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간에게 해로운가? | 종교/기독교 문제 2007/06/10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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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간에게 해로운가? -- 신이라는 망상... 에서 계속되는 글

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할 것이고 또 이제까지 그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씨름해 왔을텐데 그에 대해 시원한 답이 나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더킨스는 일단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도들이 믿는 신은 인격신으로서 세상사에 계속 간섭하고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라고 규정한 뒤 그런 신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주장하지만 그도 신이 없다 라는 완벽한 증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따져서 믿는것도 아니고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것도 아니고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니 신이 없다고 누가 증명했다고 한들 종교를 믿던 사람이 갑자기 믿지 않게 되지도 않을 것 같다.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 성격이론을 믿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종교는 인간에게 해롭기만 한 것일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종교가 인간에게 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교회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내고 있는가? 종교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은 먼저 중동 여자들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운전은 왜 못하게 하나? 남자들과 함께가 아니면 외출도 못하게 해서 남자아이라도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머리 (또는 온몸) 를 가리고 다니는 것도 답답해 보이고. 다른 종파의 남자와 연애를 했다고 돌로 쳐 죽이기도 하고. 이런 문제가 꼭 종교 때문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종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문화적 규범이기 때문에 더 융통성이 없고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1700 여년 된 문화 유적인 불상을 폭파시키는 것을 보면 가서 한대 주어 박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 종교가 없었으면 중동이나 인도/파키스탄 북 아일랜드등의 분쟁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교는 “가짜” 신을 섬기는 종교이니까 그런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도 마녀 사냥, 십자군 전쟁, 과학자 화형등 필요 없이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일을 많이 했다. 사실 현대 서구 사회는 많이 세속화되어 되어 있고 정교 분리가 되어 종교 때문에 말도 안되게 피해보는 경우는 중동의 경우보다 덜하다. 그래서 현재 중동에서의 종교적 영향력을 서구 중세의 암흑시대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유독 미국에서는 특히 근래에 와서 보수 기독교가 정치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줄기 세포 연구도 행정부에서 지원하지 않고 외교 정책 결정도 종교적 교리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신이 세상일을 모두 주관한다는 종교인들의 믿음은 사실 지구 온난화 같은 문제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사실 예수의 재림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라는 사람 중에는 지구 온난화가 그런 징조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일부 종교인들은 현세에서의 삶이나 그 삶의 현장 즉 지구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고 저 세상 (천당) 에서의 삶이 진짜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태도는 당연히 현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또 박노자씨가 얼마전에 한겨레 신문에 썼듯이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보수적으로 만드는 경향도 있다. 미국에선 심지어 다시 정교 일치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종교가 인간에게 나쁘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교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어릴 적 부모에게 느꼈던 느낌 (신뢰감, 안정감, 부모만 옆에 있으면 만사가 다 괜찮을 것이라는 느낌) 의 신이 자기를 뒤에서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여러가지 경우에 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조금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꼭 신이 직접 나서서 물리/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소원을 이뤄주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더 열심히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만 한뒤에 신만 믿고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면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신이 있고 천당이 있다는 믿음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지옥에 갈까봐 더 불안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들이 천당에 간다고 믿는 것 같다. 종교는 또 사람들이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종교는 절박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모진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종교에서 해악은 없애고 좋은 점만 있게 할 수는 없을까? 만일 종교에서 비롯된 해악이 종교의 원래 취지때문이 아니라 종교 교리를 오해한 종교 지도자들 때문이라면 종교인과 비 종교인 모두 만족할 수 있을만한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종교 경전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인종 차별도 옛날에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정당화 한적도 있다. 요새 성경이 인종차별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차별도 성경에 바탕을 두고 정당화 해 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많이 나아졌다. 그러니까 종교 교리도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새 천동설을 믿는 기독교인이 어디에 있는가? 중세의 천동설이 요새의 창조론이다. 진화론이 기독교 교리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믿고 있고 특히 미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가르치도 있다. 종교가 과학을 거부하는 이유는 종교인들이 절대적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종교 교리가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하면 싫어하고 성경 구절이 문자대로 해석하는 것이 성격의 권위를 더 높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9.11 으로 표면화 된 국제적 갈등의 원인의 하나가 사람들의 종교적 자세이고 세계 정치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의 정치세력이 좀 비이성적인 이유도 다수 미국인들의 종교적 입장이라는 인식이 작금의 종교 개혁 운동 또는 반종교 운동의 이유라고 본다. 그래서 미국엔 스퐁주교 같은 사람이 기독교를 구출하자고 외치고 있고 한국에서는 김용옥씨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관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또 더킨스 같은 사람이 쓴 반종교적 서적이나 다빈치 코드 같은 책이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종교적인 사람들과 이성적인 사람들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로 기종 종교가 개혁되는 것이 가장 건설적인 해법일 것 같고 나로서도 종교를 받아들이기 더 쉬운 길인것 같은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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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7-30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면에서 공감가는 글. 종교의 해악과 좋은 점 모두 평소에 많이 생각해 오던 것인데,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납치된 분들이 꼭 무사히 돌아오길 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이라는 망상과 신의 언어 | 종교/기독교 문제 2007/05/2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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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는 망상과 신의 언어
The God Delusion & The Language of God

