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정리 : 박형숙·홍성식·이경태 기자
사진 : 남소연 기자
동영상 : 문경미 기자


[기사 대체 : 27일 오후 3시 5분]


 
▲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7일 <오마이뉴스>가 마련한 방담에 초대돼 지난 1년여 간의 힘겨웠던 투쟁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문정우 전 편집장, 사회자 최광기씨, 주진우 윤무영 기자.
 
ⓒ 오마이뉴스 남소연
 


valign=top [다시보기]시사저널을 딛고 새 매체를 꿈꾸다! / 문경미 기자

<시사저널>은 끝났는가? 지난 26일 그러니까 바로 어제, <시사저널> 기자 22명은 서대문구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결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이 들고 나온 플래카드에는 '굿바이 시사저널'라고 씌여 있었다. 동시에 기자들은 새 출발을 선언했다. 무엇이 끝났으며 무엇은 끝나지 않았는가?

27일 <시사저널> 기자들이 모였다. 바로 전날 결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지난 1년여 간의 편집권 독립 투쟁기를 역순으로 복기해 보기로 했다. 형식 탈피, 자유 방담이었다. 사회는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으로, '국민사회자'인 최광기씨가 맡았다. 문정우 전 편집장을 비롯해 윤무영, 안은주, 김은남, 주진우 기자가 참석했다.

최광기: 어제 결별 기자회견 때 마음이 어땠나.

문정우: 힘들고 지겨웠는데 후련했다. 그런데 서명숙 선배(전 편집장)가 와서 기자들을 붙잡고 너무 울어서…. 사실 난 굉장히 후련했는데 생각해보니 슬프더라.

김은남: <시사저널>의 사망을 선포하는 장례식이었다. 가슴이 미어지더라. 자식을 떼어놓고 가는 심정이었다. <시사저널>의 역사가 18년인데 외환위기로 부도가 났을 때 사주는 해외 도피, 그러나 기자들이 1년 8개월 동안 월급도 못받고 지켜낸 자식같은 매체다. 그런데 포기하고 떠나야 하는 구나. 다들 비통한 심정이었다.

안은주: 그저께 밤부터 엄청 울기 시작했다. 기자회견문을 눈물로 쓰고 어제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지더라. 오늘은 울지 말아야지 했다. 그래서 집에서 미리 울었다. 회견장에서는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것은 몰라도 굉장히 <시사저널>의 기자로 일했던 기간이 행복했던 시간이다.

그런 직장인데…, 회사를 그만 두는 게 아니라 젊음과 사랑과 열정을 담았던 것과 이별을 해야 하는 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더라. 아침에 나오면서 딸에게 설명했다. 엄마 회사 그만둔다고. 그랬더니 11살 딸의 첫마디가 '뻥' 이더라. 나보다 <시사저널>을 더 좋아한다더니 왜 그만 두나. 그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울었다.

최광기: 주진우 기자가 옆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어떤가.

주진우: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연애를 해본지 오래되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기분이다. 그 여자는 떠났는데 나는 못보내고 있는 것 같다. 멍하고 생각이 잘 안난다.

윤무영: 기뻤다. 파업을 하면서 혼자서 눈물도 흘리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저희가 월요일에 결별하기로 결정하고 새 길을 나서기로 한 다음에 피로감을 느꼈다. 집에 누웠는데 영화처럼 필름이 지나가더라. 악몽을 꾼 듯하다. 새 희망이 있다. 눈물을 흘리지 말자. 밤을 보내고 아침에 안은주 기자가 올린 '독자에게 보내는 글'을 보고나서 또 눈물을 흘렸다. 주진우 기자는 강한 사람인데 회견장에서 전화를 받는 척하면서 자리를 비웠다. 아마 일부러 피하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문정우: 나만 매정한 사람됐네.


 
▲ <오마이뉴스> 방담에 초대된 시사저널 기자들이 사회자 최광기씨가 내뱉은 "문정우 전 편집장이 단식을 하면 좋았을 텐데.." 짓궂은 농담에 모처럼 다같이 웃었다. 사진 왼쪽부터 문 전 편집장, 안은주 김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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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기: 4계절을 지나왔다. 저 역시 <시사저널>을 가까이서 봐왔는데 단식농성 하고 있던 현장을 잊을 수가 없다.

김은남: 노조 위원장과 사무국장이 했는데 조합원들이 무지막지하게 뜯어 말렸다. 해봐야 몸 상하고 듣지도 않는데 하면서 반대를 했지만 나의 생각은 '1년이라면 끌만큼 끌었다. 최후의 입장을 확인해야 한다. 심상기 회장에게도 마지막 답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광기: 심상기 회장 집 앞에서 했는데 한번도 못만났나.

김은남: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족도 안오는 걸 보니 어딘가로 피신한 것 같다. 아니 피서인가.

우리 독자들, 시사모 독자 모임이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두 명. 충주에 살면서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근무 중간에 차로 왔더라. 아이스 박스 들고 왔었나. 단식자들에게 얼린 물을 가지고 왔더라. 약수를 받아서 얼렸다더라. 태권도 사범이 있는데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가서 24시간 기자들을 지키겠다. 밤 11시에 와서 잠 안자고 저희랑 같이 농성장을 지켜주더라.

최광기: 옆에 계신 문정우 기자가 단식을 하면 좋았을 텐데 하하.

문정우: 단식을 한다고 하니 나는 화가 나더라. 심상기 회장을 만났었고 풀어보려고 <시사저널>을 접촉했었다. 이성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상대다. 참 이상하더라 이 사태가. 조합에서도 심상기 회장이 받아들일만한 조건을 제시했었고 또 드러난 움직임 외에도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심상기 회장도 그렇게 해결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불가항력의 힘이 막고 있는 것 같더라. 실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아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주진우: 실체는 삼성 아닌가!

최광기: 방송에서는 참, 그대로 말씀하시는게 좋겠습니다 하하.


 
▲ 윤무영 기자가 지난 1년여간 힘겨웠던 투쟁기를 복기하자 옆에 주진우 기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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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저도 단식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그들은 타협이나 얘기할 상대가 아니다. 쓰레기는 치워야지, 쓰레기하고 대화하나?

최광기: 결론 나왔습니다. 쓰레기! 김은남 기자 몸 괜찮나.

김은남: 위원장이 한번 탈진했는데 나는 부모님이 주신 타고난 체력이 있어서 괜찮다.

최광기: '셋방살이 설움'에 대해 말해 보죠. 여기저기 많이 옮겨다니셨죠?

안은주: 언론노조 사무실, 회사앞 천막, 용산 사무실, 방송회관, 심상기 회장 집 앞 단식농성, 다시 목동 방송회관…. 직장폐쇄를 졸지에 당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논의하기 위해 엠티를 갔는데 직장폐쇄 연락을 받았고 곧바로 차를 돌려서 왔다. 돌아와서 짧은 기자회견을 하고 짐들도 못챙겼다. 11시 통보를 받았는데 1시부터 직장폐쇄를 한다고 해서 서울에 오니 12시가 넘었더라. 30분 여유도 없었다. 당장 급한 짐만 쌌다. 모일 데가 필요한데 회사 앞에 천막 치자! 길거리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 때는 겨울이었다.

문정우: 우리가 초보 노조라 구호도 하나 제대로 못했다. 쟁의 기금도 없었다. 처음 일을 당하니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더라. 그런데 통장에 돈도 쌓이고 노하우도 쌓이고 여기저기 전전해 오면서 노조가 강해져 온 것이다.

최광기: 여기 <오마이뉴스>, 남의 사무실이기는 하지만 옛날 생각 나겠다.

문정우: 좋은데요.

김은남: 한칸 떼주면 좋겠다. 이제는 남의 사무실 가도 익숙해요.

주진우: 눈치를 보는 것도 익숙.

최광기: 어느 집이 가장 편하시던가요?

주진우: 천막이 가장 편안하고 좋더라. 찾아오는 분들도 야성이 있었다. 용산 사무실은 심상기 회장의 집무실이 보이는 곳에 얻은 것인데 10평도 안되는 쪽방이다. 사실 남의 사무실, 언론노조 사무실에 가고 싶지 않다.

최광기: 전광판이 참…. 심상기 회장이 불편했겠다.

주진우: <시사저널> 선배들은 너무 점잖다. 겨우 '심상기 회장 각성하라, 금창태 사장 각성하라' 정도다. 나는 '언론계의 쓰레기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심상기 회장은 결단해 주시죠'라는 식이다. '회장님'을 안빼서 나는 속이 터졌다.

최광기: 그 선배들 명단을 보내라. 하하

주진우: 여기 있는 이분들 다 그래요.

문정우: 회사쪽에서 그 전광판이 굉장히 곤혹스럽기는 했나보더라. 회사쪽 사람이 '얼마주고 했냐'고 묻더라. 직무실 앞에서 30~40미터 사이를 두고 전광판을 쏴대니 곤란하지 않았겠나.

주진우: 그들은 명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호주머니 돈 나가는 것만 두려운 사람이다.

