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가깝고도 먼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말처럼 한민족이자 한반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북한에 대해 내가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무지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1945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의 북한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객관적이고자 하는 저자들의 엄청난 노력과 기술이 엿보인다. 하지만 북한 역사의 객관적 서술이라는 말 자체에 이중적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북한사람이 아닌 제3자의 입장인) 보기에는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객관적이라고 보기 힘들 것 같다. 당연히 비판적이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지극히 객관적(?)인 논평만 하고 북한의 입장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업섰던 이유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북한 현대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것은 부각시키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것은 변명을 해 준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책이 객관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주체인 독자인 나도 사실은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남한 사회가 해방이후 최근까지도 북한에 대하여 말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해왔고 북한이란 남한을 전복시켜 적화통일만을 노리고 있는 타도해야할 집단으로 인식해왔기 때문에 남한에서 교육받고 자란 나 역시 북한에 객관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을 최대한 자제하고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서술한 이 책의 논조를 결국은 객관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권력을 차지한 김일성이 왜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수령중심 체제를 만들었는지(1960년대 북한의 고립무원적인 대내외적 상황때문이라고 한다-p181), 그와 같은 수령제가 어떻게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지(p290), 북한이 최근의 경제, 외교적 위기에 처한 원인과 전망에 대한 서술은 이 책의 목적과 의미를 고려하더라도 좀 많이 부족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을 통하여 북한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 독재국가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초기에는 북한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했고 나름대로 성과도 많이 거두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은 부분 아쉬움이 남지만 개괄적인 북한 현대사에 관한 첫 서적이라는 점에서는 불가피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사회가 좀 더 개방되고 성숙하여 북한에 대하여도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잣대와 똑같은 잣대로 비판을 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짱꿀라 2007-03-0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바닥님, 이 책 읽으셨군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출판되자 마자 사서 본 책인데 참 감명깊게 본 책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님의 리뷰를 보니 다시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서평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3-0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몇몇 아쉬움은 있지만 이런 책의 존재 자체의 의미가 큰 것 같아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에 관한 작가의 후기를 읽고는 나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에 대한 선입견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무언가 눈물 나도록 벅차거나 감동적인 순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이미지를 그렸는데, 소설에서 나오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정말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순간’이 결코 황홀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에 내가 가진 ‘그 순간’에 대한 통념이 작가에 의해 여지없이 깨지는 것을 ‘푸훗’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만끽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에피소드는 소설이 아니고서는 그 참맛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나 만화로 그 장면을 연출해서 소설을 읽으면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던 그 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석제의 단편 소설집을 두 권 읽었는데, 일단 드는 생각은 작가가 맛깔나게 이야기를 잘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들려줄 법한 이야기 거리를 유치하거나 밋밋하지 않게,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푸훗 하는 웃음이 터져 나오게 술술 풀어내는 솜씨가 정말 탁월한 것 같다.


다시 소설의 제목으로 돌아와서 작가후기에 나온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벅찬 감동이나 평생 기억할 만한 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문구처럼 열심히 일하는 와중의 휴가가 꿀맛 같듯이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있기에 ‘그 순간’이 번쩍이고 황홀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항상 번쩍하는 순간으로 가득하다면 오히려 참 피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돌이켜보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내 인생에 몇몇 그런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순간들을 새롭게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번쩍하지는 않지만, 번쩍하는 그 순간을 더욱 번쩍하고 황홀하게 해 주는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묵묵히 살아가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2-24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2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님 말씀대로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독서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쩍하든 아니든^^ 행복한 주말 되세요~
 