The God Delusion 이라는 책과 The Language of God 이라는 책을 동시에 읽었다. 신이라는 망상이라는 책은 제목대로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종교를 비판하는 책이고 신의 언어라는 책은 과학자로서 종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쓴 책이다. 두 책을 동시에 읽게 된 연유는 신의 망상을 책으로 읽으면서 신의 언어는 오디오 북으로 출퇴근 길에 운전하면서 들었기 때문이다.

신의 언어

신의 언어를 쓴Francis Collins 라는 사람은 미국 국립 인간 유전자 지도 연구소 (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NHGRI) 소장으로서 2000 년도에 백악관에서Craig Venter 라는 사람과 함께 인간 유전자 지도의 초안을 완성해 발표한 유명한 과학자이다. 그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주 이유 중 하나는 인간에게 선악의 개념과 도덕적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인간에게 양심이 있다는 것 남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충동이 있다는 것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것도 기독교의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잘 모르겠다. 아마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어야 되는데 신외에는 인간이 동물들과는 달리 선악에 대한 기준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그는 Anthropic Principle 를 든다. 이는 지구와 우주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 법칙이 조금만 달랐다거나 지구의 공전 괘도가 조금만 달랐다거나 하면 인간이 존재할 수 없었을텐데 신이 관여해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우주를 디자인했다라는 논리인 것 같다. 그 밖에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그의 딸이 대학교에 다닐 때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법인은 끝내 잡지 못했는데 그 고통을 신앙의 도움으로 극복했다는 것이다.

프란시스 콜린스는 그러나 성격을 문자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리주의적 기독교는 배척한다. 특히 그는 진화론을 옹호하는데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는 화석 뿐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를 비교해 보면 같은 조상에서 진화해 왔음이 거의 확실시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이 인간을 진화를 통해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콜린스는 종교가 과학을 배척하면 결국 종교가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은 물론 이 책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고 당연히 비난하지만 보수적 기독교인들도 이 책을 그리 반기는 것만 같지는 않다.


신이라는 망상

Oxford 대학교 교수이자 생물학자인 리차드 더킨스 (Richard Dawkins) 는 아마 현재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무신론자가 아닌가 싶다. 이기적인 유전자 (The Selfish Gene, 1976) 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그가 2006년에 쓴 “신이라는 망상” (The God Delusion) 도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더킨스는 종교 경전을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근본주의적 종교 뿐 아니라 아예 종교 자체를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입장인 것 같다.

