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단세포, 즉 세포가 딱 하나만 있는 것도 생명체다. 그래서 어떤 공동의 조상에서 박테리아 같은 원핵 세포가 나왔다고 생각된다. 조금 더 발전해서 아케아Archaea 같은 조류, 그 다음에 여러 가지 세포로 구성해서 기관까지 만들 수 있는 사람과 같은 진핵생물로 발전했다. 이것이 생명의 계통도다. 종교적인 신념이 어떻건, 믿거나 말거나, 모든 논리력을 합해서 생각하면 이 가설은 지금까지 무너진 적이 없다. - P2627
이 그림을 보면 이중의 실 가닥이 꼬여 있는 구조다. 그래서 이것을 그 유명한 ‘이중 나선 구조‘라고 부른다.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의 간격, 그리고 어떻게 꼬여 있는지를 풀어낸 것이 그들의 논문이었다. 이것이 위대한 이유는 ‘유전자가 어떻게 생겼을까?‘를 매일 고민한 위대한 석학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모형을 보자마자 ‘왜, 복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바로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대한 발견이었고, 모름지기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분자 생물학의 탄생이 되었다. - P3233
팀 헌트Timothy Hunt의 서명은 특별하다. G1, S, G2, M의 순환을 그린 다음 ‘the cell cycle(세포 주기)‘이라고 쓰고, 밑에 ‘팀 헌트‘라고 서명한다. G1, S, G2, M은 바로 생명의 비밀이다. 모든 진핵 세포는 세포 주기에 따라서 이렇게 분열한다. 전 세계에서 역사적으로도 전무후무하게 단 한 명만이 이런 서명을 할 수 있기에 나는 그의 서명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하고 있다.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부럽지 않다. 세상에는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있고, 노벨상을 받지 않은 사람 중에도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트의 서명만은 너무 부럽다. 내가 생명의 비밀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걸 밝혔다는 사실을 서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멋지지 않은가? - P4647
앞에서 사람 세포는 균등하게 분열하지만, 개구리알과는 달리 동시에 분열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BRCA2라는 암 억제 유전자가 있다. BRCA2가 정상일 때는 아주 균등 분열을 하지만, 이 유전자가 망가지면 염색체 밑에 꼬리를 단 것처럼 비균등 분열을 한다. BRCA2는 실제로는 세포 주기, 특히 M기의 세포 분열을 조절한다. 그런데 망가진 세포에서는 BRCA2가 비균등 분열을 하면서 유전체가 잘못 나누어진다. 이것이 암의 원인이다. DNA가 담겨 있는 것이 염색체라고 말했다. 염색체를 균등하게 분열하기 위해 미세 소관으로 구성된 방추사가 붙는다. 그런데 방추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거나 염색체와의 결합에 문제가 생기면 염색체가 균등하게 분배되지 못하고 잘못 나뉠 수 있다. 이 때문에 BRCA2의 망가진 세포가 비균등 분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DNA뿐 아나라 염색체 분열도 체크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우리가 세포가 어떻게 성장하고 분열하느냐를 공부한 것이 암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90% 이상 일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4748
이 수정란은 2개로 이루어진 딸세포인데, 2개는 다시 4개, 8개・・・ 등으로 포배기blastocyst까지 세포 분열을 한다. 그 후 이 많은 세포는 어떻게 될까? 이동하기도 하고 다른 신호들을 만나면서 ‘분화differentiation‘를 한다. 이처럼 사람 같은 다기관 생명체에서 세포 분열은 각 기관으로 분화하기 위한 재료이며 전제 조건이다. 키가 자라는 것,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 침입한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면역 세포가 갑자기 늘어나는 것. 이 모든 것은 세포 분열을 전제로 한다. - P4950
하나의 세포는 영원하지 않으며 반드시 죽는다. 대신 자기와 같은 DNA를 가지는 세포로 분열하여 많은 자손 세포를 만든다. 이것이 생명 현상의 기본이며 생명의 정의다. 또 생명이 무생물과 구분되는 지점이며, 바이러스가 온전한 생명이 아닌 이유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분열하지 못하며, 숙주 세포에 들어가 숙주 세포의 세포 기구를 이용해서만 자기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증식할 수 있다. 생명체가 TV나 로봇, 컴퓨터와 다른 이유는 바로 스스로 자기와 같은 세포를 만드는 세포 분열 때문이다. 이렇게 똑같은 양과 질의 DNA를 딸세포로 전달하는 세포 분열을 ‘체세포 분열‘이라고 한다. - P5051
물론 환경에 적합하지 못한 암의 딸세포들은 죽어 나간다. 암세포는 죽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인 명제다. 암세포는 많이 태어나고 많이 죽는다.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놈이 살아서 악성으로 끈질기게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고 보면 된다. 유전자와 염색체의 돌연변이가 그 이면에 있고, 끝없이 분열하는 세포 분열이 그 마당이다. 암세포의 진화에서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틀림없이 맞아떨어진다. - P55
줄기세포 치료가 아직도 요원한 이유는 바로 암세포가 줄기세포를 일부 닮았다는 점에 있다. 어쩌면 암은 하늘에서 떨어진 나쁜 녀석이 아니라, 줄기세포라는 아주 훌륭한 보험 세포의 발생과 분화 과정을 사생아처럼 유용해버린 나쁜 녀석이 만들어낸 질병인지도 모른다. - P56
