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엘레지 -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이언 샌섬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불편해서 종이에 글을 쓰지 않듯이, 편리해서 종이로 책을 읽는다. 그 편리함은 처음에서 끝에 이르는 글 전체의 양감이 내 손에 쥐어진 상태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독서를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다른 물질이 있다면 기꺼이 종이를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매개자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 책의 어디쯤을 읽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지를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저 화면 속의 바의 위치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분명 스마트 폰과 데스크 탑으로도 매일 수많은 활자들을 보고 있지만, 손에 쥐고 넘기거나 뒤적이며 읽는 종이 속의 글자들에는 그보다 좀 더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는 나름의 이중적인 판단 기제가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인터넷에서는 내키는 대로 아무 글이나 읽으면서도, 책을 살 때는 여전히 신경을 쓰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눈으로 훑는 이야기와 손에 닿는 이야기에 차이를 두고 싶기 때문이다.

 

종이가 없을 때에도, 종이가 필요 없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되었을 때조차도, 우리는 계속 종이를 상상하고 존중하고 종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p.18

 

 종이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기는 했지만, 이 책은 비단 책으로써의 종이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당 왕조 시절의 중국부터 빅토리아 여왕의 영국까지 시대와 장소는 물론 서구에서 종이접기를 뜻하는 오리가미부터 전쟁이 일어나면 하늘에서 낙엽처럼 흩뿌리는 각종 선전 전단까지 주제 역시 종이의 어느 한 면에 머물지 않는다. 한 장의 종이를 접고 또 접어서 그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듯했다. 낱장의 종이들이 쉽게 찢어지고 사라지는 만큼, 종이라는 재료 자체는 끊임없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종이의 사용 방식이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는 동안에도 종이라는 소재 자체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꽤 오래 전부터 종이를 대신할 수 있는, 혹은 종이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재료나 기술들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재료나 기술은 결국 종이의 역할 혹은 특성을 모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정말이지 종이의 질감과 여타의 특성을 고스란히 재현한 소재 혹은 기기가 개발되었을 때, 그것을 단지 복잡한 용어나 거만한 작명으로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건 그저 더 나은종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여태까지 없었던종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결국 인간들은 종이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으려고 고심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도 오래도록 아무 걱정 없이 지닐 수 있는 종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 장의 종이는 오늘의 행사가 끝나면 금세 떼어내 버릴 수 있지만, 여러 장의 종이가 묶인 책은 한참 지나가 버린 시간을 오래 남겨두는 데 쓰인다. 종이는 사람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끝없이 무겁게 묶어 두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종이처럼 편리한 수단은 달리 찾기 어렵다. 이 책에서도 종이의 역할과 비중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언급되고는 있지만, 그것은 종이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원료가 생태계의 핵심 중 하나인 나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종이의 외적인 이유로 내적인 장점을 외면하면서 그 비중을 줄이는 것이 우리가 낙관하는 것만큼 쉽지는 않으리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종이가 주어진 이상, 종이가 사라지더라도 종이가 없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더 이상 손으로 편지를 적지 않고 모니터 속에서 이메일을 보내더라도 그것을 쓰는 방식과 담은 의도는 종이 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더 이상 모니터 속의 활자들을 출력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언젠가 이 글들이 종이 위에 인쇄될 것이라 예상하고 갖춰진 문서 작성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가 굳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앞으로도 우리의 글은 계속 종이를 상상하며 쓰여질 수밖에 없다. 그 종이는 때로 넓기도, 좁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트위터의 트윗 하기버튼에 그려진 깃털 펜은 이것이 종잇조각에 남기는 낙서 같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머지않아 우리 주위에서 종이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더 나은 종이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종이를 쥐고 있다. 쓰거나 버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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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5-09-1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탄과 애도로 썼다는 종이문화사에 대한 서평이 흥미진진하게 읽힙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로렌초의시종 2015-09-15 13:52   좋아요 0 | URL
짧은 글이 맘에 드셨다니 저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