 분명 아니며, 다시금 같은 이유에서다. 관용의 옹호는 사회에서 어느 누구의 정당한 자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각 사람과 집단에게,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한 것을 인정하면서 요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위를 인정한다. - P327

따라서 관용이 이치에 맞으려면 우리는 반대자에 의해 옹호되고 있는 것에 관한 태도와, 반대자들 자체에 대한 태도를 구별해야만 한다. 대표될 자격이 있는 것은 그들의 견해가 아니라, (견해의 보지자(保持者)가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서) "그들"이다. - P327

이(관용의) 정신이 정확히 무엇인지 더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나는 그 정신의 일부를 화해(和解)의 정신(spirit of accommodation)으로 묘사하겠다. 즉, 다른 이들(‘동료 시민‘ 관계의 넓은 범위에 속하는 모든 이들)도 역시 받아들이도록 요구받을 수 있는 권리의 체계를 발견하려는 욕구로 묘사하겠다. 내가 공립학교에서의 기도나 우리의 주화에 새겨진 글귀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에 결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 것은 바로 이 정신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화해에 관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종교에 관하여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 엄격한 정책이 내가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정책인가, 아니면 세속주의와 많은 종교적 확신들 사이에서 어떤 다른 타협으로서 내가 기꺼이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 있는가? - P329

나는 관용이 수반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관용을 믿는다. 왜냐하면, 관용이 아닌 다른 대안은 어느 것이나 나를 반대자뿐만 아니라 친구도 포함한, 나의 동료 시민들에 대한 적대적이고 소외된 관계에 놓이게 하기 때문이다. 관용의 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하기 어렵다. 관용에는 오직 공식적 정치와 비공식적 정치에의 참여자로서 시민 권리에 대한 어떤 자세한 명시를 통해서만 내용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권리 체계도 규약적이며 불확정적일 것이어서 빈번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체계를 유지하고 해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자체가 유지하기 어려운 관용과 화해라는 더 폭넓은 태도를 필요로 한다. - P333

평등이 그 자체로 근본적인 도덕적 가치라는 이념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많은 형태의 불평등들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이유로는 놀라울 정도로 제한적인 역할만 한다. - P337

평등에 대한 반대자들은 그들이 평등을 특별한 도덕적 가치가 결부되는 기이할 정도로 추상적인 목표—일정한 패턴에 일치시키는 것—로 그려낼 수 있을 때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P338

불평등의 제거를 지지하는 세 번째 이유는, 불평등이 훨씬 더 큰 자원을 가진 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통제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큰 자원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여가나 더 높은 소비 수준을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어떻게 생산될지, 어떤 종류의 고용기회가 제공될지, 마을이나 국가의 환경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어떤 종류의 삶을 그러한 공동체에서 살 수 있는지도 보통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경제적 우월성은 더 큰 정치적 권력으로 변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거비용 제한법이 억제하고자 하는 그러한 종류의 권력 말이다. - P341

자부심(self-esteem)의 토대를 보존하고, 그 자부심을 위협하는 것에 반대하는 본능은 오늘날의 세상에서 강력한 힘이다. 그 본능은 더 큰 평등을 위한 투쟁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토착주의(nativism), 종교적 근본주의, 그리고 인종적·종교적 편협성(racial and religious bigotry)의 여러 형태를 지지하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많은 백인 남성들은 인종적 평등과 성 평등의 교설들을 그들의 지위와 자기 가치에 대한 감각을 위협하는 것으로 본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 P362

16 인권 침해가 법적 책임을 발생시킨다는 점을 특히 명확히 하는 한 가지 방법은 ‘계엄령‘(state of siege)의 선언에 의한 기본적 자유 정지를 허가하는 헌법규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제안은 비현실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조항은 (그 조항을 활용할 자격이 없는 행위에 합법적이라는 뉘앙스를 더해 주는 것에 더하여) 법조차도 ‘좋은 시절‘에만 향유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인정한다고 시사함으로써 일종의 냉소주의를 불러일으킨다. - P383