김은남: 전광판도 시사모 회원이 달아준 것이다. 우리 사무실은 비좁았는데 그 옆방도 회원이 돈내고 빌려주었다. 회의실로 쓰라고. 시사모가 참 많이 도와주었다.

안은주: 그분들 힘이다. 통장에서 돈이 빌 때 되면 실명 안밝히고 투쟁 아이디어 제안하고 전광판도 보내주었다. 용산 사무실이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여자들은 화장실이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주말에 세면대가 깨끗한 걸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바꿔놓고 갔더라. 사무실 바닥도 카페트를 깔려고 하는데 가격을 알아보니 비싸더라. 우리가 당시 노조 조끼를 입고 있었더니 카펫집 주인 아저씨가 '당신들 존경한다'면서 거의 거저주었다. 배달 해주고 깔아주었다.

문정우: 회원중에 최광기씨처럼 입으로만 하는 분들도 있다.

안은주: 최광기씨는 입이 자산이니 재능 기여한 것이죠.

최광기: 기자들을 아끼는 독자들의 힘이 원동력이었을텐데. 우군들은 누구?

윤무영: 열거하기 힘들다. 하지만 특히 저희 동료들.


 
▲ 윤무영 기자는 함께 싸웠던 동료 기자들을 떠올리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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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 조중동이나 그런데서 보도를 안한다고 말들이 많은데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부장급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 돈을 보내주는 경우가 있었다.

최광기: 그분들 명단을 밝혔으면 좋겠는데. 하하.

문정우 : 조중동과 같은 메이저 언론에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말들이 많아요. 하지만 언론계에서, 부장급의 사람들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하면서 돈을 보내준 사람들도 있어요.

일동 : 이번 기회에 그 분들 이름을 밝히는 것이 어떨까요? (웃음)

문정우 : 그것도 괜찮네요. 어떻게 날이 갈수록 새로운 전략과 전술이 자꾸자꾸 나오네요. 앞으로 그분들이 신매체 창간하는데 어떻게 나오시는가 봐서 이름을 밝히는가 하죠 허허.

김은남 : 사실 저희들이 언론매체들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들, 마이너매체이지만 독립언론을 지향하는 미디어오늘과 같은 매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저희가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매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죽었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동아투위 선배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했다.

문정우 : 이번에 투쟁을 진행하면서 기자들 생각이 많이 변했다. 사실 취재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투쟁 현장을 외면한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 안되는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광기 : 많은 분들이 댓글을 올려주고 계신데 댓글 내용들이 가족분들이 올려주고 있는 것 같다. "얼굴 살이 쏙 빠졌네", "힘내세요" 등등 다들 가족분들이 올려주고 있는 것 같다.

김은남 : 댓글 쓰신 분들 아이디라도 알려주세요.

최광기 : 안은주 기자님 팬분도 있네요. "아하 저분이 안은주 기자님이군요. 시사저널에서 과학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 방송 보시면서 많은 분들이 실망 하시겠는데요.

일동 웃음

"오마이뉴스ㆍ미디어오늘 같은 매체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최광기 : 1년이 넘는 투쟁 기간 동안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참 많을 것 같다. 사태의 진상도, 비화도 들어야 하고, 아까 윤무영 기자님 시사저널 동료 이야기하실 때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어떠세요?

윤무영 : 저 같은 경우는 동료들한테 많은 빚을 졌고... 선배들(울먹임) 모두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이 굉장한 감동이다. 외환위기 때도 굉장히 힘들지 않았나.. 그 때도 우리 선배들이 후배들 (울먹임) 안 시키려고...( 울먹임) 그 때가 가장 행복했고, 그 선배들과 앞으로 같이 새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최광기 : 파업 기간 중 첫번째 문화제 때,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셨잖아요? 윤 기자님이 첫번째 독자, 가장 가까운 독자라고 할 수 있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셨어요. 파업을 통해서 가족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윤무영 : 어제 들어가니깐... 딸이 그러더라구요.. 아빠 왜 우냐고..(말 잇지 못함)


 
▲ 김은남 기자는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힘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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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남 : 심상기 회장집 앞에서 단식 농성 진행할 때, 윤무영 기자 부인님. 형수님이 오셨다. 형수님이 말하시길, "이 사람이랑 싸워본 사람은 세상에서 나 하나밖에 없었는데 요새는 싸움꾼이 되어버렸다"며 가슴 아파하시더라.

최광기 : 원래 술도 못하시던 분이 요새는 소주도 드시고 말이죠..

윤무영 : IMF 때 기자들 월급도 못 받았잖아요. 그 때 동티모르로 제가 출장가려고 했거든요. 저는 월급도 안 나오는데 못 가겠구나 하구 그랬는데.. 보내시더라고요. 공항에서 (말 잇지 못함)

최광기 : 문 기자님이 좀 이야기 해주세요.

문정우 : 돌았죠. 그 때 돌은 거예요. 봉급도 못 주고 있는 상황인데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동티모르 사건이 크게 났을 때이고, 가겠다고 하는데 보내야지 어쩌겠나. 그런데 웃긴 것은 금창태 사장 때 그 멀쩡한 회사에서 이라크 전쟁이 터져서 기자를 보내겠다고 하니깐 "돈 아깝게 기자를 왜 보내냐"고 하더라. 하지만 신호철 기자가 간다고 하고 갔다. 그리고 나도 가라고 그랬는데 그래서 징계 받았다. 아마 전세계 언론사에서 자기 기자를 이라크에 취재보내서 징계받은 편집장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진우 : 그 취재는 그래도 다녀와서 취재비를 받지 않았냐? 나 같은 경우는 평양출장을 다녀왔는데 금창태 사장이 자신한테 보고하지 않고 갔다고 취재비도 주지 않았다.

일동 웃음

최광기 : 이처럼 시사저널 기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기자의 본분을 다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제가 가장 신기했던 것은 어떻게 파업 중인 기자들이 특종을 낼 수 있느냐 말이죠?

일동웃음

김은남 : 정희상 기자가 제이유 사건 특종을 했었고, 신호철 기자가 중국 현지에서 제이엠에스 교주 정명석이가 중국공안에 체포된 것도 특종했었죠.

문정우 : 그러니 짜증나는게 일요일에 전화가 와요. 데스크를 빨리 봐라. 기사를 올려놨다. 파업 중인데도 기사를 썼다고.. 그렇게 시달렸다. 허허

최광기 : 이렇게 역량 있는 특종기자들이 만드는 신 매체 정말 기대가 됩니다. 지금 이 방송을 보시는 시청자 여러분. 신매체를 창간하기 위해서는 정성이 모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정성을 이 아래로 나가는 계좌번호로 모아주십시오. 저도 오늘 약정했습니다. 아까 방송에서 보신 것처럼 두고두고 욕을 먹습니다. (일동 웃음)

파업 중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러면서 직장 동료들의 재발견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다들 이제 형제, 자매, 친척 같지 않나?

김은남 : 저희 같은 경우는 재발견이 아니라 재확인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시사저널이 특종매체이기는 하지만 특유의 기풍으로 뭉쳐져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부에서도 시사저널이라면 할 말은 하는 매체라는 인식이 있다. 우리 내부도 이 기사를 써야 되는 것이라면 선배들이 딴죽을 걸더라도 꼭 쓰고 만다는 분위기가 있다. 또 선배라고 몸사리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1년 동안 내부에서 싸운 게 6개월, 파업을 진행한 것이 6개월 정도 된다. 파업 중에 줄줄이 금창태 사장으로부터 소송당하고 징계당한 시사저널 기자들을 보면 선배들부터 징계당하고 소송당했다. 다른 언론사였다면 선배들이 뒤로 물러나고 혈기왕성한 후배들이 앞으로 나갔을 것인데....

어쨌든 선배들이 6개월 동안 정직당하고, 무기한 정직당하고 편집국 안에 못들어오는 것을 보면 힘겨웠는데 나중에 다 함께 파업할 때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세계에서 자기 기자 이라크 취재보내 징계받은 편집장, 나 밖에 없을 것"


 
▲ 문정우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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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 : 이런 것을 보고 철이 없다고 말하죠.

일동웃음

최광기 : 작년 겨울 이야기로 좀 화제를 옮겨보자. 여기 주진우 기자님이 잘 이야기 해주실 것 같은데..

주진우 : 무슨 이야기요?

최광기 : 기사를 못 쓰게 한 이야기나, 파업 사태를 일으킨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해서...

주진우 : 복잡한 것은 잘 모르구요. 사실 제가 말을 잘 안 듣는 편이라 언론사를 옮겼었어요. 다른 신문사였으면 어떤 것을 쓰라고 하고 거기에 맞춰서 아이템을 내고 쓰고 짜맞추고 난 뒤에 올라가서 낙점이 되고 그렇겠죠. 그렇지만 시사저널은 다릅니다. 제가 시의성과 중요도. 그런 것들을 따져서 이것이 기사화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편집장이 오케이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겁니다.

