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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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나 신비주의자들처럼 나도 꿈과 깨어남 사이의 반쯤 열린 문턱이며 어떤 생각이든 가능한 새벽을 소중히 여긴다. 상실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자유의 시간으로 생각한다. 다시 한번 삶에 얽혀들 기회. -p.130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이라도 여유롭게 새벽에 일어나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었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오직 새벽에 머리를 스쳤을 것만 같은 생각들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언제든 더듬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을 주제로 쓴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지만, 모든 글에 새벽이라는 시간 배경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 글들은 새벽이라는 특정한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 글이기에 더욱 새벽다웠다. 밤과 낮처럼 서로 다른 주제와 방향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렇게 여러 세계가 마치 하나의 내용인 듯이 산책하듯 거니는 그 흐름이 바로 이 글에 담긴 새벽의 공기였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꿈속과 꿈밖의 온갖 생각들이 잘 섞여 든 새벽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나이에 새벽의 마법을 발견한 여성 가운데 시적이고 생각이 뚜렷하고 기질이 활달했던”(p.138) 세이 쇼나곤(淸少納言)으로 시작한 글이 ‘붓, 혹은 마음을 따르는 글’인 수필(隨筆)의 개성으로 이어지고, “붓이 하는 대로 하면,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이룬다.”(p.144)라는 미국의 추상 화사 로버트 마더웰까지 잠시 불러온다. 그러더니 이내 글은 역시 일본의 하이쿠 작가인 마츠오 바쇼(松尾芭蕉)의 시 “곧 죽을 목숨 / 그런 기색은 안 보이네 / 매미 울음소리에는.”(p.146)을 인용하며 허물을 벗는 매미가 갖는 무상함의 이미지와 세상이 마법처럼 바뀌는 새벽의 신비로움을 병치시키며 마무리된다.


자연히 새로운 것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고 의도적으로 미묘한 떨림과 흔들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풍경에서 살며시 요동하는 불안감에. -p.177


 어느 것도 눈부시게 또렷하지 않은 시간을 떠올리며 이 글들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빛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중첩되어 있는지 그 결을 하나하나 세어나가는 것만 같았다. 세상과 생각의 경계가 명료한 낮이나, 일체가 혼재되는 밤에는 그런 주의를 기울이기가 너무 어렵다. 물론 낮이나 밤을 막론하고 눈길을 휘어잡는 경이롭고 참신한 것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오직 그런 대상에만 몰입한다면 결국 삶은 낮도 밤도 없이 변함없는 시간만 이어진다. 어디로도 흐르지 못한 시간에 고인 채, 고갈되어 가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아야만 보이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삶은 밤을 지나 낮으로 가는 새벽처럼 변할 수밖에 없다. 보는 것만큼 바뀔 테니까.


목련 가지는 이리저리 꺾여 온통 팔꿈치다. -272쪽


 이 책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그것만으로 놀랍거나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새벽에 세상이 일어나듯, 우리도 새벽을 맞아야 한다고, 그렇게 된다면 세상과 우리 모두가 느릿하지만 또렷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인 다이앤 애커먼이 그려 낸 4계절의 다채로운 새벽 풍경들은, 저 원론적인 통찰이 얼마나 감각적인 경험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일깨워 준다. 상투적이다 못해 식상한 결론이라도 아무 상관없다. 그에 이르는 동안 보고 싶은 것을 실컷 보았기 때문이다. 꽃을 가득 매단 목련 가지는 보기만 해도 지고 난 후의 유난스러움과 서글픔이 떠올라서 언제나 내키지 않았는데, 텅 빈 가지가 겨울바람에 꺾여 팔을 흔들며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정경은 한번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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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6-29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 다섯 개를 주었지요. 그녀의 탐구심이랄까요? 박학다식에 일단 부러움이 앞서더군요. 글 반갑게 잘 읽었어요~~^^*

로렌초의시종 2015-06-29 17:35   좋아요 0 | URL
새벽의 미묘함을 그렇게 넓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대단한 역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