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謹弔 민주노동당
 
  2008-02-04 오전 9:39:39

 

예상했던 결과다. 비상대책위원회의 혁신안은 불필요한 수순이었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중의 눈앞에 이른바 '자주파'의 정체를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제 당의 상황을 CD로 구워 북한 공작원에 넘겨주는 해당 행위를 해도, 민주노동당에서는 결코 제명당하지 않는다. 이른바 자주파는 그냥 당기위에 올려 조금 제재나 하자는 자기들 측의 중재안까지도 부결시켰다.
  
  1.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른바 평등파들이 퇴장하면서 다음 안건 하나가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상정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북핵자위론을 주장했던 어느 간부에 대한 징계안이다. 하지만 혁신안의 대부분의 내용이 부결되었으므로, 설사 의결이 이뤄졌어도 징계안은 부결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게 정당하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이라는 얘기다.
  
  비대위에서 혁신안 부결을 불신임으로 간주한다고 했는데도 부결시킨 것을 보면, 입에 '대동단결'을 달고 사는 그들도 충실한 종북이라는 원칙(?)이 문제가 되면, 대동단결을 안 하고 싶은 모양이다. 박용진 전 대변인이 '혁신안이 부결되면 당이 깨진다'고 울먹이며 호소를 해도, 종북파들의 태도는 단호했다. 당을 깨면 깼지, 북핵의 정당성과 '본사'에 보내는 보고의 의무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태도의 분명함은 평가해줄 만하다. 사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이들이 대충 혁신안을 받아들여 사태를 무마한 후, 숨을 고르다가 기회를 봐서 다시 튀어나와 이제까지 했던 짓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자신들의 색깔을 명확히 드러냈으니, 앞으로도 대중들 앞에서 거짓말하지 말고, 제 정치적 목표와 정체성을 숨김없이 분명히 밝히기 바란다.
  
  '종북노선이 문제가 아니라 패권주의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종북노선과 패권주의의 관계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주사파들이 패권적 행태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종북노선의 관철을 위해서다. 당내에서 자신들의 종북행위에 제동을 거는 세력이 존재하니,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벌이는 작태가 바로 패권주의가 아닌가. 따라서 종북노선이 존재하는 한 패권주의는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손석춘 씨가 "통일운동에 찬물 끼얹지 말라"고 했던가? 북한에서 핵무기 만드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통일운동'이라면, 그런 통일운동에는 앞으로 찬물이 아니라 똥물을 끼얹을 것이다. 그는 또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한다. 그의 독특한 윤리 감각에 따르면, 제 동지들 신상 파악해 북한에 보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그걸 비판하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져버린 패륜 행위다.
  
  옆에서 김민웅 씨도 거든다. 내 기억에 2002년인가? 제 동생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난다며 민주당에 표를 몰아달라고 해서, 나와 설전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쟁 위기까지 고취하며 민주노동당에 표주면 사표가 된다고 했던 그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갑자기 민주노동당에 대한 살가운 애정을 드러낸다. 그새 그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종북파의 정체를 몰라서 그런 발언 했다면 용서가 되겠지만, 그들을 접해 본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이번 대회에서 종북파의 정체가 명확히 드러났는데도 앞으로 계속 이 그들의 행태를 옹호하고 정당화한다면, 앞으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종북파에게 갖춰야 할 인간적 예의가 있겠지만, 내게는 통일 되는 날 김정일 정권 아래 고생했던 북조선 인민들에 갖춰야 할 인간적 예의가 앞서기 때문이다.
  
  3.
  
  굶주린 북한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압록강을 건너다가 익사했다고 하자, 태연히 "남한에서도 여름에 익사 사고 나지 않냐"고 대꾸하던 이들. 동성애에 대해 묻자 버젓이 "자본주의적 퇴폐"라고 대답하던 이들. 북한에 갔을 때 안내원에게 노래를 하나 불러달라고 하자 지도원 동무에게 허락을 받고 노래를 하더라며, 이를 "집단주의의 미덕"이라고 찬양하는 이들. 미선이 효순이 끔찍한 사체 사진을 연하장(?)만들어 돌리는 이들. 이런 이들하고 같이 '진보'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몇 년 전에 내가 당에 절대로 주사파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을 때, 민주노동당 내의 모 인사가 "그들도 언젠가 변할 것"이라며 주사파들과 나의 화해(?)의 자리를 주선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주사파는 내게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민주노동당 가입을 권유하는지 자랑을 했다. "동지, 김 주석이라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했을 것 같소. 내 생각에 김 주석이라면 남조선 상황에서는 민주노동당을 했을 것이요."
  
  도대체 이런 사람들하고 진보정당을 같이 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내가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종북주의자들이 온갖 편법으로 민주노동당의 조직을 장악해 들어와도 징계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미 당시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때 내가 탈당으로써 경고했던 일이 지금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운동을 해 봤다는 사람들이 결국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말인가? 이것도 이해가 안 간다.
  
  이른바 평등파도 한때 망해가던 소련을 모델로 삼은 적이 있지만 동구의 몰락을 보고 생각을 바꾼 것처럼, 북한을 모델로 삼는 자주파도 언젠가 생각을 바꿀 것이다. 이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주사파의 본질을 모르는 얘기다. 주사는 이성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 어떤 경험적 증거, 어떤 정합적 논리, 어떤 상황적 변화를 들이대도 깨지지 않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4.
  
  오늘로써 민주노동당은 죽었다. '본사'와 연락을 방해하던 세력이 다 나갈 터이니, 이제 이름도 자기들이 애초에 원하던 대로 '민족자주당'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그들은 드디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그들에게 축하의 말을 보내는 바이다. 앞으로 '본사'와 더 긴밀한 협력 아래 '조국은 하나다', '당과 인민도 하나다' 철학을 힘차게 구현해 나가며, 앞으로 진보진영과 아무 관계만 없어 주기를 바란다.
  