선배들은 외부 압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지 후배들이 기사 못 쓰게 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선배들한테도 시사저널에 오자마자 배운 것은 너의 기사를 실현하라고 배웠다. 그렇게 하다가 듣도 보도 못한 금창태 사장이 와서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특히 자기와 특수한 관계인 세종대와 삼성 관련해서 그러더라구요. 또 알고 보니 세종대 비리의 원흉인 모 교수의 앞잡이였구요.

최광기 : 소송에 걸릴 수 있는 민감한 이야기인 것 아시죠?

주진우 : 괜찮아요. 저도 걸릴 만큼 걸렸어요. 어쨌든 금창태 사장이 저를 불러서 못쓰게 하거나 이상한 아이템을 주면서 한번 써봐라 그러더라. 나는 사장님도 언론인이시니 사장님이 쓰십시오 하고 실랑이하고... 기분이 나빴을 거예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기사와 팩트에 대해서, 옳고 그름에 대해서 따져야지 자기와의 관계 때문에 기자의 뒷꽁무니를 붙잡는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 상식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불의한 것을 보면 사회정의 차원에서 쓰라고 배웠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나 좋은 게 좋은거지 밥 먹고 살아야지 그러면서 어떻게 기사를 쓰겠나.

문정우 : 결국은 선배들이 잘못 가르친 겁니다. 후배들이 이 사회에 적응 못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주진우 : 선배가 "선배들한테 대들라"고 멱살잡고 가르쳤지 않냐. 나 여러번 멱살 잡혔다.

일동 웃음

최광기 : 그러면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까요?

안은주 : 작년 6월 17일에 이학수 삼성 그룹 부회장의 인사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준비했었다. 마지막으로 취재기자가 확인을 위해 삼성 측에 전화를 하면서 삼성이 그 기사가 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삼성 홍보팀의 압력이 시작됐다. 하지만 편집국장까지 기사를 내보기로 결정했는데,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로 넘어간 기사를 삭제한 것이다.

시사저널 사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삼성 출신 사장이 삼성에 껄끄러운 기사를 인쇄소에서 삭제했다"고 될 수 있겠다.

주진우 : 다른 언론사 같았으면 편집회의에서 끝났을 것이다.

안은주 : 사실 금창태 사장이 기사를 빼려고 진작에 결심했을 것이다. 인쇄소에서 기사를 삭제해야지만 기자들이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외부 압력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

김은남 : 아까 주기자가 말한 것처럼 금창태 사장이 오고나서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삭제됐던 삼성 기사는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고 삼성 홍보팀 말만 듣고 삭제를 요청했다. 자기가 이학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니 빼달라고 하더라. 안 된다고 했더니 인쇄소에서 삭제하는 그런 행동까지 한 것이다.


 
▲ 주진우 기자가 생방송 중에 '삼성'과 '금창태' 사장을 실명으로 언급해 사회자로부터 주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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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 사실 그 기사가 삼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기는 기사가 아니었다. 현재 삼성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언론사가 드물어서 시사저널이 유독 눈에 띄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정우 : 고경태 한겨레21 팀장도 금창태 사장의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가 고소 당했다. 그런데 그 관련 법원 판결이 나왔다. 판결의 요지가 이렇다. 법원은 금 사장의 행동이 일반적으로 언론사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심하게 욕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겠냐는 이야기다. 결국 욕해도 된다는 이야기다.(일동 웃음) 그후로 금 사장이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최광기 : 금창태 사장이 계속 징계와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은남 : 이에 관련되서 12명이 소송당했고 노조집행부도 7명도 소송당했다. 합쳐서 19명이 고소를 당한 것이다. 금창태 사장이 심지어 시사저널의 독자까지도 고소했다. 이 독자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라 "금 사장은 법조 훌리건이다. 소송을 남발하며 표현의 자유를 막으려는 이 사람을 꼭 단죄해달라"고..

문정우 : 사실 언론인이 가장 많이 시달리는 것이 그런 소송들이다. 돈 있는 쪽에서 있는 돈을 믿고 소송을 제기해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인이라는 사람마저 법적절차를 악용하는 짓을 하고 있다. 참...

최광기 : 워낙에 유명해져서 금창태 사장이 누구인지 네이버 인기검색어 순위로 높게 올라간 적도 있던데..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주기자님이 말해주신다면

주진우 : 글쎄 설명이 안 된다. 그 사람에 대해서 규정할 수가 없다.

최광기 : 자.. 만약 독자 여러분들이 궁금하시면 인물 검색에서 찾아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토론회가 진행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댓글로 격려해주고 계십니다. '모다'라는 아이디를 쓰는 독자께서 "짝퉁 시사저널만 포기하시고 다시 재개하자"고 하셨고, '맥가이버'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은 "더 좋은 기사로 우리 주위에 더 많은 억울한 이들에 대한 관심 부탁드린다"고 하셨네요.

이렇게 댓글을 보니 정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알겠습니다. 이제 굿바이 결별 선언도 하셨고 앞으로 많은 일들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문정우 :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으로 활동할 것입니다. 새로운 매체를 만들기 위해 지금 돈도 모으고 사람도 모으고 있다. 돈 때문에 싸우게 됐는데 결국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게 비극이긴 하지만 새로운 매체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다 'DON'(돈)이더라. 하지만 잘 될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파업 시작하면서 노조 통장에 쟁의기금은 한 푼도 없었다. 이번에도 기적이 일어나서 순조롭게 일이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최광기 : 이번 사태 보면서 독자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의지와 열정이 높았다.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며 시사저널 기자들, 참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픔의 시간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곧 신매체를 창간할 것이라도 들었다. 이 시간 통해 기자들이 광고 한번 해보자.

윤무영 :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양심입니다. 여러분이 지켜주면 진실하게 일하겠습니다. 동참해주세요.

문정우 : 자기 입으로 이 시대의 양심이라니.(웃음) 저희가 만드는 신매체는 광고만 주면 기사 씁니다.(웃음) 광고 내시고 기사 빼달라고 하면 뺍니다.(웃음) 농담이고… 좋은 매체 만들 겁니다.

안은주 : 아까 저희 선배들이 철이 없다고 했다. 신매체 준비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도 사표부터 냈다. 그러면서 신매체가 잘 될 거라고 한다.(웃음) 하지만, 그들처럼 나도 낙관적으로 본다. 백만원씩 오천명만 모으자. 그러면 좋은 매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은남 : 독자들로부터 '신매체 힘내세요. 독자가 있잖아요'라는 노래를 듣고 싶다.

문정우 : 사표 내고나니까 모두 경제관념이 생기고 있다.(웃음)

최광기 : 지금까지 긴장 속에 있었다. 이 토론회를 해야하는가 염려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니까 시사저널 기자들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겠다. 희망을 만들어내는 힘을 봤다. 여러분이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 아닌가.

안은주 : 일년 동안 싸워온 힘은 스스로 만족하는 '자뻑정신'이었다.(웃음) 이 정신에 입각해 새 매체도 잘 만들겠다.

최광기 : '시사저널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다가 이젠 그렇게 못하게 됐다. 편치 않은 심정일텐데. 기자들은 괴롭지 않은가? 또한, 신매체를 만드는 각오는.

안은주 : 짝퉁 시사저널 보면서 너무 답답하고 창피했다. 나중에는 아예 안 봤다.

주진우 : 돌아가면 짝퉁 시사저널에 관한 참회록을 쓰려고 했다. 이제까지 우리의 논조와는 전혀 다른 시각의 기사 즉, 문제 사학 감싸기, 삼성 칭찬 기사 등이 지면에 실린 것이다. 또 편집위원인 김행씨는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는 언론인의 자세가 아니다. 너무나 답답했다. 새 매체를 만들면 짝퉁 시사저널의 폐해를 바로 잡고 기사를 쓰고 싶다.

김은남 : 짝퉁 시사저널은 기존 매체가 18년간 지켜온 논조와 정통성을 완전히 부정했다. 유럽의 경우 사주가 자기 멋대로 매체 성격을 바꿀 때는 기자가 사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 짝퉁 시사저널은 기자와 독자를 무시했다.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고 싶다.

최광기 : 짝퉁 시사저널에 대한 분노가 클 것이다. 그것을 뒤집는 것이 신매체 아닌가?

윤무영 : 파업할 때 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책을 보더니 단숨에 알더라. 총명해서 안 게 아니다. 관심이 있는 몇 가지 기사를 보곤 나한테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더라.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아빠의 생각을 이해시키기가. 그래서 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문정우 : 예전 시사저널에선 경영진이 '이런 아이템으로 한번 써 보라'고 제의하면, 쓸 건 쓰고, 아니다싶은 건 안 썼다. 그런데, 금창태 사장은 그걸 명령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짝퉁 시사저널 보니까 옛날에 금 사장이 제의한 아이템이 거의 녹아있더라. 전 언론노조 위원장 신학림씨가 그러더라. '메이저언론사에서 살아남으려면 공익보다 사주와 자기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이게 출세의 기본원칙이다'라고. 짝퉁 시사저널 보니까 그게 잘 실현돼 있더라.

