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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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한 권력자가 악한 추종자들을 만들고, 악한 추종자들은 악한 권력자를 키운다. 안희정이 저지른 성범죄를 부인하고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은 그의 추종자들을 보면 그 집단의 정점인 안희정이 능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를 인물임을 알 수 있고, 임면권자의 위력으로써 약자인 피해자들에게 성범죄를 자행한 안희정을 보면 그의 집권과 그를 따르는 조직의 영달만을 꾀한 추종자들이야말로 안희정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그 위력의 핵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권력자와 추종자의 악랄함이 서로 나뉠 수 없고, 권력자는 추종자가 저지르는 범죄의 배후가 되고, 추종자는 권력자가 저지르는 범죄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김지은 씨의 고통스러운 기록에서 거듭 확인했다.

 

안희정의 참모들 중 일부는 감옥에 다녀오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안희정이 대선 자금 수사를 받고 감옥에 갔던 일은 조직에서 우상화되어 있었다. 안희정은 대의를 위해 감옥에 다녀왔다며 훈장처럼 이야기했고, 주변의 오랜 참모들은 수시로 부하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와 같은 언급을 했다. 안희정을 대신해 감옥에 다녀왔다는 한 참모는 성골로 대우받았다. 법과 원칙보다 조직을 위한 희생이 중요한 곳이었다.-108

 

 개인의 인권보다 조직의 안위를 중시하는 개인과 집단을 불신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 까닭에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인권, 노동자의 권리에 특히 민감하다고 자처했던 안희정과 그를 둘러싼 집단이 실제로는 오직 안희정의 집권과 조직의 영달에 집착할 정도로 지극히 폐쇄적, 이중적이었다는 이 책의 지적만으로도 안희정과 그를 둘러싼 집단들의 도덕성, 윤리 의식을 의심하기에는 충분했다. 단순히 권력자와 추종자의 관계만으로 이들이 모두 악랄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권력자-추종자의 조직이 자신들의 목표 혹은 대의를 위해 구성원들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그런 착취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은폐할 정도로 강한 폐쇄성을 띤다면, 그 권력자와 추종자, 집단 전체는 사악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친구가 내게 말했다.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영부인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시 한 번 고마워." 민망할 정도였다. 서글펐다. 내가 그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일한 시간들이 스쳐 갔다. 온 몸이 서늘하고 머릿속은 스산해졌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고통은 계속될까? 벗어나고 싶다.-279

 

 그런 까닭에 이런 폐쇄적 조직, 수직적 관계, 위계적 질서, 이중적 행태 속에서 안희정이 저지른 성폭력의 피해자인 김지은 씨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까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중적인 행태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직은 철저히 폐쇄적일 수밖에 없고, 조직이 철저히 폐쇄됐음을 확신하는 까닭에 권력자와 그 측근 구성원들은 조직을 권위적, 자의적, 폭력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조직의 보위를 위해 조직의 병폐를 은폐하는 조직은 바로 그 철저한 통제 때문에 결국은 파탄에 이른다. 이 과정은 필연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너무도 큰 피해를 입는다.

 

 이 사회의 정의는 오직 이 필연적이며 정당한 피해자를 보호하고 그와 연대하는 수준과 방식에 달려 있다. 김지은 씨와 같은 피해자가 사회의 가장 기만적이고 폭력적인 조직과 그 지도자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 피해자, 생존자, 고발자가 자신의 노동자로서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안희정의 이 사건의 경우에는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안희정과 김지은 씨가 소속되었던 충청남도와 안희정을 도지사로서 공천한 동시에 김지은 씨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조, 조장한 인물들이 소속된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실질적, 도의적인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번 안희정의 모친상에서 청와대와 민주당이 보인 한심하기 그지없는 행태를 생각하면 무망한 기대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책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수행비서를 할 때 안희정에게 꾸중을 듣고 욕도 먹었지만, 안희정 팬들에게는 더 심한 욕과 위협을 받기도 했다. 저런 깐깐한 년, OO, 지사 옆에 붙어 있는 년, 비서년, 여자수행년...... 인수인계받은 원칙대로 일했지만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이전 남자 수행비서들이 듣지 않았던 욕을 더 들어야 했다.-223

 