이행(fulfillment)과 보상(compensation)의 차이는, 계약법이 중심적으로 다루는 상업적 거래와는 달리 개인적인 삶에서 우리의 주된 이해관심은 그와 등가인 금전 등 대체물이 없는 행위의 실제 이행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그리고 (법의 영역에 대비되는) 비형식적인 개인적 도덕 영역에서는 불편부당하다고 추정되며 등가 판단을 내릴 권위를 부여받은 지정된 제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해 특히 더 두드러지게 된다. 따라서 약속에 관한 도덕의 중심적인 관심은 이행할 책무다. 보상이라는 이념은 기껏해야 이차적인 관심사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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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국제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대표제 정치라는 광대한 비전 앞에서 성급하게 국가의 종말을 선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 기구들 사이의 국제적 경쟁이 대표 기관으로서 국가가 지녀 왔던 우위에 반드시 종말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대표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풍부하게 경험했던 국가야 말로 이 같은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기에 적합할 수 있다. - P229

[이민자들이] 출신국 국민의 이익 또는 무슬림 형제단처럼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는 문화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공통된 정체성에 기반을 둔다. 이 같은 일은 출신국과의 유대가 강한 제1세대 이민자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러나 새 나라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자녀들도 자신들이 명목상으로만 시민일 뿐이라고 불만을 느끼며 그런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후자가 정체성을 근거로 대표성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이들의 행동은 근대 정체성 정치의 발현으로서, 두 문화 사이에 끼여 어느 쪽에도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의해 심화된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대표하면서, 자신들에게 탈민족적 시민권과 소속감을 제공하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력에 항의하는 것일 수 있다. - P230.231

초국가 정치의 종사자들이 국가 외부에서 공동의 이익을 발견했을 때 자동으로 자신이 대표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냈다고 상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표는 언제나 공동의 이해관계 그 이상의 것에 의존한다. 즉 대표자의 행위 속에 피대표자가 현존해야만 한다. 그런 현존은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축될, 또는 공들여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 P237

국제재판소가 전 세계 인민의 이름으로 법을 집행하고, 오직 국제법에 의거해서만 행동한다는 주장에는 확실히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 주장을 완전히 묵살해서는 안 된다. 국제재판소의 발전 그 자체가, 비교적 책임성 없는 대표 형태조차 역동적 잠재성을 보유함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 P261

포용성이 반드시 민주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성 증진은 상황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 P272

확실히 대표제는 다수의 의지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민주주의보다 더 열린 개념이다(오늘날의 정치가 오직 단기적으로만 역동성을 띤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대표제의 형식을 띠고 있어서가 아니라 대표제가 민주주의의 형식을 띠기 때문이다). - P277

전 지구적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대표제 정치에 달려 있다. 그 일이—홉스 시대 이래로 대표제 정치가 진화한 방식으로 판단하건대—미래 세대나 아동이나 지구를 대표하는 일에 달려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표되느냐에 달려 있다. - P289

이 책의 공저자 데이비드 런시먼은 런던 문화 행사 기관 5X15에서 주최한 2018년 5월 온라인 강연에서 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 개념이 등장했을 때 플라톤을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이 민주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대중이 가난하고, 무지하고, 젊다는 점을 들었다고 지적했다. 평균 연령이 스무 살도 될까 말까 한 당시의 남자들이란 대개 무식하고, 자만심이 강하고, 음주가 심하고, 빚을 진 경우가 많고, 남에게 휘둘리기 쉬운 집단이어서 정치를 맡기면 위험하다고 간주되었다. 이 논리는 2000년 가까이 유효하게 이어졌다. (노시내) - P29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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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대신 의논한다‘는 뜻의 ‘대의‘(代議) 개념은 ‘대표(代表)가 갖는 representation의 의미 중 극히 일부만을 재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대의민주주의 보다는 ‘대표제 민주주의‘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이관후) - P8

거의 모든 정치 변동에서 실제로 추구되었던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다 좋은 대표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였다. (이관후) - P11

대부분의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보다 나은 어떤 사람이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관념은 대단히 뿌리 깊은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지배계급의 허위의식, 기득권 언론과 국가에 장악된 교육의 영향, 정당 체제의 보수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이관후) - P11.12

‘대의민주주의‘ ‘대의정부‘라는 표현이 ‘representative democracy‘ ‘representative government‘의 번역어로 널리 통용되지만, 이것은 19세기 말에 일본을 통해 수입된 번역어로서, ‘대의‘라는 개념은 피대표자의 의지가 반영돼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그들보다 탁월한 대표자들이 의논을 통해 피대표자의 이익을 수호한다는 협소한 의미를 지닌다. - P23

