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 해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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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올해는 영화를 자주 볼 운수인가 보다. 한창 영화에 빠져 지냈던 때는 대학교에 다니던 2004~2007년이었다. 살고 있던 기숙사가 방배동이어서, 메가박스가 있는 삼성역이 가까운 덕분이기도 했다. 주말이면 조조 영화를 보는 게 나름의 일상이었다.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영화와 멀어질 줄은 몰랐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게을러져서영화를 덜 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평일에는 그저 퇴근이 급하고, 주말에는 오직 잠이 중해서 더 이상 전처럼 영화를 보지 않게 된 거라고. 작년에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던 인사이드 아웃과 그저 흥미로운 영화였던 검은 사제들2번씩 볼 때만 해도 그렇게 여겼다.

 

 생각이 바뀐 것은 캐롤2번 보고 나서였다. 그동안 보고 싶은, 볼 만한 영화가 없었을 뿐이었다. 또 이제는 그저 아무 영화나 보기에는 집에서 음악 듣고 책 읽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아무 사람이나 만나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아마 캐롤과 테레즈도 자신의, 그리고 서로의 삶을 그렇게 여겼으리라. 하잘 것 없는 인간들에게 얽매이기에도, 더할 나위없는 사람과 함께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아마 앞으로도 영화를 예전만큼 자주 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봐야만 하는 작품을 놓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개봉 직전까지 존재도 몰랐던 이 영화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보고 나와 한숨을 쉬니 그런 예감이 들었다.

 

미국은 대부분 중산층을 상대하는 서비스 경제지만, 맨해튼의 판매사원들은 도시의 상류 부르주아들과 고급품을 사기 위해서 도시로 운전해 들어오는 교외 지역 거주자들을 상대한다. -p.234

 

 캐롤은 뉴욕 교외의 번듯한 저택에 살고, 테레즈는 뉴욕 시내의 아담한 방에 산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시내의 프랑켄버그(Frankenberg) 백화점이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뉴욕의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의 경험에서 이 작품이 비롯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캐롤과 테레즈는 자연스러운 사랑은 뉴욕 도심의 보편적인 흐름 속에서 시작된 셈이다. 테레즈가 캐롤의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갈 때 테레즈의 애인이 너무 먼 동네라며 괜한 걱정을 하고, 캐롤 대신 밖에 나가서 담배를 사오겠다는 테레즈에게 이 동네가 어딘 줄 알고 나가겠다는 거냐며 캐롤이 괜한 역정을 부리거나, 캐롤이 태워다 준 역에서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동안 테레즈가 눈물을 참지 않는 장면에서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짐작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서로 다른 영역에 머물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캐롤의 배경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었던 도시의 교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가오는 사람이 많아도 쉬이 그들과 섞이려 들지 않을 듯한 캐롤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그가 뉴욕 교외의 널찍한 집에 산다는 것은 별반 이상하지 않지만, 그렇게 교외의 삶을 택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이 책의 저자는 지적한다. 미국 정부가 지금까지 꾸준히 중, 상류층 시민들의 교외 이주를 장려, 촉진해 온 결과, 도시들의 장점이 약화되고, 국가적으로도 자원의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질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세계적으로도 환경 파괴의 원인까지 될 수 있다는 데까지 자연스럽게 문제의 범위가 확대된다.

 

아무리 매력적인 메트로폴리스라도 주택을 추가로 짓지 않을 경우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과 도시가 갖는 실질적인 이점이 사라지면서 부티크 도시처럼 변할 위험이 크다. -p.244

 

 물론 도시의 교외 확장 내지는 이전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도시의 가치와 기능에 대한 그의 낙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도시에서 다양한 능력과 취향의 사람들이 서로 인접해 거주하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교류되고 그 과정에서 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발상이 도출, 형성됨으로써 인류의 삶과 사회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제한다. 그런 까닭에 중, 상류 계층이 도심을 벗어나 교외에 자신들만의 구역을 형성하는 흐름은 장기적으로는 도시와 국가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저자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의 중심부에 더 높고, 더 많은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경우에, 정부는 접근성과 경제성이 뛰어난 뉴욕 등의 도심에서 경관 유지와 역사적 가치를 이유로 건물 신축과 증개축을 막거나,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후의 캘리포니아 해안 지대에서 자연 보호를 명분으로 건물 신축을 극히 제한함으로써 주택 공급을 위축시킨다. 또한 주택 구입을 위한 모기지 대출의 이자를 세금에서 공제해 주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교외 이주를 더욱 촉진한다. 교외로 이주할 여력이 있는 시민들에게도 신축 주택이 적은 탓에 감당이 어려운 도심의 주택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학업 능력이 부진한 저소득 계층의 아이들과 자신의 자녀들이 함께 배워야만 하는 공립 교육 시스템을 회피해 비슷한 배경과 능력의 아이들만 모인 학교에 진학시키려는 이주 동기가 있다.