 애초에 안희정이 제기했던 여성, 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 및 신장에 대한 의제들이 그가 이끈 조직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면, 최소한 김지은 씨의 고발 이후에 안희정 지지자들이 자행한 2차 가해만큼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희정과 그의 조직이 번지르르하게 내놓았던 그 의제들이 얼마나 형식적, 이중적, 정치적인 도구에 불과했는지가 바로 이 사건에서 드러났다. 애초에 지지층을 확대하고 유인하는 선전 문구였을 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도자인 안희정은 물론이고 그의 측근과 추종자 중 절대 다수도 어떤 구체적인 인식도, 방향도 없었다. 모든 것은 대권, 집권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기에 그 목표가 좌절되자 안희정이 저지른 범죄와 그 이중성에 대한 어떤 자기반성도 없이 피해자인 김지은 씨를 실패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어떤 주장을 했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런 행태는 불가능하다. 권력자와 추종자를 관통하는 이 표리부동하고 저열한 행태는 수행비서 시절의 김지은 씨를 향한 안희정 팬들의 태도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올해 99일로 안희정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지 1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오거돈 부산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이어 성범죄 혐의를 받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특히 한국 정치인 중 성 윤리 인식과 성 평등 실천에서 단연 앞서가는 인물로 자타가 공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저지른 성추행에 대한 고발, 그리고 그에 대한 어떤 의미 있는 대응도 없이 오직 가해, 은폐, 추모만을 마지막 목적으로 삼은 듯한 박원순의 황급한 자살은 한국의 권력자들이 안희정 사건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안희정을 고발한 후에 피해자 김지은 씨가 겪은 엄청난 고난이 피해자들의 입을 막아 주리라 기대했을 수도 있고, 강대하며 엄연한 미래 권력의 성 범죄를 고발한 김지은 씨와 같은 사례는 너무 희소해서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자신했을 수도 있으며, 자신이 위력으로 저지른 성 범죄 정도는 안희정보다 훨씬 가벼워서 별 문제가 없으리라 확신했을 수도 있지만, 이미 자신이 누리는 권력에 취해서 어떤 의식도 없이 성 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납득할 만한 해명도 변명도 남기지 못한 박원순의 죽음을 생각하면 마지막 추측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전략) 병장을 웃기는 이등병의 마음을 가져라, 공식 일정 이후 시간, 기업, 친구, 여자 이야기는 주변에 함구하라, 특히 여자 관련해서는 인수인계서 메모에서도 삭제해라, 단어 언급조차 하지 말고 어디에 쓰지도 마라, 보고 듣고 알아도 비밀을 유지하고 반드시 함구하라, 중요하니 재차 강조한다 (...)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인수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사님 기분이다. 여기에 별표 두 개를 그려라, 인수인계 사항들은 모두 지사님 기분을 맞춰드리기 위한 것이다.”-90

 

 대권을 목표로 삼은 미래 권력자 박원순이 저지른 그 모든 성 범죄는 자신의 위력과 권력에 따라오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한 지배와 복종과 의전의 절차였다. 그런 까닭에 피해자가 박원순의 조직과 위계질서를 벗어나서, 시장의 집무를 보좌하는 것으로 가장한 그 모든 절차가 실은 위력을 이용한 성 범죄라는 사실을 고발한 것만으로도 그는 어떤 설명의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이 저지른 범죄들로부터 영원히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박원순 그리고 안희정은 자신들이 스스로의 위력에 기반해 저지른 그 모든 성 범죄가 엄연한 범죄라는 사실을 몰라서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저지르는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저지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거대한 권력을 누리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막강한 권력을 쥘 수 있는 자신의 조직 내에서, 그 조직의 정점에 선 자신과 자신에게 복종하는 그 조직 구성원 간에는 이것이 충분히 타당하며 가능한 행위이고, 이 조직 밖에서는 성 범죄이지만 이 조직 안에서는 성 범죄가 아니라고 확신했을 뿐이다. 적어도 자신의 조직 내에서만큼은 자신은 이런 성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저질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안희정의) 지인이 감장을 하는데 가뭄과 홍수로 고춧가루를 구하기 어렵다 하니 좋은 고춧가루 10근을 사서 보내라고 시켰고, 가족에게 줄 간식과 선물도 내가 사 오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 비용들은 수행비서의 사비로 내야 했다.-100

고통스러웠던 일은 노동자로서 내가 할 이유가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안희정이 아들과 가는 요트 강습을 예약하거나 의약품을 대리 처방받아 전달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러 주위에 어려움을 토로하면 비서는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사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105