예컨대 ‘신뢰‘[신임]trust는 대체로 대표자가 어떻게 행동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대표 유형과 결부된다(대표 개념이 ‘신탁‘trusteeship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때 특히 그렇다). 그러나 사실 신뢰는 모든 형태의 대표 개념과 연관되는 문제다. 우리가 누구에게 우리를 위해 행동할 것을 지시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신뢰할 필요가 있으며, 사람들은 아마도 중요한 측면에서 자신과 닮은 대표자를 더 신뢰할 가능성이 크다. 신탁 역시 각종 용어들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법적 관념이고 법률 용어에서 파생된 단어이지만, 대표되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에 생기를 부여하는 것이 대표자의 임무라는 점에서 연극적 대표 개념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 P27

어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대표‘라는 단어가 언제나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대표 형식들은 고대 이래로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근대 세계와 관련한 독특한 특징은 대표 개념이 근대 정치를 조형하는 데 수행한 역할이었다. 모든 근대국가는 정부가 국민의 이름으로 발언하고 행동할 능력에 토대를 둔다는 점에서 대표제 국가다. - P31

민주주의는 기원상 순수하게 정치적 개념이며, 민주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어려울 수는 있어도 그 용어가 어떤 뜻인지는, 곧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표는 순수하게 그 단어만 보더라도 본질적으로 애매해 보인다. 이 단어는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암시한다. 재-"현"re-presented이라는 점에서 현존하고, "재"-현re-presented 이라는 점에서 부재한다. 이 같은 불확정성과 표면적 모순성을 고려할 때, 대표 개념을 순수하게 도구적 역할로 축소해, 좀 더 다루기 용이한 선거 정치와 민주적 책임성 문제로 포괄하려는 유혹이 크다. 이것이 대체로 오늘날 정치학 학술 문헌들에서 대표 개념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다. - P32.33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누구를 ‘위해 행동한다‘는 뜻에서 대표라고 부르는 관념은, 단어 자체를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로마 시대에 활용되고 있었다. 예컨대, 로마법에서 소송에서 누군가를 대표하는 자를 "레프라이센토르"repraesentor라고 부르지는 않았어도, 대리인actor, 변호자cognitor, 소송 대리인procurator, 보호자tutor 또는 수호자curator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훗날 서로 다른 행위자들 간의 대표 관계로 간주되는 것을 로마 정치사상에서 가장 가깝게 포착한 용어는 법 분야가 아니라 연극 분야, 그중에서도 특히 가면극에서 유래했다. 이것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가 "페르소나"였다. - P36

위에서 묘사한 관념들을 기반으로 중세 시대까지 (1) 묘사적 대표 또는 모방mimesis(유사한 것들이 서로를 대신한다는 의미에서), (2) 상징적 대표 또는 체현embodiment으로서의 대표(높은 자가 낮은 자를 체현), (3) 권한의 부여 또는 위임delegation으로서의 대표, 이렇게 세 가지 경쟁적 대표 개념이 진화했다(Tierney 1983). 이 세 가지 모두 당시의 신학·교회학 문헌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대표 개념 가운데 세 번째는 권력 배분에 관한 법적·정치적 문제와 가장 분명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거의 기능하지 못했으며 기성 권력, 특히 앞선 두 가지 대표 개념이 훨씬 큰 역할을 차지했던 교회 통치권 내에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 P40

14세기 말에 시작된 공의회 운동[교황보다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공의회의 권위가 더 높다는 사상을 주장한 운동]은 집단 인격론theory of group personality에 근거해 교회의 일체성은 구성원의 법인체 결성corporate association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교황 한 사람에 대한 복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교황의 권위는 부분적으로 성직에 근거했다. 이 성직은 신도들에 의해 그에게 위임되었다. 그러나 공의회주의자들은 자신을 대표해 의사 결정을 내려 줄 자기만의 대표 기관이 신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의회주의자들은 교회의 총 공의회가 교회의 통치 구조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최종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신자들의 대표 기관으로 파악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황의 이단성이나 실정 가능성으로부터 어떻게 교회를 보호하느냐 하는 것이었다(Tierney 1982). - P44.45

