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희한한 일을 하려고 했을 때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라고 말하고, 영어에서도 절대로 일어날 리가 없다고 말할 때 "돼지가 날거든when pigs fly."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뜨고 돼지가 하늘을 나는 것을 상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인간이야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지만 장난기가 많은 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법칙적으로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상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논리적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 P27

우리는 일상에서 ‘내가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과 같은 사고실험을 한다. 아마 돈 많은 부자로 살고 싶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난다고 해서 내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빌 게이츠가 자식에게 유산을 남겨주지 않겠다고 선언해서가 아니라,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더라도 1년 먼저 태어나거나 1년 나중에 태어나면 서로 다른 정자와 난자가 만나 다른 사람이 태어날 텐데,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당연히 나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법칙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 P32

((에드먼드) 게티어는 연구 업적이 너무 없어서 동료 교수들이 순전히 행정적인 이유로 아무 생각이나 논문으로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세 쪽짜리 논문을 썼는데 이것이 철학사에서 한 획을 긋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로는 또 아무 업적도 내놓지 않았다.) - P34

운명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하든 미래는 똑같기 때문에 아무 일도 안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한다. 시험에 붙을 운명이라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붙을 것이므로 공부를 할 필요가 없고, 시험에 떨어질 운명이라면 공부를 하든 안 하는 떨어질 것이므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시험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결정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결정론은 세상의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는 주장일 뿐이므로 현재 상태가 달라지면 미래도 달라진다고 생각하여, 다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다르게 행동한다. 비록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그 이전의 원인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P49

제멋대로 하는 것과 자유로운 것은 분명히 다르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의 마음‘이라는 원인이라도 있지만, 그런 원인마저도 없는 비결정적인 행동은 전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결정론이라고 해서 자유의지를 살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딜레마에 빠졌다. 결정론이 옳아도 자유의지는 없고 결정론이 틀려도, 곧 비결정론이 옳아도 자유의지는 없다. - P57

이렇게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행동을 했을 경우에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행동에 원인이 있다고 해도, 곧 결정론이 옳아도 자유의지는 보존된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럴 때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다. - P62

그러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행동했을 때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행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행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는 것은 그 행동이 나의 믿음과 욕구 때문에 생겼지, 외부의 강제 때문에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강제가 문제다. 강제당하는 행동에 자유의지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자유의지의 반대말을 원인이라고 생각해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자유의지의 반대말이 원인이 아니라 강제라고 본다면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얼마든지 함께 성립할 수 있다. - P63

우리는 "저 시계는 내 시계와 같은 시계다."라고 말할 때의 ‘같다‘와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때의 ‘같다‘가 서로 다른 뜻임을 알고 있다. 앞의 동일성은 같은 종류라거나 특징이 비슷하다는 뜻이고, 뒤의 동일성은 완전히 똑같은 개체임을 의미한다. 철학자들은 앞의 동일성을 질적 동일성이라고 부르고 뒤의 동일성은 수적 동일성이라고 부른다. 두 개체가 비슷하다는 것은 질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고, 두 개체가 완전히 똑같다는 것은 수적으로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 동일성 문제에서 문제가 되는 동일성은 바로 수적 동일성이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피터가 사실은 스파이더맨과 같은 사람이고,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보이는 별(개밥바라기)이 새벽녘에 동쪽 하늘에서 보이는 밝은 별(샛별)과 같은 별이라는 것도 다 수적 동일성이다. - P77.78

그런데 다시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개인 동일성을 보장하는 것은 주름투성이 회색 덩어리인 뇌가 아니라 그 뇌에 들어 있는 정보다. 뇌에 담겨 있는 기억, 버릇, 느낌 등이 그 뇌의 주인에게 동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실험 016에서처럼 그 정보만 쏙 빼내서 맞바꾼다면 신체 이론은 정말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동일성을 보장해주는 근거는 신체가 아니라 기억, 버릇, 느낌 따위의 심리적인 특성이라는 심리 이론이 옳은 이론이 되는 것 같다. - P90