 

 박원순과 안희정이 광역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누린 무소불위의 권력이 그들을 이런 범죄자로 만들었다. 자신의 권력과 조직은 조직 내의 범죄를 철저히 은폐할 수 있고, 은폐할 수만 있다면 조직 내의 범죄는 더 이상 범죄일 수 없다는 무의식이야말로 권력이 권력자과 이 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이다. 이 무의식으로 인해 안희정과 박원순 같은 권력자는 어떤 의식도 없이 자신의 조직, 영역 내에서는 그 외부와 철저히 다른 인간으로 살 수 있었고, 또한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 되었다. 이 책이 있어서 현직 재선 충청남도지사이자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던 안희정이 누렸던 무소불위의 권력과 광범위한 인맥, 조직 내에서 오직 그 한 사람의 심기(心氣)’를 위해 구축된, 업무의 일부를 빙자한 온갖 전근대적 의전과 공사 혼동을 비롯한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명령-복종의 연속을 남김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권력과 위력으로 자행한 성폭력 피해자의 기록으로서의 이 책의 탁월한 지점은 권력자가 저지른 범죄 행위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될 수 있는 정치적, 행정적, 사회적 맥락을 묘파해냈다는 것이다.

 

안희정은 성 평등을 지지하는 진보적 지도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었지만 내가 본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권세를 잘 알고 누리는 사람이었다. "내 위치에 이런 것까지 해야 되겠느냐"며 일정을 당일에 취소하기도 했다. 국제 행사였던 한 토론회 참가 일정을 바로 전날 취소하기도 했는데, 패널들이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거기서 반문할 수 있는 이는 그의 주변에 없었다. 나를 포함해 그의 주변인들은 그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대령하기 위해 노력했다.-105

여자 정장에는 주머니가 많이 없었지만, 수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다녀야 해서 위 주머니와 안감의 안쪽 주머니까지 보면서 샀다. 주머니가 없는 옷에는 내가 직접 달기도 했다. 안희정의 물건을 모두 지참하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안희정은 슈트발이 안 산다고 절대 양복에 물건을 넣지 않았다. 휴대폰도, 담배도, 라이터도, 명함도, 신분증도, 휴지도, 펜도, 안경닦이까지 모두 수행비서가 가지고 다녀야 했다. 손으로 부르면 달려가 원하는 걸 전달해야 했다. 나는 만물트럭이었다. 사람들이 내 주머니에서 자꾸 뭐가 나오는 걸 보며 놀라워했다. 가방은 슈퍼를 차려도 될 정도였다. 내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 흔한 화장품 콤펙트도 없었다.-227

 

 이 책 덕분에 현직 3선 서울특별시장이며, 역시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던 박원순이 한때 성 평등의 길잡이나 마찬가지였던 스스로의 이력을 그토록 아무렇지 않게 배반했던 이유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특별시청과 권력자로서의 사적 조직 내에서 박원순이 누린 권력과 위력, 지배-복종의 관계는 안희정과 다르지 않았고, 그런 까닭에 그는 자신의 조직, 영역 내에서는 그 외부와 다른 원칙이 적용될 수 있으며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부류였던 것이다. 여러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막대한 책임과 권력을 위임받은 선출직 공무원들이 더 효율적으로 그들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공한 다양한 편의와 의전, 부속 인력 및 그 임면권이, 그저 이 인사들에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권위주의, 자신의 위신과 영달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이용할 수 있다는 오만방자한 자의식과 왜곡된 권력관만 조장한다. 지금이라도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보좌, 의전 절차 및 관련 인력의 처우에 대한 포괄적인 점검과 폐습의 타파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낙연 민주당 대표 모두 책을 즐겨 읽고 시의적절한 책을 대중에게 추천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 소속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연달아 3명이나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거나 법적 처벌을 받은 이 시점에서 그들이 솔선해서 읽고 추천해야 할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자당의 지자체장이 저지른 성범죄와 고발된 성범죄 혐의, 그것이 초래한 행정적 공백을 책임지는 가장 타당한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부터 이 책을 읽고 김지은 씨의 간절한 목소리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두 사람이 이 책을 읽지 않고 다른 책을 읽거나 권하는 것은 가증스럽고, 이 책을 읽고서도 권할 수 없다면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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