최광기 : 불행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짝퉁 시사저널을 바로 세우는 것도 신매체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1월에 열린 문화제를 잊을 수 없다. 시사저널 앞에 모인 독자들을 보면서 '아직 정도언론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구나'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7일 <오마이뉴스>가 마련한 방담에 초대돼 지난 1년여 간의 힘겨웠던 투쟁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짝퉁 시사저널 바로 세우는 것도 신매체의 역할"

주진우 : 전인권 선생의 마지막 콘서트이기도 했다.(웃음)

최광기 : 비가 쏟아지던 서울역 앞 '100일 문화제'도 기억난다. 서울역을 오가는 많은 이들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알게되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호외도 제작해 배포했다. 오랜 기간 동안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 이들이 신매체 창간에도 함께 했으면 한다. 지나간 이야기는 이제 거의 들었다. 앞으로의 각오를 들려달라.

김은남 :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단했다. 앞날이 어떨지 모른다. 고난일 수도 있다. 어떤 어려움 있더라도 신매체는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가겠다. 시사주간지 불모의 땅에서 세운 시사저널이다. 그 인원들이 그대로 옮겨가 만든다. 지켜봐 달라.

안은주 : 앞으로가 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길을 선택했다. 이왕 시작한 싸움을 아름답게 결론내자는 생각이었다.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생산적인 싸움이 될 것이다. 언론다운 언론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간다. 1년 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이 고맙다. 그들의 응원이 있기에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다.

문정우 :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한다. 이번 일을 겪으며 기자들이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취재현장에 돌아가면 좋은 보도할 수 있을 것이다. 30~40억 들여서 우리나라 운명을 좌우할 대기업집단을 견제할 수 있다면 옳은 일 아닌가. 도와달라.

윤무영 : 사진기자라 현장을 많이 다녔다. 세상을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1년 동안 싸워오면서 새로운 열정을 가지게 됐다.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감동과 희망을 잃지 않겠다.

최광기 : 오늘의 깜짝 게스트를 모시겠다. 시사저널이 낳은 퀴즈영웅 고재열이다.

고재열 : 오늘 토론회의 캐스팅 담당이었다. 캐스팅을 잘 한 것 같다. 모두들 좋은 이야기 들려줬다. 이제 퀴즈영웅에서 기자로 돌아갈 것이다. 파업하며 단추 떨어진 옷이 하나둘 늘었다. 회사측이 동원한 용역과의 실랑이 때문이었다. 이제 단추 떨어뜨릴 일이 없을 것이다. 오늘부터 웃고 살 것이다.

최광기 : 신매체 창간기념으로 고 기자 단추 다 바꿔주겠다. 여러 파업현장을 다녔다. 파업이란 고통스러운 순간임에도 이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노동자를 봐왔다. 시사저널 전 기자들에겐 이번 1년이 그랬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는 신매체 창간 지원이다.(웃음) 그날을 위해 다같이 파이팅 하자. 더 이상 기자들이 눈물 흘리지 않고 웃으며 여러분과 만날 날을 기다린다. 바로 여러분이 이들의 힘이다.

모두 : 신매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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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한미FTA에서 무얼 바라나?"
  [기고] 삼성경제硏의 한미FTA 보고서 비판

한국 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2일 한미 양국 정부의 협상단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자 4월 5일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기다렸다는 듯 <한미 FTA 협상 타결과 한국경제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1)한미 FTA 협상 타결의 의의, (2)한미 FTA 반대론의 허와 실, 그리고 (3)한미 FTA의 전략적 활용이라는 세 소절로 구성된 이 보고서는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거짓 선전해 왔던 한미 FTA의 기대효과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대기업, 특히 재벌 삼성의 기대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과 그 이면에 전제돼 있는 문제점들은 옳은가? 과연 이들이 한국을 둘러싼 국제경제 현안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한미 FTA가 한국경제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인가?
  
  "고급 소비자가 존재하는 미국"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한미 FTA 협상 타결의 의미와 관련해, 이들은 한미 FTA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핵심 근거는 한미 FTA가 한국경제로 하여금 "과도한 중국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게 하는 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대외무역이 증가하면 어떻게 한국경제의 "경제적 리스크"가 증대된다는 것인지 이들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기술이전"이나 "산업 공동화의 우려" 운운하는데, 이는 국내 제조업 생산라인의 중국 이전을 부채질해 왔던 것이, 김영삼 정부 이래로 한국 정부가 대책 없이 추진해 왔던 글로벌화의 부정적 산물이었다는 점을 은폐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으로 "중국 내부의 정치적 격변"과 "정책의 불연속성"을 근거로 한국경제의 리스크를 걱정한다면, 이들은 이와 동일한 비중으로, 아니 더 높은 비중으로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 및 무역적자 문제를 거론했어야 옳다.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라는 이름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 문제야말로 한국경제와 국제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주범 아니던가.
  
  쌍둥이 적자와 글로벌 불균형, 그리고 미국發 금융위기의 가능성
  
  2005년 말을 기준으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7%인 7167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라는 표현이 탄생했던 1980년대 중반 레이건 정부 시절의 무역적자에 비할 때도 전례 없이 높은 수치다. 또 2005년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2.6%이고, 총 국가채무는 GDP의 64%다. 이 가운데 절반을 외국인, 주로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가지고 있다.
  
  이런 기괴한 경제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 수 년간 세계경제에서 미국 달러화는 지속적으로 그 신용도를 상실해가고 있다. 또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은 자국의 무역적자를 줄인다는 미명 하에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려 자국의 만성적인 경제 문제를 무역 상대국으로 이전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지난 2~3년간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통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절상되면서 이들 국가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미국은 지난 수 년간 '다국적 기업, 특히 군수산업체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과 '중동의 원유 수출국가들 및 미국 정유업체가 지속적인 고유가 정책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양의 유동성', 이른바 페트로 달러(Petro-dollar)를 축적해 왔다.
  

▲ '한미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가 한미 FTA 반대 시위에서 사용했던 이미지. 한미 FTA를 통해 한국경제와 미국경제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은 한국에 '독'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제 이 막대한 유동자산은, 미국 투자은행(IB)들의 주도로, 투기적 대출과 해외 외환투기의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2001년 미국 주식시장의 일시적인 거품붕괴 이후 이 금융자산들은 대체로 부동산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최근 미국에서 나타난 부동산 가격의 앙등과 거품붕괴 현상은 바로 이런 고삐 풀린 금융 자산의 투기적 행태가 야기한 불가피한 결과다. 주택 구입용 융자를 전문적으로 담당해 온 미국의 준정부 대출기관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이름으로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바로 이것이 자산시장 전체의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상황이 바로 2007년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미국경제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는 한편으로는 모기지 대출기관에 비공개적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기이자율을 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일시적으로는 금융 불안정이 경제 전반으로 확대·파급되는 통로를 차단할 수 있겠지만, 결코 제도적인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과잉 유동성 문제 그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조만간 부동산 시장이 아니라면 주식 시장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다변화된 '포트폴리오 투자'라는 이름으로 라틴아메리카나 동아시아의 소위 '신흥 금융시장'(emerging markets)으로 투자처를 옮겨가며 이들 국가의 실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 이는 국제적 금융 불안정의 확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고급 소비자가 존재하는 미국 시장"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시장"이라는 기묘한 대비를 통해 이들이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 재강화"와 "세계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운운하는 것은 단지 이들의 머릿속에 뿌리박힌 숭미주의를 드러내는 것이거나 국제정치경제의 현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정작 한국 정부와 기업이 "세계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추진했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그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은 대미 무역의존도를 서서히 줄이고 외환 및 수출입 구조를 다변화하는 일이다.
  
  "개방의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우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주장을 몇 가지로 분류한 후 각각에 대해 반론을 펴고 있다. 우선 이들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개방에 따른 일부 산업의 피해에 관심을 집중"하거나 "외환위기 이후 개방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개방 반대론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미 FTA로 피해를 입을 산업 부문이 "일부" 농수산물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고 있는 중소기업 분야 및 이에 기반을 둔 중소 서비스업 등 전 영역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유일한 예외는 한국의 재벌들이 어느 정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산업 부문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의 체결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이미 재정경제부는 "금융산업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라는 명분으로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은행산업 분야를 대대적으로 통폐합한 것으로도 모자라 국내 은행의 덩치를 키워 미국식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거창한 계획을 내걸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말하는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국내 은행산업을 미국식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인가?
  
  금융산업의 발전이든 산업구조의 고도화든, 일체의 금융정책은 제조업과 비(非)금융산업 분야의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돼야 한다. 또 금융산업 분야의 고유한 사업 영역과 요건 등에 관한 강력한 감시와 규제를 위한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수의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막대한 이윤 유보금과 비은행권 금융기업이 소유한 금융자산을 차용할 수 있는 소수의 재벌 기업과 금융 자산 소유자들의 이익만을 체계적으로 보장하는 '가진 자들의 천국'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1980년대 미국과 2007년 한국, 그리고 금융부유화
  
  이와 같은 우려가 추상적인 가정만이 아니라는 것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한 보수적 금융정책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당시 폴 볼커가 지휘하던 연방준비이사회는 국제유가의 급격한 상승에서 연원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급격한 단기이자율 상향조정과 달러화 가치의 급속한 평가절상으로 대응했다.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이같은 긴축통화 정책으로 1979년 13%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율은 1983년 4%로 낮아졌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대가는 엄청났다. 같은 기간 실질 GDP는 820억 달러 상당으로 하락했고, 6000억 달러의 총생산이 손실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손실이 결코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고르게 분담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갑자기 상향조정된 이자율 정책으로 가장 큰 손실을 본 집단은 설비 확장을 위해 이전에 대출을 받았던 중소 농장주와 중소기업가들, 그리고 그들에게 고용된 노동자, 그리고 주택과 자동차 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았던 가계들이었다.
  
