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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체제 등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이래 내 머릿속을 항상 채우던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힘의 논리이긴 하지만, 과거 제국주의를 거쳐 식민지에서의 수탈을 거쳐 산업발전을 이룬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로 인하여 자생적 산업발전의 기회를 상당부분 박탈당한 개도국들에게(이 부분은 약간 편향된 시각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룰 - 자유무역, 지적재산권보호, 산업 보조금 지급 금지 등 - 을 통하여 모두 똑같은 위치에서 경쟁하자고 강요한다면 이는 후발주자인 개도국과 후진국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후진국으로 남아있으라고 하는 말과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세계적인 양극화와 빈곤층의 확대 등의 현상을 보면 선진국과 개도국, 후진국간의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리란 것이 거의 명백하다는 점도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무언가 개도국들에게는 상당히 부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의문점에 대한 거의 직접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결론 역시 선진국들이 일방적 룰 - 개도국들의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제도로 포장된 - 을 강요하는 것은 선진국들의 경제발전사에 비추어 보아도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선진국들은 과거 후발적 지위에서 산업발전을 이루기 위하여 선진국들이 지금 개도국들이 사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소위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 내지 정책들 - 높은 관세, 전략적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부주도의 경제정책 등 - 을 수십년에서 수백년동안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지금의 선진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따라서, 선진국들이 자유무역의 신봉자라는 일반적 통념은 역사적 사실에 정면으로 반한다.
• 지금 개도국들의 여러 제도 - 민주주의, 중앙은행제도, 노동법, 재산권보장 등 -는 지금의 선진국들이 개도국 수준의 경제발전단계에 있었을 때 갖추었던 제도보다 훨씬 더 발전된 것이다. 또한 선진국들은 수십년에서 수백년에 걸쳐서 지금 선진제도라고 인정되는 제도들을 자신들의 사정에 따라 수용하였다. 따라서 선진국들이 개도국들에게 당장 그들의 제도를 수용하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에 반하는 처사다.
• 최근 20여년간 선진국들이 강요하는 소위 바람직한 제도들을 채택한 이후 개도국들의 경제성장률은 과거 개도국들이 소위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들을 채택한 때에 비하여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그리고 선진국들이 높은 성장률을 통하여 지금의 위치에 진입한 시기 내내 선진국들은 소위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들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 시대가 변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변했다는 주장만으로 무시하기에는 너무나도 명백한 역사적 사실 - 을 통하여 소위 바람직한 제도들이 지금 개도국들에게 실제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 선진국들이 자신들은 소위 나쁜 정책들을 사용하여 선진국의 지위에 오른 다음 개도국들에게는 그러한 정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들만 선진국의 지위에 오른 다음 후발주자들이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과 같은 행위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투기자본의 천국’이라는 책에서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이론이 소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방대한 자료의 분석과 명쾌한 논리를 통하여 역사적 fact로 논증한 이 책을 통하여 세계경제에 대하여 갖고 있던 큰 의문점에 대한 이론적 해명을 얻은 것 같아 속이 시원한 느낌이다.
덧붙이는 말) 이 책을 보면 선진국들이 경제발전을 위하여 추진한 정책과 제도가 동아시아로 지칭되는 우리나라가 과거 독재정권시절 채택한 정책과 거의 흡사하다는 사실이 나온다. 그점이 과거 우리나라 정권의 경제개발에 관한 공과론에 대하여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