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범 중 4분의 1에서 3분의 2는 여러 건의 성폭행을 저지른다고 밝혀졌다. 살인자는 단 1퍼센트만이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된다. - P148
강간 사건의 대략 절반 정도에서만 DNA가 나온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연쇄강간범이 특정한 마스크를 쓰거나 독특한 말투를 갖고 있거나 특정한 방식의 매듭을 사용한다는 정보로 사건을 풀어가야 하며 그러한 방면에서 바이캡(Vicap)은 가장 우수하고 유일한 전국 규모의 도구다. - P149
하지만 외로운 직업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작은 경찰서에는 범죄분석가가 따로 없고 경찰서에서도 두세 명이 있을 뿐이다. (로라) 캐럴은 다른 기관의 분석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콜로라도 범죄분석가협회(Colorado Crime Analysis Association)가 여는 월례 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소박한 모임이었다. 대부분이 여성인 분석가들이 경찰서를 돌아가며 남은 회의실에 모여 전 달에 벌어진 사건을 리뷰하고 데이터의 패턴을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그녀는 협력을 통해 데이터가 강력한 수사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자각했다. "분석가로서 우리는 항상 소통하고 협력하려고 합니다. 범죄에는 국경이 없으니까요." 캐럴은 나중에 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 P150.151
페기는 정신 건강 상담 분야의 석사 학위 소지자였다. 이전에는 위탁가정 아동들의 관리자였고 지금은 노숙인 보호소에서 어린이 보호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몇 년 후 그녀는 특수 아동 보조 교사로 학교에서 일하게 된다. 집에는 DSM, 즉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이 있었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분류 체계로 종사자들이 가장 자주 참고하는 전문서적이다. 페기는 그 몇백 페이지 안에 마리의 진단명이 있다고 믿었다. 마리는 과거 지속적인 상처를 받으며 피상적인 관계만을 맺고 극적인 상황에 끌리는 일종의 성격장애가 발현된 것이다. - P154.155
(위탁모인 페기가) 아파트에 가보니 마리는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또 이상했던 건 말이죠. 내가 옆에 앉았더니 마리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기 시작하는데요. 내가 ‘로 앤 오더‘ 애청자인데 정말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죠. 마치 ‘로 앤 오더‘ 대본을 읽어주는 것 같았어요." 부분적으로는 마리가 한 말의 내용 때문이기도 했다. 왜 강간범이 하필 마리의 신발 끈으로 마리를 묶었을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신발 끈이라니, 사람을 묶기에는 너무 약하지 않을까? 왜 밧줄이나 수갑을 가져오지 않았지? 또 한편으로는 마리가 말하는 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무심했어요.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의 내용과 감정이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 P156
마리는 친구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다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나 강간당했어. 그중에는 사이가 소원해진 친구도 있었고 마리에게 못되게 군 친구들도 있었다. 마리는 이 문제를 비밀로 하거나 조심스레 취급하려 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람 몇 명에게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마리의 위탁모들인) 페기도 섀넌도 마리가 과하게 행동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건 맞지만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 모두 마리가 이 모든 일을 꾸며낸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 P158.159
섀넌은 그날 마리와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느껴지는 행동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정타는 두 사람이 저녁에 간 쇼팽이었다. 마리는 경찰이 침구를 증거로 가져가서 새 침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예전에 마리가 시트와 스프레드를 샀던 매장으로 갔고, 마리는 강간당했을 때 침대에 깔려 있던 것과 같은 침구를 찾았다. 같은 침구가 없다고 하자 마리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었지만 마리가 화를 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섀넌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굳이 똑같은 시트를 사려고 하니?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겠어? 섀넌이 마리에게 물었다. 전 그 시트가 좋단 말이에요, 마리가 말했다. 섀넌은 마리의 행동에 충격을 받아서 위기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강간 피해자의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아보려 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 P159.160