중세 전반에 걸쳐 의회 대표자들은 두 개의 다른 방향으로 압력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 한편으로는 의회 대표자들이 자신의 유권자들을 구속할 ‘전권‘을 지닌다는 전제가 그들을 왕권의 도구로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지역 대표성, 봉건적 의무, 집단 청원의 관례가 유권자들에게 구속력 있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그들과와 재협의해야 할 명확한 의무를 부과했다. 그 결과 대표 개념과 관련해 행동할 수 있는 권한과 협의해야 할 필요성 사이에 분열이 일어났다. - P49

(토머스) 홉스는 대표가 영국을 분열시키던 분쟁을 초월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형태의 정치가 이뤄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홉스에 의해, 대표는 국가를—어떤 국가든—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관념으로 밝혀졌다. - P61

단순한 개인의 집합으로서의 군중이 정치적인 의미에서 인민이 되려면, 마치 하나의 인격인 것처럼 대표되어야 한다. 홉스의 설명은 『리바이어던』에서뿐만 아니라 근대 정치사상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구절에 해당한다. ‘인간 다중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인격에 의해 대표될 때 하나의 인격이 된다 ……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것은 대표자의 통일성이지 피대표자의 통일성은 아니기 때문이다‘(Hobbes 1996, 114[국역본, 221쪽]). 이 사상의 중요성은 대표를 하나의 변신의 형식으로 본다는 사실에 있다. 즉 대표됨으로써 국가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 P63

그렇지만 『리바이어던』에 담긴 논리의 진정한 중요성은, 책에 이전 시대의 로마의 법 관념이나 키케로의 관념도 활용하고 원래 의회주의자들이 견지했던 대표 개념을 동원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홉스가 어느 편에 서있는지를 사전에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홉스는 의회주의자들의 사상을 전복시켰다(Skinner 2005). 대표에 관한 그의 설명은 어느 쪽이 승리해도 모순이 없었다(하지만 1660년 스튜어트 왕조의 복고 이후 홉스는 그 점을 부각하지 않는 편을 선호했다). 거기에는 진영 논리를 넘어서고, 협소한 의미의 정치도 넘어서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홉스의 관점에서 대표란 극도로 파괴적인 형태의 정치적 갈등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정치를 가능케 하는 도구였다. - P65

둘째, 홉스는 대표를 신이든, 교황이든, 아리스토텔레스든, 신성로마제국 황제든 그 어떤 더 높은 권위에도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념으로 만들었다. 홉스는 그들 모두의 정치적 권위를 파괴할 작정이었다. 그 대신 홉스는 대표를 정치적 권위 그 자체와 동격에 놓고 합리성과 평등(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모든 창조물이 공유하는 평등)이라는 세속적 관념의 토대 위에 세웠다(Pettit 2007). 대표를 일단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가능해졌다. - P65.66

홉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홉스의 대표론에서 창의적 잠재성을 봤는지 아니면, 홉스가 남에게 보여 주고 싶어 했던 것, 즉 절대주의만 봤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 P68

권력은 (존) 로크의 표현을 빌리면 인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인민이 통치자에게 신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행정관들이 인민의 동의 없이 그들의 소유물(생명, 자유, 재산)을 강제로 빼앗거나, 대표자 선출을 위해 확립한 장치를 해체 또는 방해할 때마다 심각한 신뢰 위반이 성립되어, 인민은 복종의 의무를 면제받았다. 대표의 원리라는 경로를 거친 동의의 관념은 궁극적으로 저항할 권리를 암시했다. - P70

홉스의 설명이 뛰어난 이유는 대표에 관해 그 어떤 자연스러움도 상정하지 않았고, 대표에 관한 합의가 정부에 선행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대표와 정부의 생성 그 자체를 동일시하면서, 이를 전적으로 인위적인 과정으로 이해했다. 홉스에게 ‘인공적 장치‘artifice란 훗날 이 단어가 갖게 되는 협소한 가식성의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창조성, 즉 자신을 위해 기능하는 세계를 고안해 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했다. 이런 면에서 홉스의 대표론은 좀 더 급진적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대표 개념으로 정부의 행위 능력을 제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정부의 행위 능력과 동일 선상에 놓음으로써 정치 대표자들에게 재량을 허락했다. - P71