  그들은 집과 토지 및 생산 설비를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경기후퇴에 따른 비자발적 실업으로 인해 안정적인 수입원도 박탈당했다. 몇몇 우량 중소기업들이 이같은 급격한 고이자율 정책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들은 연이어 불어 닥친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첫 번째 희생자가 돼야 했다.
  
  반면, 이같은 고이자율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금융자산 소유자들, 그리고 레이건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제공한 막대한 보조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중동 전쟁을 통해 자체 재고까지 재활용할 수 있었던 군수산업 분야의 대기업들이었다. 이들은 높은 이자율과 높은 달러 가치를 바탕으로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산 투자를 다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신흥 자산시장으로 투자처를 옮겨가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부르는 일련의 경제 정책들, 즉 공기업의 대대적인 민영화, 사회간접자본과 교육 및 환경 분야 등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의 축소,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철폐 등은 바로 레이건 정부가 앞서 실행했던 정책이다.
  
  이같은 경제 정책은 미국 내에서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1960~1970년대 전후의 모든 경제적 성과를 급속하게 재구조화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우선, 1980년대 초반의 조세감면 정책과 고이자율 정책의 조합으로 역진적인 소득 재분배가 일어났다. 상위 20%의 고소득자는 최대의 이익을 얻은 반면, 중하위 소득자는 최대의 피해자가 됐다.
  
  또한 이 시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빚을 내가면서 소비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전형적인 소비 패턴을 구조화시킨 결정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드림'의 한 지표로 선전되던 개인 주택구입(home ownership) 비율도 194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1980년 66%에 이르렀다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레이거노믹스는 많은 미국 국민 개개인에게 경제적 손실을 끼쳤을 뿐 아니라, 미국경제 전반의 활력을 근본적으로 뺐어갔다. 미국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금융정책 수립·집행 능력은, 그 공식적 목표가 '화폐 총량에 대한 조정(monetary aggregate targeting)'에서 '단기이자율 조정(inflation targeting)'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의 거시경제적 여건 전반에 대한 고려보다는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렸다.
  
  한번 역동성을 상실하게 된 미국 경제는 더 이상 1984년 이전까지 보여줬던 경제 성장률을 시현하지 못하고,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주기적으로 공존하는 오늘날의 전형적인 패턴으로 구조화됐다.
  
  대외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 레이건 정부의 초긴축 금융정책은 국제적인 차원의 경기후퇴를 야기하기도 했다.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을 추진했던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경제성장이 급격히 후퇴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투자은행에게서 막대한 대출을 받았던 3세계 개발도상국들,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외채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개방의 지표와 소득 재분배 효과
  
  한편 '미국식 모델을 수용해야 할 불가피성'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개방이 없었을 경우 국가 간 또는 일국 내의 소득 불균형은 더 심화되었을 것이며, 세계화의 흐름에 부응한 국가가 더 많은 이익을 향유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보고서에서는 "세계화"와 "개방"의 정도를 도대체 어떤 지표를 이용해 측정했는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수출 보조금과 각종 조세혜택 그리고 정책금융을 지원받아 수출 목표를 달성한 기업이 있었다고 치자. 이 기업은 당연히 미국을 포함한 해외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업과 정부는 개방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분류되는 것인가 아닌가?
  
  이런 의문은 결코 비아냥이 아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세계화나 개방 수준이 일인당 국민소득 증가율과 긍정적인 상관관계(positive correlation)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려면 먼저 '어떻게 세계화와 개방 수준을 측정할 것인지'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이런 상식도 지키지 않은 채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세계화나 개방 그 자체가 소득증가를 가져온다는 인과론적 설명(causal relation)으로 기존 보고서들을 왜곡하고 있다.
  
  이들은 한미 FTA라는 양자 간 협정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의 다자간 협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는 WTO 체제 하의 다자간 무역· 투자 체제가 그 이전의 통상협정과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 협정이 상품무역에 관한 것인지, 지적재산권(IPR)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금융서비스와 관한 것인지에 대해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개방=세계화= FTA=경제성장= 소득 증가'라는 단순한 등식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주입시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개방과 세계화가 국내 소득의 재분배에,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역학관계에, 중소기업과 독점재벌의 수직적인 통합관계에, 또는 경영자와 도시 임금노동자들의 소득 분배와 도시 거주민과 농어촌 빈민들의 소득 분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던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질문들이다.
  
  한미 FTA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거짓 선전은 "한미 FTA가 양극화를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또다른 선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 FTA가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한미 FTA를 계기로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보장하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대거 유입돼야 하고,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기업 퇴출과 실업 증가"를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일자리가 단기적으로 대거 창출되어야 한다. 둘째, 일시적으로 퇴출되는 기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성장해 국내 고용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한미 FTA의 금융서비스 협정문은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보장하는 생산적인 자본과 단기성 투기자본을 구별할 수 있는, 금융감독 기구의 감시 및 규제 기능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또 한미 FTA는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투기자본을 규제하는 일체의 산업정책 및 금융 관련 규제를 '완전 자본시장'의 이름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한미 FTA는 여전히 초급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금융 및 조세 혜택을 필요로 하는 국내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기술혁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뿌리 뽑을 것이다.
  
  그들 말대로 한미 FTA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명확한 사실은 "장기적으로"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만 구조조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한미 FTA의 전략적 활용"이라는 소절에서 밝히고 있는 한미 FTA의 기대효과는 (1)"경쟁에 의한 구조조정 촉진" (2)"기업 규제 개선의 계기" (3)"투자 활성화의 계기" 등 크게 3가지다.
  
  이들은 '전략적 활용론'을 설파하기 위해 먼저 '중소기업 분야의 지체된 구조조정'을 공격한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은 자산매각, 사업 구조조정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상태"인 반면 "중소기업은 구조조정 부진, 경쟁력 저하 등으로 인해 영업이익률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런 말을 하기에 앞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재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조조정을 해왔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말하는 대기업집단의 구조조정이란 기껏해야 '자산 소유권을 불법적으로 상속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 노력이 아니라 '족벌체제 유지' 노력이다.
  
  더 나아가, 이들이 오도하는 것과는 달리, "중소기업이 낮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구조 조정이 지연"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구조조정 압력을 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직적으로 통합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종속관계 때문이다. 서유럽 각국에서는 상식처럼 굳어진 '업종 전문화' 제도는 온데간데 없고, 그나마 남아 있던 출자총액제도도 최근 재벌의 로비로 폐지되고 말았다.
  
  따라서 "한미 FTA는 [중소기업 부문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외부적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 통합관계가 지속되는 한, 정부가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 한 한국의 중소기업은 결코 혁신 주도적 기업으로 거듭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한미 FTA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혁신적 우량 중소기업의 근간을 뿌리 뽑는 최악의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떤 투자가 어떻게 활성화된다는 말인가
  
  마지막으로 삼성경제연구소가 강조하는 한미 FTA의 기대효과는 "투자 활성화의 계기"다. 외환위기 이후 "저투자-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다. 기업의 투자부진이 경제 성장률의 하락과 고용구조의 악화를 가져온다는 주장도 사실이다.
  
  이들은 한미 FTA로 외국인직접투자(FDI)도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FDI는 포트폴리오 투자와는 달리 실제로 한국 현지에 고정자산을 투자해 고용을 창출하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은폐하는 것은 첫째, 경제학적으로 FDI와 포트폴리오 투자를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설사 외국기업이 실물 고정자산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실제로 현지 경제가 요구하는 만큼의 고용을 단기간에 창출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셋째,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기술이전과 임금, 조세 및 환경 관련 규정, 그리고 국내 은행과 맺는 제도적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국민경제에 이바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론스타처럼 투기만 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한미 FTA는 임금, 조세, 환경 등 제도적 기업 환경을 자국 국민경제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방향으로 조성하려는 일체의 정부 노력을 잠식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경제연구소가 계산한 "20.8%의 FDI 증가율"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 FDI는 고용, 임금, 기술이전 등과 관련해 한국 경제에 일말의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
  
  외환위기 이후, 특히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인 설비투자 비율도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투자 감소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급속하게 개방된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신용카드 대란'으로 나타난 급속한 신용 거품의 축소와 이에 따른 소비 위축 등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규제와 감시를 통해 자본시장 및 금융시장의 급격한 개방에 따른 불안정성을 줄이지 않는다면, 정부가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해 국내 소비자들의 안정된 소득 수준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투자 활성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추진되는 한미 FTA는 삼성을 포함한 독점 재벌들을 제외한 전 산업 분야의 성장과 발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다.

