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을 자유 - 우리가 잃어버린 고요함을 찾아서 테드북스 TED Books 6
피코 아이어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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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코언이 내게 보여준 것처럼, 아무데도 가지 않기는 금욕이라기보다 자신의 감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다. -24쪽

나는 그 산(샌게이브리얼 산맥)에서, 고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지속적인 명료함과 분별력, 환희에 대해 이야기하는 셈이라는 깨우침을 얻었다. -24~25쪽

내 나이 스물아홉 살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삶을 손에 넣었다. 타임스스퀘어에서 네 블록 떨어진, 미드타운 맨해튼에 있는 건물 25층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아파트는 파크 애비뉴에서 갈라진 20번가에 있었다. 동료들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에 대해 ‘타임’에 글을 썼으니, 정말 환상적이었다. -28쪽

결국 나는 꿈같은 생활을 떠나, 과거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의 뒷골목에 있는 작은 단칸방에서 1년간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뉴욕에서 활동의 성취와 자극을 실컷 맛보았으니, 이제 좀더 단순한 것을 섭취해 인생의 균형을 맞추고, 내 기쁨이 좀더 내면으로 향하고 오래 지속되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29쪽

2000년도 더 전에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다시피,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다. -32쪽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경험이 의미를 획득하고 내 자아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일어난다. 집에 가만히 앉아, 내가 본 것들을 오래 지속되는 통찰력에 차곡차곡 담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은 내 것이 된다. -33쪽

‘정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동動’이야말로 가장 풍성한 감각을 이끌어낸다. -35쪽

천국이란 게 있다면, 다른 곳을 떠올리지 않게 만드는 바로 그곳이리라. -36쪽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수도사들이 불쑥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진짜 삶의 느낌을, 다시 말해 쉼 없이 변하는 생각 뒤에서 변하지 않고 오롯이 버티는 것을 찾아내려면 발견하지 말고 기억을 더듬으라고. 정말 그랬다. -37쪽

피정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면 내 생각이나 야망을, 다시 말해서 나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38쪽

‘아무데도 가지 않기’로 여행을 떠나면 그 여정이 어디에서 어떻게 끝이 날지 짐작할 수 없고 길은 한없이 이어질 텐데, 당신이 그 여정에서 보게 될 것이 무언지는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여행의 미덕이다. -39쪽

글쟁이들은 직업이 직업인지라 아무데도 가지 않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창작력은 세상에 나가 인상을 수집하는 시간이 아니라 명상하듯 가만히 앉아서 수집한 인상들을 문장으로 바꾸는 데서 생겨난다. 그러니 우리의 일은 ‘동’으로 진행되는 삶을 ‘정’으로,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은 우리의 일터이자 전장이기도 하다. -42쪽

우리가 아무데도 가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 즉 우리 삶의 풍경은 아마 이럴 것이다. 비슷비슷해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이더라도 항상 새로운 색채와 풍경,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으리라. -51쪽

샌퀜틴에서 뉴델리에 이르기까지, 감금된 사람들은 명상을 배운다. 명상을 해야만 그들은 갇힌 곳에도 자유로운 지점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54쪽

예전에 나는 앨버타 산속으로 들어가 어느 오두막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내게는 자신의 집을 거의 떠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편지들만이 벗이 되어주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열정이 어찌나 강렬한지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에서 받은 인상은 강렬했지만 새장에 갇힌 것처럼 갑갑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들은 보석함에 든 폭발물이었다. -55쪽

설령 당신이 직접 목적지를 ‘아무데도 가지 않기’로 정했다고 해도 이 결정이 두려워질 수 있다. 그곳에는 숨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머릿속에만 틀어박혀 있다가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계속 집에만 있으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악마와 단둘이 갇힌 채, 생각이라는 덫에 걸려 밖으로 나가거나 의지력을 그러모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무력해질 수도 있다. -57쪽

고요를 추구하는 삶은 때로는 예술이 아니라 의심이나 포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누군가는 빛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정작 수많은 긴긴 밤을 어둠 속에서 홀로 보내기를 서슴지 않을 수도 있다. 수도원을 찾아가면서, 그런 곳을 찾는 일이 너무나 간단히 도피로 변질되거나 혹은 오래 가지 않을 열병의 고통 속에서 경솔하게 내린 결정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고요’와의 로맨스를 갓 키우기 시작할 즈음에는 그후 닥쳐올 고된 시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 -57쪽

달변의 수도사였던 토머스 머튼은 이렇게 말했다. ˝사색의 길은 길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 누군가 그 길을 따라가 뭔가를 발견한다고 해도 그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사실 명상의 법칙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당신이 좋은 생각을 얻고자, 나아가 행복을 찾고자 그곳으로 들어간다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어떤 의미에서, 포기하지 않고서는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주장이다. 선문답처럼 쉽사리 이해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충고의 가르침을 이해했다. 누구라도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당장 손에 넣지 못한 것들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당장 곁에 있는 것들은 아무 가치도 없어 보일 테고 말이다. -58~59쪽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이 쓴 유명한 글이 있다. ˝사람들의 불행은 전부 한 가지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 사실이란, 사람들은 도무지 방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중략) 교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무턱대고 아무거나 하지 마. 가만히 좀 앉아 있어.˝ -68~69쪽

게다가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가 늘어날수록 그 정보를 하나하나 처리할 시간이 줄어든다. 기술이 우리에게 절대 해줄 수 없는 일이 있다. 기술은 기술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을 귀띔해주지 않는다. -69쪽

참선을 이익에 비유하자면, 그것은 분명 금리는 매우 높지만 장기간에 걸쳐 수익을 받는 무형의 통장에 적립되어 있고, 부득이한 순간에만 꺼내 쓸 수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령, 의사가 당신의 병실로 들어와 침통하게 고개를 젓거나 당신의 차 앞으로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드는 순간 말이다. -76쪽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장소는, 한동안 만나지 않은 친구를 금세 알아보듯 종종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마치 이미 아는 곳으로 돌아가듯이 익숙한 감정에 휩싸여 다가간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썼다. ˝어떤 이는 교회에 가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킨다. 나는 집에 머무르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킨다.˝ -88~89쪽

˝사색하는 삶의 기이한 법칙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그저 앉아서 고민해봤자 문제의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만히 내버려두면 언젠가 저절로 해결된다. 혹은 언젠가 삶이 당신을 대신해 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사색하는 삶의 권위 있는 탐험가 중 한 명인 토머스 머튼의 말이다. -95쪽

물론 소동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여인의 임종을 지키는 것이든 설탕이 범벅된 도넛에서 몸을 돌리는 것이든,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그러모아야 한다. -96~97쪽

어쨌든 우리 중에 일상에서 자주 혹은 장기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러므로 ‘아무데도 가지 않기’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당일치기로 여행을 가거나, 낚시를 가거나, 매일 아침 30분 동안(이 정도면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중 고작 3퍼센트에 불과하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 고요에 도달한다는 것은, 굳이 성소나 산꼭대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고요함을 활동에, 이 번잡한 세상에 가져오는 것이다. -97~98쪽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가는 것보다 더 활기찬 일은 없으리라.
산만함의 시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호화로운 기분이 드는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으리라.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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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8-26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인용문들을 보니 저도 읽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 더운 여름 잘 지내시나요??

로렌초의시종 2017-08-26 22:59   좋아요 1 | URL
네. 그럭저럭 올해도 무사히 넘긴 것 같아서 다행스럽네요. 잘 지내셨죠? 책은 분량이 소략하지만 정성스러운 글이어서 한번쯤 보실 법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