(장 자크) 루소는 ‘의지는 결코 대표되지 않는다‘라며 의지는 그 자체이거나, 아니면 다른 것이다. 중간은 없다‘라고 적었다(Rousseau 1997, 114[국역본, 117쪽]), 홉스의 관점에서 볼 때, 인민은 대표되어야만 비로소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 루소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대표시키는 인민은 인민이 전혀 아니었다. 루소와 홉스 간에 메울 수 없는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 P73

(에드먼드) 버크는 모방 예술보다 모방이 아닌 예술을—즉 회화보다는 시를—선호했다. 왜냐하면 시적 재현은 정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좀 더 심오한 진실의 추구를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버크는 국민 정체성의 깊은 복잡성을 인정하여, 그 복잡성을 정치제도에 반영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대표제 형식을 선호했다. 버크에게 국민은 복잡하게 진화한 개체들로서 정치적 대표의 차원에서 그 본질을 복제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했다. - P85

이와 유사하게 프랑스혁명에 대한 버크의 극심한 경멸 역시 대표제에 지나칠 정도의 엄격성을 적용하려는 시도에 대한 그의 뿌리 깊은 의구심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혁명가들이 저지른 파국적 실수는 프랑스 사회에서 권력의 진정한 소재지—인민—를 반영한 헌법을 기초할 수 있다고 상상한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버크의 관점에서 이것은 사회를 개인들의 단순한 총합으로 축소함으로써 사회 그 자체의 속성을 잘못 대표[재현]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프랑스 사회의 비전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써서라도 그들의 의지를 거꾸로 인민에게 강제할 수밖에 없다. - P86.87

(막스) 베버는 근대 대표제 정치가 합리와 비합리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으며 그것이 각각 대중정당의 관료주의 조직과 국민투표형 민주적 지배자의 카리스마 속에 내장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 두 요소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낼 수도 없고,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사이이기도했다. (카를) 슈미트는 자유주의적 물질주의가 바이마르 정치를 슬금슬금 잠식한다고 보고 이에 경악하여, 대표제를 합리적 요소로부터 완전히 해방해 초기의 신학적 아우라와 지극히 인치주의적인 근원personalist roots으로 회귀시키고자 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베버가 (윌리엄) 글래드스턴에서 출발했다면, 슈미트는 결국 히틀러로 귀결되었다. - P106.107

[(조지프) 슘페터가 보기에 대표제는] 민주주의적 삶의 진짜 본성은 권력 경쟁일 뿐이라는 사실로부터 스스로를 기만하기 위해 사람들이 쓰는 표현에 불과했다. 따라서 슈미트가 민주주의를 대표제로 축소하려던 바로 그 지점에서, 슘페터는 대표 개념마저 아예 폐기 처분하기로 했던 셈이다. - P108

(알렉시 드) 토크빌이 남긴 유산의 밝은 면이 부각되느냐 어두운 면이 부각되느냐에 따라 대표제가 민주주의에 부속되는 방식은 달라지는데, 민주적 가치에 따라 재단해야 하는 실질 정치의 도구가 되거나, 아니면 민주적 독재의 진짜 본성을 감추는 데 쓰이는 본질적으로 공허한 관념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널리 쓰이는 ‘대표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좋든 싫든 정치적 대표란 민주주의라는 토대 없이는 헛것이고, 민주주의가 없으면 대표제는 그저 단어에 불과하다는 일반적 의식을 반영한다. - P110

근대 정치는 그 중심에 대표제가 자리한다는 점에서 이제껏 항상 눈에 띄게 홉스형 기획물이었음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 P111

대표의 역사를 보면 단일한 기본 모델 가운데 하나가 발전하거나 정교해져서 더욱 복잡한 버전들이 생긴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대표 개념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관념으로 탄생해, 이 개념의 기능을 명확히 이해하고자 했던 정치 이론가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 P114

타인의 행위에 내가 현존하는 것—타인이 나를 단순히 돕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행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그 사람을 나의 대표자로 부를 수 있게 하는 요소다. 결과적으로, 대표 관계에서 본인이 어떻게 대리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느냐가 항상 쟁점이 된다. - P118

대표는 정의상 부재와 현존을 동시에 수반하므로, 대리인이 하는 일을 본인이 항상 즉시 파악할 수는 없다. 제3자는 어떤 간격이 존재하든 그것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대표 행위는 언제나 불완전한 정보, 위험, 불확실성 아래에서 이뤄진다. - P122

