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대신 의논한다‘는 뜻의 ‘대의‘(代議) 개념은 ‘대표(代表)가 갖는 representation의 의미 중 극히 일부만을 재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대의민주주의 보다는 ‘대표제 민주주의‘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이관후) - P8
거의 모든 정치 변동에서 실제로 추구되었던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다 좋은 대표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였다. (이관후) - P11
대부분의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보다 나은 어떤 사람이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관념은 대단히 뿌리 깊은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지배계급의 허위의식, 기득권 언론과 국가에 장악된 교육의 영향, 정당 체제의 보수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이관후) - P11.12
‘대의민주주의‘ ‘대의정부‘라는 표현이 ‘representative democracy‘ ‘representative government‘의 번역어로 널리 통용되지만, 이것은 19세기 말에 일본을 통해 수입된 번역어로서, ‘대의‘라는 개념은 피대표자의 의지가 반영돼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그들보다 탁월한 대표자들이 의논을 통해 피대표자의 이익을 수호한다는 협소한 의미를 지닌다. - P23
예컨대 ‘신뢰‘[신임]trust는 대체로 대표자가 어떻게 행동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대표 유형과 결부된다(대표 개념이 ‘신탁‘trusteeship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때 특히 그렇다). 그러나 사실 신뢰는 모든 형태의 대표 개념과 연관되는 문제다. 우리가 누구에게 우리를 위해 행동할 것을 지시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신뢰할 필요가 있으며, 사람들은 아마도 중요한 측면에서 자신과 닮은 대표자를 더 신뢰할 가능성이 크다. 신탁 역시 각종 용어들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법적 관념이고 법률 용어에서 파생된 단어이지만, 대표되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에 생기를 부여하는 것이 대표자의 임무라는 점에서 연극적 대표 개념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 P27
어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대표‘라는 단어가 언제나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대표 형식들은 고대 이래로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근대 세계와 관련한 독특한 특징은 대표 개념이 근대 정치를 조형하는 데 수행한 역할이었다. 모든 근대국가는 정부가 국민의 이름으로 발언하고 행동할 능력에 토대를 둔다는 점에서 대표제 국가다. - P31
민주주의는 기원상 순수하게 정치적 개념이며, 민주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어려울 수는 있어도 그 용어가 어떤 뜻인지는, 곧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표는 순수하게 그 단어만 보더라도 본질적으로 애매해 보인다. 이 단어는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암시한다. 재-"현"re-presented이라는 점에서 현존하고, "재"-현re-presented 이라는 점에서 부재한다. 이 같은 불확정성과 표면적 모순성을 고려할 때, 대표 개념을 순수하게 도구적 역할로 축소해, 좀 더 다루기 용이한 선거 정치와 민주적 책임성 문제로 포괄하려는 유혹이 크다. 이것이 대체로 오늘날 정치학 학술 문헌들에서 대표 개념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다. - P32.33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누구를 ‘위해 행동한다‘는 뜻에서 대표라고 부르는 관념은, 단어 자체를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로마 시대에 활용되고 있었다. 예컨대, 로마법에서 소송에서 누군가를 대표하는 자를 "레프라이센토르"repraesentor라고 부르지는 않았어도, 대리인actor, 변호자cognitor, 소송 대리인procurator, 보호자tutor 또는 수호자curator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훗날 서로 다른 행위자들 간의 대표 관계로 간주되는 것을 로마 정치사상에서 가장 가깝게 포착한 용어는 법 분야가 아니라 연극 분야, 그중에서도 특히 가면극에서 유래했다. 이것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가 "페르소나"였다. - P36
위에서 묘사한 관념들을 기반으로 중세 시대까지 (1) 묘사적 대표 또는 모방mimesis(유사한 것들이 서로를 대신한다는 의미에서), (2) 상징적 대표 또는 체현embodiment으로서의 대표(높은 자가 낮은 자를 체현), (3) 권한의 부여 또는 위임delegation으로서의 대표, 이렇게 세 가지 경쟁적 대표 개념이 진화했다(Tierney 1983). 이 세 가지 모두 당시의 신학·교회학 문헌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대표 개념 가운데 세 번째는 권력 배분에 관한 법적·정치적 문제와 가장 분명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거의 기능하지 못했으며 기성 권력, 특히 앞선 두 가지 대표 개념이 훨씬 큰 역할을 차지했던 교회 통치권 내에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 P40
