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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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의 무분별한 선동을 주워 담는 데는 수백 개의 정리된 문장이 필요했다.- P10

살아내겠다고 아등바등 지내온 시간들이 흰 종이 위의 활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위로받았다.- P11

피해를 당한 이후 죽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살고도 싶었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았다. 살기 위해 잊어야만 했다.- P14

사건과 일을 철저히 분리했고, 가해자 안희정과 직장 상사 지사님을 철저히 분리했다. 그렇게 가해자에게서 도망치지도 소리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붙들려 살았다. 이것이 ‘해리 증상‘이라는 것도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P15

안희정의 참모진들은 나를 ‘순장조‘라고 불렀다.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그대로 무덤에 묻히는 왕의 물건처럼, 수행비서는 왕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행비서는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알고,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죽음으로 그 입을 끝까지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P15

"제가 감히 어떻게 미투를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내게서 미투를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결국 내 대답으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 후 안희정은 내게 다시 성폭행을 가했다.- P17

범죄가 끝나고, 새벽 2시가 넘은 늦은 시간 안희정은 내게 말했다. "아침에 아내가 오기로 했으니 청소를 하고 나가라." 청소 도구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었다. 먼지 제거 테이프로 침구를 정리했다. 내가 청소하고 있을 때 골프 채널을 보던 안희정이 빨리 안 나가고 뭐 하냐며 재촉했다. 청소가 늦어져 언짢았던 것 같다. 그 격앙된 목소리에 놀란 나는 청소하며 주운 한 줌의 쓰레기들을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몰라 가방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밖으로 나왔다.- P17.18

K는 그 전부터 안희정을 매우 어려워했다. 늘 일을 하러 들어갈 때 나나 다른 여자 동료인 Y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영상 촬영 때 함께 있어달라고 했다. 여성이 있어야 촬영 분위기가 나아진다는 이유에서였다.- P20

하지만 내가 안희정의 ‘사생팬‘이었고 안희정이 보고 싶어서 (안희정이 KBS ‘명견만리‘를 촬영 중이던) 방송국에 갔다고 안희정 측은 주장했다. 동료 K도 그런 맥락으로 이야기했다. K는 자신이 내게 업무 도움 요청을 했고 내가 도와줘서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주변 동료에게 했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그 말이 달라졌다.- P20

사심으로 일을 한, 지사의 사생팬인,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 그리고 나를 향한 그런 프레임화는 이후 이어진 지난한 재판 과정 내내 그들의 집요한, 거의 유일한 전략이었다.- P21

안희정은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고 미래 권력이었다. 미래 권력은 현재 진행형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청와대부터 정재계에 이르기까지 안희정과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차기 대통령이라 여겼다. 차기 1위라는 여론 조사 결과가 뒷받침해주고 있었고 실제로 사람들은 안희정을 그렇게 대했다. 학생운동과 386이라는 끈끈한 연대도 있었다. 안희정은 그에 상응하는 의전과 예우를 받았다. 안희정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유명세를 함께 누렸고, 외부의 많은 사람이 그와 알고 지내고 싶어했다. 사회 곳곳과 관계 맺어 생물처럼 다각도로 뻗어 나가는 살아 움직이는 거대 조직, 그 자체가 안희정이었다.- P22

후배와 나눈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이전에 나는 후배에게 안희정의 눈빛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그가 내게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이다. "언니가 전에 말한 지사님이 쳐다보는 그 눈빛, 온몸을 훑는 그 느낌이 뭔지 알겠다"며, 안희정이 그를 계속 부르고 찾는다고 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만 도망쳐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로 끝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이 악몽 같은 소굴에서 벗어나도 다른 피해자는 계속 생길 것이다.- P25

기자를 만나면서도 안희정이 사전에 손을 쓰기 전에 무사히 고발할 수 있도록 보안을 지켜줄 것을 요청했다. 안희정이 알아버리는 순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제발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바로 다음 날 안희정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다. 나는 이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안희정의 네트워크를 잘 알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든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다.- P27

그러나 방송국에 들어서는 순간 주저했다. 피해 사실만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면 평탄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방송을 앞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주저하고, 용기 내고, 다시 주저하고 용기 내기를 반복했다. 이를 악물었다. 죽어서 사는 길에 들어섰다.- P29

앵커의 첫 질문을 받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조명 빛이 점점 커지며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어지러웠다. 나를 여기에 앉게 한 모든 상황이 다 원망스러웠다.- P30

김지은/충남도 정무비서: (전략)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늘 수긍하고 그의 기분을 맞추고 항상 지사님 표정 하나하나 일그러지는 것까지 다 맞춰야 하는 게 수행비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원해서 했던 관계가 아닙니다. (JTBC 인터뷰)- P32

김지은: 저는 지사님이랑 합의를 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지사님은 제 상사이시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런 사이입니다. 저랑 지사님은 동등한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JTBC 인터뷰)- P33

김지은: 제가 증거이고 제가 지사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다 얘기할 것입니다. 제 기억 속에 모두 다 있습니다. (JTBC 인터뷰)- P39

