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교토(京都)여서, 5월말쯤 되자 서서히 더워졌다. 마침 쥘부채도 없었다. 작년 여름 8월 한여름의 교토를 돌아다니다가 미야와키 바이센안(宮脇賣扇庵)에 들러서 꼭 마음에 드는 부채를 샀더랬는데, 그건 역시 그 여름 교토에서 산 이치자와 신자부로 한푸(一澤信三郎帆布)의 올리브 색 크로스백에 한 쌍처럼 꼭 넣고 다니다가 어느새 빠뜨리고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으니, 가을과 겨울의 어디쯤에서 잃어 버렸는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지만, 여름 부채의 고마움을 생각하면 무념무상하고 배은망덕한 소치가 아닐 수 없다.

 

 먼저 미야와키 바이센안을 찾아갔다. 전에 쓰던 부채는 양 끝에 검은 옻을 입해서 맘에 들었던 탓에 그런 생김의 물건들을 부산스레 펼쳤지만, 맘에 썩 드는 게 보이지 않았다. 우습게도 꼭 하나 눈에 차는 부채가 있었는데, 이미 잃어버렸던 예전의 그것이었다. 사뭇 많은 것이 바뀐 척하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교토에 80일을 머물러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 느낌이어서 차마 그 부채를 다시 살 수는 없었다. 당연하고 옳은 사실일수록 재미는 없는 법이다. 별 수 없이 매장을 나와서 예전에 <CASA BRUTUS>에서 본 사카타 분스케쇼텐(坂田文助商店)까지 털레털레 걸어갔더니, 그곳은 거의 주문 제작 방식의 고급 부채만 파는 곳이어서 역시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부채를 사고 싶은 매장 하나를 기억에 담았다면, 영 헛수고는 아니었던 셈이지만.

 

 어차피 날은 계속 더워질 테고, 쾌청한 하늘 덕에 이곳저곳 헤매기도 좋은 오후였다. 구글 맵을 보며 부채 가게들을 찾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미야와키 바이센안처럼 부채의 노포(老鋪)인 하쿠치쿠도(白竹堂) 본점 근처까지 오고서야, 두 가게가 바로 모퉁이 하나 사이라는 걸 알았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다행히 이곳에서 맘에 걸치는 물건을 만났다. 향이 그윽한 향나무 부챗살에 접으면 종이들이 모여서 도라지꽃 그림이 보이는 부채였다.

 

가와라마치 거리를 건너 다코야쿠시 거리를 서쪽으로 가 저물녘의 북적대는 신교고쿠로 들어섰다. 그녀(아카시 군)는 신교고쿠에서 데라마치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접어들어 처마 밑에 헌 여행가방과 전등이 진열된 고물상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내가 가게 한구석에서 양철 잠수함 모형 등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그 거북 수세미에 관해 알지도 모르는니시키 시장의 잡화점 이름을 알아냈다.

어안이 벙벙해서 유유낙낙 그녀를 따라가니, 그녀는 니시키 시장 서단 부근에 있는 어둡고 복작복작한 잡화점으로 들어가 주인 부부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이번에는 붓코지 거리에 면한 잡화점 주인이라면 알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해왔다.

날 저무는 시조 거리를 건너 남하하다가 붓코지 옆을 지나 이번에는 동쪽으로 걸어갔다. 시조 거리 부근과는 달리 여기는 길 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조용했다. -p.143

 

 그저 바로 옆에 있는 가게를 찾지 못한 산만함 덕분에, 교토 한 구석을 빙 둘러서 원하던 결말로 돌아왔다. 애초에 어떤 목적도 없이 그 도시의 구석구석을 걷고 싶어서 떠나왔다는 사실을 그날만큼 아삭아삭하게 곱씹은 날이 없었다. 그저 한나절 그 도시의 골목들을 둘러볼 수 있는 핑계만 있으면 그게 뭐든 좋았을 뿐이다. 그런 날이 있었다는 흔적까지 손에 남으면 더할 나위 없고 말이다. ‘스승히구치 세이타로가 원하는, 세제 없이 갖다 닿기만 해도 모든 더러움을 제거한다는 거북 수세미를 찾기 위해 화자인 와 아카시 군이 교토의 상점들을 돌아다니던 저 대목에서 여름도 돌아갈 날도 코앞이던 5월의 오후가 저절로 그려졌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제 아무리 대단한 수세미라도 여기서는 단지 두 사람이 이리저리 걷게 만드는 구실일 뿐이다.