14세기 말에 시작된 공의회 운동[교황보다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공의회의 권위가 더 높다는 사상을 주장한 운동]은 집단 인격론theory of group personality에 근거해 교회의 일체성은 구성원의 법인체 결성corporate association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교황 한 사람에 대한 복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교황의 권위는 부분적으로 성직에 근거했다. 이 성직은 신도들에 의해 그에게 위임되었다. 그러나 공의회주의자들은 자신을 대표해 의사 결정을 내려 줄 자기만의 대표 기관이 신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의회주의자들은 교회의 총 공의회가 교회의 통치 구조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최종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신자들의 대표 기관으로 파악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황의 이단성이나 실정 가능성으로부터 어떻게 교회를 보호하느냐 하는 것이었다(Tierney 1982). - P44.45
중세 전반에 걸쳐 의회 대표자들은 두 개의 다른 방향으로 압력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 한편으로는 의회 대표자들이 자신의 유권자들을 구속할 ‘전권‘을 지닌다는 전제가 그들을 왕권의 도구로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지역 대표성, 봉건적 의무, 집단 청원의 관례가 유권자들에게 구속력 있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그들과와 재협의해야 할 명확한 의무를 부과했다. 그 결과 대표 개념과 관련해 행동할 수 있는 권한과 협의해야 할 필요성 사이에 분열이 일어났다. - P49
(토머스) 홉스는 대표가 영국을 분열시키던 분쟁을 초월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형태의 정치가 이뤄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홉스에 의해, 대표는 국가를—어떤 국가든—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관념으로 밝혀졌다. - P61
단순한 개인의 집합으로서의 군중이 정치적인 의미에서 인민이 되려면, 마치 하나의 인격인 것처럼 대표되어야 한다. 홉스의 설명은 『리바이어던』에서뿐만 아니라 근대 정치사상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구절에 해당한다. ‘인간 다중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인격에 의해 대표될 때 하나의 인격이 된다 ……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것은 대표자의 통일성이지 피대표자의 통일성은 아니기 때문이다‘(Hobbes 1996, 114[국역본, 221쪽]). 이 사상의 중요성은 대표를 하나의 변신의 형식으로 본다는 사실에 있다. 즉 대표됨으로써 국가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 P63
그렇지만 『리바이어던』에 담긴 논리의 진정한 중요성은, 책에 이전 시대의 로마의 법 관념이나 키케로의 관념도 활용하고 원래 의회주의자들이 견지했던 대표 개념을 동원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홉스가 어느 편에 서있는지를 사전에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홉스는 의회주의자들의 사상을 전복시켰다(Skinner 2005). 대표에 관한 그의 설명은 어느 쪽이 승리해도 모순이 없었다(하지만 1660년 스튜어트 왕조의 복고 이후 홉스는 그 점을 부각하지 않는 편을 선호했다). 거기에는 진영 논리를 넘어서고, 협소한 의미의 정치도 넘어서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홉스의 관점에서 대표란 극도로 파괴적인 형태의 정치적 갈등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정치를 가능케 하는 도구였다. - P65
둘째, 홉스는 대표를 신이든, 교황이든, 아리스토텔레스든, 신성로마제국 황제든 그 어떤 더 높은 권위에도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념으로 만들었다. 홉스는 그들 모두의 정치적 권위를 파괴할 작정이었다. 그 대신 홉스는 대표를 정치적 권위 그 자체와 동격에 놓고 합리성과 평등(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모든 창조물이 공유하는 평등)이라는 세속적 관념의 토대 위에 세웠다(Pettit 2007). 대표를 일단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가능해졌다. - P65.66
홉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홉스의 대표론에서 창의적 잠재성을 봤는지 아니면, 홉스가 남에게 보여 주고 싶어 했던 것, 즉 절대주의만 봤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 P68
권력은 (존) 로크의 표현을 빌리면 인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인민이 통치자에게 신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행정관들이 인민의 동의 없이 그들의 소유물(생명, 자유, 재산)을 강제로 빼앗거나, 대표자 선출을 위해 확립한 장치를 해체 또는 방해할 때마다 심각한 신뢰 위반이 성립되어, 인민은 복종의 의무를 면제받았다. 대표의 원리라는 경로를 거친 동의의 관념은 궁극적으로 저항할 권리를 암시했다. - P70
홉스의 설명이 뛰어난 이유는 대표에 관해 그 어떤 자연스러움도 상정하지 않았고, 대표에 관한 합의가 정부에 선행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대표와 정부의 생성 그 자체를 동일시하면서, 이를 전적으로 인위적인 과정으로 이해했다. 홉스에게 ‘인공적 장치‘artifice란 훗날 이 단어가 갖게 되는 협소한 가식성의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창조성, 즉 자신을 위해 기능하는 세계를 고안해 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했다. 이런 면에서 홉스의 대표론은 좀 더 급진적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대표 개념으로 정부의 행위 능력을 제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정부의 행위 능력과 동일 선상에 놓음으로써 정치 대표자들에게 재량을 허락했다. - P71
