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 그림과 원리로 읽는 건축학 수업
로마 아그라왈 지음, 윤신영 외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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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구상해서 건축했는지 말하는 책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건축해서 사용하는지 말하는 책은 아직도 적다. 사람들이 공학적 결과보다는 예술·인문적 영감 비슷한 것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이 방향에서 일반 대중들의 관심과 이해를 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글을 쓰기 어려운 탓도 있을 것이다. 어떤 연유로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생각해 냈는지에 비하면, 어떤 자료와 방법으로 그 건물을 지어 냈는지는 조금은 덜 매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멋진 건물들을 여럿 보고, 관련된 책들도 적지 않게 접하며 의 영역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나름대로 충분히 살펴보았다고 생각한 까닭에, ‘어떻게의 영역이 더 궁금해졌다. 그럴 때에 마침 이 책이 나왔다.

 

사람들은 구부러진 캐노피와 기다란 실루엣 그리고 독특한 파사드 등 설계에 투영된 야망과 상상력에 감탄하고 반응하며 셀카봉에 장착한 휴대전화 속의 수많은 사진에 드라마틱한 배경으로 남겨둔다. 이것은 건축학적 드라마로, 공학이 얼마나 낭만적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219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구조 공학자가 쓴 이 책은, 철저히 어떻게에 집중한다. 이 저자는 오늘날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는 현대 건축의 규모와 개성이 단순히 건축가 한 개인의 설계, 의도를 넘어선 공학의 지속적 성장과 혁신의 결과임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인물인 까닭이다. 그는 (storey)’부터 다리(bridge)’까지 지금 사람들이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건축 공학의 요소들을 소개하고 나서, 앞으로 변화할 건축과 공학의 미래를 일별하는 으로 마무리한다. 이 책만으로 지금의 건축과 공학을 낱낱이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낯설었던 방향에서 건축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가 설계한 건축물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고 건물 안에서 일하며 집에서 살아간다. 내 작품이 자신들에게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걱정은 꿈에서도 하지 않는다. -20~21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엔지니어의 꿈이다. 건물이 안전하게 설계되어 거주자들은 건물이 서 있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복잡한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자신의 일을 편안하게 계속하는 것 말이다. -56~57

 

 애초에 공학자, 엔지니어의 글을 읽은 경험 자체가 많지 않았던 까닭에, 공학자이자 여성으로서 이 분야에서 활약한 저자의 생각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온 점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엔지니어들이 바라는 바는, 이용자인 시민들, 즉 공학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서도 편안히 지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오직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그 결과물, 이 책의 경우에는 건축물로서만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고풍스럽고 교만한 전문가주의의 소산이라고 말할 구석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게 단정 짓고 말기에는 건축·구조 공학자들이 담당하는 결과물이 외부인들, 문외한인 시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그 중요성이 너무도 크다. 사회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 전문성에 대한 책임감을 밝힌 구체적, 자발적이며 견고한 문장이 아무래도 다소 낯설었던 탓이라고 여긴다.

 

건축 기술과 구조 시스템 그리고 계산 능력이 매년 향상되고 있다. 구조공학자가 되기에 더없이 신나는 시기다. -171

회의실에 들어가면 나만 여자인 경우가 많다. 가끔 세어보면, 남자 11명에 나, 아니면 남자 17명에 나다. 대개는 남자 21명에 나였다. (중략) 나는 미스터 아그라왈 씨에게라고 적힌, 일과 관련된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 내 이름에서 성별을 유추할 수 없다면 그냥 남성이라고 추측하는 편이 낫다. 그게 맞을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이니까. 실망스럽게도 나는 이 직종에서 소수에 속하기 때문이다. -263

 

 지금 한국, 특히 서울에서 곳곳에 지어졌고, 또한 지어질 여러 특별한 건물들을 생각할 때, 건축 기술과 그 구조의 시스템이 크게 발전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화하리라는 것은 비전문가조차도 짐작할 수 있다. 건축 공학 기술의 발달을 시공간적, 입체적으로 이 책에서 소개한 저자 역시, 그런 까닭에 자신의 일이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지리라는 기대를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남성이 주도했던 이 분야에서는 여전히 소수인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여러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궁극적으로는 끈기와 탄력성으로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건축, 공학이라는 분야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중, 사회의 이면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전문성과 원칙을 중시할 수밖에 없기에, 그런 개인적 자질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건축가, 공학자가 독립된 까닭에, 그 안의 여성들이 고립될 수도 있다는 의문이 남았다.

 

재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공학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사람들은 때로 콘크리트를 구식 재료라고 생각한다. 고대에 뿌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략) 아마 언젠가는 콘크리트를 완전히 대체할 새로운 재료가 등장할 것이다. 한편으로 계속 늘고 있는 인구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도시들이 엄청난 속도로 지어질 것이다. 콘크리트 건물은 앞으로 오랫동안 지평선을 빛낼 것이다. 내가 쓰다듬을 콘크리트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135

새로운 공학이 항상 크고 담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변변찮은 근본에 의지할 수도 있다. -309

 

 결국 무수한 재료들이 아래서 위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누적되어야만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듯이, 그 건축물의 이면에 있는 공학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무수한 시행착오와 지식, 원리가 축적되어서 이루어진 학문이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 거듭 배웠다. 건물이 완성되고 나면 가장 밑바닥의 가장 작은 일부분을 굳이 살피지 않게 되듯이, 오늘날처럼 웅장 휘황한 건물들이 즐비한 시대에는 도리어 그것을 세운 건축·구조 공학을 의식하기가 더욱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물며 그 세계는 의식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이들이 모여 있으므로 더더욱. 그럼에도 이 책은 바로 지금 이 건축의 기초와 원리를 조금씩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알려 주었다. 기초의 시작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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