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군과 같이 시장에 나갔다가 고기장수에게 쫓겨난 나 때문에 그들은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둥글납작한 흰 모자를 쓴 뚱뚱한 중년 남자가 고깃간 주인이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싱싱해 보이는 붉은 고기의 뼈를 발라내고 있는 남자에게 내가 확인차 돼지고기인가 하고 물었다가 쫓겨난 것이었다. 남자는 아주 기분이 거슬렸다는 듯 손에 서슬 퍼런 칼을 든 채로 나에게 휘저어 보였다.
—가, 가! 저리 가라고! 에잇, 재수 없게…… (중략)
희철이 일러주었다.
—그 사람들은 무슬림이야. 우리 북진구에는 특히 무슬림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지. 그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큰 고기‘라고 불러. 자기네 가게에서는 원체 팔지도 않고.
나는 회족 사람들을 실제로는 처음 보았다. 희철의 설명을 듣고서야 나는 우리가 갔던 시장 구역을 가리켜 천목(天穆, 명나라 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천진 경내 최대의 회족 칩거 구역)이라 부르던 것을 이해했다. - P121.122

춘란에게는 어떤 힘이 있었다. 이미 껍질을 깨고 부화에 성공한 맹금류, 혹은 징그러운 애벌레 시기를 인내로 통과한 화려한 독나비처럼, 춘란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그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해 일정한 경지에 오른 존재였다. 솔직하고 대범한 그녀 앞에 섰을때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평안한 마음을 휘저어 그 아래 가라앉았던 찌꺼기들을 부유케 하는 것, 그것이 허춘란 그녀의 능력이었다. - P146

무군은 여전히 노란 테이프를 입에 문 채 박스를 포장하고 있었고 나의 외근은 점점 잦아졌다. 구사장은 계속해서 돈이 될 만한 기회를 찾으며 이런저런 모임에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그 모임에서 소위 성공한 사내들을 적잖이 만나보았다. 때로는 그네들이 자가용으로 회사까지 데려다주는 배려를 받기도 했다. 대발택시보다 차체가 낮고 넓은 자가용은 그 안에 앉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종의 우월감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자신이 마치 다른 종류의, 말하자면 더 진화한 인류가 된 것 같은 착각이었다. - P151.152

나는 삶의 어떤 변화, 질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내 욕망이 정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욕망은 꿈이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때는 두가지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53

나는 생각했다. 항상 그게 문제지. 상대방은 순간순간 흔들리고 생각이 변하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자라는 족속은 시작이 바로 결과라고 유추하는, 현실에 대해 총체적으로 방심하는 한심한 군체였다. 희철이 그랬고 무군이 그랬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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