간단히 말해 아동을 대표하는 경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대표 행위 전반에 너무 느슨하게 확대해서 표현을 혼용하면, 정치 대표자들이 자신이 대표하는 유권자들의 능력을 아동이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아는 정도의 능력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는 점을 (한나) 피트킨이 우려한 것이다. 그게 바로 홉스의 대표 개념이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피트킨은 생각했다. - P124

(제임스) 매디슨도 인식했듯, 다수결 원칙은 소수파에게 그들이 정치적 다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공정성이 의문시될 수 있다. 즉 한 차례 또는 한 가지 사안에서 패한 자가 그래도 다음 번 또는 그 다음 사안에서는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면 불신이 굳어질 위험이 크다. - P149

그보다 대표의 원리가 시사하는 것은, 다수결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표되기를 바라는 집단이라면 자신들이 영원한 소수파를 억누르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 P151

예컨대 로크는 인민이 공동체로서 행동하면서 신탁 관계를 수단으로 정부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는 특히 ‘암묵적 신탁‘ 관념을 채택해 모든 정치권력의 수탁적 속성을 강조했다. 로크가 법정 신탁 개념을 이용한 것은 공익을 도모해야 할 통치자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권력의 비대칭성 때문에 피통치자가 대표자를 지속해서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점을 조명하려는 목적도 있었다(Dunn 1984). - P157

만일 그 (회사의 고문) 변호사가 회사를 대리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패한다면, 그 궁극적인 결과를 누가 책임지는가? 회사가 진다는 것이 정답이다. 개별 주주의 책임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같은 책임의 제한이 법인화의 목적인 경우가 많다. 즉, 개별 구성원이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에 각기 개별적으로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집단의 정체성이 더 뚜렷할수록, 그 집단을 대신해서 수행된 행위에 대해 집단의 책임과 개별 구성원의 책임을 따로 구분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 - P161

확실히, 집단은 대표자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의지적으로 성취할 수 없다. 행위능력이 없는 집단은 대표자에 의해 대표되기 전에는 그런 의지를 형성할 수 없지만, 마치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대표될 수는 있다. 실제로 집단은 대표자가 바로 그 기능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즉, 대표자는 집단의 이익을 해석해야 하고, 그와 같은 해석을 통해 자신이 해당 집단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 주장은 그것이 지닌 해석적 속성 때문에, 해당 집단의 이익을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이 보기에 더욱 만족스럽게) 현존하도록 할 수 있는 다양한 대표자들의 경쟁적 주장에 도전받게 된다. 만약 경합하는 주장이 등장하면, 대표자는 해당 집단을 대표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 포괄적 집단 대표 모델에서 책임성 개념이 핵심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 P163.164

집단은 스스로 발언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대표에는 집단을 대표한다는 발언에 반박할 수 있는 일정한 수단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모든 반박은 대안적 대표 행위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집단에대한 대표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특성은 근대국가와 같은 규모의 집합체에 대한 정치적 대표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데, 이는 근대국가에서는 언제나 이처럼 서로 경합하는 주장이 존재할 것임을 의미한다. 집단을 대표해서 발언한다는 여러 주장들 사이의 경합은 서로 경쟁하는 대표자들의 자격을 평가하는 데 도움은 될수 있지만, 이 같은 평가가 이들 사이의 경합을 영구히 종식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런 집단을 대표하는 일은 언제나 [그런 경합 속에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 P164.165

실제로 오늘날 ‘쟁점 중심‘ 정치의 많은 부분이 규모가 훨씬 큰 집단들을 대신해 행동할 소규모 개인 집단의 의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때 소규모 집단은 대규모 집단과 관심[우려]을 공유하지만 참여 의지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대규모 집단과 구별된다(Stoker 2006). - P174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쟁점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극성을 보인다는 것과 관련한 핵심 사실은, 이들이 대의에 온전히 헌신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의식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 P174

정체성에 관한 본질주의적 관점은 정체성 범주들의 불안정성과 내재적 불균질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진실을 위험하게 오도한다. 이 같은 관점은 어느 정체성 집단이든, 그리고 심지어 한 개인에게도, 하나 이상의 관점들이 공존하거나 잠재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생각과 상충한다. - P180