신희영/미국 신사회과학원 박사과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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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5-1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네요..잘 지내시지요??
밀린 페퍼 읽다가 님 글 올라온것 보니 반갑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5-1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잘 지내시죠, 배꽃님? 이 생활 시작하니까 정말 정신이 없네요. 아직도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듯 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노곤한 봄…잠이 모자란다] 늦게 자는 올빼미족 '아침형' 되려다 역효과
[한국경제 2007-04-07 09:49]    

수면이 건강의 중요한 척도로 인식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사람을 성공의 대변자로 여겼다.이제 더 이상 이런 생각은 옳지 않게 됐다.현대인은 인류 존재 이래 가장 적게 잠을 잔다.

과거 통계조사로 추산해 보면 80년 전에는 평균 8.8시간을 잤다.이에 반해 현대인은 평균 7시간을 채 못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대체로 늦게 잠들고 일찍 깨서 만성 수면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수면 빚'(sleep debt)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다. 수면 빚을 지는 요인 중 중요한 것은 현대인의 상당수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갈수록 늦어지는 '수면위상지연증후군'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늦어도 저녁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7시 이전에 기상하는 게 바람직하나 이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새벽 1∼2시가 돼야 잠을 자고 아침에 깨기가 무척 힘들다.

이 증후군이 일어나는 요인은 생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뇌에 태생적으로 입력된 생체시계는 하루 24.23시간으로 일상생활의 24시간보다 다소 길다.

이 때문에 점차 취침시간이 뒤로 미뤄져 늦잠을 자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침 햇빛을 받고 기상해 뇌속에 입력된 생체시계를 다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낮에 햇빛을 쬐는 양마저 적어 이 같은 자연스런 수면 리듬 유지에 지장이 많다.

적절한 수면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8시간 이상 자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3~4시간만 자도 충분한 사람이 있다.

어느 정도 타고난 개인의 특성이다.

다만 평균을 말한다면 성인은 하루 7시간30분의 수면이 적절하다.

3년여 전 화제가 됐던 '아침형'인간은 누구에게나 적합한 것은 아니다.

태생적으로 늦게 자서 늦게 깨고 오후와 저녁에 최고의 수행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수면의 양과 시간은 타고난 특성과 주어진 환경을 고려해 조절하는 게 좋다.

수면 빚이 있는 직장인들은 늦게까지 회식 과음하거나 유흥을 즐기는 것을 삼가,적절한 시간에 충분히 잘 수 있도록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주말에 1∼2시간 정도 늦잠을 자서 수면 빚을 갚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월요병'을 예방하려면 주말 낮에 수면·각성리듬을 깨뜨리는 긴 낮잠을 자는 것보다 주말 아침에 1∼2시간 늦잠 자는 게 현명하다.

낮잠도 수면 빚을 해소할 수 있다.

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낮에 노곤함을 느끼고 낮잠을 청한다.

적절한 낮잠은 신체기능 및 인지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있다.


밤에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 오후 3시 이전에 20분 이내의 짧은 낮잠을 자야 건강에 유익하다.

반대로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낮잠을 잔다면 야간수면 욕구를 감소시켜 오히려 불면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수면을 방해하는 직접적 요인의 절반가량은 과도하고 불규칙한 업무,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이다.

우울증 없는 불면은 없고 불면은 더 깊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초래한다.

수면 후 아주 힘들게 일어나는 것도 스트레스와 우울증 때문이다.

수면무호흡증과 하지불안증은 대표적 수면장애질환이다.

수면무호흡증은 '악성 코골이'로 성인 인구의 10∼20%에서 발생한다.

공기통로를 넓히는 기구를 착용하거나 수술로 치료가 된다.

최근 이슈화된 하지불안증은 잠들기 전 다리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 때문에 잠들기 어려워하는 증상으로 성인의 10%가량에서 나타난다.

하지불안증은 도파민 분비 저하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뇌내 도파민 수용체를 자극하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리큅'등이 처방되고 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면 수면제를 적절히 활용해 볼 수 있다.

장기간 수면제 복용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

점차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지고 약 없이는 잠을 못 자는 의존성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한 최소 용량을 단기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불면증의 만성화를 막는 좋은 방법이다.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의 '스틸녹스'처럼 단기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수면제가 많이 나와 있다.

/이헌정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수면장애클리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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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4-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올빼미형이었는데 새벽형으로 바꾸려고 무진 애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구요. 하던데로 생활하는 것이 건강에는 더 좋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요즘 어떻게 로펌생활은 힘들이 아느신지....... 정말 건강조심하시구요.

외로운 발바닥 2007-04-2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잠이 갑자기 줄어서 결혼하고서 늘었던 몸무게가 한꺼번에 다 빠져버렸답니다.
힘안들이고 살 빼서 좋긴 한데, 잠을 많이 못 자는게 아직 익숙치 않아서 가끔 근무시간에 졸곤 한답니다. 산타님도 잘 지내시죠?
 

한미FTA 체결되면 양극화 해소?
정부는 정치경제 소양부터 갖춰라
[기고] 백종국 경상대학교 교수
텍스트만보기   백종국(ucla53) 기자   
▲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을 정당화하는 글로 가득 차 있고 또 이 글들은 사회의 여론주도층에게 전자우편으로 송부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로서 이 문제에 관한 심도있는 연구와 함께 이 협정의 타당성에 대한 신념이 있었을 터이고 또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해당 정책에 유리한 발언을 게재하거나 설명을 곁들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주장이나 무리한 논지로 해당 정책을 정당화하는 태도는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정책은 장단점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태도이고 국민을 오도하는 행위이다. 그 정책의 진실성조차 의심케 하는 행동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들자면 "한미FTA는 양극화 해소의 기회"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한미FTA는 수출과 투자 증대를 초래하고 이는 중소기업 등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양극화의 최대 주범은 실업이므로 일자리가 창출되면 양극화도 해소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치경제학적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처럼 단순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논리의 매 단계마다 다양한 전제가 필요하고 각 사례에 대한 경험적 검증도 이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미FTA이 양극화 해소라고 주장하는 이 글의 첫머리에 벌써 "산업연구원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개방과 양극화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지원위원회'가 인용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추산을 보면 표준 양극화지수에서 자유무역의 기수격인 미국의 양극화 현상이 현재의 우리보다 훨씬 심하다.

도리어 역사상 많은 경우에 약소국의 무분별한 자유무역은 현실에서 극단적 양극화 혹은 내부식민지 현상을 초래하였다. 양극화 해소는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아니라 이 협정체결이 초래할 양극화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다.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의 대정부 제소권 보장이 이러한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정부가 강조하는 협정이후의 119조원 농업지원정책이 내국민대우를 주장할 다국적농산품회사들의 이익과 충돌할지 안할 지는 구체적인 협정 문안을 검토해 보아야 알 일이다.

정부의 '양극화 해소' 주장, 정치경제학적 소양도 없다

우리의 지난 성장이 마치 개방의 산물인양 호도하는 주장들이 정부의 문서들에 자주 발견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세계은행의 일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던 바이다.

다른 토론은 차지하고라도, 우리 체제가 그토록 개방되어있다면 무엇하려 이처럼 과격한 개방이 또 필요한가?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정부의 자료에서라면 최소한 앞뒤의 논리라도 맞는 주장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한미FTA의 체결을 복음인양 찬양하는 자들이나, 이의 체결 자체가 비극인 것처럼 선전하는 자들이나 다 국민을 호도하는 자들이다. 진실은 자유무역협정의 체결 자체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자유무역협정이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협정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공정하게 말해서 이 문제에 좀 더 책임을 져야할 자는 이 협정을 복음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추진하는 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이 논쟁에서 먼저 주먹을 내민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FTA가 그 자체로 선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의 이익이 증진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체결하려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정치지형은 이 점에서 매우 뒤틀려있다.

청와대의 문서가 지적하듯이, 수구파들은 이 협정을 친미와 반공의 또 다른 상징으로 여기고 있고 급진파들은 이 협정을 매국의 상징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러한 뒤틀림은 이 문제 자체의 진실 보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장악할 것이냐 하는 권력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해당 정파의 이익에 논의의 초점이 있다.

진정한 핵심은 자유무역협정을 할 것이나 말 것이냐가 아니라 그 협정이 어떤 종류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일반적 외교 관계를 체결할 때 평등한 협정이 될 것이냐 불평등한 협정이 될 것이냐 하는 것과 같다. 을사보호조약처럼 강제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이익 계산은 매우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불이익이라는 판단이 서면 취소하거나 중단하는 게 옳다. 이 판단이야말로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는 게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정부가 주도한 국제협정을 국회가 비준을 거부하여 무산시키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신인도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 김종훈 한미FTA수석대표이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미FTA를 보는 시각이 뒤틀린 이유... 대선과 맞닿아있기 때문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협정체결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다. 체결 과정에서 전략상 자세한 사항을 공개하긴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국민적 합의를 통한 국회비준을 받아야할 때이므로 당연히 협정 전문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발췌한 소개는 정당하지 못하다. 방대한 협정문을 비전문가들이 대다수인 국회의원들에게만 개방한다는 태도도 매우 의심스러운 일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협정을 통과시키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협정 비준이 좀 늦어지더라도 협정 전문을 공개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다.