더킨스가 없다고 주장하는 신은 유대교와 그로부터 파생된 두 종교 즉 기독교와 이슬람교 신자들이 전통적으로 믿는 신을 말한다. 전지 전능하고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고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인간사에 직접 간여하는 신이다. 이런 신은 인격신으로서 사람처럼 기뻐하고 화도 내고 질투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자체가 하나의 가설인데 그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이런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성역으로 여기고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그 가설이 옳은지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전공이 진화론인 더킨스는 창조론이 틀렸음을 주장한다. 또 인간에게 도덕적 규범이나 이타성 같은 것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한다. 그는 또 기도가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없다). 물론 그렇다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이 존재할 가능성과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러가지 증거로 볼 때 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라고 말한다.

더킨스는 또 종교가 인간에게 해롭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전통적 종교가 사람들에게 과학과 이성을 무시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또 종교 경전의 문자 그대로의 해석 때문에 말도 안되는 교리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종교가 없었으면 다른 민족간의 갈등이나 전쟁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아이들에게 어릴 때 종교적 교리를 주입시키는 것은 아동 학대라고 주장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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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짜리 수입와인 호텔선 9만원…이래도 되나
 
매일경제 | 기사입력 2007-07-12 17:08 기사원문보기

 





"와인 가격이 너무 비싸 못 사 먹었어요."
지난 3월 방한한 프랑스 유명 와인 제조사 조르주 뒤뵈프의 프랭크 뒤뵈프 사장이 인터뷰 도중 내뱉은 '깜짝 발언'이다. 당시 그는 묵고 있던 호텔 내 와인 바에 들렀다가 너무나 비싼 가격에 놀라 결국 마시기를 포기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
와인 가격이 너무 비싸다.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회의에서 돌렸다는 샤토 라투르 82년산 등 한 병에 수백만 원이 넘는 와인이 있는가 하면 청담동의 웬만한 와인바에서는 5만원 이하 와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싼값에 와인을 사 비싼값에 파는 경매가 활발해 '와인테크'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제 와인은 한국 사회에서 그냥 술이 아니다. 좀 괜찮은 와인은 한 병에 수십만 원씩 해 재력의 상징이자 수준과 취향을 보증하는 '마시는 명품'이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너도 나도 비싼 와인을 선호하고 비싼 와인을 몇 병 먹어 보았나 자랑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며 "대중화되기 이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 미국에서 6만원짜리가 한국에서 27만원
= 국내 와인 가격이 전반적으로 비싸지만 특히 유통 마지막 단계 중 하나인 와인바와 레스토랑, 호텔에서 팔릴 때 가격은 그야 말로 천정부지다.
일반적으로 와인바의 마진은 100%, 호텔이나 청담동 등 일부 고급 와인바는 최고 200%의 마진을 붙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1만원에 들어온 와인이 세금 도매 소매를 거쳐 고급 식음료장에서 소비자 손에 닿을 때는 최고 9만1080원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라고 말한다.
아직 와인을 소매점에서 구입해 집에서 마시는 사람보다 음식과 곁들여 특별한 기념일을 축하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감안하면 와인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에는 와인바와 레스토랑이 가장 큰 몫을 담당하는 셈이다.
매일경제 조사결과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칠레 와인 몬테스 알파 M(2003년산)은 미국 소매점에서 61.97~94.99달러(5만7012~8만7390원ㆍ달러당 920원)에 팔리고 있지만 한국 소매상 '와인21닷컴' 판매가는 3배에 가까운 15만5000원.
만일 신라호텔 와인바 더 라이브러리에서 마시면 세금 봉사료를 제외하고 25만원, 서울시내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 L에서 마신다면 가격은 27만원으로 훌쩍 뛴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즐겨 마셔 유명해진 샤토 탈보는 2004년산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레스토랑 퓨어멜란지에서는 15만원이다.