(장 자크) 루소는 ‘의지는 결코 대표되지 않는다‘라며 의지는 그 자체이거나, 아니면 다른 것이다. 중간은 없다‘라고 적었다(Rousseau 1997, 114[국역본, 117쪽]), 홉스의 관점에서 볼 때, 인민은 대표되어야만 비로소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 루소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대표시키는 인민은 인민이 전혀 아니었다. 루소와 홉스 간에 메울 수 없는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 P73
(에드먼드) 버크는 모방 예술보다 모방이 아닌 예술을—즉 회화보다는 시를—선호했다. 왜냐하면 시적 재현은 정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좀 더 심오한 진실의 추구를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버크는 국민 정체성의 깊은 복잡성을 인정하여, 그 복잡성을 정치제도에 반영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대표제 형식을 선호했다. 버크에게 국민은 복잡하게 진화한 개체들로서 정치적 대표의 차원에서 그 본질을 복제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했다. - P85
이와 유사하게 프랑스혁명에 대한 버크의 극심한 경멸 역시 대표제에 지나칠 정도의 엄격성을 적용하려는 시도에 대한 그의 뿌리 깊은 의구심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혁명가들이 저지른 파국적 실수는 프랑스 사회에서 권력의 진정한 소재지—인민—를 반영한 헌법을 기초할 수 있다고 상상한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버크의 관점에서 이것은 사회를 개인들의 단순한 총합으로 축소함으로써 사회 그 자체의 속성을 잘못 대표[재현]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프랑스 사회의 비전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써서라도 그들의 의지를 거꾸로 인민에게 강제할 수밖에 없다. - P86.87
(막스) 베버는 근대 대표제 정치가 합리와 비합리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으며 그것이 각각 대중정당의 관료주의 조직과 국민투표형 민주적 지배자의 카리스마 속에 내장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 두 요소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낼 수도 없고,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사이이기도했다. (카를) 슈미트는 자유주의적 물질주의가 바이마르 정치를 슬금슬금 잠식한다고 보고 이에 경악하여, 대표제를 합리적 요소로부터 완전히 해방해 초기의 신학적 아우라와 지극히 인치주의적인 근원personalist roots으로 회귀시키고자 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베버가 (윌리엄) 글래드스턴에서 출발했다면, 슈미트는 결국 히틀러로 귀결되었다. - P106.107
[(조지프) 슘페터가 보기에 대표제는] 민주주의적 삶의 진짜 본성은 권력 경쟁일 뿐이라는 사실로부터 스스로를 기만하기 위해 사람들이 쓰는 표현에 불과했다. 따라서 슈미트가 민주주의를 대표제로 축소하려던 바로 그 지점에서, 슘페터는 대표 개념마저 아예 폐기 처분하기로 했던 셈이다. - P108
(알렉시 드) 토크빌이 남긴 유산의 밝은 면이 부각되느냐 어두운 면이 부각되느냐에 따라 대표제가 민주주의에 부속되는 방식은 달라지는데, 민주적 가치에 따라 재단해야 하는 실질 정치의 도구가 되거나, 아니면 민주적 독재의 진짜 본성을 감추는 데 쓰이는 본질적으로 공허한 관념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널리 쓰이는 ‘대표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좋든 싫든 정치적 대표란 민주주의라는 토대 없이는 헛것이고, 민주주의가 없으면 대표제는 그저 단어에 불과하다는 일반적 의식을 반영한다. - P110
근대 정치는 그 중심에 대표제가 자리한다는 점에서 이제껏 항상 눈에 띄게 홉스형 기획물이었음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 P111
대표의 역사를 보면 단일한 기본 모델 가운데 하나가 발전하거나 정교해져서 더욱 복잡한 버전들이 생긴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대표 개념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관념으로 탄생해, 이 개념의 기능을 명확히 이해하고자 했던 정치 이론가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 P114
타인의 행위에 내가 현존하는 것—타인이 나를 단순히 돕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행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그 사람을 나의 대표자로 부를 수 있게 하는 요소다. 결과적으로, 대표 관계에서 본인이 어떻게 대리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느냐가 항상 쟁점이 된다. - P118
대표는 정의상 부재와 현존을 동시에 수반하므로, 대리인이 하는 일을 본인이 항상 즉시 파악할 수는 없다. 제3자는 어떤 간격이 존재하든 그것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대표 행위는 언제나 불완전한 정보, 위험, 불확실성 아래에서 이뤄진다. - P122
간단히 말해 아동을 대표하는 경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대표 행위 전반에 너무 느슨하게 확대해서 표현을 혼용하면, 정치 대표자들이 자신이 대표하는 유권자들의 능력을 아동이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아는 정도의 능력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는 점을 (한나) 피트킨이 우려한 것이다. 그게 바로 홉스의 대표 개념이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피트킨은 생각했다. - P124
(제임스) 매디슨도 인식했듯, 다수결 원칙은 소수파에게 그들이 정치적 다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공정성이 의문시될 수 있다. 즉 한 차례 또는 한 가지 사안에서 패한 자가 그래도 다음 번 또는 그 다음 사안에서는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면 불신이 굳어질 위험이 크다. - P149