리드Reid 테크닉을 사용하는 수사관들은 자극적인 질문을 전디고 상대의 반응을 판단하도록 교육받는다. 자주 등장하는 대사는 이것이다. 당신은 이 짓을 저지른 사람이 어떤 종류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대답이 ‘글쎄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처럼 얼버무린다면 그 사람은 유죄일 확률이 높다. 신문자는 덫을 놓거나 속임수를 쓸 수도 있다. 목격자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고(‘네가 그것을 하는 걸 봤다고 하던데?), 물리적 증거가 없지만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총에서 네 지문을 찾았어.‘) 이 기법에 깔린 가정에 의하면 결백한 사람은 덫에 걸려들지 않는다. 신문자는 언어적 행동을 판단하는 법을 배운다. 확고하게 답변한다면? 신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와 ‘전형적으로‘ 같은 애매한 단어가 들어간 답변이라면? 그다지 신뢰할 수 없다. 스타카토식의 대답은 좋다. 나는/절대/하지/않았습니다. 웅얼거리는 건 거짓말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 P166
형사들은 자백이 가져올 법적 결과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다. "용의자가 진실을 말한 후에 치르게 될 대가나 부정적인 파급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부적절하다." - P167
마리의 집 현관에 같이 앉아 있던 조던은 마리의 휴대전화로 친구들과 예전 동창들의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마리는 더 심하게 울었다. 그들이 왜 전화를 걸어오는지 알았다. 그들은 애초부터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려고 전화했다. - P177
그는 강간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각각의 실수에서 하나씩 배워나갔다. 마이스페이스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여성의 프로필을 검색한 다음에 나이가 많은지 혼자 사는지 여부를 알아냈다. 그런 여자들은 쉬운 먹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81
그는 자신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교육 수준은 낮다는 걸 알았다. - P183
그는 학교(레드록스커뮤니티칼리지)의 인문학 커리큘럼에 푹 빠졌고 새로운 지식의 바다를 헤엄치는 눈 반짝이는 대학 신입생이 되었다. 역사, 인류학, 철학 등 인간의 정신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수강했다. 가톨릭 신학자인 토머스 아퀴나스를 읽고 스코틀랜드의 회의론자 데이비드 흄을 읽고, 정치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과 독일 윤리학자 임마누엘 칸트와 프랑스 실존주의자 장폴 사르트르와 미국 언어학자 놈 촘스키의 책을 읽었다. 할런 스트리트 65번지 집 작은방 책상 위에는 빽빽하게 필기된 미드사의 스프링 공책 몇 권이 굴러다녔다. 그는 심리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 P184
몇 년 후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 (멀린다) 와일딩은 자신의 수업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강의실에서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학생으로 기억한다. 커뮤니티칼리지의 철학 강의실에서는 흔치 않은, "배울 열의가 있는"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철학 수업이 그가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저 현대 철학 이론으로 포장된, 자기의 행동에서 빠져나갈 핑계 혹은 변명을 제공했던 걸까? "제 사견으로는, 그에게 융의 원형에 대한 참조는 죄책감을 전이시키는 방법이 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자신은 옳고 그름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다고 포장하려는 술책이었거나요. 여성을 사냥감으로 삼으려는 욕망, 그들의 신체뿐 아니라 공포까지 먹잇감으로 삼으려는 욕망을 실행에 옮기는 내내 말입니다." 와일딩 교수는 말한다. - P189
학비 마련은 어렵지 않았다. 군대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제대군인원호법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학기마다 퇴역군인관리국에서 등록금과 수럽료 명목으로 레드록스에 3834.35달러를 보냈다. 또 매달 집 렌트비로 1531달러 수표를 보내주었다. 주거정책에 근거해 책정된 이 금액은 그가 임대해 살고 있는 할런 스트리트 65번지의 월세보다 많았다. 그러니까 피트니스 센터 이용료도, 가끔 후터스에서 지출하는 식비도, 온라인 비디오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레프트 월정액권도 미국 정부가 비용을 대는 셈이었다. - P189.190
그는 숫자점에도 매혹되었다. 이교도의 상징 문자들로 노트를 채웠다. 보다 충실한 연구를 위해 희귀 문서를 찾아다녔다. 이집트의 신지학을 전부 담고 있는 42권짜리 ‘토트의 서(Book of Thoth)‘도 구하려 했다. 사회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해줄 현대 과학도 받아들였다. 베르트 휠도블러와 E. O. 윌슨이 곤충의 계급 체계를 연구해 집대성한 ‘초유기체‘ 같은 책이었다. 최면술도 흥미로웠다. - P203
