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카를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대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썼다. 아이히만의 "완전한 무사상성, 그것이 그가 저 시대의 최대 범죄자 중 하나가 되는 요인이었다." 전문적 지식과 능력이라는 점에서는 유능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사고하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명령에 따르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상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 관료의 범용(凡庸)이라는 이름의 죄가 얼마나 깊은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가 무엇이 나쁜 일인지 몰랐던 것(처럼 보이는)이 더더욱 무섭다. 사고 없는 준법이야말로 가장 질 나쁜 것이다. - P119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런 고로 "악법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다. 법실증주의는 ①법률이란 도덕 등 다른 룰들과 다르게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②그것이 사회의 질서 유지와 사람들의 행동 편의를 돕는다, 하는 것까지는 논하지만,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까지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P122.123

이처럼 이미 존재하는 법질서를 무비판적으로 그저 지키는 것만이 준법은 아니다. 부정한 법에 따르지 않음으로써 역으로 법질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본인에게는 처벌을 수용해야 한다는 고통이 있겠지만. - P125.126

지금의 대학도 대학이다. 좌우간 요즘은 사립대학들도 관이 말하는 것을 바보들처럼 무비판적으로 듣고 있으니, 순수하게 자란 좋은 아이였던 학생들까지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착실한 학생들은 졸업 후 취직하고 나서도, 호우 경보가 발동되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강둑이 터지든, 화산이 분화하든, 지구가 멸망하든, 회사에서 지시가 없는 한 오로지 출근시간에 신경 쓰면서 직장으로 향할 것이다.
나 같은 불량 교원에게 현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하라면 이 말을 하겠다. "목숨을 소중히." - P132.133

덧붙이자면, 건강진단과 암진단, 금연운동을 처음 도입한 것은 나치스였다. 그것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총통과 국가를 위해 노동력으로 쓰일 인간을 선발하여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함이었다. 건강제국이란 결국 기업과 국가를 위해 쓰일 인간을 기르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나치스는 8시간 수면과 채식을 국민에게 장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강제국도 그 이면에서 알코올의존자, 동성애자, 정신장애자를 박해하고, 병 등으로 노동력 면에서 쓸모없는 인간은 지체 없이 안락사 시켰다. 그러니 국가에 의한 건강 강제는 조심하는 게 좋다. 사람에게는 불건강하게 살 자유도 있다. - P148

건강하고 근면하고 용기 있고 타인에게 다정한……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들만 사는 나라는 없을 것이고, 그런 나라라면 애초에 법률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은 하찮은 인간 투성이다. 법률은 하찮은 인간에게 억지로 무리한 주문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모두가 부서져버리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법률이란, 하찮은 인간을 그대로 놔두고 그들이 해를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의 기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 자체가 하찮은 것인가? - P157

공리주의적 사고의 이점은, 최대 행복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모두 나눠 가질 것을 요구하는 점에 있다. - P165

애초에 사람들을 평등하게 보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공리주의가 "사회 전체의 불이익을 최소한으로 하자."는 발상으로 전환되는 순간, 불이익을 당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내는 선별 사상으로 바뀌고 만다. 그리고 또 그러한 선별을 할 때 방금 살펴본 실례처럼 편견과 멸시가 작동하거나, 최종적으로는 불리해지는 사람 수 크기로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선별은, 물론 선별의 책임을 지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P171

앞의 버지니아주 단종법의 예에서 보듯이 국력 신장의 목적을 위해 유익한 자손을 늘리는 정책은, 그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자손의 탄생을 불가능하게 하는 차별로 이어졌다. 본래 국력이란 무엇인가, 단순한 부국강병만이 국력인가, 하는 점에도 의문이 있지만, 어쨌든 한 나라의 정치가 다양성에 대한 관용을 잃고 특정한 목적을 향해 돌진할 때 공리주의는 박애주의에서 차별과 절사의 사상으로 바뀌어버린다. - P177

창작자의 인센티브를 보호하기 위해 저작권을 어느 정도 지켜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예능 일에서 지나치게 권리 권리 하지 않는 편이 결과적으로 아티스트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P185

그렇다. 바로 이것이 평등이라는 사고의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점이다. 모두가 막연히 "평등은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만인이 납득하는 완전한 평등 상태라는 것은 사실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속성에 기초한 평등을 실현하면 반드시 다른 불평등을 초래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불평등한 현실만이 평등하게 주어져 있다."(만화 『주술회전』(呪術廻戰, 2018년 3월부터 <주간소년점프>에 연재 중)의 명대사) (회식에서) 정기 수입은 있으나 자기 용돈이 적은 교원이, 오버닥터(overdoctor, 박사과정을 마치고도 자리를 못 잡은 사람.)이긴 하지만 유튜버로 큰돈을 벌고 있는 젊은이보다 두 배 이상 내야 하는 케이스를 생각하면, 그 점은 명백히 보일 것이다. - P265

한편, ‘1인 1표‘도 또 다른 관점에 서면 불평등해 보인다. 무엇 때문에 ‘18세 이상‘이라는 속성이 사용되는지, 17세 이하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까닭이다. 매일 신문을 열독하며 뉴스를 체크하고 이 나라와 세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15세와, 신문을 보더라도 스포츠 신문밖에 보지 않으면서 야구시합 결과와 변태 기사와 예능인의 불륜 외에 흥미가 없는 45세 중 어느 쪽이 던지는 한 표가 진지할까? - P267.268

(로널드) 드워킨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평등한 사람으로서 처우받을 권리가 실현되어야 할 사람들은 두 자식의 예에서는 병든 아이, 즉 이 사회에서 오래도록 차별받아온 마이너리티이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선적으로 법조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물론 데푸니스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지만, 그는 머조리티에 속하는, 말하자면 건강한 아이기 때문에 권리 요구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마이너리티에게 양보하라는 것이다. 더욱이 입시에서 지적 심사의 결과를 일부 무시하고서라도 마이너리티 학생을 늘리면, 머조리티에게만 식견이 편향돼 있던 로스쿨의 수업에 새로운 시점이 부여되어 그 질을 향상시킬 것이며, 그 결과 마이너리티 변호사나 재판관이 증가하면 차별로 말미암은 미국 사회의 긴장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표현이 험하긴 하지만, 안 그래도 지천으로 깔려 있는 머조리티 법조인을 한 사람 더 늘리기보다는 마이너리티 법조인을 더 늘리는 편이 진정한 평등 실현이라는 사회적 이익의 실현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 P283.284

이러한 학교 교육을 거쳐 학교를 나오면 또 똑같은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 거기서도 적합한 좋은 사원이 되어 자본주의 사회의 우수한 톱니바퀴가 된다. 그런 게 현대 사회의 바람직한 인간상이라면, 그 같은 인간은 무의미한 일에 의문을 품지 않고 몸도 마음도 복종에 익숙해져 사실 자유도 뭣도 아닌 셈이 된다. 왜 모두 일제히 같은 시각에 회사에 모여야 하는데? 왜 40도 가까운 작열의 여름철에도 슈트를 입고 구두를 신어야 하는데? 왜 자기 일을 끝마쳤는데도 퇴근하면 안 되는데? 그런 걸 의문시하지 않는 사람의 자유는 자신의 조직과 사회에 적합한 한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와 다를 게 없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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