 

 그 도시에는 슬쩍 걸어갈 만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에 크고 작은 상점과 거리들이 잘도 퍼져 있다. 그래서 거리들을 마냥 따라가다 보면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대며 지루해 하지 않고 거리의 이름을 바꿔 가며 마냥 걷게 된다. 듣도 보도 못한 수세미 하나를 찾는 두 사람의 밤 산책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올해의 봄을 온통 그곳에서 머물렀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구글 맵에서 별점이 높거나 평이 좋은 빵집을 찾느라 골목들을 게으르게 헤매곤 했으니까. 그리고 그 가게들은 하나 같이 맘에 들어서 이 빵집들을 다니면서도 시종 또 다른 가게를 찾아 눈과 발을 놀리게 만들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더 나가기 싫어지는 곳이다.

 

눈앞에는 가모 대교가 묵직하게 가로놓여 있었다. 그 난간에 예의 바르게 늘어선 전등이 주황색 불빛을 던지는 가운데, 반짝이는 차가 쉴 새 없이 오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모 대교를 걷고, 다양한 사람들이 카모 강 델타에서 꿈틀거린다. 어느 쪽을 보나 사람이 흘러넘친다. 난간의 전등도, 새하얗게 빛나는 게이한 데마치야나기 역도, 늘어선 가로등도, 멀리 하류에 보이는 시조 부근의 불빛도, 다리를 건너는 차의 전조등 불빛도 모두 보석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더니, 이윽고 부옇게 흐려졌다.

이럴 수가.

활기가 넘친다. 마치 기온 제()처럼 활기가 넘친다. -p.387~388

 

 (아마도 교토 대학의) 3학년에 접어들어 지난 2년간의 한심천만하며 구제불능인 대학 생활을 후회하는 화자의 다다미 넉 장 반짜리 하숙집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그가 자신의 캠퍼스 라이프를 파탄시킨 결정적 순간이라고 호언장담한 1학년 때의 동아리 선택으로 연거푸 되돌아간다. 4개의 동아리들이 각각 무엇인지, 그렇게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는 이 작품에서 의외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화자의 대학 생활이 사뭇 뻔뻔스레 4번이나 반복될 수 있는 것도, 또 제 아무리 기를 써도 그 시간이 완전히 뒤집히지 않은 것도 결국 그가 사는 도시가 교토였기 때문이다. 그 점이 중요하다. 이 도시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가 시간을 거스른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 고도(古都)는 그리 쉽게 바뀌거나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다. 아무리 걸어도 화자의 과거가 남긴 자질구레한 흔적 외에는 아무것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 4부의 다다미 넉 장 반이야말로 교토 자체를 은유한다고 말해도 지나친 것 같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마침 이곳에 꾸민 모리미 도미히코의 전도는 시작부터 양양했다고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는 했다. 같은 대학 출신의 주인공을 사정없이 찌고 삶고 구운 덕분에 본인의 앞길을 창창하게 만든 작가라니 그의 본색은 이 이야기 속 오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교토 대학을 중심으로 바로 북쪽의 햐쿠만벤(百万遍), 동쪽의 요시다 신사(吉田神社)와 철학의 길(哲学), 서쪽의 데마치야나기(出町柳)와 카모 강(鴨江) 델타, 그리고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와 다다스 숲()에서 펼쳐진다. 읽는 내내 봄의 절반을 나고서 기억이 아직 생생한 동네에 이야기를 덧입혀도 어색하지 않았다. 햐쿠만벤 교차로에서 스쳤던 수많은 학생 중 한 사람쯤은 저런 몽상 속에 살았을지 모른다는 이 생각이야말로 여태 교토를 헤매는 몽상이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외편집자
츠즈키 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 / 컴인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토에서 즐거워지기는 어렵지 않다. 그냥 걸으면 되니까. 거리의 상점들은 다채로우면서도 요란하지 않고, 주택들은 단정하면서도 경직되지 않았다. 이런 공간들이 모여서 길에 리듬을 주고, 그 위를 둘러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들떴다. 남루하지도 휘황하지도 않은 평범한 길거리에는 주거지와 관광지 사이의 균형감이 절묘해서, 강약의 세기를 적절히 바꿔 가며 눈과 발을 밀고 당기는 공간들의 리듬은 거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짐작하게 됐다. 마냥 떠들썩하고 거창한 상점들만 가득한 강박(强拍) 천지의 거리나, 그저 조용하고 고적한 주택들만 이어진 약박(弱拍) 일색의 거리에서는 지나칠 곳도 멈출 곳도 없어서 지루할 뿐이다.

