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 이상’이라는 수식을 붙여 주려면, 그 전에 먼저 기대를 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작품에 그 말을 쓸 수 없다. 애초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이 책을 8년 만에 펼쳤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남한에 내려온 오랜 고정 간첩이 갑자기 북한으로 소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은 여태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요약에서 어떤 상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김영하라면 적국의 삶에 동화된 스파이의 삶을 쓸데없이 무겁게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사들였겠지만(기억은 안 나더라도), 남한과 북한은 언제나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하는 배경인 까닭에, 일단 사서 마냥 꽂아 두었다. 15년 동안 남한에서 아무 문제없이 살았던 김기영에게 갑자기 북한으로의 귀환 지령이 떨어진 것처럼 이 책을 지금 꺼낸 데도 어떤 이유나 기대는 없었다.

 

 15년 동안 북한으로부터 방치된 간첩이자, 남한의 고만고만한 예술영화 수입업자로 살아가던 김기영은 2009년 3월 15일 아침 8시 30분쯤에 다음날 새벽 3시에 태안반도에서 잠수정을 타고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같이 남파된 다른 간첩들과 달리 좋은 대학에 입학해, 그 덕분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버리고 25년 동안 떠나 있었던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과연 그가 정말 북한으로 돌아갈지, 돌아가서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만으로도 일단 펼친 이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갈 동기는 충분했다.

 

이 호텔(웨스틴조선호텔)은 유사시에 어디로든 달아나기 좋은 장소였다. 롯데백화점 쪽으로 가면 인파 속으로 파묻힐 수 있었고, 소공동 지하도는 남대문시장 입구까지 이어졌다. 명동이나 시청 방면의 무수한 지하 아케이드와 어두운 골목들도 도망자를 능히 숨겨줄 것이었다. 호텔의 지하 주차장은 프레지던트호델의 주차장과도 연결돼 있었다. -p.274

 

 과연 누가 이토록 다급한 귀환 지령을 내린 것인지, 다른 간첩들은 어떤 상황인지, 남한 당국에 자수를 해야 하는 것인지, 미행이 따라붙은 건은 아닌지, 김기영의 위태로운 처지를 시시때때로 상기시키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학교 후배이자 딸 현미의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기도 한 후배 소지현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저녁 약속을 잡은 이유 역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기영이 25년에 걸친 남한 생활 중 상당한 기간 동안 자신에게 그저 일상의 공간이었던 서울을,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다시금 이방인이자 첩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곳에 적응하기까지의 과거를 반추하고, 그렇게까지 이곳에 동화된 현실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어느새 과거의 눈으로 현재의 공간을 탐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영의 상황을 보여 주는 챕터와 그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국정원 직원들을 그려내는 챕터가 교차하면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방식은 전형적이면서도, 분명 효과적이었다.

 

어쩌면 기영은 시네마테크를 기웃거리는 영화광들이 드러내는 권태에 주눅들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그런 건 너무 지겹지 않냐?” 라고 그들이 심드렁하게 내뱉는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겐 미지의 것이거나 적어도 참신한 것이었다. 도대체 ‘그런 것’의 어떤 면이 진부한 것인지 알기 위해 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 했다. 진부함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삶, 그것이 바로 옮겨다 심은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있었다. -p.103


 그럼에도 이 소설은 위태롭지만 급박하지는 않다. 기영이 자신의 행선지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태안으로 내려가 북으로 가는 잠수정에 오를지, 이대로 남한에 남을지, 남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하루 동안 서울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에서 김기영은 불안스레 여기저기를 두리번댈 뿐, 신속하게 어딘가로 이동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동안, 지금처럼 이곳에 뿌리 내리기 위해 자신이 들여야 했던 수고로움과 그것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선명해졌다. 집, 회사, 가족, 재산처럼 이곳에 두고 떠날 수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을 떠나더라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이 그에게는 이제 너무 많아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 하루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남한에 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곳을 떠나기도 쉽지 않은 자신을 확인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이 낯선 사회에서 ‘취향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리 잡기 위해, 진부함조차도 학습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남한에서, 첩자인 그에게는 취향을 갖지 않을 자유마저도 없었던 셈이다.

 

“형은 변했어. 아니, 변했을 거야. 난 형을 알아. 형은 히레사케와 초밥, 하이네켄 맥주와 샘 페킨파나 빔 벤더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제3세계 인민을 권총으로 쏴 죽이는 뫼르소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극우파 게이 미시마 유키오의 미문에 밑줄을 긋는 사람이잖아? 일요일 오전엔 해물 스파게티를 먹고 금요일 밤엔 홍대앞 바에서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고. 안 그래? 돌아가기 싫어서 나한테 털어놓은 거잖아. 내가 잡아주기를 내심 바라는 거잖아. 아니야?” -p.289

 

 이런 기영의 방황 속에 북한으로 가야한다거나 혹은 갈 수 없다는 부분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오직 남한에 침투하기 위해 25년을 보낸 김기영에게는, 서울이 아니라면 꼭 평양이 아닌 어디에 가더라도 마찬가지로 막막해서일 것이다. 그가 보낸 생의 절반은 온전히 남쪽의 진부함과 참신함을 이해하는 데 소모되었기에, 어디에 가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북한을 두고서도 “거기도 사람 사는 데야.”(p.357)라고 태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닐라나 봄베이에 무지한 것처럼 평양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여태 그가 익힌 저 모든 취향이 초기화된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이 소설은 북한으로 돌아가느냐가 아니라, 남한을 떠나느냐만 고민하는 이야기라고 말해도 좋다. 물론 김기영이라는 인물이 자신이 축적한 유, 무형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위력(威力)으로써 북한이라는 장소는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것은 결국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절박하게 회의하도록 강요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지금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말하는 이 모든 것들을 어쩌다 내 삶 속에 들이게 되었는지, 나는 얼마나, 어디까지,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이것들을 당장이라도 내버려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것들을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할 어떤 동기나 동력도 찾을 수 없다. 죽음을 목전에 두지 않고서는 이날 하루의 그와 같은 깊이의 의문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내가 자신하는만큼 이 모든 것들이 간절할 수는 없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것들을 그러모아서 그 속에 자신을 은폐시켜야만 했던 김기영은 자신이 향유하는 그 모든 것들이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인간이었다. 적어도 그는 남한에서 자유와 취향을 가장(假裝)했을지언정, 그것들을 소모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솟아올랐던 그 바닥까지 내려가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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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9-1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이책 읽었는데 내용이전혀기억안나요 그나저나 올만이네요 옛친구를 이렇게만나다니ㅅㅅ건승하시길

로렌초의시종 2014-09-19 11:1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참말 오랜만이에요. 마태우스님! 이곳저곳에서 자주 뵙는 분이 여기 잊지 않고 찾아와 주시니 더 감사하구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