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닉 미디어 - 연결이 지배하는 미디어 세상
윤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04년에 지금 이 블로그를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혼자 서울에서 자유롭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어에 끼어들려면 무엇보다 디바이스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서재’라는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은, 내 기억이 맞다면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고서였다. 그 이후로는 신문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보를 접한 기억이 없다. 신문이라는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를 매개하며 영역을 확대하는 오가닉 미디어였던 (개인적으로)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블로그는 나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확장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오가닉 미디어였다. 일단 내가 읽은 책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읽지 못할 책을 알 수 있었고, 볼 수 없었을 사람들까지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오랜 시간 동안 이 블로그는 매우 사적인 의미에서 대단한 오가닉 미디어였다. 블로그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책이라는 오래된 미디어를 매개하며 파생시키는 수많은 콘텐츠를 보느라 하루하루가 재밌었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지금 이 미디어에서 느끼는 아쉬움이나 허전함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과거에 자신만의 훌륭한 콘텐츠를 지녔던 블로거들이 이곳을 떠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 자신 역시 더 이상 예전처럼 다른 블로거들과 활발하게 소통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이 서재에서 누가 인상적인 페이퍼를 쓰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댓글을 남기거나 추천을 한 기억은 더더욱 까마득하다. 물론 난 여전히 책을 읽고 오직 이곳에만 리뷰를 쓰고 있다. 일단은 내가 주로 책을 구입하는 곳이 알라딘이기에 이곳에 그 리뷰들을 남기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구태여 다른 블로그 플랫폼에 리뷰를 써야 할 만큼 알라딘의 인터페이스에 불만도 없을뿐더러, 이곳의 구조가 너무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일단 이 블로그가 인터넷 서점이라는 플랫폼, 책이라는 미디어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책을) 사고, 읽고, 쓰는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로 다른 플랫폼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내가 책을 읽고 알라딘이 이 블로그 서비스를 폐지하지 않는 한, 내가 이곳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플랫폼의 네트워크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을 뿐.


연결되지 않은 콘텐츠는 죽은 콘텐츠다. (중략) 이 콘텐츠가 어딘가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컨텍스트’인데, 콘텐츠는 끊어져도 컨텍스트는 절대 끊어져서는 안 된다. -p.70

트위터가 등장하기 전에 홈페이지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계속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운영하지 않으면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2006년 트위터가 등장하면서 홈페이지의 개념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일명 ‘마이크로 블로그’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보다 가벼웠고,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글만으로도 내 홈페이지를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p.121


 개인적인 차원에서 알라딘 서재라는 블로그 자체가 예전과 같이 확장되는 미디어가 아니라고 해서 이곳에 올라오는 수많은 콘텐츠들까지 이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2011년에 잠시 기자 생활을 할 때 회사의 지시로 개설했던 트위터 계정이 지금 내가 꾸리는 사실상 유일한 ‘오가닉’ 미디어다. 요 몇 년간은 이곳을 거쳐서 몇몇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새로운 이슈와 콘텐츠들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내가 읽고 듣고 본 것, 그리고 먹은 것까지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트위터는 이 블로그에 올리는 리뷰며, 밑줄들을 전송하는 ‘컨텍스트’이기도 하다. 그저 읽는 책에서 눈에 들어 온 문장들을 그때그때 트윗하고,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면 그 링크를 트위터로 전송할 뿐이지만, 어쨌든 이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트위터에 알리고 있는 셈이다. 실은 이런 행위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저 매번 리뷰를 올릴 때마다 한번 씩 알리는 트윗은 너무 형식적인 게 아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지 궁리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가르쳐 주었다.


오가닉 미디어는 사용자 참여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네트워크다. 사람들의 참여로 시작해서 그 결과 사용자 간의 관계를 얻는다. 이에 따라 네트워크가 성장하는 모델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p.90

크건 작건 간에 매개는 필연적으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p.212


 트위터를 하면서 알라딘 서재라는 블로그까지 새롭게 확장시키는 것은 결국 내가 올리는 트윗과 링크들을 보는 다른 사용자들의 참여로만 가능하다. 내가 트위터와 서재에 올리는 콘텐츠가 두 플랫폼이 함께 오가닉 미디어로서 확장되는 매개가 될지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다른 사용자들에 달려 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이 보기에 내가 발화하고 인용하는 콘텐츠의 가치만큼 트위터와 알라딘 블로그는 다른 사용자들과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애초에 맞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맞지 않는 사람을 멀리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 까닭에, 지금과 같은 수준의 매개만으로도 나를 둘러싼 미디어는 내 속도에 맞게 성장하며 변화했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이해했다. 내가 원하는 사람들이 나와 관계를 맺은 결과가 지금의 내 트위터며 블로그라는 생각 자체는 예전부터 해 왔기에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블로그와 트위터가 단순한 사적 공간이 아니라 미디어의 일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자, 취향은 우발적이었더라도 구조는 필연적이었다는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내 일상의 미디어가 블로그가 트위터로 변화한 것은 내 생각보다도 유기적인 변화였을지 모르겠다.


사업자는 신이 아니다.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응집된 듯 흩어진 네트워크의 이중성은 결국 사용자의 이중성이다. -p.146

SNS가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것은 인터넷이나 마크 주커버그, 트위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 활동 없이 존재할 수 없고, 그 대표적인 수단이 SNS가 되었을 뿐이다. -p.248

그럼 반대로 사적 공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환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소셜 미디어에서 사적 공간을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은 노출 수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 말고는 없다. 소셜 미디어에서 나의 페이지는 사회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하며 그 자체로 사적 공간이 될 수 없다. -p.269


 대학교, 대기업, 벤처 기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미디어와 함께 살아온 저자의 이력을 반영하듯이, 서로 충돌할 수 있는 관점들을 오가닉 미디어라는 주제 아래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그런 까닭에 각 관점에서의 심도가 다소 아쉽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지금 오가닉 미디어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더 많이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가닉 미디어의 구성 요소와 특성부터 지금까지 오가닉 미디어로서 기능했던 플랫폼들의 역사와 그것들과 차별화되는 현재의 오가닉 미디어인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의 차별점까지 오가닉 미디어를 둘러싼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그 속에 사업자와 사용자의 서로 다른 관점과 현재 사용자들이 처한 가장 민감한 이슈까지 담아낸 까닭에 이 책 자체에서도 다양한 콘텐츠들이 서로를 매개하고 확장하는 오가닉 미디어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사소하다고만 생각했던 개인적 공간들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도와 준 책이었다. 더없이 적은 사람이, 너무나 느리게 찾아오는 공간이더라도 나 혼자서만 만들어 가는 공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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