 

 주택과 상점들 각각에 강약의 박자가 있고 그 공간들이 모여서 길거리가 된다. 그리고 그 길거리들 사이에도 저마다 선명하고 희미한 차이가 있어서, 그 거리들이 모여 하나 도시를 이룬다. 도시와 거리와 공간의 균형과 리듬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교토에 사로잡힌 이유이기도 했다. 그 도시에서 생활하는 여느 사람들의 취향을 보는 것만으로도 80일이라는 시간, 봄이라는 한 철을 머물 이유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나날이었다.

 

나는 대중매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반적이지 않은 환상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가능성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어디든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길거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p.85

 

 언젠가부터 <BRUTUS>라는 일본의 격주간지를 즐겨보게 됐다.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POPEYE>는 그보다 더 나중에 접했다. 이 책을 쓴 츠즈키 쿄이치는 한국에도 독자가 적지 않은 이 두 잡지의 초창기에 활약한 베테랑 편집자이자, 사진가이다. 이 책에서 <BRUTUS>를 창간한 후에 그 독자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들을 겨냥해서 <POPEYE>를 만들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고는, 생각지도 않게 그들의 라인업을 정확하게 따라간 것이 뒤늦게 우스웠다. ‘또 다른 가능성이 어디든 존재한다는 말은 <BRUTUS>에서 편집이라는 일을 시작한 그의 활동을 스스로 정리한 이 책의 핵심과 같다. 읽는 내내 멈출 듯 말 듯하며 내내 걸어도 좋았던 교토의 거리들이 떠오른 것은 그 덕분이다. 그곳에서 평범한 취향의 가능성이 얼마나 넓은지 비로소 납득했다. 주거와 관광 사이의 균형이 깨질수록 도시의 가능성은 밋밋해진다.

 

편집자가 작가를 만들어낸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편집자의 일은 어디까지나 막힘없이 책이 나오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48

 

 저자의 활동은 편집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단행본을 만드는 그것보다는, 한국에서는 흔히 에디터라고 따로 부르는 잡지를 만드는 그것에 좀 더 가깝다. 잡지의 특집, 연재 기사나 단행본의 기획뿐만 아니라, 집필의 개념까지 포괄하는 이 저자의 표현인취재’, 그리고 그에 맞는 사진의 촬영에 이르는 업무 전반이 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하나의 원고를 한 권의 책으로 꾸리는 데 필요한 베테랑 편집자의 노하우 같은 것은 이 책의 중심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편집에 기술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취재와 촬영까지를 편집자와 편집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그의 관점에서는 기획에서 취재와 촬영까지 거쳐 완성된 원고는 이미 완성된 책(잡지)이기 때문이다. 분명 편집자 본인이 저자의 역할을 겸하는, 예를 들어 저자처럼 잡지 편집자의 경우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의 활발한 독립출판 역시 원고를 책으로 꾸리는 별도의 편집 과정 대신, 기획, 취재와 편집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까 <TOKYO STYLE>은 분명한 나의 원점이다. 책을 만드는 데에는 도구나 기술이나 예산이 없어도 주변에서 찬성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호기심과 아이디어와 추진할 에너지만 넘치도록 있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온다. 이 책은 그런 확신을 나에게 주었다. -p.81

1%의 성공적인 만남은 별로일 거야하고 생각하면서도 유턴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p.96

 

 이런 특성상 저자는 책을 만드는 법보다는 책을 쓰는 법에 대해서 더 힘 있게 이야기하는 듯이 들린다. 그에게 책은 쓰면 이미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관점이 주어진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고 책의 형상을 부여하는,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문제에도 도움이 된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개개의 책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놓치기 쉬운, 실현 가능한 기획의 범위와 출판 시장과 매체의 변화 같은 주제를 상기하고 그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책보다도 유용하다. 결국 그는 책 밖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됐고, 분명 편집은 책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작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닌, 교정지와 책 안에서만 일하는 편집자가 보면서도 놓치기 쉬운 현실이 분명히 존재한다. 충분히 안다고 자신하고서는 잊기 쉽지만.