 

일반 시민들은 그들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시청의 도시 계획 수립자들보다 강력한 발언권을 가져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이 갖는 커뮤니티 통제권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지역 커뮤니티들은 건축 금지로 인해서 시 전역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p.293

 

 현재 미국의 도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를 교외화 현상으로 파악하고, 그 원인을 도심의 주택 부족과 일률적인 공립 교육 시스템으로 파악한 까닭에, 그에 대한 저자의 대안 역시 명료하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타당하지만은 않다. 도심의 건물 신축 억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위의 문장이 단적인 예다. 시청의 공무원들보다 일반 시민들이 주변의 일에 강력한 발언권을 가져야만 하지만, 이 시민들은 시 전역의 일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거주 지역을 지나치게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 전체를 바라보는 공무원과 거주 지역을 이해하는 일반 시민 모두가 주택, 사무 공간의 신축을 지나치게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도를 이해하더라도, 어느 쪽에도 우선권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결국 주민과 정부 모두의 관점은 불완전하다는 주장 아래, 토지와 건물을 매입해 새로 지으려는 자본, 더 나아가서 신축 건물에 입주할 기업과 개인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도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교실이건 마그넷 스쿨(Magnet school: 영재 교육 프로그램)이건 수준에 따라서 학생들을 그룹으로 묶으면 도시의 공립학교 교육은 똑똑한 아이들을 둔 부모들에게 더욱 매력적이 될 것이다. 이런 방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가난한 아이들로부터 좋은 동료들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들의 말이 맞다. 그러나 그러한 좋은 동료들이 (더 나은 학교가 있는) 교외 지역으로 도망가서 가난한 학생들이 그들을 잃게 된다면 차라리 부유한 가족들을 도시에 머물게 하는 게 더 낫다. -p.454~455

 

 반면에 시민들의 교외 이주를 부추기는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교육 문제에 대한 해답은 냉정하면서도, 명쾌하다. 학업이 부진한 학생들과 우수한 학생들이 분리되는 한계가 있더라도 수준별 교육을 도입해서, 적어도 같은 학교, 지역에 서로 다른 계층의 가족들이 잇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도심의 공립학교를 활성화시키려는 시도가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적 여력이 있는 중, 상류 계층의 학생들이 아예 교외 지역의 학교로 집중되어, 도심에는 여력이 없는 저소득 계층의 학업이 부진한 학생들만 잔류하는 형태가 더 우월한 상태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일단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 하고, 거기서부터 문제가 해결된다는 저자의 관점은 확고하다. 다양성과 인접성이야말로 도시의 핵심이다.

 

나도 같은 부류에 속하지만, 오늘날 아시아인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설득하고 있는 에너지에 미친 미국인들은 매우 위선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 저명한 경제학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SUV 운전자들의 나라가 자전거 운전자들의 나라에게 모페드(모터 달린 자전거)를 몰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과 같다˝라고 꼬집었다. 나의 어색한 교외 생활은 분명 친환경적 모델은 아니다. 서양이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도덕적 권위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부터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p.387~388

 

 이 책에서 도시의 순기능으로 강조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환경 보호다. 도심에 최대한 높고 많은 건물을 지을수록, 도시 밖의 환경을 파괴하며 건물을 지을 필요가 적어진다. 뿐만 아니라, 도심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수록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며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양도 줄어든다. 저자는 어쩔 수 없이 교외로 이주한 개인적 경험을 수시로 인용하면서, 미국의 수많은 교외 거주민들이 각각 자동차로 도심과 곳곳을 오가며 배출하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강조한다. 특히 저자는 이러한 미국의 소모적인 교외 생활이 현재 나날이 발전 중인 중국과 인도의 삶의 모델로까지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데에 대해 큰 위기감을 드러낸다. 미국의 교외화는 그들 경제의 비효율만이 아니라, 지구 환경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도시화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와 현대 도시의 맥락을 놓치지 않은 저자의 폭넓은 시야를 동시에 보여준 부분이다.

 

 처음부터 미국의 도시를 바탕에 두고 전개된 까닭에, 이 책의 주장이 한국 도시의 미래에 구체적인 시사점을 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도심의 지속적인 주택 가격 상승을 해소하기 위해 규제들을 풀어서 신축을 최대한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의 주택 소유 구조는 외면하고 당장 공급량만 늘려서 해결하려는 피상적인 대책으로 흐르기 쉽다. 그렇다 해도 저자가 방대한 통계 자료 속 미국 도시들의 상황을 세밀하게 비교, 분석해서 제시했듯이, 최대한 다양한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결국 도시 발전의 기반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서로 다르지만 또한 같은 캐롤과 테레즈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뉴욕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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