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래리킹 쇼를 보게 되었다. 그때 게스트는 Nancy Grace라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였는데, 내가 당시 이해하기로는 텔레비전 쇼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래리킹 쇼에서 당시 그 여자가 쓴 책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책이 바로 'Objection'이었다.우리말로 번역하면 '이의있습니다.' 정도 될까?

알라딘에 이 책이 없어서 기억해 두기 위해 메모겸 해서 글을 끄적거려본다.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미국 사법제도의 모순이 책의 주 내용이다.  미국이 사법제도에 있어 선진국이긴 하지만, 가끔 CSI 같은 프로를 보다보면, 철저한 인권보장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엄격한 증거(진술이 아닌)에 의한 사법처리- 에 감탄하면서도 검찰이 참고인과 협상을 한 후 참고인이 범인으로 드러나더라도 처벌을 할 수 없다거나, 범인임이 증거에 의해 명확하더라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한 경우 범인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 등을 볼 때는 과연 저런 제도가 사람들의 법감정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가까이 그 유명한 O.J. Simpson 사건도 있지 않은가?

미국 법조인으로서 미국 사법제도의 어떤 모순점을 느꼈는지 참 궁금하다. 이는 우리 사법제도의 개혁을 위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우리 사법제도에도 문제점이 많고, 미국 제도에서 본받을 점이 많이 있겠지만, 사법제도가 국민의 생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다른 나라 사법제도의 도입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웬 번역체 말투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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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전 쯤 스키장에 갔다. 성우현대 리조트였는데, 모처럼 휴가를 내서 야간 스키도 타고 다음날 오전, 오후까지 정말 짧은 시간동안 열심히 탔다. 내 스키 실력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중급은 좀 싱겁고 상급은 좀 버거운 정도의 실력이다. 어렸을 때 말고는 정식으로 레슨을 받아본 적 없이 그냥 일년에 몇 번씩 스키장을 가면서 적당히 타게 되는 폼으로 말이다.


사실 그날도 특별한 동기부여가 없었으면 상급자 코스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친구와 함께 온 친구네 커플과 코스 정상에서 만나게 되었고, 친구가 상급자 코스도 갈만하다고 부추기는 것이었다. 물론 그 친구는 나보다 스키를 더 잘 탔지만, 그 친구의 말에 혹하기도 했고, 함께 있던 선배형-이 형은 실력이 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나보다 겁이 없었다-과 나는 둘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상급자 코스로 들어서고 말았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초반 수십 미터를 그럭저럭 내려오고 나서 급경사 코스로 접어들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날 내려왔던 코스는 내가 폼은 나지 않지만 그럭저럭 에이자로 내려올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정말 오래간만에 상급자 코스를 가자 몸이 긴장되고 깎아지른 듯한 경사에 덜컥 겁이 나서 나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거의 옆으로만 가기 시작했다. 거의 평행으로 가다가 갑자기 방향전환을 하려니 오히려 전환이 되지 않고 몸의 균형을 쉽게 잃었다. 당시에도 겁먹지 말고 과감히 타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머리와는 달리 내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이라는 제목에 스키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하지만 내가 정말 오래간만에 따뜻한 말 한마디에 훈훈함을 느꼈던 것은 바로 그 슬로프에서였다. 중간쯤까지 어기적어기적 내려오던 나는 계속 소심하게 옆으로 이동하다가 급경사에서 넘어지면서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속도도 거의 없었는데 다리가 꼬이면서 왼쪽 플레이트가 떨어졌고 나는 그 상태로 10여미터를 계속 미끄러졌다. 순간 이 사태를 어찌하냐는 생각과 쪽팔림이 함께 들었지만, 멈출 여유도 없이 나는 계속 미끄러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꼬마천사가 나타나듯이(그때 나에게는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꼬마스키어가 나타나더니, 내 아래로 와서 자기 스키로 브레이크를 걸어서 나를 멈추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꼬마가 같이 넘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꼬마의 스키 실력을 생각하면 그런 걱정은 기우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 누나를 부르자 어디선가 또한명의 꼬마 천사가 나타나 나의 분리된 스키 플레이트를 주워 나에게 밀어주는 것이었다. 그때의 부끄러움과 고마움이란...그런데 그 꼬마들이 내 플레이트를 찾아주고 나를 일으켜주고는 가면서 하는 말이 더 감동이었다. ‘조심해서 안전하게 타세요’ 그 목소리도 어찌 그리 이쁘던지 ^^;;