 

일을 그만두고 센다가야에 작은 작업실을 빌려서 자유기고가로 일하면서 사소한 계기로 교토를 오가게 되었는데, 교토는 도쿄보다 집세가 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팩스로 원고를 보냈기 때문에 딱히 도쿄에 있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교토에 연립주택을 빌려서 2년 정도 살아보기로 했다. (중략)

버블경제가 붕괴하기 전이어서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장기 프로젝트를 맡지는 않았어도 단발성 의뢰가 많이 들어와서 돈에 쫓기듯 일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만했다. 덕분에 교토대의 청강생이 되어 1년째에는 일본 건축사 수업을, 2년째에는 일본 미술사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자전거를 타고 교토대에 가서 강의를 들었고, 수업이 끝나면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그날 수업에 나왔던 신사나 불당,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1m가 넘는 큰 교토 지도를 사서 방에 붙여놓고 그날 갔던 장소에 핀을 꽂아 놓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꿈같은 시절이었다. 앞만 보며 달려왔던 내 인생에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조금씩 줄여가다가,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된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p.58

 

 4년 좀 넘게 편집자로 일했던 회사를 나와서, 봄철을 기다려 교토에 다녀왔다. 80일은 봄이 오기 직전에 들어가서 여름이 오기 직전에 돌아오기에 딱 맞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1미터가 넘는 지도에 그날 갔던 장소를 표시했다는데, 나는 구글맵에 그날 그날 가는 장소와 걸어가면서 눈에 들어온 특이한 가게들이며 건물들을 찍고 다녔다. 덕분에 이제는 교토 일대에만 구글맵은 별표로 빼곡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대목은 바로 그가 <BRUTUS>를 그만두고 교토에 머문 2년을 짧게 묘사한 곳이었다. 남의 이야기라기에는 엇비슷한 부분이 많고, 똑같다기에는 내 시절이 너무 짧았다. 마침 교토대 바로 앞 햐쿠만벤(百万遍)의 에어비앤비에서 40일을 머문 덕에 나 혼자 괜히 더 가깝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베 일족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5
모리 오가이 지음, 권태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히 나라(奈良)로 가는 길이었다. 날씨는 조금 더운가 싶었지만, 워낙 화창해서 멀리 떠나기에는 사뭇 알맞았다. 교토(京都)의 데마치야나기 역(出町柳駅)에서 산 킨테츠-케이한 일일 패스로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 나라까지 가려면 열차를 한 번이나 두 번 갈아타야 한다. 킨테츠탄바바시 역(近鉄丹波橋駅)에서 나라까지 한 번에 가는 급행열차가 있지만, 이 열차가 그리 자주 다니진 않는다. 타지 못하면 킨테츠 나라선으로 환승하는 야마토사이다이지 역(大和西大寺駅)까지 가서 한 번 더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62일에는 일단 야마토사이다이지로 가야 했다. 그런데 도중에 모모야마고료마에 역(桃山御陵前駅)에서 내렸다.

 

열어둔 거실 창문 아래쪽에 풍경을 매단 넉줄고사리가 달려 있다.*(*일본에서는 여름에 시원해 보이도록 넉줄고사리의 뿌리줄기를 여러 모양으로 엮어 처마 끝에 달아놓는다.) 풍경은 이따금 생각이라도 난 듯 은은하게 소리를 냈다. (아베 일족)-p.19

 

 서울로 돌아갈 날이 코앞이었고, 이 역의 이름에 붙은 어릉(御陵)이 메이지 천황(明治天皇)과 쇼켄 황후(昭憲皇后)의 릉을 뜻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80일간 여유만만히 교토를 둘러본 지금이 아니라면, 교토 중심부에서 멀기도 한 이 황릉까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찰나에 스쳐서 충동적으로 내렸다. 이렇게 찾아가서 맘에 든다면 아무리 멀고 번거로워도 나중에 또 올 수 있지만, 지금 가지 않으면 나중에도 올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낯설고 작은 역 바로 앞의 고코노미야(御香宮) 신사에 들렀다. 하늘은 여전히 빛났고, 바람이 어느새 제법 불어와서 유서 깊은 신사의 나무들이 목소리를 모아 노래하듯 흔들렸다. 필시 잊지 못할 소리.

