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 메타버스를 건너 디지털 대전환까지
이상직 지음 / 이다북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공지능과 관련된 법적 쟁점들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현재 상정 가능한 다양한 문제를 하나하나 깊이 있게 접근한다기보다는 넓게 펼쳐 놓는 방식에 가깝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의 IT 산업 초창기부터 이 업계에 참여해 온 법률 전문가로서, 인공지능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산업인 IT 산업과 한국 법률을 아우르기에 적절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이런 역량을 갖춘 전문가들도 각자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기본적으로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초래할 문제들에 대한 법률적 대응을 한국 IT 산업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쪽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한국 IT 산업의 사업 모델로서 안착할 만큼 성장하거나 그 가능성과 편의성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해외의 사례나 일부의 문제들에만 집착하는 피상적인 관점 탓에 가장 강한 규제 수단인 법률로 인공지능(산업)의 잠재력을 제약하게 되는 상황을 이 책은 가장 우려한다. 


EU의 인공지능법을 베끼는 것은 퍼스트 무버를 꿈꾸는 국가로서 할 일이 아니다. 입법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EU 기업 대비 국내 기업의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 수준, 산업발전 정도와 경쟁 여건을 검토해야 한다. EU 인공지능법의 국내 도입이 국내 데이터, 인공지능 산업발전 또는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될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해야 한다. -216쪽


 따라서 법률 전문가로서 이 책의 저자는 법률의 효용보다 그 일률성, 경직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더 우려하는 편에 속한다. 그에 더해 그가 변호사로서 정부 부처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지만, 주로 IT 기업이나 그 기업과 업무를 수행하는 법무법인에서 일해 왔다는 점도 법률에 대한 이러한 입장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정부에게 법률이 권한의 근거라면, 기업에게는 제약이나 간섭의 나열이다. 저자가 법률과 규제의 불가피성보다 불필요성에 더 주목하는 것도 그의 이력을 아울러 생각하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 ‘당연히’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될 수밖에 없다―는 느슨하고 다소 시대착오적인 주장과 밀접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이 그 일에 열중하도록 해야 한다. (중략) 시장에서 고객을 만족하게 하는 일에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ESG로, 따로 돈을 들여서 할 일이 아니다.”(350~351쪽)와 같은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원론적이고 부정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기업과 사회의 접점을 고객으로 축소시키는 이런 주장이 기업의 본질을 상기시키는 순기능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기업이 이윤을 창출시키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과정에서 그 이윤 관계와 무관한 사회 전체에는 부담과 갈등만 발생·전가시키는 문제는 이미 충분히 드러나서 쌓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기업과 고객만 서로 행복하고 마는 그런 관계, 거래는 애초에 없었고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그래도’ 기업의 본질은 고객 만족이라거나 단지 그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뿐이라고 비껴가는 반응도 이미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야말로 “말이 그렇단 말이지.”라는 식이다. 그러나 바로 ‘고객 중심’과 같은 수사(修辭)를 내세운 기업들이 저지르는 위법, 탈법들을 보면, 이른바 ‘기업의 본질’은 그것이 겨우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합리화에 그칠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그런 모순 자체를 외면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한국 IT 산업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고객 만족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 역시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외면하거나 방치하는 원인이 될 소지가 적지 않다. 법률을 이용한 규제의 경직성, 일률성이라는 문제가 크다는 저자의 통찰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역할과 책임을 고객과의 관계로 축소, 회피하는 이른바 ‘기업의 본질’이라는 가공의 개념을 내세우는 이상, 인공지능이 오직 기업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전락하여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법적 규제를 자초하는 사태가 도래하리라는 사실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부족 사태를 빠뜨릴 수 없다. 마스크 등 감염병 예방에 중요한 생필품 판매에서 중복 구입을 막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 포털을 이용해 중복 구매 여부를 확인했다. 이때 구매자, 주민등록번호, 구매 이력 등을 수집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엄격한 동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에 따라 감염병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골고루 공급하려는 공적 이익이 동의에 관한 정보 주체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면 그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개인정보보호법 제58조에 따라 공중위생 등을 위해 긴급하게 일시적으로 처리되는 개인정보로서 개인정보보호법 적용의 예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등 재난 시의 필수품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등 동의의 예외를 인정하되, 개인정보를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입법적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 102~103쪽

우리는 어떤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규제 법률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급성장하는 플랫폼 빅테크 기업은 기존 규제만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 섣불리 규제했다가 오히려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국내 경쟁환경 및 글로벌산업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이 정부조달, 법률시장 등 공공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공성을 효율성, 경제성으로 대체하면 공익을 침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변호사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의뢰인을 위해 싸워야 한다. 플랫폼에 종속되면 그것이 가능할까? 이길 소송을 지는 억울한 의뢰인이 나올지 모른다. -283쪽


 이 책은 인공지능이 한국 사회와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파급력과 여러 문제점만을 우려하여 법률을 제정해서 사전적·사후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점에서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그 법적 쟁점에 대한 이런 접근 방식이 IT 기업들은 인공지능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거나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수준의 매우 시대착오적이며 책임 회피의 소지가 농후한 관점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는 문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고객 만족이라는 이른바 ‘기업의 본질’을 빙자해, 실상은 기업의 핵심적 본질인 기업 자체의 책임과 의무는 격하시키거나 회피하려는 집요한 의도와 선전이, 인공지능과 IT 기업을 둘러싼 쟁점들에서도 언제든지 사회와 제도를 오도(誤導)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결과적으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오랜 논제의 존재를 상기시켰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