그런데 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간이라면, 하나가 문제가 생겨도 다른 많은 간세포가 일을 할 수 있다. 하나보다 ‘함께‘가 더 안전한 법이다. 가장 건강한 상태는 노쇠한 세포는 적절히 사라지고, 건강한 세포가 일을 하는 상태다. - P57
그래서 소아암 같은 것이 굉장히 힘든 암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아기는 세포가 계속해서 분열해서 키도 크고, 여러 가지 양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암세포가 탄생하면 더 빨리, 많이 분열한다. 그러면서 더 많은 돌연변이를 만들고, 그만큼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 - P5859
미국 MIT에 로버트 와인버그Robert Weinberg라는 암 생물학의 거두가 있다. 그는 "오래 살게 되면서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암에 걸리게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불안해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이 암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6667
이 연구소(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위원회 분자생물학 연구소MRC Laboratory molecular biology)의 모든 층에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자랑이 아니라 사실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것저것 서로 배울 것이 있고 서로 열정을 교환할 수 있기에 계속해서 노벨상이 나오는 것이다. 딱 하나를 선택해서 선택적으로 열심히 훈련한다고 해서 노벨상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P91
조직이 무너지고 침투되어 있다는 것은 앞서 얘기한 침입의 흔적으로, 한마디로 암이다. - P9394
RNA는 한 가닥이고 DNA는 두 가닥으로 되어 있는데, (프랜시스) 크릭이 1974년에 노벨상을 타고 난 지 한참 뒤에도 생명에 관한 얘기를 했다. "내가 1953년에 DNA 구조에 관해서 쓸 때는 DNA가 유전자인 이유가 복제할 때 반보존적(DNA가 복제되면 새롭게 복제된 딸 DNA의 한 가닥은 어머니 DNA를 놓고 복제)으로 복제를 하므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봤더니 그게 아니다. 왜 이중 나선이어야 되느냐? 한 가닥이 망가졌어도 다른 한 가닥이 온전히 있는 게 유전 정보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훨씬 더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닥보다 두 가닥인 DNA가 유전자인 것 같다." RNA가 아니라 DNA가 유전자인 이유를 크릭은 이렇게 말했다. DNA의 복제만이 아니라 DNA가 망가졌을 때 수선하는 DNA 수선 메커니즘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이 크릭의 위대함이고, 진정한 과학자는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발견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적인 생각을 해서 새로운 분야를 열어간다. - P9899
(암 억제 인자인) p53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세포 주기를 조절하는 것, 세포 사멸을 조절하는 것, DNA 손상 반응을 조절하는 것, 이 세 가지를 다 한다. 따라서 p53은 한 50%의 암에서 돌연변이가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항암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p53을 타깃으로 삼고 싶어 한다. 돌연변이 p53을 겨냥할 수 있다면 많은 암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도 매우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 P113
그런데 내가 첫 번째로 했던 프로젝트가 망하고 말았다. 결국 내 가설이 완벽하게 틀렸다는 걸 입증하는 데 한 학기를 다 썼다. 완전히 낙망해서 이러다가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는 건 아닐지 불안해하고 있을 때, 가장 위험한 순간에 행운이 찾아왔다. 교수가 이렇게 제안한 것이다. "BRCA2 종양억제유전자를 완전히 없애버린 실험용 생쥐를 만들었는데, 이 기능을 아무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어. 네가 해볼래?" 나는 프로젝트가 없었으므로 그 일을 맡았고, 결국은 그 기능을 다 밝혀냈다. 한 학기가 날아간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다른 동기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이 조명받고 박사 학위도 빨리받고 상도 받았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 P115
BRCA2를 보면서 ‘이게 바로 암이구나‘라는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BRCA2는 DNA 수선 장애에도 참여하고, DNA 복제 때 복제가 제대로 완성되도록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또 BRCA2는 세포가 분리될 때 염색체가 제대로 분리될수록 조절하는 데도 참여한다. 이런 유전자가 망가지면 점점 세포가 분열할수록 돌연변이가 많이 생겨서 암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유전자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암 생물학에서 얘기한 여러 가지 도메인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 P116117