그러나 이 제품을 와인숍이나 할인마트에서 구입하면 가격은 9만3000원으로 낮아진다.
강남 S모 레스토랑에서는 '샤토 휘작 2002년산'을 28만5000원에 팔지만 같은 제품을 와인숍에서는 18만5000원에 살 수 있다.
◆ 유통단계 거칠 때마다 가격 뛰어
= 한국의 와인 가격은 관세 주세 교육세 등 각종 세금이 붙은 수입원가에 '수입상-도매상-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유통 경로를 거치면서 하늘 높이 올라간다. 수입원가에 수입상 마진 30%, 도매상 마진 20%, 호텔 마진 200%가 붙으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것이다.
한국 와인 가격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와인 생산국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수입하는 미국 영국 독일과 한국에서 팔리는 와인 가격을 비교해 보면 한국 와인 가격이 세계 최고다.
와인 가격은 국제 와인 가격 비교 사이트인 '와인서처(www.wine-searcher.com)'를 통해 조사했다. 프랑스산 샤토 무통 로칠드 2001년산의 국내 판매 가격은 49만2000원. 반면 미국 판매가격은 20만원, 독일은 22만원으로 한국 판매가의 절반도 안됐다. 고급 와인뿐만 아니라 중저가 와인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블로섬 힐 샤르도네 2005'은 한국 2만원, 영국 9000원, '빌라 안티노리 로소 2002'는 한국 4만원, 영국 1만6000원, '샤토 라세그 2003'은 한국 6만7000원, 미국 3만2000원이었다.
와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와인 수입 국가인 미국이나 영국 등에 비해 가격이 2배 이상 높다"며 "와인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복잡한 유통 단계와 유통사들의 높은 마진 구조"라고 지적했다.
◆ '와인=부' 공식 깨져야
= 같은 와인이라도 어느 곳에서 소비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가격 차이가 많게는 3배까지 나는 이유는 뭘까.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관계자들은 차별화된 고급 서비스를 든다. 한태숙 인터컨티넬탈호텔 부장은 "호텔의 경우 와인 글라스도 깨지기 쉬운 고급 제품을 쓰는 등 보이지 않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
마진율만을 놓고 보면 소주나 맥주 등 다른 주류와 비교해 와인이 특별히 크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와인을 취급하는 유명 레스토랑 경영자는 "소주는 출고가가 1000원 안팎이지만 식당에 가면 병당 3000~4000원가량에 판매된다. 출고가의 3배가 넘는 셈"이라며 "와인이 상대적으로 가격은 비싸지만 마진율 자체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무조건 와인이 비싸다는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이어 "레스토랑의 자릿세와 인건비, 인테리어 보수 등 경비를 감안하면 마진율이 마냥 높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리 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와인이 분위기를 함께 마시는 것이라고 해도 100~200% 마진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또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은 고급 와인 위주로 구색을 갖춰 때로 식사보다 와인값이 더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즈니스로 외국인 바이어와 가끔 와인바를 이용하는 S물산 한 임원은 "한 병에 1000원 안팎인 소주 마진율과 수만 원씩 하는 와인의 마진율을 같이 놓고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업자의 농간"이라고 몰아세웠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와인이 부의 상징처럼 받아 들여지고 있는데다 고가 와인을 소비할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다보니 비쌀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며 "레스토랑이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소믈리에 1호 서한정 와인나라 아카데미 원장도 "소비자들이 무조건 비싼 와인은 좋은 와인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와인을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면 바가지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지영 기자 / 이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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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7-13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든지 비싼 한국...원래 와인을 즐겨마시진 않지만, 바가지 쓴다는 생각이 들어 와인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마치 고깃집의 한우처럼;;
 

하얀거탑 최도영이 답답한 이유
출연
김명민, 이선균, 차인표, 송선미, 김보경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인터넷 연예신문들과 중앙 일간지에 일제히 하얀거탑의 인도주의 의사 최도영을 맡고 있는 이선균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같은 날 같이 인터뷰를 한 탓인지 비슷비슷한 내용의 인터뷰가 동시다발로 인터넷 시장에 출시되었는데 제목 또한 매우 비슷하다. 그러니까 배우조차 최도영의 행보가 당위성이 없고 답답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건 배우로써 매우 위험한 발언일 수 있다. 아니, 역을 맡고 있는 배우가 그 캐릭터를 이해 못하겠다고 한다면 보는 시청자는 뭐란 말인가?

