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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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대불호텔은 없다. 인천에 재건한 대불호텔 건물이 있다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호텔의 시간이 진작에 소멸했음을 보여 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다. 심지어 이 소설 속에도 대불호텔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화요리점 중화루로 바뀐 옛 호텔 건물 3층에 빌붙은 여인숙(旅人宿)이 간신히 남아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불호텔의 존재 자체가 소설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안에서도 이미 유령과 같다. 단지 이 호텔이 작품 속에서도 유명무실해서가 아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기억이나 열망 속에서만큼은 너무나도 선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령은 단지 그 형체가 희미해서가 아니라 그런 주제에 또한 바로 그런 까닭에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들어서 의미가 있다. 대불호텔이 오직 허울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실체를 갈망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호텔은 끝내 유령이 되고 말았다.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 셜리 잭슨, 차오, 그리고 작품 속의 화자인 소설가까지도.

 

 호텔다웠던 호텔, 한반도의 현관과도 같았던 제물포의 명소, 대불호텔은 이미 허울뿐인데도 이 사람들이 이 장소를 저마다의 이유로 붙잡았던 탓에 이 호텔은 꼭 유령 같은 꼴로 너무 오래 무너져야만 했다. 이름은 있으되 실체가 없는 이 호텔이야말로 이루어질 수 없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열망들을 은폐하거나 의탁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대불호텔이 호텔이 아니었던 덕분에 어떻게든 한국을 벗어나려는 고연주도, 자기 자신만 아니라면 그 무엇이 되더라도 상관없었을 지영현도, 어디에도 없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뢰이한도 이 호텔 속에 스스로를 가둘 수 있었다. 애초에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셜리 잭슨만이 이들의 운명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을 뿐이다. 한반도에서 태어나 한반도에서 자란 나머지 인물들은 끝내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사라져 버린 호텔에 앞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을 내맡기는 것이 저마다의 계획이나 원념(怨念) 혹은 염원이라고 믿었겠지만 그것은 결국 각자 다른 양식의 자폐(自閉)였을 뿐이다.

 

 가뜩이나 막막했던 1940~1950년대의 한국에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고, 또 그런 처지라는 것조차 얼마나 제각각이었던지 생각해 보면, 이 호텔 아닌 호텔에 갇힌 인간들의 두서없는 요설이야말로 꽤 자연스러웠다. 애초에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채 구조에서 튕겨진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든 온전히 조리 있게 말해 주기를 요구하는 것 역시 조리가 없는 소리이기는 매한가지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대불호텔, 중화루에 살면서도 이곳을 발판으로 도약할 궁리를 했다거나, 영원히 이곳에 머물기를 바랐거나, 아예 반드시 이곳에 돌아오기를 꿈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에게 어떤 가지런함을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간신히 형태를 부여잡고 있는 안개, 결국 유령이 될 호텔과 함께 어떤 뜻이든 이루어 보려는 자신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외면한 채, 마냥 반복하고 변주한 그들의 희망 역시 유명무실했던 까닭이다.

 

 안개를 딛고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안개를 붙잡아서 놓치지 않거나 처음 만났던 꼭 그 안개를 찾아내려는 바람은 그게 무엇이든 안개만큼이나 혹은 안개보다도 더 부질없다. 그 자체로 유령인 공간에서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곳이 자신에게 어떤 실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애처로운가 하면 그악스러웠다. 유령 속에 갇혀서 자신은 너무나 또렷한 목표가 있다고 부르짖는 유령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중화루로 대불호텔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던 뢰이한처럼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려는 삶에는 어떤 악의도 원망도 없지만, 그렇다고 선의나 희망이 가득하지도 않다당연하게 이루지 못한 소망이 그 실패의 장소를 떠나지 못한 채 유령처럼 맴도는 까닭이다. 대불호텔을 향한 뢰이한의 염원이 차오에게로, 다시 이청화와 람청루로 이어지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필연이듯이, 그 필연은 뢰이한의 실패와 그 뒤에 남겨진 김보애와 박지운의 상흔과 실상 무관하다는 것 역시 필연이다. 유령을 향한 열망이 또 다른 유령이 되고 그 실패한 열망의 상처는 또 다른 유령이 된다. 유령은 오직 유령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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