총리를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이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협정 전문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혹자는 국제적으로 협정 문안들이 공개된 적이 없다거나 상대국과의 약속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타당치 않다. 협정작성 과정에서는 협상전략이므로 공개할 수 없고, 협상초안이 작성되고 난 후에는 국제적 관례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면 국민은 오로지 몇몇 통상관료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라는 주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타 민주적 국가와 달리 우리는 협상 착수 이전에 충분히 토론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비준 과정에 있어서라도 투명한 토론이 필요하다.

이러한 투명성을 기초로 한 국민적 토론을 거치고 난 후에 이루어지는 국회비준이 아니라면 노무현 정부는 정략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야당 혹은 일부 계층과 야합하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설사 대통령의 순수한 의지와 결단이 기초라 할지라도 이 과정은 필요하다. 이 나라는 대통령 혼자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1997년의 외환위기를 통해 이 점에 대해 충분히 학습한 바 있다. '부산지역의 삼성자동차 캠페인-나이키 사건-세계화 선언-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김영삼 정부의 허무한 에피소드는 개방만이 최선이라고 부르짖던 대책 없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문제는 이 이데올로기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인해 온 국민이 파멸적 고통을 맛보았다는 점이다. 동일한 실패를 노무현 정부가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협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도 민주시민의 교양을 지켜야 한다. 현 정부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정통성 있는 정부이다. 그러므로 반대를 하는 일에 있어서도 법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예컨대 과거처럼 토론장을 물리적으로 봉쇄하고 이 일이 성공했다고 만세를 부르는 행위는 민주주의와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는 태도이다. 이들이 무질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질서한 사회가 되면 언제나 강자들이 일방적 이익을 얻게 마련이다. 사회적 약자들일수록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가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주최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투명한 한미FTA 협정 문안 공개 시급히 이뤄져야

간곡히 당부하건대 정부 자신이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자유무역이 미래의 추세이기 때문에 무조건 참여해야한다는 주장은 국가이익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당국자가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자유무역에 참여하면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된다는 믿음은 마치 공산주의 체제를 이룩하면 계급없는 사회가 나타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고 오도된 이데올로기이다.

공산주의가 전위정당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자유무역주의도 주권에 걸려 넘어지게 되어있다. 만일 어떤 종류의 자유무역이 있어서 상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노동까지 자유롭게 교환하게 된다면 이 자유무역의 이상은 달성된다.

그러나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주권의 소멸을 상정하는 것이다. 주권의 소멸에 기초를 둔 자유무역을 상정하는 것은 매개의 변증법을 극복한 공산당을 상정하는 것만큼이나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에 1130㎞ 길이의 새로운 장벽을 쌓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도덕적 인간들로 구성된 비도덕적 사회라는 모순은 아마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인간들이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한미FTA에 대한 절차적 해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단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적 논의를 거치고, 법적 절차를 거쳐, 어느 쪽이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면 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물론 합리적 설득이 불가능한 이데올로그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달성되면 이들의 반대는 관용할만한 다양성으로 남게 된다. 정부 자신은 최대한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배제하고 왜 이것이 국가이익에 부합되는 지만을 최선을 다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된다. 정부의 보다 건전하고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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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4-2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부가 하는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도 않고 충격도 받지 않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살까 궁리나 해봐야 겠어요. 끙~

전역 하신건 알고 있었는데 인사가 늦었어요.
축하 늦었다고 서운해하심 어쩌나...*.* . 알콩달콩 잘 지내시죠?^^

외로운 발바닥 2007-04-2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을...축하해주시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
지금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는 중입니다. 파란여우님 오래간 만에 뵈니까 너무 반갑네요. *^0^*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는 이유는?"
[프레시안 2007-01-22 12:03]    
[방담]전·현직 기자ㆍ언론운동가가 본 <시사저널> 사태

 [프레시안 정리=강이현/기자]

   어찌보면 한 주간지의 내부 홍역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지난해 6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삼성 기사를 일방적으로 삭제하며 불거졌던 금 사장과 기자들 간의 갈등은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 이 사태에 반발하는 기자들에 대한 잇따른 징계로 이어졌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제기했던 단체협상은 결렬됐다.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기자들은 금창태 사장 퇴진과 심상기 회장의 사태 해결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태는 지난 9일 기자들이 빠진 채 잡지가 발행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는 금창태 사장의 지휘 아래 편집위원 및 외부 필자들의 기고로 채워진 잡지가 지난 9일 899호에 이어 지난 16일에는 900호로 발행됐다.
  
  기자들과 독자들은 이를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은 편집인인 자신이 지휘하는 이상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짝퉁'이란 용어를 쓴 필자들과 언론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자 및 일반 시민들이 '나를 고소하라'며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19일 저녁 서울 충정로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부활하라! 진품 시사저널' 문화제를 열었다. 고종석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위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등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린 독자 및 언론계 인사들은 앞으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견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초유의 사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사저널>의 문제가 결코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또 결코 한 주간지의 내홍 정도로 치부할 일도 아니라고 한다.

  
  <시사저널> 사태는 민주화 이후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본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언론과 자본의 관계를 화두로 이번 <시사저널> 사태가 갖고 있는 함의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류이근 <한겨레21> 기자, 최성진 전 <뉴스메이커> 기자,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신호철 <시사저널> 기자가 참석한 이 방담은 지난 16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열렸다. <편집자>

  
  <시사저널> 사태 뜯어보기
  
  프레시안 : 여기 모인 분들은 현재 <시사저널>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 편하게 얘기했으면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사태를 바라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사태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발행되고 있는 잡지에 대한 소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신호철: 지난 899호에는 '조중동 죽이려다 친여 매체 다 죽이나'라는 제목이 뽑혀 있었다. 이분법적으로 조중동과 친여매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초등학생과 같은 사고다. <시사저널>이 산업잡지가 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정치적인 성격이 변해가니까 문제가 있는 거다.
  
  
▲ <한겨레21> 류이근 기자 ⓒ프레시안

  류이근 :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존 우리가 읽어 왔던 <시사저널>이 진품이었다는 얘기다. 지금의 <시사저널>을 메꾸고 있는 기사들이 진품과 어울리지 않게 돼버렸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되풀이 될 것 같다. 크게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잡지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한겨레>도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다른 언론들이 이 문제에 너무 침묵해 왔다. 어느 언론사도 지금 <시사저널>이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미시적으로는 언론사 내 편집권 독립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대부분 언론들이 대기업 광고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들이 스스로 발언할 용기도 없을 뿐더러 발언할 때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그런 것들을 기자들이 발언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장과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 등 전직 언론인 선배들이 칼럼 등을 통해 '이게 기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게 기사가 되는 것이냐'며 직접적으로 현직에 있는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기자들이 답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이송지혜 ⓒ프레시안

  이송지혜 :
저도 이번 사태가 참 가슴아프다. 언론재단이 지속적으로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에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큰 세력이 (정치)권력이라는 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는 1위가 사주, 2위가 재벌 또는 광고주의 입김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는 그것과 딱 맞닿아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외압을 경영진이 방어해줘야 할 텐데 오히려 기사를 빼고 편집권을 훼손했다. 그동안 언론재단의 조사에 나타났던 언론자유 침해의 가장 큰 두 가지 요소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더 이상 상식과 선의에 기댈 수 없는 문제"
  
  최성진: 899호 이후부터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그 이유는 기자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의지해 왔던 부분은 법보다는 상식이라는 잣대였고 그것을 믿고 기사를 썼는데, 899호 만드는 시점부터 사측에서 상식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성 기사 삭제 문제가 불거져서 장기간 파행을 겪고 있는 이때에 삼성 측과 관련된 인사가 와서 편집에 개입한다든가, 전직 <중앙일보> 기자들이 와서 편집을 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현직 중앙일보 기자가 커버스토리 썼는데 이런 행태가 상식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류이근: 상식에 지나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실 899호를 이렇게 만들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만들었다. 자칫 상식에 기대하면 문제의 성격이나 사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1인 사주의 선의를 기대하긴 참 어렵기 때문이다. 1인 사주가 운영하는 매체들의 폐해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봐 왔다. 정권, 자본의 압력이 그대로 편집국이나 기자들에게 투영되어 문제가 부각된 사례들은 많이 있었다. 사주들의 선의는 어디까지나 기업으로서의 매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편집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을 제도화시켜내지 못했을 때 편집권은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최소한 사주가 갖는 소유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기자들은 편집권 문제를 제도화, 명문화 하지 않았을 때 사주의 선의에 쉽게 배반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성진: 류 기자는 '선의'라고 했고 나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상식이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류이근: 취재 과정에서 금창태 사장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기사를 들어낸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을 징계조치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형식 논리로 보면, 또 사주의 상식으로 보면 자신이 발행인 겸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또 놀랐던 것은 지난번 899호 발행 뒤 사태가 새롭게 전개된 점이다. 초유의 일이라고 하던데,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뒷감당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현재 잡지를 만들고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안하고 언론을 피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인터뷰 등에도 떳떳하게 응하던 태도에서 바뀌었다.
  