 

캐릭터가 천하의 말종이거나 악당이라고 해도 역을 맡은 배우는 일단 그 사람 편이다. 적극적으로 변호하거나 감싸며 그것도 안 되면 이해를 구한다. 그런데 이선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우선은 제 연기가 부족함을 탓하고는 캐릭터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캐릭터를 그저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고 따지고 개연성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 배우만이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배우 이선균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하얀거탑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에 매우 기뻤다. 그런데 막상 막이 오르고 회가 거듭되면서 정말 최도영이 주인공이기는 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아뿔싸.... 배우조차 답답해하고 있었구나...

 

단도직입적으로 하얀거탑의 최도영이 많은 시청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역을 맡고 있는 배우에게조차 이해되지 않게 그려지고, 그 결과 이름만 주연일 뿐 조연급 캐릭터에 머물고 있는 까닭은 전적으로 작가와 감독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들의 한계는 우리 사회 개혁 진보 세력이 가진 힘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최도영이 답답한 것은 배우 이선균이 연기를 잘 하지 못하거나 능력이 딸려서가 결코 아니다. 이선균은 자신이 너무 일차원적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최도영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얀거탑의 열렬한 '본방사수파' 시청자가 보기에 이선균 아니라 국민 배우 안성기가 그 역을 한다 해도 지금 이선균이 하고 있는 것 보다 낫게 최도영을 연기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연기가 뛰어나다고 해도 연기로 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대본과 연출력이다. 현재의 대본과 연출이 최도영이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해주는 '이야기'를 제대로 배치하지 못하며, 최도영을 설명할 시간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판 하얀거탑은 최도영이라는 인물을 입체적 캐릭터로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이선균의 말대로 최도영은 "장준혁의 화려한 이력에 견줄만한 내적인 힘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 일본의 원작 소설과 일본판 하얀거탑에서 최도영은 장준혁 못지않은 강인하고 소신에 찬 인물로 그려진다. 권력에 대한 태도가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둘 다 야심만만에 자신만만하다. 둘의 이런 면모는 에피소드를 통해 동등하게 ,충분히 제공된다. 최도형은 드라마 내내 장준혁의 야망의 카리스마 못지않은 꼿꼿하면서도 따뜻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렇듯 장준혁과 최도영의 대립이 팽팽히 균형을 이루면서 긴장을 배가 시키고 시청자로 하여금 선택을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 드라마에서 최도영은 그렇지 못하다. 이선균이 말한 바로 그 '내적 힘'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선균이 자신에게 할당된 대사량이 부족하다는 말을 다 할까? 대사가 없다는 것은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해주는 그럴듯한 '서사'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내가 보기에 작가와 감독이 최도영에게 별로 관심이 없거나, 원작에서 최도영에게 부여된 역할 즉, 휴머니즘 인도주의 또는 이에 상당하는 어떤 가치들, 예컨대 개혁이나 진보 양심 등등과 이런 가치들을 옹호하는 사람 또는 세력들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너무 과한가? 그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실제로 한국판 하얀거탑에서는 장준혁의 오진으로 죽음에 이른 환자가족과 변호인, 그들을 돕는 시민운동가 이윤진(송선미 분)에 대한 묘사도 너무 단조롭고 안이하다. 왜 그 변호사는 승산 없는 소송대리를 자처하며, 왜 이윤진은 난데없이 변호사와 한 팀이 되어 백방으로 뛰며, 간호사 윤미라는 막판에 증언대에 서서 '양심적 시민'의 상징이 되는가? 처음부터 그들이 어떻게 해서 한 팀으로 묶여지는지 조차도 모호하기만 하다.