  '북한에 정말 아사자가 생겼는가?' '아니면 미제의 공화국 모략 선동인가?' '북한의 핵무기가 정당한가?', '북조선에서는 정말 당과 인민이 하나인가?' '그래서 조선노동당을 비판하면 곧 북조선 인민을 모독하는 것이 되는가?' 이젠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제로 논쟁하느라 정력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평생 그렇게 믿고 살다가 죽게 내버려두고,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여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의제를 향해 진보를 하면 그만이다.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끝까지 막아보려고 남아 있었던 이들. 당신들의 생각과 충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으니, 더 이상 쓸 데 없는 노력을 접고 진정으로 현대적인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길에 나서라. 그리고 자신이 최소한 주사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 남한의 진보정당이 최소한 조선노동당의 지사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이제 미련을 털기 바란다.
  
  진보정당을 재건하는 과제가 생겼다. 다시 시작하려니 모든 것이 막막할 것이다. 하지만 8년 전의 상황을 기억해 보라.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운동권 내에서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수구세력에 대한 기대는 접어버리자. 그리고 앞으로 진보정당의 새로운 토대가 될 이들에게 눈을 돌리자. 사회에 진보적 역량은 충분하다. 그 역량은 이제까지 낡은 운동권 방식, 낡은 주사파 형식으로 표현되기를 거부해왔을 뿐이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새로운 진보정당에 참가할 뜻을 밝혔다. 남한의 진보운동이 드디어 거추장스런 주사파의 족쇄를 풀어버렸다. 몇 년 전에 버렸던 진보정당의 당원증 다시 주워들고 싶다. 오랜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힘든 길이다. 하지만 진보하기를 포기할 수 없다면, 끝을 알 수 없는 길이라 하더라도 걸음은 내디뎌야 한다. 거대한 위기는 동시에 위대한 기회다. 건설될 새로운 진보정당에 입당을 신청한다.

진중권/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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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 삼성을 보세요"
  [정치와 사람들① 진중권] "지지하는 대선후보는…오바마!"

2007년 대선 정국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정초(定礎)선거'라고 말들을 하지만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역설적 특징이 지배합니다.
  
  지식인들은 이런 정치현실을 개탄하면서도 말을 아끼고, 대중들은 아직도 마음줄 곳을 찾지 못해 부유합니다. 은퇴한 '올드보이'들의 컴백, 각 세력들의 '묻지마 이합집산'이 그 틈을 비집고 활개를 칩니다. 40일이 채 남지 않은 올해 대선은 아마도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들이 줄거리를 엮지 않을까 싶어 걱정입니다.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나름의 '눈'을 가진 인사들의 '입'을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해보려 합니다. 권력교체기의 정치란 현역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사람들>은 그런 취지에서 기획됐습니다. 선거, 그리고 우리사회의 변화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쯤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처럼 대중들의 호오가 뚜렷하게 갈리는 지식인도 드물다. 그에겐 '팬'이 많다. 동시에 그를 아주 미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두 가지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합리성'과 '풍자'.
  
  박정희, 수구 냉전주의, 마초이즘, 기독교 근본주의, 좌파 내 전체주의적 경향, 황우석…. 지난 몇 년간 진 교수가 상대한 우리 사회의 우상들이다. 상식과 합리의 가치가 걸린 싸움터엔 항상 그가 있었다. 논리와 풍자로 담금질한 언어의 검을 날렵하게 휘두르며 상대를 제압했다. 그에 대한 상찬과 증오는 그런 전투의 결과다.
  
  정치평론에서도 일가견이 있는 그이지만,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고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정치평론에선 은퇴했다. 정치 얘기는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안을 수정했다. 문화 평론에 초점을 두고 우리 사회를 진단해보자고 했다.
  
  그는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에서 우리사회 '대중'들의 정신적 단면을 읽었다. 딱 떨어지는 정치 얘기가 아니어도 '대중의 욕망'에 기반해 그가 읽어낸 황우석과 심형래, 이명박 현상은 엄연히 정치적이다.
  
  지난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한참 치솟을 때 논평가들은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이유는 단순하다. 유권자들의 판단이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진 교수를 '정치 인터뷰'에 초대한 이유다.
  
  황우석, 심형래, 이명박의 공통점
  
  "제 관심도 거기에 있어요. 별 볼 일 없는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영화 때문에 대중이 동원됐고, 동원된 대중이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다는 것, 그러면서 지성을 추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 말이에요."
  
  진 교수가 '디 워' 논란에 뛰어든 이유다. 그다운 직설화법이다. 그는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에서 우리 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본다고 했다.
  
  "대중의 독재라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대중이 몰려다니고 패악질 하는 것이죠. 영웅이 아닌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들, 그리고 '전문가들을 타도하자'는 구호들이 나오고 있어요. 일종의 디지털 파시즘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게 대중에게 권력을 준 것이거든요. 파시즘도 일종의 대중 독재였습니다. 비슷한 현상이 디지털 버전으로, 하나의 패러디처럼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과거의 파시즘과 비교하는 건 뭐하지만 메커니즘은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 ⓒ프레시안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린 글에서 진 교수는 '과개발된 인터넷과 저개발된 인문성'을 원인으로 꼽은 바 있다.
  
  "지금 대중을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는 독재시대의 그것과 같습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영웅주의에요. 첨단 매체가 과거의 수구적인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포섭된 결과 양자가 결합돼서 나타나고 있어요. 그게 문제라는 거죠. 과거에는 정권이 대중을 동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중들이 스스로를 동원한단 말이에요. 황우석 사태 때도 노무현 대통령은 오히려 말렸어요. 그런데 대중들이 스스로 (동원)했단 말이죠. '디 워' 논란도 마찬가지죠. 대중들의 자기 동원이라는 면에서요."
  
  사회심리적인 요인은 없을까. 대중들이 황우석 박사와 심형래 감독에게 갖는 정서적 연대감의 실체는 뭘까.
  
  "일반적으로 대중은 자신이 당한 고통과 억압의 원천을 인식하기 힘들 때 다른 방식으로 출구를 돌려버립니다. 반대급부를 얻는 거죠. 자기들 스스로 허구를 만들어요. '심형래가 약자다, 심형래가 소외 당했다, 무시 당했다'고 하죠. 그런데 이건 (심형래가 아니라) 대중들의 일상적인 체험입니다. 대중이야말로 많은 경우에 소외 당하고 억압 당하고 무시 당한단 말이죠. 이걸 심형래에 투사해버리는 거죠.
  