 

 릉으로 가는 길은 깊고 높았다. 메이지 천황이 서거한 1912년에 심었나 싶은 거목들이 참도(參道) 양 옆에 늘어서서 속세와 격절(隔絶)된 성지(聖地)로 향하는 듯했다. 교토 곳곳에 산재한 주택가 사이의 황릉들을 처음부터 철저히 의식하고 조영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교토 안의 릉들이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공존하는 죽음의 공간이었다면, 모모야마의 메이지 천황릉은 완전히 그 대척점에 있다. 삶이 끝나고서도 또 다른 삶을 사는 신과 같이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공간에서 만인의 숭배를 받는 통치자의 존재를 과시하는 무대처럼 보였다. 극적 매력이 충만했다고 할까.

 

순사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주군을 소중히 검겼다고 해도 아무나 함부로 순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태평한 시대에 산킨의 임무를 위해 주군과 함께 에도로 길을 떠나는 것이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주군과 같이 종군을 할 수 있는 것도 주군과 같이 황천길에 길동무를 할 수 있는 것도 반드시 주군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허락 없이 죽는다면 그것은 개죽음일 뿐이다. (아베 일족)-p.14~15

 

 결국 이 릉이 메이지 천황을 드높이 모실수록, 그런 숭배가 이전까지의 전통과 얼마나 대조적인지 부각될 뿐이다. 메이지 천황의 릉이야말로 그가 일본의 역사를 벗어나, 유럽의 일부가 되고자 했던 시대의 산물이었음을 가장 선명하게 표현했다. 에도 시대의 순사 사건을 세밀히 묘파한 모리 오가이의 아베 일족을 읽으며, 아직 아련한 여행의 끝자락을 떠올린 것은 그 역시 과거에서 벗어날 길을 전통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를 강변하는 천황의 자리는 메이지 천황을 맹신하는 수단에 불과했듯이, 주군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는 순사(殉死)는 무사도의 파국을 폭로하는 상징으로만 보였다.

 

초주로(나이토 초주로모토쓰구)는 다다토시의 병이 깊어지자 은혜를 갚을 길은 순사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이 사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순사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결의가 있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당연히 순사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순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죽음의 길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거의 같은 힘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아베 일족)-p.17

 

 물론 메이지 유신과 모리 오가이가 모두 일본의 전통과 과거를 벗어나려 했더라도, 그 너머를 향한 이 둘의 의도와 목표는 판이했다. 유신이 천황을 중심으로 한 단일한 국민 국가라는 형식을 추구했다면, 오가이의 소설은 적어도 그렇게 변혁된 국가라는 형식 안에서는 개인의 삶과 의지가 존중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구현한 것이다. 이 책의 표제작인 아베 일족에서 단지 지나간 역사의 완벽한 모사가 오가이의 의도였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저 역사 속에서 충성심을 고양하기 위해, 병사한 번주(藩主)를 따라 19명의 가신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결하는 과정을 재구성했다는 단정은 역시 안이해 보인다.

 

 단지 과거의 충성심을 현재에 재현하고자 했다면, 오가이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참조했다는 아베 차사담(阿部茶事談)을 읽으면 된다. 그가 여러 무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결과보다 그들의 서로 다른 삶과 배경을 섬세하게 그려낸 데는, 그러면 어째서 이들이 결국 같은 최후를 맞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담겼다고 보는 것이 더 온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의문은 종속적인 죽음이라는 전통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에 대한 우려와 직결된다. 당장 이 소설보다 1년 앞서서(1912)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대장 부부가 메이지 천황의 서거와 함께 순사했다. 그때만 해도 일본의 여론은 이 죽음을 사뭇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이 나라는 결국 천황 숭배와 결합한 제2차 세계 대전의 폭주로 치달았다. 명목뿐인 천황과 변칙적인 쇼군의 통치라는 구체제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로서 면모를 일신하는 것만으로는 개개의 삶은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오가이는 예측했던 듯하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한없이 크고도 멀어 보였던 메이지 천황의 능이 거듭 떠올랐던 탓에 든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이 그렇게 새로운 나라로 바뀐 후에도, 에도 시대와 똑같이 통치자를 위해 목숨을 버려야만 했던 무수히 다른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면, 거대한 변혁이라는 것조차도 때로는, 실은 자주 소란한 요설에 불과할 뿐이다.