(현장감식원) (캐서린) 엘리스에게는 빅뉴스가 있었다. 방금 레이크우드 강간 미수 사건 현장에 남은 장갑 자국과 신발 족적 자료를 받았다고 했다. 자료를 보내준 범죄분석가는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FBI 아카데미에서 2주간 연수를 받는 동안 친해진 친구 셰리 시마모토였다. 시마모토는 덴버의 법 집행기관 분석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인 블루웹 회원이기도 했다. 하필 시마모토가 그 신발 족적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완벽하게 그녀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신발광이었다. 그녀는 전 세계 한정판 운동화 수집가들에게 사랑받는, 삼선 무늬가 들어가고 조개 모양의 앞코를 가진 아디다스 슈퍼스타 다섯 켤레를 포함, 50켤레나 되는 신발을 갖고 있었다. 경찰이 되기 전에 했던 아르바이트 중에 가장 좋아했던 일은 레이디 풋 로커라는 신발 매장 일이었다. 시마모토는 수학을 전공했지만 신발에 대한 남다른 애착 덕분에 범죄분석가가 된 후에 족적 식별 전문가가 되었다. - P207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한) 릴리도 답답했다. 그녀는 원래부터 경찰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강간 미수 사건 몇 달 전 레이크우드의 경찰과 관련해서 기분 나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동네의 이웃집 고목 앞에서 종교 의식을 하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집주인이 바뀌자 새 주인은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이상한 여인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릴리에게 사유지에서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경찰이 그녀를 괴롭혔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썼다. - P212
(형사인) (에런) 하셀은 군인 집안에서 보수적인 기독교인으로 자랐다. 부친은 공군 참전 용사로 제대 후 가전제품 수리를 했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그는 오하이오주 데이튼 외곽에 있는 작은 침례교 대학인 시더빌칼리지에 진학했다. 시더빌칼리지의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신학을 부전공으로 택해야 했고 교수들은 천지창조설을 가르쳤다. 학교의 모토 또한 이 학교의 사명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예수의 월계관과 약속을 따르는 대학." - P213.214
하지만 그럼에도 하셀은 자신이 세상만사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 만큼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시더빌에서 11킬로미터 북쪽으로는 또 다른 사립대학이 있었는데,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안티오크칼리지는 전형적인 소규모 인문대학으로 민주주의와 학생 자치와 사회 정의를 교육 철학으로 삼았다. 학생들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했고 교수들은 학생들을 학점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각각의 학생들에게 긴 글을 남겨주었다. 안티오크칼리지의 모토는 이러했다. "인류애의 실현 없이 죽는 것을 부끄러워하라." 하셀은 안티오크 학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는 다르다는 게 비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 P214.215
경험을 통해 그(에런 하셀)는 잠재적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보는 건 위험하다는 사실도 배웠다. (중략) 하지만 그는 이제 형사였고 제보자들이 허위 신고로 체포될까 두려워 중요한 정보를 나누는 것을 불편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이크우드 경찰서의 고위 간부들 또한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위 신고로 입건하는 것은 지양하라고 했다. - P215
그녀(샤론 웰런)는 자기 집 바로 맞은편에 사별하고 혼자 사는 89세의 노부인 캐슬린 에스테스를 살뜰히 살피곤 했다. 어느 여름, 2010년 6월 14일 월요일의 늦은 밤, 웰런이 창문을 내다보자 에스테스 부인의 집 앞 골목 한 켠에 흰색 픽업트럭이 서 있었다. 트럭을 보자마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수리공이 다녀가기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중략) 30분 후 웰런은 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49분이었다. 트럭은 아직도 에스테스 집 앞에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전석에 한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차 안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이 번호판에 적힌 번호를 적었다. 웰런이 다시 에스테스에게 전화했고 에스테스는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 에스테스는 웰런의 남편이 적어놓은 차량번호를 말해주었다. 935-VHX. - P217.218