나를 도와준 사람이 패트롤이었다면 분명히 ‘위험하니까 여기서 타지 마세요.’였을 것이다. 그 말은 일면 맞는 말이다. 실력이 안되면서 상급자 코스를 타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그 말 대신 꼬마들이 한 말은 순간적으로 쪽팔림도 잊게 해 주었고, 더 도전해서 이 슬로프를 정복하겠다는 오기를 심어주었다.


결국 나는 몇 번 더 그 슬로프를 도전해서 폼은 안 나지만 그럭저럭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그 꼬마들은 상급자 코스에서 폴대를 꽂아놓고 훈련을 하는 엄청난 실력자들이었다. 거창한 제목에 비해 사소한 해프닝이었지만, 그 때 내가 기대했던 말과는 다른 따뜻한 말을 들었을 때의 훈훈한 느낌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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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목은 without a trace라고 한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FBI 실종수사대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원래 CSI 씨리즈는 즐겨 보는데, 실종수사대는 재미가 덜 한 것 같아 평소에는 별로 보지 않았는데 그 시간대에 특별히 볼 것이 없어 보다보니 내용이 평소에 관심있는 분야여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몇 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주 내용은 이렇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J2 비자로 미국에서 생활하는 젊은 의사가 실종되었다. 그는 유능하고 미국인 애인도 있지만, 실종전날 아랍사람이라는 이유로 지도교수에게서도 버림받고 애인에게 프로포즈도 거절당한다. 그가 아랍인이라는 중요한 대전제와 그의 집에서 발견된 책 - 미국식 민주주의의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은 책 - 그리고 그가 대화중에 폭파시키겠다는 말을 했다는 진술을 토대로 그는 이중생활을 하는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수사는 실종자를 찾는 것에서 테러리스트의 행방을 쫓는 것으로 변질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은 그가 테러를 하려던 그의 친구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친구를 사고로 죽이게 된다는 암시가 나오고, 실종수사대의 주인공인 반장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만, 결국 그는 테러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원칙(?)에 따라 테러를 막으려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중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것은 평소에 미국 사회 전체가 테러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그와 같은 피해자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에서의 테러이후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무고한 아랍계 젊은이가 용의자로 몰려 여러차례의 확인사살로 살해당한 일이 있기도 했다.

정말로 지금과 같은 미국 사회에서는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의 구조상 몇몇 허술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아랍사람으로서 항상 의심의 눈초리와 차별을 받아온 그가 백인이라도 설명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서 미국경찰을 믿고 자수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야기는 상당한 개연성을 지닌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 점에서는 이 드라마는 칭찬받을 만하다. 그런데 몇가지가 눈에 거슬렸다. 주인공인 반장이 사우디아라비아인 의사의 결백에 대해 어느정도의 심증을 굳히고서도 저격수가 그를 쏘아 죽이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서도, 혹은 그러한 어처구니 없는 희생을 막지 못하고서도 주인공들은 너무나도 담담했다는 점이 드라마의 선한 의도(설마 악한 의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함께 있지 못할 부류로 낙인 찍는 행위는 시대와 사회를 불문하고 행해져 왔지만, 지금 미국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은 그러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기 쉽게 만드는 요소를 너무도 많이 지니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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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5-11-0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씁쓸해. 있음직한 얘개야.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왜곡된 사실이 역사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 같어.
 