 

이는 장준혁과 그의 변호사의 행태가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려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은 입막음을 위해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자리를 보장해주며, 아낌없이 돈을 쓸 뿐만 아니라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알려주며 그대로 행동한다. 설령 그것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반면 장준혁의 대립점에 있는 최도영을 비롯한 이쪽 사람들은 재판에 이기기 위해 하는 일이 없다. 수북이 쌓인 서류를 뒤적이거나 피하는 사람들을 겨우 겨우 만나서 그야말로 '양심'과 '정의감'에 호소하는 뻔한 대사를 반복할 뿐이다. 증언 할지를 놓고 갈등하는 윤미라 간호사가 최도영을 찾아와 어떡하면 좋으냐고 묻지만 최도영이 내놓는 대답은 고작 "내가 뭐라고 하겠습니까?"가 다다.

 

최도영과 같은 인간들이 약자에 대한 배려와 희생을 감수하는 높은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형편없이 매력 없으며 우유부단하며 무기력하게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들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권모술수와 음모를 마다하지 않는 부도덕한 인간이면서도 거짓 행동 사이사이 선택의 고민에 빠지는 장준혁이 훨씬 더 인간답게 느껴지면서 시청자들을 제 편으로 만들고 지지하게 만드는 힘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 속 역학관계는 드라마 밖 현실에서 개혁 진보 양심 세력들이 아니라 보수 수구꼴통들에게 형편없이 기운 세상 힘의 균형추를 떠올리게 한다.

 

하얀거탑에서 두 주인공에 대한 시청자들을 반응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준혁과 같은 인간들의 생리와 행동의 패턴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장준혁에게 훨씬 더 감정을 이입하고 동정하는 것 같다. 즉 최도영이 아니라 장준혁에게서 구차한 현실의 내 모습과 닮은 구석을 더 많이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최도영 처럼 저항하기 보다는 설령 쫄딱 망할지언정 한번 크게 저질러 보고 싶은 욕망을 장준혁에게 투사한다.

 

반면 장준혁이 판치는 세상, 돈과 조직의 논리가 압도하는 가운데 사표를 각오하는 최도영은 드물다. 비주류다. 그런 식으로 사는 사람을 별로 본 적 없다. 작가도 감독도 그리고 시청자들도 이 비주류들의 고민과 번민을 속속들이 생생히 알지 못한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잘 모르니 에피소드는 피상적이 되고 그 자리를 대사 없는 영상으로 매워진다. 그 결과 장준혁의 모습은 소름끼치게 리얼하지만 최도영의 존재는 희미하고 맥이 없다. 결국 드라마는 장준혁과 최도영이 상징하는 가치들이 충돌하고 그 속에 갈등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야망에 불타는 한 인간의 성공과 몰락이라는 뻔 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원작과 일본판 하얀거탑에서 최도영이 장준혁 만큼 비중 있게 공감 가는 인물로 그려졌다면 그것은 원작의 작가와 일본 사회가 최도영을 최도영 답게 하는 가치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되었던 1960년대 말 일본은 최도영이 대변하는 휴머니즘과 같은 진보적 가치들이 폭넓게 공유되었기에 장준혁에 꿀리지 않는 당당하고 할 말 하는 최도영을 중량감 있게 형상화하고 독자와 시청자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우리의 최도영은 그렇지 않다. 사실 전혀 꿀릴 것 없고 오히려 당당할 것 같은데도 장준혁 앞에서면 작아지고, 제대로 반박조차 하지 못하며, 버벅대거나 주저한다. 나는 이런 최도영이 못마땅하다. 이렇게 밖에 최도영을 그리 줄 모르는 작가와 감독에게 불만이 많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작가와 감독이 그리는 최도영이 우리 국민들 눈에 비친 우리 사회 양심 진보 개혁 세력의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게 우리의 본 모습이라는 생각이 미치니 화가 난다.

 

그러니까 2007년 한국의 인도주의자들은 아직도 비주류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 제가 하는 말이 옳은지 조차 헷갈린다. 처참한 지지율에 반성을 주워 삼키지만 도대체 뭐가 틀렸는지도 감을 잡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일군의 집단들은 자기가 걸어온 길을 부인하며 보수적 가치들에 아부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혀 현실감 없는 얘기로 무모한 선동을 일삼는다.