(다넬) 디지오시오는 불가능한 일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데 익숙했다. 그녀는 콜로라도주 그릴리 근처의 평야 지역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조용하고 안전한 마을이었다. 10대 때 배구와 농구선수로 활약했고 콜로라도주 길크레스트에서 열리는 육상 대회에서 밸리고등학교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FBI에 더 끌렸다. 덴버대학교에 입학했고 범죄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 교수는 그녀에게 FBI에 입사하려면 특수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서 통계학을 추천했다. FBI는 최근 자료 분석 분야에 투자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디지오시오는 수학에 강하지 않았다. "영어를 잘했고. 음악을 좋아하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법 집행기관에서 꼭 일해보고 싶었다. 통계를 공부해야 된다면 통계학을 공부할 것이다. "반 강제로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죠." 그러다 공부하면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통계학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알고 매혹되었다. (다음) - P219
(이어서) 그녀는 통계가 "목적이 있는 수학"이라고 했다. (중략) 2008년 그녀는 레이크우드에서 일하는, 통계학을 전공한 콜로라도의 몇 안 되는 범죄분석가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 P219.220
커클랜드 경찰서에서는 두 명의 형사 잭 키시와 오드라 웨버가 이 사건(63세 여성이 당한 주거 침입 강간 사건)을 맡았다. 이 범죄는 두 가지 면에서 굉장히 특수한 케이스였는데 범행의 잔인함도 그랬지만 확률상으로도 그러했다. "여긴 커클랜드라고요. 이런 범죄는 잘 일어나지 않는 곳입니다." 키시는 말한다. "우리끼리는 이곳을 북부의 베벌리힐스라고 부릅니다." - P234
그(잭 키시)는 가정폭력 전담 형사이자 인질 협상가로 일하며 트라우마에 관한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다릅니다. 사람들에게 인척 사망 고지를 한 적도 셀 수 없이 많아요. 그럴 때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반응이 나옵니다. 강간 피해자의 경우도,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건을 설명하는 피해자의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 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핵심 문제에 있어서는 확고합니다. 일치하지 않는 것들은 사소한 사항들입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죠" - P235.236
그(FBI 특수 요원인 조나단 그루징)는 나쁜 놈들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들의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다. 그들은 경찰을 볼 때마다, 지나가는 경찰차를 볼 때마다 피해망상에 시달리곤 한다. "나쁜 놈들은 언제나 누군가가 자신을 쫓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가 말했다. - P251
(컴퓨터 포렌식 분석가인) (존) 에번스는 (마크 패트릭) 오리어리의 책상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를 검사하다 수상한 파일을 찾았다. 다분히 자극적인 제목의 "렛치(Wretch, 쓰레기 년놈)"라는 파일로 거의 75기가바이트에 가까워 도서관 한 층의 책을 모두 다운받거나 고해상도 사진과 영상을 수만 개 저장할 수 있을 정도의 용량이었다. 그 파일은 꽁꽁 막혀 있었다. 에번스는 오리어리가 에번스 같은 전문가의 날카로운 눈으로부터 파일을 보호하기 위해 트루크립트라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했음을 발견했다. - P269
에번스는 컴퓨터 하나를 오직 렛치 해킹에만 사용했다. 그 파일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할런 스트리트 65번지에서 가져온 것 중에 가장 작은 것, 오리어리의 카메라에서 나온 두 개의 메모리 카드를 뒤져보기로 했다. 우표 크기만 한 메모리 카드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찾고 있던 증거를 찾았다. 피해자들의 사진이었다. 오리어리는 그것들을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에번스가 밝혀낸 바로는, 오리어리는 이제까지 카메라의 사진들을 렛치로 옮겨왔다. 메모리 카드 사진을 복사해 렛치에 저장한 다음 카드에 있는 사진은 모두 지웠다. 하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 사진 파일의 이름은 사라졌으나 이미지를 형성하는 전자 조각은 다른 사진으로 영원히 덮히기 전까지는 카드에 흔적이 남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철저한 강간범도 흔적, 디지털 흔적은 남겼던 것이다. - P270.271
에번스는 사진들을 넘겨보다가도 중간에 한 번씩 끊고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와야 했다. 이제까지 법 집행기관에서 25년 동안 일하면서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역겨운, 다수는 아동과 관련이 있는 포르노를 수백만 번쯤 보았다. 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그래도 익명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컴퓨터 스크린에서 그를 정면으로 보고 있는 겁에 질린 얼굴들은 그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자리에서 쭉 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는 말한다.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진짜니까. 진짜 피해자가 바로 저기 있다는 걸 아니까요." - P271