언론이 아닌 법정에 증거로 제출한 모든 것이 여과 없이 자극적인 소비재로 가판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P51

오랜 시간 정신을 부여잡고 진술하는 건 숨이 막히게 힘들었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였지만 내가 고발한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끊임없이 질문받고, 답을 했다. 밤을 새고 나왔을 때 나와, 번갈아가며 조사를 함께 한 변호사들,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한 활동가 모두 기력이 바닥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떄보다 이상하게 더 생생해져 있었다. 켜켜이 묵혀 놨던 진실을 드러내놓으니 그제야 살아 있다는 게 느껴졌다.- P55

2018.03.21
심리 분석 전문가를 만나 하루 종일 심리 분석을 받았따. 수많은 질문지에 답하고 수많은 테스트를 받았다. 힘겨운 기억들을 꺼내야 했기에 분석을 받는 동안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P57

마치 조직적으로 움직이기라도 하는 듯 빠르게 만들어지고 퍼 날라지는 가짜 뉴스들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수천 명이 가입한 안희정 지지 카페나 유튜브에 누군가 허위 사실을 만들어 올리면 그것은 그대로 사실이 되어 순식간에 수만 명의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P60

(전략)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소신으로 리더의 정치관을 선택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캠프에 참여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은 도려내고 싶은 시간으로 기억될 뿐입니다. (후략) (2018.03.11 편지)- P61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유명인들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안희정과 자신을 한팀이라 불렀다. 안희정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다. 그런 세상이 있다는 걸 보아왔기에 나를 드러내지 않고 수사 기관에 수사를 요청한다면, 이 사건이 덮이거나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지켜봐달라고 말하는 것만이 내가 죽지 않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거대 권력 앞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P64

성폭력 사건 본질 그대로, 진실 그대로 알려지길 원했다.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을 테니 제발 사건에 집중해달라, 제발 제대로 수사해달라, 진행 과정을 지켜봐달라 애원하는 마음으로 나를 방송에 드러냈다.- P65

허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 거짓은 생명력이 강했다.- P72

그런 구조 속에서 계약 연장으로 살아남은 선배와 정규직 선배들이 해준 공통의 조언은 ‘공부‘였다. 전문 학위를 따야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며 학업을 권유했다. 그 조언을 듣고 빚을 내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루 업무를 마치면 곧장 학교로 가서 공부를 했다. 예술학 석사학위를 통해 생존을 조금 연장할 수 있었고, 행정학 박사과정을 통해 계급을 약간 올릴 수 있었다. 지식과 지혜를 얻기 위한 공부이기보다는 계약직으로서의 삶을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분투였다.- P75

지내면서 알게 되었으나 캠프의 사람들은 대부분 말로만 일을 하고, 정작 움직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P78

여전히 정치라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캠프에서 나는 일을 미친 듯이 하는 아주 괴이한 존재였다. 동료들은 나를 ‘일의 노예‘라고 불렀다.- P78

일을 하면서 캠프가 정부 부처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캠프는 단순히 일하는 능력이나 학위 같은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판을 중요시 여겼다. "누가 그러는데 걔 어떻다더라"라는 평판조회가 비일비재했기에 선배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누군가의 눈 밖에 나면 그것은 곧 커리어의 끝을 의미했다.- P78.79

종종 위법과 편법을 목격했다. 선거라는 것이 원래 이런가 싶었다. 알아서는 안 되는 일투성이인 무서운 곳에 온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많았다.- P79

경선이 끝난 뒤, 안희정 조직의 결정에 따라 문재인 캠프에 가서 일했다. 그곳에서도 홍보 업무를 맡았고 선거는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선배들로부터 충남도청에서 일할 것을 제안받아 도청에 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게는 ‘안희정 사단‘이라는 꼬리표가 문재인 캠프에 있을 때에도 나는 ‘안희정 캠프‘ 사람으로 분류돼 소외되었다. 정치권에서 출신 꼬리표를 떼는 것은 흡사 호적을 말소하는 것과 같이 여겨졌다. 다시 정부 부처에 들어가는 일도 어려워졌다. 내가 정치적 중립을 가져야 하는 공무원 직급에서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가진 사람이 되었는지 뒤늦게 알게 됐다.- P79.80

캠프에서 일할 당시 캠프 안의 분위기는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모두가 후보 앞에서는 경직됐다. 후보의 말에 대들지 말고 심기를 잘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를 선배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다. 정치권에 온 이상 한번 눈 밖에 나면 다시는 어느 직장도 쉽게 잡지 못한다는 말도 늘 함께였다. 이력서보다 선배들의 추천과 입김이 채용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정치권의 평판 조회는 무서운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봐야 했고 웃어야 했다.- P81

불공정함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곳이 더없이 세상의 부정과 불의를 합축하고 있었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대의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사사로움으로 치부됐다. 때로 용기 내어 조직의 문제에 대해 말하면 그저 견디라고 했다.- P81