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 부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대략적으로 말할 때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조절하고 국민 생활을 향상시켜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는 다양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국가의 역할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선거공약으로 작은 정부를 내세우고 언론에서는 정부의 비대성을 공격한다. 이러한 작은 정부에 대한 믿음의 연장선에는 규제에 대한 거부감, 규제가 없이도 시장이 스스로 잘 굴러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소위 시장만능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국가관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어느새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국가관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장하준 교수는 이 책을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이론의 여지없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이 사실은 학문적으로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잘못된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논증한다. 단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학문적으로 기초해 있는 ‘자유시장’, ‘국가의 개입’이라는 개념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가정에 불과하고, 그렇기 때문에 무수한 변수가 작용하는 현실을 신자유주의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공, 북유럽이나 프랑스의 사례,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이후 저개발국가들의 경제파탄 등 신자유주의 이론이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아니, 신자유주의가 설명할 수 있는 사례는 오히려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 그토록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미국이나 영국도 역사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정반대되는 정책을 실시했다는 사실은 결국 무엇을 의미할까. 이론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현실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은다면 그 이론은 잘못된 것이고 수정 내지 폐기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말 그대로,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지적재산권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여 현재의 제도가 지나치게 발명자에게 독점권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비판한 부분도 무척 인상 깊었다. 발명자에게 당연한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는, 절대적인 믿음 역시 지적재산권도 사회 제도의 하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 공기업에 관한 부분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공기업 부문이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고, 특히 외국자본에 의한 민영화의 경우에는 공기업이 주인이 없어 방만하다는 지적에서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민영화된 포항제철과 관련하여 최근 인수합병 문제가 제기되고, 외국 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이 국가경제에 기여하기 보다는 손쉬운 가계대출에 기대고 있다는 등의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다만, 공기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철밥통 내지는 낙하산인사라는 점에서 공기업에 대한 내적 규제나 중립적 인사도 함께 정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은 장하준 교수가 그동안 주장해 온 것을 이론적으로 논증한 것이기에 전반적으로 조금 딱딱하게 느껴진다. 조금은 전문적이고, 경제학적 기본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허술함을 인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볼 때는 신자유주의도 한 때의 경제학적 흐름에 불과하고 이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신자유주의의 신화...이제는 신화의 지위에서 내려올 때가 된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은하단과 행성 2007-02-05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들과 유착하는 기업들이 문제가 생길 때는 그 기업들을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과, 신자유주의는 약소국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것과는 반대로 강대국의 주권은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할도 하는 등, 신자유주의는 자체로 모순덩어리인데도 이걸 떠받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게 문제입니다.
자신들도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느니 한국사회가 그 길로 가야 한다느니 하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일 것 같군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0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자유주의...정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인 것 같습니다. 행성님 말씀처럼 신자유주의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별 생각없이 신자유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알면서도 이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이익을 보는지 여부와 상관없이...개인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 8.15에서 5.18까지
박태균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국’으로서의 미국

해방 이후 우리의 현대사에서 미국은 항상 정치, 경제, 사회 등 우리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광복,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이승만, 4. 19, 5. 16, 서울의 봄 등 정권 교체기마다 미국은 철저히 우리정부, 국내의 동향을 분석하여 한국의 정세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내 정치에 개입해왔다. 여기서 미국의 국익이란 북한에 대응하는 안정적인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미국은 반공정책을 위주로 하는 독재정치를 불안정한 민주정부보다 선호했다. 이와 같은 미국의 모습들은 이 책의 제목 중 ‘제국’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방’으로서의 미국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우방’의 모습도 갖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일본과 전쟁을 하여 승리한 것이 주요 원인이 되어 우리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고, 그 이후 계속하여 주둔해온 미군은 6. 25. 전쟁 때 우리(여기서는 남한)와 함께 싸워 북한에 의한 통일을 막아 주었다.

휴전 이후 미국은 막대한 원조로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미군은 계속 한국에 주둔하여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해 주고 있다...

뭐, 이 정도가 우방으로서의 대표적인 미국의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와 같은 우방으로서의 미국의 모습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와 같은 이미지들 때문에 우리 국민 중 많은 사람이 항상 미국에 빚진 듯한 느낌을 갖고, 미국이 우리의 굳건한 동맹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와 같은 두가지 양면적인 미국의 모습을 바탕으로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여 해방이후 한미관계에서 우리 정부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전제하면서 몇 가지 점을 강조한다.

일방적이 아닌 불완전하지만 쌍방적인 한미관계

첫째로 미국은 압도적 힘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항상 한국정부가 미국의 꼭두각시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정부 나름대로 시대 상황을 이용하여 반작용을 했고, 때로는 한국의 정세와 정부의 의사결정이 미국의 정책 변화로 나타나기도 했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동태적 분석의 필요성을 느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듯이 1950년대의 미국과 오늘의 미국이, 1970년대의 한국과 오늘의 한국은 분명히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반미를 부르짖을 충분한 역사적, 실증적 근거들이 있기는 하지만, 무조건적 반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박정희 정권의 쿠테타 승인, 광주학살 묵인 등에 대한 책임논란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5. 16.당시 소위 우리나라를 움직이던 힘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쿠테타에 그다지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 책의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민주정부는 무조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이를 뒤엎은 쿠테타는 국민들이 반대했을 것이라는 나의 상식적(?)인 통념에도 결국은 현시점에서의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었나 보다. 한편으로는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는 까닭에 미국의 승인 없이는 우리 정부 스스로 쿠테타도 진압하지 못한다는 어이없는 현실이 놀랍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의 막무가내식 정책추진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가 최근에 전직 국방부장관들을 상대로 전작권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질타한 것에는 일응 수긍이 가는 것도 그러한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관계에 대한 학습효과