요즘은 볏짚으로 새끼줄을 꼬아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100미터짜리 새끼줄이 있다고해서 100미터짜리 볏짚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1미터도 안 되는 볏짚들이 겹쳐지면서 긴 새끼줄이 꼬아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억도 각 시기의 기억들이 연속적으로 겹쳐지면서 한 사람의 인생의 기억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 P92

뇌 분리를 생각해보자. 사람의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좌반구는 분석 영역과 언어 영역을, 우반구는 지각 영역과 음악 영역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두 반구는 뇌량이라고 알려진 수백만 개의 신경섬유계를 통해 서로 연합되어 있어서 다른 쪽 반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1960년대에 간질로 고통받던 환자들은 두 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그래서 두뇌의 분리가 이루어졌는데, 그 후에 이 환자들은 약간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환자의 왼쪽에 물체를 두고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환자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사용법은 알고 있었다. 왼쪽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우반구에서 처리하므로 우반구에서 받아들인 이미지로 사용법은 알고 있지만,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좌반구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반구를 각각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 P100.101

그렇다면 실수에 의한 임신(사고실험 044가 비유하려는 경우)에서는 있던 태아의 생명권이 성폭행에 의한 임신(사고실험 045가 비유하려는 경우)에서는 갑자기 없어진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두 경우 모두 태아의 생명권 유무에서 차이가 없고 성폭행에 의한 임신의 경우 낙태를 비난할 수 없다면, 실수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낙태를 비난할 수 없지 않을까? 모든 성행위에는 임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실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모든 가임 여성은 임신 가능성이 있으므로 행동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 아닐까? 결국 우리는 모든 낙태를 반대하든가 모든 낙태를 찬성해야 일관적이 된다. - P158.159

이러한 동물 실험 찬반 논쟁은 경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철학적인 반성만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다. 철학적으로는 설령 동물 실험으로 인간에게 아무리 많은 혜택을 가져다준다고 하더라도 왜 인간에게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실험을 안 하면서 동물에게는 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동물실험을 옹호하는 쪽이 공평하지 않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래도 되는 의미 있는 차이점을 지적해야만 한다. - P174

사고실험 076은 데카르트보다 조금 늦게 활동한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Gotfied Wilhelm Leibniz(1646~1716)가 내놓은 것이다. 사람의 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척 복잡하고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가장 발달한 과학기술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뇌와 비교되는 것은 당연히 컴퓨터다(이 점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서양의 고대에는 투석기를 뇌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 시대에는 가장 발달한 기술이, 웃지 마시라, 바로 이 방앗간이었나 보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는 방앗간에 들어갔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한 것이다. 거기 가봐야 덜컹거리며 서로 밀고 움직이게 하는 부품들만 있다. 마찬가지로 뇌 속의 어디에도 생각이나 느낌은 없다. 라이프니츠도 데카르트처럼 마음은 물질과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원론자였던 것이다. - P227

그러면 사고실험 077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고실험 078을 보자. 물 분자들에서 촉촉함, 맑음, 시원함이라는 성질을 찾는 사람은 부분과 전체를 착각하고 있다. 물 분자 하나하나에는 그런 성질이 없지만 그것들이 결합된 물에서는 그 성질들이 발현된다. 그런데 그런 성질이 부분에 없다고 전체에도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늘 한 개를 떨어뜨리면 소리가 안 나니까 바늘 한 뭉치를 떨어뜨려도 소리가 안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사고실험 077도 마찬가지다. 뇌를 구성하는 물질들 하나하나에는 정신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들이 결합되면 정신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면 촉촉함과 같은 물의 성질이 있기 위해서 물 분자 이외의 것들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정신이 있기 위해서 뇌라는 물질 이외의 것이 있을 필요는 없다. 정신은 물질과 별개인 어떤 것이 아닌 것 같다. - P228