  심형래가 과연 소외당한 약자냐? 아니거든요.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고, 소득도 가장 높았고, 대한민국 영화 제작자 중에서 가장 많은 자본을 모았고, 홍보에서도 가장 높은 미디어 노출도를 보여줬고, 대중으로부터 그렇게 사랑 받은 감독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결코 약자가 아니에요. 심형래와 대중은 급이 다릅니다. 심형래는 스타고 대중은 스타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겐 자신의 처지를 투사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거기에 심형래가 몇 마디 해준 말('내가 만든 건 아무도 보지 않아')이 빌미가 된 것이죠. 나머지는 대중이 만들어낸 허구입니다. 황우석 사태 때도 똑같은 레토릭이 있었어요. '황우석은 의대가 아니라 수의대다', '서울대 다른 학자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누가 황우석 박사를 도와줬느냐' 하는 식이었죠."
  
  "예를 들어, 한국타이어에서 여러 명이 죽었습니다. (원인은) 누가 봐도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해보라고 하니 얘기를 못하죠. 블랙리스트에 오를까봐. 이런 독재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삼성 비자금 문제 터진 것 보세요. 그걸 폭로하기 위해 사제관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중에게는 그런 공포감이 있다는 겁니다. 평소에 겪는 이런 공포들, 이것들은 어디론가 분사돼야 합니다. 그래서 분출될 명분을 찾는 겁니다. 그러다 분출될 곳을 찾았다 하면 이제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허구를 구성해서 사실로 만들어 버리고 또 믿어버리고, 그렇게 해서 공격성을 분출하는 데 대한 명분으로 삼게 되는 거죠."
  
  황우석 박사, 심형래 감독의 경우와 성격은 좀 다르지만 이명박 후보도 대중들로부터 제법 오랜 기간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 요지부동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보고 사람들은 '묻지마 지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성공시대'를 약속한다는 점이다. 그걸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한 게 300조원(황 박사), 8조원(심 감독), 747(이 후보)이다.
  
  "GDP 2만 달러를 넘었다고 하지만 양극화는 심해지고 고용의 안정성은 뚝 떨어졌단 말이죠. 사람들에겐 그에 따른 불안감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누군가를 바라는 거죠. 그것만 해소시켜 준다면 도덕성이고 뭐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명박의 도덕성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듯이 심형래 영화에서는 미학성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돈만 벌어주면 된다는 거죠. 문제는 도덕성 없이 경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진국은 도덕성이 깨끗하잖아요. 커뮤니케이션이 효율적이라는 얘기거든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피드백이 잘 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영화로 돈을 벌려면 영화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것도 없이 돈만 벌겠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대중의 욕망
  
▲ ⓒ프레시안

  황 박사와 심 감독은 '경쟁력'의 신화다. '우리도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것. 광개토대왕을 출연시킨 한미FTA 홍보 광고의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은 한미FTA 논란을 전후한 우리 사회의 어떤 정신적 상황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구질구질한 현실이 짜증나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우리 주변을 보세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어디 하나 만만한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약자죠. (그래서 그런지) 거대함에 대한 선호가 존재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국가 모델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처럼 작지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에요.
  
  한미FTA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죠. 대중은 수세적인 게 아니라 치고 나가자는 정부의 선전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하고 실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양자가 혼동되는 거죠. 될 수 있다는 건 현실입니다. 됐으면 좋겠다는 건 바램이고요. 원망과 현실에서 대중은 현실을 직시하는 게 아니라 원망을 본다는 거죠. 대중들에겐 욕망이 있어요."
  
  한미FTA에 대한 정부의 선전을 '믿고 싶어 하는' 대중의 심리상태가 존재한다는 것. 한미FTA 반대론자들은 대중이 협상의 진상을 알게 되면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진 교수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유경쟁 이데올로기가 굉장히 강하거든요. 국가주의, 경쟁과 시장주의, 위아래로 사람 가르는 위계적인 문화. 이 세 가지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회적 유전인자가 되어버렸어요. 한미FTA 협상의 실제 내용이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졌다고 해서 여론이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토론이 되는 걸 본다면 결과가 다를 수 있겠지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진 교수는 김정란 교수의 '디 워' 평론이 모종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평론가는 대중을 고려하는 게 아니다. 평론가는 작품만 상대하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그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상을 들어봤다.
  
  지식인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되는 겁니다. 난 (평론가로서의) 내 일을 했고, 미국에서 ('디 워'가 거둔 성적으로) 입증됐듯이, 제대로 했습니다. 심형래 감독은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한 거죠. 그걸로 끝난 겁니다. 대중이 스스로 보면 되는 겁니다. 대중이 올바른 견해를 받아들이기 거부한다면 그건 대중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닙니다. 그들 손해지 내 손해가 아니에요."
  
  계몽적 지식인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능적' 지식인을 말하는 듯 하다. 지식인의 계몽적 역할을 마다하는 그의 활동이 두드러진 계몽적 효과를 낳는 건 역설적이다.
  
  '디 워' 논란을 거치면서 진 교수는 좀 더 유명해졌다. 시쳇말로 대중적으로 '뜬' 것이다. '무르팍 도사'에서 출연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단다. 하지만 출연을 고사했다. "내 일의 연장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웃길 때는 특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웃기는 거예요. 그런데 개그 프로그램은 적어도 중학교 학생 이상은 웃겨야 되잖아요. 그건 또 다른 재주고 또 다른 재능입니다. 그리고 개그 프로그램의 웃음은 해학에서 나오거든요. 다 같이 웃는 거죠. 그러나 저는 공격을 통해 웃기거든요. 비평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을 보고 그걸 깨기 위해 까기 때문에 해학이 아니고 풍자입니다. 아프게 찌르는 거죠. 프로그램의 성격에 잘 맞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들('디 워' 옹호론자)의 마지막 논거, '저 녀석 뜨려고 한다'는 논거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뜰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음으로써 말이죠."
  