그보다 대표의 원리가 시사하는 것은, 다수결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표되기를 바라는 집단이라면 자신들이 영원한 소수파를 억누르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 P151
예컨대 로크는 인민이 공동체로서 행동하면서 신탁 관계를 수단으로 정부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는 특히 ‘암묵적 신탁‘ 관념을 채택해 모든 정치권력의 수탁적 속성을 강조했다. 로크가 법정 신탁 개념을 이용한 것은 공익을 도모해야 할 통치자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권력의 비대칭성 때문에 피통치자가 대표자를 지속해서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점을 조명하려는 목적도 있었다(Dunn 1984). - P157
만일 그 (회사의 고문) 변호사가 회사를 대리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패한다면, 그 궁극적인 결과를 누가 책임지는가? 회사가 진다는 것이 정답이다. 개별 주주의 책임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같은 책임의 제한이 법인화의 목적인 경우가 많다. 즉, 개별 구성원이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에 각기 개별적으로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집단의 정체성이 더 뚜렷할수록, 그 집단을 대신해서 수행된 행위에 대해 집단의 책임과 개별 구성원의 책임을 따로 구분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 - P161
확실히, 집단은 대표자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의지적으로 성취할 수 없다. 행위능력이 없는 집단은 대표자에 의해 대표되기 전에는 그런 의지를 형성할 수 없지만, 마치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대표될 수는 있다. 실제로 집단은 대표자가 바로 그 기능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즉, 대표자는 집단의 이익을 해석해야 하고, 그와 같은 해석을 통해 자신이 해당 집단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 주장은 그것이 지닌 해석적 속성 때문에, 해당 집단의 이익을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이 보기에 더욱 만족스럽게) 현존하도록 할 수 있는 다양한 대표자들의 경쟁적 주장에 도전받게 된다. 만약 경합하는 주장이 등장하면, 대표자는 해당 집단을 대표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 포괄적 집단 대표 모델에서 책임성 개념이 핵심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 P163.164
집단은 스스로 발언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대표에는 집단을 대표한다는 발언에 반박할 수 있는 일정한 수단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모든 반박은 대안적 대표 행위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집단에대한 대표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특성은 근대국가와 같은 규모의 집합체에 대한 정치적 대표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데, 이는 근대국가에서는 언제나 이처럼 서로 경합하는 주장이 존재할 것임을 의미한다. 집단을 대표해서 발언한다는 여러 주장들 사이의 경합은 서로 경쟁하는 대표자들의 자격을 평가하는 데 도움은 될수 있지만, 이 같은 평가가 이들 사이의 경합을 영구히 종식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런 집단을 대표하는 일은 언제나 [그런 경합 속에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 P164.165
실제로 오늘날 ‘쟁점 중심‘ 정치의 많은 부분이 규모가 훨씬 큰 집단들을 대신해 행동할 소규모 개인 집단의 의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때 소규모 집단은 대규모 집단과 관심[우려]을 공유하지만 참여 의지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대규모 집단과 구별된다(Stoker 2006). - P174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쟁점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극성을 보인다는 것과 관련한 핵심 사실은, 이들이 대의에 온전히 헌신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의식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 P174
정체성에 관한 본질주의적 관점은 정체성 범주들의 불안정성과 내재적 불균질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진실을 위험하게 오도한다. 이 같은 관점은 어느 정체성 집단이든, 그리고 심지어 한 개인에게도, 하나 이상의 관점들이 공존하거나 잠재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생각과 상충한다. - P180
게다가 심각한 사회적 약자 집단일 경우, 집단 구성원들이 가진 속성을 공유하는 사람만 그 집단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다고 제한하면, 그 집단이 대표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 6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 집단의 이익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더 큰 특권을 지닌 외부자가 그들을 대표하도록 허락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다. - P183
이익은 대안적 관점에 노출되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연성이 없다. - P183.184
