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터는 단 한 가지 방법 블랙 로맨스 클럽
앨리 카터 지음, 곽미주.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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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시작은 다소 어수선하다. 미술관을 턴다더니 시작은 퍽 대단해 보이는 사립학교이고, 주인공으로 보이는 카타리나() 비숍은 자신이 학교에서 사고를 치지 않았다고 선도 위원회 비슷한 자리에서 항변을 하면서도, 딱히 그 학교에 애착이 있어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단지 자신의 소행이었다고 인정하기에는, 야밤에 교장의 포르쉐를 교정 분수에 처박아 버린 사건 자체가 허술해 보여서 불편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자신을 범인으로 겨냥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 수작에 아무 의심 없이 놀아나는 학교 구성원들을 한심해 하고 있는 캣을 보고 있으니, 앞으로 이 누명을 벗는 것이 이 이야기의 내용일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대통령에 연방 대법관까지 다녔다는 그 대단한 학교 콜건에 입학하거나 재학하는 과정은 온 데 간 데 없이 그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하고 있으니까.

 

 물론 당연히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캣이 학교에서 쫓겨난 이유도 밝혀지지만, 그건 저질러 놓은 발단의 정리일 뿐이다. 거칠게 줄여 본다면, 솜씨 좋고 뿌리 깊은 도둑 집안의 한 사람인 15세의 카타리나() 비숍이 그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라는 헨리에서 5점의 그림을 털기 위해, 캣은 학교에서 나와야만 했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인물 아르투로 타코네가, 캣의 아버지 바비 비숍이 자신이 소장하던 5점의 걸작 회화를 훔쳤다며, 2주 안에 돌려주지 않으면 보복하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저지를 수밖에 없게 된 사건이다. 도둑이 생업이 되고 나면, 자신이 훔치지 않은 것도 훔친 사람이 되기가 너무나 쉽고, 한술 더 떠서 이미 남이 훔친 걸, 다시 대신 훔쳐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일까지 생긴다는 역설을 이렇게 가볍게 배우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캣은 다짜고짜 타코네의 그림을 대신훔쳐 주기 위해 미술관으로 돌진하지 않는다. 캣도 바비도 훔치지 않은 그림을 실제로 타코네에게서 훔친 사람은 누구인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훔쳤는지, 도난당한 그림은 누가 그린 어떤 그림인지, 그리고 그 그림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는지까지 알아내기 위해 겨우 2주 동안 라스베이거스에서 바르샤바에 이르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여정이 사뭇 현란하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듯 대서양 사이의 곳곳을 돌아다니는 전개는, 장르의 성격을 충분히 살리는 작가 나름의 설득력 있는 장치로 보였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틈틈이 함께 위대한 일을 이룰, 비슷한 10대의 동료들까지 모아서 계획은 마침내 점점 정교해지고, 실행의 날에 이른다.

 

최고의 거짓말쟁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정직한 사람에게는 사기 칠 수 없다. 그런데도 만약에 친다면......

누구든 후회하게 될 것이다. -p.213

기묘한 일은 겨울의 길목에 일어나기 쉽다. 중간 이상 가는 도둑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사기 치기 제일 좋은 때는 날씨가 변해야 하는데 안 변할 때라고 말해 줄 것이다. 사람들은 운이 좋다고 느낀다. 목표물들은 조심성이 없어진다. 하늘을 보고 저 위 어딘가 눈이 있는데, 아마 대자연이 어떻게 속아 넘어갔나 보다고 믿는다. 점점 더 많은 것을 겪지 않고 슬쩍 피하면서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캣이 이 이론을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있었다면, 헤일과 5번가를 거닐면서 메디슨 스퀘어 공원 주위를 힐긋 둘러보기만 하면 됐다. 태양은 따스했지만 바람은 차가웠고, 아이들은 모자나 스카프 없이 뛰어놀았다. -p.61

 

 도둑들의 이야기답게 사기와 기만에 대한 문장이 많고, 신뢰와 불신의 경계는 없다. 거짓말이 참말 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나오고, 또 그 말이 통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범죄 소설이 아닌 까닭에 알리바이와 인과 관계가 정확하게 조합되지 않더라도, 범죄가 피어날 어렴풋한 조짐과 그래도 넘어서는 안 될 금기는 도리어 명료하게 드러난다. “날씨가 변해야 하는 데 안 변할 때”(p.61) 경계했기에 오히련 이완된 그 마음의 빈틈을 노려 사기를 치기 쉽다는 묘사는 범죄 자체의 사실성과 성패에 집중하는 장르에서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 공산이 크다. 범죄를 일으키는 심리와 그것에 넘어가는 분위기를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깊게 짚어 가는 서술이 이야기의 흐름과 잘 어울려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사기 칠 수 없다.”(p.213)는 문장은 반대로, 사기꾼은 어떤 인간에게 마음 놓고 사기 칠 수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자연스럽게 우회해서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기만하는 자들이 결국 사기에 넘어간다는 지적을 한 셈이다. 범죄를 둘러싼 흐름이 사건만큼이나 섬세하게 다뤄질 수 있는 영어덜트(YA)물에 잘 어울리는 작가의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캣의 일행이 되찾은 5점의 그림에 숨겨진 사연에 대한 부분은 다소 식상했다. 애초에 이 책의 주 독자층이 아닌 까닭에, 이미 적잖게 접한 주제인 까닭도 있겠지만 그림들이 약탈된 배경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지 않았을 뿐더러, 캣이 그 작품들을 훔쳐야만 하는 이유와도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저 그 그림들을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처리하기 위한 장치로 역사적 사실을 소모한 인상이 들었다. 그저 재치 있고 영민한 10대 도둑들의 이야기 이상으로 보였으면 하는 의도가, 오히려 이야기에 불필요하고 경박한 구석을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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