  황우석 사태나 '디 워' 논란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실체가 불분명한 거대한 이익에는 열광하는데 정작 구체적인 이해가 달린 타산에는 둔감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저는 구술문화의 습성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보험을 파는 사람이 왔어요. 한 사람은 와서 '이 보험의 특성은 뭐고요, 저것은 어떤 혜택과 한계가 있고요' 하는 식으로 꼼꼼하게 약관대로 설명해요. 다른 사람은 와서 '아이구 이번에 아드님 중간고사 잘 봤어요?' 하고 물어요.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후자란 말이에요. 그런 코드가 있다는 거예요.
  
  얼마 전 '맞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비판'인가 하는 책이 인터넷에 뜬 걸 잠깐 봤는데, 일본 사람이 재밌는 얘기를 했더라고요. 한국 사람하고 계약을 했는데 납기일 안에 납기가 안 됐답니다. 그래서 한국 사장에게 전화했더니 '우리도 밤을 새워가며 작업하고 있다', 그러더래요. 이 일본 사람은 황당한 거죠. '누가 너희들보고 밤새라고 했느냐'는 거지요.
  
  심형래 감독도 그러잖아요. '밤새서 라면 먹으면서 CG 만들었는데…' 이렇게 말하거든요. 왜 라면을 먹습니까, 밥을 먹어야지. 그리고 밤을 새면 안 되죠. 제대로 자가면서 8시간 노동해야지. 그리고 박봉. 박봉 주면 안 되거든요. 제대로 돈을 줘야 CG가 발달하지. 라면 먹고, 밤새 작업하고, 나중에 영화 잘 되면 30억씩 줄게, 이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게 통한단 말이에요,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정감적이라는 거예요. 이건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볼 때 효율적이지가 않잖아요."
  
  애국의 결실은?
  
▲ ⓒ프레시안

  진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 강연에서 '영상문화' 시대에 진보진영은 여전히 '텍스트' 혹은 '문자문화'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었다. 그런데 요즘 그는 '텍스트'가 거세되었다고 '영상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진 교수는 '문자문화'의 성취에 기초한 '영상문화'를 온전한 문화적 진화로 보고 있다. 그를 기준삼아 강조점을 달리 하며 이쪽 저쪽을 비판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영상문화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영상문화입니다. 텍스트 기반 없이 영상문화로 넘어가는 건 문자문화 이전으로 후퇴하는 겁니다. 반면 텍스트를 바탕으로 영상문화 시대로 넘어가게 되면 문자문화보다 진화한 의식상태로 넘어가는 거죠. 지금은 영상문화로 넘어갔지만 텍스트의 합리성이 없다보니까 신화적인 의식으로 퇴행하잖아요. 요즘 드라마를 보세요. 다 역사드라마잖아요. 반면 진보진영 같은 경우 아직 텍스트 문화에 머물러 있죠."
  
  그는 이제 '영상'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텍스트' 비판에서 '영상비판'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게 '영상문화' 시대에 지식인과 비평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했다.
  
  "지금 문자를 못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상을 못 읽는 사람은 많아요. 로맹 가리가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영상을 못 읽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죠. 소통수단 자체가 영상으로 바뀌고 있어요. 그런데 영상은 항상 문자를 깔고 있다는 말이에요. 프로그램을 깔고 있는 거죠. 이 프로그램을 읽어내지 못하면 영화 '매트릭스' 속의 주민이 되는 겁니다. 남이 짠 프로그램을 자기의 세계로 알고 살아가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디 워' 논란으로 누가 돈 벌었겠어요. 내가 볼 때 쇼박스입니다. 심형래 감독 돈 번 것 하나도 없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에서 번 돈을 미국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다 썼어요. 거기다 영화 제작할 때 미국 배우 썼죠, 미국에서 음악 썼죠, 미국에서 CG 보정했죠, 미국에서 촬영했죠. 제작비도 미국에서 썼단 말이에요. '달러 벌어다 준다' 그랬는데, 실제로는 달러를 쓴 것이거든요. 그리고 ('디 워'가 미국에서) 한국 영화의 위치를 높였느냐. 그것도 아니죠. 쏟아지는 악평들을 봐요. 한국영화가 애써 쌓아놓은 것까지 깎아먹은 거 아닙니까.
  
  사람들 열심히 애국했잖아요. 그 애국의 결실을 누가 가져갔느냐는 거예요. 얼마 전 심형래 팬 카페 가보니까 '디 워' 열 번 보기 운동을 해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두세 번 보면 질리거든요. 고문이에요. 게다가 ('디 워'는) 서사가 복잡한 영화가 아니잖아요. 또 간접관람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뭐냐면, 아마도, 누군가 100번 봤다고 하는데, 표만 사는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극장에 안 가고요. 심형래 감독을 돕는다고 그렇게 하는 건데, 그 돈이 심형래 감독에게 들어가느냐? 아니거든요. 돈을 버는 건 누구냐. 쇼박스와 극장이에요. 애국을 하는데 돈은 누가 챙기느냐는 겁니다. 이게 프로그램을 읽는다는 문제예요. 산수만 계산해도 나오는 문제인데, 이걸 못 읽는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 미국 애들은 외국 영화를 안 봐요. 외국 영화의 전체 점유율이 2% 밖에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심형래 씨가 올바로 판단한 건 두 가지예요. 미국 사람들이 자막 붙으면 일단 안 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괴수영화 같은 걸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블록버스터가 될 수 없죠. '괴수영화'는 특정한 취향의 영화잖아요. 그렇다면 목표를 현실적으로 가졌어야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영화는 미국영화 밖에 없어요. 왜 그러냐면 미국 문화가 전 세계 인간들의 문화거든요. 그런 저변이 있기 때문에 미국 영화가 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거예요. 한국영화가 그런 상태가 되어 있느냐?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심형래 감독은 대본을 한국말로 써서 영어로 옮기면 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색합니까. 쉽게 말하면 미국 사람하고 싸우는 데 멱살 붙잡고 '하우 올드 아 유' '유 해브 노 파더?' 하는 격이거든요. 이건 미국화 하는 게 아니죠.
  