따라서 지역별 대표를 기존의 집단 대표 모델에다 깔끔하게 끼워 맞추기 어려운 근본 이유는 (1) 유권자가 행위자로서 행동할 능력이 없고, (2) 수많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해관계를 지역이 담아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지역 대표제는 어딜 가나 여전히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결과 특히 자기 선거구에서 패한 개인 및 집단이 (하지만 패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선거구와 무관하게 그들이 동일시하는 대표자에 의존해 물질이나 가치관에 기반을 둔 이익을 증진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Mansbridge 2003). 이에 따라 우리는 형식상의 지역 대표제 내에서 개인들이 자신들에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책임지지 않는 대표자에게 동일시하는 조짐이 증가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이것은 전통적인 민주정치에서 피할 수 없는 긴장 요소 가운데 하나다. - P188.189
그러나 국가가 한 가지 특유하다고 할 만한 점은 바로 그런 모호성들을 최대한 활용할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그 점을 확실하게 시사하는 듯하다. 국가는 대표 관념을 고정하기보다는, 그 개념의 다양성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어떤 대표 모델이 국가에 가장 알맞을지 결정할 때 그 답에 그 어떤 모호성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정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어쩌면 대표의 모호성이야말로 국가가 성공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돕는 요소일 수 있다. - P194
구성원들의 집합적 결정을 통해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조차도 다수가 전체 집단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표제로 이해할 수 있다. - P196
미국에서 드러난 증거에 따르면, 흑인 의원 비율 증가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선거구를 정해 소수자 의원의 수를 늘렸더니, 소수자 유권자의 이익에 대한 의회 전체의 반응성이 사실상 약화했다(Lublin 1997). 추가적인 헌법상의 보장 없이 소수자에게 ‘그들만의‘ 대표자를 주면, 다수는 오히려 그들을 쉽게 무시할 수 있다. - P201
실제로, 작지만 고도로 조직화된 이익집단의 영향력을 우선시하는 대표제는 응집력 있는 다수파의 형성을 실질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Dahl 1971, 18-22). - P202
엘리트주의가 배제하는 것은, 정치적 대표 체계가 광범위한 대중을 거울처럼 반영하거나 통치자에게 무엇을 할지 지시할 수단을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문제는 엘리트주의가 대표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엘리트주의가 민주주의 사상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 P203
대중이 자문단의 심의 결과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들으면, 자문단의 결정을 승인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피대표자의 반대 가능성에 좌우되는 대표 행위와 피대표자가 비슷한 상황에서 취했을 행동을 흉내 내는 것으로서의 대표 행위는 매우 다르다. 근본적인 차이는 피대표자가—총선 등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표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선거전은 자문단의 조심스러운 숙고와 별로 닮은 점이 없기 때문이다. - P207
‘미학적‘ 정치 대표론의 가장 중요한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랑크 앙커스미트Frank Ankersmit가 주장한 대로 인민과 대표자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는 시도는 헛되다(Ankersmit 1997). 실제로 그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모방 형태의 동일성을 수립하려는 시도는 인민이 대표자의 행위를 성찰하고 재단할 기회를 가로막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를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대표는 인민과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인민이 [정치적 대표 체계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받아 그것을 성찰하게끔 고안되었다. - P215.216
그렇다면 각 제도(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모델과 미국의 워싱턴 모델)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은 그 제도가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에서 어디에 균형을 두는지의 반영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영국 유권자는 대표자들이 유권자를 직접 대표하지 않고 당 조직에만 충성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미국 유권자는 대표자들이 특수 이익의 포로가 되어 더 큰 그림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 P224
국가권력은 신탁, 동일성 정치, 보통 선거를 통해 획득한 권위 등 지금까지 이 책에서 논의한 수많은 다양한 대표 방식을 수용하는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앞 장에서 살펴봤듯, 다른 유형의 대표자들이 이런 국가와 경쟁하기란 어렵다. - P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