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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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자주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것일까? 2004년부터 지금까지 이 서재 블로그를 오랫동안 써 왔고 그 다음에는 트위터에서 꾸준히 떠들고 있지만, 어디서나 다른 이용자들이 여성으로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이 그렇게 생각한 경우가 아마 좀 더 많았던 듯도 하다. 애초에 스스로 여성이라고 말한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 보여야겠다거나, 보이고 싶다는 의도로 글을 쓰지도 않았는데도 너무나 당연하게 내가 여성이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꽤 자주 보고는 한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상수의 입장을 압축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대답이 있긴 했다. 아무리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도 상수가 대답을 거듭하다가 지쳐, 군대 면제였어요,라고 하면 모든 게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37

 

 처음부터 여성으로 보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연애 상담을 해 주는 언니가 되어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게 된 반도미싱의 과장대리 공상수를 보며 내가 겪었던 소소한 오해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당연했다. 게다가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점도 그와 같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아버지는 전직 국회의원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못내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의 면모는, 결국 병역도 언죄다 페이지도 아닌 아버지와 그의 지위,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와 그의 죽음,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친구의 죽음에서 기인한다. 상수가 한국에서 칭송받는 이른바 남성성을 그렇게 우회하고서도, 어떤 성취감이나 뿌듯함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에 이 작품의 현재성이 빛난다. 지금 한국 남성이 그저 인간성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대단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모자라다는 사실을 섬세하면서도 명료하게 보여 주었다.

 

경애는 자기가 인생을 길게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기회라는 것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285

경애가 온종일 엎드려만 있는 유령 같은 학생이라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마음이 너무 강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해 있었을 뿐이었다. -279

 

 이야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도 간신히 사람 구실만 하면 얼마나 한심한지 납득시키는 것이 상수의 역할이라면, 경애의 역할은 그 빈 구멍들을 느릿하게 빠짐없이 막는 것이었다. 경애는 깊고 오랜 상처와 함께 살고서도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심지를 굳히며 성장해 왔다. 더 유복한 환경에서 같거나 비슷한 상처를 지닌 상수와 견주면, 경애가 얼마나 굳건한지 납득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애 역시 19세에 세상을 떠난 E의 존재를 직시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삶을 가누지 못했다. 어설픈 산주와의 너절한 연애가 그 단면일 듯하다. 모든 면에서 상수보다 충실하게 상실을 경험한 경애조차도 여태 비틀거릴 정도로 불시의 참사는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상수의 눈물만 남았다면 그저 감정 과잉의 원인이 되었을 과거가, 경애의 목소리 덕분에 여태 기억하고서도 끝내 치유하지 못한 그 고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물론 상처를 이기지 못한 상수 덕에 그것을 견딘 경애의 심지가 드러났으니, 둘 중 하나면 충분하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그들(경애와 상수)이 처음 서로를 식별했던 공장 뒤편의 그늘진 창고와 비교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성과는 별로 없고 자랑스러운 성공들은 자꾸 다음을 기약하며 미뤄질 뿐이지만 적어도 둘의 시간은 따로가 아니라 함께 흐르고 있었다. -292

 

 서로 무관할 두 사람을 희미한 사건으로 잇고, 그 단서를 겨우겨우 더듬으며 양쪽 끝의 경애와 상수가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과 구도가 여러모로 절묘한 작품이었다. 이 흐름이 둘 중 어느 한 사람, 특히 남성인 상수의 노력에 기대지 않고 각자가 제 역할을 하며 이루어져서 더욱 빛났다. 경애와 상수가 저마다 자신만의 실패를 딛고서야, 서로에게 향할 수 있었다. 그들은 상대를 기다릴 때조차도 이미 조금씩 가까워졌던 셈이다. 뛰어넘지 않고서 먼 길을 돌아온 덕에 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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