  그리고 한국적인 것을 말하는데, 영화에 아리랑 넣으면 한국적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리랑은 우리한테도 멀어요. 우리가 요즘 아리랑 부릅니까. 오히려 영화 '괴물'에서 변희봉이 소녀 영정 앞에서 막 울면서 '네 덕분에 우리 가족이 다 모였구나' 하고 말하는 그 순간 '저거야말로 한국적이다'는 느낌을 받죠. 이런 게 감각이고, 또 어필하거든요.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실질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염원만 있어요. 그러면서 (성공을 위해) 실질적으로 해야 할 것, 깐깐한 비평, 수준 높은 관객, 이런 것을 갖출 생각은 전혀 안 해요. 얘기도 못 꺼내게 해요. 오로지 미국으로 나간다, 이런 게 주술적 태도라는 거죠. 주술시대에는 믿어버리면 돼요. 소원이니까. 자기의 원망을 실질적으로 이룰 길을 찾는다는 게 바로 문자문화의 합리성이죠. 항상 관찰하고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고 법칙을 발견하고 그걸 이용해서 뜻을 이룬단 말이죠. 그런데 지금 보세요.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발터 벤야민이 기생충인가"
  
▲ ⓒ프레시안

  '디 워' 논란은 지식인들 간의 논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출판사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 씨는 '디 워' 논란은 평론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폭발된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평론가란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그리고 인텔리들끼리 읽는 평론'을 쓰는 평론가를 뜻한다. 그들은 대중의 취향을 '경멸'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한다. 일종의 문화적 '구별짓기'인 셈인데, '디 워'의 맥락을 떠나서 보면 이런 비판에 경청할 대목도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많은 비평을 접해보지 않아서 잘 몰라요. 그런데 어디에나 문제는 있죠. 90년대 사회비평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개별 비평이 잘 됐느냐, 안 됐느냐를 따져야지 포괄적으로 '쓸 데 없다'는 식으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거죠. 그리고 (90년대 이후)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비평으로 온 건 잘한 거예요. 그럼 뭐하라는 겁니까. 일본 같은 경우 전공투 세대가 다양한 문화 영역으로 갔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거든요. 지금 한국영화의 경우에도 386이니까 이 만큼이라도 나오는 겁니다."
  
  그의 비판은 김규항 씨의 '평론가론'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다. 진 교수 특유의 독설이 불을 뿜었다. 앞서 김규항 씨는 지난 8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고 규정한 바 있다.
  
  "김규항이 평론가를 기생충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자기는 메타 기생충이에요. 평론가를 씹으면서 크는, 그야말로 메타 기생충이죠. (김규항 씨가) 평론을 생각하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게, 평론은 그 자체가 생산입니다. 발터 벤야민이 왜 기생충입니까? 예술가들은 평론가들 아니면 못 떠요. 평론가들이 쓰는 평론, 그건 문학이에요. 그게 생산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고 기생충이라고 하면 심형래 지지자들하고 뭐가 다르냐는 겁니다. '네가 만들어봐' 이런 식이잖아요.
  
  자동차 검사하는 사람이 차를 보고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그러니 교체해야 돼요' 했더니 '네가 만들어봐', '너는 기생충이야' 이렇게 말하는 게 말이 됩니까. 따져보세요. 국가주의 코드, 시장주의 코드, 영웅주의 코드, 떼로 몰려다니면서 패악질 하는 것, 이게 민중입니까, 파시즘적 군중입니까"
  
  "진보는 새들의 매스게임"
  
  지난해부터 진보 위기 담론이 계속되고 있다. 진 교수가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선형적 시간관에 입각한 진보 관념은 타당성을 잃었다고 했다.
  
  "저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과거의 기준들은 타당성을 잃었다고 봐요. 역사주의 의식이란 건 약화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늘 그렇게 생각했죠. 과거를 기억하고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하는 게 과거의 역사이고, 그건 현재를 위한 것이고, 현재는 또 미래의 해방된 사회를 위해서 희생돼야 할 것이다, 하고 말이죠. 모든 것의 최종적 의미가 미래에 도달되는 사회에 있는 것을 '역사적 텔로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텔로스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단 말이죠. 그럴 때 과연 과거와 같은 진보의 개념이란 게 성립될 수 있느냐는 거죠. 요즘 '수구진보'라는 말을 많이 하죠. 영상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텍스트 문화에 있는 사람들이 덜 진화한 측면이 있는 거예요. 그걸 아마도 수구성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면서도 진보적이고요. '수구진보'라는 말은 굉장히 정확한 말입니다."
  
  그는 '진보'는 창의성의 경쟁이라고 했다.
  
  "가치판단이 다원화됐다는 거죠. 신자유주의를 해야 된다는 사람들의 판단이 있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의 판단이 있고, 둘 중 어느 게 더 옳은가, 그른가 하는 건 참 대답이 안 나온다는 거죠. 이걸 인정해야 됩니다. '난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저 사람은 저게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물론 옳고 그른 것은 싸워서 결판나는 문제이지만, 많은 경우 가치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결판이 안 나거든요. 그런 싸움에서는 오히려 미학적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산하는 담론이 더욱 생산적이고, 내가 현실을 설명하는 방식이 현실을 보다 무모순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내 담론은 네 것과 달리 아주 새로운 측면에서 보게 해 준다'든지, 정보가치가 있다든지, 이런 방향으로 경쟁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보고요.
  
  요컨대, 담론은 새들의 매스게임이라는 거예요. 천수만에서 새들이 날아다닐 때 명령하는 새가 없죠. 옆의 새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것, 장애물이 나오면 피할 것, 하는 몇 가지 지식들만 있죠. 그처럼 서로 배운 독립된 개인들이 우리가 에티켓이라고 말하는 것만 유지한 채 각자 창의성을 발휘하면 그 결과로서 누구도 인풋하지 않았던 것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흔히 창발이라고 부르죠."
  
  정치 얘기는 사양한다는 그였지만 합리성과 풍자의 소양을 갖춘 몇 안되는 평론가를 만난 터라 방앗간 지나는 참새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는 있나요?' "버락 오마바를 지지합니다." 그냥 같이 웃었다.
  
  "민노당을 찍을 뻔 했는데 민노당도 정파 문제가 걸린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아마 안 찍을 것 같아요. 이회창을 찍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웃음). 이명박이 되면 운하를 팔 것 같단 말이야. 이 사람 운하 진짜 팝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정말 '창'을 찍을까?(웃음)."
  