게다가 심각한 사회적 약자 집단일 경우, 집단 구성원들이 가진 속성을 공유하는 사람만 그 집단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다고 제한하면, 그 집단이 대표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 6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 집단의 이익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더 큰 특권을 지닌 외부자가 그들을 대표하도록 허락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다. - P183

이익은 대안적 관점에 노출되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연성이 없다. - P183.184

따라서 지역별 대표를 기존의 집단 대표 모델에다 깔끔하게 끼워 맞추기 어려운 근본 이유는 (1) 유권자가 행위자로서 행동할 능력이 없고, (2) 수많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해관계를 지역이 담아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지역 대표제는 어딜 가나 여전히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결과 특히 자기 선거구에서 패한 개인 및 집단이 (하지만 패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선거구와 무관하게 그들이 동일시하는 대표자에 의존해 물질이나 가치관에 기반을 둔 이익을 증진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Mansbridge 2003). 이에 따라 우리는 형식상의 지역 대표제 내에서 개인들이 자신들에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책임지지 않는 대표자에게 동일시하는 조짐이 증가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이것은 전통적인 민주정치에서 피할 수 없는 긴장 요소 가운데 하나다. - P188.189

그러나 국가가 한 가지 특유하다고 할 만한 점은 바로 그런 모호성들을 최대한 활용할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그 점을 확실하게 시사하는 듯하다. 국가는 대표 관념을 고정하기보다는, 그 개념의 다양성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어떤 대표 모델이 국가에 가장 알맞을지 결정할 때 그 답에 그 어떤 모호성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정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어쩌면 대표의 모호성이야말로 국가가 성공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돕는 요소일 수 있다. - P194

구성원들의 집합적 결정을 통해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조차도 다수가 전체 집단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표제로 이해할 수 있다. - P196

미국에서 드러난 증거에 따르면, 흑인 의원 비율 증가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선거구를 정해 소수자 의원의 수를 늘렸더니, 소수자 유권자의 이익에 대한 의회 전체의 반응성이 사실상 약화했다(Lublin 1997). 추가적인 헌법상의 보장 없이 소수자에게 ‘그들만의‘ 대표자를 주면, 다수는 오히려 그들을 쉽게 무시할 수 있다. - P201

실제로, 작지만 고도로 조직화된 이익집단의 영향력을 우선시하는 대표제는 응집력 있는 다수파의 형성을 실질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Dahl 1971, 18-22). - P202

엘리트주의가 배제하는 것은, 정치적 대표 체계가 광범위한 대중을 거울처럼 반영하거나 통치자에게 무엇을 할지 지시할 수단을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문제는 엘리트주의가 대표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엘리트주의가 민주주의 사상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 P203

대중이 자문단의 심의 결과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들으면, 자문단의 결정을 승인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피대표자의 반대 가능성에 좌우되는 대표 행위와 피대표자가 비슷한 상황에서 취했을 행동을 흉내 내는 것으로서의 대표 행위는 매우 다르다. 근본적인 차이는 피대표자가—총선 등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표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선거전은 자문단의 조심스러운 숙고와 별로 닮은 점이 없기 때문이다. - P207

‘미학적‘ 정치 대표론의 가장 중요한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랑크 앙커스미트Frank Ankersmit가 주장한 대로 인민과 대표자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는 시도는 헛되다(Ankersmit 1997). 실제로 그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모방 형태의 동일성을 수립하려는 시도는 인민이 대표자의 행위를 성찰하고 재단할 기회를 가로막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를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대표는 인민과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인민이 [정치적 대표 체계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받아 그것을 성찰하게끔 고안되었다. - P215.216

그렇다면 각 제도(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모델과 미국의 워싱턴 모델)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은 그 제도가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에서 어디에 균형을 두는지의 반영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영국 유권자는 대표자들이 유권자를 직접 대표하지 않고 당 조직에만 충성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미국 유권자는 대표자들이 특수 이익의 포로가 되어 더 큰 그림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 P224

국가권력은 신탁, 동일성 정치, 보통 선거를 통해 획득한 권위 등 지금까지 이 책에서 논의한 수많은 다양한 대표 방식을 수용하는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앞 장에서 살펴봤듯, 다른 유형의 대표자들이 이런 국가와 경쟁하기란 어렵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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