2017년 7월, 별정직 공무원으로 도청에 들어가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채용이라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충남 홍성으로 내려갔다. 전임 수행비서는 운전비서로 시작해 지사를 8년 가까이 모셨지만 해고 일주일 전에 통보를 받고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전임자에게는 부양해야 할 두 명의 자녀와 아내가 있었지만 생계를 위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별정직 공무원의 임면 권한은 절대적으로 기관의 도지사에게 있다는 걸 실감하며 일을 시작했다. 수행비서의 업무 특성상 통상 두 달이 걸리는 인수인계도 5일 만에 끝났다.- P83

도청에서 여성 수행비서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우려와 반발이 컸다. 고된 업무이고 조정 능력이 필요하니 남자가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중략) 우려대로, 도청 조직을 처음 경험하고 부족한 인수인계를 받은 내가 수행비서 역할에 적응하는 과정은 너무나 어려웠다. 부서 업무를 조율하고 지사의 지시를 전달해야 했지만, 내게 협조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것이 지사의 지시 사항이라고 할지라도 여성, 그것도 조직의 신참 여성이 전달하는 지시를 제대로 따르려 하지 않았다.- P84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매일매일 유리 조각처럼 깨지는 정신을 쓸어 담으며 버텼다. 수행을 하며 안희정이 주변의 친한 여성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야했다. "지은아, 수행비서는 봐도 못 본 거야." 내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다른 여성들과 스킨십을 했다. 그런 모습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일은 혼란스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업무 현장에서 다들 내가 여자인게 문제라 말했으니, 나는 그저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게 하는 능숙한 직원이 되어야 했다. 가르침받은 대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 P85

안희정에게 첫 피해를 당할 때쯤에는 이미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직 대권만을 바라보는 사람들 속에 갇힌 채, 어디에도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는 상태였다.- P87

제일 처음 인계받은 내용은 지사가 구두를 편히 신을 수 있도록 어떤 위치에 어느 정도의 각도로 놓아야 하는지였다. 지사가 공관에서 나가서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것이 다 수행 업무라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이 지사의 구두였다. (중략) 수행비서는 지사보다 2시간 일찍 일정을 시작해 1시간 늦게 끝마치는 패턴이었다.- P88.89

"(전략) 병장을 웃기는 이등병의 마음을 가져라, 공식 일정 이후 시간, 기업, 친구, 여자 이야기는 주변에 함구하라, 특히 여자 관련해서는 인수인계서 메모에서도 삭제해라, 단어 언급조차 하지 말고 어디에 쓰지도 마라, 보고 듣고 알아도 비밀을 유지하고 반드시 함구하라, 중요하니 재차 강조한다 (...)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인수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사님 기분‘이다. 여기에 별표 두 개를 그려라, 인수인계 사항들은 모두 지사님 기분을 맞춰드리기 위한 것이다."- P90

안희정은 전지적 상사였다. 특히 비서는 그의 기분을 건드리면 안 된다. 기분이 중요하다는 말은 무형화된 권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가 누군가를 자를 때는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는 한마디면 됐다. 특히 별정직은 도지사에게 절대적인 채용과 면직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지사의 말 한마디면 바로 해고될 수 있었다. 상사의 기분에 따라 잘릴 수 있었다. 비서의 중요한 역할이 지사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라고 인수인계를 받을 때도 여러 번 들었다. 실수로라도 기분 나쁘게 하면 안 된다고 당부받았다. 인사권자의 ‘기분‘이 업무의 핵심이었다.- P90

안희정은 침묵만으로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침묵만으로도 불편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지위를 갖고 있었다. 문자 연락에 답이 늦으면 바로 "..."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 이 메시지는 내 전임자들에게도 사용하던, 무언의 질책이 담긴 불편한 심기의 표현이었다.- P90.91

보안, 함구, 비밀 유지를 원칙으로 지사를 보필하면서 지사의 마지막 방패가 되는 사람이 수행비서라고 전임자에게 들었다. 지사도 인수인계 당시 나를 전 일정에 배석시키며 말했다. "너는 직언하지 말고 모두가 NO할 때 YES해야 한다. 너는 나의 보조 이거 장치로 작동하면 된다." "너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내 그림자다. 내 눈을 봐라. 나는 눈으로 얘기한다. 너는 나를 지켜야 한다." 그런 말들을 세뇌하듯 반복했고 전화가 오거나 뭔가를 할 때 항상 비밀 유지를 강조했다.- P99

(안희정의) 휴가 때나 명절에 아들과 요트를 타러 가거나 가족끼리 놀러 가는 일정의 숙소, 식당, 체험 활동 등을 알아보고 예약해야 했고 지사의 친구 가족이나 지인들이 묵을 장소도 알아봐야 했다.- P100

맥주, 담배 같은 개인 기호품도 수행비서가 대신 사서 숙소나 집무실로 가져다주어야 했다. 미투 이후 나는 "왜 네 번이나 지사의 방에 갔으냐"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지만, 그날들은 사적 심부름 때문에 불려 갔던 수백 번 중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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