  비판적 지지론에 대해 물었다. 역시 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비판적 지지? 그럼 '창(이회창)'한테 몰아줍시다. 어차피 정동영 안 되잖아. 그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그렇죠. 이명박 막으려면 창한테 몰아줘야지. 창한테 몰아줍시다. 정동영한테 표 보내주지 말고. 정동영은 사퇴하라고 해야죠(웃음). 코메디죠 코메디."
  
  "삼성을 보세요!"
  
▲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국가모델에 대해 물었다. "유럽식 사회국가모델"이라고 짤막하게 답한 진 교수가 갑자기 생각난 듯 "프레시안에 이종태라는 사람이 이상한 글('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변')을 썼던데, 그 사람 왜 그래요?" 한다. 그러곤 곧 장하준 교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진 교수는 언젠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공동저자인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등과 TV토론을 한 적이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를 놓고 두 진영이 충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 교수는 "이 얘기는 꼭 써주세요. 내가 따로 글을 쓸 시간이 없으니까"라고 했다.
  
  "장하준 씨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얘기하잖아요? 삼성을 보라는 거예요, 지금. 과연 대타협의 문제냐는 겁니다. 삼성이 노조를 인정 안 하는 겁니다. 타협 한 번 해보라고 해요. 어떤 타협안이 가능한지. 그리고 스웨덴에도 재벌이 있다? 스웨덴 재벌하고 한국 재벌이 같으냐는 겁니다. (재벌의 성격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스웨덴은 입헌군주국이고 우리나라는 봉건군주국이에요. 재벌 체제가 완전히 다른데 같다고 하고. 그리고 그나마도 스웨덴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재벌 해체하자고 한다는데 해체할 힘이 있습니까. 해체 안 됩니다, 결코. 재벌 해체한다는 게 기업군을 해체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진 교수는 국가의 경제조정적 개입을 사회주의적 요소로 보는 건 '황당하다'며 장 교수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박정희가 사회주의적이었다? 절대로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습니다. 국가주의적 통제를 할 수 있어요. 파시즘처럼. 그러다 완전 자유주의로 갈 수도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뉴딜식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는 겁니다. 이 세 가지는 자본주의가 택할 수 있는 옵션에 속하지 '어느 게 사회주의냐',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국가가 경제에 조정적 개입을 하는 체제가 아니라 사회복지적 개입을 하는 체제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들 얘기하는 건 경제조정적 개입이에요. 그걸 사회주의로 본다는 게 황당하다는 거죠."
   
 
  정제혁/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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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본관엔 기자실 없나? 왜 보도를 못하지?


한겨레|기사입력 2007-11-01 22:09 |최종수정2007-11-02 08:00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해도 해도 너무 한다.’

한국기자협회가 한국 신문을 뼈아프게 질책했다. 기자협회는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언론사들이 ‘삼성 비자금’ 앞에서 '꼬리 내린 강아지'이자 ‘배부른 돼지’ 꼴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10월29일,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내 계좌에 삼성 비자금 50억 있었다”는 양심고백을 기자회견을 열어 전달했다. 사제단은 상세한 보도자료와 함께 김 변호사가 공개한 자신 명의의 차명계좌 4개 거래내역 사본을 공개했다.

한국사회의 대표적 양심세력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한국사회 최대 권력이라는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관리 의혹에 대해 본격 고발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튿날 모든 신문의 머릿기사가 될 뉴스였지만, 한국 대다수 신문은 ‘침묵’했다.

29일 석간과 30일치 전국 단위 일간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는 모두 26건이었다. <한겨레>가 12건이고 <문화일보>가 2건, 나머지 조중동과 <매경>·<한경>을 비롯해 12개 일간지들은 모두 1건씩이었다. <머니투데이> 등 4개 경제지들은 관련기사를 1건도 싣지 않았다.

‘삼성 비자금’ 보도에 침묵한 언론에 누리꾼 “검색어 순위 올리기 합시다” 제안

<미디어오늘>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를 다룬 기사의 총면적은 <한겨레>가 6918.5㎠, 조중동이 각각 191.5㎠, 148.5㎠, 218.8㎠였다. ‘판도라의 상자’ 뚜껑이 열린 ‘삼성 비자금’ 뉴스는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을 통해 계속 쏟아졌다.

“금융실명제, 막강 재벌 앞에선 ‘허수아비’”“삼성, 검찰간부 40여명에 연 10억원 떡값” “‘삼성 떡값 리스트’에 현직 판사·대법관도 포함”

그러나, 한국 신문 대다수는 30일치의 1단~2단 기사로 ‘끝’이었다. 국민을 대리한 ‘알 권리’를 그토록 금과옥조로 내세우던, 보수언론들은 이후로 ‘침묵’을 이어갔다.

누리꾼들이 이를 못참고 행동에 나섰다.

한 블로거(arexi.egloos.com)는 “검색어순위 올리기합시다! 이 기사를 읽고 뭔가 분노가 느껴지시면 각 포탈에 가서 삼성, 삼성 차명계좌, 김용철 등 관련 검색어를 넣어주세요!”라며, 신문이 무시하는 삼성 비자금 사건을 이슈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오마이뉴스> “신정아 누드가 알권리라던 신문의 서비스 정신은 어디 갔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지낸 백병규 미디어평론가는 지난 30일 <오마이뉴스>에 ‘백병규의 미디어워치’를 통해, 그동안 알권리와 언론자유 수호를 외쳐온 언론인들을 비판했다.

백병규씨는 “정부의 기사송고실 통폐합 조치 등에 대해 언론탄압이라며 한국언론사상 두 번째로 모임을 갖고 '언론자유 수호'를 외쳤던 신문·방송 편집국장과 보도국장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그렇게 외친 분들이 어떻게 신문을 이렇게 편집하고 방송 보도를 이렇게 편성할 수 있을까”라며 “신정아의 '누드'까지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서비스했던 그 신문의 서비스 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출장 나갔나”라고 질타했다.