사고실험 080이 말하려고 하는 바도 사고실험 079와 같다. 훈이는 이번에는 색채 지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경과학자다. 그런데 지금까지 색깔을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색맹은 아니지만 색맹과 다름없이 살아왔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지 마라. 이것은 사고실험이다!) 그런데 색깔을 실제로 처음 보면 어떨까? "이거 내가 연구해서 알고 있던 그대로네."라고 말할까 아니면 "야! 이게 빨간색의 느낌이구나."라고 말할까? 속성 이원론자들은 뭔가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빨강을 볼 때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사실을 넘어선 어떤 것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곧 동일론은 틀렸다는 것이다. (사고실험 080은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잭슨 Frank Jackson[1943~]이 처음 제시했는데 거기서는 주인공이 메리다. 흑백방에서 나온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캐머런 디아스가 출연한 영화 제목처럼.) - P233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는 문제인) 다른 사람의 마음 문제는 흔히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지식을 확실하게 정당화할 수 없다는 회의론(7장을 보라.)의 하나로 소개된다. 그런데 속성 이원론을 반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속성 이원론에 따르면 나의 주관적인 느낌은 물리적 뇌의 작용과 다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 문제에 따르면 나는 내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뜨거운 것을 만졌을 때 나처럼 뜨거운 느낌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속성 이원론은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 물질의 작용과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상식적인 일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느낌이 뇌의 작용과 동일하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 P234.235

(정신과 뇌는 실체는 하나지만 그 실체에서 물질적 속성과 정신적 속성은 동일하지 않다는) 속성 이원론은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사고실험 082를 보자. 그것은 영화 〈스파이더맨〉과 같은 상황이다.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 분)은 스파이더맨이 정의의 용사라는 것은 알지만, 피터가 정의의 용사라는 것은 모른다(〈스파이더맨 3〉에 가서야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피터와 스파이더맨이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피터와 스파이더맨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아느냐 모르느냐와 상관없이 그 둘은 같은 사람일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정말로 동일한지 아닌지와는 상관없다. - P235

마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기능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어떤 마음을 마음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인과적 역할을 하느냐다. 정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주장을 기능론이라고 부른다. 기능론은 정신을 어떤 입력이 들어올 때 어떤 출력을 내보낸다는 인과적 역할로써 정의한다. 예를 들어서 고통은 누군가가 꼬집으면(입력) "아야!"라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리는 것(출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 인과적 역할은 뇌의 신경세포에서 구현될 수도 있고 로봇의 실리콘칩에서 구현될 수도 있다. 기능론은 마음이 어떤 물질에 의해 구현된다는 점은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원론과 다르지만, 그 물질과 동일함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론과도 다르다. - P240

사실 컴퓨터를 인간의 정신 작용에 비유해왔지만 직렬식 컴퓨터는 인간과 다른 점이 아주 많다. 인간이 못하는 일은 엄청나게 잘하고 인간이 잘하는 일은 오히려 못한다. 가령 우리는 계산이 두 자리만 넘어가도 헤매는데 컴퓨터는 아무리 큰 숫자도 척척 계산해낸다. 반면에 우리는 글자가 약간 흐릿하게 보이거나 일부가 찢겨도 무슨 글자인지 금방 알아보지만 컴퓨터는 점 하나만 빠져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습 능력이 있지만 디지털 컴퓨터는 그런 능력이 없다. 연결주의 기계는 인간 지능의 이런 특성들을 잘 구현해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패턴 인식이나 자발적 학습 같은 데서 장점을 보인다고 한다. 인공지능 연구는 이런 기계에 의해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중국어 방 사고실험은 대상을 잘못 잡은 잘못된 인공지능 비판이다. - P256