(세포의 DNA 자체, 유전체에 영구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런 사례에서 보듯 지속해서 자외선에 노출됐을 때 DNA가 수선되지 않는다. DNA 수선 복구 기작의 한 유전자들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자외선 노출로 세포가 복구하지 못하게 되어도 암이 생긴다는 말이다. 만성 바이러스도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은 (이게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데)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활성산소가 너무 많이 생기는 것이다. 아니면 과식하고 너무 이상한 것만 먹어서 대사 질환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것들도 암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 P119
그래서 위암 같은 경우는 위염이 계속 발생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왜냐하면 만성 염증은 여러 가지 활성산소를 생성하고, 면역계에 여러 가지 요소factor를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DNA를 공격하게 된다. 그러면 DNA에 변화가 생기고 암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만성 염증은 면역계가 암세포를 회피하게 만들므로 아주 중요한 암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P120
텔로미어가 염색체를 보호할 때는 텔로미어 고리를 형성하는 t고리t-loop를 형성한다. 이때 여러 단백질이 도와줘서 고리를 구성한다. 3kb가 되었든, 150kb가 되었든 결국 이 고리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가 텔로미어가 보호될 수 있느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절대적 길이보다는 각종 염색체에서 텔로미어 고리 구조를 만드는 분자 메커니즘이 텔로미어와 노화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염색체 말단이 짧아지면 DNA가 손상된 것으로 인식되고, 세포 주기 체크포인트가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짧아진 텔로미어는 고리를 형성하지 못하고 열린 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듭짓는 것처럼 꼬아놓는 것이다. 풀리지 않은 매듭 구조는 DNA 손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리는 실제로는 DNA 손상 반응을 피하기 위한 생물학적 구조다. - P149
알래스카의 이누이트들은 200년 정도 사는 북극고래가 있다고 믿었다. 즉 자신들이 사냥하는 북극고래의 수명이 200년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수명은 그 반도 안되지만, 대를 이어 북극고래의 수명을 추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비교 유전체 학자가 북극고래와 다른 고래들과의 유전체를 전체적으로 비교하는 비교유전체학을 실시했다. 그 결과, 북극고래와 그것과 근연종인 고래들에서 차이가 나는 유전자들로 ERCC1, PCNA 등이 확인되었다. 이 유전자들은 DNA의 손상을 복구하거나 DNA 복제에 중요한 유전자들이다. 따라서 사람과 쥐뿐 아니라 다른 종에서도 DNA 대사가 수명을 결정하는 핵심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 P153154
다음 그래프에서 텔로머레이스의 역기능인 발암에 대해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위기를 벗어나고 계속 분열하는 암세포들의 85~90%에서는 텔로머레이스가 발현되고 있다. 이 세포들이 유래한 정상 세포들에서는 없었는데, 위기를 극복하면서, 혹은 극복하기 위해 획득한 형질이다. 다시 말해 보통의 세포가 줄기세포와 생식세포에서 발현되는 텔로머레이스를 얻게 되면 텔로미어가 유지되면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세포, 이 범주에는 암세포가 포함된다. - P158159
인공지능이 내 직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동시에 인공지능이 얼마나 예측을 잘할 수 있는지 몹시도 궁금했던 나는 로제타폴드를 바로 활용해보았다. 그 결과 인공지능이 아니었다면 6개월 정도 걸렸을 실험을 단 일주일 만에 해낼 수 있었다. 24개 정도의 실험 세트를 인공지능 로제타폴드로 예측한 구조를 통해 4개의 실험 세트로 줄일 수 있었다. 또 예측된 단백질 구조 정보를 바탕으로 이제까지 풀어내지 못한 문제의 답을 얻어내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로제타폴드의 발표는 알파폴드보다 예측 성능이 더 좋은 알파폴드 2의 개발과 발표를 바로 이끌어냈다. 바로 얼마 전 딥마인드는 단백질의 구조를 넘어 단백질과 핵산이 결합하는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 3를 발표했다. 2020년부터 4년도 걸리지 않아 단백질과 DNA의 결합 구조를 예측해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생명과학 연구의 중요 도구로 자리 잡았다. 바이오와 인공지능의 결합, ‘바이오 인공지능‘의 탄생이다. - P207
바이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딥마인드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구조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추가되고 있다. 지금까지 2억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내며 과학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풍부한 데이터를 통해 인공지능은 더 잘 학습하며 점점 더 똑똑해진다. 예측 성능도 점차 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실험하지 않고 알아내는 구조가 정말 많아졌다. 그러나 실험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알파폴드나 로제타폴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학습하는 인공지능이다 보니,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구조는 예측해내지 못한다. 이때 실험이 필요하다. 초저온 현미경과 생물물리학적 실험 데이터가 필요해진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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