  신호철: 폭풍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아닌가 본다.
  
  류이근: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금 사장이 원하는 것이 이런 형태의 잡지가 계속 생산되는 것인지, 아니면 기자들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강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전자라면 가장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송지혜: 금 사장이 공동대책위원회로 꾸려진 시민단체들의 면담도 거부했다.
  
  최성진: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류이근: <중앙일보> 계열사가 899호부터 많이 참여했다. 실제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의 상당수가 <중앙일보> 출신이고, 그런데 정작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서는 시사저널 사태를 볼 수 없다.
  
  "언론의 자유 외치던 조중동은 왜 아무 말도 없을까?"
  
  최성진: 899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냉정하게 말하면 <시사저널>의 문제였는데, 이제 더 이상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에는 '왠만하면 다른 회사의 문제는 그냥 넘어가거나 침묵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류이근: 경쟁사 혹은 타 언론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고 본다. 취재하면서 '이제 그만해라', '경쟁지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묵하는 것이 관행 아니냐, 이걸 깨도 되는 건가'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굉장히 불편했다.
  
  문제에 대해 방관, 동조, 침묵하라는 말이다. 기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이 사회 감시라면 그 사회라는 공간 안에는 언론도 들어간다.
  
  
▲ 전 <뉴스메이커> 최성진 기자 ⓒ프레시안

  최성진:
애초 이 사태의 발단이 삼성 기사에 있었고, 상식적으로 <중앙일보>와 삼성의 관계가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태의 와중에 <중앙일보> 기자가 <시사저널> 기사를 쓴다는 것이 문제다.
  
  이송지혜: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있는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우습다.
  
  류이근: <시사저널> 자체가 한국 사회 내에서 가지는 독특한 역할이 있었다. 그런 잡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조중동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 아닌가? 언론의 자유를 말했는데, 조중동은 이 문제를 언론의 자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자유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다"
  
  프레시안: 이번 사태를 대강 아는 독자들은 '기자들의 파업은 결국 독자들의 손해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류이근: 노사갈등으로 보더라도 <시사저널>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임명된 적 없는 편집위원들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손해가 되고 있다.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인식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아예 악의적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송지혜: 또 사측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나?
  
  신호철 : 미온적이다. '이거 이거 안 받으면 너네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이송지혜 : 답답한 것이, 지금 시사저널 기자들은 과도하게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후생복지와 관련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문제로 하는 파업도 정당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기업의 압력을 받아 편집권이 부당하게 유린당한 점이다.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측이 잘못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 <시사저널> 신호철 기자 ⓒ프레시안

  신호철 :
편집인은 편집권을 경영의 문제로 본다. 그런데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며, 노동의 권리 중 하나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근로조건이다.
  
  류이근: 기자들의 요구사항이나 정당한 편집권에 대해 명시적인 장치를 <시사저널>에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한겨레>는 사장이 발행인까지 맡고 있다. 그러나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따로 있고, 편집국장이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고 편집인은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오만하고 예민한 기업의 '언론 검열'"
  
  프레시안 : 물론 편집인, 편집국장의 편집권 문제도 언급돼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경영과 맞물리는 광고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류이근: 사실 현업에 있는 기자들도 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사실 언론사의 광고국와 광고주는 통상적인 갑을관계가 역전돼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 기업에 대한 기사가 크게 다뤄지면 광고국의 의견이 곧바로 기자한테 또는 데스크한테 간다. 이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언제든지 그런 일이 재발할 수 있고,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최성진: 기자로서 재벌 관련된 기사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 미담이나 선행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 재벌의 비리 문제 등에 관한 기사를 쓸 때면 필수적으로 해당 기업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 그럴 때 홍보실을 통해 취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렇게 되면 바로 광고국으로 접촉이 들어와 일종의 딜을 제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기자 개개인 스스로도 일종의 자기검열 비슷하게, 최소한 귀찮아서라도, 재벌관련 기사는 잘 쓰지 않게 된다.
  
  프레시안 : 예전에는 권력을 가진 기관이 검열을 했다면 이제는 결과적으로 재벌들이 검열을 하는 격인 것 같다.
  
  류이근: 재미있는 것이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본의 횡포나 부당한 압력에 대해서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또 우리가 잡지를 만들어서 파는 과정도 일종의 자본의 행위이기도 하다. 자본주, 재벌들의 문제제기와 간섭에 대해 기자들이 체감적으로 가장 큰 압력 중의 하나라고 꼽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덜하다.
  
  이송지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삼성은 언론인들을 잘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쟁쟁한 언론인 출신들이 그 홍보실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렇게 밖으로 표출된 <시사저널> 사태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삼성과 관련된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어제 에버랜드에서 사고가 났는데 몇몇 언론에 의해 알려졌는데도 '모 놀이동산'이라고 한 언론도 있었다.
  
  최성진: 심지어 몇몇 경제지는 이 에버랜드 사고를 쓰지도 않았다.
  
  류이근: 대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막으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몸부림이다. 당위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결국 문제는 기자들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다. 사주, 조직이 그런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모기장을 촘촘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성진: 해당 기자가 대응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피땀 흘려서 생산한 기사를 끝까지 지켜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기자 개인의 영역이나 시사저널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에서 그걸 지켜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민언련,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에서 기구나 제도적 차원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송지혜: 그런 측면에서 공영방송이나 특정한 사주가 없는 <한겨레> 같은 매체에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기사를 막는 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삼성같은 그룹은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분명 있다.
  
  따라서 언론으로부터 감시받고, 사회의 여러 다른 관계 속에서 감시받고 견제받는 가운데 운영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을 부당한 개입이나 외압을 통해 해결하려 한 것은 삼성이 마땅한 비판 받아야 할 문제다. 삼성은 'X파일' 사건부터 시작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단죄받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이런 식으로 편법으로라도 자신과 관련된 부당한 기사를 막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이 가슴아프다. 누구로부터도 비판받고 평가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치권력보다 더 오만한 태도다.
  
  최성진: 기업에 해가 되는 기사를 막는 것도 있지만 사주와 관련된 평범한 기사들마저도 무조건 내지 말라고 요구한다. 오만한 자세와 더불어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예민한 자세라고 본다.
  
  "실제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상상하는 '삼성의 힘'이다"
  
  프레시안 : 요즘 언론의 경제적 종속의 문제는 꼭 기업에 의해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금속노조의 의견 광고를 거절했던 일도 있다. 이미 언론 자체 내부에 상당히 기업 또는 재벌의 속성이 들어와 내면화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류이근: 기본적으로 수입의 80~90%를 광고에 의존하니까 발생하는 문제다.
  
  신호철 : 그 중에서도 삼성과 기타의 기업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곳곳에 삼성의 힘이 계측된다. '시사모' 등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얘기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삼성을 의식하는가, '삼성 의식지수'가 나타난다. 삼성의 일이라 그런 일은 안 하겠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당장 오늘 방담도 섭외하는 과정에서 두 명이 안 됐다.
  
  사람들은 삼성의 실제적인 힘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힘을 상상한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다른 기업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명시적인 편집권 규약과 사회적 기구 마련, 대안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삼성이라는 권력이 언론과 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광고 때문 아니냐.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언론사의 수익구조를 개편해야 하나?
  
  류이근: 상당히 본질적인 문제다. 모든 잡지들 마찬가지일 텐데 삼성의 광고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수익구조 개편은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으며 대략 열 발자국쯤 앞서나간 생각인 것 같다. 삼성으로부터 광고를 받으면서 발생하는 긴장감,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의 문제다.
  
  사주의 의지도 중요하고 편집권을 지켜내려고 하는 기자의 의지도 중요한 것 같다. 미시적으로는 광고주와 관련된 기사를 넣고 빼고, 톤을 조절하는 문제와 관련해 편집국과 광고국 간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는지 좀 더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송지혜: 재벌의 언론관리가 단지 광고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연수 등으로 언론인들을 관리하는 수단은 많다.
  
  류이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모순이다. 영세한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경우는 자본주들이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서 연수도 가고 때로는 그들의 협찬을 통해 취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모두 떠나 청정지역에 살고 싶다?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돈 많은 언론사는 현실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최성진: 지금 <시사저널> 사태와 같은 일을 어떤 개인의 영역이나 하나의 매체에서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연대의 틀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기자협회라든지 관련 단체들이 많이 있지 않나. 재벌 관련 기사로 인한 연대 같은 것을 하나 설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생각한다.
  
  이송지혜: <시사저널> 공대위가 사실 그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안고 있다. 당면해서는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과 관련된 공대위이지만 그 공대위에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본으로부터 언론 독립'이다.
  
  <시사저널>의 건강한 기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로 던져진 것 같다. 암담하지만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냥 묻히고 넘어갈 수도 있던 문제였는데 한가닥 희망을 본 것 같다.
  
  프레시안: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정리=강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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