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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수도 이전에 관한 나의 견해가 아닌데 내용이 좀 빗나갔다.

나는 그날 오후에 결재를 받을 것이 있어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로 2시 10분전쯤에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업무를 보고 사무실로 뛰어들어오면서 사무실 사람들에게 헌재결정이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사실 내가 속한 곳의 특성상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는 텔레비전으로 가서 긴장되는 마음으로 화면을 지켜봤고 화면에서는 윤영철 헌법재판소 소장이 결정문을 읽고 있었고 그 내용은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이 역사적 관행으로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관습헌법이라는 규정으로 인정하기 어렵고 설사 이를 관습헌법으로 인정하더라도 관습헌법에 성문헌법과 동일한 규범적 효력을 인정할 수 없으며 이를 변경하는 것에 관한 명시적으로 헌법적인 제한이 없는 이상 이를 법률의 형식으로 변경하는 것이 불허된다고 할 수 없고 국회의원의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의결된 수도이전특별법이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 할지라도 국회의원 개개인이 정치적 책임을 짐은 별론으로 하고 그러한 법률을 위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아쉽지만 역시 기각되었구나. 그래도 헌법재판소는 참 논리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윤영철 소장이 '그러므로 헌법에 위반되었음을 선언한다'고 말을 하며 선고문 낭독을 끝마쳤고 그때서야 나는 내가 들었던 것이 1인의 각하 소수의견이었고 7인이 헌법 제130조 위반을 이유로, 1인이 헌법 제72조 위반을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애써 헌법재판소 결정을 법리적으로 합리화하려는 내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이 참 묘했다. 조금전까지 '역시 헌법재판소야. 아쉽지만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던 내가 '그래 헌법재판소가 잘 판단한 거야.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헌법적 효력을 가질 정도로 굳어진 관습이라고 할 수 있잖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내 마음속의 생각을 바꾸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권위(이경우는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이라는)에 맹목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고는 있지 않은지 누군가에게 치부를 들켜버린 것처럼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3차례에 걸친 텔레비전 토론을 보고 여러가지 신문기사를 읽고 난 지금 헌재결정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이렇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적 합의없이 밀어부치는 수도이전사업에 대해 사법부가 견제의 의미로 위헌결정을 한 것은 결과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수도의 문제가 관습헌법이라는 것에는 여러 이론이 있겠지만 헌재가 정책적으로 위헌결정을 정해놓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창설해낸 이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까지는 불가피하다 할 지라도 관습헌법을 헌법 제130조에 따른 헌법개정절차(국회의원 1/2의 발의, 2/3의 의결 후 국민투표)에 따라 변경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억지같다. 관습헌법을 해석하는 것은 헌재이고 모든 관습헌법에 대해 헌법개정절차를 거치도록 강요하는 것은 사실상 헌재에게 성문헌법규정을 제정하는 것과 같은 권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김영일 재판관의 의견처럼 대통령이 수도이전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의하지 않은 것이 현저한 재량권 일탈로 위헌이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법적 기속력이 있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어쩔 수 없이 헌재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둘러싼 혼란은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다. 법리적인 판례비평은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겠지만 제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을 탄핵하겠다는 등의 정말 말도 안되는 꼴*은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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