충청북도 증평에서 재판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몇번 국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증평 IC를 타기 직전의 왕복4차선 국도였는데 사방이 훤히 펼쳐진 들판에 푸르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흰 구름이 흩뿌려져 있는 광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직 나이가 어려 그런지 경치를 보고 감흥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오늘 본 하늘은 정말 사진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한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위 사진은 네이버에서 검색한 사진이다. 내가 본 하늘과는 다르지만 이 사진으로도 그때의 감경이 조금은 전해지는 것 같다.)

대신, 그 아름다운 광경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  스모그 하나 없이 한없이 푸른 하늘과 마음껏 매달려 있는 구름을 보니 갑자기 모든 근심 걱정이 사소하게 느껴지고 살아있음이, 그리고 아직 젊음이 너무도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시간 쯤 뒤에 라디오에서 오늘 하늘이 무척 이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태풍이 지나간 뒤의 가을 하늘이 인터넷과 뉴스를 수놓을 것이라고. 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산은 아름답지만, 태풍이 지나간 뒤에 산에 오를 때의 경치를 최고로 친다고도 했다.

라디오 진행자의 말처럼, 문서와 모니터만 마주한 채,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지내며 내 나름의 고민거리로 씨름하고 있다가  문득 마주친 태풍 후의 가을하늘은 나에게 그렇게 축복처럼 왔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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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ews.joins.com/et/200509/02/200509022030003531a000a200a210.html

[행복한 책읽기] 덧나는 현대사 상처, 이젠 꿰맬 때

한국 근현대사의 '덧나는 상처'인 친일 등 과거사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민족문제연구소가 8월29일 발표한 친일파 3090명 명단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적 공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 두 권의 책이 있다. 소설가 복거일씨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가 친일파 처벌을 주장하는 '쉰 목소리'들에 대한 '노!'의 목소리라면, 서양사학자 박지현씨의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는 2차 세계대전 말 프랑스의 꼭두각시 비시 정권의 사례연구를 통해 '완벽한 과거사 청산'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복거일 지음, 들린아침, 534쪽, 2만원, 2003년8월 발행

2039년 10월 26일 유신독재 종식 60주년을 기념하여 독재청산문제연구소는 친독재인사 명단 3090명을 발표하였다. 명단에는 유신시절 판검사를 지낸 사람 모두가 포함됐다. 이유는 사법고시를 통해 유신체제에 가담했던 앞잡이라는 것이었다. 발표 뒤 나라가 들끓었다. 2000년 초반 집권했던 전직 대통령도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판검사를 했다고 친독재인사라고 할 수 없다는 일부 반론이 제기되었으나 사람들은 이를 모른 척 했다.

물론 내가 잠시 떠올려본 미래 가상이다. 며칠 전 발표된 친일파 명단 3090명을 둘러싼 소동이 갖는 위험성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2년 전 나온 책, 그러나 사회적 논의에서 소외됐던 소설가 복거일의 '죽은 자를 위한 변호'는 그 점에서 흥미롭다.

책에서 소설가 복거일은 친일파 변호를 자청한다. 대중적 정서를 거스르는 도박이기에 그는 친일문제에 관련된 네 가지 가정이 근거가 박약하다는 점부터 밝힌다.

즉 1) 친일행위들은 뚜렷이 정의될 수 있다. 2) 친일파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하다. 3)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친일 행위들과 친일파들에 대해 그 죄과를 묻고 판결을 내릴 만한 법적 도덕적 권위를 지녔다. 4) 그런 판결은 우리 사회 발전에 필수적이다. 이런 숨겨진 가정을 공격하는 것은 복거일 식 논파법의 특징이다. 물론 이 책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자료를 근거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간단치 않은 친일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친일 행위는 이제 역사적 사건이므로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시민단체나 매스컴이 아닌 전문가가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과 1년여 전의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서도 해석이 각양각생인데 하물며 70여 년 전의 사건이 아니던가.