백씨는 “정부의 기사송고실 통폐합에 맞서 투쟁까지 불사하던 기자들은 어디에 가 있는가”라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위해 기자들이 떨쳐 일어나야 할 일이 아닌가. 지금 언론자유를 위해 탄핵할 자들은 누구인가”라고 되물었다.

‘삼성 비자금’에 대해 ‘침묵보도’하는 신문들의 행태에 주요 언론단체들은 마침내 자신들을 질타하고, 동료들에게 자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언론노조 “언론은 ‘삼성 가족’을 자처하는가?” 취재·보도 촉구 성명

언론노조는 10월31일 ‘언론은 “삼성 가족”을 자처하는가?’ 라는 성명을 내어 “모든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즉각 삼성 비자금 조성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취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성명에서 “정치권력을 향해선 막말까지 쏟아내며 비장한 비판자 행세를 해온 언론들이 재벌 삼성을 향해선 입을 쏙 닫아버린 처사를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며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권력 감시를 위해 정부의 취재 지원 개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던 대한민국 언론의 사명감이 고작 이 수준이었단 말인가”고 지적했다.

기자협회도 이날 성명을 내어, 한국 언론이 ‘배부른 돼지’가 되지 말고 ‘배고픈 소크라테스’ 되어야 한다고 동료 기자들에게 촉구했다.

기자협회 “회원 동지들에게 호소한다. 이번 사건은 크게 보도해야 한다”

기자협회는 “회원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이번 사건은 크게 보도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기본”이라며 “지금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때다. 그것만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일부 누리꾼들은 조중동을 비롯한 대다수 신문들이 삼성 비자금에 대해 축소보도하고 침묵하는 상황을 ‘기자실’이 없어 국민 알권리가 위협받는다고 주장해온, ‘기자실 방어논리’를 되돌려줬다.

“삼성 본관에 기자실 만들어주면 되겠네요”(독자)

이 블로거는 잘못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삼성 본관에는 ‘훌륭한’ 기자실이 있어왔다. 언론이 삼성 본관에 기자실이 없는 까닭에, ‘삼성 비자금’ 기사를 못쓴 것은 아니었다.



아래는 기자협회의 31일 성명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기자협회 성명] 삼성 비자금 사건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자본주의, 아니 어떤 사회체제에 살더라도 이 말은 거역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은 반쪽이다. 온전한 진실이었다면, “배 부른 돼지보다는 배 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삼성그룹의 핵심인 구조조정본부에서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이 내 이름으로 돼 있던 50억원 규모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했다”고 폭로하고 나섰다. <한겨레> <한겨레21> <시사인> 등 일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들이 이 사안을 ‘크게’ 보도했다. 방송을 포함한 나머지 언론들은 ‘작게’ 보도했다. 아니, 언론계 표현을 빌리면 구석에 처박았다.

‘삼성 불법 비자금 계좌 사건’을 크게 보도한 일부 언론사를 한국 저널리즘의 양심을 대변하는 언론으로 추켜올리자는 게 아니다. 이들 언론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진실로부터 벗어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경제권력’에 대한 비판 보도는 거의 모든 언론이 외면하고 싶은, 보통의 경우엔 종종 외면해왔던 영역이다. 다만, 이번 사안의 경우 몇몇 언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제약을 넘어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최소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을 지켰다는 얘기다.

대다수 언론들의 보도행태는 언론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의도적 무시’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대다수 언론의 보도행태가 갖는 심각성을 드러내기엔 너무 점잖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말 정도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 조처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몇몇 언론사들은 ‘경제권력’ 앞에서는 꼬리 내린 강아지 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불법 비자금 계좌 사건은 ‘세게’ 취재하고 ‘크게’ 보도해야 한다. 드러난 액수만도 50억원이다. 계좌가 개설된 우리은행과 삼성이 ‘공모’했을 정황도 엿보인다. 2003년 흐지부지된 대선자금 수사 때 삼성의 검찰 로비 실상의 일단도 드러났다. 2003년 삼성이 야당 대선후보에 건넨 돈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개인 돈만이 아니라 비자금 계좌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회원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이번 사건은 크게 보도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기본이다. 지금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때다. 그것만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이다.

2007년 10월 31일 한 국 기 자 협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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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11-0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대다수가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데, 압도적인 포탈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네이버에서 삼성 기사를 찾기 얼마나 어려운지...
 

"회장님 풀려나셨다" 만세 부르는 언론
 
미디어오늘 | 기사입력 2007-09-07 08:40 | 최종수정 2007-09-08 03:15 기사원문보기

 




[경제뉴스 톺아읽기] 정몽구 회장 집행유예 보도, 한국경제 등 '현대차 사보' 수준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 횡령과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파격적인 판결이 멋쩍었던지 신문기고와 강연 등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고질적인 유전무죄 판결이지만 이를 비판하고 바로 잡아야 할 언론의 시각은 솜방망이 판결만큼이나 관대하기만 하다.

일부 언론은 오히려 "족쇄가 풀렸다"느니 "감옥이 능사가 아니라"느니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경영에 탄력이 붙었다"느니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앙일보는 6면 머리기사에서 이번 재판을 담당한 이재홍 부장판사의 말을 옮겨 <"돈 많은 사람, 돈으로 사회공헌">이라는 경악할만한 제목을 뽑았다. 중앙은 "거액의 사회공헌기금을 내라고 판결문에 명시, 정 회장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집행유예 선고에 대한 일각의 비난을 완화라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중앙은 1면 머리기사에서는 <"감옥이 능사 아니다 / 실질적 죗값 치러야 한다">는 제목을 뽑기도 했다. 중앙은 관대한 판결에 대한 이 부장판사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비중 있게 옮겼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현대차의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거나 “미국에서는 엔론 같은 회사가 20개 부도나도 끄덕없지만 엔론은 이미 죽은 회사였고 현대차는 살아있는 회사다", "재능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실질적인 공헌을 하게 하는 게 진정한 사회봉사명령이다" 등등.

한국경제는 아예 현대차의 사보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1면 머리기사에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 다시 뛴다>는 제목 아래 "글로벌 톱 5를 향해 다시 뛸 수 있게 됐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차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막대하고 정 회장은 현대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이 부장판사의 말을 옮기기도 했다.



