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행을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오랜만에 모임을 갖고 있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부득이하게 택시를 타야했다. 하지만 6월 들어 인상된 택시비 때문에 심적 부담감이 무척 컸다.

택시를 타서 정신도 차릴 겸, 인상된 택시비에 관한 기사 아저씨의 반응도 살펴볼 겸 해서

'택시비가 인상 되어서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라고 운을 떼 봤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거의 예, 아니오 식의 간단한 대답이었는데 의외로 기사 아저씨는

맺힌 것이 많으셨던지 신림동에서 강남역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셨다.

그 요지는 자신이 18년 동안 택시기사 생활을 했는데 지금처럼 손님이 없던 적은 없었다,

작년중반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데 지금은 정말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것 자체에

위기를 느낀다, 정부가 돈 있는 사람들이 편하게 돈을 못 쓰게 만들어서 그 사람들이 해외에서 돈을

엄청 많이 바람에 국내 경기가 다 죽는다, 그 돈만 국내에서 쓰도록 해도 국내 경기는 훨씬 좋아진다는

등이었다.

택시 운전하는 것이 요즘은 가장 소득면이나, 근무조건 면에서 열악하다고 하는 요즘, 택시 기사 아저씨의

입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 나로서는 좀 뜻밖이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 한 분의 이야기로 성급한 일반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서민을 위한 정치를 주창하는 진보세력이 현 정부를 구성하고 있고, 지금도 항상 주장하는 것이 서민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인데, 왜 서민인 택시 기사 아저씨는 그런 정부에게 욕을 퍼부어 대는지...

참 아이러니컬 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이 나라가 어떻게 일군 나라인데 이렇게 나라를 망하게 하냐고.

그러면서 자신은 군대에서 썩은 보리밥을 먹으면서 36개월을 근무하다가 말년에 김신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42개월 동안 군생활을 했다고. 골수(?)보수의 입을 통해 자주 나오는 '어떻게 일군 나라를'

이란 논조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썩은 보리밥과 42개월 근무라는 말에서는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30년을 빨리 태어났더라면 나도 그런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란 상상에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한편으로는 지금 내가 이렇게 굶주리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택시 기사 아저씨 같은 지금 50-60대 어른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고생 덕분이라는

감사함과 무의식중에 그분들을 구닥다리 구세대로 치부했던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과 20-30년 전의 굶주림과 헐벗음, 그리고 이를 이겨낸 피땀어린 노력과 고생 -

그런 것들을 지금 와서 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하냐는 말로 단순히 넘겨버리기에는

그분들의 고생이 너무나 컸고, 우리가 그로 인해 누리는 것은 너무나 크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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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5-06-06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도 과장님들 말 들어보면 그런 거 느껴.
우린 편한 시대에 살고 있어.
희망을 가지세. 아자아자~!

외로운 발바닥 2005-06-0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우리는 배곯는 고통도 겪어 본 적이 없으니...
우리도 24시간 기아체험이나 한번 해볼까?

우기부기 2005-08-0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웅.. 그건 곤란해
 

흔히들 누군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거나 단순히 육체적으로 아프거나 힘든 일에 처해 있을 때,

참 힘들겠다고 한다. 어떤 이는 힘들고 아프겠지만 조금만 참으라고 한다.

사실 옆에서 보는 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다.

하지만 역시 실제로 그런 아픔이나 고통을 겪는 것과

책에서 읽고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주위의 친한 사람이 직접 겪는 것을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경험할 수는 없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토대로 알게되고 또 그러한 아픔이나 힘든 상황을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 겪은 사람과 간접적으로 겪은 사람에게 그 경험의 충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함부로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고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간접적으로 겪은 사람은 진지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을 할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겪은 사람은 과거의 아픈 경험에 속박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열몇 시간을 추위에 떨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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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5-06-0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갸... 접때 보초섰을 때인가 보네. 그치?
이궁, 그래도 잘 버텼네. ^^

외로운 발바닥 2005-06-0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초 한번 서고 이런 생각하다니 부끄럽소.
 

30살도 되지 않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시건방지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길게 잡아야 80남짓 되는 내 인생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양구에 배치받고 이 산골에서 어떻게 1년을 보낼까 걱정하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이곳을 떠날 날이 5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곳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힘들지 않게, 나름대로 새로운 경험도 하면서 지난 1년을 보냈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 내가 맘껏 쓸 수 있는 1년이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지금 지난 10개월을 돌아볼 때 무엇이 남았는지?

 - 테니스 레슨을 나름대로 꾸준히 받은 것,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한 warcraft3와 승수가 쌓인 아이콘, 그동안 책을 읽고 이곳과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흔적들 정도랄까...