다음으로 저자는 친일문제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라는 주제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글픈 얘기지만, 거의 모든 증거들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의 식민 통치 아래에서 조선조 왕조의 통치 아래에서보다 잘 살았다는 외국인 역사학자들의 평가를 지지한다"고 말한다. 이런 논리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노선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조선의 근대화가 식민지 지배의 목적이 아니라 단순한 결과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일본이 조선이란 국가를 근대화시킨 것이 아니라 일본의 한 지역으로서 조선을 개발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독립 후에 근대화란 미명으로 포장된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 일본의 식민통치는 조선에 전적으로 해로웠고 조선에 이로운 측면은 전혀 없었다는 가정을 반박하는 것이지만 이때의 조선이 국명인지 지명인지를 분간해야만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친일파 청산과 함께 저항 운동 연구에 보다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민족정기를 높이는 데는 부끄러운 친일 행위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보다는 조국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다시 말해 파사현정(破邪顯正) 전략보다는 현정파사(顯正破邪)가 낫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삼청교육대 만들어 깡패를 없애면 정의사회가 구현되고, 부동산 투기꾼을 잡으면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반대다.

즉 정의사회가 구현되면 자연스레 깡패가 없어질 것이고, 집값이 안정되면 부동산 투기꾼이 없어질 것이다. 독립투사를 계속적으로 발굴하고 극진히 예우하면 할수록 친일파는 더욱 더 초라해질 것이다. 실은 복거일 같은 사회적 소수의 목소리는 외롭다. 모든 사람이 맹목적으로 앞 만 보고 뛸 때 그는 뒤를 보기 때문이다.

탁석산.철학자.'한국의 정체성' 저자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
박지현 지음, 책세상, 184쪽, 4900원, 2004년 8월 발행

'신화의 시대'에서 '기억의 시대'로. 독일 점령(1940년~45년) 하의 비시 프랑스라는 유령이 그려온 궤적이다. 패전, 독일점령과 비시 정권의 수립으로 이어졌던 5년은 프랑스인들에게 어두운 과거였다. 종전 뒤 수치스런 독일의 꼭두각시 정권인 비시 프랑스의 유령 앞에 프랑스인들은 신화에 기댔다. 드골의 집권과 함께 부각된 그 신화란 "소수의 대독 협력자를 제외하면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나치 지배에 저항했다"는 레지스탕스의 장렬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1968년 혁명은 분기점이었다. 기존 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환멸은 비시 시대에 대한 비판을 자극했고 부끄러운 기억들이 봇물처럼 들춰졌다. 기억의 시대 도래 앞에 자발적으로 나치에 협력했던 프랑스인들이 부각됐다. 이때 나치에 저항했던 프랑스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프랑스는 죄악의 발상지로 변해 버렸다. 역사학은 방향 상실의 위기 앞에 비틀거렸다.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의 저자는 이렇게 의문을 털어 놓는다. 이어지는 고백은 한국 근대사로 이어진다.

"(그 이전)프랑스 국내에서는 레지스탕스가, 국외에서는 망명정부인 드골 정부가 독일과 대항해 싸웠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과거사 청산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로 프랑스를 꼽고 있는데, 그들 역시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던 것일까?"(7~8쪽)

"그들의 현주소는 나의 시대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특히 일본강점기와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은 반일 대 친일, 좌파 대 우파의 이분법이 지금껏 갈등으로 남아있다. 총체적 과거사 청산이라는 개념을 세워보지도 못한 채 일제 강점기에서 이념의 시대, 민주화 시대, 개혁 시대로 정신없이 달려왔다."(9쪽)

파리1대학에서 비시 체제 연구로 학위를 받은 저자의 이 책은 1940년 전쟁 패배는 독일의 힘에 의한 것만이 아니고, 프랑스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규명해낸다.