두 번째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학습효과’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한미관계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한미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자는 것이다. 우방이든 제국이든 미국은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이다. 그런 미국의 실체는 인정하고 이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것처럼 한국의 반작용으로 미국의 정책이 변화한 경우가 없지 않은 것을 보면 능동적 대처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한민족 공조를 내세우며 무조건적으로 미국을 반대하는 식의 접근만으로는 미국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까봐 미국에 조그만 반대를 하는 것조차 금기시 하는 것도 그렇지 않아도 넓지 않은 우리 정부의 활동폭을 더욱 좁게 만든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고 비이성적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시작전권이나 한미 FTA 문제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미국의 정책 기조상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반대로 우리나라에 결정권이 있는 문제는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요구하고, 아니다 싶으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도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미국은 분명히 하나의 실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미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는 무조건적 반미와 반핵반김을 구호로 혈맹사수를 외치는 무뇌적 숭미가 공존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제국’과 ‘우방’이 우리 사회에 투영된 모습이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학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제3의 길을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방과 제국이 한미관계의 두 ‘신화’라는 제목에 이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딴지걸기

이 책은 저자가 수많은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완성하였기에 실증적이고, 당시 한미관계를 실제 움직이던 사람들이 직접 작성한 문서들을 통하여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막연히 한미관계나 우리의 현대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몇몇 편견을 깨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지엽적인 내용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정작 종합적인 분석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풍부한 과거의 사례가 마지막 결론에 응축되어 있는 저자의 주장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개인적 배경지식의 부족과 집중력 부족의 소치이겠으나 전에 저자의 ‘한국전쟁’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도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고 의문점만 더 많이 드는 것이, 저자와 내가 잘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한미관계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을 보면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은하단과 행성 2007-02-0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적 반미파와 무뇌적 숭미파들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웃지만, 그 사람들의 사고체계와 수준은 상당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숭미파들이 더 힘이 강했고 탄압하는 쪽에 주로 위치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두 부류 모두 한국 사회에서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0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성님 댓글이 핵심을 정확하게 짚으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숭미파가 훨씬 더 힘이 센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그나마 반미가 좀 세졌다고는 하지만 그 형식이나 주장이 좀 거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전 반미주의자는 아니지만, 반미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표현과 주장을 순화시키는 것이 더 이익일테네 말이죠...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대에 막 접어든 싱글 여성인 오은수.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지만 특별히 어디가 빠지지도 않는 그녀의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생활기가 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원래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은 왠만하면 잘 읽지 않는 편인데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일단 감각적인 삽화에 눈이 가서 연재된 소설을 읽다보니 재미가 있어서 사무실에 가지 않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빠지지 않고 신문에서 읽었었다. 집사람 덕분에 책을 다시 알라딘에서 주문하여 또 읽기는 했지만, 읽으면서 또 내용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도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주인공 오은수부터 영화같은 사랑을 꿈꾸지 않고 상대방을 결혼상대방으로서의 조건을 기준으로 따져볼 만큼 충분히 세속적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겪는 사랑은 그 자체가 드라마틱한 요소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 형식이 맞선 상대이든, 20대 초반에 폭풍처럼 찾아오는 사랑이든 말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그러한 우리의 일상의 측면을 잘 포착하고 담아낸 것 같다.


이 소설의 주된 화두는 결혼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 들여져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최근에는 독신주의자들도 꽤 많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위적인 제도고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다는 의견까지도 제시되고 있다. 제도에 의하여 우리 삶의 상당부분이 규정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 소설에서 결혼에 실패하는 친구 000을 보면서도 느낀 것은 제도 만으로 우리 삶의 본질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이라는 제도만으로 본인이 바뀌어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이 결혼을 비롯한 우리사회 제도들의 권위가 벌써 너무 약해진 것이 아닐런지...


나는 여자도 아니고 미혼도 아니지만 주인공 오은수의 독백에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작가 특유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심리분석(예컨대, 직접 통화를 하지 않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의 심리 같은 것) 덕분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의 심리상태 - 때로는 굳이 그 심리를 분석하여 까발리고 싶어하지 않는 - 를 콕 집어 오은수의 독백으로 낱낱이 드러내 보이는 부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행동 이면의 심리를 훔쳐보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로 결혼, 이혼, 혼전동거, 가족간 불화, 직장내 스트레스 등 일상적이지만 다양한 문제들을 모두 다루려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상황 설정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결혼이나 30대가 되어 느끼는, 혹은 더 근본적으로 평범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불안정함 등을 (비록 남자로서의 다른 측면에서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은수로 대표되는 평범한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일정 부분 공감을 받은 것 같아 좋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짱꿀라 2007-02-0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의 나의 도시 보시면서 재미 있으셨죠. 읽어 보려고 보관함에 넣어 두고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손이 잘 가지를 않네요. 하루 속히 알라딘에다가 주문을 넣어 할 것 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잘 읽고 갑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0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적나라한 심리분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타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우기부기 2007-02-0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었단 말가? 난 별로던데.. 주인공의 삶이 별로 공감가지 않음. 현대 여성을 대표하기에 그닥 정상적이지 못하던데.. 우리나라 소설을 보면 여성이 비뚤게 그려지는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야..

외로운 발바닥 2007-02-0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만 비뚤게 나오는 건 아니지 뭐...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는 건 인정~