에번스는 오리어리가 삭제했다고 생각했던 파일들을 하나씩 살리는 작업을 계속 해나갔다. 몇 년 전에 찍은 사진 여덟 장도 구할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은 더 큰 폴더의 일부였지만 대부분의 이미지는 오리어리가 그 후에 더 많은 여자들을 강간하고 더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덮어씌워져 사라지고 없었다. 만약에 한 번만 더 강간을 했다면 남아 있는 여덟 장의 사진들도 같은 운명을 맞아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 P272
그녀(스테이시 갤브레이스)는 지금 자신이 타 경찰서 수사관들의 수사를 돕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저지른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실수, 형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를 공식적으로 알리게 된 것이었다. 린우드 수사 기록을 검토하면 할수록, 의심이 어떻게 싹텄고, 어떻게 퍼졌고, 마리가 취조당했을 때 어떻게 진술을 포기했고, 어떻게 합의 조건을 받아들였을지 보면 볼수록 갤브레이스는 이 사진 속 여성이 겪은 일을 상상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상상하기 힘든 것은 앞으로 린우드 경찰서에 닥치게 될 날들이었다. - P286
동료들이 일에 착수하고 메이슨은 사건에 대해 생각했다. 지난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먼저 페기의 전화가 있었다. 마리가 아파트를 바꾸어달라고 했다는 프로젝트래더 담당자의 말도 있었다. 경찰서로 다시 와주어야겠다고 말했을 때 마리의 첫 마디는 "저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였다. 각각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조각들이 맞춰지며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경찰로 산 지 20여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 직업에 적합한 사람인지 자문했다. 다른 모든 경찰들처럼 그도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죽음을 보았고 위험헤 처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잘 처신해왔다. 나쁜 일은 극복하고 현재와 앞날을 보며 살았다. (다음) - P287.288
(이어서) 이번엔 다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대답해야만 하는 그 모든 질문을 생각하던 그 순간에도 마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일을 이렇게까지 망쳐버린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자격이 있는가? 사표를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P288
린우드 경찰들은 콜로라도 기관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협력 수사를 해냈는지에 충격받았다. "협력 정신이 있었죠." (로드니) 콘하임은 말한다. 그들은 정보를 교환했다.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나누었다. "이 사람들은 서로 사로를 다 알더라고요. 커뮤니케이션이 부자연스럽다거나 어색하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워싱턴주의 린우드 경찰은 고작 25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커클랜드의 협조 요청을 무시했다. 섀넌이 제보해 두 사건이 관련 있을 거라 주장했지만 두 서의 경찰들은 직접 만나지 않았다. 전화로 오간 정보들을 기록해두지도 않았다. 두 기관의 수사 파일에는 두 기관이 접촉을 했다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 P291.292
마리는 프로젝트래더의 담당자였던 웨인에게 전화했다. 난 네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알았어. 웨인은 마리에게 말했다. 웨인의 말을 듣고 충격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마리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수많은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면 왜 그렇다고 말 안하셨어요? 왜 나를 지지해주지 않았어요? 내 담당 간사였잖아요. 그러나 그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웨인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런 식으로 기억하는 것이, 혹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은 그가 과거에 기록한 내용과는 상반되었다. 사건 일주일 후 작성된 기록에는 마리가 강간당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다. - P302
"어쩌면 제 입장에서는 부정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나 봐요. 너무 괴로워서요. 저는...... 그 모든 증거를 듣고선 사실이란 걸 알았어요. 그런데도 아직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는 게 끔찍해요. 또 내가 마리를 불신하는 데 동참했다는 점도 끔찍하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페기는 자신이 걸었던 전화, 마리의 이야기를 의심한다고 말한 그 전화 통화를 깊게 후회하며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입만 다물었다면, 경찰들이 제 할 일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나름대로 솔직하고 싶어 한 시도였는데, 제 말에 전적으로 기대게 만들어버렸어요." 그녀는 말했다. "나는 훌륭한 시민이 되려고 했었어요. 아시죠? 경찰들이 개인의 성격적 문제와 관련된 사건에 쓸데없이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더 신중했어야 해요. 아니라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피해자를 믿어야 하잖아요. 내가 저지른 실수예요. 내 실수입니다. 그 점에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 P304.305