전쟁 이전부터 프랑스 사회 내부에 존재했던 좌우 대립, 파시스트 등 이념의 범람과 실패의 결과라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프랑스인들은 이제 비시 체제를 단순히 대독일 협력체제로만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인 것이다.

국내 학자에 의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시 연구라 평가받을 수 있는 이 책의 저자가 도달한 종착점은 한반도. 그리하여 "일제 치하의 한국인들을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서 이해하는" 도식에서 탈피하여 그들의 "총체적인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의 밑바닥에는 점령의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의 삶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이 어두운 과거와 화해할 수 있는 진정한 초석이라는 성찰이 깔려있다.

그러나 비시 프랑스와 일제시대 역사의 만남은 아쉽게도 여기에서 멈춘다. 4년에 불과했던 나치의 점령과 36년을 지속했던 일본의 점령의 경험을 수평적으로 비교하고 프랑스식 과거청산을 하나의 모델로 삼는 것에 저자는 반대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프랑스의 역사와 우리 역사와의 만남이 끝나야 하는 것일까? 이 시점에서 프랑스식 과거 청산의 경험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없는가?

과거에 대한 억눌린 기억이 머지않아 엄청난 반대 기억의 홍수를 몰고 오고 온갖 종류의 기억의 범람 속에서 과거의 모습은 오히려 왜곡되었던 프랑스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어두운 시절에 대한 폭로와 비난의 와중에서, 기억의 오용과 남용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차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반성에서 귀담아 들을 부분은 없는가? 신화와 선별된 기억, 억압된 기억을 넘어 과거사와의 진정한 대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김용우.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서양사


조금 더 읽으려면 …

1개월 전 나온 책 '세계의 과거사 청산'(안병직 등 지음, 푸른역사)제작을 준비하던 출판사의 편집팀은 당혹스러웠다. 본래 책 뒷 편에 친일.과거사 관련 참고도서 목록을 만들기로 했는데, 의외로 양질의 책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업은 포기를 했다. 친일.과거사 청산문제란 그만큼 마음이 앞섰을 뿐, 그동안 정교한 이론적 검토는 부실했음을 보여주는 얘기다. 어쨌거나 이 분야의 저술 중 임종국의 선구적 저작 '친일문학론'(민족문제연구소, 2002년 재출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66년에 첫 선을 보인 이 책은 이후 '친일정치 100년사'(김삼웅 지음,동풍,1995년)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증언 반민특위'(정운현 지음, 1999년) '실록 군인 박정희'(정운현 지음, 개마고원, 2004년)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과거사 정리의 이론적 작업 이전에 단순 다큐멘터리에 머문다는 한계를 가졌다. 친일행위를 한 개인들의 행적 보고서 내지 자료집에 그친 셈이다.

외국의 사례를 담은 책으로 기억할 만한 것은 '프랑스 대숙청'(주섭일 지음, 중심,1999년)이 꼽힌다. 이 책은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 비시 체제 협력자 청산문제를 과거사 정리의 모델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저널리스틱한 이 책은 최근 사학계의 성과와 동떨어졌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앞의 책 '세계의 과거사 청산'저자들은 완벽한 과거사 청산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으며, 이렇다 할 모델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비시체제 청산작업 역시 완벽한 과거사 청산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적된다.

2005.09.02 20:30 입력 / 2005.09.03 05:29 수정

이 기사를 읽고 중앙일보의 사주의 아버지가 친일파로 친일인명록에 올랐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중앙일보가 친일문제를 덮어두고 가자는 주장을 은근히(이 정도면 대 놓고일수도 있지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상한 것인지...

친일파 청산을 주 내용으로 하는 과거청산에 여러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데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글 것인가? 우리가 언제 한번이라도 과거청산을 한 적이 있었던가? 현 여당의원과 관련된 친일파 범위확정의 문제는 강한 의구심이 들지만, 구데기는 그때그때 대처하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장 담글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니 장 한번 담궈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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