 

시청자들은 혼자서 결심하고 혼자서 희생을 감수하는 최도영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당당한 것이었다면 양심을 따를지 조직의 논리를 따를지 고민하는 후배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답을 알려주는 최도영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최도영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고 능력도 있다.

 

마찬가지로 자칭 진보 개혁세력이 국민들에게 할 바도 그것이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혼자 독야청청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제 소신의 정당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설득하는 힘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실현 가능한 비젼이다. 행동의 지침이지, 번민이 아니다.

 

"니가 옳다면 옳다고 나에게도 그 답을 말해줘봐~~ 나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지 말고 니 길이 옳으니 같이 가자고 해 보란 말이야~~!"

 

하얀거탑의 최도영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바로 이거다.

 

 

by  유부 

 

 

* <무브온21블로거기자단>이란 : 무브온21에서 활동하는 논객들이 모여 구성한 기자단입니다. 무브온21의 주요 칼럼과 무브온21 논객들이 기획한 기사와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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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3-0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간만에 즐겨보는 한국드라마 하얀거탑.
최도영 캐릭터가 멋지긴 했지만 무언가 항상 무기력해 보였는데, 이 글을 읽으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작가와 감독이 최도영에게 별로 관심이 없거나, 원작에서 최도영에게 부여된 역할 즉, 휴머니즘 인도주의 또는 이에 상당하는 어떤 가치들, 예컨대 개혁이나 진보 양심 등등과 이런 가치들을 옹호하는 사람 또는 세력들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짱꿀라 2007-03-0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바닥님, 근데 저는 최도영이라는 인물이 정말로 마음에 든답니다. 정의를 위해서 자신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무모해 보이지만 이런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아! 드라마라서 그런가 헤헤~~^^

외로운 발바닥 2007-03-06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최도영이 무척 마음에 든답니다. 산타님 말씀대로 최도영 같은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조금씩 바뀔 수 있는 것이겠지요. 다만, 우리사회가 드라마에서조차 최도영 같은 인물이 발을 디딜 틈이 별로 없는 것 같아 그것이 좀 아쉽네요. ^^;
 

설을 맞아 교수님과 본가에 드릴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들렀다.

대목이라 그런지 백화점 선물코너는 발 디딜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무엇을 살 지 고민을 하며 선물코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가격에 속으로는 부아가 치밀었다.

사과 10개가 10만원, 잣이랑 호두 한움큼씩 들은 선물 세트가 15만원, 한우 세트는 아예 30-40만원부터 시작했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백화점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매년 명절에 선물을 사러 갈 때마다 속으로는 부아가 치민다. 이것들이 명절이라고 정말 대놓고 바가지를 씌우는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죄없는 판매원들에게 시비를 걸어보고픈 충동까지 든다.

개인적으로 좀 품질에 걸맞지 않게 비합리적인 가격에 무척 분노하는 편이고, 비싸서 맘에 안들면 안사면 그만이겠지만, 명절에 선물을 하는 풍습(?)에 홀로 반기를 들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싸보이는 선물을 할 수도 없어 남들 하는 풍습에 동참하고 있는 나로서는 명절 바가지에 항상 심기가 불편하다.

10만원대 이상만 보다가 초콜렛 몇개 담긴 선물상자가 3-4만원 하는 것이 싸보였다니 내가 이상한 것인지,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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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2-14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코릿 선물상자의 가격에서도 분노합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1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초콜렛 선물상자에도 분노했습니다. ^^;; 첨엔 절대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싸보인다 했는데 1,2초 뒤에 역시 분노했습니다. ;;

가넷 2007-02-14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정말 과하네요.;

짱꿀라 2007-02-1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10개의 십만원 너무 했네요. 진짜루 고가품이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2-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늘사초님/ 해마다 명절 때 항상 맘이 정말 안 좋아요...
산타님/ 겉으로 보기엔 3-4만원짜리 마트 선물세트와 별반 차이도 없던데...뭐 인삼을 먹이거나 유기농 재배를 하기는 했을 거라고 믿어는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