검사와 경찰은 사실 잘 지내는 편이 아니다. 경찰이 볼 때 검사는 너무 원리원칙만 따지고 검사가 볼 때 경찰은 때로 규칙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이 사건 수사 중에는 그런 류의 갈등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갤브레이스와 (밥) 와이너는 사건 초기부터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6주간의 수사 기간 동안 수시로 통화하면서 수색 영장과 오리어리의 체포 시점 등에 관해 긴밀히 상의했다. - P308
FBI 요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와이너는 덴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성폭력과 살인 사건을 다루어왔다. 법정에서 그는 예리하고 논리적인 변론으로 피고인을 꼼짝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 검사로 통했다. 키가 크고 마르고 이마가 높고 장거리 육상선수 같은 강철 체력을 지녔다. 사실 그는 진짜 장거리 육상선수였다. 와이너는 마라톤을 즐겼다. 마라톤 훈련을 할 때면 덴버 교외 자신의 집 주변, 해발 650미터의 로키산맥의 높은 산들을 뛰기도 했다. 42세 때 그는 보스턴 마라톤을 2시간 31분 20초의 기록으로 완주하여 동 연령대 2위를 기록했다. 러닝화 회사에서 후원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달리기는 그의 머리를 맑고 명료하게 해주었다. 피해자가 당한 끔찍한 사건의 이미지를 몰아내고 다시 기소를 위한 논리 구성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다. - P310.311
수전 브라운밀러는 강간 신고에 관한 한 형법 제도는 오랜 기간 "여성들은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남성들의 가정"을 수용해왔다고 쓰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모든 법정에서 디폴트값은 언제나 의심이었다. - P313
"어떻게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들어버렸습니까?" 그녀는 자신을 강간한 남성에게 물었다. - P330
셰리 시마모토는 (강간범인) 오리어리의 어머니 뒤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 어머니가 여러 장의 종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시마모토는 그것이 그녀가 기회가 생겼을 때 발표하려고 한 진술서로, 아들의 선량한 점을 말하며 선처를 베풀어달라고 하려는 내용이라고 짐작했다. 오리어리가 자신의 범죄를 묘사할 때 시마모토는 그의 어머니가 종이를 공처럼 구겨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 P332
그루징은 생각했다. 여기에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자가 있다. 자신의 전문성을 자랑할 기회만 있으면 우쭐해하며 떠들 남자다. "당신은 연구 가치가 있는 중요한 인물이에요. 아주 완성도가 높은 괴짜 강간범이라고 할까. 우리는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그루징은 오리어리에게 제안을 했다. 어쩌면 그는 FBI의 유명한 행동분석팀의 프로파일러와 이야기할 기회는 반길지도 모른다. 오리어리는 고쳐 앉았다. "이야기할 게 많긴 하죠." 그가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교수 모드가 되어 수업에 몰입하는 학생에게 말하듯 자신의 강간 기술들을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강의했다. 그루징은 몸을 앞으로 굽히고 듣거나 메모지에 적기도 하고 가끔은 경찰 수사의 토막 정보들을 나누기도 했다. 계속 떠들게 내버려두는 건 어렵지 않았다. - P336
오리어리는 법 집행 기관들이 이 사건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흘리기도 했다. 그가 경찰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대책들을 설명했다. 그는 군대에 자신의 DNA 샘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경찰이 그 기록에 접근해 자신을 밝혀낼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유전자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결국 과학기술은 이길 수가 없으니까요." - P337
그(오리어리)는 서로 다른 지역 경찰서들끼리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각각의 범행을 다른 관할구역에서 저질렀다. "기본적으로 당신들을 내 자취로부터 떨어뜨려놓으려는 거였죠. 가능한 오랫동안." 워싱턴에서는 잘 통했다. 린우드 경찰은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만약 워싱턴에서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나는 아마 그때부터 용의자였을지도 모르죠."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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