한국경제 9월7일 5면 머리기사. 한경은 5면을 털어 현대차 그룹의 분위기를 자세하게 전했다. "정 회장이 기업인으로 사회적 소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재다짐을 한 것"이라거나 현대차 임직원들의 말을 인용, "이제야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 나온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고 "협력사와 상생 협력을 통해 고용 창출 확대와 수출 증진, 선진 기술 지원 등에 지속적으로 매진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등 낯뜨거운 찬사를 잔뜩 늘어놓았다.

매일경제는 잔뜩 흥분한 한국경제보다는 좀 더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재판 결과를 두고 "다소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서울경제나 파이낸셜뉴스 등 다른 경제지들도 논조는 비슷했다. 파이낸셜은 현대차 관계자의 말을 인용, "중국 시장에 이상 기운이 감지됐지만 정 회장이 발목을 잡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족쇄가 풀린만큼 조만간 중국 시장에서 낭보가 날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13면 머리기사에서 <현대기아차 일단 큰 고비를 넘겼다>고 제목을 뽑았다. 재판 결과를 둘러싼 논란은 거의 언급이 없고 다만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 정 회장과 현대기아차에 반성할 기회를 줬다"고 해석했다.

가장 비판적인 논조를 보인 곳은 한겨레였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에서 <재벌 봐주기 집유…정몽구 회장 웃었다>고 제목을 뽑고 실제로 웃고 있는 정 회장의 사진을 실었다. 한겨레는 "법원이 유독 재벌에 관대하다는 비판이 또 나오고 있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겨레는 3면에서 익명의 변호사의 말을 인용, "돈 많은 사람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사회봉사명령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연과 신문 기고에 대해서도 "사회봉사가 부하 직원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하면 죄짓고 빠져나올 수 있는지 기법이라도 전수하려는 것이냐"는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의 말을 인용한 데 이어 해설 기사에서 "회장이 구속되면 부도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논리는 황제경영의 폐해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신문은 <기부가 사회봉사? 재벌 봐주기 논란>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인터넷 기사에서는 이번 재판과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재판 결과를 비교해 눈길을 끌었는데 배달판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됐다. 임 회장은 219억원을 횡령했다가 1심에서 징역 4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년 7개월 동안 복역 끝에 올해 2월 사면을 받고 풀려난 바 있다. 정 회장이 2개월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결국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과 비교된다.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한 언론 보도는 '총수=기업'이라는 퇴행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국내 언론의 현 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 2000억원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기부금만 내면 풀려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언론은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땅에 떨어진 사법 정의만큼이나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경제개혁연대는 5일 <돈으로 산 집행유예, 돈 앞에 무릎 꿇은 사법정의>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재판 결과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법원이 판결문에서 어떠한 수사를 동원하여 합리화했든, 이번 집행유예 선고는 정몽구 회장의 재력으로 이루어진 것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했다.

혹시 기억이 가물가물한 독자들을 위해 이번 사건을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정 회장의 죄목은 크게 횡령과 배임이다. 정 회장은 2000년 4월∼2006년 3월, 비자금 1034억원을 조성해 696억원을 횡령하고 역외펀드 수익 1830만 달러를 횡령하는 등 900억원대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 본텍을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아들 의선씨와 글로비스에 실제 가치보다 훨씬 미달하는 가격에 신주를 배정해 이익을 준 동시에 지배주주인 기아차에 손해를 떠넘겼다.

또 청산이 예정돼 있던 현대우주항공 채무에 대한 정 회장 개인의 연대보증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유상증자에 참여시켰고 자금난을 겪던 현대강관이 유상증자를 하자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역외펀드를 설립해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등을 증자에 참여시켜 손해를 끼쳤다. 횡령과 배임의 전체 규모는 모두 2100억원대에 이른다.

정 회장은 지난해 4월 구속 수감됐다가 두 달 만에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풀려났고 올해 3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6일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그리고 사회봉사활동을 명령 받았다. 배임과 횡령의 규모로 볼 때 정 회장의 집행유예는 이례적인 판결이다. 사회공헌기금과 강연, 언론 기고 등의 사회봉사활동 명령 역시 전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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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기자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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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9-1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드는 판결, 보고 싶지도 않은 언론이다...
국민정서법에 대한 비판도 일부 있지만, 지금 법원의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판결은 말그대로 판사개인정서법 또는 전경련정서법에 따른 것 같다.
 


As things get tough, S Korea's bosses get rolling


By Anna Fifield in Seoul

Published: September 12 2007 03:00 | Last updated: September 12 2007 03:00


Wheelchairs seem to be the vehicle of choice for South Korean tycoons who find themselves in a spot of bother.

Lee Kun-hee, the chairman of Samsung, last year rolled back into Korea in a shiny silver number.


This was after suddenly travelling to the US just as prosecutors began an investigation into allegations that he had illegally passed his wealth on to his children.

Mr Lee was never questioned aboutthe case, which seems now to have gone away.

Chung Mong-koo, the boss of Hyundai Motor, was wheeled into court for his trial on charges of embezzling $100m of company money and breach of trust, also related to attempts to transfer the family business to his son.

He last week had his three-year jail sentence suspended, with the judgesaying the country needed him back in the office.

Kim Seung-youn, chairman of the Hanwha explosives conglomerate, yesterday went one better, showing up at court in not just a wheelchair but in hospital pyjamas as well.

Only a few months ago, Mr Kim waswell enough to participate in a Godfather-style attack involving a steelbar, his bodyguards and some karaokeroom workers who were mean to hisson.

However, yesterday his 18-month prison term for assault was also suspended.

The Korean courts appear to believe that it is in the national interest to have these industrial giants continue to run their publicly listed companies, regardless of what they might get up to behind the scenes.

Wouldn't the national interest be better served by business leaders that behaved themselves and a legal system that treated all citizens equ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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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9-1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어찌 어려운 영어 기사를 옮겨 놓으셨데요. 어렵다. 증말 그러나 읽기를 포기하지 않는 산타는 열심히 읽고 갑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9-1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인터넷에서 휠체어 타고 나오는 재벌 총수들이란 기사가 있길래 financial times에 가서 원문을 한번 퍼봤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정말 따끔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