과학자들이 빛은 전자기파라는 가설을 세운 후 어떤 조건에서 전자기파가 빛이 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에 대해 빛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이 이러이러한 조건에서 인공지능이 생길 것이라고 연구하는 것에 대해 지능 또는 생각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로 반대해서는 안 된다. 인공 빛이 가능한 것처럼 인공지능도 가능하지 않을까? - P258

동일론 또는 일원론에서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은 물리적인 것과 동일한 것으로서 존재했다. 물리적인 것과 동일하므로 물리적인 것이 있으면 마음도 있다. 그러나 제거론에서는 마음을 아예 제거해버린다. 우리도 언젠가는 사고실험 096의 생명체처럼 네가 꼬집으니까 "아파, 네가 미워."라고 말하는 대신 "네가 꼬집으니까 내 C-신경섬유가 작동되었어. 그래서 내 D-신경섬유도 작동되었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 P259.260

사과가 없다고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말로 확실한 것은 있다. 그것은 내가 감각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령 착각을 일으키거나 악마에게 속임을 당하여 빨간 사과가 있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빨갛게 보이는 것은 사실 아닌가? 정말로 사과가 있어서 빨갛게 보이는 착각으로 빨갛게 보이든 빨갛게 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진짜 빨간 사과가 실재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과의 빨간색과 둥그런 모양과 반질반질한 느낌은 분명히 내가 느끼고 있다. - P291.292

그런데 참된 믿음이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고실험 111의 훈이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문제의 답이 2번이라고 믿고 있고, 또 답은 실제로 2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경우에 훈이가 답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순전히 요행수로 답을 맞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왜 2번이 답인지 정당화하는 이유 없이 2번이라고 맞힌 것뿐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고 ‘찍어서 맞혔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하려면 참된 믿음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믿어야 한다. 곧 그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정당화된 참인 믿음을 지식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 P298.299

까마귀는 누구에게나 검게 보인다. 그러나 과학자가 까마귀의 다른 특징, 예컨대 까마귀의 울음소리나 크기에 주목했을 수도 있는데 왜 하필 검은색에 주목했을까? 까마귀의 색깔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의 특정 관심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까마귀는 모두 검은색이다.‘는 이론 의존적이다. 과학자들은 어떤 이론이 배제된 순수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법칙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관심이나 이론에 따라 가설을 세우고 그것에 따라 관찰을 하는것이다. 그래서 좋은 법칙인가 아닌가는 그 법칙이 현상을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에 달려 있지 편견 없이 자료를 잘 관찰하기 때문은 아니다. - P333

신의 존재 문제에서는 유신론과 무신론 중 어느 쪽에 입증의 책임이 있을까? 신이 있음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신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신이 없음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신은 있는 것일까? 현대사회의 생활이나 문명은 신을 빼고 설명해도 문제가 없다. 국가의 운영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신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 문제에서는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유신론자에게 입증의 책임이 있다. 다시 말해서 무신론자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더라도, 유신론자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기 전까지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가령 인간 지식의 한계 때문에 신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다면 신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려도 된다는 뜻이다. 신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른다는 입장을 불가지론이라고 하는데, 입증의 책임 면에서 보면 불가지론은 결국 무신론의 편을 드는 셈이다. - P345

특히나 현대 과학은 우주의 제1 원인이 되는 사건이 무엇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빅뱅(대폭발) 이론이 그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120억 년 전의 우주는 맨 처음에 굉장히 밀도가 크고 뜨겁고 핀 머리 정도로 작았는데 대폭발을 일으켜 팽창하게 되었다. 유신론자는 여기에 대해 다시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 빅뱅의 원인도 있을 것 아니냐고, 그리고 그 원인은 분명히 신이라고.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신에 대해서는 그것이 있게 한 원인을 묻지 않으면서 빅뱅에 대해서만 그것이 있게 한 원인을 묻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더구나 신이 왜 다른 원인에 의해 생기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과학은 빅뱅이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과학에 따르면 그것은 그냥 주어진 사실이고 더 이상 원인을 물을 수 없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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