 

부모가 자식을 보아도, 늙은이가 젊은이를 보아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 앞에서는 부모든 늙은이든 굴복하기 마련이다. (기러기)-p.140

“(전략) 교토는 정말 좋은 곳입니다만, 그 나무랄 데 없는 좋은 곳에서 지금까지 제(기스케)가 겪었던 고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후략)” (다카세부네)-p.226

 

 책을 읽으며 품은 생각이 우습게도, 정작 그날의 날씨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미 사라진 천황의 무덤은 높고 깊은데다 넓기까지 해서 위에서 보나 아래서 보나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돌아갈 때가 코앞에 이르러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정경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 어쩐지 속상할 정도였다. 새로 생긴 전통을 마치 본래 천황이 누렸던 권위인양, 사뭇 가소롭게 드높인 무덤이 우습다 싶다가도, 그 높은 계단을 다시 돌아보니 마치 푸른 하늘에서 내려온 듯해 이내 경이로웠다. 돌아와서 이 소설들이나마 읽지 않았다면, 그 기억은 지나치게 아름답게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스친 덕분에 너무도 우연히 메이지 천황의 릉까지 털레털레 다녀왔다. 고등어된장조림이 싫었던 기러기속 화자의 반찬 투정 탓에 자신만을 기다리며 얼굴에 빛을 냈던 오타마와의 만남을 가뭇없이 놓쳐 버렸던 오카다에 비춰 보면, 한순간에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지는 삶의 단면들이 얼마나 많을지 새삼 아득해진다. 물론 이 사실을 안다 한들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 그래서 또한 아름답다. 오타마, 이름 모를 화자, 오카다, 스에조, 이시하라의 시간과 우연들이 겹치고 스쳐서 이른 결과가, 가장 간절했던 두 사람의 막막한 무연(無緣)이라니, 가볍고도 무거운 이야기라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하여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2
에두아르트 한슬리크 지음, 이미경 옮김 / 책세상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한국 최초의 장편 에니메이션 홍길동의 신동헌 감독이 별세했다. 그는 서양 고전 음악의 애호가로도 명성이 높아서, 그에 관한 책도 몇 권 쓴 바가 있다.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때도, 그의 책 음악가를 알면 클래식이 들린다를 읽었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바그너를 추종했던 브루크너를 거세게 비판했던 음악 평론가로 언급됐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바그너의 스승격인 리스트의 작품들을 즐기게 되면서, 한슬리크의 이름도 종종 접하게 됐다. 리스트와 교향시와 바그너의 악극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표제 음악의 조류와 대립했던 절대 음악의 수호자가 바로 그였다.

 

 리스트의 방향에서만 접근한 탓이 크겠지만, 그동안 바라본 한슬리크는 항상 완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옹호했던 브람스의 치밀하고 견고한 작품들도 언제부터인가 자주 듣게 됐지만, 그보다 더 맘에 내키는 쪽은 언제나 리스트의 곡들이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화려한 선율들을 피아노 한 대 위에서 현란하게 재구성한 리스트의 편곡 작품들이야말로 언제 들어도 놀랍고 달콤했다. 한슬리크는 음악은 문학 혹은 가사나 감정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주장했지만, 바로 그 힘을 빌린 까닭에 리스트의 음악에 매혹됐던 것이다.