시간의 소중함과 그것의 덧없음을 너무나도 절실히 느끼면서도 이 순간 순간을 헛되이 보내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남은 1개월 남짓한 기간을 소중하고 값지게 보내자. 그리고 남은 2년은 더욱 값지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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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5-02-13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랑 오래 살면 되지. ^^

외로운 발바닥 2005-06-0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오래 삽세
 

오랜만에 집에 오는 날인데 내가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아파트 단지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정전이 되어 온세상이 깜깜해 지는 것이 무서웠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어머니와 함께 촛불을 켜고 다시 불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고, 집을 떠나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살다 보니 내가 20년도 넘게 산 아파트에 정전이 된 것은 아주 오래간만의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하늘은 가을의 저녁 5시 정도의 빛깔처럼 붉은 빛이 감돌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서울에 하도 불빛이 밝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날 저녁의 밝은 하늘 자체도 나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금방 불이 들어오겠지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정전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전기가 없이는 그 시간에 사실상 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올 초엔가 읽은 '아침형인간'에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말을 하면서 논거로 제시한 것 중 하나가 인류가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맞추어져있는 생체리듬을 거스르면서 밤늦게까지 자지 않는 생활을 한 것이 사실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그날 정전이 되고나니 그 말이 정말 실감이 났다. 불과 100년전, 아니 50년전만 해도 이 시간에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전기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시각 이후의 시간을 과연 100년전 사람들이 수면을 취한 것보다 더 값지게 보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또 한가지. 정전이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나는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할 수 없어 무척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막상 전기가 들어온다고 해도 특별히 볼 것이나 할 것도 없으면서.

그리고 약 1시간 후에 전기는 돌아왔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주무셨을 시간에 전기로 불을 밝히고 안도감을 느끼며 또 무엇인가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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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헌재에서 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선고를 했다. 통상 선고까지의 기간이 180일 정도는 걸리는 것에 비추어볼 때 3개월여만에 선고를 한 것은 사안의 중대성과 파급효과를 고려하여 헌재가 여러가지 재판 내,외부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인 듯하다.

헌재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8대1의 위헌 결정이었다. 전효숙 재판관 1인은 각하의 소수의견을 내었고 김영일 재판관이 별개의견으로 위헌의견을 내었다.

당초에 나는 왠만하면 기각이나 각하결정이 나오겠거니 하고 예상을 했다. 위헌 결정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헌재가 논란의 한가운데에 뛰어들면서까지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여 위헌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헌법적 논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개인적으로는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내가 20년이 넘게 서울 시민으로 살면서 온갖 문화, 경제적 특권을 향유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의 반대가 객관성을 갖기 어렵겠지만 여당과 정부에서 추진하는 수도이전 사업을 바라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수도 이전과 같은 국가의 중대사를 왜 그렇게 성급하고 시간에 쫓기면서 강행하려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마치 다음 정권을 기약할 수 없으니 정권을 잡았을 때 하나라도 많은 개혁사업을 추진해 놓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수도이전이라는 문제는 국가의 장래와 국민 실생호라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수도이전 특별법을 하나 통과시켰다고 사후에 많은 문제점과 반대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밀어부치기 식으로 처리해서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수도를 이전해 놓았는데 이게 아니다 싶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노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서라도 수도이전 사업을 추진시키겠다는 발언까지도 했다. 하지만 수도이전이 국가의 장래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상당한 개연성(단순한 머릿속의 전망 혹은 한두개의 국책 연구소의 연구결과만으로는 이 거대한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지)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수도이전 사업은 정권의 명운 따위(?)를 걸고 좌지 우지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특별법이 통과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마도 선거에서 충청표를 얻기 위해(100% 그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도권 과밀해소라는 선의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여권에서 특별법을 발의하였고 아무런 생각없이 충청권에 밑보이지 않으려고 한나라당도 찬성을 한 듯하다. 여당도 여당이지만 당시에는 멀쩡하게 법을 통과시켜 놓고 지금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반대한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한나라당도 최초의 사업계획보다 수도이전의 규모나 체감범위(천도라는 단어의 사용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가 훨씬 확대되었다는 점을 고러혀더라도 정말 궁색함 그 자체다.

수도이전에 관한 내 개인적 생각은 수도권 과밀해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서울이 수백년간 가져온 수도와 국가, 국민생활 중심지로서의 계산할 수 ㅇ벗는 유, 무형적 가치와 그런 세월을 거쳐 현재에 이른 ㅅ수도 서울을 충남지역으로 이전하는 도박(수많은 연구 결과가 상충할 것이고 당초 목적의 달성여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도박이 아닌가?)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다소 안이한 현실론을 고려할 대 논의의 가능성은 열어두되 현정권하에서 기본계획이나 수도이전 여부를 확정짓는 다든지, 20-30년 안에 수도를 모두 이전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결국은 수도권 이익집단과 보수(^^;;?)세력의 논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현재 내 생각은 그렇다.(역시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는-이 경우는 정말 막연한 이익임에도 불구하고-초연해지기는 정말 어려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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