 

우리가 음악적인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감정 표현 가능성이 언젠가 음 예술의 미적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설사 음악에서 정확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음악에서의 아름다움은 감정표현의 정확성과 같은 것이 아니다. -p.65

 

 그래도 결국 그의 이 책을 사고, 또 한참 시간이 지나서 결국 읽게 된 것은 그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은 그 자체로 온전하다는 한슬리크의 훈계를 의식해 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 책 속의 그는 여전히 완고했다. 이제 다시 이렇게 그의 논변을 듣는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들었다. 앞으로도 음악 자체를 위해 음악을 듣는 일은 없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음악이 한슬리크의 말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내 감정을 지탱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어서다. 다만 이 선율들이 창작된 목적이나 구성된 법칙은 듣는 자의 감정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다.

 

회화, 교회 건축, 희곡 작품을 수프를 떠먹듯 그렇게 감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리아는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예술 감상도 액세서리 같은 역할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음악 작품도 식사 음악으로 연주될 수 있고 꿩고기의 소화를 도울 수 있다. 음악은 가장 뻔뻔한 예술이면서 동시에 가장 겸손한 예술이다. 우리 집 앞에서 계속 징징대는 [뻔뻔한] 손풍금 소리는 들어야 하지만 멘델스존의 교향곡조차 [겸손하게도] 꼭 들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p.138

 

 한슬리크의 비유를 빌리자면, 난 음악에게 계속 겸손함만을 강요하는 쪽에 가깝다. 꼭 들을 필요는 없는 음악을 내가 들어주는 까닭에, 그 내부의 원리까지는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야말로 특별히 주시하지 않아도 일상과 공존할 수 있는 드문 예술이다. 그런 음악을 시간을 장식하는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이 작품들의 가치를 경시하는 태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집 안에서 내가 원하는 선율들을 들어야만, 집 밖에서 들을 수밖에 없는 뻔뻔한 소음들을 잊을 수 있다. 집에 오자마자 트는 음악들은 일종의 결계와도 같다. 역시 태만하지만, 알 필요는 없더라도 들을 필요가 남는다.

 

어떤 음악 작품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내거나 그 특징을 밝혀내거나 혹은 해설하는 것 등은 모두 비유적이거나 아니면 허구적이다. 다른 모든 예술에서는 설명에 해당하는 것도 음 예술에서는 이미 은유가 된다. -p.81

 

 지난해에 아쿠타가와 야스시의 음악의 기초를 읽고 적었듯, 음악을 배우며 들을 의지는 여전히 미미하다. 이 책에서도 음악 밖에는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단서도 없다는 한슬리크의 완고함이 역시 거부감을 초래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제는 작곡가들이 청자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유도할 목적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좀 더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밖의 작품을 푸는 실마리가 내 안에만 있다고 믿는 것은 억지다. 듣지 않을 길이라도 그 방향만큼은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길로 더 깊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든, 언젠가 그 길로 걸어갈 때를 위해서든 생각의 이정표는 꽂아 두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티그루 소령의 마지막 사랑
헬렌 사이먼슨 지음, 윤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꺼워도 금방 읽을 것이라 생각하고 집었던 책인데,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책을 읽는 속도가 많이 느려진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호흡이 미친 영향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60은 넘긴 영국 육군의 퇴역 소령과 같은 동네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파키스탄 혈통의 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그들의 작은 마을 에지컴세인트메리를 산책하는 걸음 마냥 완만한 템포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계속 걸을 길이기 때문이다.

 

거트루드는 영리한 아이라고 했잖아, 퍼거슨.” 대거넘이 말했다. “내 누이인 이애의 엄마는 대단한 여자였지. 나만큼 그애를 사랑한 사람은 없어.” 그는 냅킨으로 눈가를 두드렸다. 소령은 이런 말은 예상도 못했다. 메이 대거넘은 새파랗게 젊은 가수와 달아난 뒤 가족에게 거의 의절당한 것으로 마을에 알려져 있었다. -p.320

 

 이야기에 큰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 인종과 배경이 다른 두 노인의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체면과 시선에 퍽 연연하는 어니스트 페티그루 소령은 시종일관 그 감정이 남들의 입질에 오르지 않도록 하는 데, 자신의 연정만큼이나 큰 기력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가게를 함께 꾸리던 파키스탄 인 남편과 사별한 재스미나 알리 역시 소령의 그런 태도를 관대하게 이해한다. 게다가 그들의 연애를 훼방 놓을 소읍(小邑)의 영국인들 역시, 타인의 사생활을 두고 험담을 나눌 때조차 자신의 평판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이 소설의 화자가 바라보는 이야기의 표면에서는 두 사람의 애정을 손가락질하는 자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짓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 양식이 있고, 동시에 그럼에도 그것을 수군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비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마을의 목사와 그 사모를 비롯해 소령의 오랜 지인들의 뒷공론이 오래도록 이어지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사랑에 빠진 퇴역 소령이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빠져 나왔을 뿐이다.

 

모자걸이 옆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맞아줄 여신이 필요했거든요.” 앨마가 말했다. “그리고 미시즈 알리는 순수한 인도인, 아니면 적어도 파키스탄인이잖아요.”

사실 난 케임브리지 출신이에요.” 미시즈 알리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립병원 3병동 출신이죠. 와이트 섬보다 멀리 가본 적도 없고요.” -p.224~225

 

 물론 이 소설 속의 사람들이 마냥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은 충분히 교양 있다고 자부하는 에지컴세인트메리의 사람들이 그나마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무굴 제국을 주제로 골프클럽의 댄스파티를 연다면서 파키스탄 출신인 미시즈 알리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소읍의 영국인들에게 부족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잘 보여 준다. 타인의 정체성을 향해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반성과 분별이 필요하다.

 

 이런 장면이야말로 미시즈 알리와 페티그루 소령의 사랑이 이 작은 동네에서 결코 따뜻하고 쉬울 수만은 없으리라는 너무나 명확한 단서이다. 이 단면을 두 사람의 미래에 놓인 걸림돌로 확장시키지 않은 까닭에 이 소설은 비좁고 짜증날 때도 있지만, 동시에 온기를 품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 사람들의 턱없이 교만한 올바름은 그들과 함께 살아온 페티그루 소령의 일부이기도 했다. 페티그루 소령은 미시즈 알리에 빠져들면서, 비로소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남김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미시즈 알리의 눈앞에서 그는 숨을 곳이 없었고, 숨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수조에 빠뜨려 죽였지.”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서 바늘 끝으로 잔디밭에 원을 그렸다. “난 봤어. 아버지가 한 손으로 어머니를 수조에 밀어넣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걸. 아버지는 어머니를 정말 사랑했거든. 어머니는 카펫과 구리 솥을 팔러 온 남자와 웃었고, 우리 할머니의 가장 좋은 찻잔에 차를 담아 자기 손으로 직접 건넸지.” 그녀가 다시 일어섰다. “난 항상 아버지와 아버지의 희생이 자랑스러웠어.” p.481~482

 

 이 작품에는 미시즈 알리의 시집 조카이고 그의 가게를 물려받은 압둘 와힛과 그의 애인 아미나, 두 사람 사이에서 탄생한 아들 조지도 등장한다.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한 두 사람을 둘러싼 갈등은 이 작품에서 그나마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다. 파키스탄 혈통의 이슬람 신자인 이들의 종교적, 개인적 완고함뿐만 아니라, 그들이 영국의 작은 동네에서 눈에 띄는 존재라는 사실까지 겹쳐서 그들의 사건은 이야기 속에서 더 눈에 띈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고 이슬람의 교리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압둘 와힛과 아미나의 혼인을 반대했던 압둘 와힛의 외고모할머니가 말하는 명예 살인의 과거사는, 사실상 에지컴세인트메리의 사람들이 입으로 내놓지 않는 파키스탄이며 인도에 대한 가장 어두운 인상을 스스로 증명한다.

 

 압둘 와힛이 아미나를 사랑하면서도 가문의 명예와 종교의 교리에 얽매여서 결혼을 회피하는 태도의 근원으로 명예 살인을 제시하는 흐름은 일견 태만하기도 하며, 또한 이민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악한 풍습이 아직까지도 정당화되거나 박멸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민자이자 소수자라는 다양성의 범주에 앞서서 인간으로서 범해서는 안 되는 행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훨씬 중대한 까닭에, 적절한 전개라고 보았다. 노인들의 사랑인 동시에 다수자와 소수자의 결합인 이 이야기가, 명예살인을 마치 오래 전 끝난 전설처럼 다루지 않은 덕분에 미시즈 알리와 페티그루 소령의 애정 역시 허공을 맴돌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